2010년6월13일
이제 세계인들의 모든 축제인 월드컵이 열렸다.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던 월드컵이 열렸다.
우리는 B조(대한민국 아르헨티나 그리스 나이지리아)에 속해있다.
6월12일 그리스와 의 대결 모두가 긴장 돠었고 현장에서 응원하였던 나도 긴장 되었다.
전반 6분이 지나고 나서 이정수가 1점 골을 넣었다.
그때 응원장은 함성으로 떠나 갈 것만 같았다. 나도 환호를 하고 서로 기뻐하였다.
우리는 이정수의 힘을 받아 더욱더 신나고 즐겁고 힘차게 응원하였다.
숨막히던 전반전이 끝나고 15분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후반전을 시작하는 호각 소리가 났다.
우리 선수들은 이정수의 1골의 기운을 받아 더욱 열심히 뛰었다.
이때 후반6분 박지성이 골을 넣었다. 이것은 쇄기를 밖는 골이었다.
이제 경기는 끝났다. 우리나라가 1승으로 B조 1위를 하였다.
우리는 모두 기뻐하였다. 그리고 응원 현장도 둘러 보았다.
서울광장의 모습은 붉은악마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우리 거제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응원장은 개판이 따로 없었다. 놀았으면 청소도 할줄 알아야된다는 것도 알아야된다는 것도 깨달았으면 좋겠다
2010년 4월 2일 금요 글쓰기
글감:부모님이 살아오신 이야기
글쓰기는 (정직)하고 (자세)하게
1958년 2월 26일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온 마을을 울리는 울음 소리와 함께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습니다.바로 그 아기는 우리 아버지 였습니다.
어찌나 울음소리가큰지 온 동네에 아버지 울음소리가 들린것입니다.
그로부터 8년후............
1966년 아버지 께서는 초등학교 입학을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열심히 공부에 맛을 들여 하셨습니다.
아버지 께서는 공부가 지겨운지도 모르는지 열심히 공부를 해서
공부를 초등학교 2~6학년때까지 잘했다고 하시네요....
이제 우리아버지는 초등하교 6학년이 되었습니다.
수학여행을 가려고 했으나 집안의 경제 사정 때문에 결국 수학 여행은 스스로 포기하셨습니다.
그토록 기대했던 수학여행을 못가셔서 너무나 아쉬워서 울기까지도 하셨다네요.
그때 할머니는 수학여행을 못보내신게 아위워서 초등학교 졸업식때 집안이 가난하였지만
초등학교 졸업식때 옷을 사주셨다 합니다.
이제 의젓한 중학생이 되신 우리 아버지 중학교 1학년때도 공부가 재미있으신지
할머니께서 공부 그만하라는 말이 나올 정도내요.
거기서 영어에 아주 푹~빠지셨다고 하내요.
이제 또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 이번에도 가정형편 때문에 못가게 되자 하루종일
우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는것도 잠시 공부에 매진하셨다고 합니다.
XX XXX XXX
나의 아버지는 잘 생긴 미남도 아니고 주위사람들을 끄는 좋은 언변도 없고 체육대회 같은데라도
대표로 나갈 운동도 잘하는 것이 없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것들은 제가 점점 커가면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어린시절은 부모님이 자식들을 챙겨주시기보다는 5남매 중 제일 큰 아버지가 항상 동생들을
챙기고 집안일도 도와야만 했습니다.
지금은 학교를 마치고 오면 씻고 어머니가 해주신 간식을 먹고 ...TV도 좀 보기도 하고 ...학원을 가지만
아버지는 동생들이랑 동네 친구들이랑 산에 나무도 하러 가야하고
어린 동생이 울면 달래주기도 하면서... 공부보다도 다른 할 일이 더 많았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중에서도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는 것이 제일 재미있고 좋았다고 합니다. 기특하게도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까지는그저 평범하고 눈에 띄지도 않는 학생이었으며
동네 친구랑 동생들이랑 산으로 들로 뛰며 신나게 놀았다고 합니다.
그런중에도 아버지가 책읽기는 좋아했기때문에 초등5학년 부터는 독서에 푹 빠져서 졸업할때 쯤에는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은 거의 다 읽었을 정도랍니다. 그래서 졸업때는 큰상도 받았답니다.
왕성한 독서때문인지 상급학교 진학해서는 항상 우등을....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시작한 영어는 하면할수록
재미가 있어서 하루도 쉬지않고 읽고 쓰고 했답니다.
아마 그때는 인터넷도 없고 게임도 없고 학원도 없으니 그냥 혼자서 할수 밖에는 없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때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궁금합니다.
아버지는 건강보험공단에 다니면서도 계속 공부를 하셔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공무원시험에 합격을 해서
할머니가 동네잔치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족은 아버지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존경도 합니다.
늘 노력하고 공부하는 모습은 우리들한테도 후배들한테도 귀감이 됩니다.
2010년 3월 2일 금요 글쓰기
글쓰기는(정직)하고(자세)하게
글감:자라온 이야기 쓰기
정성 들여 쓸것. 한뼘불량
나는 누구인가?
지난 설날 이었습니다. 부산으로 가는 길은 설레기만 했습니다.
