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十 章 百歲童心
삼월의 맑은 새벽!
신녀봉(信女蜂) 위의 큰 바위 위에는 네 사람의 노인이 앉아서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깊은 명상에 잠긴 듯, 아니면 깊은 잠 속에 빠졌는지? 꼼짝도 않고 앉아있으니 마치 깎아 세운 듯한 대리석 상을 연상시킨다.
멀리 산 아래 지평선에서는 아침 해가 서광(瑞光)을 비추면서 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산 위에 서 있는 잡다한 초목에는 방울방울 이슬이 맺혀 있고, 네 사람의 노인의 옷자락에도 엷은 이슬이 맺혀 있었다. 이 노인들은 적어도 반야(半夜)를 이 바위 위에서 새웠음이 틀림이 없었다.
가운데 앉아 있던 노인이 지그시 눈을 뜨면서
『노대, 우리는 여기에 앉아 허송세월만 하니 어찌 산에 올라 고기를 낚는 격이 아니겠소?』
『노오(老五)의 말씀이 옳소이다. 어찌 그 작은 아가씨가 올지 아니 올지 알 수가 있단 말이오?』
백설같이 흰 수염의 노인이,
『곧 찾아나가 봅시다. 그 장가라는 놈은 머리를 움츠리는 거북이 새끼가 아닌지 모르겠구려!』
해는 다시 지평선에서 얼만가를 치솟아 올랐다.
산허리 아래에 깔려 있는 돌바위 길에는 하나의 검은 그림자가 산 위를 향하여 유성같이 달려 올라오고 있었다.
한 노인이 아래를 내려 보고 있다가 기쁜 손님이나 맞이하는 듯이
『왔다. 왔어!』
『이번에는 틀림이 없겠지?』
노인들은 모두 희색이 만면하여 소리 지른다. 오랫동안 무엇인가 기다리고 있었음이 틀림이 없었다.
『노오! 자네는 틀려먹었단 말야! 뭐가 오고 뭐가 가고 도대체 이야기를 종잡을 수가 없네 그려!』
노오는 노인이 히죽히죽 웃으면서
『내가 뭐 왔다고 그랬나? 태양이 왔다고 했을 뿐이지!』
이 말을 들은 네 사람의 노인은 한바탕 껄껄거리고 웃어젖히더니 별안간 의논이라도 한 듯이 점잖게 정좌(正座)하여 정숙을 되찾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해는 중천에 떠올라 대지를 비추니 만물이 재생의 기쁨 속에 활기를 되찾은 듯 싶었다.』
노인들이 앉아 있는 바위 밑에는 깊은 골짜기로 되어 있고 산허리에서 저 쪽 산등성이를 향하여 한 가닥의 등나무 밧줄로 만든 외다리가 걸려 있었다.
이때 맞은편 산등성이에 한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하 노인이 큰 소리로 외친다.
『추운승풍(秋雲乘風).』
나머지 세 노인이 일제히 목소리를 가다듬어
『마교오웅(魔敎五雄).』
그 목소리는 골짜기에 울려 퍼지니 마치 돌이라도 쳐부술 것 같은 무서운 기세를 갖고 있었다.
이 때 순식간에 사나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구름이 날리고 큰 파도가 이는 것이 마치 천신(天神)이 농간을 부리려는 듯이 보였다.
깊은 골짜기에서는 한 가닥의 슬픈 비명이 요란하게 들려오니 한 마리의 큰 매가 노인들의 노호와 같은 목소리를 듣고 놀라서 산골짜기 물에 머리를 거꾸로 박고 죽어버린 것이었다.
산마루에 서 있던 사람은 이 모양을 보고서는 한 번 주저하더니 태연하게 외다리를 건너서 이 쪽 산허리를 지나 산봉우리로 올라오고 있었다.
흰 수염의 노인은 신이라도 났는지
『좋구나! 옳구나! 고해(苦海)가 앞에 있고 돌아보니 언덕이라!』
그 목소리는 침착하면서도 예리한 칼날같이 한 마디 한 마디가 검은 옷을 입은 사나이의 귓속을 찌르는 듯하다.
이 말을 들은 검은 옷의 사나이는 그 희고 이목구비가 정연한 모습을 조금도 흩뜨림이 없이 노인들을 향하여 발을 옮긴다. 그 자세가 조금도 허술한 데가 없어 보인다.
