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시적 인식세계의 탐색과 서정적 자아 --정태호 시집 『인생이 시가 되려면』 김 송 배 (시인.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1. 자인(自認)의 인생관, 혹은 시사성 정태호 시인이 제5시집 『창세기』 발간 이후 5년만에 다시 『인생이 시가 되려면』을 제6시집으로 발간하면서 그동안 사물과 관념의 행간에서 고뇌해 왔던 그의 형이상적인 시적인 원류인 인생문제에 대하여 깊은 사유(思惟)의 지향점을 심도(深度) 있게 탐색하는 그의 진실을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우리 문단에서 알려진 크리스챤 시인으로서 그동안 기독교적 신앙시를 많이 창작하면서 그의 신앙심도 돈독(敦篤)하게 가꾸어온 박애정신의 실천자라는 명성이 시적인 진실로 발현되고 있어서 그의 주변에서는 아주 근실성(勤實性)을 자타(自他)가 인정하는 시인이다. 일찍이 키르케고르는 「사랑과 생명의 섭리」라는 글에서 “속세의 지혜는 사랑이 인간과 신앙 사이의 관계라고 말하지만 기독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사랑은 인간과 신과 사이의 관계라고 말한다. 그 근거는 신이 사랑의 매개이기 때문이다.”라는 인간과 신앙 사이에서 관계하는 사랑이라는 매개체가 바로 정태호 시인이 갈구(渴求)하는 인간의 진실이며 시적인 자아(自我)의 인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에 대하여 “잘 모르겠다”는 단정적인 어조로 사회적인 비평과 함께 자신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팽배해 있음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는 광화문 네거리에 서서 “은행잎이 물들어 갈 때” 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 사람들 손에서 흔들리고 있을 때” 그리고 “세종대왕께 한글 만드신 감사를 드리려 할 때” 그는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 또는 어떤 자유를 위하여 고함치고 있는지, 그리고 왜 울음마저 삼키며 분노하는지, 가슴으로 부등켜안고 용서해야 하는지(이상 (「잘 모르겠다」 중에서))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면서 인식이 불가하게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한 겨울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 봄빛이 비치는 들길을 느릿하게 달리는 기차여행이려니 가슴바위에 새겨진 세월의 암각이 격한 감동이 되어 자아내는 자연의 순한 조화는 털어 내기도 어려운 끈적한 시기와 품속에 감춰진 사랑 같은 질투인데 절제된 인내로 온전히 가려진 위선이 어리석은 분노를 삼키고 아리고도 슬픈 기억의 편린들과 섞여 수묵화처럼 담백한 희망과 절망의 담벼락 이편과 저편 끊어질듯 이어 가는 인연의 역사인 것을! --「인생」 전문 정태호 시인은 여기 “인생”의 정의에서 한겨울 암흑의 터널에서 벗어나 봄빛 비치는 들길을 느리게 달리는 “기차여행”이라고 전제(前提)를 하면서 “자연의 순환 조화”와 “어려운 끈적한 시기”와 “품속에 감춰진 사랑 같은 질투”를 모두 해소하고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구현하려는 어조로 작품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불편한 상황들을 조화롭게 정리하는 방편으로 그가 적시한 결론적인 어조가 “절제된 인내로/ 온전히 가려진 위선이/ 어리석은 분노를 