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탄 살라딘>> 타리크 알리 지음. 정영목 옮김. 미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가 운명의 피조물이고 우리 인생은 우리가 사는 시대가 결정한다는 사실이오. 우리의 인생 역정은 환경이 결정한다는 뜻이지/ 본문 중
소설가 윤흥길이 필생의 역작이라 자평하는 /문신/이 전 5권으로 완간을 하였다고 한다. 구상하고 자료 조사부터 근 25년이 걸렸다고 한다. 내가 윤흥길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의 소설 몇 편을 예전에 읽었는데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작가라고 판단해서이다. 그래서 나는 이 ‘필생의 역작’을 곧 읽어 볼 예정이다. 완간도 하기 전에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하였다고 한다. 지난달 27일 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독자들에게 좀 불친절하기로 마음먹고 썼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현재의 한국소설들이 거대담론 대신 미세담론 쪽으로 많이 흐르면서 파편화된 개인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하였다, 문학이 ’패션화‘ 되었다고 비판하며, ”후배들은 그렇게 쓰지만 ’나는 그렇게 쓰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일부러 불친절을 떨었다“ 고 했다. 소설 /문신/을 한 페이지도 들여다보지 못했지만, 이 책에 흥분하는 이유는 그가 윤흥길이기 때문이다.
타리크 알리의 /석류나무 아래서/를 읽고 내친김에 이 책도 읽기로 하였다. 저자는 이 책의 저술 동기를 영국 BBC 방송에 나온 어떤 멍청한 논평자가 아랍인에게는 문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분노하여, 아랍 세계에 대한 무지가 뿌리 깊다는 생각에 나라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은 이슬람 국가에서 자랐지만 과거에나 지금이나 확고한 무신론자라고 하였다.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해보았다고 한다. ’왜 이슬람은 기독교의 종교개혁 같은 개혁을 겪지 않았으며, 계몽주의의 영향도 받지 않았을까?‘ 타리크 알리는 이 소설들이 이 질문에 대답하려는 시도라고 하였다.
서구인의 귀에는 살라딘으로 들리지만, 아랍식 이름은 살라흐 앗 딘이라고 한다. 나는 번거롭지만 살라흐 앗 딘으로 표기할 생각이다. 서구의 번역을 거친 술탄 살라딘이 아니라 그의 본 이름을 찾아주고 싶어서다. 소설을 읽기전에 몇 가지 역사적 사실을 조금 살펴보자.
작가는/1099년 1차 십자군 원정 때 예루살렘이 함락되자 이슬람 세계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슬람의 기세가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에 이런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다마스커스, 카이로, 바그다드는 대도시였으며 이들 도시를 다 합치면 200만이 넘었다. 런던과 파리의 인구가 각각 5만 이하였던 것과 비교하면 도시 문명의 발달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바그다드의 칼리파는 이교도의 물결이 이슬람 군대를 가볍게 집어삼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서구인은 오랜 기간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살라흐 앗 딘은 1187년 알쿠디스(예루살렘)를 탈환한 쿠르즈 족 전사이다/ 이희수 이슬람연구소장은 /1099년 7월 5일,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에서 저지른 끔찍한 만행은 인류 중세사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40일간의 포위 끝에 차지한 예루살렘에서 성전의 십자군 전사들은 단 한 사람의 유대인과 무슬림도 남기지 않고 잔혹하게 학살했으며, 이슬람 사원과 유대인 성지마저 철저히 파괴하고 불태웠다. 그로부터 88년 뒤인 1187년 10월 2일 금요일, 이집트의 통치자 살라흐 잇 딘은 예루살렘을 탈환한 후 당시로서는 믿기지 않는 관용을 보였다. 그곳의 기독교인들을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고, 관료들의 분노와 반대를 무릅쓰고 원하는 자는 재산을 모두 싸들고 예루살렘을 떠날 수 있게 허용했다. 살라흐 잇 딘은 그런 사람이었다/