한 노인이 탄식이라도 하듯이
『이 편안한 세상을 못난 사람이 공연히 시끄럽게 하는군!』
검은 옷의 사나이는 내심 놀라며 아니꼬운 눈치였다.
『이런 망할 놈의 늙은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저희들과 운형님과의 사이에 아무 상관이 없다고는 말을 못하겠지?』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걸음을 재촉한다.
그의 몸은 산정을 향하여 달리면서도 이 근래 무림에서 일어났던 일을 머릿속에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요즈막 강호에서 떠도는 소문으로는 복파보주가 황산에서 나이 어린 고수와의 사투에서 고전을 면하지 못하였다는데…….
이렇게 심각한 생각을 하면서도 그의 발은 경공술로 쉬지 않고 산정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었다.
산정에서는 또 다시 노성벽력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으나 검은 옷을 입은 청년은 조금도 겁을 내는 빛을 보이지 않고 태연하게 산정으로 치달린다.
산정에서 태연하게 앉아 있던 네 사람의 노인 역시 나는 듯한 검은 옷의 사나이를 보고도 못 본 체 하면서 한 노인이 시를 읊었다.
『달빛은 침상과 온 누리에 가득 차 있는데
내 마음은 취한 것도 아니요, 깬 것도 아니로구나!』
검은 옷의 젊은 사나이는 산정에서 수십 자 떨어진 곳에서 몸의 공력을 불러 일으켜서 몸을 공중으로 솟구치더니 두 발로 한번 소나무 가지를 딛고서는 몸의 탄력(彈力)을 이용하여 가볍게 산정의 높은 바위에 몸을 가라 앉혔다.
바위 위에 내려 선 검은 옷의 사나이는 네 사람의 노인을 바라보며 가볍게 읍을 하고서는 낭랑한 목소리로,
『후배 요원(姚畹)이, 네 분 노선배에게 문안드리옵니다.』
그러나 네 사람의 노인은 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무엇인가 깊은 사색(思索)에 잠겨 있는 것같이 보였으니 요원도 바위 위에서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얼마동안은 산정이 적막 속에 빠져버린 듯, 이때 흰 수염의 노인이 이치에도 닿지 않는 헛소리를 한다.
『사시(四時)에 가장 좋은 계절이 삼월이로다.』
이 말을 들은 나머지 세 노인이 목청을 돋우어서
『만사(萬事)는 오직 술 한 잔에 맡기는 것이 가장 좋으리라.』
요원은 원래 눈치가 빠른 여자이기 때문에 이 노인들의 말을 듣고서는 이 분들이 자기에게 품고 있는 오해가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금시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장차 천하 무림에는 큰 파도가 일 것이 분명한 일인데, 이 파도 속에 이 노인들과 오빠 요백삼, 또한 생명의 은인인 운학이 말려 들어갈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요원은 평소에 시경(詩經), 서경(書經)을 탐독하였기에, 이 노인들의 시적(詩的)인 대화에 다음과 같은 대답을 보내면서 노인들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구름 속에서 술을 같이 기울이니
붓끝에는 아직 오호(五湖)와 같은 마음이 있도다.』
먼저의 구절은 백향산(白香山)의 시구(詩句)요, 뒤의 구절은 소동파(蘇東波)의 시구를 인용한 것이니 모두 인세(人世)의 뜻이 있는 글귀였다.
흰 수염의 노인이 번쩍 눈을 뜨면서
『꼬마 아가씨를 누가 알아 모시지 않겠습니까?』
은근히 칭찬하는 노인의 말에 요원은 얼굴이 붉어져서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가 남장여인이란 것을 마교오웅들이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마교오웅 중의 지금 여기 있는 네 사람의 노인의 나이를 합치면 분명히 사백 세가 넘을 것이 분명하건만 그들의 마음에는 아직도 동심이 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더욱이 이 동심은 좌상격인 노대(老大)의 언행에서 두드러지게 엿볼 수가 있었다.
무림의 군웅들이 복파보를 시끄럽게 하던 그날 밤, 그는 은신술(隱身術)을 써서 보중에 잠입한 뒤에 군웅들의 검법, 공신술, 심법을 낱낱이 보아 두었었고 뒤에는 다시 가면을 벗고서 부중의 보물인 지도를 겁탈하였을 뿐이 아니라, 복화술(複話術)의 희법(稀法)을 써서 복파보의 이총관과 복면을 쓴 도적을 잔뜩 놀려준 것은 이 마교오웅 중의 노대의 계획적인 장난이었던 것이다.
