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 3월을 시작하면서, 不可能은 없다, 단지 信念과 執念이 없을뿐 - 마음이 몸을 지배하고 목표에 눈을 고정하고 있다면 장애물은 보이지 않는다.
1, 호박벌의 飛行과 人間의 信心과 執念이 낳은 雪嶽 鳳頂庵 登頂
봄이 문앞에 나비처럼 살짝이 내려 앉음에 따라 이제 조금 더 있으면 우리집 옥상 농장에 복사꽃을 비롯한 각종 꽃이 필테고, 그리되면 각종 나비와 벌들이 날아들어 부지런히 화수활동을 할텐데 그중에서도 호박벌은 그 특이한 몸놀림 때문에 눈에 확 들어온다.
주지하다시피, 벌목 꿀벌과의 호박벌은 몸길이가 평균 2~ 2.5cm밖에 안 되는 작은 체구를 가졌지만 꿀을 모으기 위해 1초에 230번 날갯짓을 해서, 하루 평균 200km 이상의 먼 거리를 쉴 새 없이 날아다니는 곤충으로 체구 대비 엄청난 천문학적 거리를 날아다닌다. 해서 가끔은 인간이 발명한 날틀도 이 호박벌처럼 적은 연료로 사이즈(Size) 대비 엄청난 거리를 날아다니면 경제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한다.
사실, 호박벌은 날 수 없는 신체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는 몸통은 날개보다 크고 뚱뚱한 데 비해, 날개는 작고 가벼워서 날기는 커녕 떠있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지만, 신기하게도 호박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로지 꿀을 모으기 위해 飛行을 한다.
그럼, 어떻게 그 작고 뚱뚱한 몸으로 기적 같은 飛行을 하는 걸까?
그리고 그 엄청난 거리를 날아다닐 수 있는 걸까?
그에 대한 답은,
호박벌은 자신이 날 수 있는지, 없는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점에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오로지 꿀을 모으겠다는 一念이 호박벌의 이같은 超能力的 飛行을 可能하게 만든 것이다.
가히 '精神一到何事不成'의 살아 있는 標本이 아닐 수 없겠다.
물론, 이는 인간들이 다소 견강부회격으로 해석한 면이 없지않아 있기는 하다.
호박벌은 소리만 들어도 일반 벌과는 구분할 수 있고 몸집 또한 날개보다 훨씬 비대해서 어찌 날고 있나 의문이 들 정도로 호박벌의 몸은 비행에 적합한 구조가 아닌지라 "호박벌은 그저 스스로 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날 수 있다"는 정신론스러운 이야기가 인터네 상에 자주 떠돌기도 하는데 사실은 130° 각도로 초당 230회 정도의 날갯짓을 해 앞전와류(leading edge vortex)라는 일종의 회오리 구조를 만들어서 날아다닌다고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 비행 효율은 다른 곤충에 비하면 형편없다.
그럼, 호박벌은 어떻게 날 수 있을까?
그 이유는 자신이 날 수 없는 구조의 몸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호박벌은 태어나자마자 다른 벌들의 날갯짓을 보고 자신도 날갯짓을 한다.
일반적인 날갯짓으로는 결코 날아오를 수 없기 때문에, 호박벌은 더욱 빨리 날갯짓을 한다.
그렇게 수없이 날갯짓을 하면서 날개 안쪽에 튼튼한 근육을 만들어
다른 작은 벌들보다 더 많은 날갯짓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날아오를 수 있게 된다.
호박벌은 자신이 날 수 없다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꿀을 모아야겠다는 것과
그러기 위해 반드시 날아야 한다는 생각뿐인 것이다.
사람도 이와 같다.
지금으로부터 27년 前인 1995년 꺼져가는 대학총동문회를 재건하면서 그 산하에 산악회를 결성하고, 當時 特殊氣功師 修鍊生들을 데리고 전국의 이름난 明堂과 名山大刹을 찾아다니면서 修行을 시켰던 因緣탓에 어거지로 산악회 회장을 맡아서 전국의 산이란 산은 모두 오르려고 돌아 다닐때였다.
