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5일 오늘의 역사
2023년 인공위성 누리호 3차 발사 성공 8개 우주선 궤도 정착
우리나라의 첫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여덟 기의 위성을 본 궤도에 안착시키며 비행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붉은 불꽃을 내뿜으며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하늘로 솟구친다. 이륙 1분 뒤, 주변 공기 압력이 최대치로 높아지는 첫 고비를 무사히 통과하고 발사 2분 5초쯤, 64.5km 지점에 달하자 1단 로켓이 분리돼 떨어져 나갔다. 점화된 2단 엔진으로 고도 204km까지 올라간 누리호는 위성 보호 덮개인 페어링을 정상 분리했다. 이어 258km 고도에서 2단 로켓이 분리되고, 발사 13분 3초 뒤 목표 고도인 550km 지점에 도달했다. 여기서 이번 발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차세대소형위성 2호'를 분리하고, 이어 20초 간격을 두고 국내 민간 기업의 큐브 위성 세 기를 차례로 궤도에 올렸다. 우주 기상 관측을 위한 천문연구원의 군집 위성인 '도요샛' 네 기까지 차례로 분리하며, 여덟 개의 위성을 순조롭게 궤도에 안착시켰다.
싣고 간 위성들을 우주 공간에 쏟아내고 임무를 완수한 누리호는 발사 뒤 18분 58초, 가속도에 의한 비행을 멈추며 3번째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2022년 북한 탄도미사일 3발 연속 발사
2019년 봉준호 '기생충', 한국 최초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2019년5월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올해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한국영화 역사상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은 사람은 봉 감독이 처음이다.
한국영화가 세계 3대 영화제(칸ㆍ베를린ㆍ베네치아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기는 2012년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베네치아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이후 7년 만이다. 칸영화제 본상 수상은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각본상) 이후 9년 만이다.
봉 감독의 '기생충'은 올해 칸 영화제에 초청된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장 피에르·뤼크 다르덴의 '영 아메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페인 앤 글로리', 셀린 시아마의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온 파이어'등 21개 작품 가운데 최고상을 받았다.
봉 감독은 2006년 '괴물'로 감독주간에 초청되면서 칸 영화제와 인연을 맺었다. 2008년과 2009년 '도쿄!'와 '마더'가 각각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다.
2017년 넷플릭스 영화 '옥자'로 경쟁부문에 데뷔했고, '기생충'으로 두 번째로 경쟁부문에 진출해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았다.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네 장남 기우가 박사장네 고액 과외 선생이 되면서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사건을 다루는 블랙 코미디다.
가난한 가족과 부자 가족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 현상인 빈부격차의 문제를 다룬다.
2016년 U-16 축구대표팀(감독 서효원) 미국 2-1로 꺾고 2016 인도축구협회(AIFF) 유스컵 우승
2015 KBS ‘TV쇼 진품명품’에서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조선경국전』(정도전 지음) 초간본 감정가 10억원 역대 최고 기록
2011년 프로축구 ‘승부조작’ 파문
2011년 5월 25일에 K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역 선수 2명에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K리그 승부조작 사건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이 사건이 본격적인 발단은 2011년 5월 6일에 K리그 구단 인천 유나이티드의 백업 골키퍼로 활약하던 윤기원이 차량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자살하는 사건부터이다. 이 충격적인 자살 사건으로 한때 루머로만 돌던 K리그의 승부조작 의혹이 네티즌들과 언론 사이에서 강하게 일었다.
5월 21일에 승부조작 사건을 수사하던 경남 창원지검 특수부가 승부조작을 종용하던 브로커 2명을 구속하고 현역 축구선수 2명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이 25일에 언론에 노출되면서 K리그의 승부조작이 사실로 밝혀지기 시작했다. 특히 전 대한민국 국가 대표 선수였던 상주 상무의 김동현이 승부조작 사건에 깊게 관련되어 있음이 확인되면서 K리그 축구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후 검찰에 자진으로 출두한 이들은 더욱 충격적이었는데, 스타 플레이어 출신 선수가 여럿 연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대표팀 선수로 24경기를 뛰어 2골을 기록했고 올 시즌 부진과 부상으로 제 실력을 못보여줬지만 제대 후 성남 일화 천마에서 이적하자마자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주장까지 맡았던 최성국이 2010년 광주 상무 시절에 김동현의 제의로 승부조작 사전 모의를 했다고 검찰에 자진 출두하면서 한국 축구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2011년 8월 25일 프로축구연맹은 이 사건에 가담했던 최성국을 비롯하여 선수 40명, 브로커 7명 등 총 47명에 대해 영구 제명 처벌을 내렸다. 이들은 6월에 영구제명된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선수 생활은 물론 K리그 관련 직무 종사도 영원히 금지되었다.
