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에 소재한 한 배차사무실. 굴삭기 임대사업을 시작한지 올해로 25년째인 이충열 사장은 종합소득세 신고 때문에 정신이 없다. 지난 1년간 간신히 밥만 먹고 산 거 같은데 자료를 정리를 하다 보니 이번에는 꽤 많은 세금을 내야 할 것 같다.
원래 자작(차주 자신이 직접 하는 작업)을 하며 소규모로 굴삭기 임대사업을 하던 그가 4대강 특수를 노리고 장비를 여러 대 늘리다 보니 올해는 제법 세금 납부액이 적지 않다. 옛말에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고 장비가 하나둘 늘다보니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바쁘다. 이 때문에 그는 남는 시간을 쪼개 그동안 봉사를 해오던 임의단체 일도 최근에는 소홀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종합소득세 자료를 정리하던 그는 깜짝 놀랄만한 내용의 전화를 한통 받았다. “사장님 장비가 넘어 갔어요.” 화들짝 놀란 이 사장은 얼른 질문을 한다. “작업하던 조종사는 어떻게 됐나요?” “네. 다행히 무사합니다.”
경기도 이천에 소재한 골프장 신축공사 현장에 도착한 이 사장은 일단 굴삭기 조종사를 만나 다친 곳은 없는지 묻고 “걱정하지 말고 며칠 쉬라” 며 안정을 시킨 후 사고현장을 둘러보았다.
사고 당일 굴삭기는 약간 비탈진 곳에 정원수를 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조종사는 무거운 나무를 든 채 주행하던 중 전방에 장애물을 피하려 상부를 회전하던 찰나 장비가 전도됐다고 전했다. 굴삭기는 두 트랙이 하늘로 향한 채 전복돼 있었다. 넘어진 장비를 바로 세우려면 80톤급 이상 크레인이 와야 할 것 같다.
사고현장의 원청회사 토목과장과 반장들은 차주인 이 사장이 오자마자 어서 빨리 장비를 세우라고 한다. 숨도 채 고르기 전에 말이다. 아마 감리 쪽에서 나와 전복된 장비를 보고 지적사항이 나올까 봐 걱정하는 듯싶다. 이 사장이 “넘어진 장비의 수리비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자 현장 토목과장은 깜짝 놀란다. “그걸 왜 우리가 책임을 져요?” 하면서 말이다.
오히려 이 사장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이 사장은 참고 있던 한마디를 던졌다.
“현장에서 장비를 임대하면 그 장비는 현장의 장비가 되는 것이고, 또 그 장비를 관리하고 안전하게 작업을 하도록 지시하는 것도 현장에서 하는 겁니다.”
그러자 현장소장이 반문한다. “아니, 조종사의 과실과 조종 미숙으로 넘어진 것을 왜 현장에서 책임을 집니까?” 라며 오히려 빨리 장비를 세우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을 것이란 말을 덧붙인다. 그런 후 휑하니 사무실로 들어가 버린다. 명함을 달라고 하니 사무실에 있다면서 주지도 않고 말이다. 이 사장은 “해도 너무한다”며 한숨을 내쉰다.
물론 장비를 하다보면 가끔씩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건설회사에서 산재처리가 충분히 가능한데도 불구, 모든 책임을 장비 차주에게 전가하는 행태에 그는 울화가 치민다. 힘이 쭉 빠진 그는 뒤로 돌아 나와 차를 타고 현장을 빠져 나왔다.
이어 이 사장은 근처에 있는 또 다른 현장으로 향했다. 결재가 꽤 좋은 현장이다. 그 곳에 장비 4대를 투입한 그는 이런 현장만 있으면 장비 임대업 해먹고 살만하다고 느낀다. 그 곳 현장에는 이 사장의 360과 텐급 굴삭기 3대가 일을 하고 있었다. 모든 장비가 리퍼를 달고 암 바닥을 벅벅 긁고 있다. 의외로 암이 잘 부숴져 나온다. 웬만한 브레이커보다 잘 부서지는 거 같다.
그곳에서 조종사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이 사장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진다. 다음 주에 장비 2대가 빠진단다. 조종사들에게 저녁을 먹으라며 지갑을 연 이사장은 ‘또 어디 가서 일감을 잡아야 하나’라고 고민하며 현장을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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