초겨울로 접어드는 1995년 11월 중순 태백산을 종주하고자 산악회 버스에 올랐는데, 옆자리에 70대 초반의 할머니가 무엇인지를 가득 넣은 큰 배낭에 메고 탔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산에 갈때는 아무것도 안가지고 빈몸으로 간다. 단지, 산채할려 갈때만 간혹 산행물을 담을 수 있는 조그만 배낭을 가지고 갈뿐, 그 때도 식수나 음식물 등은 일체 가져 가지 않는다. 무겁기도 하거니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산행 중에 먹을 일도, 또 마실일도 없기 때문이다. 한 여름 오뉴월 염천에도 생수를 가지고 다니지 않으니 산악회 회원들이 모두 의아해 할 정도다. 해서 속으로 "초보자가 탔구만, 저 무거운 거를 어떻게 메고 다닐려고 가지고 왔는고?"하면서 다시 한 번 더 쳐다 봤는데, 아무리 봐도 그 몸으로 저걸 메고 산행을 한다는 건 무리처럼 보였다. 그러나 마나 다 본인이 알아서 할것이니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라서 太白山까지 가는 도중에 차안에서 한숨을 잤다.
새벽에 도착한 들머리인 유일사 입구,
지금도 똑 같지만, 남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지라 하차하자마자 쏜살같이 일착으로 오르는데, 친분 있는 산악회 회장이 헐레벌떡 쫓아오드니만, "우리 일행 중에 배낭을 안멘 분은 회장님 밖에 없으니 죄송하지만 저기 할머니 배낭을 좀 메어주시고 같이 오르시면 안될까요?"라고 사정을 한다.
해서 속으로 "이런 젠장, 그런게 싫어서 아무것도 안가지고 다니는데 뭔소리를?"하고 생각하면서
"아니, 난 아무것도 안가지고 와서 재빨리 내려가서 여러분들이 중간에서 점심 먹고 하신할 쯤에 나도 등산버스가 주차된 곳의 식당서 요기를 끝내고 합류해야 하는데 어찌 메고가겠소? 그러지말고 그분보고 그냥 배낭을 차안에 두고 따라오라 하소. 보아하니 산행 초보자 같던데" 라고 했드니, 이번에는 산행대장까지 와서 "음식은 제꺼를 나누어 드릴테니 그거 드시면 되구요, 제일 후미를 맡아서 같이 올라 오세요, 시간을 넉넉하게 드릴께요"라고 사정사정을 한다.
속으로, "에고 재수없는 날이구만"하면서 회장보고 "나는 산행 중에는 일체 식사나 음료수를 마시지 않으니 내 걱정은 하지 마시고, 배낭은 내가 메고 갈테니 그 할머니나 잘 챙겨 모시고 오시요"하면서 배낭을 받아메고 쏜살같이 오르는데, 이 할머니가 뒤에서 " 저도 좀 데리고 가주세요. 그 배낭 안에 점심으로 먹으려고 가지고 온게 많으니 그거 먹어야 돼요"라고 소리친다. 내 참 기가 막혀서리...
이렇게 되어서 그 할머니를 데리고 장군봉으로 오르는데, 등산이라곤 그날 처음이라고 하면서 따라오지를 못한다. 해서 "도대체, 초보자가 해발 1567m나 되는 백두대간 주릉을 왜 왔소? 그냥 동네 뒷산이나 살살 다닐 일이지 " 하고 물으니 "天祭壇에 祭를 올리는게 평생 소원이라 祭를 올리고 싶어서 왔어요. 그래서 가방 안에 祭物도 넣어 왔어요"라고 한다. 해서 혹시 "무속인이세요?" 했드니 "아닙니다"라고 한다. 어쩐지 외모가 무속인은 아니였고,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氣도 맑고 깨끗하드니만....
하지만, 문제는 걸음도 느릴뿐더러 산을 잘 못탄다는 점이다. 별수없이 동행한 山主보고 "여기서 천제단까지는 오르막이니 당신 신물을 좀 빌려줘서 천제단까지는 좀 태워서 데려다 줘라. 그 담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 라고 했드니 그렇게 해줘서 뒷쳐지지 않고 천제단까지 수월하게 올라갔다. 그 부근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과일, 밥, 제주 등 제물을 어찌나 많이 싸왔는지 일행들에게 다 나눠주었다.
