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6일 오늘의 역사
2023년 일본 나가노현 나카노시 흉기와 총기로 경찰관 2명 등 4명 살해 사건 발생
2018년 제4차 문재인 김정은 남북정상회담
2018년 5월26일 판문점 북쪽 ‘통일각’에서 네번째이며 실무형 성격의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됐다. 1개월 전인 4월 27일 열렸던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이 추진되는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요청에 의해 4·27 판문점 선언의 이행과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의견과 정보의 교환을 위한 실무적 목적으로 열렸으며, 의전을 포함한 거의 모든 격식이 최소화되어 화제를 모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회담에 앞서 5월 22일 미국을 방문하여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미정상회담과 관련된 제반 사항을 논의한 바 있다.
이 회담에서 남북 정상은 6·12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며, 이를 위해 긴밀히 상호협력하는 데 합의했다. 또한 4·27 판문점 선언의 조속한 이행과 6월 1일 남북 고위급 회담의 개최에 합의했다. 더불어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군사당국자 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회담을 연이어 열기로 합의했다
2018 방탄소년단 3집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 미국 ‘빌보드 200’ 1위에 오름
2017 이집트 콥트교도 탑승버스에 무차별총격 29명 사망
2014년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오전 9시쯤 고양종합버스터미널에서는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화재는 단 28분 만에 진화됐다. 하지만 7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에서 발견된 사망자들은 모두 유독가스에 질식당했다. 유독가스를 차단했어야 할 방화 셔터가 작동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
오전 9시 1분 불이 난 곳은 지하 1층이었다. 당시 CJ푸드빌이 발주한 푸드코트 내부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었다. 한 인부가 가스 배관을 용접하던 과정에서 불꽃이 튀었고, 약하게 새어나오던 도시가스에 불이 붙었다. 불길이 천장과 가연성 물질에 옮아갔다
불이 나자마자 연기는 지상 1층과 2층을 거쳐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차올랐다. 유독가스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확산됐다.
불이 나자 지하 1층에 있던 100여명은 뒤쪽 쪽문으로 탈출했다. 1층은 매장 대부분이 비어 있었고, 2~4층은 외부로 연결된 부분이 있어 사람들이 바로 밖으로 대피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터미널 2층 가장 안쪽인 매표소 사무실과 화장실에 있던 터미널 직원들이 미처 밖으로 대피하지 못하고 변을 당했다.
유독가스는 초당 3~5m의 무서운 속도로 위층으로 확산됐고, 약 2만8000㎡(8500평) 부지에 위치한 대형 건물 전체를 시계 50㎝ 미만의 매캐한 가스로 가득 채웠다.
이날 터미널과 연결된 지하철 백석역에도 연기가 유입돼 오전 9시 15분부터 지하철은 양방향 무정차로 통과했다가 오전 10시 21분부터 정상 운행됐다.
2010 위키리크스에 64만 건의 국가기밀 넘겨준 브래들리 매닝 일병 이라크 바그다드 현지 군부대에서 기밀누설혐의로 체포됨
매닝은 재판 3년 만에 2013년 8월 21일 미국 메릴랜드 주 포트미드 군사법원에서 간첩법 위반과 절도 등 20개 혐의로 징역 35년형 선고받음. 국제앰네스티는 “실제 인권침해를 저지른 사람들보다 인권침해를 고발한 매닝이 더 무거운 형벌을 받았다”며 부당하다 주장. 2017년 1월 오바마 대통령의 감형(7년)으로 2017.5.17 출소. 옥중에서 성전환 수술 이름도 첼시로 바꿈
2009년 정부, PSI(대량살상무기(WMD) 확산방지구상) 전면참여
2009년 5월 26일 정부가 그동안 참여를 늦추오던 대량살상무기(WMD)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를 선언했다.
