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피는 옛마을
이형권
능소화는 조선시대 양반집에서 볼 수 있었던 귀한 꽃이다.
양반가의 선비들이 능소화를 사랑한 이유는
이 꽃이 시들기 전에 깔끔한 자태로 낙화하는 모습 때문이다.
무성한 나무 덩굴 아래 생생하게 떨어진 꽃송이를 보면
지조를 지키며 비굴하지 않게 떠나는 선비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 능소(凌霄)란 이름에는
하늘을 능가할 만큼 고원(高遠)하다는 뜻이 담겨 있고
꽃말은 명예, 영광, 기다림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세간에 널리 알려진 능소화 이야기는
어느 궁녀의 넋이 꽃으로 환생했다는 슬픈 전설을 담고 있다.
주홍빛 고운 뺨의 아리따운 자태의 소화라는 궁녀가
임금의 사랑을 받아 후궁이 되었으나
하룻밤의 은총이 있은 후 처소에 발길마저 주지 않자
구중궁궐에 갇혀 기다리다 죽어 꽃이 되었다는 것이다.
무성하게 꽃송이를 피우고 담장을 타고 올라 피었다가
한스럽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여인의 한을 연상케 한다.
떨어진 꽃송이도 그리운 이의 발소리라도 들으려는 듯
귀를 쫑긋 세우고 땅바닥에 엎드려 있으니
능소화 전설에는 조선 여인의 잔혹사가 투영된 셈이다.
꽃이 필 즈음이면 어김없이 장맛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이 또한 소화의 눈물이 속절없이 쏟아지는 사연이라 여겼다
📷
사진 / 이형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