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9일 오늘의 역사
2023년 이탈리아 베니스운하 형광염료인 플루오레세인으로 녹색으로 오염
2022년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인 유흥식 라자로 대주교(71)가 추기경에 공식 임명
한국 천주교 사상 네 번째 추기경이 된 유흥식(70) 라자로 대주교는 한국 천주교는 물론 교황청의 '일꾼'으로 알려진 성직자다.
작년 7월 한국 천주교 사상 처음으로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 취임한 이래 전 세계 50만 명에 달하는 사제·부제의 직무·생활을 관장하는 업무를 무난하게 잘 수행해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동안 줄곧 이탈리아 출신 장관이 도맡아온 일을 아시아 출신 성직자가 넘겨받은 데 대해 교황청 안팎에서 일부 우려도 있었으나 특유의 성실함과 친화력으로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취임 직후 장관실을 모든 직원에게 개방하고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도록 한 것도 교황청 관행상 보기 어려웠던 풍경이다. 로마에 있는 한 한국 사제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성직자성 장관실에 들어가 봤다며 감격하던 직원도 있었다"고 전했다.
유 추기경은 탁월한 업무 추진력에 더해 이러한 소탈하고 열린 리더십으로 성 내 직원들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한국 천주교 본산인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장(2014∼2018)으로 있을 때는 교황청 산하 비정부기구(NGO)인 국제 카리타스의 한국 대표로 활동하며 대북 지원사업의 가교 구실을 했다.
그는 2005년 9월 북한을 찾아 '씨감자 무균 종자 배양 시설' 축복식을 하는 등 2009년까지 네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이런 배경에서 한국 교계에서 북한 사정에 가장 정통한 성직자로도 꼽힌다.
2022년 22명의 승객을 태운 네팔 민간 항공사의 여객기가 비행 도중 실종
2019년 헝거리 부다페스트 유람선 침몰사고 27명 사망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다뉴브강 유람선인 허블레아니호(헝가리어: Hableány, '허블레아뉴'는 인어라는 뜻)가 더 큰 다른 유람선 MV 바이킹시긴호(MV Viking Sigyn)와 충돌 후 침몰하였다. 승선객은 참좋은여행 관광 상품으로 허블레아니호에 타 있던 한국인 관광객 33명과 헝가리인 선장과 승무원 2명이며 이중 27명이 사망하였다.
2017년 파나마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 세상 떠남(83세)
2012년 '컨트리 음악의 전설' 덕 왓슨 별세
'컨트리 음악의 전설'로 불리는 미국의 기타리스트 겸 싱어송라이터 덕 왓슨(89)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한 병원에서 결장 수술을 받은 뒤 후유증으로 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다.
왓슨은 태어난 지 1년 정도 지나 시력을 잃은 시각장애인이었다. 하지만 뛰어난 기타 연주 실력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왓슨은 그래미상을 7차례 받아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오르며 미국 컨트리 음악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렸다.
왓슨은 '딥 리버 블루스' '하우스 오브 더 라이징 선'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특히 '하우스 오브 더 라이징 선'은 1960년대 영국 그룹 '애니멀스'가 리메이크해 세계적으로 히트했으나 한국에서는 한때 "가사가 불건전하다"는 이유로 방송 금지곡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 곡은 한국에서도 김상국 등이 '해 뜨는 집'이라는 제목의 번안가요로 발표해 인기를 끌었다.
2010년 열대성 폭풍 애거사 중남미 강타 홍수 산사태로 사망 150여 명 실종 수십만 명
2010년 영원한 자유 찾아간 '이지 라이더', 데니스 호퍼 별세
반항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기치였던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대표작인 '이지 라이더'의 감독이자 배우인 데니스 호퍼가 2010년 5월 29일 LA 인근 도시 베니스 자택에서 7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는 2009년 10월 전립선암을 진단받고 투병해왔다.
