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전날.
망했구나 싶었습니다. 토요일에 올라가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귀마개까지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굉음에 잠이 깻습니다. 비가 오고 있었고.. 천둥이 쳤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더 푹 잘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서브3리 못하겠네.ㅋㅋ 그냥 스트레스 받지말고 푹 자버리자.
대회 당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비가 계속 오고 있었습니다. 숙소에 원들이 모여 가볍게 아침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동안 몇번이나 비가 내리고 그치고를 반복했습니다. 이러다가 경기 시작전부터 딱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회장 출발선에 설 때까지도 몇번이고 비가 내리고 그치고를 반복하더니 다행히 출발 진전에 비가 딱 멈추었습니다.
철인 경기에서 자주 마주치고 정헌 형님 유튜브에 출연했던 변성현 선수를 만났습니다. 서브3 페이스 메이커를 한다며 자신의 페이스 운영에 대한 이야기를 저에게 해주었습니다. 출발선에 서서 맨 좌측 10번째 줄에 있겠다고 해서 한참을 찾아갔지만 만날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변성현 선수는 페이스메이커 풍선을 착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결국 찾지 못하고 동연 선생님과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레이스.
첫 5km. 서브3 페이스로 달리면 21분 15초. 저는 처음 5km를 22분 50초에서 정확히 23분에 통과하는 것을 목표로 출발했습니다. A그룹 앞에서 출발했지만 페이스가 생각보다 느린 분들이 많아서 피해 달리느라고 초반에 고생을 좀 했습니다. 그 와중에서 시계에 4분 15초가 뜨지 않고 4분 20초-25초 구간에 머물도록 최대한 페이스를 잡으면서 뛰었습니다. 초반 5KM 구간에서 얼마나 무리하지 않고 컨디션을 서서히 끌어올리느냐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1KM 당 한 두 걸음만 빨리 뛰자는 마음으로 4분 20초, 4분 19초, 4분 18초 4분 16초 4분 15초로 정확히 5키로를 통과하고 4분 15초 페이스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12KM 부근 첫 언덕에서 4분 40초가 찍히지 않도록 긴 언덕을 올랐습니다. 너릿재에서 느낀 언덕을 포어풋 탄력으로 탕탕탕탕 차고가는 느낌을 최대한 살렸습니다. 그렇게 신경써서 천천히 올라도 언덕 끝에 오르니 호흡이 좀 차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내리막에서 양 팔을 떨어뜨리고 흉식호흡과 복식호흡을 교대로 계속해서 반복하며 호흡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SUB3 페이스 메이커를 눈 앞에 두고 하프까지 밀고 왔는데 1시간 29분 50초. 너무 아슬아슬한 것 같았습니다. 물론 처음 하프를 천천히 뛰고 서서히 페이스를 끌어올리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 믿음으로 5KM를 더 쫓아 25KM를 지나는데.. 페이스가 그대로인 것 같으면서도 오히려 몇초 느려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엄청나게 고민했습니다. 혼자가야되나.. 끝까지 이사람을 믿어야하나.. 너무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때 옆에서 한무대기 그룹이 한 두걸음 빠른 페이스로 지나쳐갔습니다. 그 그룹은 유니폼까지 맞춰입고 정확히 4분 15초 페이스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룹을 옮겨 선두에 있는 선수에게 "서브3?" 라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해서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전부터 내리던 비는 정말 와이퍼를 빠르게 돌려야 할 만큼 많은 비를 쏟아대고 있었습니다. 천호대료를 지나.. 내리막과 오르막을 반복하다가 오르막 끝에 터널에 들어섰습니다. 저 터널 끝을 보고있자니 정말 답답해졌습니다. 건물이 하나도 안보일정도로 뿌옇게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왼쪽 아킬레스건에 통증과.. 비에 축축해진 신발 때문에 발톱이 들리는 통증이 저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10초만 쉬었다가 양말 위치만 살짝 다시 잡고 갈까.. 아.. 그냥 가야되나.. 아픈데.. 발톱 들릴거 같은데.. 고민이 끝나기도 전에 터널을 벗어나 빗속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는 그냥 경기 끝나고 발톱 뽑자.. 신발에 긁힌데는 데일밴드 바르고.. 그냥 가자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후 따라가던 그룹이 30KM 지점에서 페이스가 1,2초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시계를 봤습니다. 여유가 없습니다. 이대로 1.2초를 한번만 더 밀리면 서브3는 절대 못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가뜩이나 후반에 오르락 내리락이 많은 코스이기 때문에 더욱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혼자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고독했습니다. 비속을.. 혼자 달리고 있으려니 시원하면서도.. 서운하면서도.. 아쉬우면서도.. 자랑스러우면서도.. 외로웠습니다.
