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지나무골 해변에서 출발한다. 오늘도 날이 너무 깨끗해서 바다 건너 태안 발전소와 학암포가 근접해 있다. 해안가를 따라 이동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길은 내륙쪽으로 걷는다. 지도를 보면 충분히 해안가를 따라 사목해수욕장까지 이동하는데 문제가 없을 듯 한데 아마도 밑물 때 나무데크가 없으니 길이 위험해 질수 있어서 숲길을 이용하는가 보다. 경기대학교 수련원 정문을 지나 행복한하우스 펜션을 끼고 좌측으로 오른다. 그러면 꾸지나무골 유수호스텔이 있는 길에서 서해랑길73코스와 잠시 겹친다. 여기서 73코스는 이원반도 북쪽으로 올라가고 71코스는 계속 73코스와 겹치는 길을 따라 내륙 방향으로 살며시 올라간다. 지난 코스 때 보았던 솔향기길 캠핑장을 지나고 조금 더 작은 도로를 걸으면 태안둘레길 캠핑장 입구를 경유하여 603지방도로와 만난다. 여기까지 약 800m 정도가 73코스와 겹치는 구간이다. 이원반도가 폭이 좁다보니 길이 겹칠만 하다.
도로 맞은 편을 바라보니 물을 비워둔 양식장 너머로 해안 제방길을 따라 이곳까지 걸어온 73코스 길이 펼쳐진다. 벌써 한달 전이다. 이제 지방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한다. 주말이라서 그런 것 같은데 지나가는 차량들이 드물어서 주위는 무척 고요하다. 고갯길을 올라가니 우측 비탈에는 개간 후에 과수원인지 아니면 식재인지 불분명하지만 나무 줄기가 하얀 색이다. 페인트를 일부러 칠하지는 않았을테니 무슨 나무일까? 정류장을 지나면서 우측의 마을 길로 들어선다. 두 개의 산자락 아래에 형성된 논밭을 따라 내려간다. 대부분의 논들은 매말라 있으나 어느 논에는 물이 가득 차 있다. 일행들이 그 논 옆으로 지나갈 때 반사되어 야산의 소나무들과 함께 멋잇게 투영된다. 특히 붉은 벽돌집에서 흰 연기가 피어 오르고 붉은 자켓을 걸치고 걷는 분이 있어서 수채화는 다양한 색상으로 빛을 발한다. 논밭 중앙을 따라 가며 바라보는 마을의 풍경은 경사면을 따라 논밭이 있고 마을 뒤쪽의 야산 좌우에는 소나무들이 높게 자리 잡고 있어서 녹음이 짙은 여름에 보면 경관이 더욱 멋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온다. 산기슭을 걷다가 603지방도로을 만나는데 여기에서 굴다리를 건너면 73코스로 연결되므로 주의를 하여야 한다. 73코스를 완주할 때 이곳을 경유하여 가로림만의 해변으로 이동하였다. 사목경로당과 함께 있는 내1리 마을회관을 지난다. 이곳을 사목마을로 부르는데 주변 명칭도 사목을 함께 쓰고 있다.
잠시 후에 해변이 보이고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의 평평한 곳에는 텐트가 설치되어 있다. 사목공원캠핑장이다. 해변으로 가까이 가지는 않고 숲길을 따라 이어간다. 그랬더니 곧바로 살레시오 피정센터가 나온다. 작은 안내판을 보면 어쩐일인지 피정 방문객들의 캠핌장 내 도보 출입을 금하고 있다. 수련에 지장이 있어서 그런건가. 아뭏든 피정센터 앞에도 살레시오 공원과 해변이 있어서 굳이 캠핑장을 갈 이유는 없다. 피정은 사찰의 템플스테이와 비슷하다. 센터 내에서 기도하고 고백성사도 하고 친교의 시간도 가질 수 있다. 이 장소가 한적하고 호젓한 해변도 가지고 있어서 이 곳으로 피정오는 신도들이 좀 많을 듯하다. 센터 입구에는 청소년 2명과 함께 서 있는 성 요한 보스코의 조형물이 있다. 보스코 성인은 이탈리아 신부이고 살레시오 수도회를 창설하였고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에 평생을 전념하였다. 그러기에 조형물에는 청소년의 아버지 살레시오회 성요한 보스코라고 안내되고 있다. 센터 앞의 운동장을 빠져 나오며 살레시오 해변을 잠시 스쳐보면서 숲속길로 들어간다. 낮은 야산을 오르다 보면 좌측 산비탈이 갑자기 뻥 뚫린다. 능선에만 나무들이 서 있고 그 아래 경사면에는 나무들은 보이지않고 벌거숭이로 변해서 잿빛으로 물들어 있다. 산불이 난 듯한데 불에 타서 줄기가 검게 변한 나무들의 흔적은 없다. 꽤 넓은 면적인데 산불이 아니라면 어떤 연유로 민둥야산이 되었을까. 뒤돌아보면 좌측은 소나무 숲이 있고 우측은 민둥 산비탈이 형성되면서 그 아래의 한줄기 산길은 나름 탄탄한 구도를 보여준다.
