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고구려사 연구는 중국에 비해서 한국이 월등하게 앞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사를 전공으로 하는 박사학위 취득자가 단 2명(1명은 한국에서 학위 취득)이고 석사학위 취득자도 12명에 불과하다. 한국의 박사 32명과 석사 198명에 비교하면 비교도 안 되는 숫자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학위 취득자도 중국의 사회적 특성상 크게 활동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두 명의 박사는 모두 조선족이고, 석사 12명은 대부분 최근에 학위를 취득한 젊은 사람들이라 연구 성과도 많지 않고 중국 사학계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논문 6편 이상을 쓴 중국의 주요 고구려사 연구자들도 절반 정도는 이미 일선에서 물러난 학자들이고, 고구려 연구자들 가운데 동북공정에 직접 참여하는 학자들도 사실상 몇 명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에 고구려가 지난 10년동안 활동한 국제학술대회, 고구려 전문 학술지 「고구려연구」 같은 연구성과는 동북공정에서 주도하는 변강사지연구중심에서도 크게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에서는 수 백명의 학자들이 동북공정에 참가하는데 우리는 박사가 14명밖에 안 된다고 자조하고 두려움을 가져야 했는가? 사실 메스컴이나 국민들은 한중간의 고구려사 연구 성과를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는 전적으로 고대사나 고구려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책임이다.
<표> 한·중 양국의 고구려사 학위 취득 현황
사실 동북공정이 사회문제가 되고 한중역사전쟁으로까지 비화될 때 가장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바로 고대사나 고구려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다. 본론에서 보았지만 고구려사 왜곡문제는 이미 1993년 집안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크게 문제가 되었고 국내 신문에도 크게 보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공 학자들은 “한국의 열악한 연구 환경 …”을 핑계 삼아 이에 대한 반론 개발에 게을리 하였다.
그러나 사회에서 크게 이슈화가 되자 그들의 행동은 매우 민첩했다. 성명서를 발표하고 학술대회를 열면서 중국에 비해 우리 학계가 얼마나 연구자가 없는지를 열심히 강조하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단 한 번도 두 나라간의 고구려 연구의 성과를 제대로 평가한 적이 없었다. 마치 지금까지의 사보타지에 대한 면죄부를 받기 위한 거처럼 ‘중국은 많고 한국은 적다’는 발표를 계속했다. 그리고 그런 발표는 그대로 메스컴을 타고 국민에게 전달되어 “결국 중국에는 안 된다”는 패배의식을 심어 주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국가에서 100억을 내놓는다는 설이 나오자 그 연구비를 고대사가 아닌 다른 학자나 단체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고대사나 고구려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그 혜택을 입기 위해서는 우선 ‘고구려 연구는 되어 있지 않다’고 그간의 연구를 완전히 무시해야 했고, 여러 발표에서 새로 발족될 단체는 고구려사와 고대사 연구에 국한해야 하고, 어느 단체에 속하지 않는 독립단체여야 하고, 명칭은 ‘고구려’가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렇게 해서 발족한 것이 「고구려연구재단」이다. 물론 여기에는 국민들의 성화를 잠재울 수 있는 단체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교육인적자원부의 바람과 일치하였다. 즉, 학술연구는 물론 시민단체, 재야단체의 모든 요구를 다 잠재울 수 있는 이상한 학술단체를 만들어 낸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학술단체가 이런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으며 이런 단체가 어떻게 순수 학술단체가 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당시 상태로 대안은 없었을까? 말을 바꾸어 다음과 같이 상황을 보면 어떨까? “우리나라도 고구려 연구자가 많고 연구 결과도 탄탄합니다. 다만 중국은 고구려사가 중국 것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귀속문제'에 중점을 둔 논문이 많은 반면, 한국에서 순수 학술적인 연구가 중국의 몇 배 이상 많습니다. 한국의 학자들은 고구려사가 당연히 한국사이기 때문에 고구려사가 우리 것이라는 연구를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지금까지의 연구역량과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고구려의 정체성을 연구한다면 쉽게 중국의 논리를 누를 수 있습니다. 다만 중국은 사회과학원이라는 거대 국가 연구기관에서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그에 준하는 막강한 연구재단을 세워 이에 맞서야 할 것입니다.”
