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고 소박한 사람들의 사는 냄새를 맡기엔 재래시장이 좋고, 사랑하는 사람의 옆모습을
보기엔 극장이 좋다고 한다. 성질 급한 사람들이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기엔 파도가 좋고,
가장 살기좋은 곳은 생각할 것도 없이 자신이 태어난 곳이라고 한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울적할 때 조금이라도 마음을 위로 받기엔 바람 부는 날이 좋고, 세상
이 아름답다는 걸 느끼기 위해서는 여행이 좋다고 한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군들 여행을 싫
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여행은 자신의 그림자를 이끌고 아득한 지평을 뚜벅뚜벅 걷고 있는 내 자신의 모습을 이만
치서 바라볼 수 있어 좋다. 여행을 통하여 구름을 사랑하던 헤세를, 별을 기리던 생텍쥐페
리를 비로소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근래들어 부쩍 듣는 얘기는 어딜가니 좋더라, "꽃보다 할배"라는 TV프로를 본 후, 대만여
행이 요즘 뜬다더라, 등이다. 그렇다. 역시 여행은 좋다. 사랑은 여행이다. 사랑은 여행일
때만 삶에서 유효하다. 사람은 사랑 안에서 여행하게 되어있다.
스무살이라도 늙은이가 있고,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여든 살이어도
늘푸른 청춘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혼자였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혼자였다.
나는 예민했고 아주 많이 감성적이었다.
여행, 그것이 가고싶었다. 불과 두어 달 전에 다녀 온 해외여행이었지만 마음 속으로 새
로운 여행지를 결정해 놓으면 그 순간부터 어서빨리 떠나고 싶었고 내 속은 문드러졌다.
밤잠을 설쳐가며 괴로워했다. 그저 얼굴만 붉히고 깊은 밤 이불 안에서 발차기만 했다.
행복함과 즐거움 뒤에는 그 만큼의 슬픔과 안타까움이 숨겨져 있었고 가지려 하면 잃어
야 했고, 놓으려 하면 손 안에 꼭 웅크리고 있었다. 바쁘고 정신없는 가운데 얻는 것이 있
었고, 한가롭고 평온함 뒤에는 골치 아픈 문제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우리들의 삶은 어쩔 수 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공생
하게 된다. 여행은 좋은 것이라고 귀가 닳도록 강조해도 우리에겐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부정의 어휘가 끼어들어 가냘픈 목덜미를 낚아채기 일쑤다.
퇴직 전에 몇 억은 모아야 궁색하지 않게 산다는 언론의 협박이 무색하게도 내게 은행
잔고는 별로 많지 않았다. 시간은 여행에 최우선으로 포커스를 맞춘다면 문제될게 없었
다. 다행히도 아직은 건강한 편이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다. 삶이 팍팍할수록 감성이 더 살아있을 때, 체력이 더 좋을 때, 더
다니고 뭐든 많이 보고 많이 느끼는 게다. 이번 여행은 타이완이다. 원래는 이곳의 옥
산 트레킹을 계획했었지만 대만에 소재한 모든 산들의 트레킹이 잠정적으로 제한됨에
따라 불가피하게 대만여행으로 당초 계획을 수정해야만 했었다.
대만의 면적은 36,000평방킬로미터로 우리나라의 경상남.북도를 합한 면적을 조금 상
회하며 인구는 약 2,300만명으로 우리 남한의 절반 정도이다. 그럼 지금부터 대만 속
으로 깊숙이 빠져들어가 보도록 하자.
우리일행을 태운 항공기는 김포공항을 이륙한지 2시간 30분 만에 대만의 송산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우리 일행의 대만여행을 돕기위해 마련된 관광버스의 모습이다.▼
대만에서의 첫번째 여행 코스는 국립중정기념당이었다. 중정은 장 개석의 본명이며, 장 개석이란
이름은 나라를 위해 바치는 마음, 그 절개가 돌과 같다는 뜻이라고 한다.▼
타이베이 민주기념관은 총 면적 25만 평방미터로 타이베이의 각종 행사를 이곳에서 개최한다고 한다.
그림같이 조경이 잘된 광대한 정원 위에 거대한 대리석 건물인 기념관이 서 있고, 우아한 정자, 연못
등이 배치되어 있다.
