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치아광장(Piazza Venezia)와 콜로세움(Colosseo)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포로"라는 뜻은 공공 광장이라는 의미로 또한 "포럼"이라는 말의 어원이 여기에서 생겼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상업,정치, 종교등의 시민생활에 필요한 기관의 모든 것들이 밀집해 있던 지역이였다.
로마의 중심지로써 로마제국의 발전과 번영그리고 쇠퇴와 멸망이라고 말하는 로마 2500년의 역사의 무대가 되었고, 중심이 되는 곳을 제외한 많은 건물들이 283년에 대화재로 소실되었다.
로마인의 지하 무덤으로 기독교 공인 전에 그리스도 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지내던 지하 교회나 무덤를 카타콤베라고 부른다. 이 장소는 16-19C에 걸쳐 재발견되었으며, 귀족 가문의 소유였던 지하 매장실로부터 여러 층으로 된 긴 복도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 카타콤베 중 로마 부근의 것은 지하통로의 길이가 500㎞이상 되기도 한다. 또한 카타콤베에는 원시 기독교 예술의 귀중한 재산이 되고 있는 조각, 그림, 형상들이 새겨져 있다. 아피아 거리에 있는 성 칼리스토의 카타콤베가 가장 유명하다.
Quirinale
로마에는 건국의 배경이된 팔라티노 언덕을 비롯하여, 로마가 건설된 9개의 언덕이 있었다. 이곳 퀴리날레 언덕을 비롯하여, 비미날레 언덕, 아벤티노 언덕, 에스퀼리노 언덕, 자니콜로 언덕, 첼리오 언덕, 핀초 언덕이 바로 그곳이다. 퀴리날레 언덕은 이 언덕 중에 가장 고지에 위치한 언덕으로 퀴리날레 광장(Piazza del Quirinale)과 퀴리날레 궁전(Palazzo del Quirinale)이 있고, 오벨리스크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쌍둥이의 상이 있다. 퀴리날레 궁전은 16세기 중반 교황들의 하계 별장 지어졌는데, 1870년까지 교황의 별장으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우리나라의 백악관처럼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고 있다.
카피톨리노 박물관(Museo Capitolino)
카피톨리노 박물관은 법왕으로 칭해졌던 시크스투스 4세가 1471년에 창설된 유럽 최고의 박물관으로 기원 그리스 조각 등을 미켈란젤로의 설계에 의해서 파사드를 가진 관내에 소장하고 있다.
캄피돌리오 광장을 향하는 곳에는 콘세르바토리라는 궁전이 있으며, 그 궁전에는 에트루리아시대의 브론즈상의 걸작으로 알려진 "스피나리오"가 있다.
Museo Galleria Borghese
로마 시내의 북쪽 보르게세 공원안에 있는 미술관으로 1613년 보르게세 가문의 여름 별장으로 지어졌다가 18세기부터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층 갤러리에는 베르니니의 다비드(Davide)와 아폴로와 다프네(Apollo e Dafne) 그리고 프로세피나의 약탈(Ratto di Prosepina), 안토니오 카노바의 파올리나 보르게세( Paolina Borghee) 상 등의 작품이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1483-1520)의 La Fornarina, 루벤스의 피에타(La Pieta, 1602), 보티첼리의 불후의 걸작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형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Colosseum)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진 로마의 상징이며 거대한 원형경기장으로 당시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콜롯세움 주변(Piazza del Colosseo)은 콜롯세움과 포로로마노등의 고대로마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네로의 궁전의 뜰에 있었던 인공연못에 AD 72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80년에 완성된 대형 원형투기장 겸 극장이다. 생사를 겨누는 검투사와 짐승과의 격투기등이 여기에서 개최되었고 80개 정도가 되는 출구에 5만 5000명도 넘는 관객이 입장할 수 있는 경기장이였다. 네로 통치시대를 영화로 한 영화 "쿼바디스"에서는 기독교도의 박해장으로 사용된 콜롯세움 장면을 잘 보여준다. 고대 로마 유적지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최대지름 188m, 최소지름 156m, 둘레 527m, 높이 57m의 4층으로된 타원형 건물이다. 콜로세움은 거대하다는 뜻으로 근처에 거대한 네로상이 있어서 이름 지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1층은 토스카나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의 아치가 장식되어 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려면 입구 반대편에서 엘리베이트를 이용하면 된다. 이곳을 찾아오려면 지하철 b선 롤롯세움역에서 하차하면된다. 레스토랑과 가게가 주변에 거의 없기때문에, 하루동안을 계획하고 관광하려는 사람이라면 음료수와 약간의 먹을 것을 준비해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동전을 던져 사랑을 이루는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
교황 클레멘스 13세에 의해 분수 설계 공모전이 이루어졌으며, 이때 당선된 니콜라 살비의 작품이다. 1732년에 착공하여 1762년에 완성되었으며, 분수의 아름다운 배경은 나폴리 궁전의 벽면을 이용한 조각으로 이루어져있다. 로마시대에서 볼 수 있는 바로크 양식의 마지막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분수 중앙에 자리한 해마가 끌어올린 커다란 조개 위의 냅튠신과 트리톤신의 대리석 조각들은 브라치의 작품이다.