다시 해변이 이어진다. 길가 옆에 마련된 4각 정자의 기둥에 붙은 푯말은 피꾸지로 알려준다. 지도앱을 보면 펜션과 2022년도에 개장한 피구지캠핑장이 있는 곳이다. 캠핑장과 해변 사이의 공간에는 파릇하게 마늘 줄기가 자라면서 색감을 올려준다. 해변을 밟아본다. 고운 모래이지만 단단하다. 해변 곳곳에 하얀 굴껍질이 널려 있다. 썰물 때 갯벌에서 굴을 캐고 있나 보다. 그 때 버린 껍질들이 밑물 때 바닷물타고 해변까지 밀려 왔다. 태안발전소가 지척이고 민어도도 선명하다. 일행분들이 해변 배경이 맘에 드는지 사진을 담고 있다. 피구지관광농원과 수평선 펜션 입구의 안내판을 뒤로하고 야산을 넘어간다. 마을 어귀에서 백구가 따라오다가 중턱 즈음에서 되돌아간다. 여기서부터는 전망처도 없이 야산의 숲깊을 따라 간다. 산기슭에 닿는 곳은 파인비치펜션이 해변에 아름답게 자리잡은 음포해변이다. 여기까지는 지난 73코스를 걸을 때 거리가 너무 짧아서 72코스를 건너 뛰고 구간 거리가 긴 71코스 중 약 5.6Km를 추가로 걸었던 구간임을 알린다.
바다 뷰가 좋은 곳은 펜션들이 이미 이렇게 터를 잡고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방문객들이 숙박 후기를 블로그에 띄우면 다시 많은 미지의 사람들에게 알리게 되어 이름값을 올릴 수 있다. 지금은 간조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어서 바닷물이 상당히 빠져 나간 상태다. 그러다보니 넓은 해변이 펼쳐지고 있다. 우측 측면 해변 끝에는 봉고차량이 한 대 서있다. 산기슭에 막혀서 바다 쪽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경운기 한 대가 뒤 칸 차량에 짐을 싣고 해변 끝을 돌아 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쪽 가두리 양식장에서 작업을 하는지도 모른다. 갯벌 경계지점 부근에는 나뭇가지가 촘촘히 꽂혀있다. 바지락을 종자 채묘하는 것으로 보인다. 바다 건너편으로는 태안발전소가 약간 가까워졌다. 흰 수증기는 계속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길은 해변가로 계속 가지 않고 꾸지나무골해변처럼 마을길로 이어진다. 얕으막한 언덕길을 오른다. 비탈진 언덕의 밭에는 마늘 줄기가 녹색으로 물들어 있다. 경운기가 운반용 노란 플라스틱 박스 몇 개와 기타 물품을 싣고 도로따라 해변가로 내려가고 있다. 굴을 따거나 갯벌 작업을 지원할 것으로 생각한다. 길은 살짝 내려가다가 우측으로 다시 돌아간다. 물이 다 빠진 아주 커다란 양식장이 나온다. 양식을 끝내고 봄에 다시 사업을 하기 위한 배수를 끝냈고 필요할 경우 정지작업도 하는 모양이다. 듬성듬성 흙이 쌓여 있다. 양식장 옆에 설치된 태양광발전소를 지나간다. 펜스에 걸린 안내판에는 라씨(Lasee)의 모니터링 시스템을 사용 중이다. 모니터링은 발전량을 확인하는 것도 있지만 패널의 파손이나 날씨의 영향에 따른 발전량 확인 그리고 태양광 시설의 24시간 관측 및 외부에서 침입이 있을 경우 이를 감지하는 CCTV 원격제어도 할 수 있다. 태양광 발전소가 설치된 곳에는 대부분 모니터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곳에도 규모가 꽤 크다고 봐야겠다. 