하산길,
체력이 바닥난데다가 밥까지 많이 먹은 산행 초보자인 70대 여성 노인네가 내리막 하산길을 옳게 걸을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계속 주저 앉는다. 해서 계속 늦어져서 집합시간까지 도착은 커녕 일몰전까지도 도저히 집합장소에 갈수가 없기에 최후 통첩을 했다. " 걸음이 너무 늦어서 나도 이젠 더 이상 케어해 드릴 수가 없으니 나 따라서 같이 내려 가던지 아님 여기서 혼자 남아 아까 타고 온 호랑이 밥이 되던지 하시라."하고선 뒤도 돌아보지않고 먼저 내려가면서 살짝 뒤돌아 보니 웬일인지 잘 따라온다. 역시 우리 몸의 주인은 정신이라 위기를 감지하고 몸이 달으면 뭐던지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마치 연약한 어머니가 차에 깔린 자식을 구하기 위해서 자기도 모르게 잠재의식을 발휘해서 무의식적으로 차를 들어올려 자식을 구하듯이.
이렇게 해서 제때 집합시간에 도착하는 기적을 발휘시켰드니 그날 함께한 산악회원 45명 모두가 다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쳐다 본 일이 있었는데, 이와같이 위급한 순간을 감지하면 몸이 정신을 지배하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정신이 몸을 지배하면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바로 人間의 信心과 執念이 낳은 '精神一到何事不成'의 기적인 것이다.
또 한번은, 16년 전 여름인 2006년 8월 4일 백담사에서 봉정암을 거쳐서 오세암으로 일주하는 '나를 찾아 떠나는 限界旅行'의 1박 2일 山行길에 올랐는데, 백담사에서 수렴동으로 들어가는 初入에서 당시 82세라는 할머니를 만났다. 이 분은 다행히도 나처럼 아무런 배낭이나 짐없이 달랑 지팡이 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雪嶽峻峰을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동네 뒤산도 아니고 南韓에서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 다음으로 세번째로 높다는 해발 1707m의 雪嶽은 82세의 할머니가 오르기에는 생각만큼 그리 만만한 산은 아니다. 하지만, 의외로 씩씩하게 내 빠른 발걸음을 잘 따라온다. 물론, 그 때는 일부러 이 할머니 步幅에 맞추어서 걷기는 했지만서도.
해서 하도 신기해서 물어 보았다.
"할머니는 그 연세에 그냥 댁 부근의 가기 편한 사찰이나 가실 것이지 왜 그 가파르고 길도 험한 봉정암을 갈려고 그러세요?"라고 물었드니 "내 평생에 꼭 한번 봉정암에 올라 봉정암 부처님 眞身舍利를 親見하고 기도를 드리고 싶어서 가요"라고 한다. 해서 "자장이 잡은 봉정암은 우리나라에 있는
5대 寂滅寶宮의 佛寺刹 중 五臺山 中臺 寂滅寶宮과 더불어 風水가 가장 좋은 天下大明堂으로 풍수상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인 '鳳凰抱卵形'이지요, 해서 이 양대 大明堂에 佛舍利를 안치했기 때문에 조선조 500년 동안 이루어진 그 잔학하고도 혹독한 불교 탄압 정책인 '崇儒抑佛'정책 하에서도 불교와 중들이 살아 남았지요. 만약에 끝까지 올라 오실 수가 있다면 鳳頂庵 중 氣가 가장 강한 곳인 眞穴處를 알려드릴테니 그곳에서 소원을 비신다면 반듯이 이루어지실 겁니다."라고 했드니 반색을 한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설악산에서 가장 험한 능선 중 하나가 소청봉 아래 용아장성으로, 이름 그대로 ‘용의 이빨’처럼 생겼다 해서 지어졌는데 봉정암은 그 이빨의 잇몸쯤 되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지요. 대저, 산이란 험하면 험할수록 경관은 아름다운 법이기에 봉정암은 언제, 어디서 봐도 절경이지요.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는 설악산 봉정암의 5층사리탑)
‘鳳頂庵’이란 이름도 험한 위치와 무관치 않아,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선덕여왕 13년(서기 644년) 자장율사가 당나라 선량산(오대산)에서 기도 중에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文殊로 부터 '海東에 불법을 크게 일으키라'는 부촉을 받고 문수의 화현승으로 부터 부처진신사리와 금란가사 한 벌을 받아 귀국 후 大國統이 되었는데, 이후 왕명에 따라서 중국 오대산에서 가져온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양산 통도사와 경주 황룡사 9층석탑에 우선 봉안한 후 발길을 북쪽으로 돌려 진신사리를 모실만한 신령한 장소를 찾았지요. 해서 먼저 금강산에 올라 기도했는데, 기도를 시작한 지 이레째 되는 날, 갑자기 하늘이 환해지면서 오색찬란한 봉황새 한 마리가 날아왔기에 그 금빛 봉황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더니 높은 봉우리 위를 선회하던 봉황새가 갑자기 어떤 바위 앞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봉황이 사라진 그곳은 부처의 이마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용아장성은 이 佛頭岩을 중심으로 좌우에 일곱 개의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바, 자장이 자세히 보니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인 '鳳凰抱卵形局'의 천하 대명당이라, 자장은 바로 이곳이 사리를 봉안할 곳이라 판단해서 부처 형상을 한 바위 밑에 불뇌사리를 봉안한 뒤 5층탑을 세우고 암자를 지으면서 절 이름은 봉황이 부처님의 이마로 사라졌다 해서 '봉정암'이라 이름 붙였지요.
