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Day
6.09 木 흐린 뒤 오후 늦게 비
산방산게스트하우스 – 산방산 용머리 해안 – 안덕계곡 – 추사 유배길 – 대평리 – 중문 관광단지 – 서귀포 – 외돌개 – 와하하 게스트하우스
09:25 - 20:29
여행시간: 11:04, 주행시간 4:47
주행거리: 65.09km, 누적거리: 1,240.62km
06:17 기상
아침에 눈뜨자 마자 창 밖을 보니 잔뜩 찌푸린 하늘이다. 정말 비가 오려나 보다. 일찍 출발하기 위해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먹으러 내려간다. 3,000원에 토스트, 샐러드, 계란 후라이와 우유 한 컵을 준다. 토스트는 슈퍼에서 파는 싸구려 식빵이고,, 샐러드는 시어서 맛이 살짝 갔다. 젠장... 그러면 그렇지... 결국 그 샐러드 때문에 종일 설사를 4번이나 했다.
머 하나 맘에 드는 것이 없어 인사도 않고 바로 나왔다. 09:25분. 출발. 다시 한번 용머리 해안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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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에서 3,000원 받고 제공한 아침 식사
샐러드가 맛이 갔다.
덕분에 죙일 설사를 하고 다녔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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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쪽 2층이 내 자리였다
산방산 용머리 해안
오늘도 출입금지다. 자세히 보니 저쪽에 낚시꾼이 보이긴 한다. 그냥 들어가도 잡지는 않을 것 같은데... 사람들 눈이 있어서 그냥 참았다. 설사 때문에 화장실 다녀오고 10:00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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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에 파묻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산방산
오늘도 높은 파고로 인해 발걸음을 돌려야만 한다
안덕계곡 ~ 추사 유배길
10:27분. 드라마 ‘추노’에서 보았던 멋진 장소를 보기 위해 찾아간 안덕계곡에 도착.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록수림이란다. 안전사고 위험이 있어 출입금지라지만 으슥하고 사람이 없어 자전거를 세워 두고 조용히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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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원시림 분위기가 느껴지는 안덕계곡
조용하고 날씨까지 음침하니 정말 깊은 정글이나 숲 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한 날씨라 습기까지 가득하니 제대로 분위기가 잡히는 게 딱 이다. 아래로 내려가니 정말 무슨 원시림에 온 듯한 멋진 장관이 펼쳐진다. 한 바퀴 돌아 올라가니 남덕사가 나온다. 생각보단 계곡이 짧아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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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분위기는 더욱 음침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또 ‘추사 유배길’이라는 길이 안쪽으로 계속 이어진다. 일단 다시 자전거로 돌아가서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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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어보는 추사유배길
계곡을 따라 계속 산책길이 이어지는 데 대부분의 제주 올레길은 해안 쪽으로 나 있는 데 비해 이 ‘추사 유배길’은 계곡을 따라 있어서 색다른 묘미가 느껴진다. 한참 길을 따라 가다 보니 중문으로 향하는 일주도로를 만난다. 처음 제주 여행 때 지나갔던 대평리를 보고 싶어 다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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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스 또한 올레길 못지 않게 좋다~
청송 주산지가 떠오른다
대평리 ~ 하예하동 : 상현이와 첫 통화
대평리는 처음 제주도 자전거 여행 때 지나갔던 길인데 황금빛 오후 햇살이 비치는 정겨운 제주 시골마을의 모습이 너무 멋져서 기억이 강하게 남았었다. 다시 그 모습을 보고 사진에 담고 싶어 찾아갔는데 아쉽게도 하늘은 너무 흐리고 마을은 너무 발전(?)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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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왔을 땐 이 풍경이 그렇게 멋있었는데...
옛추억이라곤 하나도 느낄 수 없고 아쉬운 마음만 남긴 채 힘겹게 업힐을 오르고 있는데, 상현이게서 전화가 온다. 알고 지낸 진 7년이나 됐지만 메신져로만 몇 번 얘기를 나누어 봤을 뿐, 전화 통화는 한 번도 한 적 없는 아이다. 당황스러워서 전화를 받았는데 이 아이... 전혀 서슴없이 바로 어제도 만났었던 친구처럼 날 대하며 편하게 얘길 한다. 이런 저런 얘기 하고 여행 얘기도 하다가 마지막 돌아가는 날 파주에서 만나기로 했다. 7년 만에 만나는 것이다. 7년 동안 한번도 만나볼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갑작스럽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약속을 잡게 되었다. 이런 만남... 당황스러우면서도 재밌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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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여기서 너무 지쳐 도저히 업힐을 올라가질 못해
은희랑 여기서 버스를 타고서 갔었지...
중문 관광단지
12:40분. 중문 관광단지 도착. 자전거 대여점에 전조등을 보여 줬더니 처음 본다는 듯한 말투로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역시는 역시 역시다.
점심으로 순대국을 시켰는데 맛이 얼큰한 게 제법 좋다. 반주로 딱 소주 반병만 마시려고 하다가 정신차리고 보니 한 병을 다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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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국이 맛있어서 반주를 한다는 게 한 병을 꿀꺽?!
밖에 나오니 온 몸이 활활~ 타오른다. 정신은 멀쩡했지만 속에서 불을 떼듯 후끈후끈 달아올라 이대로는 도저히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잠시 산책 좀 하려고 천제연 폭포로 향한다.