이 분수의 물은 '처녀의 샘'이라고 불리우는데, 이는 전쟁에서 돌아온 목마른 병사에게 한 처녀가 샘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샘을 수원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는 전설을 갖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로마로 돌아오길 소원하며 동전을 던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스페인 광장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으며, 등뒤로 동전을 던져 한번 던지면 로마를 다시 찾을 수 있고, 두 번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세 번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다는 전설이 있는 분수로 이곳의 동전은 정기적으로 수거하여 자선사업에 쓰인다.
고대 로마시대 원형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판테온(Pantheon)
원형은 BC 27년 아우구스트 황제의 사위인 아그리파에 의해 건립되었다. 건립 당시는 정사각형으로 만들어졌으나, AD 120년 아드리아노 황제가 증축하여 정면만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후 잦은 외침과 오랜 풍상 속에서도 청동문과 둥근 천장은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 중에서도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로 남아있다. 16개의 웅장한 정면 기둥은 코린트 양식으로 장식되어 있고, 원형 천장은 격자무늬 장식이 5열로 천장 전면을 덮고 있다. 천장 중심은 지금 9m의 둥근 원이 뻥 뚫려있어 하늘이 그대로 보인다. 사원 앞 로톤다 광장(Piazza della Rotonda)의 분수는 그레고리 13세때 착공을 하여, 클레멘스 11세 때 오벨리스크를 추가하여 완성시켰다. 판테온이란 Pan은 '전부' theon은 '신'이란 뜻으로 로마의 모든 신에게 봉헌하기 위하여 BC 25~17년에 건립한 신전이다. 그러나 AD 609년 의포카 황제가 교황 보니파스 4세에게 이 신전을 기증하여 성모마리아와 모든 순교자들에게 봉헌된 성당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다.
화려하고 사치스럽움의 대명사 카라칼라 목욕탕,Terme di Caracalla
3세기초, 217년에 카라칼라 황제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이 욕장에는 한번에 16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좌석이 갖춰져있다고 한다.
냉수, 미온수, 고운수의 욕탕에 사우나, 헬스장에 도서관, 운동장, 오락실, 휴양실, 정원, 집회실까지 있는 최대크기의 복합시설이였다고 한다. 탈의실이었다고 하는 대리석의 뛰어난 모자이크는 지금도 아름답게 남아있다.
콜롯세움에서 남쪽으로 약 1km정도의 거리에 있으며, 입구의 사이가 220m, 안까지 들어가는데 100m, 디오클레치아노(Diocleziano)의 목욕탕이 만들어지기까지 약 100년간 로마의 가장 큰 목욕탕이였다고 한다. 1100평방미터 이상의 넓이로 남녀혼탕이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로마 시대 개선문 중 가장 상태가 완벽하게 보존된 개선문이며, 규모가 가장 크고, 후기 로마시대의 문화 예술의 걸작품이다. 콜롯세움 바로 옆에 세워져 있으며, 오른편으로 포로 로마노가 위치하고 있다. 로마에서 가장 큰 이 개선문은 밀라노 칙령(313년)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정적 막센티우스와 치룬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으로 AD 315년에 만들어졌다. 높이 21미터, 너비 25m의 세개의 아치형 문이 있고, 코린트 양식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의 독립문을 비롯하여, 인도 델리의 인디아 게이트 등은 모두 파리의 개선문을 모방한 것인데, 파리 개선문의 원조가 된 것이 바로 이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이다.