그 만큼 봉정암은 설악의 氣가 강하게 凝聚된 吉地라 眞穴處에서 기도한다면 기도발이 잘 받는답니다." 라고 했드니 아주 좋아라 한다.
봉정암은 우리나라 불사찰 중 지리산 자락의 해발 1400m에 있는 중산리 法界寺 다음으로 가장 높이 있고, 암자 중에서는 가장 높은 설악산 해발 1244m에 있어 평균 1000m아래인 한국의 웬만한 산 높이보다 더 높을뿐만 아니라 설악산에서도 가장 험준하다는 용아장성의 잇몸쯤 되는 자리라서 올라가기도 만만찮다. 그것도 계곡 옆 험한 바위길 따라서 가야하니 2~ 30대의 젊은이들 조차도 올라가 본 이들이 드물 정도로 가파르고 위험한 난코스인데, 82살의 할머니가 죽기전에 꼭 한번 부처 頭頂(뇌)사리를 보고자 하는 오로지 한가지 信心과 집념으로 올라갈 생각을 했다는 것은 보통의 믿음(信心)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인제 용대리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종점이 백담사로, 봉정암 올라가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도상거리는 약 10.6km로, 당일로는 불가능하니 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할머니, 아주머니들은 그래도 간다. 지팡이를 짚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佛心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따라올 수 있도록 보조를 맞추어 주고, 가파른 곳에서는 손을 잡아 이끌어올려주었다고는 하나 의외로 잘 오르는지라 그 믿음(佛心)과 執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건장하고 멀쩡한 젊은이들 조차도 구슬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헥헥거리고 오르는 그 험하디 험한 가파지른 곳을 오뉴월 炎天에 올라 갈 생각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인간승리가 아닐 수 없겠다.
봉정암 요사채벽에 등을 기댄채 결가부좌를 한 후 추녀를 이불삼아 밤을 지새고 다음날 새벽 04시 일출을 보고자 소청을 올랐다.
82세 할머니의 평생 소원을 이루어주게 한 공덕인지는 모르겠으나 뭉게 뭉게 피어오르는 오색구름 사이로 풍악이 울리고 하늘이 열리면서 界가 다른 하늘이 보이는 신비한 광경을 보았다. 생각이 바뀌어 이제는 아니지만, 그 옛날 우화등선해서 가고 싶었던 그 곳이.
조선조 光海.仁祖 때의 이름난 정백리이자 名相인 완평부원군 梧里 李元翼(1547년 12월5일 ~ 1634년
2월 26일)은 全州가 본관으로, 자는 功勵, 호는 梧里로 태종의 서자였던 益寧君 袳의 4세손이며, 영의정을 지낸 정창손의 외후손인 바, 영의정을 4번이나 역임 했다.
그 이원익이 아직 과거 급제전에 한계산에 유람왔다가 한계산에 있는 한계사의 작은 암자를 들렀는데, 여기서 항상 방안에 앉아 三昧에 들고 있는 寒溪老僧을 만났 다고 한다. 처음 이 노승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뚫어져라 쳐다보더니만,종이를 꺼내 거기에다 몇자를 적더니 공중으로 던졌는데, 참으로 희한하게도 조금뒤에 하늘에서 仙鶴이 내려와 안마당에서 노릴었다.기이하게 생각한 오리가 노승에게 어찌된 일인가 물었더니 노승이 놀라면서 " 선비와 나는 서로 애기가 통할 것 같소. 다른 사람들이 못보는 것을 그대는 볼 수 있으니 말이오.신비로운 것을 더 보고 싶으면 나를 따라 오시오. "하고는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밖으로 나갔는데,노승이 발짝을 옮길 때마다 땅에 옥구슬이 깔리면서 거친 산길이 휘황찬란하게 빛났다고 한다.
