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미국과의 반도체 전쟁에서 현재 어떤 처지에 있으며 돌파구는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상당히 도움이 되는 페북 글이 있어 소개해봅니다.
더불어 우리나라가 21세기 반도체 산업에서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 점도 생각하게 해주네요.
장문의 글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페북글 주소:⏩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4184082131663207&id=100001843848045
며칠 전 EUV 관련 글을 쓰면서, 화웨이가 닥쳐 있는 위기 상황에 대해 글의 말미에서 잠깐 언급한 바 있다. 화웨이가 처한 위기의 1차적인 원인은 물론 미국 정부가 주도하는 기술 수출 제재이지만, 더 큰 원인은 미국이 초당적인 의지를 가지고 2인자로서의 중국이 더 크기 전에, 가장 핵심적인 부분부터 수족을 자르려 하는 의도에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화웨이가 더 초미세 스케일 패턴 기술 단계로 진입하지 못 하게 하려는 기술적 브레이크가 자리잡고 있다.
중국의 IT 대기업 화웨이의 정확한 명칭은 화위기술유한공사 (華為技術有限公司)다. 1988년 중국 인민군 통신부대 장교 출신이자,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와 일찌감치 연이 닿아 있던 런정페이 (任正非)가 설립한 이 회사는 그 성격이 공기업 (公社)으로 분류되고 있다. 애초 사명부터 ‘중화 (華) 민족을 위 (為)하여’다. 그렇다면 한국의 KT쯤 되는 회사인가 하면 또 그것과는 약간 성격이 다르다. 설립 초기부터 적어도 2000년대 중후반까지의 20-30년 정도는 거의 내수 시장 위주로 중국의 급성장에 맞춰서 회사 역시 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중국 공산당 정부는 이 회사를 거의 전략적으로 키우다시피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중국 인민해방군, 각 성의 통신 SOC 등 굵직한 사업을 독점 수주할 수 있도록 관급프로젝트를 밀어 주다시피 해 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화웨이의 경영은 중국 공산당 당위원회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公司라는 이름과 무색하게, 사실 상 공산당 산하 기관이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종합 IT기업이라고는 하지만, 기업의 요체는 역시 설립 당시의 핵심이기도 한 통신사업, 그 중에서도 네트워크 장비 제조 및 서비스 비즈니스다. 화웨이가 2000년대 중후반까지는 그럭저럭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중국 통신 내수 시장 독점으로 버틸 수 있었는데, 그 이후의 행보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꾸준히 두 자리 수의 매출, 수익 성장률을 달성해야 하니, 포화되고 있는 자국의 시장을 넘어, 슬슬 해외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 때 캐나다 주식시장 시가총액 규모의 1/3까지 차지하고 임직원만 10만 명에 달했던 적이 있는 캐나다 통신 장비 대기업 노텔 같은 경우, 2000-2009년까지 꾸준히 중국으로부터의 직간접적인 해킹으로 인해, 자사의 장비 설계도와 각종 내부 기술 비밀이 유출되었고, 이미 그렇지 않아도 4G 통신 기술에서의 주도권 상실로 사세가 기울어지고 있던 노텔은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파산을 신청하여 결국 다국적 기업 연합체에게 특허가 모두 팔리면서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노텔뿐만 아니라 시스코 같은 업체 역시 remote access로 접근하는 중국 측 해킹으로 인해 자사가 개발 중이었던 통신장비 소프트웨어의 소스코드가 수만 줄이나 털린 적이 있음을 밝혔고, 유럽 각국의 통신 회사들 역시, 화웨이가 수출한 장비에 심겨진 백도어로부터 사용자 정보가 지속적으로 유출되어 중국으로 송신되고 있음에 주기적으로 우려와 분노를 천명했을 정도였다.
화웨이가 쉽게 해외 시장을 뜷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가격 경쟁력 떄문이었다. 타사 대비, 1/2에서 1/3 수준으로 가격 경쟁력이 말도 못할 정도로 유지되니, 비슷한 성능이라면 화웨이 제품을 쓰는 것이 기업이나 정부 입장에서는 경제적으로는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테크 기업들의 통신 장비까지 화웨이가 조금씩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단순한 해킹 정도로 무시하려던 화웨이의 기술 유출 시도가 점점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이런 기술 유출 시도는 용인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서, 국가 안보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군산기업에까지 마수가 뻗쳐, 각 나라의 핵심 이해 관계를 건드리기 시작했고, 그냥 사기업이 그랬어도 문제였을 해킹 시도가, 알고 보니 중국 공산당 정부가 배후에 있는 기업의 탈을 쓴 조직의 시도였다면, 이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되었다.
