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27 < 부안 변산 마실길 2코스 -파란곳간>
이번 주일에는 어디로 떠나야할지를 한 주 동안 고민하고 찾아본다. 늘 떠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면서 내가 나를 안아주는 기회와 복잡한 감정들이 있다면 그 자잘한 생각들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흡족하다. 주말과 주일의 날씨를 체크하고 혹여 맑지 않다 하더라도 다음 주에는 맑을 수 있을테니 좋다. 어차피 맑아도 맑지 않아도 모든 것이 삶이라 생각하면 이 또한 크나큰 생의 의미가 된다는 것이다. 일상의 일부분처럼 떠나다가도 가끔은 나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를 주는지 뜬금없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퇴직 후 모든 것을 던지고 오로지 여행만을 즐기며 살았더라면 어떠했을 것인가를 상상해본다. 그러나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것이 오직 여행만이 아닐뿐더러 내 소담한 미용업의 일상과 아울러 결혼 40여년 만에 주말부부로 살아가는 이 신선함 또한 여행에 버금가는 행복이다. 다만 낯선 곳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과 그곳이 바꾸어 줄 나와 그곳의 공기와 햇살이 궁굼하기에 그 와중에도 나는 늘 떠나고 또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함께 동행해주었던 남편과 아들이 저마다 일이 생겨 이때마다 혼자 떠나곤 한다. 혼자서 거침없이 즐기면서 다니다가도 때로는 떠나기 전 많은 고민을 할 때가 있다. '갈까? 말까?' 홀로 떠나면 수많은 선택지 위에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많은 것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 가끔은 자유로움보다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번 여행이 그랬다. 남편은 근무일이고 아들아이는 일본여행을 떠난 탓에 혼자 나서게 된 것이다. 그동안 멀거나 가깝거나 수없이 혼자 떠났다가 돌아오고 했었건만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문득 외롭고 쓸쓸해지는 것이었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함께이다가 혼자가 되니 그 빈자리 때문인 듯하다. 얼른 이러한 기분을 털어내야 할 일이었다. 온전히 나만 생각하며 떠나 보자며 낯선 여행지 그곳이 어디든 잘 떠나고 잘 돌아 오자고 씩씩한 발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오늘은 변산 마실길에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샤스타데이지를 찾아 서해안을 달렸다. 인터넷으로 미리 찾아 본 부안 변산 마실길에 샤스타데이지 꽃동산이 경관을 이루어 절정이라기에 오로지 꽃을 찾아 달려왔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꽃을 보겠다고 노력했던가? 꽃놀이나 단풍놀이 가는 사람들을 이해 못 하던 내가 꽃이 좋아 어디든 달려가는 호기심 가득한 어른이 되었다. 어른들이 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빛을 잃었다기 보다는 시선이 나에게서 세상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라는데 세상의 모든 변화가 유한한 것을 알기에 더 애틋한 것이다. 특히 샤스타데이지는 어쩌면 개망초를 많이 닮았다. 마치 큰 개망초 같다고나 할까. 어머니께서 가장 좋아하시던 꽃이 개망초라는 사실을 세상 떠나신지 한참 후에 알게 된 나는 개망초를 쉽게 보지 못한다. 그 꽃 닮은 샤스타데이지도 그러한 계기로 더욱 더 좋아하게 되었다. 특히 변산 마실길 샤스타데이지는 전국적으로 대규모로 조성된 장소가 거의 없어 매년 봄기운이 무르익는 5월에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과 탐방객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꽃동산은 찾아볼 수도 없고 듬성듬성 피어있는 꽃도 볼거리를 제공해주지는 못했다.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이곳까지 달려온 과정이 에너지고 신선함이기에 이 또한 맘 것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 또한 변산은 여러 차례 다녀온 곳이기도 하다. 물론 어느 곳이든 계절에 따라 늘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에 가고 또 가도 같은 풍경이 아니다. 또한 여행을 떠나는 것은 걷기운동에도 목적을 두고 있어서 마실길 완주는 혼자서 무리일 것 같아 왕복 3km를 걷고 수레국화가 유명세를 타고 있는 파란곳간으로 향했다. 부안의 작은 동네에 파란창고 그리고 마을회관 뒤란에 조성된 수레국화가 볼만하다. <부안군 귀농인 창업현장>이라는 표지판이 이 동네 수레국화가 조성된 연유를 소개하고 있어 조금을 알 것 같다. 관광사업 일원으로 심어 가꾸었다는데 물론 이곳 역시 올해만 그런지 인터넷에서 검색된 것과는 달리 그냥저냥 볼만하다는 생각으로 넓지 않은 논둑길 휘 둘러 나오는 것이 끝이었다. 계절마다의 특색으로 세상은 끝없이 아름답지만 특히 5월은 특별하다. 오래된 옛집을 품은 파란 잡초랄지 작은 골목길 파릇파릇 새싹의 가능성과 담장 아래로 온몸을 쏟아 내리는 등꽃 향기까지도 특별하게 아름답다. 5월의 변산마실길에 입장한 오늘의 선택은 색다른 기억하나를 또 보태고 간다. 산다는 것은 오늘처럼 때로는 바람맞은 듯 허망할 때가 많다. 샤스데이지와 수레국화가 파다했던 소문만큼 많이 피어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쫓아 얼마나 달려왔던가? 어딘가를 향해 무엇인가의 가능성을 향해 달리다가 바람맞은 듯 좌절할 때가 수없이 많지 않던가 말이다. 아울러 나에게 혼자 떠나는 여행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저 자연이 있고 맑은 날이면 충분하기에 깊게 고민하지 않는다. 같은 곳을 가고 또 가도 질리기보다 늘 새롭고 행복하다. 늦은 오후 귀가 길에 오랜만에 밀가루 냄새가 그리워 칼국수 한 그릇을 주문했다. 바지락 칼국수의 크나 큰 대접 안에 어릴 적 한여름 밤이 가라앉는다. 밀가루 반죽 밀어서 죽 끓일 틈도 없어 뚝뚝 떼어 넣은 수제비 한 그릇의 냄새가 변산에서 내 집 안방까지 한없이 따라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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