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9.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13.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4.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15.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16.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17.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18.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19.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몬 1: 8-19)
♥† 내 앞으로 계산하라 †♥
<좋은 후원자를 가진 복 >
미국에서 신대원을 다닐 때 미국인 학생들을 보면 가끔 연민이 생겼다. 미국에서는 만 18세가 넘으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니까 대학에 진학하면 대부분 집을 떠나 기숙사에 들어간다. 그리고 의식주와 학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허드렛일도 한다. 그런 자립적인 태도가 좋은 것이지만 한국 문화에 젖은 저에게는 안쓰럽게 보였다. 고학으로 자기 길을 개척하는 것도 좋지만 부모의 든든한 후원이 있는 것도 좋다.
미국 신대원 시절에 비교적 가까이 지낸 5명의 친구가 있었다. 첫째, 팀 스티만(Tim Stiemann)은 필자의 첫 번째 룸메이트였다. 처음에 그가 저의 룸메이트가 되었다고 하자 주위에서 많이 축하해주었다. 그는 나약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신실한 학생이었고 매일 아침 한 시간 이상 침대를 붙잡고 무릎 꿇고 기도했다. 그의 아버지는 목회자였는데 집에 TV도 없다고 했다. 그는 경건하면서도 마음도 따뜻한 천사 같은 친구였다.
둘째, 에릭 슈미트(Eric Shiemidt)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대학원에 들어와 필자보다 나이가 5살 적었지만 친구처럼 지냈다. 그는 키가 아주 컸고 대학교와 대학원을 통 털어 최고 미남으로 많은 여학생들이 그와 데이트를 하는 것이 소원이란 얘기도 들었다. 그래도 거만하지 않았고 짓궂은 장난을 잘했고 필자의 깜짝 생일 파티도 열어주며 많이 즐겁게 해 주었다.
셋째, 타드 바이어(Todd Byer)는 에릭의 룸메이트로서 넉넉한 웃음을 가진 친구였다. 젊은 나이에 콧수염을 길러서 처음에는 보기 어색했지만 전체 인상은 매우 좋았고 특히 눈빛과 언어가 따뜻한 친구였다. 그런데 공부에는 별로 흥미가 없어 시험 성적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자존심상해 하지 않고 오히려 필자를 많이 격려해 주어서 그를 만나면 포근한 느낌을 받았다.
넷째, 케일럽 냅(Caleb Knapp)은 내성적이고 조용한 친구로서 혼자 외롭게 지낼 때가 많았다. 당시 필자가 기거하던 기숙사 4층에는 필자 외에 한국 학생이 한 명 더 있었는데 우리 둘이 그의 외로움을 덜어주려고 무엇을 하자고 하면 그는 거의 거절하는 일이 없었다. 약간 위축된 상태로 지내는 것만 빼면 그는 매우 순수하고 착한 친구였다.
다섯째, 짐 턴불(Jim Turnbull)은 바로 옆방 친구로서 필자가 어려울 때 많은 도움을 주었다. 1990년에 600불을 주고 하드디스크가 없는 랩탑 컴퓨터를 샀는데 원했던 한글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없었다. 컴퓨터 플라피 디스크 용량이 한글 프로그램의 용량보다 작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유학시절에 거금 600불을 주고 산 제품을 쓰지 못하게 되자 마음이 크게 상했다.
그때 짐이 다가와 컴퓨터를 산 날 밤부터 자신의 고성능 컴퓨터로 한글 프로그램의 용량을 압축시켰다. 그 일은 컴퓨터 도사였던 그에게도 쉽지 않았다. 그가 전혀 한글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때 필자와 함께 한글 구조를 익히면서 며칠간 고생한 끝에 한글 프로그램 용량을 플라피 디스크 하나로 압축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디스크를 넣고 필자의 컴퓨터에 한글 프로그램이 뜨는 것을 본 순간 너무 고마워서 목이메일 정도였다.
당시에 그를 통해 부모의 넉넉한 후원을 받고 자란 자녀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했다. 그는 아버지가 코카콜라 회사의 부회장이어서 잘 살았지만 교만하지 않고 다정다감해서 그를 볼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든든한 후원이 인생에서 마이너스만은 아니구나.” 넉넉한 부모 밑에서 고생을 모르고 자라면 사람에 따라 나약해지거나 남을 무시하는 태도가 생길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남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태도도 배양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사람이 스스로 힘써 자기 지경을 넓혀 나가는 것도 좋지만 든든한 부모의 후원으로 마음의 풍요를 키우는 것도 좋다. 복된 삶을 사는 데 든든한 후원자는 큰 힘이 된다. 지금 그런 후원자가 없다고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이 가장 든든한 후원주이시기 때문이다. 든든한 후원 주이신 하나님을 꼭 붙들면 때가 되어 하나님이 든든한 후원자도 만나게 해 주신다. 겸손한 믿음을 통해 얻는 든든한 후원자와 든든한 배경은 인생의 위대한 자산이다.