예전에는 양식장으로 사용했던 땅에 발전사업으로 전환했을지 모른다. 양식장은 제방을 따라 해안과 분리되고 있다. 휘돌아가는 갯골에는 아직 물줄기가 머물고 있고 민낯이 드러난 갯벌은 서서히 물기가 사라지고 있다. 내륙 깊숙히 해안선은 들어와 있다. 제방을 막지 않았다면 마을 안쪽으로 좀 더 바닷물이 더 들어갈 것 같다. 이렇게 바닷물이 내륙 깊숙히 올라오니 태안을 내포지방으로 부르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양식장을 벗어나면서 해안선과 떨어지며 마을길로 들어간다. 김경성님과 늘 같이 다니는 이동주님이 왠일인지 홀로 마지막으로 뒤에 오고 있다. 때가 되면 앞서갈 것은 불문가지다. 밭에는 대부분 수확을 끝낸 상태이지만 어느 밭에는 하얀 비닐이 덮고 있다. 희미하게 비치는 작물을 보면 마늘 줄기로 보이는데 겨울을 나기 위한 방법인지 궁금하다. 어디선가 날아온 오리들이 공중에서 이동 중이다. 파란 하늘에 걸려있는 옅은 구름과 U자 형으로 날아가는 검은 색상의 율동이 추운 겨울세상을 살아있게 만든다. 저편 끝의 산자락으로 넘어가는 모습에서 그쪽 지역이 먹이가 풍부함을 알려준다. 앞서가는 일행들을 뒤따라 야산 아래의 마을을 지나간다. 볏가리마을이 나온다. 농촌체험마을 중에서는 이름이 꽤 알려져 있는 곳이다. 음력 정월 14일에 마을 논 중앙에 볏가리대를 세우고 약 2주일간 행해지던 풍년을 기원하는 민속놀이다. 지금은 거의 볼 수가 없는데 여기의 볏가리마을에서 농촌체험의 일환으로 달집태우기 등과 함께 매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농촌이지만 바다가 가까이에 있어서 갯벌과 염전 체험도 함께 즐길 수 있고 또한 트랙터 마차를 타고 논과 밭 사이의 농로를 누빌 수도 있다. 볏가리마을 앞에는 멀리 떨어진 산자락까지 논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체험을 즐기기에는 적격이다.
인삼밭을 지나간다. 검은 가림막이 반쯤 내려온 너머로 바라보니 볏짚 위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인삼 줄기는 보이지 않는다. 작물을 심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 마을 길을 따르다가 포장도로를 만나 비스듬히 우측방향의 고개로 올라간다. 지자체에서 만든 서해랑길 이정표가 서 있다. 학암포까지 11.8Km 남았다. 태안발전소가 근방에 있다보니 지금 걷는 포장도로의 길 명칭도 발전로로 되어 있다. 고개를 넘자니 우측으로 아담한 펜션같은 집 한채가 산기슭에 있다. 언덕위의 하얀집. 순간 이탈리아 가요였던 Casa Bianca 를 번안했던 Vicky Leandros의 White House가 입가에서 맴돈다. 가사 내용이 어떻든 제목 그대로 하얀집만 있으면 된다. 방조제입구 정류장 앞에서 트레킹화를 벗고 신발 속에 들어간 작은 모래 알갱이를 제거한다. 포장도로 안쪽으로 만들어진 농로길을 따른다. 낮은 야산 아래까지 길은 이어진다. 가로수의 줄기가 제법 굵기에 다시 바라보니 벚나무가 도로를 따라 줄지어 있다. 봄이 되면 이곳도 벚꽃으로 한창 치장을 하겠다.