'이지 라이더(1969)'는 두 히피 청년의 여행을 기록한 로드 무비로 호퍼는 주연(빌리)·감독을 맡았고, 공동주연인 피터 폰다(웨트 역)와 시나리오까지 함께 썼다. 40만 달러가 채 안 되는 자비로 영화를 찍어 그 100배인 4000만 달러를 벌어들인 호퍼는 그 후 7편의 영화를 더 연출했지만 이전만 못했다.
제임스 딘과 '이유 없는 반항'(1955), '자이언트'(1956)에 출연했던 그는 이후 '지옥의 묵시록'(19 79), '블루 벨벳'(1986) 등 작가주의 영화와 '스피드'(1994) 등 상업 영화에 고르게 출연하며 성격파 배우로서 입지를 다졌다. 실제로도 괴팍한 성격으로 이름났으며, 연초에는 "나를 괴롭혀온 빅토리아(5번째 아내)의 남편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다"며 이혼 소송을 냈다. 하지만 결국 호퍼는 법적으로 '빅토리아의 남편'으로 세상을 떠났다.
2009년 독일 여성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시신 90년 만에 발견
로자 룩셈부르크(Luxemburg· 1871~1919)는 20세기 초반 공산주의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 폴란드 출신의 여성 사회사상가였다. 독일 공산당 전신인 스파르타쿠스단을 설립한 핵심 인물인 룩셈부르크는 ‘마르크스 이래 최고의 두뇌’ ‘피에 굶주린 로자’ 라는 엇갈린 평가를 받는다. 룩셈부르크는 1919년 독일 우파 민병대에 의해 총살됐고, 그의 시신은 베를린 운하 아래로 내던져졌다. 피살 5개월 뒤에 발견된 시신이 독일 프리드리히스펠데 공원묘지에 묻혔다. 그러나 진짜 시신은 따로 있다는 주장이 줄곧 제기됐다.
그런 그의 시신이 90년 만에 베를린의 한 병원에서 발견됐다 이번에 그녀의 ‘진짜’ 시신을 발견했다는 주장은 독일 베를린의 샤리테병원 법의학과장인 미하엘 초코스(Tsokos)가 제기했다. 초코스는 최근 병원 부속 의학사박물관 지하에서 머리와 손발 없이 몸뚱이만 남은 시신 한 구를 발견했다. 그는 1919년부터 이 병원에 보관돼 온 이 시신의 육안적인 특징과 시신에 대한 부검 보고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심을 품었다.
이후 엑스선 단층촬영을 실시한 결과, 이 시신이 소문으로만 떠돌던 룩셈부르크의 시신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생전의 룩셈부르크는 뚜렷한 신체적 특징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150cm 단신이었고, 엉덩이뼈 이상으로 인해 양쪽 다리의 길이가 달라 평생 절뚝거렸다. 초코스가 발견한 시신은 룩셈부르크의 신체적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데다, 물에 잠겼던 흔적이 있었다. 또 키엘의 한 연구소가 시신에 대해 실시한 탄소연대측정도 룩셈부르크의 사망 시기와 일치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고(故)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2009년 5월 29일 엄수됐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30일 오전 1시20분쯤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정토원에 도착, 반혼제에 이어 정토원 수광전에 안치됐다.
이에 앞서 경복궁 앞뜰에서 영결식이 엄수됐으며, 이어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노제(路祭)가 열렸다. 이날 오전 11시2분 시작된 영결식에는 이명박 대통령 부부,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등 정·관계 주요 인사와 주한 외교사절 등 2500명이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리고 권양숙 여사와 건호(36)씨·정연(34)씨 등 유족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한승수 국무총리국민장과 한명숙 전 총리가 국민장 공동장의위원장을 맡았다.
앞서 이날 오전 5시쯤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발인제가 열렸다. 발인제는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빈소 밖으로 운구된 뒤 상주인 아들 건호씨가 술을 올리고 절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약 10분간 진행됐다.
경복궁에서 영결식을 마친 노 전 대통령 운구 행렬은 오후 1시20분쯤 서울광장에 도착했다.