명나라식 건축형태로 흰 대리석 벽에 푸른 쪽빛 기와는 웅장한 아우라를 드러내고 있다. 큰 광장 양옆
의 건물은 국립극장과 콘서트 홀이라고 한다. 1975년 타이완의 초대 총통인 장제스(蔣介石)가 서거한
이후 해외에 흩어져 있던 화교들이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모아 건립했다고 한다.▼
중정기념당은 앞서도 설명했듯이 타이완 총통 장제스를 기리는 전당으로 장제스가 서거한 후
1980년 25만 평방미터에 이르는 넓은 중정공원 안에 우뚝 선 높이 70미터의 기념물로 중정기
념당을 세웠다.
2층에는 장제스의 청동상이, 1층에는 장제스 생애를 엿볼 수 있는 사진, 자료, 문헌, 유물 등이
전시돼 있다. 정문에서 기념관까지는 약 400미터의 광장이 이어져 있고 장제스가 89세까지 살
았었기 때문에 계단도 89개라고 한다.▼
장 개석이 즐겨탔던 리무진 2대가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리무진 차량 번호판에는 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숫자 "8"이 세 개나 보였다.▼
사진 속의 인물은 장 개석과 손문의 모습이다. 장 개석은 손문의 처인 송경령의 동생 송미령과
결혼하여 손문과는 동서 관계이다.▼
계절의 어김없는 리듬, 무상한 생명의 윤회, 태양 아래서 차례로 변하는 지구의 네가지 얼굴,
생자필멸, 이 모든 사실이 장 개석의 중정기념당을 보면서 다시 한번 내 가슴을 조여왔다. 그
러나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신비로운 것인가?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처럼 만났다가는 헤어지면서도 우리의 눈은 하릴없이 사랑하던 사람의
얼굴 모습, 몸매와 몸짓을 기억하려고 하니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몇년만 흘러도 그 눈이 검
었던지 푸르렀던지 기억도 하지 못하는 것을...
장개석과 그의 처 송미령의 모습이다. 송미령은 장 개석의 네번째 부인으로, 첩으로는 절대 들어
갈 수 없다 하여 장개석은 본부인과 이혼을 하고 송미령과 결혼하였다. 송 미령은 미국 웨슬리 대
학을 졸업한 재원으로 대미관계의 조정에 큰 역할을 하였을 뿐아니라, 7개국어를 능통하여 퍼스
트 레이디이면서 장 제스의 수행원 역을 동시에 훌륭히 수행했다.
또한 송 미령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지원한 공으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당시
중국에서는 세 자매, 즉 송 미령을 권력을 사랑하는 여인, 손문의 처 송 경령은 중국을 사랑한 여
인으로 송 미령의 큰 언니인 송 애령(중국 최고부호 공 상희의 부인)을 돈을 사랑한 여인으로 불
리어졌다고 한다.▼
이제 대만인들의 종교문화를 엿볼 수 있는 용산사 차례이다. 용산사는 타이베이에 위치한 사원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사원이라고 한다. 번화한 도시 중앙에 위치하여 불교사원과 도교사원, 민간신앙
이 복합된 멋진 건축양식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둘러볼 가치가 있었으며 지붕이 화려한 것은 도교의 영
향이라고 한다.
어린아이부터 학생, 직장인 노인까지 진지한 모습으로 참배하는 모습을 통해 타이완의 종교상을 느낄
수 있었으며, 또 용산사는 부처님이 아니라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곳이라고 한다. 대만의 절에는 스님
이 없고 대신 관리자를 뽑아서 운영한다고 한다. 여행객들이 주의해야 할 점은 절의 모습은 촬영하되,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은 촬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
이제 스린 야시장을 둘러볼 차례이다. 대만의 야시장은 일반 서민들의 쉼터이자, 생활공간이자
생활문화를 접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야시장과 야식 문화가 발달되어 있어 매일 밤이면 밝은 조
명아래 축제처럼 야시장이 열린다고 한다. 다양한 먹거리와 저렴한 물건들과 오락거리 등을 즐
길 수 있다.▼
타이페이의 101빌딩에 왔다. 타이페이 101빌딩의 원래 이름은 "타이페이국제금융센터"이다. 지상 101층,
지하5층, 총508미터의 높이로 완공 당시만 해도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었으나 지금은 두바이의 부르
즈 할리파(163층, 929미터),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메카로얄클릭타워호텔(95층, 601미터)에 이어
세번째로 밀려났다고 하며, 우리나라의 롯데월드타워가 완공되면 또 한 단계 밀려날 운명에 직면해 있다
고 한다. 89층에 위치한 전망대에 초고속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타이페이 시내야경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
101빌딩은 또한 각종 명품샾은 물론 뷰티샾과 서점, 까페, 레스토랑 등이 위치하고 있어
쇼핑과 휴식공간을 제공해 준다. ▼
101빌딩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타이페이의 시내 야경이다.▼
타이페이 101빌딩 엘리베이터 안에 설치된 엘리베이터의 이동상황도이다. 빨간 그림이 현재의 위치를
말하고 있는데 바로 좌편에는 "68층, 고도 291미터, 속도 600미터/분"이라는 글자가 친절히 새겨져 있
다. 이 101빌딩의 엘리베이터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고 한다.▼
타이페이 101빌딩을 끝으로 첫날 일정이 마무리되고 우린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오늘 석식이
대만에서의 첫 식사였다. 그 동안 무수하게 해외여행을 다녔었지만 몸과 달리 내 입은 아직도 토종의 티
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당근, 마냥 즐거워야 할 식사시간이 두려움의 시간으로 변질되곤 했었다. 대만 음식은 어떨까?