삼키고/ 아리고도 슬픈 기억의 편린들과 섞여/ 수묵화처럼 담백한/ 희망과 절망의 담벼락 이편과 저편/ 끊어질듯 이어 가는 인연”임을 인식하고 자각(自覺)하는 심리적인 발현이 곧 종교적인 신앙심의 원류에서 생성하였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이러한 사회적인 갈등은 시기와 질투 등의 위해성(危害性) 현상들을 융합하고 극복하면서 “고집이 아니라서/ 스스로 깨닫는 자존/ 필히 지키리라 나의 자리/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내 자리」 중에서)”는 등으로 인생이라는 위대한 명제(命題)를 명징(明澄)하게 정립하는 그의 시법은 삶에서 감지하는 고뇌를 스스로 인식하고 긍정하는 의식의 흐름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쉼터가 있는 마루터기에 오르면 쉬어야 한다 오르느라 숨이 찼던 말았던 힘이 들었던 아니든 숨 한 번은 크게 쉬고 가야지 벤치나 정자 따위는 없어도 좋다 등걸이나 펀펀한 돌멩이만 있어 앉을 수만 있다면 혹 없을지라도 날이 저물어 길을 잃어버리지만 않는다면 내려가는 길을 서두를 거야 없지 저항의 담벼락을 악착같이 넘어야 할 이유도 앙갚음의 독을 품을 이유도 없는데 둥치들과 어울려 더불어 사는 것이 숙명이라면 자연의 이웃들엔 약이 되는 법 인생이 시가 되려면 동양화가 되려면 여백을 한 뼘 정도는 가지고 가야 되겠지 --「인생이 시가 되려면」 전문 한편 정태호 시인은 이처럼 “인생이 시가 되려면” 어떠한 형태의 지향적인 삶과 정신의 각성이 필요한가를 소상하게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상황 설정에서 “쉼터가 있는/ 마루터기에 오르면 쉬어야 한다”는 “인생=시”라는 등식을 성립시키기 위한 도입부분에서부터 “오르느라 숨이 찼던 말았던/ 힘이 들었던 아니든/ 숨 한 번은 크게 쉬고 가야지”라는 어조로 인생 고행의 노정(路程)을 적시하면서 “날이 저물어 길을 잃어버리지만 않는다면/ 내려가는 길을 서두를 거야 없지/ 저항의 담벼락을 악착같이 넘어야 할 이유도/ 앙갚음의 독을 품을 이유도 없”다는 평온한 사유로 평범한 인생의 행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그는 결론으로 “인생이 시가 되려면/ 동양화가 되려면/ 여백을 한 뼘 정도는 가지고 가야 되겠지”라고 인식의 범주를 천명(闡明)하고 있어서 그가 해법을 탐색하는 제재가 인생과 시의 위의(威儀)나 본령(本領)으로 접근하는 그의 인생관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 밖에도 그의 인생론은 작품 「네가 아는 게 뭐냐」 「멋」 「면도」 「시대」 「시적 진실」 「여기까지 왔는데」 등에서 그의 진솔한 내심을 읽을 수 있게 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영역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2. 시간성에서 투영하는 서정적 자아 정태호 시인의 시적 상상력에는 시간성에 대한 감응이 많은 작용으로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간성이 갖는 세월에 대한 서정적인 안온한 발상에 많은 열정을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시간성에는 춘하추동 사계절에 대한 섭리에 따라서 시인의 감정도 변하지만 시적인 상황이나 이미지의 다변화에도 예리한 착목(着目)의 시선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는 작품 「세월」 중에서도 “절망 없는 열정이지만 질투마저 느끼지 못하는/ 배신하지 않는 속도/ 그걸 놓쳤다.”