외교통상부 문태영 대변인은 이날 서울 세종로 외교부청사 브리핑에서, "북한 핵실험 및 장거리 로켓발사 등 일련의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PSI 전면 가입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문 대변인은 또 "2009년 5월 26일자로 PSI 원칙을 승인키로 했다"며 "다만 남북한 간에 합의된 남북해운합의서는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미국에 공식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PSI는 지난 2003년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협약으로, 핵·생화학 무기 등 대량으로 인명을 해칠 수 있는 무기 완제품은 물론 그 부품을 운반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을 자신의 영해에서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PSI에 전면 참여하면 우리 영해에 들어온 북한 선박을 얼마든지 정선·수색·압수할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PSI 옵서버로만 참가해 왔다.
정부는 지난달 5일 북한이 장거리 로켓발사를 강행한 이후 전면가입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방침을 굳혔지만, 개성공단 직원 억류 사태 등으로 발표를 미루다 지난 25일 북한의 2차 핵실험 실시로 PSI 참여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판단했다.
2008년 화성탐사 로봇 피닉스 화성표면 착륙
2006년 국보법 위반 강정구 동국대 교수 유죄
‘6·25 전쟁은 북한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 전쟁’ 이라는 내용의 글을 쓴 혐의 등으로 기소된 강정구(姜禎求·사진) 동국대 교수에게 26일 법원이 유죄를 인정,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강 교수는 2001년 8·15 축전 방북단의 일원으로 김일성 생가(生家)인 만경대를 방문,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 는 글 등을 쓴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그 후 보석으로 풀려난 강 교수는 인터넷 매체에 ‘6·25 전쟁은 통일전쟁’ ‘맥아더는 전쟁광’ 등 북한의 선전·선동에 동조하는 글을 기고한 혐의로 지난해 추가 기소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 14단독 김진동 판사는 이날 “강 교수의 일부 주장들은 학자의 입장에서 화두를 던진 것이 아니라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방법으로 북한에 동조하거나 친북적인 주장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고 유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김 판사는 “강 교수 주장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질서에 해악을 가할 위험성이 있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것이라고 판단되고, 강 교수도 이 점을 알고 있었다고 보인다” 고 했다. 김 판사는 그러나 “강 교수에 대해 유죄를 선언하는 것 자체로도 처벌의 상징성이 있고 이로 인해 신분적인 불이익을 입게 될 점을 감안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 고 밝혔다.
판결문 낭독이 끝나자, 법정 방청석(50석)을 가득 메운 100여명의 사람들 틈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하다니 대한민국이 아니라 북한민국이다” 라는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 교수는 구속피고인 대기실을 통해 법정을 빠져나갔다.
법정 밖에서는 강 교수를 지지하는 대학생과 시민단체 회원 등 100여명이 “사상 표현의 자유 보장하라” 고 적힌 피켓을 들고 “국가보안법 폐지하라” 는 구호를 외쳤다. 바로 옆에서 강 교수를 반대하는 단체 회원 등 30여명이 “(국가보안법) 사수하라” 고 외치며 양측에서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2006년 미셸린 사장, 보트사고로 사망
프랑스의 세계적인 타이어 회사인 미셸린의 에두아르 미셸린(42) 공동 사장이 2006년 5월 26일 보트 사고로 사망했다.
미셸린 사장은 섬 근처에서 배를 타고 낚시를 즐기다 갑자기 배가 가라앉는 바람에 숨졌다.
2005년 경남아너스빌컵 핸드볼 세계최강전 한국-덴마크 친선경기
10개월 전 아테네올림픽의 막바지에 벌어졌던 한국과 덴마크의 여자핸드볼 결승전은 온 국민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30분씩의 전·후반전도 모자라 2차 연장전까지 이어졌지만 스코어는 34대34. 결국 승부던지기에서 패해 은메달에 머물렀지만 시상대에서 눈물짓는 여자핸드볼 선수들을 향해 온 국민은 박수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들이 다시 만났다. 26일 서울 올림픽공원 제2체육관에서 벌어진 경남아너스빌 세계최강전이 그 무대다. 대한핸드볼협회가 이른바 ‘복수전’으로 마련한 단판승부 친선경기였지만 양팀은 10개월 전의 혈투를 잊지 않은 듯 사력을 다했고 그 승자는 한국이었다. 한국은 맏언니 임오경과 오성옥이 빠진 데다 주축인 허영숙과 이상은이 크고 작은 부상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지만 특유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와 변형 수비시스템을 앞세워 세계 최강 덴마크를 28대24로 제압했다.
