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랗게 빈 날 -황금산에서 / 김순일
황금산에 오른다 바람소리 파랗다
가로림만 들고 나는 물소리 파랗다
정상에 내려와 노니는 하늘이 파랗다
갈매기가 날아간다 멀멀리 한 점 파랗다
바닷가 조약돌처럼 자글자글 끓던
나의 가슴 속 잠시 한 때 파랗다
해장국을 먹으며 / 김순일
해장국을 먹는다.
저자 마당 좌판 앞에 즐펀히 앉아/
막걸리 한 대접 들이키고
허섭쓰레기 곰끓인
해장국을 먹는다.
세상은 추워도
훈훈하게 달아 오르는
몸뚱아리
멋이나 맛
또한 분위기를 따지는
깔끔란 사람들은 모른다.
저자 마당 귀퉁이에
아무렇게나 주저 앉아
해장국에 막걸리를 마시는
편안함을
주제골은 사나워도
몇 푼거리 세강에 팔고 사는
저자 마당 아낙네들이
손톱을 손질하고
하품으로 하루해를 보내는
귀부인들 보다
오늘따라 더욱 정겨워라.
왜 / 김순일
쥐 소 호랑이 토끼가 달려간다
용 뱀 말 양도 달려간다 식식거리며
잰나비 닭 개 돼지도 달려간다 허둥지둥
앞만 보고 달겨간다 죽을 둥 살 둥
벼랑 끝으로 가랑잎 같은 해가 지고
왜, 달려왔지?
쥐소호랑이토끼용뱀말양잰나비닭개돼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두리번 두리번
살 / 김순일
칡뿌리를 캐다가 사람의 유골을 만났다
살은 물이 되고 흙이 되고
영혼은 바람이 되었나?
두개골에서부터 발가락 마디마디까지
뼈다귀만 고스란히 남아 누워 있는
내 손길이 닿자마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내가 숨 쉬고 사는 것은
잔가시에 찔려도 피를 흘리는 물렁한
살이 뼈를 받치고 있기 때문이구나
시장바닥 굴러다니느라 온몸 구석구석 박힌 옹이
등때기에 깊히 박힌 죽비 자국
너희들이 내 뼈의 갈기를 세워
눈물의 짠바다를 건너게 하는
살의 상처구나
아, 골륭을 골륭이게 하였던
살이여
삶 / 김순일
산다는 것은
생각하며 걸어가는 길
지나가 버린 시간이
아름답고 소중하네
치열하고 삶
열정적인 인생을 살았지만
남은 것은
나에게 희미한 흔적들
앞만 보고 살아 온 삶
이리 뛰고/ 저리 달리며
숨 막히게 살아 온 추억들
이제는 천천히
세상을 더 넓게 보고
삶을 깊게 음미하며
나만의 여백에 그림을 그려 가야지
[ 김순일 시인 약력 ]
김순일 시인
* 1939년 충남서산
* 1958년 초등학교 교사, 중·고등학교 교사, 태안여중 교감, 서산교육청 장학사, 부석중학교 교장, 서산중학교 교장 정년퇴임
* 198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 시집 : ‘서산사투리’, ‘섬’, ‘어둠꽃’, ‘서산장터’, ‘사람 어디 있나요’, ‘우울한 햇빛’, ‘숲의 나라’, ‘미꾸라지 사원’, ‘웃음을 돈사려고’
‘부처한테 속아 인도에 가다’ 등.
* 수상 : ‘서산문화대상’, ‘충남예술상’, ‘충남문학상’, ‘충남문화상’, ‘충남시인회 본상’, ‘해동문학상’, ‘시인정신상’, ‘한성기문학상’과 ‘황조근정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