더욱 그는 여유만만하게 가벼운 무공을 몇 초(招) 주고받으면서 자기와의 실력을 비교한 다음 뒷날을 약속하고 뺑소니를 친 다음에 바로 노삼을 찾아가는 도중에 운학을 만났던 것이다.
그는 복파보 중에서 운학이 청목도장의 제자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중간에서 만난 운학을 가볍게 다룬 다음에 황산으로 줄달음을 쳐 왔던 것이다.
이 노대는 강호에서 백여 세를 살아오는 동안 인생의 험난한 온갖 경험을 쌓아 왔을 뿐 아니라, 천성이 장난을 좋아하고 눈치가 빠른 구렁이 같은 늙은이였기 때문에 복파보 중에서 능상 노파가 지팡이로 운학을 괴롭힐 때에 요원의 몸가짐과 눈초리로써 요원의 운학에 대한 마음의 뜻을 뚫어지도록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이리하여 그는 엉큼하게 다른 뜻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이번 요백삼과 운학과의 황산의 일전(一戰)은 자연 강호를 떠들썩하게 하고 놀라게 할 수 있는 사실로 오늘도 황산의 일전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요원이 캐물으러 올 것이라는 것을 미리 짐작하고, 이 산정에서 꼭 삼 일을 그가 나타나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노대는 세 사람의 의형제와 결탁하여 어떤 계책을 짜 놓고 있었던 것이다.
노대는 요원이 얼굴을 붉히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자 능청스럽게,
『아가씨! 남장여인이라고 조금도 부끄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요원은 부끄러움이 한 가지 더 겹쳐서 초조한 마음까지 일어났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멀거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차차 마음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얼마동안의 고요가 흐른 뒤 노대는,
『이 앳된 아가씨가 천리 길을 멀다 하지 않고 다급하게 달려오셨으니 우리 늙은이들은 어찌 아가씨에게 헛수고를 끼쳐서 헛걸음을 하게 하겠습니까? 형님들께서 어떻게 하셨으면 좋겠습니까?』
그의 말에는 기교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노대께서 인정을 베푸셔서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으면 좋겠군요.』
요원은 이 말을 듣고서는 저윽이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옆에 있던 얼굴이 넓적한 노인이
『노오(老五)의 말은 틀렸소이다. 우리 다섯 늙은 것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요. 또 남의 일에 이것저것 간섭하여 시끄럽게 굴지 맙시다. 그저 눈 딱 감고 모른 척 합시다.』
요원은 기대에 어긋나는 이 말을 듣고 어떻게 하든지 이 노인들을 선동해야 하겠다고 느끼면서 머리에 적당한 말머리를 찾고 있는 터에 노대라는 노인이 지그시 웃으면서,
『노사(老四)의 말씀 지당합니다마는 이번만은 경우가 달라요! 허나 우리는 속단할 수 없으니 우선 여러분의 차분한 의견을 먼저 들어 보기로 합시다.』
노대의 이 의견이 채택되어 네 노인은 왈가왈부하며 논쟁을 벌인다. 그리고 그들의 거동에 따라서 요원도 울었다 웃었다 하며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눈치가 빠른 요원은 이 노인들의 논쟁의 틈바구니를 교묘히 이용하여,
『선배님들께서 이 세상 모든 일을 밝혀 가르쳐만 주신다면 저는 반드시 힘써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네 노인은 일제히 소리를 높여 낄낄대고 웃으니, 웃음소리가 산골짜기를 메아리치며 번져 나갔다.
노대는 혼자서 배꼽을 쥐고 허리를 굽혀가며 웃음을 참지 못한 채,
『이 늙은 것이 어떻게 마음을 먹든 간에 내 생각에 달린 것이지만 남을 도와주고 보수를 바란다는 것은 가장 치사스러운 일이란 말야! 남을 도와주고 설마하니 손해야 보려구?』
노이가 아주 신기한 결정이나 지은 것처럼 어깨를 으쓱 내밀면서,
『우리들에게 유익하다면야 따르지만 그렇지 못할 바에야 다시 재론(再論) 않기로 하십시다.』
요원은 마음속으로,
――이 늙은이가 넷 중에서 가장 주책바가지에 틀림없군! 꼭 젖 떨어진 아이 같은 소리를 뇌까리는 것으로 봐서 일 년만 더 살다가는 자빠져서 기어 다니려 들겠구나!