대세는 전반 초반에 갈렸다. 한국은 부상투혼을 벌인 허영숙이 경기시작 2분 만에 첫 득점을 한 후 최임정과 이상은이 각각 2점씩을 보태 전반 8분 만에 5-1로 앞서나갔다. 덴마크는 임영철 감독이 새로 도입한 한국의 ‘변형 식스-제로’ 수비에 허우적거리며 장신을 이용한 중앙돌파에 잇따라 실패, 시종일관 한국에 끌려다녔다.
전반을 15-11로 앞선 한국은 후반 15분까지 6점을 보태고 상대에게는 4점만을 내주며 착실히 승리를 향해 나아갔다. 주포 이상은이 발목부상으로 빠진 후반 16분 속공을 앞세운 덴마크에 거푸 2점을 내줘 21-18까지 쫓기며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막판에 우선희와 문필희의 연속골이 터지고, 후반 21분 GK 오영란이 덴마크의 베테랑 미켈센의 슛을 선방하면서 승부를 결정지었다.
2005년 신기성, 프로농구 KTF 입단
2005년 패션기업 ㈜신원의 개성공장 준공 기념 패션쇼
패션그룹 (주)신원이 2005년 5월 26일 남 북 경협사업의 상징인 개성공단에서 ‘개성공장 준공 기념 패션쇼’를 개최했다.
신원은 2005년 1월 초 개성공장을 준공해 2월 말까지 시범 가동을 끝내고 3월 초부터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해 개성산 의류제품을 전국 신원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이번 패션쇼에서는 여성복 브랜드 베스띠벨리, 씨, 비키 등과 남성복 브랜드 지이크, 캐주얼 브랜드 쿨하스 등 총 5개 브랜드 100여 제품을 소개하며 신원 의 2005년 봄~여름 제품과 개성에서 생산된 의류제품을 함께 선보였다.
이날 패션쇼를 참관하기 위해 남측에서는 박성철 신원 회장을 비롯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 이수영 한국경총 회장, 김용구 중소 기협중앙회장 등 각계 인사 500여 명이 26일 오전 9시 30분께 군사분계선을 통과해 개성으로 들어갔다. 또 신세대 스타 김태희 씨도 씨(SI)의 전속모델 자격으로 이날 패션쇼 무대에 섰다.이번 신원 공장 패션쇼는 북측에서도 상당히 높은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성철 신원 회장은 “90년대 북한에서 임가공으로 의류생산을 해 봤을 때 북한 노동자들의 손재주가 뛰어나 육로만 트인다면 북한에서 생산하는 것이 승산이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신원은 앞으로 개성공단에서 월 2만피스 이상의 제품을 생산할 예정이며 총 생산량의15~20%를 개성공단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2005년 프로농구 자유계약선수(FA) 현주엽, 창원 LG세이커스와 입단 계약
현주엽은 26일 LG의 구단 사무실에서 김영수 LG스포츠 사장과 만나 입단계약서에 서명했다. 계약기간은 5년이며, 연봉은 전날 KTF에 입단한 신기성과 같은 3억6000만원. 단년 계약으로 매 시즌이 끝나고 개인 및 팀 성적에 따라 매년 별도로 협상한다.
