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무임승차 하지 말자
경성우편국 터 (서울시 중구 소공로 70, 충무로 1가 21-1)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 7월 한일통신기관협정에 따라 경성우편국이 대한제국의 한성우체사를 흡수하면서, 일본정부는 당시 일본인들이 집단 거주하던 남산 기슭 진고개 일대의 혼마치(本町, 현재 충무로1가)에 2층 양옥 청사를 지었다
국권을 빼앗긴 1913년 10월 23일 이 자리에 경성우편국 청사 공사가 착공되어 2년 후인 1915년 9월 15일에 완공을 보았다
당시 지하 1층 지상 3층, 옥상 청동 지붕으로 구성된 연면적 4,300여㎡(1,320평)의 19세기풍의 르네상스 구조 양식으로 외부는 붉은 벽돌과 화강암의 혼합구조로 마감했으며 내부도 외부 못지않게 매우 화려했다
1939년 10월 1일 경성중앙우편국으로 개칭하였고, 해방 후인 1949년 8월 13일 서울중앙우체국으로 바뀌어 운영되었지만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뼈대만 남은 채 크게 반파되었다
반파된 서울중앙우체국은 한동안 방치되었다가 1957년에 남아있는 철골을 바탕으로 흰색으로 다시 보수했지만
결국 1981년에 증축공사로 옛 건물의 흔적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증축된 서울중앙우체국 신관 건물은 2003년까지 사용되다가,
다시 허물고 2007년 유리 건축물양식으로 서울중앙우체국을 다시 지었는데 그것이 포스트타워(지하 7층, 지상 21층)라 불리는 현재의 건물이다
♤ 우표박물관
서울중앙우체국 지하에 있다
우표에 관한 모든 것을 만나고 배울 수 있으며, 우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새로운 우표문화공간이다
총 면적 540㎡으로 우정역사마당, 우표체험마당, 우표정보마당, 우표문화교실로 구성돼 있다
당초 명칭은 '우표문화누리'였으나, 2013년 '우표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우표박물관 스탬프투어 용지에 스탬프 다섯 개를 찍어 완성하면
출입구에서 기념품(연필)을 받을 수 있다
진고개
한성의 진고개(한자로는 泥峴·니현)는 현재의 충무로2가 일대다
진고개길은 세종호텔 뒤편, 즉 서울중앙우체국 옆에서 광희문까지 이른다
명동성당 터와 엇비슷한 높이였는데, 일제 강점기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깎여나가서 2022년의 ‘서울 진고개’는 고개로 보이지 않는다
1882년 이 진고개에 일본인 40명이 들어앉았다
임오군란 때 본국으로 철수했던 관리들과 상인들이었다
‘혼마치(본정本町)’는 바로 이 진고개다
'으뜸 거주지'란 뜻의 지명을 일본인들이 스스로 붙였다
이곳이 해방 이후 ‘충무로’로 이름을 바꾸기 전까지, 일제 강점기에 줄곧 그렇게 불렀다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진고개는 사실상 일본의 자치구역이었다
공사관·영사관은 물론 화재 진압과 치안을 담당한 소방소가 있었고, 학교·병원·사찰·은행 등이 속속 들어섰다
♤ 혼마치(本町)
정확히는 서울중앙우체국에서 서울충무초등학교까지 이어지는 지역으로, 법정동상 충무로1가~충무로5가에 해당한다
특히 충무로1가 및 2가는 명동 번화가의 일부로서 잘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이곳에 일본인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이들 관할의 계 및 동이 통합되어 경성부 본정(本町, 혼마치[ほんまち]) 1정목(一丁目)~ 5정목까지 나뉘었다
이후 1946년 10월 1일 일본식 동명(洞名)정리 사업에 따라, 이곳의 길을 이순신(李舜臣)의 시호인 충무(忠武)를 따서 도로명 및 법정동명에 붙였다
고려대연각타워 (서울시 중구 퇴계로 97, 충무로1가 25-5)