요원은 답답하다는 듯이 왼발을 바위 위에 구르면서
『무슨 숫자공부를 하시오, 네 분의 노선배께서 방법을 가르쳐 주시면 되는 것인데…….』
그녀는 이 말을 들은 네 노인이 다분히 흥분하리라는 계산을 먼저 하고 있었으나, 늙은이들의 능구렁이 같은 계산은 요원의 생각보다 앞서고 있었다.
노오가 손뼉을 치고 웃으면서,
『요 아가씨 정말 맹랑한걸! 사람의 머리수로는 아가씨가 적고, 나이는 우리가 많은데 나이가 사람 수를 당하지 못하니 깜찍스러운걸!』
노대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면서,
『무공으로 하는 것은 여자이기 때문에 너무 잔인한 것 같고 제법 시구(詩句)를 종알거리는 것으로 봐서 글(文)로 해 볼까?』
노사가 자포자기적인 말투로
『이 늙은이는 시구를 외우는 일은 딱 질색이지만 딴 것으로 한다면 나를 당할 수 있을라구?』
노이가 이야기가 지루하였던지,
『상대방은 소녀 아닌가! 이러쿵저러쿵 떠들지 말고 소녀 자신이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게나!』
다분히 귀찮다는 눈치였다.
노대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그거 참 좋은 생각이오.』
요원은 이 말을 듣자 재빨리 머릿속으로 이해타산을 하여 본다.
――무공으로는 이 늙은이들을 도저히 당해 낼 수는 없을 것이고 자기가 평소, 시경 서경을 즐겨 읽었으니 문장으로 얼버무리는 수밖에는 없겠다――
그러나 이것마저 자신이 없고 두려움이 앞섰다.
그것은 강호에서 떠도는 소문으로 마교오웅의 음흉한 계교와 무공의 실력만을 전해 들었을 뿐, 그들이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의 인격도야와 수양이 되어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청목도장 사부(師父)에게 참패를 당한 뒤에는 삼십 년을 숨어 지내면서, 어떤 꿍꿍이속 같은 생활을 하여 왔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주저할 수 없는 것이 요원의 입장이었다.
그녀는 마음에 백배의 용기를 불러일으키면서
『네 분 선배께서는 무림의 일대 종사(宗師)이시니 이 가냘픈 후배가 여러분 앞에서 감히 어찌 희롱하겠나이까?』
요원은 자기의 계산이 빗나감을 알자 재빨리 공손한 태도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노인들은 요원의 약삭빠른 말솜씨의 변함을 눈치 채고서는 마음속으로
――요런 깜찍스러운 계집 봐라!
하면서도 재치 있는 그녀의 임기응변술에 탄복하였다.
요원은 다시 고개를 약간 숙이고,
『글공부에서도 이 못난 것이 어찌 선배님들을 따르겠습니까? 오직 가르침을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노대는,
『허이 허!』
하고 태연스럽게 웃으면서,
『이 아가씨는 창자가 빳빳이 곤두서 있는 모양이군! 겸손도 거만도 아닌 미꾸라지 같은 소리만 뇌까린담! 자아 시합이나 하자!』
이 말은 요원으로 하여금 상당한 충격을 받게 하였다.
무어라고 대답을 해야 좋을는지 망설이다가
『후배가 어찌 선배 앞에서 거만하거나 미꾸라지 같겠습니까? 오직 선배님들의 분부대로 따라갈 따름이올시다.』
노대(老大)가 만족한 것 같은 눈치를 보이면서
『연구(聯句)로 비교하기로 하자. 한 구(一句)에 칠 자씩 십 구로 제한하고 매구(每句)마다 반잔의 차를 마실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을 초과하지 않도록 합시다.』
노이(老二)가 이 말을 받아서,
『그건 너무 쉽군! 한 가지만 더 덧붙여 보세. 즉 매 귀(句)마다 모두 술과 관계있는 말을 싣기로 합시다. 아니 두 귀마다 적어도 한 귀에 술의 내용이 실려 있어야 한단 말이지.』
노삼(老三)이 수염을 쓰다듬고서는
『그다지 어렵지도 않군! 전대(前代) 시인(詩人)의 구절을 모아야 하네.』
『차라리 그럴 바에 매 귀마다 작자의 성명과 연대를 말하기로 하지!』
이 네 노인이 전부 자기 나름대로의 의견을 말하니 요원은 골치가 따하여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몹시 겁이 났다.
