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도슨(George Geoffrey Dawson, 1864~1944) '①이 101세에 쓴 '인생은 아름다워' 미국 뉴올리언스의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10형제의 맏이로 태어난 조지 도슨.(George Dawson, 101, was born into a poor black family in New Orleans.)
그는 학교 갈 때를 놓쳐 글을 배우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이 문맹(文盲, illiterate)이라는 걸 밝힐 수도 없었다.(He missed school and couldn't learn to write. However, he could not reveal that he was illiterate.)
표지판(標識板, notice)이나 노동지침(勞動指針, Labor Guidelines)등은 남에게 한 번 듣고 몽땅 외웠다.(I heard the signs and labor guidelines from others once and memorized them all.)
그에게 문맹(文盲, illiterate)은 ‘고통스러운 비밀’이었 지만 일에 쫓겨 어쩔 수가 없었다.(Literacy was a "painful secret" for him, but he was forced to work.)
긴 세월(歲月, years[times])동 안 힘이 되어 준 것은 할아버 지와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인생이란 좋은 것이고, 점점 더 나아진다’는 믿음 이었다.(What gave me strength for a long time was, as my grandfather and father taught me, "Life is a good thing, It was a belief that it was getting better and better.)
그 힘으로 그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것이 최선(最善, all I can) 의 삶이라고 생각하며 ‘못 배운 설움’을 이기곤 했다.(With that power, he used to overcome "unlearned sorrow," thinking that doing his job silently was the best life.)
그러나 미국의 남북전쟁(南北戰爭, the Civil War)이 북군의 승리로 끝나 흑인이 해방되었지 만 사회는 여전히 "흑백"으로 나뉘어 있었다.(However, although the Civil War ended with the victory of the North Korean army, black and white were liberated, society was still divided into "black and white.")
특히 백인들에게 오해를 받아 아무 죄도 없이 죽은 형의 기억 때문에 그는 10세 이후 백인들과 는 평생 어떤 거래도 하지 않겠다 고 다짐했다.(Especially because of the memory of his brother, who died innocent after being misunderstood by white people, he vowed not to make any deal with white people for the rest of his life after the age of 10.)
스물한 살 때부터 미국 전역과 캐나다, 멕시코를 오가며 부두 노동자(勞動者, worker)와 도로 공사장(道路工事場, a road construction site) 인부(人夫, laborer)등 수십 개의 직업을 전전한 그는 늘그막에 고향으로 돌아왔다.(From the age of 21, across the United States and Canada, Having transferred dozens of jobs to and from Mexico, including dock workers and road construction workers, he always returned to his hometown at the end of the day.)
혼자 낚시를 하며 소일하던 그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96년. 성인들을 위한 교육과정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낚싯대를 던지고 학교로 달려가 글을 배웠다.(It was in 1996 that he had an unexpected opportunity to fish alone. When I heard that there was a curriculum for adults, I immediately threw a fishing rod and ran to school to learn how to write.)
이때가 98세였다. 알파벳 26자를 몽땅 외우고 열심히 학교를 다니면서 ‘장례식 (葬禮式, funeral)때문에 빠진 사흘’ 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지각하지 않았다.(He was 98 years old. Except for 'Three Days Missing Because of Funeral' while memorizing all 26 alphabets and attending school diligently, I was never late.)
그리고 101살이 되던 해 그는 책을 펴냈다. 이 책 <인생은 아름다워> (조지 도슨·리처드 글로브먼 지음, 해냄)는 그의 독특한 인생여정(人生旅程, a journey of life)을 담은 논픽션이 다.(And when he was 101 years old, he published a book. This book, "Life Is Beautiful" (George Dawson, Richard Glove Dust Mound, Hae-hae) is a non-fiction about his unique journey through life.)
책을 내기까지는 초등학교 교사(初等學校 敎師, an elementary school teacher)인 글로브먼의 도움이 절대적(絶對的, absolutely) 이었다.(Until the book was published, the help of Globeman, an elementary school teacher, was absolute.)
신문기사(新聞記事, a newspaper account[report]) 를 보고 찾아온 글로브먼은 도슨의 인생을 책으로 만들자고 설득(說得, convince)했고, 도슨은 90여년 전의 다짐을 깨고 백인(白人, white person)과 함께 책을 만든 것이다. (Globman, who came to see the newspaper article, persuaded Dawson to turn his life into a book, Dawson broke his promise of more than 90 years ago and made a book with a white man.)
만년에 발견한 글 읽는 기쁨과 세상과의 교감(交感, communion)으로 그가 얻은 행복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값지다.(The joy of reading in his later years and the happiness he gained from his communication with the world are more valuable than anything else in the world.)