노제는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고인의 영혼을 부르는 초혼(招魂) 의식으로 시작됐다. 국립창극단의 ‘혼맞이 소리’, 국립무용단의 ‘진혼무’, 안도현·김진경 시인의 조시(弔詩) 낭독, 안숙선 명창의 조창(弔唱), 묵념, 고인의 유언 낭독 등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진행자 선창에 맞춰 “노무현 대통령 사랑합니다”하고 함께 외쳤다. 노제는 오후 2시쯤 노 전 대통령 육성으로 녹음된 그룹 ‘해바라기’의 노래 ‘사랑으로’를 추모객들이 합창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운구 행렬은 이어 서울역을 거쳐 화장장인 경기도 수원 연화장으로 이동했다. 운구 행렬은 당초 노제를 마친 후 서울역까지 약 30분간 걸어서 이동할 계획이었지만, 추모 인파가 몰려 서울광장에서 서울역까지 가는 데 약 1시간20분이 걸렸다. 이후 서울광장을 메웠던 수십만명의 인파 대부분은 귀가했지만, 일부 추모객(경찰 추산 3만5000여명)은 “노 대통령을 그냥 보낼 수 없다”며 운구차량 행렬을 따라 걸었다.
운구 행렬은 예정보다 3시간 늦은 오후 6시5분쯤 수원 연화장에 도착했다. 화장을 마친 노 전 대통령 유골은 유족들이 마련한 향나무 유골함에 담겨 오후 8시55분쯤 봉하마을을 향해 떠났다.
2007년 러시아, 미국 MD(미사일방어시스템) 뚫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성공
러시아가 2007년5월29일, 핵탄두 6~10개를 실을 수 있는 사거리 1만㎞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RS-24의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세르게이 이바노프(Ivanov) 제1부총리는 이날 “모스크바 북서쪽 플레세츠크 공군기지에서 RS-24 미사일을 발사, 탑재된 탄두들이 모두 동쪽으로 5500㎞ 떨어진 캄차카 반도의 목표물에 명중했다” 며 “이로써 현재뿐 아니라 미래의 어떠한 미사일 방어 체제도 극복할 수 있게 됐다” 고 말했다.
이바노프 부총리의 언급은 폴란드·체코에 미사일방어시스템(MD)을 구축하려는 미국을 겨냥한 것이다. 러시아는 미국이 동유럽 국가들에 MD를 구축하려는 것이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고 유럽의 안보 균형을 해치는 행위’ 라고 비난하며, 유럽 재래식무기감축협정(CFE)의 이행 중단 의사를 밝혀왔다.
러시아는 또 이날 “사거리를 늘린 전술 크루즈(순항) 미사일의 시험발사도 성공했다” 고 밝혔다. 러시아 언론들은 이 크루즈 미사일이 종전의 사거리 300㎞를 500㎞ 이상으로 늘려 고정 혹은 이동목표를 파괴할 수 있는 초음속 이스칸데르(Iskander) 공대지(空對地) 미사일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이번 미사일 시험발사 성공으로 미국과 러시아의 새로운 군비경쟁 시대가 도래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2007년 ‘에버랜드 CB(전환사채)’ 항소심도 유죄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발행 사건’ 으로 기소된 허태학·박노빈 전 사장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유죄를 인정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30억원씩을 선고했다.
항소심은 두 사람에게 89억여원의 손실을 회사측에 끼친 혐의를 인정하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배임죄를 적용했다.
서울고법 형사5부는 29일 오전 11시, 에버랜드 CB 저가발행을 공모해 회사에 970억원대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에버랜드 전 사장 허씨와 박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두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2007년 소설가 김국태씨 별세
소설가 김국태(69)씨가 2007년 5월 29일 오전 1시20분 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1969년 월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까만 꽃’, ‘떨리는 손’을 발표하면서 등단, ‘황홀한 침몰’ ‘귀는 왜 줄창 열려 있나’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월간 ‘현대문학’ 편집장(74~81년), 추계예술대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대문학상, 대한민국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전(前) 의장의 형이다.