우리나라 뷔페처럼 손님들이 식성에 맞게 재료를 골라 조리사에게 전해주면 조리사는 순서에 따라 철판
위에서 우리가 전해 준 음식들을 볶아준다.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수 많은 음식을 볶아내다 보면 그을음이 많을텐데 과연 철판 청소가 제대로
될지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암튼 대만에서의 첫 식사는 80점은 후히 줄 정도로 만족스러운 편이었다.
여독도 달랠 겸해서 반주까지 곁들었으니 두 말해 뭘하겠는가?▼
우리가 여행기간 내내 머물게 될 시즌스 호텔의 모습이다.▼
여행 둘쨋날이다. 이른 아침, 태로각협곡을 관람하기 위해 타이페이역으로 이동했다. 출근길 오토바이족들이
눈에 띄였다. 대만은 많은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생업에 종사한다고 한다. 따라서 남녀를 불문하고 성인
들은 모두 이 오토바이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대만에서 느낀 점은 대만인들은 중국과 달리 무척 차분하고 조용하고 온화하다는 점이다. 물론 사람들
도 선하게 느껴지곤 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말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중국사람들은 말들이 많고 시끄럽
다. 말 많은 사람치고 신뢰가 가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말 많은 그 사람이 어쩐지 나는 좋아.♬"라는 노래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타이베이역이다. 이곳에서 우린 열차편을 이용하여 화련으로 이동하게 된다.▼
세 시간 여만에 태로각역에 이르렀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mp3에서는 귀에 익은 선율들이 빗소리처럼
잔잔하게 내 주위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행복이란 바로 그런 것 같았다. 그렇게 거창하지도 않고 그렇
다고 그렇게 럭셔리하지도 않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 스스로 만족을 느끼는 그저 소박한 꿈을 실현
하는 것, 바로 그런 것들이 작은 행복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우린 점심을 먹고 버스편으로 태로각협곡으로 이동했다. 대만 최고의 절경지대라는 타이루거 협곡은 세계
7대 절경 중 하나라고 한다. 타이루거 협곡을 거점으로 웅장한 동부산맥이 위치하고 있고, 동.식물 생태계
가 잘 보존되어 있으며 국제적 수준의 자연국립공원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타이루거 협곡은 약 20km의 장엄한 대리석 절벽으로 이루어진 협곡에 인간의 손으로만 만든 대만 최고의
절경지대가 분명했다.▼
타이루거 협곡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준비해 간 우산을 받쳐들었다.
