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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 제국호텔 외 1편
한정원
제국호텔을 지나쳤다
그 연못 속 푸른 물고기가 한 번 더 흔들렸다면
나의 풍경은 스위트룸 안에 정지했을 거다
빵을 먹고 싶어요
그는 분명 모국어로 속삭였는데
찌아찌아족의 분산된 한국어 발음으로 들렸을 뿐
하이퍼로 가장한 모텔만 왕궁처럼 빛나고 있었을 뿐
나는 두 번 후회했다
내 몸은 다 성장했는데
나이만 들면 된다는데
저지당하고 중단함으로써 존재했다
제국호텔과 나와 그의 거리는 1060km
폐허의 거리를 두고 모두 무너졌다
빵을 먹고 싶어 하던 그는
안개 자욱한 도시에서 세 시간만 머물렀다
이십오 년 후에는 이타주의가 지배할 거예요
갈색 양탄자가 깔린 로비에서
한 시인이 한 CEO에게 한 사상가의 말을 인용했다
그래 21세기에는 그를 사랑하자
CEO는 이타주의가 결국 이기주의라고
자신의 제국을 세울 거라며 악수를 청했다
마야제국의 전리품처럼 남아있는 돌계단 앞으로
그가 인문학처럼 다시 돌아왔다
그 책의 제호를 바꾸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소수민족의 향수가 남아있는 이미지는 힘이 없다고
파르테논, 필로포엠, 임페리얼 포엠, 하이퍼 포엠
왕궁은 입구가 중요한 것이다
중간 지점에 왔을 때에 입구는 보이기 시작한다
빵을 먹고 싶어 하던 소년은 사라졌고
왕이 되고 싶어 하던 자도 죽었다
제국호텔은 이제 늙었다
그 연못 속 물고기는 공기를 업고 허공으로 날아갔다
누구를 잃어버려본 경험이 있다면 오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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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침문
바늘에 실 좀 꿰어달라고 하셨죠. 솔잎 끝처럼 뾰족한 실이 두루 뭉실 뭉툭해질 때 바늘구멍 너머 초록 바다는 타클라마칸이었죠. 돋보기를 쓰고서도 통과하지 못하는, 침을 바른 실 끝은 더 부풀어 올랐죠.
오늘은 노루발이 당신의 깁스와 붕대를 타고 덜덜거리며 올라가네요. 풀 먹인 듯 빳빳하고 단단한 깁스에, 60수 하얀 순면에 박음질되는 여든 여덟의 땀, 뼈는 왜 굽어지지 못하고 부러지기만 할까요. 움직이지 마세요. 뼈를 가두세요. 엉치등뼈에서 종아리, 세 뼘도 안 되는 금이 간 산맥을 타고 이십 세의 당신을 따라 재봉틀이 분해되고 있어요. 브라더 미싱의 발판이 무인 연주되는 피아노 건반처럼 하얗게 캄캄하게 시린 골반을 탕, 탕, 탕 울리고 가네요
녹슨 바늘은 쓰러진 병사의 창처럼 갈대밭에 거꾸로 묻히고 탄천의 둑길에서는 연기만 피어오르네요. 자, 깁스를 풀고 바늘에 실 좀 꿰어 달라고 다시 한 번 저를 불러보세요. 시간의 끝에 심지를 세우고 선인장의 가시를 피워보세요. 이 세상 모든 바늘은 낙타를 만나려고 사막에서 빛나고 있죠.
- 『시와사람』2011년 여름호
첫댓글 좋은 작품 잘 보고 갑니다... 늘 느끼지만 선생님 시는 참 젊어요...^^*
임서령샘도 좋은 작품 많이 쓰세요...
한정원 선생님, 잘 계시지요? 글을 읽으며 샘 생각했어요. '누구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다면 오래된 것이다' 시간은 형태를 서서히 또는 빠르게 변화시켜가겠지요.
어머니를 본 마지막 작품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