2005년 산악인 엄홍길씨가 이끄는 ‘초모랑마 휴먼원정대’, 고(故) 박무택씨 시신 수습 후 안치
2004년5월 계명대 산악회 동료 4명과 함께 에베레스트에 도전하다 해발 8750m지점에서 박무택씨와 백준호(당시 37), 장민(당시 26)씨가 사망했다
산악인 엄홍길(45)씨는 사투 끝에 깎아지른 절벽에서 ‘눈사람’ 이 돼버린 박씨를 어루만졌다. 엄씨는 작년에 절친했던 박씨가 사고를 당한 뒤 불귀(不歸)의 상태가 되자 “시신만은 꼭 수습하겠다” 고 말했었다. 그 약속을 1년 만에 지킨 셈이다. 그러나 백씨와 장씨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
엄씨가 이끄는 ‘초모랑마 휴먼원정대’ 일행 15명은 이날 새벽 4시 30분쯤 해발 8300m 지점의 임시 캠프를 출발했다.
5시간 넘는 행군 끝에 해발 8750m 지점에서 박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은 절벽에 얼어붙어 있었다. 대원들은 박씨의 몸을 뒤덮고 있는 얼음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3시간 30분이 지나서야 박씨의 시신이 수습됐다. 원정대는 시신을 들고 임시 캠프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떼기 시작했다. 박씨의 체중은 70㎏ 정도였지만 꽁꽁 언 탓에 무려 100㎏ 가까이 됐다.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의 눈폭풍까지 몰아쳤다. 100m를 전진하는 데 2시간이나 걸렸다. 대원들의 호흡이 가빠졌다.
50m가 넘는 깎아지른 절벽구간(‘세컨드스텝’) 통과를 앞두고 엄 대장은 결단을 내렸다. 그 곳에 박씨의 임시 돌무덤을 만들어 시신을 묻기로 했다. 원정대마저 목숨을 잃을지 모를 위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당초 계획은 베이스 캠프까지 운반해 화장하는 것이었다.
2005년 중견 사진작가 김영갑씨 루게릭병 악화로 별세
고교 졸업 후, 독학으로 사진을 배운 김씨는 제주 사진에 미쳐있다가 6년 전 온몸이 장작처럼 굳어져버리는 루게릭병(근위축성측삭경화증)에 걸렸다. 돈 없던 시절 주린 배 움켜쥐고 필름값이 없어 ‘눈으로 찍고 마음에 인화했던’ 그는 병을 앓고는 셔터 누를 힘이 없어 마음에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병세는 악화됐지만, 그는 3년 전에도 제주 삼달리 폐교를 빌려 두모악갤러리를 열고 자신이 찍은 제주 사진을 사람들과 나누었다.
혀까지 굳어 1년 전부터는 제자가 떠먹여 주는 미음으로 연명해온 김씨는 1주일 전 병세가 악화돼 거동을 아예 하지 못하다가 이날 아침 의식을 잃고 구급차에 실려가던 중 사망했다.
2005년 한국인 첫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고(故) 고상돈씨 동상 제막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던 산악인 고(故) 고상돈(高相敦)씨의 동상이 2005년 5월 29일 제막됐다.
고상돈기념사업회는 고씨의 26주기인 이날 제주도 한라산 1100고지 옆에 있는 고상돈 묘소 앞에서 동상 제막식과 함께 추모 제전을 가졌다. 대한산악연맹 제주도연맹과 제주도의 후원으로 마련된 이날 행사에는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을 비롯해 김영도 77에베레스트 원정대장과 대원, 도내 산악인 등이 참석했다.
제주에서 태어난 고상돈 씨는 지난 1977년 9월15일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으나 1979년 5월29일 미국 알래스카 매킨리봉(6194m)을 정복하고 하산하다 웨스턴 리브 800m 빙벽에서 자일 사고로 추락해 숨졌다
2004년 재미동포 2세 강진씨 미 육군사관학교 수석 졸업
재미동포 2세 강진(22·미국명 대니얼 강)씨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각) 미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졸업했다.
미 육사 개교 이래 한인 동포가 수석 졸업의 영예를 안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어바인 출신의 강씨는 전체 졸업생 950명 가운데 정훈교육과 군사학, 체력 등의 종합 평가에서 최고 점수를 받아 이날 졸업식에서 럼즈펠드 국방장관으로부터 상장을 받았다.
