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들은 거기서 뭔가를 먹고 있었다.
일요일인 것도 모르고 마을 앞 뒷산에서 꿩 사냥을 했다.
엽기 초반과는 달리 개체수도 많이 줄었고 그나마 남은 꿩들은
인가 가까운 마을 주변이나 축사 둘레에 몰려 있었다.
그런 데 아니면 꿩 한 마리 잡는 것이 고라니 두세 마리 잡는 것보다 어려웠다.
고향인 데다 하나 같이 농사하는 이웃들로 많이 좀 잡아달라
말들을 하기에 생각 없이 총을 쏘았다.
예배당 200m 뒤편까지 나아갔을 때 목사님이 밖으로 나와 나를 바라보았다.
아차 싶었다.
일요일로 주일예배를 드린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든 것이다.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이 잠겨 있었다.
부모님은 교회에 가신 것이다.
신김치 국물에 국수를 삶아 가볍게 점심을 때웠다.
자리에 궁둥이 붙이지 않고 일어나 간 곳이 천내강 위쪽 닭실 건너 편 갈대밭이었다.
쌓인 눈으로 시멘트 포장 된 둑방 끝에 차를 세우고 누렁이를 내렸다.
그때 그리 멀지않은 곳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소리를 쳤다.
아저씨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사냥꾼 차림의 세 사람이 있었다.
그들 가까이 갔다.
그들은 사냥꾼들이었다.
거기에서 뭔가를 먹고 있었는데 보니, 한 마리 꿩 삶은 물에
라면을 삶아 소줏잔을 나누며 점심을 해결하고 있는 중이었다.
대전에서 왔노라 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이 개 가지고 꿩 사냥 하시게요?
보기에 누렁이가 꿩 개로는 영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왜요? 오전에 만 4마리 했는걸요.
품종이 뭔데요?
뭐긴요, 그냥 변견(便犬)이지요.
애개 이 개 가지고요?
왜요, 이놈 가지고 돼지도 잡는걸요.
돼지요? 돼지라면 저기 저 골짜기에 한 마리 있던데요.
그는 손가락으로 닭실 뒷산줄기 소사봉을 가리켰다.
그놈이라면, 3일 전에 이 녀석에게 잡혔습니다.
그들 모두가 누렁이를 다시 바라보았다.
근데요, 오늘 여기 오다가 보니까 논에 멧돼지 내려와 먹이질 한 곳이 있던데요.
새벽까지 했는지 생생한 자국에 얼지도 않았어요.
그래요?
어딘데요? 꿩 사냥은 접고 그거나 잡으러 갈라요.
사실, 꿩 사냥은 한 장소에서 그들과 같이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한 말이었다.
있잖아요. 군북면 소재지 못가 천을리 왼쪽 천왕사란 절 골짝 제일 끝 논,
벼가 엎쳐 추수하지 못한 논인데 눈을 파헤쳐 무지 일구었던데요.
종이컵 반 채운 소주 얻어 마시고 그리로 차를 몰았다.
1ton화물차 쌓인 눈으로 큰길가에 세워두고 걸어 올라갔다.
그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엄청 넓게 먹이질 했고 크고 작은 돼지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있었다.
누렁이 앞세워 왼쪽, 그러니까 큰 산골짜기를 따라 올랐다, 내려치기로 했다.
두껍게 쌓인 눈밭을 걸어 문 닫힌 공장 뒤로 돌아가니 한 마리 돼지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크다.
안 되겠다 싶어 약실의 실탄을 ooobk에서 두 쪽짜리로 바꿔 끼웠다.
그리고 얼마, 5, 60m걸었을까?
밭두렁 넘어 골로 접어들자마자 돼지가 서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것과 누렁이가 짖는 것이 동시였다.
거리는 불과 20여미터,
총을 들어올렸다.
1 2초 사이를 두고 정면에서 돼지가 약간 몸둥이를 트는 순간
목덜미 조준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직감으로 맞았다는 걸 느꼈다.