농업용 관정이 보인다. 2018년도 충남지역이 극심한 가뭄으로 몸살을 앓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가뭄대책의 일환으로 개발했던 지하수다. 그러니 이것은 공공용으로 사용중이고 전기요금도 마을회에서 공동으로 지급한다. 길은 다시 산자락 끝에서 도로와 연결된다. 우측으로 돌아나간다. 차랑들은 거의 다지니 않아서 위험하지는 않다. 좌측으로 넓은 농경지가 이어지고 태안발전소가 눈앞이다. 가까운 논에는 오리들이 집단으로 모여 있다. 깨끗한 건물이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어서 바라보니 서혜원 요양원이다. 4층 건물이고 눈에 뜨일만큼 디자인도 예쁜다. 앞은 야산과 벌판이고 뒤쪽은 서해바다가 보여서 경관이 아주 좋은 편이다. 한적한 곳에 있어서 어르신들에게 더 나은 환경인지는 모르겠으나 수도권에 있는 가족이라면 면회가 쉽지 않을 듯하다. 서혜원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는 버스 기사님과 인사를 나누고 좌측으로 길을 따른다.
서해랑길은 이원방조제를 따라가지 않고 하천을 끼고 농로를 이어간다. 방조제에는 희망벽화가 그려 있어서 지나가며 한번 보았으면 했는데 이상하게도 지자체에서 선정한 서해랑길은 조금 벗어나 있다. 태안군은 기름유출 사고 시 자원봉사자의 노력으로 예전의 바다로 돌아왔을 때 그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원방조제에 희망벽화를 그렸다. 저탄소녹색성장, 그린에너지 그리고 바다를 주제로 공모하여 학생을 포함해서 일반인 47점을 선정하고 태안군의 복군 기념 작품을 추가하고 자원봉사자 및 군민의 핸드페인트 7만4천개를 찍을 공간으로 구성했다. 이원방조제에 길이 2,7Km, 높이 약 7m의 희망벽화가 2009년도 준공되었다. 그리고 한국기록원으로부터 국내에서 가장 긴 벽화로 인증되었다. 지금은 벽화는 조금씩 흐려가고 있다고 하니 세월이 흐름에 따라 관심은 흐릿해지고 있다.
하천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본다. 서혜원은 나무 숲에 거의 가려져 있고 그 아래 도로 변에 버스는 계속 대기 중이다. 방조제 쪽을 보는데 갑자기 방조제와 맞다은 산자락 끝에 2층으로 보이는 작은 건물이 보인다. 전망대인지 아니면 감시초소인지는 알 수 없으나 순간적으로 저 곳을 들렸어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저 전망대 위에 서면 가마봉부터 여섬 그리고 오늘 걸었던 해안가 모두 한 눈에 볼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은 미세먼지도 없는 날이니 깨끗한 전경이 들어 왔을 것이다. 그러면서 방조제의 벽화도 조금 보았을 것이니 아쉽게 되었다. 왕복 5분이면 충분했을 거리이지만 이는 다음 기회가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가는 길을 서두른다. 멀리 일행들이 보이지만 좀처럼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 것이 걷는 발걸음이다. 좌측으로 보이는 드넓은 농경지는 이원방조제가 만들어 준 결과물이다. 예전에는 밑물 때 멀리 산기슭까지 바닷물이 들어갔을 터이니 갯벌은 엄청났을 것이고 그만큼 물이 빠지면서 농지가 되면서 이제는 반듯하게 조성된 논들을 보며 길을 걸을 수 있는 문화까지 이르게 되었다. 방조제 길을 따라 거인 버스가 달린다. 발전소 방향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지평선에 방조제와 벽화만 보이는 곳을 보면 버스는 정지하고 있다. 찰나의 순간이다.
걷는 길쪽으로 전봇대가 계속 연결된다. 농로는 폭이 크기 때문에 대형차량도 충분히 다닐 수 있다. 뒤를 다시 보면 서혜원 건물은 숲속에 묻혀있고 전봇대만이 키가 커지면서 다가온다. 길이 좌측으로 꺾어지는 곳에 쓰레기 수거용 차량 1대가 서 있고 포크레인이 쌓여있는 검은 흙을 고루게 펼치고 있다. 봄에 퇴비로 쓸 것을 저장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억새나 잡초만이 자라고 있는 천변 유휴지로 보이는데 폐기물은 아닐 것으로 믿어본다. 해안가 쪽으로 거대한 태안발전소가 아주 가까이 보인다. 굴뚝만 8개 정도 보이고 그 뒤로 발전용 건물은 대략 10동 정도가 줄지어 있다. 바로 옆에는 아주 작은 야산이 있다. 예전 자료를 보면 응도라고 한다. 이원방조제가 축조되면서 그 안에 있던 응도와 죽도가 육지로 변했다고 한다.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지나가면 그저 야산으로만 비쳐질 뿐 섬으로 보이지 않는다. 죽도는 조금 떨어진 태안발전소 옆에 서 있다.