는 어조로 세월의 속도문제는 세월을 따라잡지 못하는 발걸음이라고 그는 세월, 이 시간성에 대하여 다양한 상상으로 의미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시적인 제재로 취택한 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대한 정감적인 이미지로 그의 특유의 서정성을 발현하고 있어서 그의 안온한 성품과 같은 작품의 흐름을 이해하게 되는데 사계의 시간성이 포괄하는 의미적인 요소는 무한대하며 자연의 섭리도 이 시간성과 동행하게 되는 것이어서 그 변화에 따라서 생성하는 작품의 전개는 다양하게 현현되는 것이다. 아직은 써늘한 기온에 기가 죽는다. 남쪽 동백과 매화는 꽃 핀 지가 오래인데 내가 사는 근교는 살구꽃은 피었지만 벚꽃은 망울만 맺혔다. 생강나무도 산수유도 다 피었는데 개나리와 진달래는 성급한 놈만 몇 몇이 얼굴을 내밀었다. 해가 정동에서 뜬다기에 일출보기를 기대했지만 어제부터 내리던 봄비가 새벽에도 안개비 되어 사방에 보이는 게 없다. 춘분에 비가 오면 병으로 앓는 사람 없고 풍년이 든다고 하니 태평세월 오겠지. 동쪽의 운기(雲氣)를 살필 수 없으니 보리농사를 가늠할 수가 없는데 어차피 보리농사로 끼니를 잇는 게 아니니 교통사고 걱정이나 해야지. 과학이란 도구가 없던 시절 경험에 따른 속설들인지라 믿는 사람도 드물고 아는 이도 드물지만 변치 않는 것은 태양이 춘분점 위에 머문다는 사실 그것이 춘분이다. --「춘분」 전문 먼저 봄에 관한 그의 내면에 잠재한 서정성은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보기로 한다. 봄이 되면 자연과 인간 모두가 공통적으로 지각하는 정감이 있는데 이는 새 희망이다. 새로 탄생하는 새 생명의 싹들이 소생하는 계절의 향훈(香薰)이 온 천지를 뒤덮는다. 우리들은 봄이 오면 새로운 삶의 계획을 세우면서 소망을 위한 실천을 충실하게 이행하려 노력한다. 그는 “아직은 써늘한 기온에 기가 죽는다./ 남쪽 동백과 매화는 꽃 핀 지가 오래인데/ 내가 사는 근교는 살구꽃은 피었지만 / 벚꽃은 망울만 맺혔다.”는 “춘분” 절기의 상황을 설정하고 아직도 싸늘한 기온에 대한 상심(傷心)이 앞선다. 생강나무와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의 늦은 개화마저 봄비에 가려서 사방을 분간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 그는 “춘분에 비가 오면 병으로 앓는 사람 없고/ 풍년이 든다고 하니 태평세월 오겠지.”라는 기원의 어조로 봄의 이미지를 위무(慰撫)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 「봄」 중에서도 “헐렁한 시간을 뚫고/ 닫힌 겨울의 문을 열고 있는/ 너/ 슬픈 몸짓에도/ 싹 틔우고 꽃 피우는 희망/ 왔구나. 확실히”라는 봄에 대한 새 희망에 고뇌의 어조가 눈길을 끄는 것이다. 그는 봄에 대한 작품을 「설악」 「청보리 축제」 「4월」 그리고 여름에는 「한여름밤의 꿈」 「매미소리 유혹」 「배롱나무」 「빗소리」, 가을에는 「상강」 「한로」 「백로」 등에서다채로운 변화 이미지의 형상화로 계절의 섭리를 시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들이 많았지만 지면관계로 봄과 겨울에 관한 그의 시적 진실을 알아보기 한다. 초겨울, 닷새나 남은 대설 절기 눈발이 간간이 날리는데 새벽 기도 마치고 교회 뒷산 시루봉을 오르다가 뒤를 돌아보면 멀리 산너울 사이사이 울 엄니 아리랑이 산안개로 피어오른다 지금은 요양병원서 아들 이름도 모르는 타령조 한 맺힌 그 가락이 어린 동생 등에 업고 행상 꾸러미 머리에 이고 비틀걸음으로 춤추는 노래가 되어 피로가 스멀스멀 노동으로 다가오다가 잰걸음으로 도망간다. 