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한담해변. 애월읍 곽지리와 금성리 해안으로 이어진 ‘곽금3경’ 중 한 곳이다. 평일인데도 해안절벽을 따라 들어선 이곳 카페와 음식점은 찾는 사람이 많아 북새통을 이뤘다.
카페만 80여 곳이 있는 이곳은 제주를 대표하는 카페거리다.
2015년 지드래곤이 카페를 운영한 뒤로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지난 2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한담해변 산책로를 걷고 있는 관광객들. 이곳은 2015년 지드래곤이 카페를 운영한 뒤로 카페촌이 됐다. 최충일 기자
서울에서 온 김동현(30)씨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로 한담해변을 검색하면 서울 강남, 부산 해운대 못지않게 핫플레이스 카페가 많다”며 “주변 경관도 뛰어나고 개성 있는 카페도 많아 자주 찾고 싶은 곳”이라고 했다.
제주도에 따르면 제주는 인구 대비 커피숍·카페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많다고 한다. 지난 1월 기준 제주 커피 음료점은 2062곳이다. 이 가운데 제주시가 1411곳, 서귀포시 651곳이다. 인구(70만 명) 339.5명당 한 곳인 셈이다.
지난 2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한담해변 야자수 광장을 찾은 관광객들. 이곳은 2015년 지드래곤이 카페를 운영한 뒤로 카페촌이 됐다. 최충일 기자
제주는 수많은 1위 기록 보유 섬이다. 우선 제주도 자체가 한국에서 면적(1850.23k㎡)이 가장 넓은 섬이다. 또 인구 대비 박물관 숫자나 유실·유기동물, 국립자연휴양림 이용객 등도 1위다. 지역사회 생활상을 보여주는 조이혼율, 다문화 혼인 비중, 외국인 비중, 고용률, 가구당 자동차 대수, 전기차 보급률, 친환경차 등록 비중,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율 등도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등이다.
이뿐 아니라 사회·환경 문제와 관련 있는 청소년·성인 비만율과 흡연율, 자살 증가율, 고독사 증가율, 농가 부채, 청소년 온라인 도박 위험 집단, 인구당 범죄 발생과 발생 증가율, 간암, 대장암, 간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 등 개선해야 할 1위도 적지 않다. 이번에는 제주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많은 1위 기록을 보유하게 됐는지 알아보자.
한 집 걸러 한 집이 카페
지난 24일 오후 만난 유승철 지알브이티(GRVT)로스터스 바리스타 팀장은 "제주도 내에 카페가 늘어나다 보니 과당 경쟁으로 운영난을 겪는 곳도 꽤 있다"고 말했다. 최충일 기자
제주가 보유한 각종 1위 기록 가운데 관광과 관련된 게 몇 가지 있다. 카페가 많은 것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관광객이 늘면서 프랜차이즈뿐 아니라 개인이 차린 소규모 카페도 덩달아 증가했다. 연예인을 내세우거나, 제주로 이주한 연예인이 직접 경영하는 대규모 카페는 번호표를 받고 오랜 시간 기다릴 정도로 인기다. 얼마 전에는 국내 최대 규모 프랜차이즈 커피점이 제주시 구좌읍 송당 부근에 문을 열었다. 소문을 듣고 지난 18일 그곳을 찾아갔으나 너무나 긴 대기 줄을 보고 발길을 돌렸다. 제주 커피 음료점은 2017년 말 784곳에서 2018년 994곳, 2019년 1217곳, 2020년 1501곳, 2022년 2061곳으로 증가했다.
카페 ‘지알브이티(GRVT) 로스터스’ 유승철 팀장은 “요즘 잘나가는 카페는 제주에서 생산하는 당근·감귤·청귤 등으로 시그니처 메뉴를 만드는 곳이 많다”며 “그런 음료가 블로그 등 온라인 공간에서 홍보가 잘 된다”며 나름 노하우를 소개했다. 반면에 유 팀장은 “업체가 난립하다 보니 과당 경쟁으로 운영난을 겪는 곳도 꽤 있다”고 했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여행의 명과 암
제주도 내 중산간 들판에서 포획한 제주 들개. 제주도는 전국 인구 대비 유실 유기 동물 발생건수가 71.1건으로 가장 많다. 최충일 기자
인구 대비 유실·유기동물 발생 건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것도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2022년 제주지역 인구 1만 명당 유실·유기동물 발생 건수는 71.1건이다. 이는 전국 평균 21.8건보다 49.3건 많다. 2021년 76.3건보다 5.2건 줄었지만 2021년에 이어 1위를 유지했다. 지난해 제주에서 입양된 유실·유기 동물은 650마리(13.4%), 소유자에게 반환된 것은 270마리(5.5%)다. 유기동물 가운데 반려견은 들개로 변해 사람과 가축을 위협하기도 한다.