Marcello
사진만 보면 콜롯세움과 혼동하기 쉬운 이 건축물은 로마시대 축조된 극장 중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유일한 극장이다, 각 층당 41개의 아치로 장식되어진 2층 건물로서 내부는 약 15,000명을 수용하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극장은 줄리어스 시저가 착공을 해서 BC 11년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완성하여 조카이자 사위인 마르셀루스(Marcellus)에게 주었다고 전해진다. 원래는 도리아 양식과 이오니아 양식으로 41개의 아케이드를 세우고, 그 위에는 코린트 양식을 적용하였다고 한다. 외관은 언듯보기에 콜롯세움과 비슷하게 생겼으며, 콜롯세움과 마찬가지로 중세에는 요새로 ?玲逾풔鳴?, 세벨리(Savelli)와 오르시니(Orsini)의 궁전으로 개조되었다. 아폴로 신전(Temple of Apollus)의 세 석주는 다시 세워진 것이다. 이 왕궁의 내부는 19세기의 건축물 양식이 눈에 띄고, 정원이 자리를 잡고 있다. 입구와 정원에는 오르시니의 곰이 조각되어 있다.
FONTANA DEL TRITONE
퀴날레 언덕 주변에 바르베리니 광장을 상징하는 분수로 트리토네 거리의 동쪽 끝편에 자리잡고 있다. 1643년 교황 우르바노 8세의 명에 따라 건축가 베르니니에 의해 완성된 이 분수는 조개 위에 네마리 돌고래가 지지하고 꿇어 앉아 있는 바다의 신 트리톤이 소라를 불며 물을 하늘로 뿜는 모습을 조각하였다.
Circo Massimo
이 장방형의 길쭉한 건물은 시민들의 즐거움을 제공해 주기 위해 지어진 전차경기장으로 벤허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1인승 이륜 전차 경기와 검투사들(글래디에이터)의 검투가 이루어진 곳이다. 지금은 무너진 흔적만 남아있는데, 그 크기가 너비 664mX124m에 이른다. 이 건물은 로마에 있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의 하나로 과거에는 2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경기장이었다. 로마의 역사와 견줄 수 있을 정도이며, 중간 중간에 계속 증축되었다. 이 경기장은 에트루스칸 왕 때, 타르키니오 프리스코에 의해 만들어 것으로 추정되며, 트라얀(Trajan)에 의해 개축되었고, 카라칼라(Caracalla )가 확장공사를 하였다. 현재는 이 지역이 공원과 폐허만 남아 있지만 콘스탄티누스도 개축 공사에 참여하여 이 당시에만 20만명을 수용했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사비니 여인의 강탈(the rape of the Sabine women)' 이야기와 관계가 깊은 곳으로 바티칸 미술관과 피렌체의 광장에서도 조각품을 볼 수 있다.
사비니 여인의 강탈(the rape of the Sabine women)
로물러스 형제에 의해 로마가 세워진 직후 여인들이 부족했었는데, 로물러스는 현재 대전차 경기장이 세워진 곳에서 인근의 사비니인들을 딸과 아내를 동반하도록 초청하여 큰 파티를 열었다. 파티가 열리는 동안 로마사람들은 손님으로 온 사비니 여인을 습격하여 강간하고 남자들은 쫓아버렸다. 이 당시 여자들은 약탈된 재산으로 법적인 권리를 누리지 못했는데, 초창기에는 도망하지 못하도록 감시를 받았으며, 자손들이 로마에 정착한 후에도 여인들의 지위는 노예와 다름이 없었으며, 그들은 이렇게 로마 사회에 융화되었다.
보통 배낭여행을 빼고는 들어가기 힘든 지역으로, 건너편에서 보면 벽면이 보인다. 이 대전차경기장의 오른편은 팔라티노 언덕이, 왼편은 아벤티노 언덕이다.
진실과 거짓말을 가려내는 진실의 입(Bocca della Verita)
보카 델라 베리타 광장에 한켠에 자리잡고 서있는 코스메딘 산타 마리아 성당의 입구 한쪽 벽면에 진실을 심판하는 입을 가진 얼굴 모양의 원형석판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진실의 입이다. 이 원형 석판은 해신 트리톤의 얼굴을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 이 원형 석판은 기원전 4세기경쯤 로마시대에 하수도 뚜껑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는 물건이라고 한다. 어원적으로 풀어보면 '보카 델라 베리타'란 말에서 보카(Bocca)는 입, 베리타(Verita)는 진실을 의미한다.
거짓말을 한 사람이 입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그레고리팩과 오드리 햅번이 주연한 코믹 로맨스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와서 더욱 유명해졌다.