다섯 살 큰아들 앞세워 걷던 시절 원망처럼 자라던 울 아베 살아생전의 빈자리 누더기를 깁듯 짜 맞춘 기억도 이젠 배고픈 보릿고개 추억이 되고 산너울 아름다운 풍경이 무덤처럼 선명한 침묵으로 다가서는 우주가 되고 여명을 깨치고 솟아오르는 일출 시린 숨결로 햇살을 비추면 아픈 추억은 엉뚱한 몸살이 되고 잠들었던 침묵이 다시 기지개를 켠다. 아프게 --「겨울 일출」 전문 정태호 시인의 겨울은 “초겨울, 닷새나 남은 대설 절기/ 눈발이 간간이 날리는데 새벽 기도 마치고/ 교회 뒷산 시루봉을 오르다가 뒤를 돌아보면/ 멀리 산너울 사이사이 울 엄니 아리랑이/ 산안개로 피어오른다”는 상황은 겨울만 되면 “울 엄니 아리랑”이 불현 듯 다가오는 회상의 이미지를 생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체험은 그가 겨울새벽에 재생하는 사모(思母)에 대한 정감적인 이미지가 겨울 일출과 동시에 발현하는 상황 설정으로 다시 “지금은 요양병원서 아들 이름도 모르는/ 타령조 한 맺힌 그 가락”으로 그의 뇌리를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들려주는(shwimg) 어조는 “다섯 살 큰아들 앞세워 걷던 시절/ 원망처럼 자라던 울 아베 살아생전의 빈자리”라는 기억만이 생생하게 현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처럼 겨울과 부모(울 엄니와 울 아베)를 대입하여 보릿고개의 추억이나 아픈 추억들이 그의 서정성을 더욱 감도 높게 발현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을 흡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작품 「세모에」 「해빙기」 「어느 설날에」 「대설」 「동지」 「소설」 등등에서 겨울 이미지의 형상화에 다양한 현상을 보여주거나 들려주고(story telling) 있어서 모두들 “먼 산 설경”의 예술(「소설」 중에서)을 만끽(滿喫)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결론적으로 “겨울 허기진/ 몸을 비틀다가/ 비틀다가 그치고 나면/ 안 비트는 거 그냥 트는 거/ 단절된 불쌍한 세상과의 연결고리/ 아직은 여린 생명의 씨앗/ 탈피(脫皮)의 고통이다/ 그래서 희망이다/ 우주를 보다/ 자연으로(「움」 전문)”라는 자연 친화라는 서정적인 자아를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3. 기독 신앙 진리를 통한 사회적 분출 정태호 시인은 기독교인으로서 교회생활과 함께 사회생활도 착실하게 영위하는 시인이다. 그는 목회활동을 통해서 인성 교화뿐만 아니라 시회적인 부조리와 갈등 등을 해소하는 해법을 적시하는 신앙적인 여망(輿望)이 넘치는 작품을 많이 창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간절한 기도는 “주님!/ 이 한 해가 가기 전에 이 슬픈 현실이/ 오늘 주님의 탄신을 기뻐하며 영광 돌리는 성도들에게서/ 영원히 깨끗이 물러가게 하소서.(「코로나 크리스마스」 중에서)”라거나 “사랑이 믿음 되어 사랑이 소망되어/ 향기로 빈 틈 메워 내 삶을 풀어내면/ 아버지 부르는 기도 가슴 속에 머문다.(「수석 묵시록」 중에서)”는 간구(懇求)의 어조는 그의 진정한 기원의 의식이 분사(噴射)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파렴치범들의 위선을 덮는 합리화의 승리다 세월이 지나 위선의 화석이 발견되고 진실이 밝혀진다 한들 합리화의 권력들은 단체로 살아 숨쉬고 진실은 위약한 숨결로 존재 자체로만 만족할거지 바리새인들의 위선에 항거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림의 순교가 없었던들 오늘 우리들의 구원은 영원히 땅 속에 묻혀 암염이 되거나 동굴의 어둠으로 남았을 것을. 아무리 썩지 않는 소금일지라도 제 때 제 자리에 뿌려지지 않는다면 소용없는 것 빛은 동굴 밖에서야 무용지물인 것을. 