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성리학을 유교로 받든 나라였고 공맹도 그렇게까지 무게를 두지않았던 충과 효를 가장 큰 덕목으로 만들었습니다 오로지 일심으로 임금을 향한 충과 효는 같은 무게를 지녔고 그것과 동일한 값을 지니는 여자의 덕목이 정절이었지요 임진왜란때 피난가는 배에 오를 때 뱃사공이 손목을 잡자 그 손목을 잘라버렸다는 이야기. 왜군이 집 안으로 들어오자 모든 여인들이 치마를 뒤집어 쓰고 우물에 투신했다는 이야기등등.. 수많은 미담들이 각 집안마다 있어 새며느리에 대한 경계를 삼았습니다
홍살문은 정절을 지킨 여인이 태어난 집안이라는 것을 알리는 자랑스런 증표였고 그 증표로 임금에 대한 충신의 집안이라는 표시가 되었습니다 자의로 죽든지 타의로 죽든지 여인들의 한이 아로새겨져 있기는 매한가지입니다 홍살문의 이야기를 마치면서 제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열녀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진정으로 사랑함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이 이야기가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클 것입니다
백 리 거리를 두고 두 집안이 있었습니다 조부 때 부터 교유가 있는 두 집안의 우애는 돈독했고 딸이 태어나면 서로 사돈맺기가 소원이었지요 한 집안은 이미 세 아들이 있었고 한 집안은 아들 하나만 있던 차에 드디어 소망하던 딸이 태어났습니다 두 집안은 크게 기꺼워하며 강보에 쌓인 아기와 이제 다섯 살이되는 큰 아들과 혼약을 맺었습니다 남녀 유별하던 시대에 어린 도령은 별 처럼 예쁜 아기가 자라 자기의 짝이 된다는 것을 기뻐하며 아버지와 함께 자주 오갔습니다 아기는 자라 아장 아장 걷게 되고 종종머리를 땋아주는 유모에게 자기를 보고 웃고 뜨락의 꽃 이름도 가르쳐주는 서늘한 눈빛을 가진 도령이 장차 신랑이 된다는 속삭임을 들으며 그득한 마음으로 자라납니다
아기씨는 어느새 자라 16세 마침 혼기에 이르러 그 조신한 언행과 모란같은 미모가 인근에 이름이 높아졌고 혼약을 맿은 도령네로부터 납채가 오기만을 기다렸지요 남녀 칠세 부동석이라 아기씨가 노랑저고리에 분홍 숙고사 치마를 입은 나이부터 도령을 만날수는 없었으나 아주 가끔 하인을 통해 전해져온 서신으로 만난 것이나 진배없었습니다 혼인하여 현숙한 아내가 되고 효심 깊은 며느리가 되리라 결심한지 오래. 혼수로 가져갈 여러 소소한 물건에 수를 놓으며 기다리는 아기씨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집니다
산사로 과거 공부하러 떠났던 도령이 집으로 돌아오다 화적을 만나 몸을 크게 상했다는 소식에 온 집안은 난가가 될 지경이 되고 맙니다 간신히 목숨은 구명했으나 촛불의 심지가 줄어들듯 날마다 쇠약해져 내일을 보장할수 없다는 내용과 함께 아기씨의 전정을 위해 혼약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친우의 서신에 아버지는 괴로워 합니다 두 집안간의 말로 이루어진 혼약이고 납징의 절차가 없었으므로 사실 물러도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딸을 불러 이같은 사실을 알려주었지요 잠자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던 아기씨는 이윽고 고개를 들어 눈물이 가득 맿힌 눈으로 부모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제 말씀 들으소서 비록 납채를 받지 않았으나 이미 아깃적부터 소녀는 그 분을 낭군으로 알고 자랐나이다 운수 불길하여 이제 생사의 갈림길을 알수없다하여 소녀 어찌 딴 곳으로 시집을 가오리까? 저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이의 사람이오니 속히 저를 보내주소서 살아서 하룻밤이라도 함께 한다면 그 인연으로 저는 이 생에서의 인연을 다하겠나이다- 울먹이는 목소리이나 아버지는 딸이 이미 결심하였음을 깨닫고 친우에게 납징의 절차를 논의하는 서신을 보냅니다