☞ 진실되지 못한 한국인 진실의 입 오른편 벽에는 온갖 낙서가 다 되어 있다. 특히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한글로 된 낙서이다. 시 당국에서 한번 지웠지만 여전히 한글로된 낙서는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해 현지 교민들도 부끄러워할만큼 국제적인 망신을 사고 있다.
천사의 성(Castel Sant' Angelo), Castle of Angel
천사의 성, 카스텔 산 안젤로는 로마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빅토르 엠마뉴엘 2세(Victor Emmanuel II bridge)의 다리 근처에 우뚝 서 있는 성곽건물로 바티칸에서도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다. 현재는 많이 변형되거나 손상되어 원래의 모습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하드리안 황제의 통치기인 AD 130년에 그의 마우솔레움(능묘, mausoleum)으로 만들어졌으며, 카라칼라 시기까지 왕족들의 유적지로 이용되었다. 271년 아우렐리안 황제의 통치기에 성곽 공사를 하였으며, 11세기에 꼭대기에 천사가 있는 탑이 추가로 공사가 되었다. 1277년에 교황이 거주할 수 있는 숙소를 추가로 공사를 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이 성이 '천사의 성'으로 불리운 것은 590년부터이며, 성위에 천사가 나타나서 당시에 창궐하던 페스트의 종말이 올것이라는 것을 예고한 데서부터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로마 북쪽의 거대공원
17세기 보르게세 가문의 정원이었다가 현재에 이르러서는 로마 시민들의 공원으로 변모한 로마 북쪽의 보르게세 공원은 로마시내의 번잡함을 벗어나 한적함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로마를 관광하는 관광객들이 쉽게 이곳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베네토 거리 끝에 있는 핀치아나 문(PORTA PINCIANA)을 통해 이 공원에 들어서는 것이다.
'로마의 휴일'로 유명한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
스페인 광장은 17세기 스페인 영사관이 있던 지역으로,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팩이 주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로 한국에 널리 알려져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이다. 이 광장은 137개의 스페인 계단과 트리니타 디몬티 교회(삼위일체교회)의 종탑 및 오벨리스크가 이채롭다.
광장에는 보트 모양의 17C 대리석 분수가 있는데 베르니니의 아버지 피에트로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바르카시아 분수(조각배 분수)라 불리운다. 여행자들에게 쉴 자리를 제공하며 만남의 장소로도 유명하다.
광장 근처의 86번지에는 바이런, 셸리, 키이츠, 괴테, 보들레르, 리스트 같은 유명 인사들에게 인기있던 그레코 카페가 유명하고, 이 광장 앞거리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명품점 쇼핑가인 콘도티 거리, 코르소 거리로 통해 있다.
로마 교통의 중심지, 베네치아 광장(Plazza Venezia)
포폴로 광장(Piazza del Poplo)에서 남쪽으로 늘어선 코루소거리(Via del Corso)의 하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로마 교통의 중심지로 6개의 주요 도로가 사방으로 뻗어있다.
광장 정면에 "하얀 웨딩케??"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 기념관이 있다. 1871년 이탈리아를 통일한 엠마누엘 2세를 기념에서 건설되었으며, 1911년에 완성된 네오클래식양식의 건물로 유명하다. 엠마누엘 2세국왕의 기마상아래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무명전사의 묘가 있다.
왼쪽에는 베네치아 궁전이 있으며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타원형의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
나보나 광장은 로마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장소로 로마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세 개의 유명한 분수에 둘러싸인 보행자 거리는 항상 볼거리가 많은 곳으로 커피한잔 마시며 거리의 예술가들을 보는 것 또한 로마 여행의 낭만이라고 할 수 있다. 광장에는 거대한 도미찌아노(Domitian) 황제 경기장이 있고 경기장은 수세기동안 손상되지 않아 창시합과 물축제가 열렸던 중세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나보나 광장은 가로 240m에 세로 65m의 도미찌아노 경기장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광장이다. 나보나 광장에는 환상적인 세 개의 분수가 있는데, 네뚜노 분수(Fontana di Nettuno), 피우미 분수(Fontana dei Fiumi), 모로 분수(Fontana del Moro)로 양쪽 끝의 두 분수는 베르니니의 설계에 의해 17세기 조반니 안토니오 마리가 완성하였다. 이 중에서 중앙에 위치한 피우미 분수(1651년)는 베르니니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히는 명작으로 이집트에서 약탈해 온 오벨리스크가 우뚝 솟아 있다. 피우미(Fiumi)는 이태리어로 강이란 뜻으로 나일강, 갠지스강, 라쁠라따강, 다뉴브강 이렇게 4대륙을 형상화하여 만든 작품이다.