이 소설은 ’그런 사람‘인 살라흐 잇 딘을 그리고 있다. 많은 부분은 사실에 기초하고 있고, 몇몇 인물과 상황은 소설적 상상을 가미하였다고 한다. 소설은 반드시 이런 상상의 ’윤활제‘의 필요하다. 역사의 소설적 재구성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살라흐 잇딘은 1138년에 태어났고, 1193년 55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 소설에서 영웅을 보거나 전쟁 스펙타클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그는 영웅도 아니고 전쟁은 잔인하고 끔찍한 일이지 결코 대서사가 아니다. 이 소설은 살라흐 잇 딘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며, 당시 이슬람 궁정의 사회상과 처절한 권력 투쟁, 남녀의 사랑, 동성애, 법의 해석과 시행 등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이 소설의 형식은 유대인 서기 이븐 야쿠브가 살라흐 잇 딘의 개인 서기로 기록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운명의 피조물이고 우리 인생은 우리가 사는 시대가 결정하고. 우리의 인생 역정은 환경이 결정한다를 실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나는 현대 한국 소설이 파편화된 개인만을 다루고 있고, ’패션화‘ 되었다는 비판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책이 이제 유행하는 운동화나 캐릭터처럼 유행하는 ’패션‘이 되었구나 생각될 때가 많다. 역사는 뒷방 노인이 된지 오래고, 이제는 역사나 사회와 분리된 ’개인‘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원자화된 개인‘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사실 이런 현상은 ’이성‘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이 아닌가 싶다. 소설 속 철학적 논쟁을 읽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중세는 ’신성‘이 사유방식이고 ’근세‘는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가 아닐까 싶다. 신성은 믿음이 도구이고 이성은 증명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지도 모르겠다. 계몽주의는 믿음(신성)에 맞선 이성의 도전이다. 이성의 발견 혹은 발명은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 아니었을까?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시대는 새로운 ’중세‘가 아닐까?
박경리 선생은 만날 때마다 윤흥길에게 ’큰 작품‘을 써야 한다고. 인간에 대해서, 인간의 삶에 대해서 깊은 애정을 갖고 통찰력으로 진실을 바라보는 작품이 큰 작품이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이 소설이 그런 ’큰 작품‘이 아닐까 싶다. 서구 혹은 ’신자유주의‘ 종교는 ’원자화된 개인‘을 발견 혹은 발명했다. (기독교가 십자가에 못박힌 ’우상‘을 구상하고, 동정녀 마리아를 발명하였듯이.) 나는 이런 ’큰 작품‘을 읽으면 마치 큰 세계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에 휘둘리지 않는 확고한 믿음의 개인이 되기보다는 방황하고 회의하고 우는 인간이 되고자 한다. 한 인간의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가끔 우울할 때가 있다. ’우울‘을 해부대 위에 놓고 관찰을 해보면 그 원인 중 하나는 나의 ’한계‘를 직시하지 못한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괜히 부자나 권력자의 기준에 대입해 보고, 더 나은 운명을 상상해 보면 내 삶이 한없이 초라해질 때가 있다. 나의 ’한계‘와 운명을 알고 그것을 사랑할 때 비로소 우울 증상도 완화된다. 한 인간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런 한계와 운명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 아닐까? 살라흐 잇 딘은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허접하지만 이렇게라도 뭔가를 쓰지 않을 수 없다. 에고 내 슬픈 운명이여!!
첫댓글 /운명의 피조물이고 우리 인생은 우리가 사는 시대가 결정한다/....내 의지나 생각이 나의 것이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낸 것이라면 지금 나의 삶이나 우리의 현실은 시대의 산물이라고 이해를 할 수 있겠네요.
/'한계'직시 ....그것을 사랑할때....한계와 운명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 아닐까? 살라흐 잇 딘은 그런 사람이다/....나의 삶으로 가져온 글이 아주 좋습니다.
/88년 뒤인 1187년 10월 2일 금요일, 이집트의 통치자 살라흐 잇 딘은 예루살렘을 탈환한 후 당시로서는 믿기지 않는 관용을 보였다./....실제 인물인 이야기라서 큰 울림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