원래 이 연귀의 글 놀이는, 가령 갑(甲)이 한 련(聯)의 첫 글귀를 말하면은 을(乙)은 이 첫 귀에 이어서 다시 다음 한 련의 상반구(上半句)를 대출(對出)하게 되니 다음은 또 다시 병(丙)이 이런 식으로 받아 돌아가면서 싯귀를 외우는 놀이로서 본래가 명, 청(明淸) 양조(兩朝)의 독서인의 집안이라면 어느 집에서나 즐기던 글 놀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늙은 노인들이 정한 것은 꽤 까다로운 것이었으니 보통이면 흔히 운각(韻脚)을 써서 제한하는 것인데, 이렇게 까다로운 방법이란 정말 이 노인들이 만든 독자적인 것이었다.
요원은 크게 걱정이 되었다. 결국 자기 꾀에 자신이 넘어가 버린 셈이었다.
요원의 마음속에는 후회막급의 심사를 어찌할 수가 없었으나 엎질러진 물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느낀 그녀는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삼가 선배님의 명령에 따르겠소이다. 허지만 네 분 노선배께서 한꺼번에 참가하시렵니까? 아니면 다른 방도가 있으십니까? 선배님들께서 명시하여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네 노인은 각자가 모두 장난으로서는 한 수를 양보하지 않는 인물들이라서 서로가 사양하려 들지 않는다.
노대가 별안간 소나무 가지를 꺾어서 일 장(一掌)을 가하여 네 개의 나무토막을 만든 다음 공력(功力)을 운행시키니 그의 손이 움직이는 것과 함께 다시 작은 나무토막 한 개가 세 개로 쪼개져 나가더니, 바위 위에 나무토막이 모두 오뚝 서 버렸다.
그는 웃으면서,
『모두들 다툴 것 없네. 네 사람이 모두 한 번씩 그에게 대전하기로 하세.』
요원은 노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러시다면 노선배님, 만약 제가 이긴다면은 저의 네 가지 청을 들어서 보답하여 주셔야 합니다.』
요원의 요구를 들은 노인들은 서로 눈짓을 하고 있더니 노이가 가슴을 치면서,
『좋은 말이다.』
요원이 긴박하게 말한다.
『한 마디 말이 벌써 나갔소이다(一言旣出).』
네 노인이 일제히 한 소리로
『네 필의 말이 끄는 수레를 쫓기 어렵도다(四馬亂追).』
노대와 더불어 요원이 서로 손뼉을 치면서,
『하나로 넷을 바꾸다(以一易四).』
이 말이 끝나자 네 노인은 바위에서 앉은 자리를 바꾸면서 요원에게 자리를 양보하여 준다.
노대는 바위 위의 소나무 토막 중에서 가장 긴 것을 표준으로 하여 새끼손가락으로 열 갈래의 흔적을 새겨 놓고서는 여럿을 보고 웃으면서
『해 그림자 길다 보니 한번 지나면 하루해일세(日影長一度爲一期).』
노이가 웃으면서,
『기왕에 하나로 넷을 바꾸니 우리는 돌아가며 그에게 도전하는 것이 공평할 것 같으오.』
이 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노대는 긴 눈썹을 아래로 쳐뜨리고서는 손뼉을 가벼이 세 번 치면서,
『당나라의 왕유(王維),…… 홀로 낯선 시골에 있는 외로운 손이 되었네(獨在異鄕爲異客).』
노대가 이 말을 할 때의 목소리는 아주 웅강(雄剛)하기 비할 데가 없었을 뿐 아니라, 내력이 벌써 금강경(金剛境)에 들어서 공력은 절묘한 경지에 이르고 있었다.
요원은 정신을 바짝 가다듬고서는 심사숙고하며 대구(對句)를 마련하고 있었다.
그 때 마침 해의 그림자가 움직이니 요원에게는 번개 같은 생각이 떠올라 마음의 희열을 참을 수가 없었다. 조용히 나무토막의 그림자가 반 이상을 움직이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가,
『당나라의 백향산(白香山)…… 자빠지지 않고 술 잘 먹으며 또한 글도 잘하였네(不惟能酒赤能文).』
네 노인은 요원의 기지(機智)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작업자 주: 이 부분의 번역을 약간 빼먹었음)
그가 댓구한 시 속에는 억지로 만들어 낸 흔적이 있었고 시간이 조금 경과한 것이 흠이었으나 술 이야기까지 덧붙여 놓은 것으로 봐서 그녀의 잔재주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자연 인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음 구절은 노이(老二)의 차례였다.
