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함께 / 최미숙
식물에 관심을 가진지는 오래 되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학기 초가 되면 학부모들이 교실 환경정리 하라고 화분을 사서 보낸다. 반짝이는 싱싱한 잎을 달고 왔던 식물이 두 달을 못 넘기고 말라 죽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신경 써서 물이라도 주었으면 죽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처음에는 죽어가는 것 몇 개 가져다 살려볼까 싶어 물도 주고 살피다 그것이 살아 새 잎이 돋고 꽃이라도 피워 주면 뿌듯함과 함께 애착이 갔다. 그때부터 조금씩 사서 키우기 시작했고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는 다육이까지 베란다에 화분이 가득하다. 나는 다 자라있는 것을 사서 키우기 보다 어린 모종이나, 직접 꺾꽂이로 뿌리를 내려 화분에 옮겨 심든지, 가을에 받아 놓은 씨를 다음 해 봄에 뿌린다. 깨알만한 크기에 생명이 깃들어 있다니 기특하고 경이로우며 신비함 마저 느낀다. 이 작은 것들도 살아 보려고 힘찬 몸짓으로 땅을 뚫고 나오는 것을 보면 결코 함부로 할 수가 없다.
토요일 아침 눈뜨면 제일 먼저 베란다로 나와 꽃들과 눈인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집 베란다에는 꺾꽃이로 키운 고무나무, 군자란, 병아리눈물, 보라사랑초, 수국, 꽃기린, 호야, 카랑코에, 일년 내내 꽃을 보여주는 색색의 제라늄들, 바이올렛, 장미허브, 구문초, 호야, 풍로초, 게발선인장, 안스리움, 라벤더, 마삭줄, 율마 그 외 많은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모두 베란다에서 잘 자라는 식물들이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향이 좋고 밝은 연두색을 가진 율마이다. 어린 모종 2개를 사서 내 키만큼 키웠는데 1개는 작년에 보내고 남은 1개도 얼마 전부터 특유의 색을 잃더니 죽어가고 있다. 바빠서 한동안 신경을 안 썼더니 내 곁을 떠나려고 한다. 몇 년을 정성들여 키웠는데 아깝기만 하다.
베란다에서 자라기 힘든 나무는 따로 키운다. 1주일에 한번, 바쁠 때는 2주일에 한 번씩 간다. 주말에 식물을 만나러 갈 때는 보고 싶은 사람 만나러 갈 때처럼 아침부터 설렌다. 안 보는 동안 싹은 났는지, 지난번에 심은 나무는 얼마나 컸는지, 꽃은 피웠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가서 보면 내가 심어놓은 나무들보다 더 자란 풀에 둘러싸여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갇혀있다. 도착하자마자 풀부터 뽑고, 주변을 깨끗이 정리해 주면 비로소 꽃나무들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풀을 뽑으며 나무들과 같이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다 뽑고 난 후의 깨끗한 모습을 보면 가슴이 뻥 뚫리면서 무언가를 열심히 했다는 성취감도 느낀다. 일하다 힘들면 맑은 가을 하늘도 쳐다보고, 고요함 속에 지저귀는 새소리와 바람소리 물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에게는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그래서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 미련스럽게 똑같은 일을 매번 반복한다.
올 여름은 비가 많이 와서 가고 싶어도 가지 못했다. 날씨가 좋아진 후에 가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꽃나무보다 풀들의 키가 더 커져 버렸고 장마비에 꽃밭의 흙이 쓸렸는지 수선화 뿌리가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며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수선화는 꽃이 지고 나면 뿌리를 캐서 저온저장 했다가 11월쯤 다시 심는다고 하는데 나는 몇 년을 그대로 두고 꽃만 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뿌리를 캐서 포기나누기를 해야 했는데 잘됐다 싶어 뿌리를 전부 캤더니 기특하게 몇 년 동안 작은 알뿌리가 많이도 생겼다. 나는 그것을 일주일 정도 두었다가 다른 장소로 옮겨 심었다. 어쩌면 내년에는 노란 수선화 꽃을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많이 번식했으니 고생했다고 말해 주었다. 작년에 새로 사서 심은 수선화와 그 주변에 심은 튤립 꽃은 볼 수 있으니 그걸로 만족해야할 것 같다.
나는 그곳을 내가 좋아하는 예쁜 꽃과 나무가 가득한 곳으로 만들고 싶다. 지금은 직장생활 때문에 할 수 없지만 퇴직을 하고 나면 시간이 많이 날 것이다. 지난번에 산책을 나갔다 천변에 심어 놓은 한련화가 씨앗을 맺었기에 그것을 받아왔다. 그 외에 칸나, 키 작은 백일홍, 해바라기, 꽃양귀비, 더덕, 도라지, 샤프란, 꽃치자 씨앗을 받아 두었다. 내년 봄에 풀이 많이 나는 곳에 뿌릴 예정이다. 도라지와 더덕은 뿌리를 먹는다고 꽃은 눈여겨 보지 않는데 보라색을 띤 도라지와 종모양으로 초롱꽃과 비슷하게 생긴 더덕꽃 또한 얼마나 예쁜지 볼 때마다 감탄사가 나온다. 풀과 함께 색색의 꽃들이 피어나면 얼마나 예쁠지 상상만 해도 행복해진다.
식물이 꽃을 피우면 황홀해서 애들에게 예쁜 모습 좀 보라고 호들갑을 떨면 별 관심없이 건성으로 예쁘다고 대답한다. 내 눈에만 예쁘게 보인가 보다. 바쁜 생활 속에서 자식 키우듯 정성을 쏟을 수 있는 꽃과 나무가 곁에 있어 즐겁다.
첫댓글 꽃보다 예쁜 선생님 저는 모른 꽃들을 많이 키우십니다. 꽃들의 이름을 그렇게 다 외우셨어요? 감동입니다.
식물을 잘 키우는 건 너무 어렵더라고요. 사람이나 식물이나 정성이 중요한 것 같아요.
율마 키우기 힘들던데 대단하시네요. 선생님은 무릉도원을 가지셨네요. 부럽습니다. 제가 끔꾸던 일상입니다.
수석님 꽃얘기 나올 줄 짐작했답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담임시절 교실 식물을 말라 죽인적이 있었다니 믿을 수가 없네요.
저도 율마 연두빛을 좋아해서 몇번 시도했는데 잘 키우지 못했어요. 물이 조금 부족하면 아랫잎들이 갈색으로 변하고 신경써서 주면 과습이 되더군요. 대단하셔요!
선배님의 농장에 한 번 가 본다는 게 아직 못 가봤네요.
꽃 많이 피는 봄날에 그곳에서 한 번 뭉쳐요.
모기 나오기 전에요. 하하
선생님 글을 읽으며 제 마음이 꽃밭에 노니는 듯 행복합니다. 자식 키우듯이 정성을 다하시니 멋진 노후가 기대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