하천변을 따라 다시 간석지의 농경지를 걷는데 남쪽 방향이다. 여기도 이쪽 길에만 전못대가 설치되어 있다. 우측으로 하천이 흐르고 보이는 곳은 모두 농경지다. 겨울철이라 햇빛이 강렬하지 않아서 걷는데 지장은 없다. 머리 위로는 푸른 하늘만 보이는데 멀리 능선 위에는 흰구름이 약간 몰려 있다. 좌측의 농경지는 지평선 너머로 낮은 야산들만 보일 정도로 광활하지만 천수만보다는 규모가 작을 것이다. 잿빛으로 물들어 있는 이 넓은 평야에도 올해도 다시 녹색의 물결이 휘날리는 장면으로 살아날 것이다. 중간 정도에서 우측으로 다리를 건넌다. 지나온 곳을 바라본다. 전봇대가 한없이 뻗어가며 응도로 가고 있다. 이정표에는 학암포가 8.3Km 남았다고 보여준다. 다리를 건너며 바라보는 물길은 하천이라기 보다는 운하가 더 적당하다는 느낌이 들어온다. 어찌된 일인지 하천에 물이 가득 차서 수면이 지표면에 거의 올라와 있고 하천 변에 보통 자라고 있는 갈대 등과 같은 수생식물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물줄기는 일반적인 하천이 아닌 방조제에 갇힌 담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끝에 응도가 보인다.
길은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일행분들이 일부 앞서가고 있고 일부는 논두렁에서 간식을 들고 있다. 마침 우측 한편에 쉼터가 보여서 들어가보니 채순복님과 동행한 지인 그리고 김명자님이 간식을 들고 있어서 합석을 하고 담소를 나누며 잠시 쉬어간다. 야산 능선 위로 발전소의 수증기만 올라가는 모습이 들어온다. 그곳이 바로 육지로 변한 죽도다. 자연스럽게 발전소의 배후가 되었다. 걷고 있는 포장도로 우측 관목의 가지 사이로 참새가 앉았다가 앞쪽으로 날아가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갈 즈음에 약간 소리를 지르자 잔가지 사이에서 쉬고 있던 참새들이 군무를 이루고 옆동네로 재잘거리며 재쌉게 날아간다. 그렇게 포장도로를 따르면 거대한 농산물 시설이 보인다. 일반적인 비닐하우스 보다는 엄청 크기 때문에 첨단 유리온실로 보여진다. 내부가 보이지를 않아서 작물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대규모로 영농사업을 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주변에는 비닐하우스 조차 보이지 않는 농토라서 단연 돋보인다.
조금 좁아진 비포장 농로를 따라 계속 이어간다. 전봇대는 여전히 함께하지만 이제는 양측에 다 설치되었다. 농로길 좌우에는 갈대가 군락을 이루기도 하고 관목과 수풀이 뒤엉겨 길 쪽으로 잔가지를 뻗치고 있다. 우측 하천 너머로 수증기가 올라가고 있다. 무척 가깝다. 건너편 천변에는 소나무로 울타리를 치고 안쪽을 보여주지 않는다. 국가기간시설물이라서 이런 장치를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이렇게 똑같은 길을 한동안 간다. 지나온 길을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지평선과 농지와 그 끝으로 산줄기 뿐이고 사람이나 마을조차 흔적이 없다. 승용차로 오기에도 쉽지 않은 이런 곳을 서해랑길을 종주하며 걸어 본다는 것이 자못 흐믓하고 자긍심이 느껴진다. 태양광이 설치된 펜스 앞에서 우측으로 이동한다. 질퍽한 길을 잠시 따르면 발전소 굴뚝과 하얀 수증기를 보면서 좌측의 마을쪽으로 옮기면서 일반 도로와 마주한다. 도로변에 있는 이정표를 보니 학암포가 3.2Km 남았다. 그곳에 거인 버스가 대기 중이다. 채순복님과 새로오신 지인은 버스를 타고 가고 김명자님과 함께 우측으로 도로따라 계속 걷는다.