원래 해당 건물 터는 일제시기인 1926년에 세워진 '히라타백화점'이 있던 곳이었다
1946년 '서울만물전'이 들어섰다가 이듬해 화재로 전소됐다
이후 판잣집들이 들어섰다가 1950년대 들어 '고미파 캬바레'가 들어섰으나 1959년 또 화재로 전소됐고, 인근 건물에까지 피해를 입혔다
1960년대 들어 '무학성 캬바레'가 자리잡다가 1967년에 극동건설이 그 자리에 '대연각빌딩'을 착공해 1969년 준공 후 앞면은 호텔, 뒷면은 오피스텔로 각각 사용했다
1971년 화재사고 후 문을 닫고 복구작업을 거쳐 1974년 '빅토리아호텔'로 영업하다 이듬해 이강학이 이끄는 해외산업이 호텔을 인수해 리모델링 작업을 거친 후 고려대연각타워가 되었다
현재 고려대연각타워는 고려통상이 소유하고 있으며, 외국 대사관 및 공관들이 입주하고 있다
(고려대 연각터워가 아니라 고려 대연각타워이다
고려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 대연각호텔 화재
1971년 12월 25일에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동의 '대연각호텔'에서 발생한 대한민국 최악의 화재 사고, 세계 최대의 화재 사고들 중 하나이며, 호텔 화재 중에서는 단연 최대 사고로 총 사망자 166명(추락사 38명), 부상자 68명, 실종 25명이 발생했다
대피가 어려웠던 이유는 빌딩 내부의 계단이 방화문이 없는 개방형이었기 때문에 유사시 비상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이 번지는 통로 역할을 했다
엘리베이터 역시 불이 나자 그대로 멈춰버렸고 비상계단도 별도로 없었고 스프링클러 같은 소화장비도 없었다
(이 사고 이후로 모든 대형 건물에 수프링클러 화재 진압 시스템 의무 설치, 고층 건물 옥상 헬리패드 확보가 법률로 의무화되어 시행되었다)
화재 규모가 여간 엄청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완전 진압에는 7시간이나 소요되었고 남아있는 열기때문에 7층 이상의 접근이 불가능하여 시체 발굴 및 수습에도 18시간이 소요되었다
1972년 서울시민회관 화재, 1974년 청량리 대왕코너 화재와 함께 서울 3대 화재사고로 꼽히고, 9.11 테러 이전까지는 세계 최대의 건물 화재 참사였으며 아직까지도 세계 최대의 호텔 화재로 기록되고 있다
♤ 메이퀸 살인사건
1971년 6월 30일 D여대 ‘메이퀸’으로 뽑힌 4학년 학생 유씨가 서울 대연각호텔 창문에서 떨어져 숨진 사건이다
(1908년 열린 이화학당의 22회 개교기념 축제에서 창립자인 미국인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 부인에게 꽃을 엮어 만든 관과 함께 '메이퀸'이라는 칭호를 헌사한것이 한국에서 메이킨 대회의 시초이다)
유씨 오빠의 친구인 이씨는 친구에게 현금 30만원을 주고 유씨를 승용차에 태워 호텔로 데려오도록 했다
두 사람은 그전에 알고 지낸 사이였으며 단둘이 만나 술을 같이 마신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이씨는 법정에서 “(유씨를) 처음 만났을 때 첫눈에 반했고 이상형이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유씨에게는 약혼을 할 다른 남자친구가 있었고 이씨에게는 단지 오빠 친구 이상의 감정은 갖고 있지 않았다고 했다
유씨는 호텔 나이트클럽에 이씨와 함께 있다가 객실로 끌려갔다
이씨는 유씨를 3시간 동안 감금하고 결혼해 달라고 강요하는 과정에서 이씨는 유씨를 욕보이려 했고 반항하자 목을 졸랐으며 허벅지를 흉기로 찔렀다
놀란 유씨가 실신하자 이씨는 죽은 줄 알고 창문 밖으로 유씨를 던져 투신 자살로 위장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경찰에서 창밖으로 던진 사실을 자백했다