광장 앞으로는 까를로 라이날디와 지롤라모 라이날디에 의해 세워진 산타그네세 교회(Sant' Agnese in Agone, 1652)가 서 있다. 이 교회는 304년 젊은 성 아그네스가 배교를 강요당하여 발가벗겨져서 순교한 그 자리에 세워진 교회이다.
캄피돌리오 언덕에 있는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광장(Piazza del Campidoglio)
캄피돌리오 광장은 고대 로마제국의 시작으로 로물로스가 로마제국을 건국한 후, 쥬피터의 신전을 세웠던 고대로마의 중심지였다고 전해진다. 그 이후에 황폐해진 이 언덕에 생명을 불러일으킨 것이 미켈란젤로이다.
또한 광장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것은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황제의 기마상이다. 이 로마황제상은 여기에서부터 남쪽으로 수킬로미터가 떨어져있는 산 조바니 인 라테라노 교회(San Giovanni Laterano)의 근처에 있던것을 현재의 위치로 이동했다고 한다. 중세시대에 로마황제의 동상은 기독교인들의 손에 의해 모두 파괴되었으나 이 동상만이 유일하게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그뒤에 이 동상은 후세에 기마상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캄피돌리오라는 뜻은 수도라는 캐피탈(Capital)의 의미이다.
정면에서 볼 때 우측 건물은 콘세르바토리 궁(Palazzo dei Conservatori)이며 왼쪽은 누오보 궁(Palazzo Nuovo)인데 현재는 둘다 카피토리노 박물관(Museo Capitolino)이란 명칭으로 고대 로마 유적들을 전시하고 있다. 광장 정면의 건물은 고대 로마의 폐허위에 12세기경에 세나토리오궁을 세운 것인데 현재는 로마의 시의회와 시장의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캄피돌리오 광장, 좌/우의 박물관, 시청사 앞의 분수, 꼬르도나타(Cordonata) 계단 등은 모두 미켈란 젤로에 의해 설계된 것들이다. 고대로마시대에는 시청사의 우측의 좁은 길이 포로 로마노(Foro Romano) 이 캄피도리오 언덕을 연결하는 길로 되어있었다
옛 로마의 현관이 였던 포폴로문이 있는 포폴로 광장(Piazza del Popolo)
포폴로광장에는 산타 마리아 디 포폴로 교회를 시작으로 아우구스투스가 기원전 1세기에 이집트에서 가지고 온 오벨리스크와 오르간 분수, 쌍둥이 성당이라고 불리우는 산타마리아 디 미라콜리와 산타마리아 디 몬테산토가 있다.
쌍둥이 성당 사이의 길이 코루소거리, 그 길을 똑바로 걸어가면 베네치아 광장에 이른다. 포폴로광장에들어서면 포폴로 문(Porta del Popolo)이 있다. 예전에는 플라미나아문이 였다. 고대의 플라미니아 거리를 남하하여 내려오면, 이 플라미나아문에 이르러 로마로 들어올 수 있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여기가 로마의 현관이였던 것이다.
로마의 기원 팔라티노 언덕(PALATINO Hill)
로마 탄생의 전설이 되었던 로물로스와 레무스는 이 언덕에서 늑대에게 길러졌다고 전해진다. 아우구스투스를 시작으로 로마황제들이 여기에서 살기를 좋아했으며 그 궁전의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이 언덕 위에 있던 네로의 궁전(Domus Transitoria)은 AD 64년 네로의 로마 대화재로 잿더미가 되었다. 네로는 폐허로 변한 팔라티노 언덕과 함께 오피오 첼리오 언덕, 벨리아 능선을 잇는 넓은 대지를 확보해 새로운 왕궁을 세우고, 화재로 인한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떠넘겨 기독교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역대 황제들의 거주지인 플라비아 궁전(Domus Flavia)과 아우구스타나 궁전(Domus Augustana)과 리비아의 성(Casa di Livia)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핀초언덕(Pincho)
보르게세 공원의 서쪽 끝에 있는 언덕으로 구 시가지를 포함하여 로마의 서쪽 부분을 거의 다 볼 수 있다. 주세페 바라디에가 조성한 언덕으로 그는 이 언덕을 조성한 후 내려다보이는 포폴로 광장을 연이어 조성했다. 특히 이곳에서 바라보는 포폴로 광장의 모습이나, 로마의 석양과 야경은 너무 아름답다.