" 웬 寶玉이 이렇게 많습니까 ? " 하고 오리가 물으니, 노승이 답하기를
" 보옥이야 얼마든지 있다네.사방천지에 지천으로 깔렸지만,오로지 그것을 탐하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만 보인다네. 그대는 내가 가르칠만 하군. "하면서 앞으로 갔다.
이런 저런 담소 끝에 뜻이 통한 두 사람이 한계산 지금의 한계령 휴게소쯤에 다다랐을 때 어디선가 갑짜기 오색 구름이 피어 나고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면서 오색 구름사이로 한 줄기 빛이 쏫아져 들어오는데, 그 사이로 눈 덮인 한계산의 높은 봉우리들이 보이면서 그 사이를 자세이 보니 생황소리 가득한 가운데 뭇 노인들이 잔치를 하더란다.
머뭇거리면서 그 봉우리를 쳐다보든 노승이 갑짜기 오리의 손을 잡고 내려가자면서 하는 말이 " 이 곳은 上仙 ( 선인들 중 도가 아주 높은 선인으로 육신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지닌채 하늘로 승천함 )들께서 모여 노시는 곳으로 아무리 인간세상의 재상이라지만, 여기는 인간세상의 재상 따위가 함부로 올 곳이 못되니 빨리 내려가자" 고 해서 황급히 내려오니 그 사이 한계노승은 보이지 않더란다. 그 후 오리는 1569년 과거 급제한 후 승진을 거듭하여 승지가 되었다. 승지가 된 후 당쟁에 휩싸여 사퇴한 후 한가롭게 쉬게 되었을 때 옛 생각이 나서 다시 한계산을 찾아 그 노승이 수도하던 암자를 들렸는데 노승을 찾을 수가 없기에 혼자 노승과 함께 갔던 곳까지 가볼려고 찾아 나섰지만 길을 찾을 수가 없었고,구름 한 점없이 청명한 날씨에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 때 오색 구름사이로 나타났던 눈 덮힌 봉우리가 하나도 안 보이더라고 했다.오리는 그제서야 그 노승 역시 神仙이였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광해.인조 떄 영의정에 올라 相國으로서 명성을 날렸는데, 오리의 문집에는 그 때 자기가 본 것을 그대로 기술해 두고 있으며, 이 상의 이야기들은 < 海東異蹟 >과 < 於于野談 >에 실려 있다. 내설악의 靈氣充滿한 산봉우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잘 생긴 봉우리마다 선인들이 한 분씩 앉아 계신 것처럼 보이므로 내설악 에는 지금도 上仙들이 머물고 있다.
문득 천지개벽하면서 계가 다른 하늘이 열리는 장면을 순간적으로 보면서 오리가 본 것은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치며 지나갔는데, '그러면 한계노승은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이미 경계를 넘었
는데 그까짓 下仙이 어디에 있은들 나와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하면서 청봉을 내려왔다.
2, 人間의 信心과 執念이 낳은 '精神一到何事不成'의 기적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우리 몸의 주인은 마음으로, 바로 이 마음이 몸을 지배하면 몸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 몸의 주인은 참 나(眞我)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이를 실천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이 할머니 처럼 '죽기 전에 꼭 봉정암에 올라 부처두정사리를 친견하겠다'라는 강한 信心과 執念을 가진다면 이 세상에 不可能은 없다.
여기서 우리는 人間의 信心과 執念이 낳은 '精神一到何事不成'의 기적을 또 한번 본다.
이같이 강한 신념과 집념을 가진 목표는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거친 파도와 역경을 극복할 힘이 되면서 불가능한 일들을 가능하게
만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강한 신념과 집념을 갖지 않은체 너무 큰 목표를 정해 놓고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에 고개를 숙이면서 스스로 좌절하곤 한다.
따라서, 위 사례의 82살 할머니 처럼 달성 가능한 목표을 정하고, 그에 따른 계획을 잘 세운 후 강한 신념과 집념으로 가장 낮은 곳부터 시작해서 가장 높은 곳까지 한 걸음 한 걸음 Step by Step 으로 차근차근히 올라간다면 필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리라고 생각된다.
# 오늘의 명언
장애물이란 목표지점에서 눈을 돌릴 때 나타나는 것이다.
목표에 눈을 고정하고 있다면 장애물은 보이지 않는다.
ㅡ 헨리 포드
첫댓글 대장님!
멋진 글 감동입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