우산 없이 옷을 적시면서 빗길을 헤매기엔 내 나이가 너무 늙어버렸을까? ㅠㅠ▼
자모교 근처의 멋진 풍광들이다. 비는 속절없이 내리고 있었고, 나는 어두워진 강과 초록빛으로
발광하는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거지처럼 손을 내밀고 빗방울을 받아보았다. 별안간 울
고 싶었다. 내 것이 아닌 보다 깊고 막연한 슬픔이 축축한 대지 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이렇게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미친듯이 가슴이 먼저 빗속의 어딘가를 향해서 달려갔다.아~! 살
아있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이 행복감, 이 또한 여행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사진 속의 위에 있는 새까만 모습의 조그만 다리는 원주민들이 직접 만들어 이용하고 있는 다리이고,
아래부분의 큰 다리는 트레킹 하는 산객들을 위한 다리라고 한다.▼
이곳 저곳에서 거대한 협곡에 아찔한 장면을 보니 절로 탄성이 나왔다. 우린 언제고 낙석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그 위험보다는 나의 눈과 귀가 이국 땅에서 뜻밖에 호사를 누리고 있다는 생각
이 들었다.▼
협곡트레킹을 마치고 아미족의 민속쇼를 관람하게 되었는데 내용은 그저 그랬었지만
우린 관객으로서의 메너를 잘 지켜주었다.▼
셋째날이다. 오늘 첫번째 둘러볼 곳은 지우펀이었다. 영화 "비정성시(悲情城市)"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지우펀, 아름다운 홍등거리와 언덕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에 찻집이 즐비하고 언덕위에서 내려
다 보는 경관은 아기자기하여 마치 그림처럼 아름답다.
지우펀 거리 곳곳에서 대만의 특색있는 여러 간식거리들도 맛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지우펀은 그림 같
은 곳이다. 백 마디 말이 필요없는 곳이다. 한때는 잘 나가는 금광채굴도시였으나 지금은 한적한 동네
로 전락해버렸다고 한다. ▼
지우펀의 거리는 모두 계단으로 이뤄져 이었으며, 과거에는 아홉집 밖에 없던 외진 마을
이었고 한다. 당시 이곳 사람들은 물건 구입시 항상 아홉개를 구입해서 아홉개로 나누어
주었다고 하며, 그런 연유로 해서 지우펀(九?)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 골목, 저 골목 그 골목길들을 타박타박 걸었다. 그 길은 그녀와 함께 걷고 싶었던 길이
었다. 오늘 지우펀의 날씨는 비는 오지 않았으나 습도가 높고 햇빛이 없는 후덥지근한 날
씨였다. 지우펀은 년중 90%가 비가 오고, 맑은 날을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하도 비가
많이 와서 "비가 오지않는 지우펀은 지우펀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지우펀은 또 우리나라 드라마였던 온 에어(On Air)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홍등가의 은은한 조명과
몽상적인 밤거리의 아름다운 야경, 아! 그 황홀경은 생각만 해도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필시 오
늘밤은 꽃등을 타고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운 밤을 만들고야 말리라.▼
이제 지우펀에 이어서 예류 지질공원을 관람할 차례이다. 예류는 자연의 힘과
침식에 의해 생성된 다양한 모양의 기암들이 늘어선 해변이다.▼
자연의 힘은 역시 대단했다. 지금으로부터 2,500~1,000만년 전, 예류의 암석은 석회질의
풍부한 사암으로 형성되었으며 시간과 함께 한 긴 여행의 결과물이었다. 바람과 햇빛, 비,
북동의 계절풍과 파도에 의한 풍화와 침식의 산물인 것이다.
예류해양공원은 여왕바위, 슬러퍼 모양, 계란 모양 등 여러 신기한 모양의 용암과 사암들
이 자연침식작용으로 형성되어 멋진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습도는 높고 자외선은 강해서 햇빛의 칼끝에 눈이 찔려 얼른 검은 안경을 썼다. 처진 뱃살이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중후한 남성들의 뱃살은 품격이다."라고 강변을 해도 뱃살은 역시 볼
품없는 게 사실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왜 다이어트를 할까? 그 이유를 알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그러나, 다이어트의 숨겨진 진실은 "살 뺀다고 다 예쁘냐?"라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요즘 아
이들 말로 "헐~!"이다.▼
이집트 왕비의 옆 모습을 닮은 여왕두상바위(Queen's Head)앞에 섰다. 고백하건데 이 바위는 정품이
아니다. 정품은 해양공원 안에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증 샷을 하기위해 장사진을 치고 있는 바람
에 도무지 기다릴 수가 없어 이곳 공원입구로 나와 여왕의 사촌쯤 되는 바위 앞에서 한 컷 땡겨본 것
이다.