낙화 분분하는 가을 신랑이 가마에 실려 신부집으로 오고 사람들의 부축속에 혼례가 이루어집니다 혼례 마당은 억누른 울음과 혀 차는 소리로 가득하고 신랑과 신부는 별채의 방에 들었습니다 제대로 앉지도 못해 안석에 간신히 몸을 기댄 신랑의 눈에 별 같고 꽃 같은 신부가 가득 들어 왔습니다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신랑을 보며 신부는 그 초췌한 모습에서 옛 적에 보았던 준수한 소년의 모습을 찿아냅니다 그날밤 신랑은 목숨의 잔명을 다해 신부를 안았습니다 한 점 혈육이라도 그 몸에 깃들기를 기도하면서. 자신이 죽더라도 자식이 있어야 아내가 살 것을 알기에 천지신명께 부디 아들 하나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그렇게 이 생에서 자신에게 와준 아내를 안았습니다
신랑과 함께 시집에 들어간 아기씨는 온 신명을 다해 남편의 병구완을 했으나 혼례를 치룬 이후 신랑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채로 겨울이 오는 어느 날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지원극통한 슬픔속에 아기씨는 남들보기에 평온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시부모는 이미 며느리가 남편의 뒤를 따라갈 결심을 시집올 때 부터 한 것을 알았습니다 친우의 고명딸을 절대 그렇게 만들수 없기에 시부는 상청에 선 며느리를 감시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지요 그 마음을 알았음인지 아기씨는 돌아간 남편의 명복을 빌고 지극 정성으로 상식을 올리며 도리를 다하는데 열중하는듯 하여 시부모는 안도의 한숨을 남몰래 내쉬었습니다
그러나 아기씨는 남편이 죽기 얼마전 자신이 회임하였음을 알았고 남편이 남기고간 일점 혈육을 복중에서 지키기위해 자신의 온갖 고통과 슬픔을 눌렀던 것입니다 곧 시부모는 원통하게 죽은 아들이 며느리에게 자손을 남기고 갔음을 알게되고 이 소식은 친정 부모를 크게 안도하게 했습니다 고명딸이 열녀가 되지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소년 과부가 되어도 젖먹이 자식을 키워야하는 어미는 죽어서는 안되었고 그 자식으로 인해 정절을 지키고 살 것을 믿었습니다 아기씨는 배가 불러 오면서도 남편의 상식을 다른 사람 손에 절대 맡기지 않았고 어린 나이임에도 그 안존한 태도와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놀랍게도 아기씨는 옥 같은 아들 쌍둥이를 생산하고 시부모는 물론 친정 부모조차 기쁨의 웃음을 지었습니다 남녀 쌍태아는 불길하게 여겼으나 아들 쌍둥이는 온 고을의 경사였지요 아기씨는 두 아들을 지극 정성으로 기르고 시부모는 아들을 잃은 슬픔도 어느새 잊으며 두 손자를 보는 재미에 흠뻑 빠졌습니다 이윽고 삼 년상이 되어 상청은 거두어지고 두 아이도 아장 아장 걸었습니다 상청을 걷고난 날 저녁 아기씨는 시부모님께 두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다녀와줄 것을 말씀드립니다 잘 자란 손자들을 친정 부모님께 보이고싶다는 며느리의 말을 쾌히 승락한 시부모는 다음날 여장을 꾸려 아이들을 데리고 길을 떠나게 됩니다
아기씨는 시부모가 집을 비우자 후원의 별채 한 칸을 정갈하게 소제하고 사람을 불러 방 문을 전부 각목으로 단단하게 못질하여 안으로 커다란 자물솨를 달게 합니다 이상하게 여기는 몸종을 엄히 입단속시킨 후 아기씨는 목욕하고 혼례때 입은 녹의홍상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촛불빛 아래 요요하게 빛나는 녹의 홍상의 아기씨의 모습에 몸종은 기절할듯 놀랐으나 아기씨는 그녀에게 한 통의 서찰을 건네주고 별채에 사람의 범접을 금할 것을 명했습니다 나가서 이후부터 들지말라는 아기씨에게서 이미 몸종은 무언가 불길한 것을 느꼈으나 그녀로서는 아무것도 할수 없었지요