아... 코스 선택을 잘못했다. 돌계단 길을 오르내리니 더 열이 오른다. 졸음까지 밀려 온다. 제대로 관광도 하지 못한 채 잽싸게 한 바퀴 돌고 빠져 나와 벤치에 누워 잠시 쉬었더니 좀 나아진다. 여기에선 야영할 곳도 게스트하우스도 없기 때문에 빨리 이 곳을 벗어나야 한다. 14:50분 출발. 외돌개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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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제연 폭포 - 요번엔 제대로 사진을 찍었다
서귀포
서귀포 이마트 도착. 혹시라도 이 곳엔 자전거용품을 팔지 않을까 가봤더니만 역시 없다. 초코바 4봉지와 달아오르는 몸을 식히기 위해 시원한 캔맥주 하나를 사가지고 나와 마셨더니 그제서야 몸이 좀 나아졌다. 16:15분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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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 오르는 몸을 식히기 위해 차가운 맥주를 벌컥벌컥!!
외돌개 – 올레길 7코스
16:28분 외돌개 도착. 달아오르는 몸은 좀 식었지만 살짝 알딸딸한 정신으로 자전거를 탔더니 급한 경사의 다운힐에서 브레이크도 안 잡고 마구 내달린다. 지대로 미친 짓을 했다;;;
흐린 날씨에 점점 자욱하게 안개가 끼는 외돌개는 정말 환상적인 모습이다. 검푸른 바다 빛깔 또한 예술이다. 정말 외돌개는 언제 보더라도 제주의 가장 멋진 곳 중에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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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돌개
이번엔 외돌개 쪽 뿐만 아니라 올레길 7코스 쪽으로도 가 본다. 바닷가까지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있고, 일제시대 배를 숨길 수 있도록 파 놓은 굴도 볼 수 있어 또 다른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코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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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때 쪽발이 놈들이 파 놓은 굴이란다
썩을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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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목욕탕?? ㅋㅋㅋ
다시 위로 올라가 외돌개 반대편에 있는 절벽 언덕에 앉아 담배를 핀다. 슬슬 술 기운도 사라지고 사람 한 명 없이 혼자 이 멋진 장관을 보고 있으려니 안개보다도 더 진한 외로움이 내 몸을 감싸온다. 또 다시 우울해지기 전에 몸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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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는 잠깐일 뿐. 이제 그 안개 때문에 내 목숨이 위태로워 지기 시작한다;;
안개 속의 주행 – 가장 끔찍했던 기억
17:50분 출발. 안개가 너무 진해져 앞이 잘 보이질 않는다. 큰일이다. 여기서 와하하 게스트하우스까지는 30km가 넘는다. 이대로라면 해가 지기도 전에 금새 어두워질 텐데 전조등이 없이 달리기엔 무리다. 맘이 급해져서 이 때부터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서귀포 시내로 들어가 자전거 매장을 찾아가 봤지만 역시 대답은 같다. 전파상을 찾아가도 마찬가지다. 안개보다 더 짙은 어둠이 두 눈 앞에 내려온다;;; 이 상황에서 비까지 내리기 시작한다. 오... 하늘이시여... 어찌 내게 이런 시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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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에 비까지 내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눈뜬 장님이 되 버린 채 자전거를 타는데...;;
18:25분. 급한 대로 헤드랜턴을 쓰고 출발. 당연하게도 앞을 보기엔 아무 짝에도 쓸모 없지만 혹시라도 마주 오는 차량에게 피아식별이 되지 않을까 싶어 썼다. 정말 살기 위해서 미친 듯이 내달린다. 그나마 일주도로를 달리고, 교통차량도 거의 없어 자전거 도로가 아닌 차도로 막 달린다. 속도계는 없지만 아마 평속 30km는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다리가 터지라고 달린다. 가뜩이나 안개 때문에 앞이 잘 안 보이는 데 안경에 비까지 맺혀서 정말 거의 눈 가리고 달리는 셈이다. 결국 삼덕교차로에서 신호등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질주하다 왼편에서 직진으로 달리는 차에 치일 뻔한걸 간신히 피하는 아찔한 일이 벌어진다. 그 차에 치였다면 아마 난 그대로 즉사했을 지도 모른다.
너무 놀라서 근처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곤 19:36분 출발.
이젠 완전히 어두워져서 정말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가로등은 무용지물. 그나마 헤드랜턴이 바로 앞 땅까진 비춰준다. 역주행해서 마주 오는 차에 치일 리는 없을 테니 땅만 보며 천천히 달린다.
가마교를 건너고 드디어 민속해안도로로 진입. 일주도로를 벗어나니 정말 암흑 그 자체다. 가로등이 띄엄띄엄 있긴 하지만 바로 앞만 비춰줄 뿐 조금만 벗어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길가에 집이나 공장에서 비치는 불 빛만이 위안이 되어 준다. 그냥 지금 이 분위기를 본다면 정말 영화 속의 한 장면이지만 나에겐 실제로 벌어진 공포영화이다. 내가 그 공포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하다. 일단 와하하 게스트하우스에선 식사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슈퍼에서 라면과 술을 사고 출발. 가슴 졸이며 최대한 천천히 달려 20:29분에 드디어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다. 감격하여 환호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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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와하하 게스트하우스 도착!
와하하 게스트하우스
TV라던지 각종 매스 미디어를 통해 익히 많이 접하여 익숙한 와하하 게스트하우스. 이미 안엔 많은 게스트들이 있었다. 딱 봐도 분위기는 산방산보다 훨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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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까지 비가 온다고 하여 이틀 치 숙박비를 내고선 짐 정리 후 샤워하러 밖에 나와 담배를 핀다. 제 정신이 돌아온 뒤에 담배를 피며 천천히 보니 지금 이 곳의 분위기가 너무도 멋지다. 자욱이 안개 낀 밤하늘과 밤바다, 철썩이는 파도소리, 진한 바다 내음... 처음 느껴 보는 제주도의 또 다른 모습이다.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면서 저녁을 먹은 후 11:35분에 잠자리에 들었다. 정말 완전히 골아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