무더운 날씨, 햇살은 따갑고 습도는 높았다. 이곳 날씨는 우리나라의 한 여름 날씨였다. 어느 순간,
한 줄기 실바람이 불어왔다. 시원했다. 실바람을 타고 잔잔하게 출렁거리는 초록잎 사이로 가려진
그녀의 얼굴을 생각해 보는 것으로도 마냥 행복했다. ▼
예류지질공원에서 흘린 땀도 씻고, 그 동안 여독으로 인한 지친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할 겸해서
온천회관에 들렀다. 듣던대로 이곳 온천장은 메머드급이었다. 유황성분의 뜨거운 물줄기가 힘차
게 솟구치는 물속으로 잠겨들면서 "아, 기분좋다. 아, 행복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물은 생명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이다. 물은 부드럽고 겸손하다. 그래서 가장 착한
것은 물과 같다고 하잖은가?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고정된 모습이 없다. 둥근 그릇에 담
기면 둥근 모습. 모난 그릇엔 모난 모습이다. 살아있는 물은 멈추지 않고 늘 흐른다. 우리네 인생
처럼. ▼
셋째날 첫번째 코스는 국립고궁박물관이었다. 고궁박물관은 런던 대영박물관, 파리 루브르박물관,
그리고 뉴욕 메트로폴리박물관과 함께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로 세계에서 가장 크고 또한 5,000
년 역사에 버금가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중국 보물과 미술품으로 꽉 차 있다.
약 62만점에 달하는 박물관의 대부분의 전시품들은 천 년 이상 지난 초기 송나라의 황실에 속했던
것이라고 한다. 박물관은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6시 반까지 열며, 매일 여러나라 언어로 가이드 투
어를 실시한다. 박물관내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중국 역사의 보물창고로 불리우는 고궁박물관은 타이페이 시 중심부에서 북동쪽으로 약 8km 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중국 궁전양식으로 지어진 이곳은 4층 건물로 중국 5,000년 역사와 문
화예술의 집합체이다.
장 개석은 중국 본토에서 쫓겨나올 때, 군함에 중국의 보물과 유물들을 많이 싣고 왔다고 한다. 따
라서 중국에서는 유물들을 몹시 아까워하며 돌려받고 싶어하지만 대만에서는 돌려 줄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한다.
약 69만 여 점에 이르는 유물들, 그것은 중국인들의 밑도 끝도 없는 자부심이나 다름 없었다. 유물
전시품들은 매 3~6개월 마다 주기적으로 계속 로테이션되어 그 유물들을 다 보려면 무려 30년이
소요된다고 한다.▼
기왕 역사적인 중국의 고궁박물관에 왔으니 장 개석에 관한 얘기를 빼 놓을 수 없다. 장 개석은
손 문 사후에 국민당 총재로서 중국 대륙을 통치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은 공산당이 계속 세
력을 확장하였고, 이에 그는 공산당 토벌에 나서게 된다.
이때 일본이 만주지역을 계속 침범하고 있었지만 장 개석은 일본 보다는 공산당 토벌을 우선시
하여 1936년 공산당 토벌을 위해 직접 서안으로 가서 화청지에 머물게 된다. 1936년 12월 12일,
일본군의 중국 침범을 막기위해 공산당 토벌보다 항일전을 주장하는 그의 부하였던 장 학량은
마침내 서안 사변을 일으켜 장 개석을 구금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장 학량은 장 개석의 실각이 내전의 빌미가 되고, 오히려 일본군에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
하에 공산당과 손잡고 일본군을 물리치겠다는 요구사항을 조건으로 장 개석을 풀어주고 스스로
처벌을 요청한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을 계기로 장 개석은 공산당과 손을 잡게 되고, 거의 다 죽어가던 공산당은 기
사회생하며, 중국 대륙 전체를 지배하게 된 장 개석의 국민당은 지금의 대만으로 쫓겨가서 중국 본
토의 중화인민공화국과 대만의 중화민국 등 두개의 중국이 되는 역사적 사건의 발단이 된다.▼
저녁 시간에는 대만의 명동이라고 할 수 있는 시먼딩 거리로 나왔다. 세 자매(중국에서는 三兄妹라
부른다고 함)가 운영한다는 빙과점에서 망고 팥빙수로 무더위를 식힌 다음, 번화한 거리의 이곳 저
곳을 둘러보았다.▼
(에필로그)
5월 8일, 대만 여행을 떠나던 그 날은 어버이 날이었다. 어머니께서 하늘 나라로 가신지도
벌써 3년이 되었다. 어머니를 잃은 사람들에게는 어머니의 모든 것이 너무나 애절하고 그
립다. 함께 한 시간들, 목소리, 손길, 모든 기억들이 자식들의 가슴 안에 녹아있는 것이다.