『송나라 소동파(蘇東坡),…… 취한 중에 어느덧 강남땅에 이르렀네(醉中不覺到江南).』
『전인(前人), 그대는 천 사람 속에서도 조금 다른 것을 알겠도다(識君小異千人裏).』
그의 음성은 나지막하나 힘이 있어 보였다.
허나 약간 부끄러워하는 품이 글귀에 자신이 없는 것 같이 보였다.
그러나 역시 불문(佛門)의 사자후(獅子吼)와 같은 진미가 엿보이기도 하였다.
요원은 눈을 감고 진기를 모아서,
『당나라의 이하(李贺)…… 때로는 반쯤 백 가지 꽃 앞에서 취하고(有時半醉百花前).』
『당나라의 피일휴(皮日休),…… 푸른 비단 치마 속에 좋은 시를 감추었네(碧紗裳藏詩草).』
요원의 대꾸하는 음성은 날카로우면서도 은연한 맛이 있어 주위의 사람을 황홀한 경지에 몰아넣고 말았다.
요원이 처음 대꾸할 때의 음성은 마치 금색 실을 공중에서 퉁기는 것같이 가냘프게 들려오더니 점점 소리가 강하여지면서 공간을 뒤흔들어 골짜기에 펴져나가니 네 사람의 노인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요원을 바라보았다.
이것은 요원의 기교(技巧) 중에서 가장 장기(長技)에 속하는 것이었다.
요원은 어려서부터 능상 노파에게서 정파(正派)의 내공을 배워왔고 복파보에서 장사범(張師範)을 통하여 수업을 하였던지라 무술의 기반이 극히 훌륭하였으나 내공의 힘이 부족한 것이 큰 흠이기도 하였다.
다음번에는 노오(老五)의 차례였다. 이 노오야말로 마교오웅 중에서 가장 문장(文章)의 도(道)에 뛰어난 늙은이였으니 그의 사람됨 바탕이 초일(超逸)하고 체격이 몹시 큰 것으로 봐서 그의 청년 시절의 기상에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그뿐 아니라 그의 시사(詩詞)의 솜씨는 강호에서도 크게 소문이 나 있을 정도였다.
그는 잠시 머리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 있더니 번쩍 머리를 들면서
『당나라의 위장(韋莊)…… 붉은 은행나무 동산에서 주선(酒仙)을 찾네(紅杏園中覓酒仙).』
그는 얼굴에 미소를 띠우면서
『송나라 소식(蘇軾)…… 술이 깨고 나니 문밖에는 해가 석 자나 올라가 있고(酒醒門外三等日).』
요원은 문제의 글귀를 듣고 다소 걱정이 앞섰으나, 노오는 네가 나의 글귀에는 감히 쉽게 대답할 수 없으리라는 자부심이 생긴 듯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노인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만족해하고 있었다.
요원은 네 사람의 글귀를 다시 머리에 생각하면서 이모저모로 분석을 해 보기 시작하였다.
노대는 역시 좌상으로써 그의 공력에 놀랄 만한 점이 있었고 노이는 문장력은 아주 보잘 것이 없었으나 그의 공력은 분명히 노대 다음으로 강하였다. 노사는 아직 순번이 오지 않아서, 그의 문장력을 알 수는 없으나 지금까지 한 마디의 말도, 한 번의 웃음도 얼굴에 띠우지 않는 것으로 봐서 가히 그의 대나무 같은 성격을 짐작할 수가 있었으며, 노오는 문장력은 나무랄 곳이 없어 예리하고 재치가 있었으나 공력이 약한 것으로 봐서 극히 문약(文弱)에 흐르고 있는 것이 여실하였다.
특히 노오의 인품은 요원이 세밀한 곳까지 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인격도야가 전연 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희로애락(喜怒哀樂). 칠정(七情)에 사로잡혀서 진애(瞋愛)의 경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아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요원의 이런 판단력과 재치는 거의 천부(天賦)의 재주에 속하는 것이었다.