2018년에 창설된 C&MA 한국 총회는 현재 회원 목회자가 100명도 안 되는 작은 총회지만 금년 1월에 몇 천 교회가 소속된 한국의 두 정통 교단과 동역 교단으로서 목회자 자격을 서로 똑같이 인정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작은 교단이 무시받지 않고 존중받는 이유는 미국 C&MA 총회와 세계 70여개 C&MA 연합체인 AWF가 배경으로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엄마 곰이 뒤에서 버티고 있으니까 야수들이 새끼 곰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과 유사한 이치다.
남을 의지하지 않고 홀로 서려고 하면서도 든든한 배경을 사모하라. 배경을 등에 업고 교만하게 위세를 부리려는 마음만 버리면 된다. 순수하게 헌신하면 좋은 배경도 저절로 생긴다. 배경이 없다고 남을 질투하지 말고 배경이 저절로 생기도록 준비하라. 남이 나를 무시하지 않도록 나를 잘 준비시키면서 좋은 후원자와 배경도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빌레몬서에는 나오는 오네시모는 도망친 노예였지만 바울을 만나 변화된 후 전승에 의하면 나중에 에베소 교회의 주교가 된다. 사도 바울이 배경이 되어 줌으로 노예가 주교가 된 것이다.
현재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시작은 좋지 않았어도 끝은 좋게 되는 놀라운 인생 승진을 기대하며 살라. 비천한 상황에 처해도 낙심하지 말라. 누군가 나를 떠나도 너무 낙심하지 말라. 나중에 그가 더 멋진 모습으로 돌아올 수도 있고 더 좋은 새로운 만남이 주어질 수도 있다. 나의 신실한 믿음과 섬김으로 언젠가 바울처럼 좋은 후원자를 만나면 극적인 인생 반전의 역사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계산하지 말고 부탁하라 >
본문에는 사도 바울이 오네시모의 종의 멍에를 벗겨주라고 신실한 동역후원자였던 빌레몬에게 부탁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 부탁에 대해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빌레몬에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었지만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했다(8-9절). 바울은 성도의 삶의 규범을 정해서 가르치고 다스리는 사도적인 권위가 있었고 나이도 많았지만 권위를 앞세워 명령하지 않고 사랑으로 부탁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탁인가?
어느 날 복음을 전파하다가 여러 번 감옥에 갇혔던 사도 바울이 나이가 많은 상태에서 예수님을 전파하다가 또 갇혔다(9절). 당시 에바브라의 후임으로 골로새 교회를 담임하던 아킵보의 아버지였던 빌레몬도 나이가 많았지만 사도 바울은 좀 더 나이가 많았다. 바울이 자기가 나이가 많고 예수님을 위해 갇힌 사실을 굳이 언급한 이유는 자신의 부탁이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힌 중에 낳은 영적인 아들 오네시모를 형제처럼 받아들여 달라고 빌레몬에게 청탁이 아닌 부탁을 했다,(10절).
부탁과 청탁의 차이는 욕심 유무로 파악된다. 욕심이 내포된 계산적인 불의한 청탁은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 어떤 일을 부탁할 때는 계산적인 마음을 버리라. 욕심을 버릴 때 하나님이 역사하고 놀라운 평안도 깃든다. 왜 사람이 고민과 불의와 불안에 빠지는가? 욕심이 핵심 원인이다. 참된 평안과 평화의 복을 누리려면 계산적인 욕심을 잘 버리라.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강한 척 했지만 속마음은 강하지 못해서 남의 공격으로 상처 입는 것이 두렵고 남의 원망과 불평을 듣는 대상이 되기 싫어 성공 욕심을 버렸다. 그는 높은 자리에서 상처가 많은 삶과 낮은 자리에서 상처가 없는 삶 중 후자의 삶을 더 선호했다. 그래서 열심히 땀을 흘려서 높은 자리를 차지해도 마음은 늘 낮은 데 머물게 하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고 비교적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왜 바울의 부탁은 청탁이 아닌가? 자기 욕심이 없이 순수하게 신실한 오네시모에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동역 제자인 빌레몬에게 부탁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전에는 무익했어도 이제는 자신과 빌레몬에게 유익하므로 그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낸다고 했다(11-12절). 오네시모는 예수님을 믿고 유익한 존재로 변화되었다. 그처럼 예수님을 믿고 어디에 가든지 유익한 존재가 되라.