이런 발상을 가지고 연구기관을 세웠다면 지금까지의 연구성과나 연구자들을 모두 포옹하고 힘을 합하여 1, 2년이면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부분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를 부정하며 출발한 단체에서는 그 기조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기존 연구 단체나 성과를 인정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장래를 위해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이와 같은 현실을 직시하며 앞으로 올바른 고구려사 발전을 위해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1. 앞으로 중국의 역사왜곡을 막기 위해서는 중국보다 학술적으로 더 앞선 기존 연구를 적극 활용하고 기존 연구단체나 연구인력을 적극 후원하여 연구를 도와야 한다.
2.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출연기관이 아닌 순수 민간학술단체의 적극적 육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고구려의 연구 인력이 많지 않는 현실에서는 고구려연구회를 중심으로 연구자들이 힘을 합해야 하고, 국가나 각종 사회단체에서도 재정적 후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고구려 전공 박사학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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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이런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러 사실을 알리고 우리나라도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이끌어내야겠죠 정게니 하는 말이지만 이런 사실을 제시하면서 동북공정에 우리모두 힘을 내봅시다라고 해야 진정한 정치인입니다. 친북이니 좌파니 말하고 그리고 친북이니 좌파니 색깔 선전하는 기자나 언론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한국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간질 뒤에 올 불로소득을 노리는 것이죠 설사 이 자료가 이제는 사용할 수 없는 자료라 할 지라도 이 자료를 바탕으로 2004년 당시엔 나았으니 지금도 할 수 있다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같은 주제를 논의로 하는데 이 정도는 봐줄 수 있는거 아닙니까? 오히려 자료 올려 준다고 하면서 두편 올려주고 나머지는 6시간 기다려라 하는게 더 어이 없는거 같은데요. 저도 이 글이 앞서 두글과는 상관이 없었다면 대신 올려드리진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누가 편협하게 보일 까봐 걱정스럽습니다
제 글은 안보시는 겁니까? 위에 시작을 보면 맺음말 부터 시작하죠? 원래 하나의 글을 스크롤이 길어질것을 염려하여 나눈것 처럼 보이는데요? 이 정도도 양해하지 못하는겁니까? 현봉님의 실수라면 붙여서 올려도 되는걸 굳이 나눠 올린게 문제라고 할 수있겠네요. 그리고 같은 사안에 대해 토론중이었고 전 계속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올려드린 겁니다. 나중에 님도 토론하다가 근거제시하는데 게시물 넘어가면 대신 올려드리지요. 게시물 제한 넘었으니 나중에 올려줄게 하고 피하는거 보단 나으니
현봉님은 언제까지는 이런문제로 정부만 옹호만 해서는 안될겁니다.그리고 그것을 이간질이라고 매도하는 것도 계속해서는 안될겁니다. 현봉씨 역사관련해서 안목을 키울려면...한국고대사에 왜곡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는 학자들의 공청회에 참가를 해보시던가...아니면 한번씩 국회TV를 보면 그 공청회를 녹화해서 방송해줍니다. 그런 것을 구준히 보세요. 그러면 현봉씨가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실겁니다.그리고 현정부의 대응이 얼마나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는지 느끼게 될겁니다. 그리고 신문기사를 보면 분노만 일어날 뿐입니다.
음... 고구려 역사 연구가 많이 된것은 알고 잇자먼 솔직히 말 그대로 고구려 역사에 관한 연구가 많은 것이지... 고구려가 우리 역사임을 연구가 적은거 같은데요? 그리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사학자의 인식상 한국보다는 중국측에서 더 많은 학자가 나올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단지 사학자의 수가 이점이 될 수 있을지언정 해결해 주는건 아니구요
풍 운 아님 전 정부가 무조건 잘했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동북공정에 대해서 손놓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구려 연구가 이렇게 활발해지고 있는데 현실패배주의자처럼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지속적으로 신문을 클릭하고 자료를 모이는 사람이 전체 국민의 몇 %나 됩니까? 그냥 관심을 가지고 가끔 자료를 보는 수준 정도가 될 것입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일본에 치우쳐서 연구를 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 학자들이 그 글을 보고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현봉님 하여간 저는 학자는 아닙니다.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역사학자들의 공개토론회가 3번을 보면서 느끼는 것과 ...항상 인터넷만 켜면 중국의 역사침탈에 대한 기사를 빠짐없이 검색하고 읽어보고 해서 느끼는 점을 쓴 겁니다. 님이 개인적으로 저에게 자료를 요청을 한다면...솔직히 저는 근거를 댈 수 없습니다. 제가 자료를 가진 학자도 아니고...기껏해야 신문에 뜬 자료밖에 없겠지요.하지만 이것은 알아두십시오. 제가 개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싫다고 무조건 그런 것이 아니라...여러가지 정보를 취합해서 지금 정부가 대응을 하는 것을 보면 분노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는 걸요.
