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재희시(輕財喜施)- 재물을 가벼이 여겨 베풀기를 좋아한다.
큰 부자로서 논을 만 마지기 이상 가지고, 수십 칸의 집을 짓고 호화롭게 산 사람들이 고을마다 있었지만, 그들은 숨이 끊어지는 동시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기껏해야 그 이웃동네 사람들 정도가 기억하지만, 좋은 기억보다는 좋지 않은 이야기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역사상 남에게 베푼 사람들은 그 이름이 영원히 남아 있다. 주변에 밥 굶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경주(慶州)의 최부자나 일신여자학교(晋州女高 전신)를 지어 기부한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의 허만정(許萬正) 같은 분은 지금도 계속 좋은 사례로서 사람들의 화제에 오르내린다. 재산을 오래 보존하려고 남에게 인색하게 한 푼 안 내어 놓고, 아들 손자들에게 물려주지만, 아들 손자들이 곧 탕진하여 빈 거지가 된다. 그러나 남에게 베풀면 영원히 그 재산이 남고, 훌륭한 이름을 천추에 남기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소유욕이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기 물건 아깝지 않은 사람이 없다. 자기 하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것 다 하고 나서 남을 도우려면 되지 않는다. 생각났을 때 바로 실천해야만 베푸는 일이 가능하다. 생각을 조금만 더 크게 가져 보면, 자기가 모은 재산이라고 해서 꼭 자기 자손들에게만 주어야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불우 이웃돕기 할 때 처음 먹은 마음만큼 실천을 못한다. 진주에 김장하(金章河)란 분이 사는데, 요즈음 세상에서 베풀기를 잘하는 사람 가운데 한 분이다. 이 분은 시내에서 한약방을 경영하고 있다. 돈이 많은 재벌에 비교하면 그의 재산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진주지역에서 무슨 일이 있어 돈이 필요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분을 찾아간다. 왜냐하면 기분 좋게 도움을 제일 잘 주기 때문이다. “발로 차면서 먹을 것을 주면 굶어 죽어 가는 거지도 받아 먹지 않는다”라는 맹자(孟子)의 말이 있다. 도움을 청하러 가는 사람은 어려운 결심을 하고 찾아간다. 도움을 청하는 사람의 자존심을 살리면서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 분은 젊은 시절에 이상적인 교육에 뜻을 두고 오랫동안 재산을 모아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하여 몇 년 운영하다가 국가에 기부를 하였다. 그러고서는 어떤 반대급부도 바라지 않았다. 10년 전 경상대학교 남명학관(南冥學館) 짓는 데 12억 정도의 지원을 하였다. 오로지 남명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오늘날 연구하여 보급하자는 취지에서 거금을 쾌척한 것이었다. 그 이전에 남명학 연구기금으로 1억을 내놓은 적도 있었다. 진주 문화를 발굴하여 널리 알리는 진주문화문고(晋州文化文庫) 간행을 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미 10종의 문고본 책이 나와 보급되고 있다. 그 외 진주 형평운동(衡平運動) 연구사업, 각종 장학금 등 이 분이 지원하는 사업은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이 분은 남에게 자신이 지원한 사실을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신문 기자들의 방문도 철저히 거절한다. 누가 표창장을 주려고 해도 싫어한다. 필자가 이 글에서 자기 이름을 명기한 것을 안다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은 아직도 자기 차도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자신을 위해서 쓰는 경우는 아주 검소하다. 날씨가 춥고 한 해가 저물어가니,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이 분처럼 크게는 못할지라도, 우리 모두가 어려운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마음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輕 : 가벼울 경. *財 : 재물 재. *喜 : 기쁠 희 좋아할 희. *施 : 베풀 시.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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