<과정과 질서를 존중하라 >
왜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냈는가? 도망친 종의 멍에를 벗겨주고 자기 심복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오네시모를 보내어 빌레몬에게 머물러 있게 하여 복음을 위하여 갇힌 자신을 빌레몬 대신 섬기게 하려고 했다(13절). 그때 바울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종처럼 대하지 않고 사랑받는 형제처럼 대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그의 부탁을 수용하는 것이 전적으로 빌레몬의 의지에 달렸음을 알고 자기 말이 사도권을 내세운 명령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본문 14절을 보라.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오네시모가 자기를 섬기며 하나님의 일을 하기를 원했지만 먼저 오네시모의 주인인 빌레몬의 자발적인 동의를 구했다. 그처럼 아무리 좋은 일도 강요해서 하거나 불의하게 하지 말라. 절차와 과정과 질서와 체계도 중요하다.
왜 공산국가가 한때 세계의 거의 절반에 달했다가 한 세기도 되지 않아 거의 사라졌는가? 지금 남은 공산국가들도 공산적인 사회 시스템이 급격히 퇴조되고 있다. 왜 그런가? 정의를 내세우고 이루는 과정에서 불의와 폭력도 용납하기 때문이다. 결과적 정의만큼 절차적 정의도 중요하다. 정의로운 결과를 만들겠다고 과정에서 불의를 동원하면 안 된다. 인간을 위한 사회 혁명을 한다면서 바탕에 인간미가 없다면 그 혁명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정의를 추구하는데 정이 없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정은 있는데 정의가 없다. 그 두 가지가 다 삼가야 할 태도다. 바울은 정을 내세워 오네시모에게 자유를 주려고 하면서도 빌레몬이 자발적으로 자기 뜻을 따르게 하려고 결정 당사자인 빌레몬의 허락을 겸손하게 구함으로 절차적인 정의도 지키려고 했다. 그처럼 절차와 과정과 질서를 중시하는 겸손한 태도가 리더에게도 있어야 하고 팔로워에게도 있어야 한다.
사랑이 없는 공의는 불완전한 공의이고 공의가 없는 사랑은 불완전한 사랑이다. 정과 정의를 겸비하라. 착한 삶이 의로운 삶을 앞설 수는 없다. 의를 바탕으로 착하게 살라. 아무 것이나 무조건 열린 마음으로 따르고 신봉하지 말라. 변화도 필요하지만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것도 필요하다. 무조건 옛날 방식을 고수하면 꼰대가 되지만 꼭 지켜야 할 것을 힘써 지키면 꼰대가 되기보다 닮고 싶은 어르신이 된다. 질서와 과정도 존중하라. 그런 존중심이 있었기에 바울은 빌레몬에게 마음대로 명령하지 않고 겸손히 부탁했다.
<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라 >
바울은 빌레몬에게 부탁할 때 그의 마음을 열려고 ‘오네시모가 도망친 것’을 ‘잠시 떠나게 된 것’이라고 죄를 희석시켜 묘사했고 오네시모가 떠나게 된 것이 오히려 영원히 빌레몬 곁에 두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역설적으로 말했다(15절). 즉 오네시모가 도망친 일도 하나님의 섭리 하에 벌어진 일로 묘사함으로 오네시모에 대한 빌레몬의 감정을 가라앉혔고 잘못된 것도 선으로 승화시키는 하나님의 섭리로 빌레몬의 시선을 돌리게 했다.
그런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고 이후로는 오네시모를 종처럼 대하기보다 종 이상의 사랑 받는 형제로 대할 것을 권고했다(16절). 바울의 편지를 받고 빌레몬은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면서 그 권고를 넉넉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처럼 나쁜 상황도 내게 있어야 했기에 하나님의 선한 섭리로 이뤄졌다고 생각하고 감사하며 그 상황을 받아들이라. 고통을 잘 승화시키면 깨달음도 깊어지고 앞날의 축복도 더해지고 천국 상급도 커진다.
