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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스크랩 나의 아버지 애국심을 담은 일제말의 한글교육
노나메기(김명경) 추천 0 조회 43 17.08.10 08:28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불행했던 나의 아버지 이원수

                                                           글/ 이경화_아동문학가 이원수의 장남, 

 ㅡ 나의 아버지는 일제식민지하의 불행한 시대에 태어나셔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 ㅡ

가난한 목수이셨던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려운 집안을 위해 남의 소실로 들어가 불행한 삶을

사신 누님의 도움으로 생활하며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늘 어려웠던 형편 때문에 일찍 홀로 된 누님을 제대로 도와드리지도 못하는 것을 늘 마음

아파하셨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해방되기 전 어렸을 때의 일이다.
내가 가야국민학교에 다닌 1,2,3학년(1943~1945) 때의 일이다. 집에서 우리말만 했던 나는

학교에 입학하자 일본어로 가르치는 선생님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갈 수록 읽고 쓰는 국어(일어)실력이 뒤처지기 시작해서 나중에 어머니께서 해주신 말로 알았지만

담임선생님이 가정방문까지 하셔서 집에서 일본말을 가르쳐주길 부탁했다고 한다.

기독교가정에서 자라 배화여중을 다니셨던 어머니(최순애,「오빠생각」의 작사가)는 토셀리의

세레나데, 솔베지의 노래를 즐겨 부르시던 당시엔 신여성이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이들

에게 일어를 가르치지 못하게 하셨고 얼마 안 가 일본은 망할 텐데 일본말은 몰라도 된다고 하시며

저녁이면 집에서 나와 두 살 아래 동생(창화)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셨다. 가르치시는 방법은

 ‘ㄱㄴㄷㄹ’로 시작하지 않고 그냥 쉬운 단어를 하나씩 가르치신 것으로 기억된다.
제일 처음 가르쳐주신 단어가 ‘소’ ‘말’이었다. 이어서 ‘어머니’ ‘아버지’ ‘누나’ 등이었다.

‘소’란 단어를 가르치시면서 소는 느리지만 힘이 세고 인내력도 있고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준다고 했다. 소는 사람에 비교하면 조선 사람이고 ‘말’은 빠르게 뛰는 동물이지만 인내력이 없고

힘도 별로 없으며 죽어서는 별 볼 것이 못되는데 말은 나라로 비교하면 일본과 같다고 하셨다.
우리 조선 사람은 소와 같아서 어려움이 있어도 잘 참고 견뎌 느린 거북이가 빠른 토끼와의 경주

에서 이기듯이 소가 말을 이기는 날이 꼭 올 것이라고 하셨다. 말하자면 한글 교육에 앞서서

애국심 교육을 먼저 하신 것이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던 날은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그때만큼 기뻐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 뒤에 본 일이 없을 정도였다. 후배격인 젊은이들과 함께

태극기를 만들고 벽보를 써서 길에 붙이는 일을 하시면서 기뻐하신 모습이 생각난다.
인내로 잘 견뎌낸 소가 말을 이길 것이라 했던 비유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었다.
아버지를 따르던 젊은이들이 그때 여럿 있었는데 우리가 사자 아저씨라고 부르는

 청년이 있었다. 뒤에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아버지를 따르던 그들은 사회주의사상을

가진 젊은이들로 아버지를 비롯해 모두 일본형사의 감시를 받아왔다고 했다. 어머니는

특히 3.1절을 전후해서 감시가 심해서 트집잡힐 일이 생길까봐 3.1절이 되면 항상 불안하셨다는

얘기를 하시곤 했다.

아버지와 이 분들은 해방 뒤 무정부상태의 함안, 가야지방의 치안유지를 위해서 자원 봉사를

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혼란스런 며칠이 지나 학교 수업이 다시 시작 되었을 때 국어시간은

일본어가 아닌 우리말 한글 시간이 되었다.
1학년, 2학년, 3학년 할 것 없이 전 학년이 ‘ㄱㄴㄷㄹㅁㅂ’부터 시작하는 1학년 수준의 국어수업을

받았는데, 나는 아버지께서 몰래 가르쳐주셨던 한글 실력 때문에 배울 게 없었다.
해방되기 전 국어에 열등생이었던 나는 하룻밤 사이에 최우수 학생이 된 것이었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당시 경기공업학교 교장이셨던 큰 이모부의 권유로 서울로 이사를 했다.
해방 후 국어를 가르칠 교사가 마땅치 않고 또 학교 서무도 겸할 수 있어 아버지에게 적극

권하셨다고 들었다. 나는 아현국민학교 3학년에 편입되었고 4학년이 되어서도 국어시간에는

배우는 학생이 아니라 선생님을 돕는 조교역할을했다. 그때 내가 그림을 잘 그렸는지 선생님은

국어시간이 되면 별 배울 게 없던 내게 교실 뒤의 칠판에 색분필로 그림을 그리고 동시를 하나씩

쓰게 하셨다. 선생님이 주신 첫 과제는 주간 소학생 잡지에 실린「연」이란 동시와 연 날리는

 소년의 그림이었다. 책을 보니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있어 선생님께 “이 동시 저희 아버지가 쓰신

동시입니다”고 말했더니 깜짝 놀라시면서
“그러면 너희 아버님이 "고향의 봄"을 쓰신 이원수 선생님이란 말이냐”고 물으셨다. 
 