그러나 돼지는 튀었다.
내가 서있는 오른쪽 10여미터를 사이로....
뛰는 돼지 한두 번 쏴봤나, 놈의 코끝을 겨낭해 냅다 갈겼다.
한발 아닌 세 발을,
그래도 놈은 뛰었다.
그런 놈이 50m 못가 급경사지를 오르려다 바로 미끄러져 내렸다.
하얀 눈 위에 선명한 붉은 핏자국 그으며 장마에 파인 굴멍 속으로 너부러졌다.
그런 돼지에 누렁이가 두어 번 크게 짖더니 뒷다리를 물고 늘어졌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 총구 아래로 향한 채 놈에게 접근했다.
뉘 알았으랴,
벌떡 일어 난 돼지가 디립다 밀고 들어왔다.
기겁을 하고 10m 뒤로 물러서 정수리에 다시 한방 먹이자 놈의 눈이 초점을 잃어갔다.
지난 유해조수구제 때에 이어 엽기 접어 든 후 잡은 돼지 가운데 제일 클 것 같았다.
150kg은 넘을 것 같고 180kg으로 보기에는 부족할 것 같았다.
운반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아래 사는 완규동생에게 연락을 했다.
완규동생의 4륜구동 화물차는 현장 50m아래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이빨이 예리하고 길었따.
막내회원 장화영이가 갖고 싶어 해
빼낸다는 게 서툴게 망치로 내려치자 조각나 버렸다.
놈의 몸둥이는 예리한 칼로 그은 듯한 깊은 상처가 댓군데나 있었다.
교미철 되어 암컷을 차지하려 연적과 혈투를 벌이다 입은 상처이리.
놈을 만났을 때 이래저래 다섯발을 안겼다.
그러나 흔적은 딱 두군데 첫발 어깨쭉지 위와 마지막발 정수리 뿐이었다.
다른 열쪽짜리 매그넘 실탄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도 모르겠다.
알고 싶다면 어딘가에 흩어져 있을 탄알들에게 물어볼 밖에....
2. 그들 가운데 한사람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급히 바지를 내리더니 큰 것으로 볼 일을 보기 시작했다.
천왕사 아래서 큰 돼지 잡고 열흘가량 지났을까?
이번에도 천내강변으로 꿩 사냥을 나갔다.
전번처럼 그 자리에 주차해 놓고 누렁이 앞세워 갈대밭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사냥차 두 대가 오더니 내차 세워둔 곳을 약간 지나 멈추어 섰다.
한 사람, 차에서 내리더니 급하게 몇발짝 벗어나 바지춤 내려 일을 보는 것이었다.
그의 시선이 나를 잡았고 앉은 채로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어이, 포수양반 거기는 들어가면 안돼요."
내가 들어가는 갈대밭은 상수도 집수장과 거리가 가까워 수렵금지구역이었다.
알고 있었지만 어쩌나 보려고 못 들은 체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 나에게 그는 악을 쓰듯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소리소리 질러댔다.
나는 능청을 떨었다.
누렁이에게 사람에게 이야기 하듯 얘, 저기 저분이 들어가지 말라 하신다.
나가자, 나가자니까.
그는 내 언행을 빤히 보고 들었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분위기를 돌려 본 것이다.
쭈구리고 있는 그에게로 갔다.
웬 볼일을 그리 오래보신다요.
표정을 펴고 말을 걸었다.
일행은 세 사람, 서울에서 왔다 했다.
당신은 어디에서 왔느냐 내게 묻는 그들에게 여기서 왔노라 했다.
여기라면?
여기 토박이란 말이외다. 터줏대감 내게 우째 들어가지 말라 하시옵니까?
우리가 알아보니 저기는 들어가 사냥해서는 안 된다던데요.
압니다.
이윽고 그들과 나는 마음을 열어 사냥이야기로 들어갔다.
그들은 서울에서 어제 왔고 꿩 한 마리 못 잡고 고라니만 두 마리 잡았다고 했다.
