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성사의 문명론: 생명의 빵과 영원한 생명

[이기우]

성체성사의 문명론: 생명의 빵과 영원한 생명

사도 8,1ㄴ-8; 요한 6,35-40

부활 제3주간 수요일; 2024.4.17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라는 계시를 밝히시고, 이 생명의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며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천 명이 훨씬 넘는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이시는 빵의 기적을 일으키신 후에 일어난 군중의 반응에 대해 일러주신 것이었습니다. 군중은 빵의 기적이 눈앞에서 일어난 데 대해 열광했고, 예수님을 임금으로 옹립해서라도 배고프지 않게 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만큼 그 당시 경제적 궁핍의 현실이 심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열광하는 군중에게 예수님께서는 먹어도 다시 배고파지는 빵을 먹으려 하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는 빵을 구하라고 타이르는 과정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내가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그러나 군중은 예수님을 보고도 그분을 믿지 않았습니다(요한 6,36) 그 동안 그분이 행하신 수많은 기적은 물론 눈앞에서 일어난 빵의 기적조차도 믿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결정적으로 당신이 ‘생명의 빵’임을 밝히신 예수님께서 이 ‘빵’을 먹으면 실현될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을” 현실에 대해서 말씀을 이어 가셨습니다.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38-40)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세상에 보내신 목적을 밝혀 주신 계시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고 살고 있는 현실, 즉 먹어야 하는 음식 내지 얻어야 하는 에너지와 그로 인해 얻게 되는 생명 그리고 그 생명이 누리는 하느님 나라의 문명에 대해 알려주신 것입니다. 실로, 예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먹고 마시라고 함은, 그분이 추구하신 가치를 계승하고, 그분이 이룩하신 삶의 차원을 이어 받으며, 그분이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에서 살아가는 일입니다. ‘먹고 마시라’는, 신체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이 비유적 표현이 의미하는 바를 좀더 깊이 묵상해 보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생태계에서 사람을 비롯한 동물이 섭취하는 에너지는 식물에서 옵니다. 동물보다도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지구상의 모든 식물은 광합성 작용을 통해 살아갑니다. 광합성 작용은 식물이 뿌리에서 빨아올린 수분과 입사귀에서 흡수한 이산화탄소에다가 태양이 비추인 빛을 합성하는 작용을 말합니다. 그 결과 식물은 자신이 생존할 수 있는 포도당을 비롯한 양분을 얻고 대기 중에는 산소를 배출합니다. 동물은 식물이 광합성 작용을 하여 배출한 산소를 호흡하면서 식물을 섭취하여 에너지를 얻어 생존합니다. 사람이 먹는 음식에는 식물성도 있고 동물성도 있지만 근본 재료는 식물에서 나옵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태양이 방출하는 에너지로 사람을 비롯한 지구상 모든 생명체가 살아갑니다. 

  생명체는 이렇듯 순환적인 구조로 에너지를 섭취하여 생존해 왔습니다. 에너지를 섭취한 생명체는 주위 환경을 감지하는 기능을 통하여 환경에 적응합니다. 사람에게는 이 감지기능이 오관입니다. 듣는 청각, 보는 시각, 맛보는 미각, 냄새 맡는 후각과 접촉하여 느끼는 촉각의 다섯 가지 기능입니다. 생존 기능과 감지 기능에 더하여 번식 기능이 있습니다. 단세포 생명체는 자기복제를 통하여 번식하지만 고등한 생명체일수록 자웅결합을 통해 번식합니다. 사람도 남녀의 결합으로 자녀를 낳아 인류를 이루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고 살고 있는 생명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더 높은 차원의 생명 현실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는 태양에서 나오는 빛 에너지가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비롯한 사랑의 기운이 근본 에너지입니다. 이 사랑 에너지를 함유한 양식이 생명의 빵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의 삶과 말씀을 계시하신 이 ‘빵’ 즉 하느님의 기운이자 영적인 에너지는  성체성사로 얻습니다. 그래서 성체성사는 영적인 광합성 작용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체성사를 통하여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살아갈 기운을 얻고 세상에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배출합니다. 

  하느님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인간의 전형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를 닮은 새 인간 역시 그분처럼 새로운 귀와 눈과 입과 코와 느낌으로 주변 세상의 영적 환경을 감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선포의 현장실습을 다녀온 제자들이 보고하는 성과를 들으시고 이렇게 취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즉, 그들이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고,  듣고 있는 듣는 귀는 행복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시대의 예언자들도 보고 싶어 했고 듣고 싶어 했지만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던 바를 그들은 보고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루카 10,23-24)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부분적으로 아니라 전면적으로 이 새로운 현실, 즉 영원한 생명의 현실을 누리게 될 것임을 장담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인간이 누리는 영원한 생명의 현실에 대해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정도가 아니라 육신이 죽기 전에도 하느님 나라에서 아예 새로 태어난 현실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너희는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로 얻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마르 10,30) 영원한 생명을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하여 내세에까지 누리게 되리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이 ‘새로운 현실’은 영원한 생명으로 삶의 질을 한껏 높여서 누리는 부활의 현실입니다. 이기적으로 자기 개체만을 위하여 사는 문명의 ‘마지막 날’(요한 6,40)을 그분이 앞당기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태양처럼 무한히 베풀어주시는 사랑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새 인간이 이룩한 사랑의 문명은 청빈과 정결과 순명의 허원으로 가능해지는 새로운 어머니, 형제 자매의 가족을 만납니다. 또한 새로운 땅도 백 배로 얻습니다. 이 땅은 새로운 공동체의 현실입니다. 그야말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고스란히 이루어지고야 마는 땅입니다. 