법원은 이씨가 처음부터 유씨를 죽이려 한 것은 아니고 죽은 줄로 잘못 알고 던졌다고 판시하면서 살인죄 아닌 강간치사죄를 적용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고법은 혈흔이 없고 흉기가 발견되지 않는 등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다
특히 이씨가 고문에 못이겨 검찰과 경찰에서 허위 자백을 했다며 법정에서 범행을 모두 부인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대법원은 고법의 무죄 판결이 잘못됐다고 파기했고 결국 이 사건은 대법과 고법을 세 차례나 오르내린 끝에 이씨에게 10년형을 확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 돌아와요 충무항에
통영 출신의 원곡 가수 고 김해일(1946~1971)은 24살 때인 1970년 자신이 작사하고 부산 출신의 작곡가 황선우가 곡을 붙인 ‘돌아와요 충무항에’를 발표했다
이 곡은 1970년 유니버샬레코드가 발매한 음반에 B면 두 번째 트랙에 수록됐다
앨범에는 작사 김성술, 작곡 황선우, 노래 김해일로 기록돼 있다(김해일은 김성술의 예명이다)
김해일은 음반을 발표한 다음해인 1971년 12월 서울 대연각호텔에 투숙했다가 화재사고로 요절했다
이후 작곡가 황선우는 이 노래를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개작했고, 1976년 가수 조용필이 부르면서 국민 애창곡이 됐다
♤ 젊은 연인들
당시 이 호텔에 투숙한 ‘훅스’라는 통키타 그룹이 있었다
민병무와 방희준은 모두 서울대 건축과 1학년생으로, 방희준은 4형제 중 자신을 제외한 세 명이 모두 약시였다
이 때문에 '훅스'는 1971년 12월 15일 한국일보사 소강당에서 동료 가수인 이용복, 양희은과 함께 한국약시협회 자선음악회에 출연했다
이때 대연각호텔에서 일하던 방희준의 친척이 숙박권을 선물로 주었는데,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투숙했다가 음악계에 데뷔한 지 6개월 만에 유명을 달리하는 참변을 당했다
'젊은 연인들'은 민병무 작곡, 방희준 작사 '훅스'의 노래로 대학가에서는 조금 알려졌던 노래이다
4년이 지난 1976년 남성듀엣 '아도니스'에 의해 '다정한 연인들'이란 제목으로 음반이 나왔지만 곧 잊혀졌다
2년후 민병무의 다섯 살 아래의 동생 민병호가 1977년 MBC 주최 제1회 대학가요제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친구 민경식, 정연택과 함께 셋이서 서울대트리오라는 이름으로 이 대회에 참가했다
방희준이 작사하고 민병호의 형인 민병무가 작곡한 ‘젊은 연인들’은 동상을 획득했다
비록 동상이었지만 뛰어난 연주와 화음으로 대상인 서울농대 샌드페블스의 ‘나 어떡해’ 못지 않은 큰 인기를 얻었던 곡이다
형은 음반도 못 내고 세상을 떠났지만, 다행히 동생에 의해 이 노래는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청국공사관 (서울시 중구 명동2길 27, 명동2가 83-7)
1882년(고종 19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청나라는 조선에 군대를 보내 군란을 진압했고, 흥선대원군을 납치한 다음,《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체결했다
이 장정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는데, 한마디로 조선을 청나라의 속방으로 못박아둔 장정이었다
조항 내용을 간단히 말하면, '해금령을 풀어 바다로도 무역을 하게 할 것', '치외법권', 그리고 '청나라 북양대신이 조선에 상무위원을 파견하는 것'이었다
장정 체결 후 처음으로 부임한 상무위원 진수당(陳樹棠)은 1883년(고종 20년) 자신이 머물 공관인 한성상무공서(漢城常務公署)를 세웠다
이것이 청국공사관의 시초로, 중국이 한국에 두었던 최초의 근대적 외교공관이었다