고대로마 최고의 휴양지, 티볼리(TIVOLI)
로마 북동쪽 30Km 지점의 언덕받이에 위치한 인구 5만3천의 티볼리는 예전부터 고급 휴양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고대 로마시대 때에는 부유한 로마인들의 은퇴 후 정착지로, 르네상스 시대에는 유한계급의 사람들이 너도나도 고급 별장을 지어대는 곳으로 이용되었다. 오늘날의 티볼리는 과거와 같은 부흥을 누리지는 못하고 있으나 부근에 위치한 광천지대로부터 채석한 보석들을 꾸준히 수출함으로써 그 유명세를 이어가고 있다.
티볼리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뭐니뭐니해도 귀족들의 화려한 영지이다. 이 중에서도 방문객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곳은 Largo Garibaldi 광장 맞은편에 위치한 에스테가(家)의 별장(Villa d'Este)일 것이다. 처음에는 수녀원으로 이용되던 곳으로, 1550년 Pirro Ligorio에 의해 Ippolito d'Este 추기경의 별장으로 재건축되었는데 오늘날까지도 이 곳에는 계절에 관계없이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그러나 방문객들의 주 관심사는 어두침침하고 다소 너저분하기까지 한 방들로 이루어진 별장 본 건물보다는 아니에네강에서 끌어올린 수맥을 이용한 아름다운 자연분수들로 이루어진 정원이다. 이태리식 정원의 표본이라고도 할수 있을 이 곳은 그러나 가장 인위적이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가장 독창적으로 상호간에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원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분수들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으로는 베르니니(Bernini)가 만든 Fontana Del Bicchierone(큰 컵,이라는 뜻)가 있는데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것이 마치 가우디의 작품과도 비슷한 느낌이 든다. 좌측으로는 Rometta 혹은 "소로마"라고 불리는 분수가 나 있는데, 로마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을 축소해 둔 듯한 갖갖이 분수들이 오벨리스크를 태우고 있는 배 주변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다. 이 밖에도 길 따라 나 있는 100여개의 사자상에서 가늘게 뿜어대고 있는 "100개의 분수", 마치 폭포처럼 생겨 뒤로 난 작은 샛길을 통해 걸을 수도 있게끔 되어 있는 Fontana Dell'Ovato, 실제로 연주가능한 오르간이 놓여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Fountain of Hydraulic Organ 등이 유명하다. 이처럼 다양한 분수 정원을 거닐면서 주의할 것은 절대로 이 물에 손을 대거나 마시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 정원에서 사용되는 물은 티볼리 하수관으로부터 직접 끌어다 쓰기 때문이다.
Villa d'Este보다는 유명세가 약하지만 광장 북쪽에 위치한 Villa Gregoriana도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1826년에 발생한 대홍수를 막기 위한 방침으로 교황 그레고리 14세가 인위적인 터널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100m가 넘는 높이의 "대폭포"를 비롯해 강의 수맥이 끊기는 듯 하다 다시 하부에서는 나타나는 넵툰과 시렌스(Neptune, Sirens)의 동굴 등은 이 곳의 신비로움을 배가시키고 있다.
티볼리 중심가를 나와 로마로를 따라 15분여 걷다보면(혹은 Largo Garibaldi 광장에서 출발하는 CAT 4번 버스나 일반 로마-티볼리간 버스를 이용) 또 하나의 고대 유적이 나온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직접 지시, 감독(118-138 D.C)하여 만들어진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별장으로, 고대 로마 시대의 별장 중 가장 크고 호화스러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것이다. 이 곳 유적지는 낭만적이면서도 가장 문명화된 당시의 생활상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비록 황제가 거처하던 궁전이 가장 많이 파손되어 안타깝긴 하지만 그외의 부분들은 나름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하드리아누스 본인이 위대한 탐험가이자 실력을 갖춘 건축가이기도 했기 때문에 별장의 일부분은 그가 세계를 돌면서 보아 온 각국의 유명 건축물들을 본 따 지어졌다고 한다. 발굴당시 유적들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들과 곳곳에 남아있는 번영했던 과거의 흔적들을 따라 가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