풍운아님// 성의있는 답변 감사드립니다. 사실 오랜만이네요. ^^ 전 정부를 전부 옹호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저의 주장이 현실패배에 구걸외교 옹호라고 하신 것에 반론을 단 것 뿐입니다. 독도왜곡 동북공정왜곡 대응에 함께한다면 좋은 일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의견이 다르다고 결론이 났으니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간질이라고 표현한 것은 님 주장이 아니라 친중정부 좌익이라고 외치는 자들한테 얘기하는 것입니다. 오해마시길 바랍니다. 아직 저녁을 안 드셨다면 맛있게 드시구요... 수고하셨습니다. 정책토론회나 공청회는 기회가 있다면 꼭 한번 가보겠습니다.
첫댓글 이런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러 사실을 알리고 우리나라도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이끌어내야겠죠 정게니 하는 말이지만 이런 사실을 제시하면서 동북공정에 우리모두 힘을 내봅시다라고 해야 진정한 정치인입니다. 친북이니 좌파니 말하고 그리고 친북이니 좌파니 색깔 선전하는 기자나 언론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한국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간질 뒤에 올 불로소득을 노리는 것이죠 설사 이 자료가 이제는 사용할 수 없는 자료라 할 지라도 이 자료를 바탕으로 2004년 당시엔 나았으니 지금도 할 수 있다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실질적이 대안도 없으면서 실질적으로 한국문제를 해결할 생각도 없으면서 그냥 정부만 비판해서 비판하는 사람이 국민을 위하는 것처럼 외형만 만들어낸다면 그건 다시한번 말하지만 정치꾼인 뿐입니다. 좌익?ㅋㅋㅋ 그게 얼마나 코미디 같고 국민을 이간질하는 말입니까?
이런게 편법이죠.. 실제로 자기는 하루 3개 다 올린다음에 다른 사람한테 대신 올려달라 하면 실질적으로 게시글 제한하는 규정이 의미가 없는데 말이죠... 6시간 지나면 자기이름으로 올릴수도 있는데 말이죠... 에이그...
같은 주제를 논의로 하는데 이 정도는 봐줄 수 있는거 아닙니까? 오히려 자료 올려 준다고 하면서 두편 올려주고 나머지는 6시간 기다려라 하는게 더 어이 없는거 같은데요. 저도 이 글이 앞서 두글과는 상관이 없었다면 대신 올려드리진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누가 편협하게 보일 까봐 걱정스럽습니다
다른 회원들도 연속글 올릴때 다른 사람 도움 받아도 되겠군요?? 규칙은 평등하게 적용되야 하니까.. 푸하하..
제 글은 안보시는 겁니까? 위에 시작을 보면 맺음말 부터 시작하죠? 원래 하나의 글을 스크롤이 길어질것을 염려하여 나눈것 처럼 보이는데요? 이 정도도 양해하지 못하는겁니까? 현봉님의 실수라면 붙여서 올려도 되는걸 굳이 나눠 올린게 문제라고 할 수있겠네요. 그리고 같은 사안에 대해 토론중이었고 전 계속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올려드린 겁니다. 나중에 님도 토론하다가 근거제시하는데 게시물 넘어가면 대신 올려드리지요. 게시물 제한 넘었으니 나중에 올려줄게 하고 피하는거 보단 나으니
형식논리 빙자해서 별걸 다 시비군요.
정부도 지원잘하고 있고 연구도 우리가 앞서고 있는데 상황은 좋아지지 않으니.. 이런글은 설득력이 전혀 없죠...