1972년 이민한 강진복(59)·최경주(57)씨 사이에 2남인 강씨는 유니버시티고교에서 레슬링 선수와 배구 선수로 활약했고, 어려서부터 군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모친 최씨는 4일 “아들은 경희대 모국연수에 참가했고, 한글학교에 다니는 등 한국문화와 전통에도 관심이 많았다”며 “미 육사에서는 한국문화를 알리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고 전했다.
2004년 울진 앞바다서 리히터 규모 5.2 지진 발생
2004년5월29일 오후 7시 14분쯤 경북 울진 동쪽 바다 위 80㎞ 부근에서 리히터 규모 5.2 지진이 발생했다. 이어 30일 오전 4시 45분과 오후 9시 45분쯤에는 각각 울진 남동쪽 70㎞ 해상, 울진 북서쪽 10㎞ 지역에서 전날의 여진(餘震)으로 보이는 규모 2.0, 2.2 지진이 잇따라 일어났다.
이 지진은 관측을 시작한 1978년 이래 가장 큰 규모인 78년 9월 16일 속리산 지진(규모 5.2)과 비슷한 수준이며, 5.0 이상으로는 남북을 합쳐 다섯 번째다.
이 지진으로 울진·포항 등 경상도 일대에 건물이 흔들렸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인천·서울 등 수도권에서도 “진동을 느꼈다” 는 제보가 접수됐다. 또 인근 울진원자력발전소에 비상이 걸렸고, 경북도가 지진에 따른 해일 발생을 우려해 경주·영덕·울릉 등 5개 시·군에 특별 경계 태세를 지시했으나 별다른 피해는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울진 지진’ 은 한반도가 유라시아판 경계에 있는 일본·대만 등과 달리 경계 안쪽에 있어 대규모 지진과 무관하다는 통설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78년부터 2004년 5월까지 한반도 지진 발생 횟수는 621회. 이 중 주요 지진으로 분류되는 규모 4.0 이상은 34차례였으나 대부분 인적·물적 피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평균 10~20회에 머물던 연간 지진 발생 횟수가 90년대 중반 이후 30회를 넘어 2001년 43회, 2002년 49회, 2003년 38회 등으로 늘고 80년 이후 한 차례도 없던 규모 5.0 이상 지진이 지난해와 올해 연속 발생, 학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한양대 지진연구소는 꾸준히 규모 5.5~6.0 지진이 수도권에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기상청 지진정보센터는 이에 대해 “97년 도입한 관측 장비가 예전보다 정밀, 미세한 지진도 잡아내기 때문에 빈도가 증가했다” 며 “향후 강진(强震) 발생 가능성에 대해 아직 확언하기 어려운 단계” 라고 설명했다.
2004년 ‘워터게이트 특별검사’ 콕스 사망
1974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하야를 촉발한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특별검사로 활약했던 아치볼드 콕스가 2004년 5월 29일 새벽 미국 메인주 자택에서 사망했다.
하버드대 법대 교수로 재직 중 1973년 5월 워터게이트 담당 특별검사로 임명된 그는 백악관에 대해 닉슨 대통령의 녹음테이프 제출을 요구하는 등 소신 있는 수사로 정평이 났다. 같은 해 10월 닉슨 대통령이 콕스 특별검사의 해임을 지시했으나 법무장관과 차관이 거부하고 한꺼번에 해임당하는 ‘토요일의 대학살’ 사건이 벌어지면서 그는 한층 유명세를 탔다.