2009년 북한이 2차 핵 실험을 강행.
북한은 2009년 5월 25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화국의 자위적 핵 억제력을 백방으로 강화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주체98년(2009년) 5월 25일 또 한 차례의 지하 핵시험을 성과적으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번 시험은 폭발력과 조종기술에 있어서 (2006년 10월 1차 실험에 비해)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안전하게 진행됐다"고 했다.
북한은 또 이날 오후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및 원산 일대에서 세 발의 단거리 미사일(사정거리 160㎞ 이내)을 발사했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은 이번에 이례적으로 지대공·지대함·지대지 등 세 종류 미사일을 모두 쏘았다"고 했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오전 9시54분 함북 길주군 풍계리를 진앙지로 진도 4.4의 인공지진이 감지됐다"며 북한의 핵실험 발표를 뒷받침했다. 이상희 국방장관은 국회 국방위에서 "인공지진파 4.4 규모이면 (폭발위력이) 1㏏(TNT 폭약 1000t) 이상은 분명하며 최대 20㏏까지 되는 실험일 수 있다"면서 "2006년 1차 실험 때는 0.8㏏ 규모였다"고 했다. 한 정부 당국자는 "이는 1차 실험에 비해 폭발력이 적게는 5~6배, 많게는 20배 안팎까지 늘어났다는 뜻"이라고 했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의 폭발규모는 각각 15㏏과 22㏏ 정도였다.
북한의 이번 핵실험은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아 '핵개발 단계'를 다루는 기존 6자회담 틀을 대미 핵 군축협상 틀로 대체함으로써 더 많은 경제·외교적 이득을 얻어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재를 과시하면서 내부 체제를 공고히 하고 권력 승계 작업을 원활히 하기 위한 의도도 엿보인다.
국방부와 합참은 이날 전군(全軍)에 경계태세 강화를 지시해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비무장지대(DMZ) 내 군사분계선(MDL) 등에서의 북한 도발 가능성에 대비토록 했다.
2007년 한·미FTA(자유무역협정) 협정문 공개
25일 한·미FTA 협정문이 공개되면서, 그간 협상 과정에서 논란이 됐거나 FTA 반대진영이 ‘독소(毒素) 조항’ 이라 불렀던 쟁점들에 대한 최종 합의 내용이 드러났다.
대부분 정부가 이미 발표한 것과 큰 차이가 없지만, 쇠고기 등 민감 농산품을 제외한 농산물과 공산품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관세 철폐 기간 내 1회만 발동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것은 처음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부는 “쇠고기·돼지고기 같은 민감한 농산물은 세이프가드의 횟수 제한이 없고, 공산품은 횟수 제한이 우리에게 유리하다” 고 밝혔다. 또 논란을 일으켰던 투자자·국가소송제(ISD), 개성공단의 한국산 인정, 자동차관세 환원조치(스냅백) 등은 여전히 매듭이 풀리지 않은 상태다.
◆투자자·국가소송제(ISD)=미국 투자기업이 한국 정부의 정책 때문에 피해를 본 경우, 소송을 통해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ISD는 그간 한·미 FTA 반대진영이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무력화된다” 며 공격해 온 대표적인 사안이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협정문에는 “원칙적으로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공공복리 목적’ 으로 실시되는 것이라 (투자기업에) 피해보상을 해주는 ‘간접수용’ 에 해당되지 않는다” 고 명시됐다. 미국 투자자들이 한국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함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 정부의 조세정책도 원칙적으로 피해보상의 대상이 아니라고 규정했다.