우리는 승용차를 타고 계속 외삼촌 외숙모 외할머니 이모가 있는 부산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설날 연휴는 너무 짧아 고속도로는 하나의 거대한 주차장이 되어버렸습니다.
계속 정체가 되자 차안에 있는 시간들이 너무 지루했고 한밤중에도 도착할 수 있을지 생각이 쌓였습니다.
그 때 였습니다. 엄마 핸드폰에 전화가 울렸습니다. 할머니가 전화를 하셨던 것입니다. 할머니께서는 언제
도착하냐고 물으시고 빨리 오라고 했습니다. 맛있는거 많이 있다고...
그 떄 옆에 있던 사촌동생기 전화기에 대고 나더러 빨리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 애는 아직 5살밖에 안된 남자아이입니다. 가장 사랑과 귀염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도윤이 때문에 우리가
부산할머니 댁에 가는건지도 모릅니다. 그때 바로 옆에 있던 사촌 여동생도 전화기로 "빨리와 보고싶어 언니,오빠'
저는 무성의하게 "어-" 라는 말로 간단히 답해 주었습니다.
이제 기다리고 기다리던 부산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그때 시각은 5:30pm 이었습니다. 그때 여동생이 저에게 와서
끌어안을려고 했지만 저는 비켰습니다. 남동생에게는 모든 정과 사랑은 나누어주었지만...
저는 같은 동갑내기가 있습니다.
남동생에게는 모든 사랑과 정을 나누어 주었섭니다.
유정이랑 놀때 또 저는 남동생에게만 너무 놀았습니다.저는 비켜씁니다.그때 전화가 왔습니다.
여동생이 운다고 나의 무시때문에 울었다고
저는 동갑내기거 있습니다. 여동생은 무시하듯이 이제 우리가 떠나는 날이 되었습니다.나는 좋은 오빠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나쁜 오빠였습니다. 다음에 부산에 올 때는 모두에게 잘해주자는 명세뿐이었습니다.
2010년 4월 9일 금요 글쓰기
급식 도우미 배재민
선생님 이 부르셨다.
급식 도우미할사람 봉사점수준다.
나는 봉사점수라는 말에
하겠다고 말했다.
이제 첫날
아줌마들은 우리에게
할일을 친전히 설명해준다.
이제일이 끝나고
교실로 가는길 수고하셨습니다.
아줌마들은 수고했다고 한다.
이제 벌써 한달이 지났다.
이제는 마지막일
1달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너희들도 수고했다 라고 한다.
뿌듯함과 아쉬움이 남으면서 교실로 간다.......
2010년 4월 16일 금요 글쓰기
남의 나라 말을 생각없이 쓰면?
1:말을 괜히 어렵게 만든다
2:남의 나라 사람들의 감정이나 생각체계 생활태도를 우리 자신도 모르게
따라 가게 된다.
3:우리 말의 아름다움을 깨뜨린다.
4:말과 글이 따로 떨어져서 우리의 삶과 삶의 느낌을 바르고 자유롭개
글로 드러낼 수 없다.
5:말과 글이 일반 민중에서 떠나 비민주의 길을 가게되고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도 민주스럽지 않게 바뀐다.
6:말이 잡작스러워지면 우리 겨레의 얼이 말에서 떠나 버리는 것이다.
2010년 5월 7일 금요 글쓰기
쓰고 싶은 거(억울한일)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나한테도 이런일이 않일어 날줄 알았는데
나한테도 학교폭력은 아니지만 이와흡사한 일이 벌어졌다.
이이야기는 1학년 겨울방학으로 넘어가게 된다.
나는 OO스쿨(한빛 C.O.S 교육원) 이란 곳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과외 마치면
집에서 놀고 잇을까봐 나를 4시까지 남기기로 했다.
일은 거기서 터지게 되었다.나는 수업을 마치고 및으로 내려가
자습을 하게 된다. 밑으로 내려간지 얼마 안돼 핸드폰에 전화벨
소리가울리게 되었다.과외 선생이 었다. 위로 올라 오라고
한 것이다. 나는 옆에 있던 아이와 함께 위로 올라 갔다.
위에 분위기는 왠지 무서웠다. 그리고 다짜고짜 물어 무슨 과외
에서 있었던 이야기 한적 없냐고 한 아이에게 뭍자 아니라고
대답하자 그냥 넘어 갔다. 나에게도 물어 이야기를 한적
있냐고 뭇자 없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계속 물었다. 나에게만
계속 노리는듯 하였다. 계속묻는 대답에 나는 있다고 말하
였다. 그순간 안경을 벗으라고 하였다. 나는 안경을 벘었다.
그 순간 손이 나의뺨을 마추어 나는 그순간 문 손잡이 에
볼이 부디쳤다. 그 다음은 발로 배를 걷어 찼다.
나는 쓰러 졌다. 그다음 머리 채를 잡아 흔들고 밑으로 내려가고
하였다. 나는 다시 밑으로 내려가 자습했다.
얼마 안돼 과외 선생이 계속 협박을 하고 나는 시간이 끝나 집으로 들어가고
엄마는 그일을 알고 당장 항의를 하고 그사람고 나의 인연은 그렇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