이듬해인 1884년(고종 21년) 새로 공관을 짓기로 하고 낙동(현재 회현동, 충무동, 명동 일부)에 부지를 사들였다
대부분 자료에서는 포도대장 이경하의 집을 매입했다고 언급한다
(이경하는 흥선대원군의 심복으로 헤이그 특사 이위종의 할아버지이다
청나라에서 한성상무공서를 설치할 당시에는, 임오군란 때 무위대장으로서 궁궐을 지키지 못했다는 책임을 지고 전남 고금도로 유배 간 상태였다)
진수당은 옛 건물을 헐고 새로 건물을 지었는데 일부 쓸만한 자재들은 다시 재활용해 12월에 공사를 끝내고 입주했다
그리고《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의 체결 결과로 수많은 청나라 상인들과 주민들이 조선에 대거 들어왔는데, 한성상무공서가 주둔한 낙동 주변에 많이 모여들었고 그 일대는 청나라 사람들의 거류지, 일종의 차이나타운으로 변해갔다
이후 여러 차례 수교와 단절을 거듭하였고, 중일전쟁이 발발한 후인 1940년에 왕징웨이가 이끄는 일본의 괴뢰정권인 중화민국 난징 국민정부가 들어서자 왕징웨이 정권의 영사관으로 쓰이기도 했다
1945년 해방으로 주일중화민국대사관 경성 총영사관은 기능을 정지했고, 1947년에는 이 자리에 중화민국 임시 영사관이 들어섰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전인 1948년 8월 13일에 초대 중화민국 대사 류위완(劉馭萬)이 방한해 친서를 전달했고,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이 수교하면서 1949년 1월에 중화민국 임시 영사관은 주 대한민국 중화민국대사관으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1992년 대한민국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면서 중화민국과 단교했고, 주한중화민국대사관 자리에 주한중국대사관이 들어섰다
♤ 한성화교소학교 (서울시 중구 명동2길 35, 명동2가 83-8)
중화민국(타이완)계 외국인 학교로서 한국에서 최초로 정식 인가를 받고 설립된 학교로 1902년 9월 개교한 최초의 화교학교인 인천화교소학교의 뒤를 이어 1909년 9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문을 연 화교학교이다
1960~70년대에는 학생수가 2,300명에 달해 당시 세계 3위 규모의 화교 학교였다
(한성화교중고등학교는 1948년 5월에 세워졌으며,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다)
수업은 중국어로 이루어지며 중화민국의 교육과정을 따르고, 2010년대 이후 일부 과목(정치성이 적은 이과 과목 중심)에 한해 중국 대륙 교과서를 사용하는 학급도 만들어졌다
한국 사회에 속한 특성상 1주일에 3시간 정도 한국어와 한국 관련 사항도 가르친다
인원이 부족하다보니 화교소학교에선 부모 중 한쪽이 화교 출신이거나 해외 시민권이나 해외영주권이 있거나 외국에서 3년 이상 거주한 한국인인 경우에는 받는다
중화민국의 학제를 따르기 때문에 8월에 학기가 시작되며 여름(대부분 5월 쯤)에 졸업한다
가수 진미령, 주현미, 쯔위 배우 하희라, 강래원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2022년 전국 표준지 공시지가
1위 : 서울시 중구 충무로 1가 네이쳐리퍼블릭
(서울시 중구 명동8길 52, 충무로 1가 24-2)
총 169.3㎡로 3.3㎡(평)당 6억2,370만원
(작년 대비 8.5% 감소)
올해로 19년째 부동의 1위
2위 : 서울시 중구 명동 2가 우리은행
(서울시 중구 명동길 42, 명동 2가 33-2)
총 382.4㎡로 3.3㎡(평)당 6억1,875만원
(작년 대비 5.8% 감소)
3위 : 서울시 중구 충무로 2가 유니클로
(서울시 중구 퇴계로 123, 충무로2가 65-9)
총 300.1㎡로 3.3㎡(평)당 5억8,905만원
(작년 대비 6.5% 감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