◆개성공단=개성공단 생산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 받으려면, 개성공단이 한국의 역외가공지역(OPZ)으로 지정돼야 한다.
◆자동차=한국 정부는 앞으로 자동차 배기량을 기준으로 하는 세제(稅制)를 새로 도입하지 않기로 미국측에 약속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의 조세주권이 침해당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농산물 세이프가드=쇠고기·돼지고기·사과·마늘·고추·양파·보리·인삼 등 30개 ‘민감 농산물’ 은 횟수 제한 없이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2007년 수필가 피천득씨 별세
아사코와의 세 번 만남과 이별을 이야기한 수필 ‘인연’으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은 명수필가이자 영문학자인 금아(琴兒) 피천득(皮千得·97·사진) 선생이 2007년 5월 25일 오후 11시 40분 서울 아산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20세기 한국 문단의 산증인이자 최고령 문인이었던 피 선생은 지난주부터 폐렴 증세로 병원에 입원했으며 한때 호전돼 퇴원하기도 했으나 25일 오후부터 급격히 상태가 나빠져 결국 회복하지 못했다.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난 피 선생은 10세에 모친을 여읜 뒤 삼촌 집에서 성장했다. 춘원 이광수의 집에서도 잠시 살았던 그는 주요한 선생의 주선으로 중국 상하이 후장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46년 경성대학(현 서울대) 예과 교수를 거쳐 1974년까지 서울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2007 현대중공업 한국형 이지스 함 1번함 세종대왕함 진수
2007년 이지스함 진수한 날 북한, 동해상과 서해상으로 미사일 2~3발사.
2007년5월25일 북한은 동해상 및 서해상으로 사정거리 100~150여㎞의 지대함(地對艦) 및 지대지(地對地) 미사일 2~3발을 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소식통은 “북한이 25일 오전 함경남도 신상리 해안 포병부대에서 동해안으로 단거리 미사일 1발을, 서해안의 모 기지에서도 서해로 1, 2발을 발사한 징후를 포착해 정밀 분석 중” 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지난해 7월 대포동 2호를 비롯한 노동·스커드 미사일 등 7발을 발사한 이후 처음이다. 하지만 이번 미사일은 지난해 발사한 것들에 비해 훨씬 사정거리가 짧았다.
AP통신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 “전문가들은 한국이 이지스함을 진수한 데 대한 북한의 반응이라고 분석했다” 고 전했다. 북한문제 전문가인 일본 와세다대 도시미쓰 시게무라 교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이지스 구축함을 진수한 한국에 대한 경고” 며, “이는 해군력이 약한 북한이 매우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라고 말했다.
앞서 북한 해군사령부는 지난 21일 보도를 통해 남측 함정들이 16일부터 20일까지 황해남도 옹진군 기린도와 강령군 쌍교리 앞 북측 영해를 침범했다고 비난하는 등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기도 했다.
2006년 박지원 징역3년 법정구속 현대비자금 150억은 무죄
현대그룹 비자금 150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부 장관이 25일 뇌물수수에 대해 또 무죄를 선고 받았다. 하지만 그는 유죄가 인정된 알선수재 등 혐의에 대해선 징역 3년의 실형(實刑)을 선고받았고, 보석 취소로 법정구속 됐다.
판결 선고 후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박 전 장관은 측근에게 “6·15 남북공동선언이 3주년 될 때 들어왔는데(구속됐는데) 6주년을 앞두고 또다시 들어왔다. 참 기막힌 우연의 일치” 라며 착잡한 심경을 내비치기도 했다. 또 “두 어르신(김대중 대통령 내외)께 죄송하다” 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지난 2003년 6월 대북송금 특검에 긴급 체포된 이래 2년 8개월, 햇수로 4년째 법정 싸움을 벌여온 박 전 장관은 이날 다섯 번째 판결 선고를 받았다. 그는 이날 판결 선고 전에는 “꽃은 네 번 졌어도 녹음방초(綠陰芳草)의 계절은 다시 왔다” 며 4년째 계속되는 법정공방이 끝나는 것 아니냐는 희망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3년 전 구속수감되면서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며 조지훈 시인의 ‘낙화’ 를 읊었었다.