자녀로 인해 속상하면 그때는 고통스럽지만 그런 체험을 통해 비로소 내가 과거에 부모의 속을 얼마나 상하게 했는지 그리고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새삼 깨닫는다. 그런 깨달음을 통해 더 철든 인생을 만들려고 하나님은 종종 고통도 허락하신다. 또한 자녀로 인한 고통의 체험을 통해 내가 비뚤어진 길로 갔을 때 하나님도 얼마나 아파하셨을까를 생각하며 힘들어도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사람이 진짜 성도다.
살다 보면 어떤 사람 때문에 내 인생길이 막히기도 한다. 그때도 믿음과 감사를 잃지 않으면 나중에 보면 그 상황이 더욱 잘 된 결과를 낳는다. 어느 날 여러 사람이 섬 여행을 떠났는데 동행자 중 한 명이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오지 않아 나머지 일행도 다 배를 타지 못할 때가 있다. 그때 주민등록증을 가져오지 않은 사람 때문에 속상해하기보다 그것도 감사하며 다른 지역으로 여행 일정을 바꿔 진행하면 의외로 더 좋은 여행을 즐길 때도 많다.
남 때문에 내 길이 막혀도 그를 욕하거나 성내지 않고 감사하면 신기하게 내 자녀가 잘 되든지 혹은 다른 선한 역사가 이뤄질 때가 많다. 나중에 보면 길이 막힌 것이 하나님의 선한 섭리로 이뤄졌음을 느낀다. 오네시모가 도망친 것도 빌레몬에게는 처음에는 속상한 일이었겠지만 바울은 그 일도 하나님의 선한 섭리로 이뤄진 일이라고 해서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잘 받아들이도록 거룩한 사전 정지 작업을 했다. 얼마나 지혜로운 사도인가?
<내 앞으로 계산하라 >
바울은 빌레몬에게 좋은 권고를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오메시모를 위해 재정적인 책임도 기꺼이 지려고 했다. 본문 18-19절을 보라.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오네시모의 빚 문제도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의사를 피력했고 그 의사를 분명히 하려고 자신이 친필로 편지를 썼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바울은 오네시모의 빚 문제도 책임지려는 희생적인 마음을 가진 위대한 리더였다.
리더는 많은 면에서 본이 되어야 한다. 특히 물질 문제에서 본이 되어야 한다. 헌신의 본을 보이지 않고 팔로워만 헌신하라고 하면 좋은 리더가 될 수 없다. 팔로워보다 희생하는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 리더가 되면 복된 공동체가 될 수 없다. 희생을 모르는 사람이 희생하는 사람의 리더가 되면 배가 산으로 간다. 좋은 일의 본이 되는 리더를 통해 공동체가 은혜를 입는다. 그래서 희생하는 사람을 리더로 세우도록 오래 지켜보는 기간이 필요하다.
어떤 목사는 사역자가 자기 교회로 오려고 하면 은근히 오지 말라는 식으로 말한다. 그래도 섬기러 오겠다고 하면 그것은 계산이 없는 순수한 태도다. 사람도 그런 태도를 원한다. 그런데 “여기 아니면 다른 데로 가지.”라고 하는 태도를 가지면 현명한 리더는 굳이 자기에게 오라고 이끌지 않는다. 왜 그런 시험 단계를 두는가? 희생의 본을 보이는 리더십을 찾기 위해서다. 리더는 먼저 헌신하면서 좋은 권고를 해야 한다. 참된 리더십과 권위는 말보다 헌신에서 나온다. 말로만 생색내면 리더나 팔로워 모두 허상을 쫓아 살게 된다.
어느 교회에서 선교에 헌신할 일이 생겼을 때 교회 리더십이 어르신들은 돈을 벌지 않으니까 헌신에 동참시키지 말자고 했다. 그러자 어르신들은 자기들도 조금씩 헌신하겠다고 했다. 결국 교회 리더십도 어르신들이 원하니까 헌신에 동참하도록 해 드리자고 했다. 그런데 평소에 헌신하지 않는 사람이 말했다. “잘못된 결정 같아요. 어르신들은 빼드립시다.” 그렇게 어르신을 위하는 말을 하면서 정작 자신이 헌신하지 않는다면 복된 모습이 아니다. 어르신을 정말 위한다면 “제가 어르신 대신 헌신할게요.”라고 해야 한다.