다음날 아침 몸종은 처음으로 부엌에 나오지않은 아기씨의 식사를 차려 별채로 갔으나 방문 안에서는 다시는 들지말라는 서릿발같은 음성만 들릴 뿐이었습니다 오후가 되기전에 아기씨가 순사를 결심하고 별채에 스스로를 가두었다는 소문이 온 동리에 퍼졌습니다 하인이 밤길을 달려 친정으로 달려가 소식을 전하고 경악한 시부모와 친정 부모가 집으로 내달립니다 별채의 문을 열려했으나 손 끝 하나 들어가지 않고 두 부모는 울며 애원하며 아기씨에게 나올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몸종이 전해준 서찰을 읽고 어떤 것도 아기씨의 마음을 돌릴수 없음을 깨닫지요
아바님 아마님 보옵소서 끝까지 두 분을 모시지않고 그이를 따라가는 소녀를 용서합소서 그이가 떠나는 날 함께 가려 하였으나 이미 복중에 그이가 남기신 귀한 혈손이 있음을 알았나이다 그이도 떠나기 전 자손이 생겼음을 알고 기뻐하고 가셨으니 어찌 소녀가 함부로 목숨을 버리릿가? 다행히 두 아이가 한꺼번에 태어나 지원극통하신 부모님을 위로하였으니 소녀는 그나마 불효를 만 분의 일이나마 씻었나이다 태어난 아이들을 모색을 갖추기까지 키워야 하기에 소녀는 마음이 조급하였으나 지금까지 기다렸나이다 이제 두 아이가 사람꼴을 하고 부모님께서 충분히 키우실만 하기에 소녀는 미루었던 길을 가나이다 부디 슬퍼마시고 소녀를 보내주소서 이 생에서 꿈 처럼 짧았던 인연을 저 세상에서 잇고자 가오니 슬퍼 마소서 만약 문을 뜯고 말리시면 소녀는 흉기로 몸을 상하게 하여 험악한 모습으로 갈터이니 부디 그리 마소서 곡기를 끊고 아름다이 눈을 감아 고운 모습으로 낭군께 가게하여 주소서 부디 그리해주실 것을 믿나이다 삼생의 연을 다 풀고 언젠가의 생에 다시 태어나 효도하리이다
아기씨는 그렇게 스스로 만든 무덤에 몸을 누이고 사랑하는 남편의 곁으로 갔습니다 시부모가 매일 매일 부르면 단 한 마디 대답을 하고 이윽고 불러도 대답이 없자 온 고을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인 가운데 별채가 뜯겼습니다 남편과 베고 누웠던 원앙침에 두 손을 모으고 단정히 누운 아기씨의 모습은 그린듯이 어여뻐서 눈이 부셨답니다 그 모습 그대로 아기씨는 소원대로 사랑하는 낭군의 묘에 합장되었고 나라에서는 정려문이 하사되었습니다
어떠신가요? 경상도 어느 가문에 전설 처럼 내려오는 정려문에 얽킨 이야기입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사랑을 할수있는 것이 너무나 부럽습니다 이제 홍살문의 이야기를 마치고 내일은 환향녀에 대해 이야기 할까 합니다 이 또한 조선여인 잔혹사의 연장입니다
이시대를 사는 저로써는 그시대의 정조관은 대단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에 비해 지금 신세대들은 정말 많이 각성 해야 할것 같아요, 저희 세대와는 많은 차이가 나지요, 그러나 조선시대에 비하면 또 아무것도 아니긴 하지만요,,,,, 거듭 어필하지만 그시대에 태어나지 않은것이 천만 다행이지요, ㅎ ㅎ ㅎ
첫댓글 아름다운 사랑 얘기에 잔잔한 미소가... 그러나 그 당시 사회분위기가 그러하였다 생각하니 조금은 답답한 마음이 드네요...^^
조금은 무섭다는 생각도 드네요~~
사랑의힘일까?
자식사랑보다 더.....
이시대를 사는 저로써는 그시대의 정조관은 대단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에 비해 지금 신세대들은 정말 많이 각성 해야 할것 같아요, 저희 세대와는 많은 차이가 나지요, 그러나 조선시대에 비하면 또 아무것도 아니긴 하지만요,,,,, 거듭 어필하지만 그시대에 태어나지 않은것이 천만 다행이지요, ㅎ ㅎ ㅎ
대의명분?일까요?
아님 사랑의 위대함?
전 반대합니다~
아이들은 어쩌라고요 ㅠ ㅠ
맞오~대의명분이 생각이 안났어 ㅋㅋ
아름다우면서도 가슴 먹먹한 이야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