현주엽은 “LG는 이전부터 오고 싶었던 팀 중 하나였다. 개인으로나 팀으로나 아직 한 번도 못해 본 프로농구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며 “전 소속팀인 KTF와 영입의사를 밝혔던 전자랜드와 오리온스에 감사의 뜻을 표시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LG는 현주엽의 영입으로 취약점으로 지적되던 골밑 보강에 성공하고, 외국인 선수의 선택 폭도 넓어지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 LG는 신선우 감독·유도훈 코치를 KCC로부터 데려온 데 이어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이지승을 코칭스태프에 합류시켰다.
2004 남북 장성급 회담 남북분계선상 선전중지 합의
2002년 임권택 감독, 영화 `취화선`으로 제5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 수상
2002년 5월 26일 제5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의 임권택 감독이 영화 `취화선`으로 미국의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과 공동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주요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한국 영화나 한국인 감독·배우가 상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취화선`은 조선 후기 유명 화가였던 오원 장승업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다. 66세의 감독은 시상식 단상에 올라가 예의 `느릿느릿 분명한` 어투로 1600여명의 전세계 영화계 VIP 앞에서 소감을 말했다. "이 상은, 남북한을 통틀어 우리 한민족에게 주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년 시절 끼니를 해결하려고 충무로에 들어갔던 청년이 세계가 인정하는 영화 거장으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2001년 아프리카 연합(AU) 공식 출범
아프리카 대륙의 정치·경제적 통합을 목표로 한 `아프리카 연합(AU)`이 `아프리카단결기구(OAU)` 53개 회원국 중 37개국의 비준을 얻어 2001년 5월 26일 공식 출범했다. 이에 따라 아프리카 중앙은행과 단일 통화, 의회, 법원 등의 설치를 목표로 한 `유럽연합(EU)`식 아프리카 국가연합체가 첫 발을 내딛었다.
살림 아흐메드 OAU 사무총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정치적·법적 실체로 볼 때 내일부터 우리는 아프리카 연합을 갖게 됐다"면서 "아프리카 대륙은 이제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선언했다. AU 회원국들은 2001년 7월 잠비아의 루사카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아프리카 의회의 창설 시기 등을 논의했다. AU는 4월 26일부터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 있는 OAU 본부에 대한 인수작업을 시작했으며 이 작업을 12개월여에 걸쳐 계속했다.
AU는 무아마르 가다피 리비아 국가 평의회 의장이 `아프리카 합중국` 설립을 제안하면서 논의를 시작해 탄생했지만 그 동안 정상회담에서 `아프리카 합중국` 개념이 훨씬 약화된 조직으로서 출범하게 됐다. AU 창설에 합의한 OAU 53개 회원국 중 이를 비준한 국가는 AU 출범에 필요한 3분의 2 선을 약간 넘는 37개국에 불과한 형편이어서 AU의 단결력이 의문시되고 있다.
1999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현 국가원수 처음으로 전범협의 기소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연방 대통령이 `전범` 리스트에 올랐다. 구 유고 국제전범재판소(ICTY)는 밀로셰비치를 코소보에서의 만행과 관련, 전쟁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했다고 CNN방송이 1999년 5월 27일 보도했다. 현직 국가원수가 국제 전범으로 기소되기는 밀로셰비치가 처음이다.
코소보 사태 발생 이후 인접 알바니아와 마케도니아로 쫓겨난 코소보 알바니아계 난민들은 세르비아계가 학살과 집단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증언해왔으며, 국제 인권단체들은 ICTY에 밀로셰비치를 비롯한 유고 지도자들을 전범으로 기소할 것을 촉구해왔다. 밀로셰비치와 함께 밀루티노비치 세르비아 공화국 대통령, 유고 연방군 총사령관, 세르비아 공화국 내무장관 유고연방 부총리 등 유고연방 간부 4명에 대해서도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밀로셰비치의 기소로 코소보 평화협상에서 밀로셰비치에 대한 사면조치를 하나의 `협상카드`로 내밀어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주장과 오히려 외교적 노력의 입지를 좁게 만들어 발칸반도 상황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수포로 만들 것이라는 상반된 주장이 제기됐다.