평소에 희생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생색내면 남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더 인정받지 못한다. 말로만 헌신하지 말고 실제로 헌신하라. 헌신의 모범을 보여야 인물 리더가 된다. 어쩌다 리더의 자리에 올라도 헌신하지 않으면 리더십이 생기지 않아서 말의 권위도 약해진다. 반면에 바울처럼 담대하게 헌신의 본보기가 되려고 “내 앞으로 계산하라.”라고 하면서 어디서든지 대가를 치르려고 하면 점차 위대한 인물 리더가 된다.
빌레몬은 바울로부터 복음의 빚을 졌다. 그래도 바울은 빌레몬이 자신에게 빚진 것은 자신이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19절). 자기를 생각해서라도 오네시모를 형제처럼 받아달라는 간곡한 호소가 담긴 표현이다. 게다가 바울이 오네시모를 형제로 받아달라고 하면서 그로 인해 생긴 빚까지 자기가 맡겠다고 해서 깊은 신뢰와 감동을 주었기에 빌레몬도 바울의 부탁을 불의한 청탁으로 여기지 않고 기꺼이 수용했을 것이다.
계산적으로 희생을 회피하지 말고 “내 앞으로 계산하라.”라는 자세를 가지고 대가를 치르려고 하라. 그래야 누군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계산이 너무 밝은 것은 좋지 않다. 계산적인 면에서는 조금 어수룩한 것이 낫다. 때로는 어수룩한 사람이 더 매력적이다. 선교를 잘하는 사람은 계산적인 사람이 아니라 대개 계산에 어수룩한 사람이다.
이번에 몇 군데 교회 보수 공사를 하니까 교회가 조금 깔끔해졌다. 몇 달치 선교비만 절약하면 오래 전에 공사할 수 있었지만 선교를 먼저 했기에 공사는 계속 미뤄졌었다. 그리고 이번에 공사하면서 그 사실을 특별히 광고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성도가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난 세월 동안 우리의 모습이 초라해지는 상황도 감수하면서 교단으로 선교비와 후원비를 보냈다. 계산을 모르는 어수룩한 행동이다.
200페이지가 넘는 <월새기(월간새벽기도)> 한 권에 천 원 받는 것을 만 6년째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 물가가 올라도 계속 천 원이란 상징적인 가격으로 <월새기>를 공급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수시로 기도하고 있다. 그렇게 세상 계산과 동떨어진 상태로 어수룩하게 살면 금방 패가망신을 할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수룩하게 사는 사람의 필요를 또 다른 어수룩한 사람을 통해 채워주실 때가 많다.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과 헌신의 순환인가? 하나님은 계산적이지 않은 어수룩한 사람의 순수한 헌신을 다 기억하고 계신다.
1993년부터 필자는 일체감과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거의 매년 미국 C&MA 한인 총회에 참석했다. 그러면 한국에서 와서 고맙다고 필자 부부의 참석 경비를 면제해 주었다. 그것이 늘 고마워서 언젠가는 필자도 갚겠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2012년 한국에서 제주 총회가 개최될 때 미국에서 온 목사들을 한국 지역회에서 섬겼는데 약 150명의 3박 4일의 숙식비를 다 부담했기에 재정이 꽤 많이 들었다. 그때 필자도 헌신에 동참하려고 집을 전세에서 월세로 옮겼는데 아내도 안델센의 어리석은 농부처럼 순순히 필자의 결정을 따라 주었다.
남편에 대한 깊은 신뢰로 그렇게 따라 준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돈 문제에 대한 의식이 없고 계산에 어수룩해서 그냥 따라 준 것이었다. 그렇게 총회를 섬기려고 이사까지 했는데 8년이 지난 지금까지 동료 목사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 그 얘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나님은 알고 그 후 지금까지 월세를 살면서도 전혀 부족함이 없이 살게 하셨고 때로는 집을 소유한 사람보다 더 헌신하게 하셨다. 또한 시급한 필요가 있을 때는 신비하게 때에 맞춰 후원자의 손길을 통해 하늘의 만나를 공급하셨다.
사람은 계산을 잘 못해도 하나님의 다 계산해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 인물의 꿈을 이루려면 바울처럼 “내 앞으로 계산하라.”라고 하는 담대한 고백을 앞세워 살라. 그렇다고 무작정 “목사님을 따라 해서 나도 기적적인 은혜를 체험하리라.”라고 하지 말라. 남의 간증을 듣고서 기적적인 축복을 기대하고 남을 따라 기도하고 헌신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계산적인 태도다.
그저 순수하게 “내 앞으로 계산하라.”라고 하는 헌신적인 믿음의 고백으로 살면 하나님은 그 헌신을 기억하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실 것이다.(ⓒ 이한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