2003년 힐러리 경 에베레스트 정복 50주년 기념, 네팔서 축제
세계 최고(最高)의 산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정복한 뉴질랜드 출신 등반가 에드먼드 힐러리(Hillary) 경(卿)이 에베레스트 정복 50주년 기념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팔순의 노구를 이끌고 네팔에 도착, 현지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힐러리 경은 1953년 5월 29일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에베레스트에 올라, 모험가들의 오랜 꿈을 현실로 바꾸었다. 그 후 50년이 지나 83세가 된 힐러리 경은 수년간 준비해온 50주년 축제를 위해 지난 23일 건강한 모습으로 네팔에 도착, 국빈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노르가이는 1986년 세상을 떠나 이번 행사에 동행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 50주년 축제에는 첫 여성 등정자인 일본인 다베이 준코와 산소통 없이 처음 정상에 선 오스트리안 페터 하벨러 등을 포함해 그동안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던 1300여명 중 400~500여명이 참석했다. 28일에는 에베레스트 등정길에 사고로 숨진 희생자를 기리는 묘목 식수 행사가 카트만두 서부 카카니에서 열렸다.
2003년 줄기세포로 심장·간·피부 만드는 ‘마스터 유전자’ 발견
심장·간·피부 등 인체 모든 조직과 장기로 성장 가능한 줄기세포가 특정 장기로 분화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는 ‘마스터 유전자’를 영국과 일본 과학자들이 발견했다. 이에 따라 줄기세포 등을 이용한 심장·간 등 장기의 생산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됐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영국 에든버러 대학 오스틴 스미스 교수팀과 일본 나라 과학기술연구소의 야마나카 신야 연구원은 29일 유전과학 전문지 ‘셀(Cell)’에 생쥐 실험을 통해 마스터 유전자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마스터 유전자란 일반 세포가 특정 장기나 조직으로 성장 발전하는 것을 조정·통제하는 일종의 사령탑에 해당하는 것으로, 스미스 교수에 의해 ‘나녹’으로 명명됐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 유전자만 통제할 수 있다면 극단적인 경우 줄기세포가 아닌 일반세포로도 장기와 조직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유전학자들이 오랜 시간 동안 찾아 헤매던 ‘생물학의 성배(聖杯)’를 발견한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논평했다.
2002년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세계신문협회(WAN) 회장 선임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2002년 5월29일 벨기에 브뤼헤에서 열린 세계신문협회(WAN) 55차 연례총회에서 임기 2년의 새 회장에 선출됐다. WAN 회장에 아시아 언론인이 선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 회장은 취임 연설에서 "세계 각국, 특히 아시아 지역의 언론자유 및 민주주의 발전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파리에 본부를 둔 WAN은 전세계 113개국 1만8000여 신문·통신사와 언론기관들을 회원으로 두고 있으며, 이번 총회에는 미국·영국·프랑스 신문협회 회장 등 900여명이 참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과 한국신문협회 회장인 한겨레신문 최학래 사장 등 14명이 참석했다
2002년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에 재선
제프 블라터 FIFA(국제축구연맹) 회장이 극적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블라터 회장은 29일 서울 남산 힐튼호텔에서 벌어진 FIFA 회장선거에서 197개 참가회원국의 유효표 195표 중 139표를 얻어 이사 하야투 아프리카축구연맹 회장을 물리치고 1차 투표에서 승리했다.
이로써 재정 비리 의혹을 공개하는 등 반대파들의 호된 공격으로 위기를 맞았던 블라터 회장은 제9대 회장으로 2006년 독일 월드컵 개막전까지 4년간 더 국제 축구계를 이끌 수 있게 됐다.
이후, 대회 개막에 앞서 가장 큰 행사인 회장 선거를 마친 2002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가 31일 오후 8시30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프랑스―세네갈전을 시작으로 역사적인 막을 올렸다.
2001년 ‘보브 호프의 날’ 선포
미국의 코미디언 보브 호프가 29일 98세 생일을 맞아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가족과 함께 조촐한 생일파티를 했다. LA카운티는 이날을 ‘호프의 날’ 로 공식 지정했다. 그는 가족이 마련한 생일 축하 케이크를 받고 부인 돌로레스와 함께 출연한 영화를 보는 시간을 가졌다.
호프는 지난 1903년 영국 잉글랜드에서 태어나 1907년 미국 클리블랜드로 이주한 뒤 80년 인생을 희극계에 바쳤다. 그는 지난해 6월 복통으로 입원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건강한 상태라고 홍보담당자 워드 그랜트는 전했다.