암염이 되지 않고 동굴이라도 밝힐 수 있는 오늘의 사명을 찾아 나서야 하건만 광화문에서도 시청 앞 광장에서도 오늘 또 머뭇거리고 있네. --「빛과 소금」 전문 정태호 시인의 사회성 짙은 현장이다. 그는 도입부분에서 “역사는/ 파렴치범들의 위선을 덮는 합리화의 승리다”라는 강한 어조로 의미심장한 사회적 모순에 대한 갈등과 고뇌를 시적 상황으로 설정하고 이러한 위선들이 세월이 지난 후에 진실이 밝혀진다해도 “합리화의 권력들은 단체로 살아 숨쉬고/ 진실은 위약한 숨결로 존재 자체로만 만족”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지성인의 고뇌는 그의 신앙적인 시심(詩心)으로 형상하면서 공감을 유로(流路)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바리새인들의 위선에 항거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림의 순교가 없었던들/ 오늘 우리들의 구원은 영원히 땅 속에 묻혀/ 암염이 되거나 동굴의 어둠으로 남았을 것을.”이라는 독백 같은 어조로 갈등요소를 한탄(恨歎)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들이 썩지 않는 소금이라도 시기적절하게 뿌려지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으며 빛도 어둠이 사라진 바깥에서는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는 어조로 그의 신심(信心)이 이를 해소하는 해법을 찾기 위해 나서야 하지만 “광화문에서도/ 시청 앞 광장에서도/ 오늘 또 머뭇거리고 있네.”라는 어쩔 수 없이 좌절된 심경(心境)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많은 소재에서 신앙에서 왜곡되는 현실적인 고뇌들이 적나라하게 현현되고 있는데 작품 「사순절」 「눈물의 노래」 「군상」 「베드로의 눈물」 등등에서 그가 지향하는 시적인 진실의 해법을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어지러운 소식은 더위를 식힐 줄 모르는가보다. 아파트값이 오른다고 양도세 올리면 서민들 시름이 줄어들겠냐? 어리석은 위선의 껍질이 곤두박질치는 민주주의의 한 모퉁이에서 습기는 세금고지서가 되어 끈적인다. 홍수경계수위를 넘나드는 댐 수위만큼이나 위험천만한 법안들이 줄줄이 통과되어 목줄을 죄어오는데도 푸른 집 참모들은 다주택자라면서도 시가보다 높은 값에 매물로 내어놓고 자리보전한다는 뉴스나 산사태 이재민의 눈물과 둑 터진 물살에 휩쓸린 농경지 앞에서 한숨 토하는 농부들의 절망 앞에서 재난복구에 앞장서는 자원봉사자들의 땀방울은 장마가 개이고 희망을 쏘아 올리는 나라의 푸른 雪晴이어라. --「장마」 전문 정태호 시인의 정의로운 삶을 구현하고자 그의 지적인 양심의 호소를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평소에 여망하는 서회적인 모순을 신심과 더불어 그의 양심에서 해법을 모색하는 진정한 인본주의(humanism)의 실현을 위한 지성인의 지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아피트 값과 양도세 그리고 시민들의 시름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이를 “어리석은 위선의 껍질이 곤두박질치는/ 민주주의의 한 모퉁이에서/ 습기는 세금고지서가 되어 끈적인다.”는 어조와 더불어 “홍수경계수위를 넘나드는 댐 수위만큼이나/ 위험천만한 법안들이 줄줄이 통과되어/ 목줄을 죄어오는데도” 담당 관리들은 손을 놓고 다른 변명만 하는 현실의 모순들을 신랄하게 비평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영국의 시인 M. 