각급 학교와 선도기관(先導機關, leading agency)등으로 강연(講演, lecture)을 다니며, 좌절(挫折, setback)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힘도 바로 3세기의 삶을 관통(貫通, penetration)한 그의 역사에서 나온 것이었다. (He gives lectures to schools and leading institutions at all levels, The power to give hope to the missing also came from his history that penetrated the life of the third century.)
나이나 학벌 때문에 새로운 출발을 머뭇거리는 이들에게 용기(勇氣, courage)를 주는 실화(實話, real story).(A true story that encourages those who hesitate to make a new start because of their age or academic background.)
그래서 이 책은 ‘늦었다 고 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삶의 교훈(敎訓, message)을 온몸으 로 보여 준 그의 인생보폭과 닮았다.(So, this book resembles his life stride, which showed the lesson of life, "When you say it's late, when you say it's the fastest.")
= 華谷·孝菴의 좋은글 중에서 =
① 조지 도슨(George Geoffrey Dawson, 1864~1944)
조지 제프리 로빈슨, George Geoffrey Robinson
[요약(要約, summary)]
영국의 언론인.
본명은 George Geoffrey Robinson.
o 출생:1874. 10. 25, 영국 요크셔 스킵턴인크레이븐
o 사망:1944. 11. 7, 런던
o 국적:영국
[본문(本文, the text)]
1912~19년, 그리고 1923~41년 은퇴할 때까지 〈타임스 The Times〉지의 편집장으로 있었다. 원래의 성은 로빈슨이었으나 1917년 상속에 따른 단독 날인증서에 따라 성을 바꾸었다.
이튼 학교와 옥스퍼드 모들린 칼리지를 졸업했으며 1898년에는 옥스퍼드대학 교의 명예교우(fellow of All Souls College, Oxford)로도 선출되었던 도 슨은 공무원이 되어 1901년에는 당시 고등판무관이었던 밀너 경의 개인 비서 로 남아프리카에 갔다. 그가 언론인 이 된 것은 거의 우연이라 할 만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밀너는 자신이 영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계속 자신의 정책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요하네스버그 스타 Johannesburg Star〉지의 소유주들 을 설득하여 도슨을 편집장으로 앉히도 록 했던 것이다. 그후 도슨〈타임스〉 지의 요하네스버그 특파원이 되었으며 그가 보낸 기사들이 〈타임스〉의 사주 노스클리프 경의 흥미를 끌어 1912년 노스클리프 경은 그를 〈타임스〉지의 편집장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1919년 노스클리프 경이 점차 신문을 자신의 개인적인 정치이념의 도구로 삼으려는 경향을 띠어가자 두 사람 사이에 불화가 생겨났고 결국 도슨은 신문사를 떠났다. 헨리 위크엄이 그의 뒤를 이어 편집장이 되었으나 노스클리프가 사망한(1922) 이듬해 존 제이콥 애스터(후에 애스터 경이 됨)가 최고경영자가 되면서 편집의 전권을 위임한다는 조건 아래 도슨을 다시 불러들였다.
그후 25년 이상을 도슨은〈타임스〉의 편집장으로서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한때 신문을 개인 정치이념의 도구로 삼는다는 점 때문에 노스클리프와 불화한 적이 있었음에도 그 자신 역시 〈타임스〉를 자신의 정치이념의 도구로 삼았다. 그는 스탠리 볼드윈, 네빌 체임벌린과 친밀하게 지냈다.
또 이들보다는 덜했지만 램제이 맥도널드와도 가까운 사이였으며, 계간지 〈라운드 테이블 Round Table〉과 관련을 맺고 있는 그룹의 지도자였다. 이들 그룹은 어떤 드높은 의무감 때문에 정치지도자들과의 긴밀 한 친분관계를 이용하여 국가정책에 영향력을 발휘하려고 애썼다. 그는 스스 로를 '권력계급의 사무총장'쯤으로 생각 했다.
유화정책을 철저히 신봉하는 그는 〈타임스〉지를 통해서나 장관들과의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통해서 그러한 정책을 역설하는 등 주요 유화정책주의 자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이러한 유화정책은 아돌프 히틀러의 요구에 굴복하여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 지방을 히틀러에게 넘겨주는 것을 골자로 한 뮌헨 협정(1938)을 낳기도 했다. <끝>
첫댓글 새로운 소식을 돋보이게 하고 神秘한 秘境은 언제나 변함없이 없고 사랑하는 마음은 自然의 風景과 잘 어우러 지시고 歲月이 흘러 멋진 모습 感銘 받았으며 所重하고 행복하시고 올려주신 맑고 밝은 希望과 勇氣가 용솟음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香氣로운 맛과 훌륭한 作品은 寶石같이 빛나며 高貴하고 職分에 최선을 다하며 또한 주어진 일에 調和가 잘 어울리는 모습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