법원의 판결 선고가 날 때마다 검찰과 박 전 장관의 희비는 엇갈렸다. 1~2심이 그의 150억원 수수 혐의를 인정해 징역 12년에 추징금 148억원을 선고했으나, 그는 뇌물수수에 대해서만큼은 “결백하다” 고 주장했다. 2004년 11월 대법원 판결로 반전이 이뤄졌다. 대법원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150억원 수수 부분을 무죄 취지로 판단하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2006년 엔론 회계부정 유죄평결
2001년 월스트리트를 강타한 미국 역사상 최대의 회계부정 스캔들 ‘엔론 사태’ 와 관련, 케네스 레이(64·사진) 전 회장과 제프리 스킬링(52) 전 CEO(최고경영자)에게 유죄 평결이 내려졌다.
휴스턴 연방지법의 엔론 배심원단은 25일 레이 전 회장과 스킬링 전 CEO가 재무제표를 엉터리로 작성하는 등 사기와 허위보고를 했다고 보고 유죄를 인정했다. 레이 전 회장은 사기 등 기소된 6개 혐의 모두에 대해, 스킬링 전 CEO는 28개 혐의 가운데 내부자 거래와 공모, 사기 등 19개 혐의에 대해 유죄평결이 나왔다. 두 사람에 대한 형량 선고는 오는 9월 11일 있을 예정이다. 법률전문가들은 두 사람이 25년 이상의 징역형을 살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2005년 톱스타 김승우, 김남주 커플 결혼식
김승우-김남주가 25일 서울 광장동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 비스타홀에서 수많은 하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축복받는 결혼식을 올렸다.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의 주례와 톱스타 장동건의 사회로 진행된 결혼식에서 김-김 커플은 나란히 손을 잡고 입장, 성혼 서약서에 백년해로를 맹세했다.
신랑-신부 부모님께 인사하는 순서에서 김승우는 연신 눈물을 닦아냈다.
5월의 신부 김남주도 눈시울을 붉혔다. 감기까지 걸린 터라 몸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눈물짓는 신랑의 얼굴을 먼저 챙기는 착하고 사랑스런 신부였다.
두 사람을 축하해주기 위해 이날 식장에는 박중훈을 비롯해 배용준, 최지우 등 수많은 스타들이 참석했다.
결혼식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하객만 줄잡아 1500여명. 비스타홀에 마련된 600여석이 꽉 찼고, 자리가 모자라서 수백명의 하객들이 중계 스크린이 설치된 로비로 발길을 돌렸다.
시가 6억원짜리 웨딩카 이벤트도 열렸다. 국내에 11대 밖에 없다는 롤스로이스 팬텀 웨딩카에서 두 사람은 행복한 장면을 연출했다. 첫날밤 장소도 730만원짜리 서울 W호텔 익스트림 와우 스위트룸. 탤런트 변정민을 비롯해 팝가수 스팅, 여가수 에브릴 라빈이 묵었던 곳이다. 신혼여행지는 하와이.
안전사고와 혼잡을 우려해 투입된 경호원 50여명이 결혼식을 철저히 통제했다. 청첩장을 가진 하객들만 입장이 가능했으며, 취재진의 접근이 엄격히 제한됐다.
‘세기의 결혼식’을 취재하는 열기도 뜨거웠다. 국내외 취재진 200여명이 취재 경쟁을 벌였다. 일본, 중국은 물론 멀리 EPA 유럽통신까지 관심을 보였다.
2005년 육군교도소 일반에 처음 공개
2005년 리버풀, AC 밀란 꺾고 21년만에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 리그우승
2005년 5월 25일 잉글랜드 명문 리버풀이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AC 밀란을 따돌리고 21년만에 유럽 축구 정상에 올랐다. 이로써 리버풀은 지난 1984년 이후 21년만에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랐고, 대회 통산 5회 우승으로 레알 마드리드(9회), 밀란(6회)에 이어 3번째 최다 우승팀이 됐다.