  성체성사로 이룩되는 사랑의 문명의 현실이 이렇습니다. 네 발로 걷는 짐승에 비해 두 발로 걷는 사람이 자유로워진 두 손과 더 커진 두뇌로 물질문명을 이룩했듯이, 남녀의 결합으로 가족을 이룬 사람들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노동하며 일생을 헌신하는 것에 비해 정결과 순명과 청빈 서원으로 새로운 자유를 얻은 사람들이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새로운 문명을 이룩합니다. 이 새로운 문명을 성서에서는 하느님 나라라고도 부르고 영원한 생명이라고도 줄여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생명의 빵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이룩하신 영원한 생명의 현실에 대한 기억력도 필요합니다. 생명의 빵으로 살아갈 기운을 얻어 세워진 교회는, 자동생산장치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존적 결단으로 매일 매일 새롭게 이룩되는 새로운 문명의 단위, 이것이 교회입니다. 

  또한 오늘 독서는 스테파노의 순교 이후 박해를 받게 된 초대교회에서 벌어진 놀라운 사태 변화를 알려주었습니다. 그것은 박해가 오히려 복음의 씨앗을 퍼뜨려서 선교를 촉진했다는 사태 진전입니다. 스테파노 때문에 일어난 박해로 말미암아 신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스테파노와 함께 부제가 된 필리포스는 예수님께서 한 여인을 통해 복음의 씨앗을 뿌려 놓으셨던 사마리아로 가서 생명의 빵이요 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사마리아’라는 이름은, 북이스라엘 왕국의 여섯 번째 왕인 오므리가 원래 땅 주인인 ‘세메르’로부터 그 산을 샀던 데에서 유래하였습니다(1열왕 16,24). 사마리아인들은 앗시리아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서 앗시리아인들과 혈통상으로도 혼혈이 되었음은 물론 이민족이 들여온 우상숭배 풍습과 이교적 문화에 동화되어 살아야 했습니다. 이 두 가지 이유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경멸했으며, 자기 탓 없이 타의로 혼혈과 우상숭배 풍습을 받아들여야 했던 사마리아인들도 자신들을 경멸하던 유다인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서로 상종하지 않았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알고 계셨을 예수님께서 이방인 통치자의 잘못된 결정으로 꼬일 대로 꼬여버린 역사적 매듭을 풀어주시려고 의도적으로 비운의 땅 사마리아에 가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필리포스가 이러한 역사적 사연과 예수님의 뜻을 알고 사마리아를 찾아가서 생명의 빵이시오 물이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가 선포한 복음을 듣고 사마리아 사람들이 마음을 열게 되고 또 그가 일으키는 표징을 보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 과정 역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기지은이 뒤따랐을 것임은 물론입니다.(사도 8,7) 더러운 영들이 쫓겨나갔으며, 중풍 병자들과 불구자들이 치유되는 기적이 뒤따랐을 뿐만 아니라 큰 기쁨이 넘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부마현상과 병리현상을 개선했음은 물론 “큰 기쁨이 넘쳤다.”(사도 8,8)는 증언으로 미루어 보아 그네들의 사회적 공동선까지 증진되었음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박해나 박해적 상황이 신앙을 억눌러 교회를 사라지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선교를 촉발시킨다는 역설적 진리는 역사에서 거듭 입증되고 있고, 이 땅에서도 실현된 바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믿는 이들을 생명의 빵으로 먹이시며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시는 현실적 전개과정이 이러합니다. 십자가는 부활의 발판이요 박해는 선교의 도약대입니다. 비록 외적으로 박해를 당하는 고달픈 지경이어도 믿는 이들의 양심은 떳떳하고 자유롭기 때문이고, 예수님께서 먼저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뒤따라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자부심이 따라오기 때문이며, 이렇게 되면 신기하게도 평소에 그리 밝히 깨닫지 못했던 복음 진리가 갑자기 한꺼번에 깨우침으로 다가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불가(佛家)의 돈오돈수(頓悟頓修) 같이, 깨달음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현실이 영원한 생명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이것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다가오는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이들을 생명의 빵이 주는 기운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삶으로 다시 살리시는 은총입니다. 이것이 성체성사로 이룩될 문명의 청사진입니다.

[이훈]

신부님의 말씀 훌륭하십니다.
자연의 섭리대로 인간이 살아가는게 원칙인데 현대인은 그렇지 못하니 참으로 자연을 거슬러 온갖 악행을 저지르니
자연의 역습을 받는 것이 당연하겠죠.생명의 빵을 먹는 우리의 현실에 좀더 더불어 가까와 졌으면 sinodalitas 를 지향하며...

[이기우]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