미국은 트럼프 정권 이미 한참 전부터, 화웨이를 필두로 하는 중국 IT 기업들의 서구권 기업, 특히 미국 통신, 반도체, IT 기업 등에 대한 해킹 시도를 모니터링하고 있었고, 이들의 배후에는 중국 정부가 있음을 파악하여, 2010년대 들어 이들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계속 날렸다. 2010년대 초반만 해도, 미국은 노골적으로 중국에 대해 적대감을 보이지 않았지만, 지속적인 경고 메시지는 적립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기조는 2016년 트럼프 정권이 출범하자, 트럼프 정권에게는 내부의 반감을 외부로 돌릴 수 있는 아주 적절한 기제가 되었고, 마침내 2019년 5월, 트럼프 대통령은 정보통신 기술 및 서비스 공급망 확보에 관한 행정 명령에 서명함으로써, 화웨이의 미국 내 비즈니스 효력을 완전 정지시켰다. 이 조치로 인해, 화웨이와 미국 국적 기업 사이의 거래는 원천 차단되었다. 1년 후, 2020년 5월, 이번에는 더 강력한 조치가 발효되었다. 아예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계 IT 테크 기업들이 미국의 기술이 하나라도 들어 간 반도체 소자를 구매할 수 없도록 하는 조치를 발효한 것이다. 심지어 미국 국적 기업이 아니더라도, 미국 특허로 등록된 기술을 사용하는 제 3국의 기업이 화웨이와 거래할 경우, 미국은 그 제 3국의 기업을 제재 (즉, 세컨더리 보이콧)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하는 막강한 조치였다. 이제 이 조치의 효력이 실제로 발동될 시점은 이제 1주일 앞 (2020년 9월 9일)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 두 번째 조치가 진짜로 타겟팅하는 쪽은 바로 TSMC였다. 대만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적인 반도체 팹 회사인 TSMC는 10 nm 이하의 최신 팹 공정에서는 가장 뛰어난 기술 수준으로 가장 많은 웨이퍼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전 세계 1위 회사 (2위는 삼성전자)로 인정받는다. 심지어 그 잘난 기술력을 가진 한국의 삼성전자도 10 nm 이하 팹에 대해서라면 수율과 양산에 있어 TSMC에게 한 수 접고 들어 간다. 화웨이의 자회사인 CPU 설계회사 하이실리콘의 경우, 팹 리스 회사이기 때문에 CPU, AP, GPU 등의 ‘설계’까지는 하지만, 직접 그 칩을 생산할 능력이 없다. 설계는 되는데 생산하거나 테스트할 능력이 없는 회사들을 위해 반도체 칩을 제조해 주는 회사들이 바로 TSMC 같은 팹 회사들이다. 대만과 중국은 비록 다른 나라지만 (중국은 같은 나라라고 우겨도), 거국적으로 보면 중화권으로 묶이는데, 아마도 그래서인지, 화웨이 (즉, 하이실리콘)과 TSMC의 공생 관계는 꽤 오래 지속되고 있었다. TSMC 입장에서는 전체 매출의 15%가 화웨이에서 나오니, 화웨이는 정말 특별히 소중한 고객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TSMC는 전략적으로 화웨이와 공생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여러모로 기업 활동에 있어 유리했을 것이다. 특히, 2010년대 이후, 화웨이의 통신 사업 이후의 다방면 비즈니스의 공격적 전개는 TSMC의 전폭적인 반도체 칩 공급과 공정에 있어서의 회사 맞춤형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TSMC 역시 미국 특허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팹을 돌릴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으니, 2020년 6월의 트럼프 행정 조치에서 예외일 수 없고, TSMC는 9월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6월에 조치가 발표되자마자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칩 공급을 중단할 것이라 선언했다. 심지어 120억 달러 규모의 5 nm 공정 팹을 아예 미국 아리조나에 건설하고, 미국의 팹 회사들과 전략적 제휴를 하겠다고까지 전향적인 조치를 발표함으로써 일단 미국에 대해 숙이고 들어가는 모양새를 취했다. 다급해진 화웨이는 TSMC를 대체할 수 있는 팹을 찾기 시작했고, 당연히 2위 그룹인 삼성, SK 하이닉스, 글로벌 파운드리 같은 업체를 수소문했다. 물론 이들 기업들이라고 해서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의 예외가 될 수는 없으며 (삼성과 하이닉스 모드 IBM, 퀄컴, AMD, 인텔의 특허를 완벽하게 피해 갈 수는 없다), 결국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 조치가 지속되는 한, 외국 업체와의 제휴는 불가능하니, 자국 내에서 어떻게든 반도체를 생산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따라서 미국의 조치가 실효를 가지게 되는 순간 이후, 이제 화웨이, 즉, 중국이 과연 자국 내 자원과 기술만으로 state-of-the-art 반도체 칩을 만들 수 있는지가 실질적인 관건이 된다.