1999년 제1회 조선일보 인터넷대상 시상
1999년 과학실험위성 `우리별3호`, 인도 샤르기지에서 발사
소형과학실험위성 ‘우리별3호’가 1999년 5월26일 인도 샤르기지에서 남동부의 하늘을 가르며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인도 FSLV 4단 로켓에 실려 우주로 날아간 우리별3호는 1992년과 1993년에 발사한 우리별1호, 2호의 개발경험을 바탕으로 설계부터 주요 시스템제작 조립에 이르기까지 외국기관의 도움없이 거의 100% 우리 손으로 만들어 졌다
1995 북한 일본에 쌀 지원 공식 요청, 나웅배 통일부총리 전제조건 없는 대북곡물지원 제의
1994년 패륜아 박한상 사건
1994년 5월 26일 1백억원대의 아버지 재산을 노려 부모를 살해한 패륜적 범죄가 발생했다. 한약상 박순태씨 부부는 각각 온몸을 흉기에 50곳, 40곳 난자해 살해된 뒤 불에 타 숨진 채로 발견됐다. 사건 조사결과 박씨의 장남 한상군이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박은 1993년 8월부터 미국에 어학연수를 갔으나 라스베이가스에서 포커 도박으로 생활비, 승용차구입비 등 2만3천달러를 탕진한 뒤 아버지에게 심한 꾸중과 함께 유학 포기를 종용받고 1백억원대의 아버지 재산을 상속받을 욕심으로 범행을 결심했다고 경찰에서 말했다.
경찰 조사결과 박은 어머니를 먼저 흉기로 찔러 쓰러뜨리고 잠에서 깨어난 아버지의 얼굴과 가슴 등을 마구 찔러 살해한 뒤 어머니를 난자해 사망여부를 재확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박은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체계적인 범행수법을 계획, 서울 세운상가에서 등산용칼을 2만원에 구입하고 주유소에서 휘발유 8ℓ를 사는 등 사전에 범행을 치밀히 준비했다. 박은 범행 후 화장실에서 몸을 씻고 차고에 숨겨둔 휘발유를 가져와 부모 방에 뿌린 뒤 범행에 사용한 등산용 칼과 휘발유통, 운동화 1켤레 등 증거물을 아버지 승용차에 싣고 집에서 5백m 떨어진 공터에 가서 버리고 돌아와 집에 불을 질렀다.
경찰은 “박이 조카를 화재현장에 남겨둔 채 도망쳐 나온데다 당시 박의 머리카락에 피가 묻어 있었다는 간호사의 진술 등에 따라 박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집중수사를 벌인 끝에 범행을 자백받았다”고 말했다.
1993년 한국-에리트레아 국교 수립
1992년 김대중 민주당 공동대표, 제14대 대통령후보로 선출
1991년 오스트리아 라운다 항공 소속 보잉 767-300기 방콩부근 추락. 223명 사망
1987년 이한기 국무총리 서리 취임
1986년 파리 감옥서 헬기를 이용한 탈옥사건 발생
1983년 일본에 해중지진 발생 102명 사망 실종
1983년 프랑스 남태평양 무루로아제도서 사상최대 지하핵실험
1982년 소설가 유주현 사망
1981년 페르시아만 협력협의회 창설(GCC)
1981년 한국-싱가포르 해운협정 서명
1979년 한국 판소리 예능보유자 박녹주 사망
1978년 여천 석유화학공단 준공
1976년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 사망
실존주의의 선구자인 세계적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가 1976년 5월 26일 서독 프라이부르크 그의 자택에서 서거했다. 향년 86세였다. 하이데거는 20세기의 가장 영향력있는 철학자중의 한 사람이었다.