                      


        내 연은 하늘에 놀고
        나는 언덕에 논다

        연은 가물가물 높이 떠서도
        언덕에 서 있는 내 말 잘 듣고
        나는 또 하늘을 날지 못해도
        내 연과 함께 공중에 논다.

        하늘에서 새 세상 내려다보면
        집집마다 국기
        거리마다 애국가

        해 저물면 장안의 불이 또 좋아
        저녁 바람 추워도 연은 날은다

이 동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혼자 웃었다.
“아! 아버지가 우리가 학교 운동장에서 연 날리는 것을 보시고 이 글을 쓰셨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그 이후로 쓰신 수많은 동시와 동화를 보면 집에서 일어나는 일, 이웃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재로 삼아 쓰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작품의 소재가 어디였는지는 안다

해도 동시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안다는 것은 어려운 것임을그 뒤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사자 아저씨라고 불렀던 한 청년이 어느 날 아버지를 찾아 왔다. 저녁을 드신 뒤 한동안

여러 가지 얘기로 언성을 높이시더니 화제가 동시 얘기로 돌아갔다. 이야기의 주제가 동시「

연"이었다.
“하늘에서 새 세상을 내려다보면”에서 “온 세상 내려다보면” 이라고 해도 될 텐데 왜 ‘새 세상’

이라고 했느냐' 라는 식으로 단어 하나하나를 트집 잡듯이 질문을 해나가는데 그에 대한 아버지의

답변이 너무나 놀라웠다.
단어 하나하나에 우리가 생각 못했던 숨겨진 깊은 뜻을 거침없이 설명해 주시는 것이었다.

시에서 말하는 ‘새 세상’은 일제 암흑의 세계가 끝난 해방된 새로운 세상이었고, ‘집집마다 국기,

거리마다애국가’는 내가 연 날리던 아현동 거리가 아닌 함안의 8.15 당시의 해방의 기쁨에

젖은새 세상의 장면이란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단순히 연 날리는 장면을 노래한 게 아니라 일본의 억압에서 해방된 나라의 기쁨을 노래한

동시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 시간 이상 동시 한 편에 담긴 뜻을 설명하시는 것을 들으며 내가 깨달은 것은 아버지는

어린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평범한 글 속에 어른들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깊은 뜻을 숨

겨두셨다는 사실이었다.

최근 금융조합 기관지에 친일의 글을 쓰신 것이 밝혀져 우리 유족은 너무나 놀라고 충격을 받았다.
독서회사건으로 감옥에서 10개월 형무소에서 살았고 석방된 후 불온사상 요주의인물로 일 년간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고생하던 때 상사의 도움으로 금융조합에 복직했던 아버지는

알게모르게 얼마나 압박을 받으셨을까? 짐작할 뿐이다.
해방의 기쁨을 노래하고 기뻐하시던 아버지, 늘 보이지 않는 감시의 눈길을 의식하면서도

아들들에게 몰래 한글을 가르치시며 항일정신을 심어주시던 분이 자원해서 쓰셨다고는

믿을 수가 없다.

문제의 친일 글 속에도 “나는 지금 어쩔 수 없이 이 글을 쓰고 있다”는

비밀의 코드가 숨어 있을 것만 같다. 

 

 대산문화 2011*여름호  Vol. 40 에 실린 글

 (대산 문화원에서  [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기념 사업으로 부터 청탁 받고

  쓰신 글입니다.)

 


성명: 이경화( 李京樺, Lee Kyong Hwa ) 생년월일:1937년 2월 7일

현주소: 7103 Boxwood Ave. NE, Albuquerque, NM87113, USA

E-Mail: khlnm@comcast.net 전화: (505)237-8688

학력:1956-62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 (학사)

1969-75 미국 뉴멕시코대학 대학원 (공학박사)

경력: 1964-1969 체신부 전기통신훈련소 전임강사

1975-2002걸튼인더스트리사/벨연구소/굳리치항공회사 (엔지니어)

2002-현제인공위성(아리랑2호, GPS)/항공장비 전자회로설계 자문

취미: 종이접기와 하모니카     http://www.amazingpaperairplanes.com/   www.youtube.com/khlusa

 


        겨울나무/이원수 시, 정세문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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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7.08.10 10:22

    첫댓글 암울했던 일제식민지시대는 국민 모두가 힘든 시기였지만 특히 지식인들에 대한 일제의 탄압과 회유는 더욱 심했을 터.
    그런 가운데 수 많은 고뇌와 갈등 속에서 시대를 살으셨는지는 오직 당신들만이 진실을 알고 계실 듯.

  • 작성자 17.08.10 11:56

    이원수 선생님과 최순애 선생님의 생애를 엿볼 수 있는 글을 읽다보니 이런 내용도 있었다네.
    6.25를 지나면서 6남매 중 자식 둘을 잃고 끼니를 해결 할 방법이 없어 최순애 여사께서 아끼고 아끼던 유성기를
    팔려고 여러 곳을 다니시다 처분을 못하고 쌀가게에서 쌀 한되와 바꿔 돌아 온다는 내용도 있다네.
    음악을 그토록 좋아 하시는 두 분이 유성기를 헐값에 처분 할 만큼 그런 고통의 삶을 사셨으니 그 시절이 짐작이 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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