좌측 종아리에서 쥐가 올라오고 페이스가 계속 떨어지려고 합니다. 이때를 위해서 훈련한게 있습니다. 힘빼고.. 호흡하고 리듬만 가지고 신발에 튕겨져 나가는 달리기... 몸을 놓고 신발에 맡겼습니다. 그리고 저는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는데에만 집중했습니다. 간간히 시계를 들여다보는데.. 정말 아슬아슬합니다. 3시간 몇초 일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5KM는.. 30KM, 20KM 빌드업 주 훈련의 마지막을 생각했습니다. 더 빠른 페이스에서 차오르는 호흡을 계속해서 억눌러가며 리듬을 잃지 않고 버티려고 노력하던 그 때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도.. 힘들고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이상 신호들... 정말 제 몸 전체가 그만 달리고 멈추라고 저를 말리는 것 같았습니다. 저를 지나치는 사람은 없었고 계속해서 주자들을 추월했습니다.
저 끝에 사거리에서 좌회면하면 골인점이었습니다. 어디선가 "1분!!!!!"이라는 외침이 들렸습니다. 골인까지 약 300M 정도.. 이 시점에.. 여기서 1분은 분명 서브3를 위한 외침이었습니다. 눈을 질끈 감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골인점 앞 공식 계측은 3시간 3분이 지나고 있었고 가민은 2시간 59분 15초...20... 25... 골인... 결승점 안에서는 희비가 엇갈리고 있었습니다. 환호와 탄식이 뒤섞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결승점을 지나고나니.. 막 기쁘지도 행복하지도 않고 오히려 더 차분해지는 느낌만 있었습니다.. 해냈다...
짐을 찾아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공식 기록이 문자로 도착해 있었습니다. 2시간 59분 29초. 서브3를 준비한 지난 몇개월이 막 스쳐지나가고 그런거 전혀 없었습니다.ㅋㅋㅋ 아 춥다 빨리 목욕탕 가서 씻고 싶다는 마음뿐..ㅎㅎ
대회 직전에 제 가슴팍에 팍 꽂히는 조언이 있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확신이 있고 실패하는 사람은 의심이 있다. 계속해서 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었지만 그때마다 한다고 한다고 계속해서 생각을 바로 잡았습니다. 비록 이제 겨우 서브3지만... 이제 달리기, 마라톤을 하기에 적합한 몸이 되어가는 기분입니다. 잠시 몸을 회복하도록 쉬었다가.. 다시 천천히 끌어올리면 더 좋은 순간들이 올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너무 기대됩니다. 모두 응원해주셔서 감사하고 원하는 기록이었든 부족한 기록이었든 23년 JTBC 서울마라톤은 우리 스스로의 소중한 역사가 되는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그러하듯이.. 마무리는.. 달리기 교실 형님 누님들 모두 부상없이 오래도록 함께 운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승환.
첫댓글 제마 후기 잘 읽었어요 썹3 달성 다시한번 축하드려요
👍👍
후기이긴한데, 써브삼 도전 하라고 꼬시는 글인디. ㅋㄷㅋㄷ
글만 읽었는데도 숨이 차네.....레이스의 흐름을 잘 기억해놓으면 나중에 두고두고 도움이 많이 될거얌. 다시한번 썹쓰리 축하!!!!
아~~ 대단하네요. 축하합니다 ^^
서브3 축하드립니다👏👏👏 드라마틱한 후기 감정이입되면서 흥미로웠습니다^^
서브3 축하한다 이제 텐언더 가즈아~~~
박진감 넘치는글 잘봤습니다. 다음대회도 멋진글 뿜뿜
축하축하 섭3축하
축하합니다
대단한 정신력이네요
간절함이 섭3를 만들어낸것 같군^^
축하하고 앞으로도 쭈욱 승승장구하길~~
감동입니다~~^^
한번 해보고 자픈 맘이 들게 만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