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농장 한쪽 척박한 땅에서 가을 가뭄에 말라비틀어져 가는 생강을 바라보니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옛일이 생각난 것이다. 세네갈 다카르에 있는 정부 기관에서 일할 때이다. 점심시간이면 직원 중 도시락을 싸 온 사람들은 사무실에서 끼리끼리 모여 점심을 함께 먹는다. 그들의 점심이라야 기다란 바게트 한 조각이다. 형편이 조금 나은 사람들은 몇몇이 돈을 모아 식당에 주문한다.
가장 싸구려이자 대중 음식인 쩨부젠이다. 우리로 치면 가장 흔한 백반인데, 모양은 갈색의 볶음밥이다. 제대로 된 쩨부젠은 맛이 일품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고 하니 우습게 볼 음식은 아니다. 여러 사람이 주문하면 커다란 쟁반 위에 기름에 볶은 밥을 깔아서 생선 몇 점을 얹어 가져오는데 겨우 3천 세파프랑, 약 6천 원 정도이다. 이 정도면 네다섯 명이 함께 먹을 수 있는 양이다. 먹을 땐 대부분 손으로 먹는다. 더 여유가 있으면 식당에 가서 메뉴를 골라 먹을 수 있다. 물론 메뉴라야 쩨부젠과 야사뿔레(닭고기 요리), 마페 등이 있다. 쩨부젠은 겨우 천 프랑, 야사뿔레는 천오백 프랑이다. 난 가면 야사뿔레를 시켜 먹지만 문화가 달라서 그런지 닭고기가 너무 팍팍해 맛있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그래서 절반은 남긴다. 남길 때는 깨끗하게 남겨야 한다. 아니면 처음부터 덜어놓고 먹어야 한다. 왜냐면 남은 것은 딸리베라는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주거나 관련 단체에서 수거해 가기 때문이다.
한번은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서 나오는데 후식으로 음료수를 사라고 이구동성으로 나를 졸라대기 시작했다. 금액으로 따져봤자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음료수는 매번 내가 사곤 했다. 그날도 함께 나오다가 편의점에 들렀는데 직원들이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수 하나씩을 꺼내 들었다. 대부분 콜라, 사이다 아니면 시원한 이온 음료였다. 내가 머뭇거리자 여직원들이 나도 하나 꺼내 같이 마시자고 했다. 사실 난 찬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직원들 성화에 못 이겨 나도 냉장고를 기웃거렸다. 마땅히 마실 게 보이지 않았다.
냉장실 안쪽에도 뭔가 있어서 손을 깊숙이 넣고 이리저리 뒤져보니 진저티(생강차)가 나왔다. 마치 박카스 병처럼 생겼는데 겉에 작은 이슬방울이 송알송알 맺혀 있어 입맛을 다시게 했다.
그러자 여직원들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갑자기 나를 제지하기 시작했다.
“하이, 청! 그거 뭔지 알아? 마시면 안 돼!”
“왜 그래? 진저티잖아?”
그러자 여직원이 거들었다. 생강차는 정력제라는 것이었다. 내가 홀로 아프리카에 와서 생활하고 있는데 정력제를 마시면 저녁에 어떻게 견디려고 그러느냐는 것이었다. 난 그만 배꼽을 잡고 웃었다.
생강차가 정력제라고? 헉, 정말 웃겨!
그런데 어쩌랴, 이곳 세네갈에서는 생강차가 정력제라서 냉장고 안쪽 깊숙이 넣어놓고 남모르게 판다는 것이었다. 내가 생강차가 한국에서는 그냥 아무 때나 마시는 보통 차일 뿐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일단 난 막무가내로 마셨다.
그리고 이튿날 출근하자마자 부서를 돌아다니며 아침 인사를 하는데 차관 비서실의 여직원이 나를 보더니 씩 웃으면서 한마디 하는 것이었다.
“어젯밤 괜찮았어?”
그러고 보니 인사하는 여직원마다 그날따라 눈초리가 이상야릇하게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도 그들에게 생강차는 정력제일 것이다.
휴가차 한국을 다녀가면서 인삼차를 서너 박스 사가지고 갔다. 선물도 하고 내가 마시려고 사 간 것이다. 이곳 사람들이 인삼차를 마시는지 몰라 내 파트너에게 물으니 마신다고 했다. 난 한 박스를 젊은 장관에게 선물했다. 당시 장관은 30대 중반으로 매우 젊은 사람이었다. 은행원 출신이었는데 성과가 좋아서 당시 마키 샬 대통령이 스카우트했다고 했다. 나하고도 행정에 관해 대화하면 죽이 잘 맞곤 했다. 그런 그에게 인삼차를 선물했다. 주면서 마시는 방법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물론 우리에겐 아주 단순한 일이지만 그곳 아프리카인에게는 생소한 물건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효능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피로를 풀어주고 기를 보강해주는 좋은 차라고 했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났다. 한번은 장관이 부른다기에 가보니 장관이 차를 꺼내놓고 나에게 다시 한번 묻는 것이었다. 이 차를 어떻게 마시는지 매우 진지하게 묻는데. 그 표정이 너무 웃겨서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장관은 일본을 너무 좋아하는 일본문화 마니아였다. 때문에 이미 인삼차(진생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인삼이 정력제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러한 젊은 장관에게 인삼차 한 박스를 선물했으니 진기한 물건일 수밖에. 그 차를 어떻게 마셨는지, 또 정말 효능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애용하는 음료수가 밖에서 이처럼 냉장고 깊숙한 곳에서 특급대우를 받거나, 금지옥엽 정력제 귀중품으로 상전 대우를 받고 있는다는 데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뿌듯한 느낌이 아니 들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