이들 다섯 명의 야성(野性)의 늙은이들이 살아온 지난 백 년 동안에 그들은 사리에 맞지 않는 부당한 과거가 숨겨져 있으리라는 판단력이 번개같이 요원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요원의 표정은 점점 굳어 갔고 이 다섯 늙은이들에게 갖고 있던 기대가 한꺼번에 스러져 나가는 것 같았다.
이들에게서 배운다기보다는 오히려 무엇인가 억지를 강요당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어떤 함정에 빠진 것이나 다름없는 공포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분명히 그들은 종말에 가서,
(나로 하여금 운학을 해치우라고 권고할 것이다.)
요원의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는 다음에 일어날 어떤 사태의 대비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해는 어느덧 하늘 높이 올라와 그림자와 길이도 짤막해졌다.
요원은 몸에 내공의 힘을 발동시키니 그의 이마에서는 구슬 같은 땀방울이 맺혀진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노오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얼굴에 엷은 미소를 짓고 요원을 뚫어지라 하고 노려보고 있었다.
노오뿐이 아니라 나머지 세 사람의 노인들도 요원이 궁지에 몰린 것 같은 모습을 보고서는 승리감에 들떠서 의기양양한 모습이다.
요원은 바위 위의 나무토막의 그림자가 정오를 가리키는 것을 보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목소리를 가다듬고서는
『당나라의 백거이(白居易)…… 달이 물결 가운데 비치니 한 알의 구슬이네(月照波心一顆珠).』
말을 마친 요원은 그제서야 마음의 긴장감이 풀리는 것 같았다.
노오의 얼굴에는 뜻을 알아차릴 수 없는 엷은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나머지 세 사람의 늙은이도 아주 무표정한 얼굴로 정좌하고 있었다.
그러자 노이와 노사가 얼굴에 미소를 지운다. 그것은 아직 여유만만하다는 암시와도 같은 것이었다.
요원의 두 눈은 차차 영기(靈氣)가 되살아나기 시작하였고 눈방울을 또릿또릿하게 굴리면서 또 하나의 생각을 머릿속에 정리한 모양이었다.
『송나라의 소식(蘇軾), 고을 집에 두고 온 말에 봄 술을 먹이네(州家遺騎饋春酒).』
이 구절은 워낙 시구가 괴벽스러워서 좀체로 딴 사람이 쓰는 것을 본 일이 없는 글귀였다.
노오는 태연한 척하였으나 그의 관자놀이의 핏줄이 벌떡거리는 것이 그의 마음속의 상을 환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마음속으로 요원이 쾌재를 부르면서 기뻐하였다.
그러나 노사(老四)가 긴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요원을 노려보고서
『당나라의 이하(李賀),……기가 달린 정자에서 말을 내리고 가을 옷을 벗다(旗亭下馬解秋衣).』
그는 숨도 돌리지 않고 계속하여 다음 글을 소리 높이 읊었다.
『당나라의 백거이(白居易),……장둑 머리의 대잎으로 봄이 깊어감을 알겠도다(旗頭竹葉經春熟).』
요원은 듣고 난 다음에 글귀의 아름다움에 감격하여 그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그러나 노사는 여전히 돌로 깍은 미륵불 모양으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정좌하고 있었다.
노사는 천성이 예민하고 머리가 명석하여 언제나 기발한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가볍게 그것을 발표하거나 자랑삼는 경솔한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요원의 재치 있는 기지를 보고서야 비로소 입을 열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점은 있었다.
그 제목의 선택을 잘못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시의 구절은 비록 좋았으나 그러나 워낙 명작이었기 때문에 전세대(前世代) 사람들이 이 글에 대한 대구(對句)를 읊었기 때문에 창작이 아닌 모방에 지나지 않았던 때문이다.
그래서 요원이 기뻐하니 두 노인은 의외라는 듯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대(老大)만은 노기충천하여 숨소리마저 빨라진 것같이 보였다.
그러나 흰 수염의 노인만은 승부를 초월해서 학자다운 생각을 머리에 하고 있었다.
즉 사 대 일의 대전은 비겁하기도 한 것 같고 무엇인가 맥이 풀린 것 같아서 차라리 삼 대 이 정도의 대적이라면 이 장소가 훌륭한 풍류놀이 같은 흥미를 일구어 줄 것 같아서 슬그머니 요원의 편을 들기 시작하였다.
아직도 삼 연(三聯)이 남았으니 만약 또 다시 십 구를 쏟아 놓는다면 승부의 판결이 나지 않는 이상한 판국을 이루는 것이 된다.
