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문학기행 3, 해운대
오늘의 여정도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해는 지고 어두운 길을 해운대를 향하여 달리는 버스는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여 자주 멈추었고, 창밖의 가을은 이미 지고 없었다. 손영순 선생님의 재치 있는 입담에 차 안은 유쾌한 웃음소리가 났지만, 여전히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나는 너무 늦었으므로 남은 일정을 포기하고 집으로 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목을 빼고 기다릴 우리 방글이를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지루한 대로 빈틈없는 시간은 가고 드디어 해운대에 도착하여 순대 전골로 저녁을 먹었다. 잘 마시지 않는 커피도 한잔 하고 나니 포만감에 마음조차 누그러지면서 집 생각은 뒷전으로 밀리고. 해운대 야경 구경이 은근히 기다려지는 거였다.
오후 여덟 시가 넘어 짙은 어둠이 깔린 해운대 바닷가의 밤은 우리가 느끼며 지나온 낮 동안의 쌀쌀했던 기온이 딴 나라처럼 느껴질 정도로 포근했다. 사람이 사고하고 행동하기 딱 좋은 달콤하기조차 한 날씨였다. 신비스러운 조명 속에 얼비치는 풍경들이 아름다웠다. 대만 탄슈이 해변의 야경을 연상하며 아들 내외와 보냈던 따뜻한 시간이 떠올랐다. 이때쯤 내 몸의 온도가 서서히 올라감을 느낀다. 체온이 낮은 나는 조금 체온이 올라가면 최적의 몸 상태가 되는 셈이다. 기분 좋은 일은 온도를 높이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나는 오랜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그런 기분으로 천천히 걸었다. 환상의 성처럼 우뚝 버티고 서 있는 아파트들, 저 속에 사는 사람들은 아주 많이 행복할까? 시골구석 낮은 집에 사는 나와 높은곳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얼마나 차이가 날까 하고 생각하니 어려운 수학문제 풀듯이 머리가 아파서 공평하게 똑같이 행복하다고 결론을 지으며 조금은 부럽던 속마음을 달래보는 거였다.
우리가 지나가는 주변에 많은 사람이 야경을 즐기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세속의 잡다한 근심들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이만하면 우리나라 좋은 나라,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겠는가.
나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바닥을 잘못 디뎌 조금 비틀거렸다. 왼손으로 이한다 선생님 손을 잡고 걷던 정 보암 선생님께서 오른손으로 내 손을 잡아주셨다. 힘있고 따뜻한 손이었다. “감사합니다.” 꾸벅 절하며 내손에 힘이 들어가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손을 흔들며 걸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선생님의 시집 제목을 떠올리며 ‘오후 여덟 시, 다시 시작할 시간’ 하고 중얼거렸는데 다행히 선생님은 듣지 못하신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bay101 지역을 지나 조명을 받아서 파랗게 빛나는 요트가 정박해 있는 곳까지 가서 한참 머물다가 천천히 되돌아 왔다. 다른 방면으로 가셨던 선생님들도 제각기 다른 느낌 다른 감상을 안고 우리보다 늦게 돌아오셨다. 뒤에 들은 이야기로 어떤 이는 밤바다를 보면서 추억에 젖었다고 했고, 어떤 이는 배호의 ‘파도’를 운치 있게 불렀다고 했다.
이 지역에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해운대 바닷가의 추억이 있을 법 한데, 기쁨보다 슬픔에 가까운 나의 기억들도 찬란한 불빛에 묻혀 아름답게 승화되는 것 같았다.
이제 모든 여정이 끝났다. 김해로 가는 길은 눈감고도 갈 수 있는 우리의 활동무대가 아닌가. 지나온 하루 동안의 풍경들을 다시 떠올리며 의자에 몸을 맡기니 그 흔들림조차 편안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제 가을과 작별인사를 했으니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미진한 그 무엇이 남아있는 것을 느낀다. 그것들을 떨쳐내기 위해 과감하게 소멸로 뛰어드는 낙엽의 용기를 배워야 하리라.
밤 10시경에 집에 도착하니 마당에 수북이 가을이 죽어있다. 그 속에서 살아있는 물체가 바스락거리며 움직인다.
야옹! 우리 방글이 많이 기다렸구나.
현관문을 여니 기다리고 있던 찬바람이 인사를 한다. 이제 겨울이다.
첫댓글 기행기 3를 읽으면서 불빛에 반사된 해운대 밤바다의 화려했던 장관을 다시 떠올려 보았습니다. 차가 막혀 길거리에서 허비한 시간을 밤바다에다 풀어 놓았음 울선생님들에게 얼마나 재밌고 많은 추억거리가 생겼을까요? 좀 아쉬웠던 그날의 마음을 기행기를 읽으면서 잠시 위로 받았습니다. 다시 한 번 훌륭하신 작가! 이은정 선생님께 깊은 찬사를 보냅니다. 장문의 글에 박수 쳐드리며 내내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사진 양민주 시인 작품.
윤선생님 감사합니다. 잘 쓰나 못 쓰나 글을 마치고 나니 숙제를 끝낸것처럼 홀가분 합니다.
좋았던 기억을 생각하며 다가오는 겨울이 따스했으면 좋겠습니다.
추워지는 날씨에 건강 유의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