작은 키에 콧수염을 기른 하이데거는 장기간의 나치당원 경력으로 인해 지적명성에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가장 존경받는 사상가의 한 사람으로 꼽혀왔다. 이러한 가운데 하이데거는 장 폴 샤르트르와 같은 다른 실존주의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1889년 9월 26일 남부 독일 바덴지방의 메스키르히 시에서 태어난 하이데거는 대학 시절 로마 가톨릭에 심취했으나 곧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선언, 역사와 철학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첫 번째 철학저술은 모든 전통적인 철학체계에 대한 공격으로 일관했다.
프라이부르크대학 교수를 지낸 그는 1927년 현상학의 기관지 ‘존재와 시간’ 을 발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일약 독일철학계의 중진이 되었다. 그는 리케르트의 가치철학, 후설의 현상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 등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인 철학을 완성했다. 그는 그의 철학을 ‘기초적 존재론’ 이라고 불렀다. 그는 해석학적, 현상학적 방법을 가지고 그것의 본질을 ‘우려’ 와 ‘시간’ 에 환원시켰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존재와 시간(1927)’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1929)’ ‘니체(1961)’ 등이 있다.
1972년 탄도탄 요격미사일 조약(ABM) 조인
1972년 미·소,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Ⅰ) 체결
1969년 11월 17일 제럴드 스미스 군축 국장을 앞세운 4명의 미국 대표와 블라디미르 세미오노프를 단장으로 하는 6명의 소련대표가 헬싱키 교외 스몰라궁에 마주 앉았다. 스미스는 “책임을 깊이 인식하고 있으며, 이는 전세계의 관심사” 라고 운을 뗐고, 세미오노프는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고 짧게 답했다. 그리고, 앞으로 협상을 해나갈 비밀 장소를 정하는 것으로 첫 회의를 시작했다.
후에 SALT 1, 즉 전략무기제한협정 (strategic arms limitation talks)이란 이름으로 조인되는 미소 핵군축 회담의 시작이었다. 두 나라를 협상 테이블에 앉힌 것은 핵무기 경쟁에 대한 공포심이었지만, 그 의도와 관계없이 핵으로 인한 인류의 멸망 가능성에 제동을 거는 사건이기도 했다.
SALT 1의 제동이 처음은 아니었다. 1963년에 대기권 핵실험금지조약이 체결됐고, 5년 후엔 핵무기확산금지조약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핵실험 금지조약은 실험장소를 지하로 한정시켜 낙진의 위험을 최소화하자는 정도였고, 핵 확산금지조약은 핵무기 보유국을 동결하자는 수준이었다.
그나마도 핵확산금지조약은 이미 핵을 가진 나라만 살찌운다는 의미에서 불평등조약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웠다. 그런 전례를 뒤로 하고, 힘겹게 마련된 두 나라의 협상은 무려 2년 6개월을 끌었다. 434회를 기록한 만남은 순조롭지 않았지만 난항 끝에 1972년 5월 26일 닉슨과 브레즈네프가 모스크바에서 만나 요격미사일(ABM) 체제에 관한 조약과 공격용 전략무기 제한에 관한 두가지 주요 협정에 서명하면서 SALT 1이 체결됐다.
1969년 볼리비아-콜롬비아-에쿠아도르-페루-칠레 5개국 안데스통합협정에 조인
1967년 서영춘, 코미디언 최초 리사이틀 공연(-28일)
서영춘(1928~1986)은 후배 코미디언과 개그맨들이 꼽는 최고의 코미디언이다. 현역 시절에는 극본에도 없는 애드리브를 마구 날려 “애드리브의 천재”로도 불렸다.
서울에서 태어난 서영춘은 어려서부터 남의 흉내도 잘 냈지만 그림도 잘 그렸다. 한양공고를 졸업하고 1946년 황금좌(국도극장의 전신)에 간판 화공으로 취직했으나 관객의 박수갈채를 받는 악극단 배우들이 부러워 신세기악극단에 입단했다. 서영춘은 악극단에서 단골 바보역으로 인기를 끌던 한 희극배우가 급환으로 사망하자 그의 대역으로 나선 것을 계기로 코미디언이 되었다.