그렇다면 이제 시선을 돌려 과연 중국이 스스로 만들 수 있는 CPU 그리고 팹 공정은 어느 수준까지 와 있는지 한 번 알아 보자. 대략 10년 전, 대만의 VIA라는 CPU 회사가 있었다. 이 회사는 2013년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상하이 시와 합작으로 회사를 세우는 대신, 자사의 라이선스를 중국 회사에게 넘기는 조건으로 꽤 쏠쏠한 수익을 내고 있었는데, 지금은 형국이 바뀌어서 VIA는 중국의 CPU 업체에게 목이 쥐여진 상황이다. VIA의 목을 쥐고 있는 중국 회사가 바로 Zhaoxin이고, 이들이 내어 놓은 CPU가 Zhaoxin KaiXian KX-6000이다. Zhaoxin은 애초에 VIA가 중국 진출을 위해 합작으로 설립한 회사였는데, 결국 프랜차이즈 지점이 본사를 먹어 버린 모양새가 되었다. 물론 설계만 했고, 팹은 앞서 말한 TSMC에서 했다. 당시 사용한 공정은 16 nm 공정이었고, 이 칩의 최고 클럭은 3.0 GHz이며, 8 코어로 스펙이 명시되어 있다. 겉으로 보이는 스펙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실제 성능은 그 흔한 인텔 내장 그래픽칩 성능만도 못하다. Core i5-7400급에서 1920*1080 해상도 게임을 90 fps로 돌릴 때, Zhaoxin 칩은 15-20 fps 정도 나온다. 동일 클럭수에서는 두-세 세대 이전 AMD 칩인 브리스톨 릿지급과 유사한 성능을 보인다. 동일 세대 인텔 x86 칩과 비교해 봐도, Zhaoxin 칩은 대략 1/3 수준 이하의 성능을 보인다. 그런데 또 잡아먹는 전력은 무지막지해서, 동일 세대의 CPU 대비, 대략 2-3배의 전기를 먹는다. 가성비로 따지면 대략 1/9 수준이 되는 셈이다. 그러면 설계는 제대로 했는데, TSMC가 칩을 잘 못 만들어 준 것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어차피 팹 회사는 설계대로 팹을 해 줄 뿐, 설계의 최적화는 기본적으로 설계 회사 몫이다. 애초에 가성비가 1/9 밖에 안 나오는 칩이라면, 그것은 팹 공정과는 상관 없이, 설계 기술 수준이 몇 세대 이상 뒤져 있었다는 뜻이다. 물론 이 상태가 계속 이렇게 머물러 있지는 않을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기술의 발전을 화웨이 생태계를 중심으로 시도는 할 것이다.