도로 개통을 위해 산자락을 절단한 비탈진 곳에 작은 맞배지붕 한채가 보인다. 뒤로 무덤도 있다. 양현사라는 사당이다. 그 아래에 큼직한 차돌이랑 가마솥밥 식당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송우레미콘 공장 옆으로 설치한 넓은 면적의 태양광발전소를 지나면 태안발전소 후문 입구가 나오고 갈말정류장도 잘 지나는데 여기서 약간 길이 꼬인다. 김명자님과 이런저런 정치 얘기를 잠시하다가 좌측의 샛길따라 야산을 넘어가는 길을 놓치고 말았다. 앞 길만 보고 가다가 태안발전소 정문까지 온 것이다. 약 10분을 알바했다.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정문에서 계속 직진하면 야산 코스 길과 다시 만나게 되는데 길이 너무 좁다보니 지도앱에 잘 표시되지 않아 길이 막힌 것으로 오해했다. 그러나 이 알바가 신의한수가 되었는지 누가 알겠는가. 덕분에 발전소를 가장 깨끗한 상태에서 가까이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분주할 화물차량들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시 뒤를 돌아서 서해랑길 정규 코스를 따라 야산의 길을 오른다. 이정표는 학암포가 2.4Km 남았다고 귀뜸해 주고 있고 여기서부터 약 760m는 차량 위험구간이라고 안내한다. 그러나 태안의 서쪽 땅끝 주말 도로는 너무도 한가하다. 경사가 좀 있는 언덕을 오르지만 이 정도는 무리가 되지 않는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나무 숲 사이로 발전소의 내부 모습을 일부 보여준다. 태양광 발전설비도 있다. 발전송신철탑이 고개마루에 서 있다. 전기가 여기서 외부로 전송되기 시작하는가 보다. 송전전압이 34만볼트라고 8m 이내에는 접근금지라고 경고하고 있다. 삼거리가 나온다. 우측은 조금전에 있었던 발전소 정문으로 가는 길이고 좌측이 학암포로 이어지는 길이다. 건너 보이는 발전설비동과 굴뚝을 마지막으로 보고 내려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뒤를 돌아보니 오늘 꾸지나무골 해변부터 걸어온 두 분이 여기서 합류한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임도를 따라 한참을 가다보면 태안해안국립공원을 알리는 안내판이 들어온다. 해안국립공원은 중간에 일부 끊어진 곳이 있지만 여기서부터 안면도까지 이어진다. 그러니 발전소가 있는 태안항은 포함되지 않는다. 산자락이 끝나는 곳에 해변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이지만 어느 곳인지 불분명하여 그냥 지나친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여기가 학암포 해변의 끝 지점이다. 오늘 처음으로 만나는 마을 주민이 발전소 방향으로 가면서 학암포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정보를 준다.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잠시 후에 학암포 입구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어서 해변 방향으로 들어간다. 나무데크로 만들어진 전망대 겸 쉼터에서 치맥 시간이 진행되고 있다. 무을님으로 부터 생맥주 한 잔을 종이컵으로 받아 마시며 치킨을 하나 집어 먹는데 조금 식었지만 맛이 살아있다. 이런 이번트를 진행한 막독 팀장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바다를 바라본다. 너무도 멋진 경관이다. 날이 너무 깨끗하여 먼 바다 멀리까지 다 보인다. 바다 건너편으로 작은 섬 위에 흰 등대가 보이는 곳은 연도이고 그 뒤로 보이는 섬은 선갑도다. 그러니 문갑도와 덕적도도 한 눈에 들어온다. 해안 사구에 풀들이 겨울이 되면서 다 누워있는 모습이다. 안내판 사진을 보니 갯그령이라고 한다. 염분에 강하고 풀들 중에서 키가 가장 크다. 여름에 보았다면 바람에 따라 연녹색의 물결이 일렁거렸을 것으로 보인다. 조만간 봄이 되면 충남 해안 어느 곳에서 그런 장면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니 얼마 남지 않았다. 간조 시간이 지난지 3시간 정도 되었으니 바닷물이 서서히 밀려오고 있어서 해변도 그만큼 잠기고 있다. 죄측 끝에는 분점도가 학암포항과 연결된 모습이고 선착장에는 빨간 등대가 서 있다. 우측 끝 해변에는 조금 전에 지나온 야산 너머로 태안발전소의 굴뚝과 수증기가 여전히 보여준다. 도비도항이나 삼길포항에서 당진발전소를 보았을 때도 이런 모습 그대로였다. 학암포항 쪽으로 이동한다. 그곳이 종점이다. 해안가보다는 바닷물이 해변에 닿은 곳을 따라 걷는다. 하늘과 경관과 시야의 삼박자가 너무도 잘 어울린다.