노짜모님의 단순 펌질한 글보다는 1000배 설득력 있는데요? 설득력을 떠나서도 지적수준의 차이를 많이 느끼지 않나요?
현봉님은 언제까지는 이런문제로 정부만 옹호만 해서는 안될겁니다.그리고 그것을 이간질이라고 매도하는 것도 계속해서는 안될겁니다. 현봉씨 역사관련해서 안목을 키울려면...한국고대사에 왜곡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는 학자들의 공청회에 참가를 해보시던가...아니면 한번씩 국회TV를 보면 그 공청회를 녹화해서 방송해줍니다. 그런 것을 구준히 보세요. 그러면 현봉씨가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실겁니다.그리고 현정부의 대응이 얼마나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는지 느끼게 될겁니다. 그리고 신문기사를 보면 분노만 일어날 뿐입니다.
저도 2004년에 고구려연구회에서 발표한 이자료를 보고 한동안은 조금 마음에 안심을 한 적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그시점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겁니다.
음... 고구려 역사 연구가 많이 된것은 알고 잇자먼 솔직히 말 그대로 고구려 역사에 관한 연구가 많은 것이지... 고구려가 우리 역사임을 연구가 적은거 같은데요? 그리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사학자의 인식상 한국보다는 중국측에서 더 많은 학자가 나올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단지 사학자의 수가 이점이 될 수 있을지언정 해결해 주는건 아니구요
또 지금의 영토상으로는 효율적인 연구또한 힘들겠죠 중국은 마음대로 연구할 수 있지만 우린 그러하지 못하죠. 맘먹고 유물 조작하려고 하면 못할것도 없을걸요? 현재 중국에 있는 고구려 유물들 방치되어있는거만 봐도...
풍 운 아님 전 정부가 무조건 잘했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동북공정에 대해서 손놓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구려 연구가 이렇게 활발해지고 있는데 현실패배주의자처럼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지속적으로 신문을 클릭하고 자료를 모이는 사람이 전체 국민의 몇 %나 됩니까? 그냥 관심을 가지고 가끔 자료를 보는 수준 정도가 될 것입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일본에 치우쳐서 연구를 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 학자들이 그 글을 보고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고구려사문제는 친중 현정부에서는 그냥 포기하세요... 레이건 말처럼.. '뭐 달라진게 있나요' 많이 달라졌다는 사람이 있다면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그냥 무시해야죠..
현봉님 하여간 저는 학자는 아닙니다.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역사학자들의 공개토론회가 3번을 보면서 느끼는 것과 ...항상 인터넷만 켜면 중국의 역사침탈에 대한 기사를 빠짐없이 검색하고 읽어보고 해서 느끼는 점을 쓴 겁니다. 님이 개인적으로 저에게 자료를 요청을 한다면...솔직히 저는 근거를 댈 수 없습니다. 제가 자료를 가진 학자도 아니고...기껏해야 신문에 뜬 자료밖에 없겠지요.하지만 이것은 알아두십시오. 제가 개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싫다고 무조건 그런 것이 아니라...여러가지 정보를 취합해서 지금 정부가 대응을 하는 것을 보면 분노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는 걸요.
풍운아님// 성의있는 답변 감사드립니다. 사실 오랜만이네요. ^^ 전 정부를 전부 옹호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저의 주장이 현실패배에 구걸외교 옹호라고 하신 것에 반론을 단 것 뿐입니다. 독도왜곡 동북공정왜곡 대응에 함께한다면 좋은 일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의견이 다르다고 결론이 났으니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간질이라고 표현한 것은 님 주장이 아니라 친중정부 좌익이라고 외치는 자들한테 얘기하는 것입니다. 오해마시길 바랍니다. 아직 저녁을 안 드셨다면 맛있게 드시구요... 수고하셨습니다. 정책토론회나 공청회는 기회가 있다면 꼭 한번 가보겠습니다.
두분의 멋진 토론 감사합니다. 의견의 접근은 이루어 지지 않았지만 지향점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토론은 바로 이렇게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토론중 주제파악도 못한 찌질이 하나가 잡음을 내기도 했군요. 앞으로 멋진 토론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