호프는 과거 “생일 케이크보다 케이크에 꽂는 양초 값이 더 비싸면 늙었다는 증거” 라는 농담을 한 적이 있었으나, 이번 생일 케이크와 양초 가격은 알려지지 않았다.
2000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중국 방문(~31일),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29일)
2000년 이승만 전대통령의 정치고문 로버트 올리버 박사 타계
한국의 독립운동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故이승만 대통령의 정치고문을 지냈던 로버트 올리버 박사가 2000년 5월 29일 타계했다. 91세였다. 올리버 박사는 메릴랜드주 체스터타운의 한 노인전용 주택에서 27일 뇌졸중을 일으킨 후 상태가 악화됐다가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유해는 고인의 뜻에 따라 화장했다.
올리버 박사는 2차대전중인 1942년 미국 정부의 전시식량국 식량보관소장으로 근무하던 중에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이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그는 일본이 한국에서 자행한 식민통치의 잔학상을 폭로, 미국 정부가 한국의 독립을 지지하도록 설득했다. 한국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지닌 그는 1943년부터 1993년까지 `잊혀진 나라` `한국 현대사` 등 모두 7권의 한국 관련 저서를 펴냈다.
1998년 김수환 추기경, 서울대교구장 사임
서울 대교구장 취임 30돌을 맞은 김수환 추기경이 1998년 5월 29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기념미사를 끝으로 서울 대교구장을 사임하게 됐다. 김 추기경은 주교정년 75세였던 1997년부터 교황청에 사의를 표명했으며 로마 교황청은 이번에 이를 받아들였다.
1968년 5월 29일 46살의 젊은 나이로 제12대 서울대교구장이 된 뒤 숱한 현대사의 풍파를 직접 겪으면서 김 추기경은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 이웃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명동성당을 핍박받는 사람들의 피신처이자 민주화의 성지로 자리잡게 했다.
그는 특히 10월 유신, 광주 민주화운동 등 정치적-사회적으로 중요한 국면마다 권력을 비판하는 소신있는 발언으로 어둠 속의 한줄기 빛과 같은 구실을 해 왔다. 김 추기경이 서울 대교구장직을 떠났지만 정신적 지도자로서의 그의 위상은 달라지지 않았고 추기경직도 계속 유지하고 있다.
1994년 에리히 호네커 전 동독 공산당 서기장 사망
칠레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에리히 호네커 전 동독 국가평의회 의장이 1994년 5월 29일 지병인 간암으로 사망했다. 81세였다. 에리히 호네커는 1960년대 동서독을 가르는 베를린 장벽을 구축한 장본인으로 동서간의 냉전을 주도해 온 당사자 중 한사람이다. 그는 18년 간 구 동독을 통치하면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으나 통독 이후에는 재판정에 서는 등 말년을 감옥에서 보내거나 이국에서 떠돌다 결국은 망명지에서 최후를 맞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1912년 서독 지역에서 태어난 호네커는 14세 때 공산당 청년단체에 가입, 공산주의 활동을 벌이다 1935년 나치당국에 체포 돼 10년 간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으나 2차대전이 끝나면서 동독 공산당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58년 공산당 정치국원이 된 그는 동독인들의 서독 행 탈출이 줄을 잇자 이를 막기 위해 1961년 8월부터 베를린장벽 구축에 나서 이를 총지휘하다시피 했다. 1971년 공산당 서기장이 된 호네커는 1989년까지 18년 간 막강한 권력으로 동독을 통치했으나 동독인들의 서독 탈출이 절정에 이르는 등 소요가 일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직전인 그 해 10월 축출됐다.
이후 그는 동독 당국에 반역 혐의 등으로 체포됐다 풀려나 1991년 3월 모스크바로 망명을 떠났다가 1992년 7월 독일 당국에 소환돼 베를린 장벽 탈출자들에게 총살을 명령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그러나 1993년 1월 베를린 법정은 그가 간암을 앓고 있어 더 이상 재판을 진행시킬 수 없다고 재판 중단을 선언했으며 이에 따라 그는 부인 딸과 함께 칠레로 다시 망명길에 올랐었다.