실제로 화웨이를 필두로, 중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가만히 있던 것은 아니다. 화웨이의 CPU 설계 전문 자회사 하이실리콘은 2010년 중후반 이후 급성장을 거듭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화웨이가 B2B 사업에만 집중하다가 본격적으로 B2C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면서, 자국에서만 연간 1억대 이상씩 팔리는 폭발적인 매출 증가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1억 대의 스마트폰은 1억 개의 AP 칩을 수요로 한다. 화웨이 스마트폰에 대응하여, 하이실리콘이 공급한 AP칩은 기린이라는 브랜드 명을 가진 칩이다. 화웨이가 손을 뻗고 있는 사업은 또한 서버 쪽이다. 서버는 애초에 대용량 데이터의 처리가 관건이므로, CPU가 많이 필요하다. 이 역시 하이실리콘이 독점 공급하였는데, 하이실리콘은 7 nm 급 서버 용, 쿤펑이라는 브랜드 명을 가진 CPU를 공급했다. 화웨이의 본산은 통신 장비, 특히 5G 무선통신 쪽이다. 이곳에서도 반도체칩이 필요한데, 그것은 통신 칩셋이고, 하이실리콘은 이 수요에 대응하여 바룽이라는 브랜드 명의 칩셋을 공급한다. 화웨이가 AI, IoT, 드론, 자율주행차까지 한다고 해도, 어쨌든 정보를 처리할 칩이 필요한데, 아마도 보나마나 설계는 모두 하이실리콘에게 맡길 것이다. 당연히 중국 최대의 대기업이 거의 모든 IT 관련 시장을 독점하다시피하고 있는 상황에서, 칩의 공급은 오직 한 회사에게만 맡기고 있으니, 하이실리콘의 시장 점유율도 상상을 초월한다. 2020년 1분기만 해도, 하이실리콘은 중국 스마트폰 용 AP 시장에서 44% 점유율을 보였다. 지난 7월, 중국에서는 아예 OS와 CPU 모두 자급자족한 첫 순수 (?) 중국산 PC인 톈위에 (Tian Yue)를 선 보이기도 했는데 (첨부한 첫번째 사진 참조), 이 역시 하이실리콘을 필두로 한 중국의 여러 CPU 설계 회사들과 중국 정부가 주도한 OS의 합작품이다. OS는 중국의 기린 (혹은 하모니) OS (두번째 사진 참조), CPU는 중국의 파이티움 (飞腾, Phytium), 룽손 (龙芯, Loongson), 쿤펑 (鯤鵬, Kunpeng), 하이라이트 (Highlight), 자오신 (兆芯, Zhaoxin), 썬웨이 (神威, Sunway) 등 6개의 중국산 CPU를 장착하고 있다. 당연히 회사는 달라 보여도 배후에는 하이실리콘, 그리고 화웨이가 있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화웨이를 중심으로 OS든 CPU든, 생태계가 예전 미국의 윈텔 (Windows + Intel) 연합 같은 구조로 이루어지게끔 설계하고 싶은 의도가 다분히 보인다.
중국산 CPU의 공개된 스펙은 룽손의 3A4000와 3B4000의 4코어 2.0 GHz, 28 nm와 파이티움의 FT-2000의 4코어 2.6~3.0 GHz, 16 nm이 있으며, 쿤펑의 경우 ARM 아키텍쳐인 ARMv8기반 쿤펑 920 CPU은 7 nm 공정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고, 마지막으로 썬웨이의 Sunway1621의 4코어 2 GHz, 28 nm 등이 있다. 특히, 썬웨이의 경우, alpha CPU를 기반으로 CPU를 설계하는 회사인데, 민간 쪽에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대부분 수요가 군사 용이기 때문이다. 군사 용이라고 해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 어쨌든 이들을 모아서 연결하면 슈퍼컴이 될 수 있고, 썬웨이는 과거 중국 인민해방군의 핵실험 시뮬레이션 용 CPU도 설계했다는 의혹이 있을 정도로, 이런 류의 계산에 특화된 슈퍼컴퓨터 개발에 대해서라면 일가견이 있다. 파이티움 역시 슈퍼컴 전문 CPU 업체다. 한국에는 텐허로 잘 알려져 있다. 역시, 두-세 세대 이상 차이나는 아키텍쳐를 가져다가 극한까지 성능을 밀어 올리면서 ARM 계열 CPU를 설계하고 있다. 그나마 Zhaoxin의 경우, x86이 호환되는 CPU를 만든다. 수 많은 CPU 업체가 있지만, 결국 한 꺼풀 벗기면 하나의 회사나 마찬가지다. 여기서 그나마 주목해 볼 것은 룽손의 CPU다. 