이날 터키 아타튀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리버풀과 AC 밀란과의 결승전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승부였다. 리버풀은 전반전 수비에 심각한 균열을 드러낸 채 3골을 허용하며 0-3으로 뒤졌다. 전반 1분 AC 밀란 말디니의 선제골을 시작해 39분과 44분 크레스포에 연속골을 허용했다.그러나 리버풀은 후반 9분 주장 제라드의 헤딩골을 시작으로 11분 스미체르, 15분 알론소의 만회골을 터트려 후반전에서 내리 3골을 뽑아냈다.
이어진 연장전에서 리버풀은 종료 직전 AC 밀란 셰브첸코의 연이은 슈팅을 막아 기사회생하여 승부차기로 돌입했다. 승부차기에서는 리버풀의 골키퍼 두덱이 빛났다. 두덱은 AC 밀란의 첫번째 키커 세르징요가 실축하자 기세를 올려 두번째 키커인 피를로의 킥을 막아냈다. 이어 마지막 키커인 셰브첸코의 슈팅마저 막아내 3-2로 리버풀에 극적인 승리를 안겼다.
이번 우승으로 리버풀은 자국리그에서 부진을 털고 챔피언스리그을 따내며 무관에서 벗어나게 됐다. 또한 지난 2001년 UEFA컵 우승 이후 4년만에 대외 경기 타이틀을 따내는 기쁨을 누렸다.
2005년 제7차 아세안(ASEAN)+3 NTOs회의 개막식
2005년 한국 브라질 확대정상회담
2005년 기계관련 종합전시회인
2005년 부산국제기계대전 개막
2004년 고건 총리 총리직 이임.
고건 총리가 43년간의 공직생활을 접고 2004년 5월 25일 야인으로 돌아갔다. 사인으로 돌아가는 그의 표정은 홀가분한 듯했지만 그리 밝지는 않았다고 총리실 사람들은 전했다.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총리 자리를 내놓게 된 데 대한 짐을 벗으려는지 그는 국무회의 이임인사,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전날 사표 제출은 오래 전부터 예정했던 것”임을 극구 강조했다.
‘전직 총리’로 신분이 바뀐 그는 평소처럼 공무원 출근시간에 맞춰 정부중앙청사에 출근했다. 오후 6시에 가진 이임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내가 마치 제청권 행사를 고사하기 위해 사표로 배수진을 친 것처럼 보는데 오히려 정반대로 사퇴하려 했기 때문에 제청권 행사를 고사할 수 밖에 없었다. 5월 마지막주 첫날 사표를 내기로 일정표에 정해놨었다”고 말했다.
고 총리는 이날 ‘제35대 국무총리’의 자리를 내놓았지만 총리 두 번, 장관 세 번, 서울시장 두 번의 화려한 이력은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스스로 ‘고난(苦難)대행’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평상적인 헌정 상황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해본 유일한 총리로 기록되게 됐다.
그의 향후 거취를 놓고 정가에선 대권도전설 등 여러 얘기들이 나왔지만, 정작 본인은 “산에도 오르고 싶고, 바다에도 가보고 싶다”는 ‘동문서답’으로 핵심을 피했다.
2002년 대만 여객시 추락 탑승자 전원 사망
승객과 승무원 225명이 탑승한 타이완(臺灣)의 중화항공 소속 보잉 747-200 여객기가 25일 대만해협 상공에서 추락,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사고 여객기인 CI611편은 이날 오후 3시 08분 타이베이(臺北) 중정(中正) 공항을 이륙, 기착지인 홍콩으로 향하던 중 오후 3시 33분쯤 대만 본토 서쪽 펑후(澎湖)현 북동쪽 10해리 상공에서 실종됐다.
당시 목격자들은 여객기가 추락 직전 공중폭발했다고 전했으며, 대만 항공안전위원회의 케이 용 위원장도 26일 군 레이더를 통해 사고 여객기가 타이베이를 이륙한 지 20분쯤 만에 고도 3만피트 상공에서 네 동강이 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사고 직후 대만은 생존자 구조에 나섰으나, 생존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승객 206명은 국적별로 대만 189명, 홍콩·마카오 14명, 싱가포르 2명, 유럽 1명으로 밝혀졌다.
