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꿍꿍이
이서하
울보는 이목구비가 없는 식물만 키웠다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그는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초저녁이 되자 울보는 냇가와
숲길에 갔다, 식물을 데리고 갔다
처음으로 울보는 울지 않고 말했다
여기는 있잖아, 내가…….
흐르는 물소리의 개입으로
그의 말이 그치자, 식물은
여기서 다음을 기다려야 했다
화분을 조금씩 깨면서
늙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식물은 울보의 깡마른 발목을 잡고
자랐다 무려 십여 년 동안이나
귀가 없어도 들리는 것이 있었다
슬픔의 기원은 한 발로 찾아온다
월간 《現代文學》 2023년 8월호
이서하|1992년 경기 양주 출생.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졸업. 2016년 〈한국경제〉 청년 신춘문예 당선. 시집 『진짜 같은 마음』 『조금 진전 있음』. 동인 <켬>으로 활동 중이다.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좋은 시
어떤 꿍꿍이 / 이서하
손진숙
추천 0
조회 9
23.09.10 04:02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