제주에 여행왔다가 반려동물을 버리고 가는 ‘원정 유기’도 많다고 한다. 동물을 사실상 ‘물건’으로 보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제주도의 관광지인 서귀포시 남원읍 휴애리를 찾은 반려견과 가족.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는 반려동물 동반 가능 관광지 정보를 제공하는 '혼저 옵서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는 국내 반려동물 양육 인구 1500만 명 시대를 맞아 반려견 동반 가능 카페·식당 정보를 제공하는 ‘혼저 옵서개(어서 오세요)’서비스를 하고 있다. 관광지, 식당·카페, 숙박시설, 병원 등 기본 정보(영업시간, 위치, 반려동물 동반 관련 주의사항 등)를 조사해 공식 관광 정보 포털(비짓 제주)에 담고, 관련 정보만 따로 모아 한번에 볼 수 있도록 ‘혼저 옵서개 E-Book’을 제작해 배포했다.
제주의 힘, 고용률 70.1%
지난 8월 기준 제주도 고용률은 70.1%로 전국 1위였다. 고용률은 전기·운수·통신·금융업, 사업·개인·공공서비스업, 도소매·숙박·음식점업에서 지속적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전기·운수·통신·금융업은 화물차·퀵·택배 등에서 8000명(25.8%), 도소매·숙박·음식점업은 5000명(5.3%) 증가했다. 사업·개인·공공서비스업에서는 공공근로, 돌봄, 호텔 객실·건물 청소 분야 고용 증가로 7000명(4.2%) 늘었다.
제주도 관계자는 “중국 단체여행 전면 허용 등에 따른 해외관광객 유입과 워케이션 등 체류형 관광 활성화가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제주 지역사회 특성을 보여주는 1위 통계도 많다. 지난해 외국인과의 혼인 건수 비중은 10.4%로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높았다. 외국인과 혼인 건수는 2020년 249건에서 2021년 199건으로 감소했다가 지난해 284건으로 42.7% 급증했다. 외국인과의 이혼 건수 역시 2021년 108건에서 지난해 127건으로 17.6% 상승했다. 이 역시 전국 1등이다.
이혼율이 높은 이유가 뭘까?
2022년 제주지역 조이혼율은 전국 평균 1.8건을 상회하면서 여전히 전국 1위다. 지난해 제주 지역 이혼 건수는 1564건으로 전년 1490건 대비 5.0%(74건) 늘었다. pixabay
2022년 제주지역 조이혼율은 전국 평균 1.8건을 상회하면서 여전히 전국 1위다. 조이혼율은 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를 말한다. 지난해 제주지역 이혼 건수는 1564건으로 전년 1490건 대비 5.0%(74건) 늘었다. 지난해 이혼 건수가 증가한 지역은 전국 17개 시·도 중 제주와 충북(15건)뿐이다.
전문가들은 이혼율 증가 원인으로 ‘개인의 행복 중시 현상’과 ‘가치관 변화’ 등을 꼽았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반드시 ‘결혼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20년까지 이혼 사유 가운데 부동의 1위는 ‘성격 차이’며 ‘경제적 원인’과 ‘배우자 부정’이 뒤를 이었다.
제주 여성 생활력과 경제력
김세희 제주지방변호사회 부회장은 제주도의 조이혼율이 높은 이유 중 하나를 '여성의 경제력이 강한 점'을 들었다. 최충일 기자
이와 관련, 굳이 제주만의 특별한 사정을 꼽는다면 여성 생활력과 경제력을 들 수 있다. 김세희 제주지방변호사회 부회장은 “제주 여성이 옛날부터 생활력(경제력)이 강했다”며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다른 지역 여성보다 과감하게 이혼을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직접 돈을 벌고 경제력이 있다 보니 남성에게 얽매여 휘둘리는 처지가 아니라는 의미다.
서귀포시 보건소의 복도에 걸려 있는 '술 권하지 않고 절주하기' 문구. 제주도는 비만율·흡연율·음주율이 다른 지역보다 크게 높다. 최충일 기자
지역 특성이 반영된 전국 1위도 있다. 2013년 이후 줄곧 1위를 차지하는 있는 청소년 비만율이 그렇다. 이런 현상은 걷는 것보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학생이 느는 것과 무관치 않다. 특히 등하교 시간 제주시내 학교 앞은 학부모가 몰고 온 자동차로 늘 혼잡하다. 여기에 학원 차까지 더해지면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하긴 나 역시도 아들 중학교 3년, 딸 고등학교 3년을 거의 날마다 차에 태워 등하교를 시켰으니 딱히 할 말은 없다.