룽손 CPU는 오로지 기계어 명령 세트를 기반으로 중국이 자체 설계하여 만든 칩인데, 싱글 코어에서는 i5-7200U의 30% 수준 성능이지만, 2021, 2022년까지, 동급 인텔칩의 70-80% 수준까지 성능을 끌어 올리려는 아키텍쳐를 설계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여전히 기본적인 부동 소수점 처리와 삼각함수 계산 같은 기본적인 성능 저하의 문제점이 있고 (애초에 VIA 계열 칩들이 이쪽 부분 연산에 약점을 보였다), 이는 최적화된 CPU 설계 소프트웨어를 쓰지 않고서는 넘기 힘든 장벽이기도 하다 (애초에 중국산 CPU들이 따라한 아키텍쳐들이 다 몇 세대씩 뒤쳐진 것들이라, 최신 세대에서는 당연히 해결되었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 화석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하이실리콘 자체적인 CPU 설계 역량의 상당 부분은 알고 보면 다 자체 능력은 아니라는 점이다. 자체 설계를 지속적으로 강조하지만, 앞서 설명했듯, CPU 설계는 이미 많은 부분이 기존의 반도체 기업에 맞게 최적화되어 있고, 이 중 일부는 전자 설계 자동화 SW인 EDA (Electronic Design Automation, 반도체전자설계자동화툴)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다. 애초에 팹리스 회사들이 EDA를 피해서 CPU를 설계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수준까지 와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EDA의 선두 주자는 하필이면 모두 미국에 본사가 있다. 시놉시스와 케이던스는 캘리포니아에, 멘토그래픽스는 오레건에 있다. 당연히 미국의 제재 조치는 이들 기업이 출시하는 EDA의 중국 회사 사용을 금지하며, 따라서 중국 CPU 회사들은 최적화된 EDA 없이 기계어 조합만으로 암중모색하며 칩을 설계해야 한다. 또한, 룽손의 경우, CPU 설계가 MIPS 기반이라 x86 OS는 원칙적으로 구동이 안 된다. 즉, 룽손 CPU에서는 CPU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윈도우가 안 돌아간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중국 정부는 오히려 자국산 (아마도 리눅스 기반) OS를 개발할 절호의 기회라고 포장하고 있다.
사실 2010년대 중반부터, 화웨이를 필두로 한 중국의 IT 기업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재 움직임을 미리 감지하고 있긴 했다. 실제로 이에 꾸준히 대비를 해 왔다고 런정웨이가 몇 차례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2019년 트럼프의 1차 제재 조치가 예고되었을 때, 화웨이 측은 다소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었고, 그 이면에는 서구권 기업에 의존해 오던 반도체 기술의 상당 부분을 그간 엄청난 투자로 가꿔원 자국 IT 생태계 위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실제로 중국은 2020년 상반기에만 1,400억 위안 (한화로 대략 22조원)이 넘는 투자를 했고, 돈으로 어디까지 기술을 자급할 수 있을 것인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TSMC와의 거래가 전면 중단되고, 다른 2위 그룹 회사들과의 거래 역시 세컨더리 보이콧에 걸리면서, 중국이 자국 물량을 소화할만한 팹을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단 화웨이는 아껴 생산할 경우, 1년 정도는 버틸 수 있는 TSMC 생산 칩의 재고가 있다. 또한 그나마 중국에는 SMIC (중국명: 쭝신궈지)라는 5위권 팹이 있긴 하다. (1위 TSMC (대만), 2위 삼성 (한국), 3위 글로벌 파운드리 (미국), 4위 UMC (대만), 5위 SMIC (중국)) 문제는 현재로서는 SMIC의 시장 점유율이 5%도 안 된다는 것이다. 1, 2위의 합계 점유율이 이미 7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5%의 점유율로 보일 수 있는 시장 대처 수준은 현재로서는 처참한 수준에 불과하다. SMIC의 중국 명이 애초에 ‘중심국제 (中芯國際)' 였음을 생각해 보면, 중국 기술로 만든 반도체가 세계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 하니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보일 수도 있다. 업계에서는 SMIC와 TSMC의 기술 격차를 적게 잡아도 4년, 많게 잡으면 6년까지도 본다. SMIC의 팹 공정 수준은 14 nm가 한계인데 (대표적인 제품이 기린 710 CPU다), 이미 이 공정은 TSMC가 2016년 이전부터 해 왔던 공정이다. TMSC와 삼성은 현재 7 nm 팹, 앞으로는 5 nm, 그리고 선행 기술로는 3 nm 팹 공정을 개발하고 있다.