사고 여객기인 보잉 747-200기는 기령(機齡) 23년의 낡은 기종으로, 태국에 매각이 결정된 상태에서 중화항공에서의 마지막 비행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화항공은 1998년과 1994년에도 여객기 추락사고로 각각 202명과 264명이 사망하는 참사를 빚은 바 있다.
1999년 1억년전 공룡알화석, 전남 보성군 득량면 선소해안에서 무더기 발견
1999년5월25일 전남 보성군 득량면 선소 해안일대에서 초식성 공룡알 화석이 대규모로 발견됐다
1996년 해남군 우항리에서 공룡과 익룡 발자국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전라남도 문화관광국은 1998년 10월부터 남해안 일대의 지질을 조사했고 그 결과 선소마을 해안의 중생대 백악기 말(약 1억년 전) 지층에서 공룡알과 알둥지 회석을 대량 발견했다
1995년 한국-우크라이나 정보통신부문협력협정 체결
1994년 고려 과거시험 합격자 101명 명단 발견
1992년 국제원자력기구 임시 핵사찰단 방북
1989년 남산1호 쌍둥이터널 착공
1986년 아프리카 난민돕기 `스포츠에이드`가 세계75개국서 동시 개막
1984년 제3차 남북체육회담 개최
1984년 페르시아만서 선박 6척 피격
1983년 문교부 과외단속기준지침 마련
1982년 오리엔트특급, 런던-베네치아간 부활
1982년 낙동강 하구 쥐섬 남쪽서 여객선 에어페리호와 피닉스호 충돌, 49명 부상
1973년 우주정거장 스카이랩에서 우주실험
1973년 부산항만관리청 발족
1971년 일본 잡지 `논노` 창간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
1968년 공화당 김용태 의원 등 2명 한국복지회 사건으로 제명
1966년 3분(粉)폭리 정치문제화
1966년 중국 문화혁명기 최초의 대자보 북경대학에 등장
1966년 5월 25일 중국 북경대학 학생식당에 `송석, 육평, 등패운은 문화혁명에서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등장했다. 대자보의 첫 출현이었다. 송석은 북경시 당위원회 대학부 부장이었고 육평은 북경대학장 겸 북경대 당서기, 등패운은 북경대 당부서기였다.
학생들과 교직원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간부에 대한 비판은 독재권력을 장악한 `반당행위`여서 자살행위와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자보 작성자는 좌파인 북경대 여성강사 섭원재였다. 섭원재는 2001년 8월 조선일보 박승준 특파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모택동의 비서 강생의 직접 지시에 의해 대자보를 썼다고 실토했다.
대자보에 의해 매도당한 육평 등은 곧 반격에 나서 그날중에 1천매가 넘는 대자보를 대학구내에 빽빽하게 붙였다. 섭원재는 당의 배신자 등으로 공격받아 위기에 처할 운명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6월1일 섭원재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자신의 대자보가 중앙인민방송국과 인민일보에서 `전국 첫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대자보`로 칭찬받고 있었던 것이다. 뒤이어 육평과 팽패운이 대학에서 추방됐다. 이 모든 배후에는 모택동이 있었다. 모택동은 북경대의 당위원회를 다스리는데 섭원재의 대자보를 활용했던 것이다.
섭원재는 2년뒤인 1968년 모택동에 의해 `반혁명` 죄목으로 8년간, 등소평 등장후인 1980년 `마오의 앞잡이`라는 죄명으로 다시 8년간을 복역하는 불운을 겪었다.
1965년 중공군의 계급제 폐지
1963년 아프리카독립국 수뇌회의서 30개국 참가 OAN헌장 조인
1962년 주민등록 실시
1961년 농어촌 고리채 정리령 공포
1959년 필리핀 문화-경제사절단 내한
1957년 야당주최 시국강연회 방해 사건
야당인사들로 구성된 `국민주권옹호투쟁위원회` 주최 시국강연회가 1957년 5월 25일 오후3시 장충단공원에서 열렸다.