아놀드는 시는 인생비평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로 시의 사명이나 위상을 강조한 바가 있는데 인생비평이 곧 삶에 대한 인간들의 행동이나 사유의 범주가 인본주의 개념에 미치지 못하고 부조리하고 불법이라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편법에 대한 갈등들을 해소하는 해법을 시로써 탐구하고자 하는 그의 진실을 이해하게 한다. 그렇다. 그는 지금 이 사회가 앓고 있는 “자리보전”이나 “이재민의 눈물”, “농부들의 절망” 등 산재한 모순들에서도 재난복구에 앞장서는 자원봉사자들의 노고에는 찬사를 보내면서 시적인 사회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정태호 시인이 가슴 아프게 적시하는 시적 사회성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간추릴 수 있을 것이다. -말잔치 뿐이더라도 위험은 알고 있다는 표시일진대/ 우리는 위험하다고 원자력 발전소는 폐 쇄하면서/ 미사일 쏜 거는 못 본척하네.(「서부전선 이상 없다」 중에서) -한 시대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이 나라 영원한 백성으로 살려면/ 위선으로 뭉쳐/ 위장전입 이나 할거나/ 이사 가려는 참에(「적폐청산」 중에서) -그나마 서울대 나온 건축사의 답/ 문화에 대한 단 한 마디 공약도 없는 대선/ 당연한 정국 (「충격」 중에서) -메스컴에서 미세먼지로 난리다/ 기상청도 고민이다/ 미세먼지나 황사가 예전에는 없던 물질 도 아니었지만/ 요즘에 특히 민감한 이유는/ 오염물질이 많이 함유된 때문(「호들갑」 중에서) -민초 들이 눈물과 땀으로 심어 일군/ 민족의 터전 대한민국/ 번영의 꽃을 꺾는다./ 양심을 위리안치 시키고(「노벨과 알 카에다」 중에서) -민주, 공정을 외치면서도/ 독선 독재, 위선 가식을 일삼는 것처럼.(「장독대」 중에서) -괭이 갈매기 울음소리 같은 게다짝들 회유에 귀 막고/ 물개 불알 같은 죽창들 선동에는 눈 감으며/ 순수한 우리들 노래를 부르자꾸나.(「독도야! 애국가를 부르자」 중에서) -신속항원검사 양성반응은 일주일 자가 격리/ 봄꽃놀이도 황급히 도망가고/ 종심의 나이도 무력하여 몸뚱이는 천근이다.(「자가 격리」 중에서) 우리가 당면한 현실적인 갈등은 너무나 많다. 북한이 미사일 쏜 일, 위장전입 ,대선 공약, 미세먼지, 황사, 오염물질. 민초들의 눈물. 게다짝의 독도 선동. 코로나 방역 등등 어쩌면 위정자들이 해결해야 할 사회적인 문제들이다. 이를 작품으로 형상화헤서 시인의 여린 외침이지만 사회에 경종(警鐘)을 울려주고 있는 것이다. 4. 생명의 상징, 자연 동화와 서정성 정태호 시인은 서정시인이다. 그러나 그의 시심 내면 깊숙이 잠재한 사유의 범주에는 간혹 치미는 시사성 짙은 울분 같은 것이 내재하고 있어서 그가 접하는 만유(萬有)의 자연 사물에서도 간혹 그 이미지를 현실성에서 유발하는 비평의 감도를 가미하는 시법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이미 시간성에서 사계절의 섭리에서 서정적인 자아를 관찰하였는데 여기서는 그가 계절에서 접목하는 자연의 동화에 대하여 읽어보기로 한다. 그는 우선 봄의 생명인 화훼류(花卉類)에 대하여 남다를 관심으로 많은 담론을 교감하면서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미 작품 「봄은 사랑이다」 중에서 “봄은 생명이다./ 사람들의 빛이 되어/ 태초부터 같은 색깔로/ 만민의 땅 위에 복을 뿌리니/ 가지엔 움이 트고 / 꽃들은 무례히 행하지 않고/ 향기가 나서--중략-- 믿음이 계절을 믿는다./ 성장을 소망하는 생명이 사랑을 익힌다.”는 봄의 생명에 대한 이미지를 사랑으로 풀이한 서정성을 들려준 바가 있는 것이다. 