서영춘에게 출세의 문을 열어준 것은 100㎏이 넘는 거구의 백금녀와 콤비를 이루면서였다. 1960년대 초 서영춘·백금녀 콤비는 극장쇼의 최고 스타로 황금시대를 구가했다. 서영춘은 1964년 라디오 서울(TBC 전신)의 개국과 함께 선보인 ‘살살이 서영춘’, ‘여보 마누라’, ‘꽁생원 상경기’ 등의 방송 코미디를 통해 ‘방송 코미디’의 개척자가 되었다.
1965년 TBC TV 개국과 함께 TV에서도 맹활약해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살살이’가 되었다. 당시 TBC TV의 ‘유머극장’, ‘좋았군 좋았어’는 코미디와 유머를 대중에게 정착시킨 히트 프로그램이었다. 1960년 ‘여자가 더 좋아’에서 여장남자로 변장해 장안의 화제를 불러 모은 이래 60여 편의 영화에도 출연해 은막에서도 전성기를 구가했다.
1967년 5월 26일부터 28일까지는 서울 시민회관에서 코미디언 최초의 리사이틀 격인 ‘신작 발표회’를 열었다.
1966년 가이아나, 영국으로부터 독립
1965년 아랍 12개국 정상 카이로에서 회담
1964년 서독 루루지방-프랑스 로렌지방 연결하는 모젤운하 개통
1961년 한국군의 작전권 유엔군에 복귀
1955년 영국 총선서 보수당 승리
1955년 서울발레단 창립공연
1952년 국회의원 48명 탄 통근버스 통째로 연행
1952년, 피란지 부산은 집권연장을 꾀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무리수로 연일 시끄러웠다. 직선제 개헌을 추진, 연임을 노렸지만 야당의 반대로 계획이 차질을 빚자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비상수단을 강구하던 이승만에게 1952년 4월과 5월에 치러진 지방의원 선거에서의 승리는 낭보였다. 백골단·땃벌떼·민중자결단 등 정체 모를 집단들이 연일 반국회 시위를 벌였다. 관제 데모대가 우마차를 타고 상경했다 해서 생겨난 해학성 조어 ‘우의·마의’도 이때 유행했다.
그러던 1952년 오늘, 우리 헌정사에 길이 남을 중대한 사건이 발생한다. 새벽에 정헌주·이석기 등 야당 의원이 구속된 데 이어 48명의 국회의원을 태운 전용버스가 통째로 헌병대에 끌려간 것이다. 곽상훈·서범석 등 야당 의원들이 국제공산주의와 결탁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결국 발췌개헌으로 직선제는 관철됐지만 일각에선 ‘민주주의의 장송’이란 탄식을 들었다.
1952년 미국-영국-프랑스-서독간에 평화조약 조인
1946년 정부 대외무역에 허가제 채택
1942년 영국-소련 상호협조조약 체결
1940년 영국군, 덩케르크에서 철수 시작
1937년 부민관에서 우리나라 첫 오페라 공연
일본 후지와라 가극단이 유럽에서 20여 년 동안 활동하면서 2천여 회 나비부인 역을 맡은 인기소프라노 미우라 다마키 내세워 ‘나비부인’ 공연
1934년 제1회 전국남녀탁구선수권대회 열림
1919년 33인중의 한사람인 양한묵, 서대문 감옥에서 옥사
1917년 광화문선 전차 궤도 준공
1911년 독일, 알자스·로렌을 한 주로 공인
프랑스·독일의 경계에 있는 알자스·로렌은 지정학적 위치와 경제적 가치로 예로부터 양국 간 분쟁이 끊이질 않던 곳이다. 다량으로 매장돼 있는 석탄과 철, 게다가 온난한 기후로 와인 맛도 좋아 양국은 호시탐탐 이곳에 눈독을 들였다.