20여만 군중이 입추의 여지없이 광장을 메운 가운데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조병옥이 지난 9년간의 이승만 정권 독재와 실정을 신랄하게 비난하자 청중 속 곳곳에서 파나마 모자에 검은 안경을 쓴 청년들이 "죽여라"하고 외치면서 연단을 향하여 돌과 유리병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곳 저곳에서 몽둥이를 든 괴한 10여명이 연단 위로 뛰어올라와 책상을 뒤엎고 식순을 찢어버리는 등 난동을 부렸다. 그때 괴한중 1명은 연단옆 마이크 조정기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연사로 나선 조병옥, 장택상, 전진한씨 등은 연단아래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고 경호를 맡은 김두한 의원 만이 괴한들과 몸싸움을 벌였으나 중과부적이었다. 경찰은 괴한들이 연단을 완전히 파괴하고 도망친지 한참 뒤에 나타났다.
이날 난동의 배후에는 이정재가 있었고, 현장 책임자는 유지광이었다. 그러나 국민여론이 급격이 악화되자 검찰은 다시 수사에 착수, 유지광과 명동파 두목 이화룡, 종로파 두목 심종현 등을 구속했다.
1955년 재일 조총련 결성
친북한계 재일 교포단체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가 1955년 5월 25일 결성됐다. 1945년 10월 15일 결성된 재일조선인연맹이 1951년 1월 9일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민전)으로 개칭되었다가 다시 해체되어 이날 조총련으로 출범했다.
조총련은 일본을 거점으로 북한의 해외 공작기지로서 각종 활동을 벌여왔다. 주요활동은 북송사업, 북한 자유왕래 실현운동 등 이른바 민족권리 옹호 투쟁 등이다.
산하단체로는 조총련의 자금원인 재일조선인상공연합회, 조일수출입상사, 동해상사 등이 있다. 이로써 재일교포 사회는 대한민국을 지지하는 재일거류민단과 조총련으로 양분됐다.
1952년 부산 정치파동으로 이승만 대통령, 경남-전남북에 계엄령.
1952년 부산 일원에 비상계엄령 선포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직선 대통령선거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러나 국회는 이 개헌안을 부결하고 1952년 4월 17일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제출, 이대통령과 대립했다.
그러자 내각책임제 개헌반대 관제데모가 잇따라 벌어졌고 끝내는 정체불명의 폭력단들이 `국회해산`을 요구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이 무렵 이대통령은 이종찬 육군참모총장에게 2개 대대병력의 계엄군을 부산에 투입할 것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5월 25일 자정을 기해 부산과 영·호남 20개 시·군에 다시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26일 헌병대가 국회의원 통근버스를 연행하는 폭거를 자행하는가 하면 야당소속 국회의원 10명을 국제공산당 관련 혐의로 구속했다. 6월 30일 이대통령은 발췌개헌안의 국회통과를 요구하면서 이를 거부하면 국회를 해산하겠다고 협박, 결국 7월 4일 야간국회를 열어 발췌개헌안을 통과시켰다.
1950년 유네스코, 한국 가입을 의결
1949년 중공군 상해 점령
1947년 현대토건사(현대건설 전신) 설립
1947년 대한민국 1호 비누 '무궁화 세탁비누' 탄생
1946년 김규식, 여운형 등 좌우합작 접촉
1946년 요르단, 영국으로부터 독립
1942년 조선인 군속모집 시작, 미-영포로 수용소에 배치
1942년 `메밀꽃 필 무렵`의 저자 이효석 사망
소설가 이효석이 1942년 5월 25일 뇌막염으로 요절했다. 35세였다.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경성 제1고보를 거쳐 경성제국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1928년 `조선지광`에 단편 `도시와 유령`을 발표함으로써 동반자 작가로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전반적 퇴조와 함께 순수문학쪽으로 돌아섰다.
1933년 8월 정지용 김기림 이태준 이종명 김유영 유치진 조용만 이무영 등과 순수문학을 표방하며 `구인회`를 결성했다. 구인회는 그 뒤 이효석과 이종명 김유영 유치진 조용만이 탈퇴하고 박태원 이상 박팔양 김유정 김환태가 들어가는 등 구성원들은 바뀌지만 회원수는 늘 아홉이었다.