요원과 네 사람의 노인은 모두 마음에 권태감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요원은 상대방에게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겨를을 주지 않기 위하여
『당나라의 온정균(溫庭筠)…… 거울 속에 비친 부용꽃이 맑은 물에 비추인다(鏡裏芙蓉照水鮮).』
『당나라 허혼(許渾)……한 통 술을 다 마시니 청산이 저물도다(一樽酒盡靑山暮).』
듣고 있던 노대의 두 눈썹은 잔뜩 찌푸려졌다. 순간 깊은 생각에 빠져 버리는 눈치였다.
사실 이 요원의 대구는 그리 어려운 글귀는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을 길게 끌면 끌수록 요원에게는 불리하여지기만 하는 것이다.
결국 일 대 사의 수적인 견지에서 보더라도 상당히 불리한 처지가 아닌가……
요원은 계속해서 네 번 생각하고 네 번 답을 해야 하며 상대방은 한번 생각하고 한 번 한 다음 세 번은 쉬어도 된다는 결론이었다.
요원의 머리에는 아까부터 기발한 난제(難題)가 머리에 떠올라 늙은이들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는 명안(名案)이 있었으나 수적인 열세에 쫓기다보니 이 묘안을 제안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대가 또 다시 틈을 주지 않고
『당나라 두보(杜甫)…… 오월 달에 강물이 깊으니 풀섶이 차도다(五月江深草閣寒).』
『당나라 온정균(溫庭筠)…… 응당 칠석날에는 은하수를 돌아서 오겠지(祇應七夕廻天浪).』
요원은 지금까지 당한 싯귀 중에서 이 노대의 싯귀에 대한 대꾸가 가장 빨리 머리에 떠올랐다.
어려서 설날을 맞아하여 가족들이 모여 앉아 이 연구(聯句) 놀이를 즐기고 있을 때 누구의 입에선가 이 싯귀가 나왔던 것이 생각났고 오빠가 대꾸하던 글귀가 아직까지도 머리에 생생히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잠시의 공간을 여백으로 남기지 않고,
『당나라 백거이(白居易)…… 멀리 날아 한잔 술로 강산에 하례하고(遙飛一酎賀江山).』
『송나라 강기(姜夔)…… 눈 속에 떠오르는 옛 친구는 항상 건재하도다(眼中故舊靑常在).』
듣고 있던 네 늙은이는 기가 막힐 정도로 놀랐다.
마음속으로 모두 당황하였다.
그러나 요원은 이 어린 시절을 설날의 추억을 더듬으면서 이 늙은이들을 궁지에 몰아넣을 기지가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에 그는 노대의 시구에 대한 대작(對作)이면서도 고의로 술 주(酒)자를 빼고 눈 안(眼)자를 넣어 놓았던 것이다.
네 사람의 늙은이가 이에 대작(對作)을 만들자니 글귀의 막히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요원은 벌써 이 늙은이들의 실력을 빤히 알고 있었다.
네 늙은이의 시사(詩詞)는 제법 능숙하였으나 몇 사람 명인의 시구를 놓았을 뿐 창작이란 전연 찾아 볼 수가 없었고 그들은 주로 당(唐)나라 시인의 것에 편중하여 인용할 뿐이었고 송나라의 수많은 시인의 이름을 인용하지 못하고 오직 소식(蘇軾) 한 사람만을 인용한 것으로 보아 이들의 허점은 빤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았다.
요원은 지금까지의 늙은이들의 실력으로 미루어보아 송나라의 강기(姜夔)의 시를 걸어 놓는다면 노인들은 당황할 것이라는 것이 그대로 적중하여 버린 것이다.
네 노인은 모두 눈을 지그시 감고 대작을 생각하고 있으나 그리 쉽게 뾰족한 수가 나올 리가 없다.
노사는 눈을 껌벅거리며 경을 읽는 장님의 모습 그대로이다. 노오는 속으로 끙끙 앓고 있는 모양이었다.
차라리 자기들이 만든 엄격한 규제가 아니었던들 금시 대작을 할 수도 있으련만 자기들이 만든 규제를 무시할 수는 없는 처사였다.
제가 만든 쇠고랑에 제가 묶인 꼴이 되었다.
그러나 노사는 역시 침착하게 노승(老僧)처럼 선정(禪定)에 든 채 조금도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고 무엇인가 심사숙고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 우러나오는 초조감은 정말 사람을 미치게 만들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