먼저 국기를 꽂은 나라는 프랑스. 30년전쟁을 종결시킨 베스트팔렌조약(1648년)이 알자스를 프랑스 영토로 결정한 것이다. 로렌은 1766년에서야 프랑스로 귀속됐다. 그러나 상류층만 프랑스에 우호적이었을 뿐 독일어와 독일 풍습이 그대로 유지돼 통합이 더뎠다. 주인이 독일로 바뀐 것은 1870년 프랑스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난 뒤였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발표된 것은 이 무렵이었다. 독일은 이곳에서 프랑스의 흔적을 지우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자치지역이었던 이곳이 독일연방의 한 개 주(州)로 공식 편입된 것은 1911년 5월 26일이었다.
묘한 것은 누가 이 지역을 지배해도 통합에 적극적이지 않은 주민들의 성향이었다. 어렵사리 독일의 일원으로 자리를 잡는가 싶더니 1차대전 패배는 주인을 다시 프랑스로 되돌린다. 베르사유조약(1919년)이 소유주를 변경한 것이다. 50여년 만의 프랑스 복귀였지만 지역주민들은 프랑스의 성급한 동화정책에 또 반발한다. 운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차대전 발발과 함께 5년간 독일 수중에 떨어졌다가 전후 다시 프랑스로 반환된 것이다.
1910년 멕시코의 대통령(1958-64) 로페스 마테오스 출생
1908년 이란(페르시아)사막서 대유전 발견. 최초의 중동 석유 개발
1907년 영화배우 존 웨인 출생
1905년 마산-삼량진간 철도 개통
1901년 빈에서 제2회 국제자동차쇼 개막
1899(조선 고종 36) 어린아이가 치어 죽자 성난 서울 사람들 전차 불태움
1898년 군산, 청진, 마산항 개항
1895(조선 고종 32) 전국 23부 331군 지방관제 개편
1877년 미국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 출생
1877년 5월 26일, 고전 발레의 형식을 거부하고 창작 댄스를 창조적 예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최초의 인물인 이사도라 덩컨이 출생했다. 그녀는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발레를 배웠지만, 몸과 다리를 조이는 코르셋과 토슈즈의 불편함을 견디지 못했다. 고전 발레의 엄격함을 거부한 그녀는 고대 그리스를 동경하여 하늘하늘한 감의 옷을 입고 자유로운 율동과 움직임을 바탕으로 맨발로 춤을 추었다. 베토벤 등 고전 음악가의 음악에 맞춰 감정이 흐르는 대로 몸을 움직이는 프리 스타일에 의한 독자적인 춤을 구사했다.
미국에서 처음 공연했을 때는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나 자유분방한 공연 양식과 춤으로 기존 발레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에게 신선을 충격을 주며 영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곳에서 열광적인 찬사를 받았다.
그녀의 사생활 또한 세간의 금기들을 줄곧 거부한 탓에 그녀의 예술만큼이나 화제가 됐다.그녀의 두 아이는 타고 있던 차가 갑자기 움직여 세일즈 강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익사했고 러시아 출신 시인이었던 17세 연하의 남편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예세닌은 정신적 불안감에 휩싸여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러한 불행은 끊이지 않아 그녀 역시 1927년 9월 14일, 요양차 머물던 프랑스 리비에라 해안의 니스에서 오픈카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다 그녀의 목에 매고 있던 스카프가 차의 뒷바퀴에 말려들어가 질식사했다.
1822년 프랑스 작가 에드몽 콩쿠르(콩쿠르형제중 형) 출생
1815년 가이슬러 펌프와 가이슬러 관을 발명한 유리불기공 가이슬러 출생
1602년 프랑스의 바로크 시대 초상화가 샹파뉴 출생
660년 신라왕, 직접 출병하여 백제 공격
649년 중국 당 태종 이세민 세상 떠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