읍·면 지역도 마찬가지다.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불편하고 학교까지 멀다. 또 보행자보다 자동차 우선인 도로 환경이 걷는 것을 주저하게 한다. 차를 타는 게 습관이 돼 이젠 아무도 도보 등교를 원치 않는다.
게다가 제주에는 등록된 자동차가 너무 많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인구 1인당 자동차 보유 대수가 1대를 넘어섰다. 인구 1인당 자동차 보유 대수는 1.02대로, 전국 평균(0.5대)보다 배 이상 많다. 전기차 보급률도 높다. 지난 3월 말 현재 3만4432대로, 인구 대비 1위는 물론 양적으로도 전국 3위다. 제주도는 올해도 전기차 7520대를 추가로 보급할 예정이다.
청소년 비만은 자신감 저하, 우울감 증가 등 문제를 낳는다. 이에 청소년이 걸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비만율, 흡연율, 음주율 낮추기
김명재 서귀포시 보건소장은 "제주는 자연환경이 좋고 운동할 수 있는 시설이 잘 갖춰졌는데도, 정작 주민은 건강에 관심이 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충일 기자
청소년 비만만 문제인 게 아니다. 제주지역 성인 비만율 역시 2022년 36.5%로 전년 대비 0.5%포인트 상승했다. 비만율 역시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높다. 흡연율도 21.9%로 전년 대비 1.9%포인트 상승해 전국 최고다. 반면에 걷기 실천율은 35.3%로 전년 대비 5.3%포인트 떨어져 전국에서 가장 낮다. 그러나 고위험 음주율은 13.8%, 월간 음주율은 57.3%로 전년 대비 각각 0.8%포인트, 1.6%포인트 올랐다.
지난해 제주지역 간암·대장암 원인 사망률이 전국 1위를 기록했다. 간질환 사망자도 표준인구 10만 명당 13.7명으로 전국 9.1명을 크게 웃돈다. 간암·대장암 사망은 음주·비만 등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제주에서는 지역사회와 지자체 차원에서 건강프로그램을 만들고 각종 운동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김명재 서귀포시보건소장은 “제주는 자연환경이 좋고 운동할 수 있는 시설이 잘 갖춰졌는데도 정작 주민은 건강에 관심이 덜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얼마 전부터 주민에게 황톳길을 추천하고 있다.
맨발 걷기의 성지, 동홍동 황톳길
제주시 이호해수욕장에서 어싱(접지)을 하는 관광객들. 최근 제주 지역 관광지 곳곳에는 이런 맨발 걷기를 하는 이들을 만나기 어렵지 않다. 최충일 기자
대표적인 제주 황톳길은 서귀포시 동홍동 동홍천 변(길이 325m)에 있다. 황토는 인체에 쌓인 독을 제거해 주며 신진대사를 돕는다고 한다. 맨발 걷기를 통해 한라산과 바다·바람·대지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요즘 제주에서는 황톳길 만남이 유행이다. 카페나 음식점에서 얼굴 보는 것이 아니라 저물 무렵 해수욕장에서 만나 맨발로 걷는다.
이와 함께 함덕해수욕장·삼양해수욕장·이호해수욕장 등은 일찍부터 어싱(맨발로 땅에 닿는 것) 명소다. 저녁노을이 해수욕장을 황홀하게 감쌀 때면 맨발 걷기 하는 사람 띠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매연 없는 그린수소버스 타러 제주에 오세요
지난 23일 제주도에서 열린 국내 최초 그린수소버스 개통식에 참석한 오영훈 제주도지사(버스 차량 사이)와 주요 인사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제주도
제주는 신재생에너지도 선도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도내 전체 발전량의 19.2%가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생산된다. 이 역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위다. 제주도는 2030년까지 도내 전력 수요를 모두 신재생에너지만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제주에는 최근 그린수소 생산·운송·활용 전(全) 주기 생태계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구축됐다. 그린수소(Green Hydrogen)는 신재생·원자력 에너지로 물을 전기분해해 얻는다. 이제 제주 사람은 매연 대신 수증기가 나오는 버스, 탄소가 전혀 배출되지 않는 그린수소버스 타고 다닐 수 있다.
오옥만(60) 제주도 국제교류지원자문위원장은 “제주는 수려한 자연경관과 독특한 역사문화를 간직한 곳으로 급격한 관광개발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와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가 상존하고 있다”며 “제주 사람은 고난을 슬기롭게 극복해 왔기 때문에 청정 환경을 유지하고 고유한 역사 문화를 보존하면서 세계인이 찾는 제주를 만들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제주는 전체 발전량의 19.2%가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생산된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위다. 사진은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풍력발전단지의 풍력발전기. 최충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