상황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화웨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자국의 SMIC 밖에 없으니, 거대한 투자를 SMIC 설비 확충과 기술 선진화에 쏟아 부을 것임은 확실하다. 현재 SMIC가 화웨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 정도로, TSMC의 14%와 비등한 수준인데, 결국 TSMC를 비롯하여 세컨더리 보이콧에 걸리는 대부분의 외국계 팹 기업들의 물량이 SMIC로 쏟아져야 하니, SMIC의 팹 물량은 향후 3년 간 매년 2배씩 증가해야 겨우겨우 화웨이의 현상 유지까지가 가능할락말락 하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애초에 2025년까지 자국 생산 반도체의 비중을 70%라고 반도체 굴기 목표를 잡은 바 있는데, 2020년 현재, 그 수준은 그보다 한참 못 한 15%에 불과하지만, 미국의 제재 조치는 자의반 타의반, 중국 정부의 투자 집중화를 가속하여 이 목표의 달성 시점을 역으로 더 앞당길 가능성도 있다. 특히, 더 막강한 규모의 돈을 앞세워, 설비의 확충과 더불어,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기술 인력들에 대해, 고액의 연봉과 복지 혜택으로 그들을 입도선매하는 시도가 더욱 노골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삼성이나 하이닉스에 재직 중인 30-40대 경력직 엔지니어들은 누구나 한 두 번은 중국계 헤드헌터의 음으로 양으로 연락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할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중국의 무차별 인재 끌어 모으기 시도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으며, 미국의 제재 조치가 더 강고해지기 전에 한 명이라도 더 자국으로 끌어 모으려는 노력이 더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연 22조원에 달하는 압도적인 투자를 SMIC 한 회사에 집중하다시피 하고, 어쨌든 인력과 기술을 쥐어 짜면서 중국의 자국 팹은 수율에 상관 없이 10 nm 선까지는 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거기에도 거대한 기술적인 장벽이 있다. 며칠 전 썼지만, 10 nm 이하부터는 전혀 다른 게임이 된다. EUV가 없으면 그 아래 스케일로 내려갈 수 없는데, SMIC가 아무리 인력과 기술을 쥐어 짜더라도, 세상에 없던 EUV를 갑자기 뚝딱 만들어낼 수는 없다. 광원과 광학계, 공정 최적화 기술과 펠리클, 마스크 기술 등은 하루아침에 기술 생태계가 뚝딱 만들어져서 수율을 맞출 수 있는 성질의 기술이 아니다. 결국 SMIC는 투자는 쌓이지만, 그 돈으로 반드시 사와 야만 하는 ASML의 EUV를 아무리 해도 살 수 없으니, 그 대체재를 찾을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문제는 EUV의 대체재라고 할 만한 기술이 딱히 없다는 것이다. 10 nm 선에서 멈춰 선, 그나마 수율 보장도 안 되는 SMIC 칩으로 화웨이가 몇 년을 더 버틸 것인지는 불확실하지만, 결국 미국 중심의 반도체 기술 로드맵은 계속 3 nm, 2 nm, 1 nm로 계속 내려 가고 있을 때, 화웨이는 여전히 두 자리 수에서 멈춰 서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상태로는 아무리 돈방석에 앉은 거대 공룡 화웨이라고 해도 5년 이상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5년이면 반도체 장비 특성 상, 이미 노후화가 될 대로 된 상황일 것이므로, 수율 관리는 더 안 좋게 흐를 것이다. 이대로 한 10년쯤 되면 어떻게 될까? 여기서 중국 정부가 만약 미친 짓을 한다면, 그것은 대만의 강제 합병과 TSMC의 국유기업화가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을 미국이 그냥 좌시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결말이 어떻게 나오든, 미국은 각을 잡고 중국을 정말 죽이려 하고 있고 (적어도 확실히 여기서 싹을 자를 생각으로 제재의 끈을 놓지 않을 생각인 것 같고), 그 중에서도 앞으로의 기술 혁명에 필수적인 반도체 산업의 싹을 자르려 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꿈꾸는 반도체 기술 굴기는 결국 2020년대의 10년이 고비다. 