생명이 긴 풀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토양의 질도 가리지 않는다. 고샅길에서도 자드락길에서도 아스팔트 터진 틈새에서도 잎 틔우고 꽃 피운다. 시베리아 동토에서는 여름이 다 가서도 꽃 피우고 열매 맺는다. 더위 식히는 복날에 민들레가 꽃 피운 것을 보니 반갑고도 측은하다. --「민들레」 전문 그는 흔하게 지천으로 피어있는 민들레의 생명성을 감응하고 있는 것이다. 민들레는 고샅길이나 자드락길 또는 아스파트 틈새 그리고 시베리아 통토 등 토양의 질도 가리지 않고 잎과 꽃을 피우는 긴 생명의 풀에 대한 경외감(敬畏感)을 적시하면서 “생명만이 신성(神聖)하다. 생명에의 사랑이 가장 첫째가는 미덕이다”이라는 프랑스의 비편가 롤랑의 명언을 되새기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의 인격화에는 시학에서는 감상적 오류라고 해서 동화(同化-assimilation)와 투사(投射-project)의 두 가지 원리를 적용하고 있는데 동화는 시인이 모든 자연을 자신 속으로 끌어와서 그것을 내적으로 인격화하는 것이며 투사는 자연 속에 자신을 상상적으로 투영시켜서 자신이 자연이 되는 원리, 이 두 가지의 양상으로 이미지를 창출하는 특징이 있는 것이다. 담쟁이는 풀이다 본시 순한 풀이다 깊은 산 자연 속에서 자라나 심성 고운 풀로 자라 스스로의 몸을 살라서 한 무리 군락을 이루고 희생으로 빚어진 쓰임새는 약초다 담쟁이는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 수분과 진을 나눠 먹으며 더불어 산다 간혹 바위를 타고 오르기도 하지만 벽을 탐하지는 않는다 스스로 희생하기에 절망도 없다 담쟁이가 절망을 느끼게 된 것은 자유의지를 잃고 시멘트나 벽돌 담벼락에 옮겨 심어진 연유다 시멘트에 붙어살다가 독을 먹고 절망을 이기고는 독초가 되었다 그래서 담쟁이는 벽을 넘지 말아야 했다 --「담쟁이는 풀이다」 전문 정태호 시인은 이 담쟁이라는 자연에서도 생명성의 중요한 이미지가 내재되어 있는데 이는 “본시 순한 풀이‘었는데 우리 인간들과의 생황에서 많은 고초를 겪는 상황에서 독초로 변하는 절망의 어조가 약간의 시사성을 함축하고 있어서 그는 약초와 독초의 행간에서 감지하는 것은 결론으로 “담쟁이는 벽을 넘지 말아야 했다“는 체념으로 자성하는 것이 자연과의 교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자연 교감에서 풀을 비롯하여 꽃에 대한 그의 사유는 작품 「산수유」 「무화과」 「매화」 등등 봄의 계절적인 이미지를 서정적으로 현현하여 우리들의 이목을 집중하고 있으며 한편 꽃에 대한 연작시를 다셧 편이나 발표하고 있어서 자연 중에서도 그의 꽃사랑은 남다르게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나부끼며 흔들리는/ 너의 일거수일투족/ 내게는 여왕의 몸짓이다/ 사랑이다/ 아니 권력이다/ 내가 내지르는 고함의 환호는/ 보답이다/ 아니 믿음이다/ 정의로 되돌아오는 (「꽃 5」 전문)”이라는 절규는 “너”라는 화자(話者)를 통해서 청자(聽者)인 우리들에게 분사하는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그의 서정성에서도 시사적인 어조를 내포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는 자신을 인식하는 인생관과 계절의 시간적인 이미지에서 서정적 자아를 탐색하고 그의 투철한 기독신앙의 신심과 더불어 사회적인 고뇌를 분출하고 마지막으로는 자연섭리에 대한 사랑과 생명의 존엄성을 탐구하는 시법이 공감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시집 출간을 축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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