태안해안국립공원에서 조성한 해변길에는 7개의 코스가 있다. 그 중 꽃지해변에서 몽산포까지의 2개 코스는 이미 오래 전에 걸었으나 학암포와 신두리 그리고 만리포와 파도리까지의 3개 구간은 아직도 미답 중이다. 그동안 몇 번을 시도했으나 매번 불발이 되어 아름다운 해안 모습을 지금까지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앞으로 진행할 서해랑길 3개 코스에서는 꿈에 그리던 바라길과 소원길 그리고 파도길 모두를 만나볼 수가 있다. 그 첫 출발지를 드디어 오늘에서야 도착했다. 날씨마저 최상의 상황으로 축복을 주니 그저 감개가 무량하고 누군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게 된다. 날도 따스하니 파도소리 또한 여름처럼 정감있게 속삭인다.
71코스 안내판에서 QR 코드를 인증하고 바로 보이는 방파제를 바라보니 학암포를 알리는 그림이 그려있다. 타일을 붙여 벽화를 제작했다. 관광인프라 조성사업을 위해 태안발전소의 지원하에 만들었다. 작은 섬이 바로 앞에 보인다. 나무들이 선점하고 있는 소분점도다. 썰물 때는 모래길이 나타나서 해변과 연결되어 오고갈 수 있다. 여기서 해변을 바라보니 분점도를 기준으로 좌우로 해변이 두 개 있는 구조다. 그러니 학암포 해변을 얘기할 때는 소분점도가 보이는 해변 등과 같이 위치를 잘 설명해야 하겠다. 좌측 측면의 방파제 끝에는 나무 데크를 만들고 학암포 유래비와 표지석이 조성되어 있다. 그 중 표지석 위에는 한마리의 학이 도약하려는 순간을 포착한 조형물이 올려있다. 유래비에 의하면 학암포는 학이 노닐던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고 한달에 두번 바다 수면 위로 드러나는 장안사퇴(모래톱)의 이국적인 풍경과 서해의 낙조가 아름답다고 한다. 타인의 블로그 사진을 보면 낙조와 장안사퇴는 사실 아름답다.
오늘은 간조 때 해수면이 무척 낮아지는 대조기여서 오전 11시 30분 정도에 이곳에 도착했다면 장안사퇴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대이작도의 풀등과 선유8경 중 하나인 평사낙안 또한 모래톱이 바다 수면위로 드러날 때 경탄을 자아내게 만드는데 장안사퇴도 그럴 것으로 믿는다. 그러기에 2023년 5월에 장안사퇴가 태안해안국립공원에 편입되었다. 그만큼 보존할 가치가 있는 만큼 경관도 그에 걸맞을 것이다. 서해랑길 70코스를 시작하는 1월 27일에 다시 학암포에 온다. 그날도 대조기인데 간조 예상 시간이 오전 11시 26분으로 되어 있다. 버스가 10시 정도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국의 몰디브로 불리우는 장안사퇴를 과연 볼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오늘은 거인 서해랑 트레킹 팀의 누죽걸산(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2권 째를 배포했다. 작년 초에 1권이 나오고 1년이 지나서 다시 두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서해랑길 20코스를 완주하면 책을 출간한다. 한달에 2번 진행하고 혹한기와 혹서기 그리고 명절 2번은 순연하기 때문에 1년에 한 권씩 만들어진다. 개인별 사진을 선택하고 그것에 걸맞는 글을 찾고 제판을 디자인 하는 등 모든 것을 막독팀장이 추진했다. 그러기에 이 책자는 막독팀장의 노고가 상당했음을 알기에 지면을 빌어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팀장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