제가 꿩 구경시켜드릴까요?
그들은 내 말에 반색을 했다.
나는 조건을 달았다.
개는 풀어서는 않된다. 내 개 누렁이 한 마리로 꿩을 사냥하는데
나중에 잡지 못 했다 해도 원망 같은 거 없기다
이어 개를 믿어라, 꿩이 멀리서 날아도 쏘고 강위로 날아간다 해도
주저하지 말고 방아쇠를 당겨라
개가 다 해결해 줄 것이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얻은 건 꿩 두 마리였다.
보잘 것 없는 이런 엽과(獵果)는 그분들이 연로한, 60,70,80대 나이어서
나와 보조가 맞지 않은 탓이 컷다.
그런 결과물에도 그들은 애들같이 즐거워했다.
내 거처로 동행하여 저녁식사를 대접했다.
벌꿀 진하게 탄 막걸리와 소주에 멧돼지 내장 삶은 것과 수육을 안주로 내놓았다.
장작난로 활활 타는 비닐하우스에서 윗옷 벗고 거하게 먹고 마시는
이 같은 저녁식사 한 끼는 쌓인 하루의 피로를 푸는데 조그만큼의 부족함이 없었다.
우리는 다음날도 함께 출렵을 했다.
전날과 같이 아내가 차려주는 저녁식사를 했다.
이야기 가운데 그들은 내가 몸담고 있는 전수연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단체에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글스 사격클럽 사람들로 우리 전수연 사격팀을 화성 사격장에서 자주 만난다고 했다.
3일째도 같이 출렵하려 했지만 아침부터 때 잊은 겨울비가 내리는 바람에 내게 찾아왔다가
난로 위에서 진하게 달여진 대추차 한 잔 나누고 그들은 상경길에 올랐다.
그날 오후,
그들 중 한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모레, 같은 단체의 엽사 3명이 내려 갈 것이니 자기네처럼 안내 좀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루를 띄어 서울에서 그제 말한 세 사람 엽사가 엽총 소지하지 않은
여느 한 사람을 대동하여 찾아왔다.
이번에는 전과 달리 나보다 나이가 훨씬 아래로 젊었다.
첫날, 우리마을 주변을 돌았고 한 사람당 꿩 한 두수는 얻었다.
저녁, 서울에서 내려온 네 사람에 우리 내외에 아래 사는 완규동생까지 일곱이 북적되니
우리 하우스 안이 비좁게 느껴졌다.
식사와 함께 몇 차례 술잔이 돌자 우리는 십년지기 만큼이나 가까워졌고
누군가가 나를 고문님이라 하자 이후부터는 고문님이 내 호칭이 되었다.
이튿날, 우리는 의기투합하여 멧돼지를 잡아보기로 했다.
전날 내가 큰 멧 잡은 곳으로 갔다.
그리 크지 않은 야산으로 두어 시간이면 털어낼 정도의 엽장이었기 때문이다.
지정하여 목을 세우고 우리 개 다섯 마리 풀어 흩어냈지만 돼지는 들어있지 않았다.
오후 늦게 상경해야 한다는 그들을 성공확률 없는 멧 사냥의 목에 앉혀 둘 수 없어
오후에는 각개 전투식 고라니사냥을 하기로 했다.
그렇잖아도 우리마을 부형들이 제발 고라니 좀 잡아 없애달라고 아우성들이 아닌가!
우리마을 산에는 고라니가 많았다.
그날 오후의 마을 야산을 끊임없는 총소리로 메아리쳤다.
잡은 고라니는 여섯 마리였지만 선불 맞아 어딘가에 쓰러졌을 녀석들도 잡은
숫자 만큼 될 것이다.
자동차 운전을 이유로 술잔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저녁식사 후 우리는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설날아침 서울엽사 한분으로부터 내 휴대전화에 통신문이 날아들었다.
변 보다 인연되어 이렇게 또 덕담을 전하네요.
가내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