1934년 숭실전문 교수가 된 그는 `산` `들` 등 자연과의 교감을 수필적인 필체로 유려하게 묘사한 작품들을 발표했고, 1936년에는 한국 단편소설의 백미라 불리는 `메밀꽃 필 무렵`을 발표했다. 평창을 무대로 한 이 소설은 성과 자연을 시적인 문체와 서정적인 분위기로 형상화한 걸작으로 꼽힌다.
1935년 베이브 루스, 714홈런 기록
1935년 5월 25일 피츠버그의 포브스 구장. 이곳에 원정온 보스턴 브레이브스의 선수 겸 부단장 베이브 루스는 홈런 3개를 때렸다. 세번째 아치는 그때까지 메이저리그 사상 가장 큰 183m 장외 홈런. 그것이 41세된 루스의 마지막(714호) 홈런이었다. 몸이 불어 한물 간 선수로 치부돼 이해 초 뉴욕 양키스 에서 방출된 루스는 이 마지막 불꽃 1주일 후 은퇴했다.
루스의 홈런기록은 1974년 행크 아론(755개)이 깰 때까지 39년동안 대기록으로 남아있었다. 1914년 투수로 메이저리그 생활을 시작한 루스는 1919년 타자로 전향, 그해 29개 홈런을 날려 단번에 이 부문 기록을 경신하더니 이듬해 54개, 1927년에 60개를 쳐 홈런 타자로 명성을 굳혔다. 사이 영 같은 투수가 인기를 점령하던 미국 야구는 루스의 등장으로 타격전으로 바뀌었다
1923년 독일의 화학자 한스 골트슈미트 사망
1922년 이탈리아의 공산당 서기장 베를링구에르 출생
1919년 안창호 상해도착 임시정부 강화 착수
1915년 중국-일본 신조약 조인
1913년 한용운 `불교유신론`간행
1913년 영국 BBC 방송 최초의 종군특파원 딤블비 출생
1911년 멕시코 독재자 디아스 대통령 축출
1911년 아동문학가 윤석중 출생
1910년 부에노스아이레스-발파라이소간 안데스철도 개통. 남미 최초 횡단철도
1895년 대만도민, 대만민주국 선언. 대만순무(巡撫) 당경송을 총통으로
1865년 가톨릭대 신학부 개교
1865년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제만 출생 - 제만효과 발견으로 190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
1864년 나폴레옹3세, 노동자의 파업권 승인
1803년 미국 철학자 에머슨 출생
1669년 시칠리아 에트나산에서 화산 분출로 2만명 사망
1571년 투르크의 이슬람 세력에 대항할 그리스도교의 신성동맹 결성
1571년 5월 25일 베네치아와 교황 피우스 5세,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 사이에 신성동맹이 결성됐다. 1570년 베네치아를 동부 지중해로부터 몰아내기 위해 술탄 셀림 2세의 군대가 키프로스에 침입하자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 것이 결성배경이었다. 10세기 이후로 투르크인은 콘스탄티노플에 수도를 둔 비잔티움 그리스도교 제국의 세력을 꾸준히 잠식해 들어갔다.
초기에는 십자군에 견제를 당했지만 1300년경에는 소아시아에 거점을 확보했다. 이후 흑해와 마르마라해를 건너 유럽으로 진입, 인접한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영토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1453년에 모하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함으로써 그리스도교 문명권은 최악의 굴욕을 당했다. 투르크인은 서쪽뿐만 아니라 남쪽으로도 진출했다. 1517년에 이집트는 투르크의 셀림1세에 점령당했다. 그의 후계자이며 `대 술탄`이라고 불리던 술레이만 1세(1520-1566)는 치세동안 바그다드, 로도스, 벨그라드, 부다페스트를 거쳐 당시 서유럽 대부분을 지배했던 신성로마 황제의 수도인 빈 부근까지 지배권을 확장했다.
그리스도교는 투르크 침략의 파도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이슬람교도들에게 필적할 단결과 헌신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교황을 중심으로 단결한 그리스도교 군사들은 돈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가 지휘하는 신성동맹 함대로 1571년 10월 7일 레판토 해전에서 이슬람 함대를 결정적으로 패배시킴으로 다시는 이슬람 군대가 지중해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했다. 전투에는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가톨릭 국가 거의 전부가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