나는 그 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사모곡을 노래했었다. 어머니, 불러도 불러도 다시 부르고
싶은 간절한 이름이다. 이제 꿈속에서 조차 볼 수 없는 어머니, 대만행 비행기가 공항을 이
륙하던 날, 나는 다시한번 어머니를 나직하게 불러보았다.
분명 어머니도 여자였고, 예쁘고 뜨겁던 청춘이 있었고 꿈이 있었다는 것을 왜 그때는 몰랐
을까? 하늘을 나르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 엄마가 보고싶은 날,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께 나
직이 사랑의 인사를 건넨다. "엄마 지켜봐 줘, 언제까지나 자랑스러운 엄마의 아들로 살게."
근래들어 함께 살을 비비고 살때는 미처 몰랐던 엄마의 여백이 잉크 번지듯 나의 일상 곳곳
으로 파고들었다. 내 인생의 연륜이 깊어가니 엄마의 그 깊은 마음을 절절히 깨닫게 된다.
엄마의 영혼도 분명 내가 전한 사랑의 인사로 평화로우지셨으리라.
이제 여행기를 마무리해 보고자 한다. 이번 여행에도 예외없이 쇼핑센터에 들렀다. 견물생
심의 충동에 어쩌지 못하는 여행객들, 습자지처럼 얄팍한 우리의 귀를 눈치 챈 점원은 연이
어 유혹적인 낱말들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의연하기만 했다.
땅부자나 돈부자가 죽어도 사회적 손실은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땅과 돈은 저 세상으로 가
져가지 못하고 두고 가니까 그렇다. 물론 본인만 억울하다. 허나, 머릿속 지식은 그냥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록을 남긴다.
여행기록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이다. 기록되지 않은 여행은 세월이 흐르면 무효가 되어
버린다. 이래서 나는 오늘도 대만에서의 멋진 추억들을 되살려보며 몇 자 끼적거려 본다.
첫댓글 산울림님,대만여행 축하 합니다,,건강할때 여행도 다니셔야죠,,
정말 가보고 싶어지는곳 대만 멎진사진 잘보고 감사드립니다,,부럽습니다,,
회장님께서도 어서 빨리 컨디션 완벽하게 회복하셔서
동백님과 함께 멋진 곳을 찾아 다니시기 바랍니다.^^
함께여행한기분입니다.감사하고 잘읽고보고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주 한남금북정맥 마루금에서
뵐 수 있겠네요..^^
대만여행 다녀오셨군요. 부럽기만 합니다.
설명을 곁들인 여행기 잘보았습니다.
당초 대만 옥산트레킹을 계획했었는데 대만의 3,000미터 고봉들의
등로를 정비하여 트레킹을 제한하고 있다네요..해서, 국내여행사에서
트레킹을 주선하는 곳이 없어 그냥 대만여행만 하고 왔네요....
늘 감사드리며 이번 주 정맥마루금에서 뵙겠습니다.^^
대만 여행을 저가 다녀온것 처럼 세세히 잘 묘사해 주셨습니다.짱입니다.
함께 가셨으면 좋았을걸.. ㅋ
언젠가는 히말라야에서의 영광과 환희를 재현할 기회가
반드시 오리라 기대해 봅니다.^^
대만좋아보여요
돈만 있으면 가고 싶어요
그리고
선유도 가시죠?
지난번에 못 보신 무녀봉 보셔야죠
그넘의 돈은 모아서 어디다 쓸려공? ㅋ
무녀봉은 셋째 일욜이 아니라서..^^
좋은 여행하셨습니다.
자세한 설명과 함께여서
저도 함께 여행한 느낌입니다.
구경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히말라야 보다는 감흥이 떨어졌지만
이번 여행도 그런대로 의미가 있었답니다.
일욜 정맥길에서 뵙겠습니다.^^
대만에도 좋은데가 많네요?
설명도 잘해주시고 덕분에 편안하게 눈이호강합니다.
좋은사진 잘 보았슴니다........수고하셨어요.
졸지에 대만 홍보대사가 된 느낌이네요..^^
감사드립니다. 가까운 나라고 해서 한 번
정도는 다녀올 만한 곳이더군요...
잔잔하게 흐르는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정서적 공감에 공명이 길게 이어집니다.
정돈되지 않은 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