이 고비를 존버하면서 어쨌든 자국 시장 위주로 기술 생태계가 갈라파고스화되는 것을 각오해서라도 버티고 버티면 중국에게 승산이 조금 보이겠지만, 그렇지 못 하다면 기술적으로, 경제적으로, 중국 반도체 시장은 마치 소련이 미국과의 군비경쟁에서 밀려 나라가 흔들리게 된 것처럼 흔들리게 될 것이다. 중국이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그것은 중국의 제품이 무난히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진입했을 경우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이며, 미국의 제재가 중국산 고부가가치 IT제품이나 드론, IoT, 자율주행차 등으로 확대 적용되기 시작하면, 중국은 그야말로 자국 내에서 제로섬 게임을 하며 경제 성장률을 깎아 먹는 방법 밖에 없다. 산업의 규모를 아무리 키우고 싶어도, 그를 뒷받침할 반도체가 없다면 산업의 경쟁력은 답보 상태가 되며, 벌어지는 기술 경쟁력은 곧 산업 경쟁력, 가격 경쟁력과 연결되어, 막상 미국의 제재가 풀리는 시점이 도래한다고 해도, 중국 입장에서는 재기하기가 어려운 지경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일단 10 nm 벽을 자국의 기술로 2020년대 이내에 뚫을 수 있느냐가 1차적인 관건이고, 만약 그럴 수 없다면 플랜 B로서 아예 다른 아키텍쳐를 기술 갈라파고스화를 각오하고 시행할 준비가 되었는지가 2차적 관건이다. 둘 다 안 되면 깔끔하게 다시 도광양회 모드로 50년 숙이고 갈 생각으로 백기를 들고 나와야 하지만, 현재의 종신집권을 꿈꾸고 있는 듯한, 시진핑 정권 하에서라면, 그럴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
내가 개인적으로 걱정되는 것은 2020년대, 중국 산업계가 겪게 될 폭풍이 한국 입장에서 결코 강건거 불구경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 중국은 계속 한국 엔지니어에 대한 노골적인 스카우트 제의를 할 것이고, 엑기스가 빨린 인력들은 몇 년 만에 토사구팽 당하는 케이스가 누적될 것이다. 그 과정에 일부 핵심 기술들이 유출될 가능성은 상존하고, 운이 없다면 우리나라의 일부 기업이 기술적으로 중국에게 종속될 가능성도 있다. 가급적 화웨이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 IT 대기업의 장비와 소재/소자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방향으로 기술적, 산업적 의존도를 줄여 나가야 하며, 공급처 대변화, 기술 격차를 위한 R&D 투자 집중화, 새로운 개념의 반도체 아키텍쳐에 대한 국가 차원의 투자 강화가 당연히 있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성균관대 같이 각 공과대학의 반도체 계약 학과 집중 신설 등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규모에서는 중국과 상대가 되지 않는 우리나라의 기술력 중심 제조업의 경쟁력 유지에 대해 우리보다 작지만, 첨단 산업에 대한 기술적 경쟁력은 오히려 더 뛰어난 네덜란드의 케이스를 새삼 다시 한번 공부하고 우리의 것으로 취사선택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산업 관련, 필요하다면 재정적 위기에 봉착하고 있는 일본 기업들을 잘 눈 여겨 보았다가 전략적 제휴를 핑계로 조금씩 그들을 인수하는 방향도 모색해야 하며, 적절한 시점에 일본의 정권이 완전히 교체되면 양국의 관계를 조금씩 회복시켜, 반도체 업계에 대해서는 상호 보완을 강화하여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공동 대응하는 전선을 펴 나가야 할 수도 있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 아무도 모르니, 일단 조금씩 스트레스 테스트 준비를 하며 기술적 우위를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협상의 선수를 내어 줘서는 안 되며, 특히 그 상대가 중국의 공기업화 되어 버린 IT 공룡 들이어서는 더더욱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