1990년 옐친, 소련내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에 당선
칠레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에리히 호네커 전 동독 국가평의회 의장이 1994년 5월 29일 지병인 간암으로 사망했다. 81세였다. 에리히 호네커는 1960년대 동서독을 가르는 베를린 장벽을 구축한 장본인으로 동서간의 냉전을 주도해 온 당사자 중 한사람이다. 그는 18년 간 구 동독을 통치하면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으나 통독 이후에는 재판정에 서는 등 말년을 감옥에서 보내거나 이국에서 떠돌다 결국은 망명지에서 최후를 맞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1912년 서독 지역에서 태어난 호네커는 14세 때 공산당 청년단체에 가입, 공산주의 활동을 벌이다 1935년 나치당국에 체포 돼 10년 간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으나 2차대전이 끝나면서 동독 공산당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58년 공산당 정치국원이 된 그는 동독인들의 서독 행 탈출이 줄을 잇자 이를 막기 위해 1961년 8월부터 베를린장벽 구축에 나서 이를 총지휘하다시피 했다. 1971년 공산당 서기장이 된 호네커는 1989년까지 18년 간 막강한 권력으로 동독을 통치했으나 동독인들의 서독 탈출이 절정에 이르는 등 소요가 일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직전인 그 해 10월 축출됐다.
이후 그는 동독 당국에 반역 혐의 등으로 체포됐다 풀려나 1991년 3월 모스크바로 망명을 떠났다가 1992년 7월 독일 당국에 소환돼 베를린 장벽 탈출자들에게 총살을 명령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그러나 1993년 1월 베를린 법정은 그가 간암을 앓고 있어 더 이상 재판을 진행시킬 수 없다고 재판 중단을 선언했으며 이에 따라 그는 부인 딸과 함께 칠레로 다시 망명길에 올랐었다.
1989년 나이지리아에 첫 `원화 차관` 제공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결성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약칭 민변)이 1988년 5월 29일 결성됐다. 시국사건 변론을 도맡아 해온 한승헌 변호사 등 중진변호사 30명과 소장 변호사 16명은 인권상황의 개선과 실질적 민주화 조치에 기여할 수 있는 변론 조사 연구활동을 체계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기본 목적으로 민변을 결성했다.
민변의 모체는 정법회로, 정법회는 1985년 인권변호사 30여명이 모여 결성한 비공개단체로 부천서 성고문사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의 변론을 맡아왔다.
1998년 최기철․김상현․문국현․차준엽 씨 유엔 환경계획 글로벌 500상 수상
1991년 유고 크로아티아공화국 독립선언
1990년 러시아 대선 옐친 당선
1986년 유엔(UN) 아프리카 전체에서 1790만인이 기아에 직면하고 있다고 발표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발족
1982년 산악인 허영호 마카루봉 정상 정복
1982년 서독의 축구영웅 베켄바우어 은퇴
1979년 산악인 고상돈, 알래스카 매킨리봉 등정에 성공하고 하산길에 사망
1979년 아프간 반군, 정부군과 전투 3개주 점령
1979년 카터 미국 대통령 주한미군 철수 동결 결정
1977년 카터 미국 대통령 한국피침때 핵무기사용 언명
1974년 북한, 만국우편연합(UPU) 가입
1974년 남북적십자 7차 실무대표자 회담 판문점서 개최
1973년 통일혁명당 목소리 방송 영어방송 신설
1972년 파리서 고려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심경 발견
1972년 박성철 북한 제2부수상 극비 서울 방문 박정희 대통령․이후락과 회담
1968년 김수환 주교, 제12대 서울대교구장에 임명
1968년 향토예비군법 법률 제2017호로 전문개정
1966년 KAL기, 서울-오사카간 운항시작
1963년 동파키스탄 태풍으로 1만여명 사망
1962년 파주에서 미군의 한국인 린치사건
1960년 이승만 하와이로 망명
1957년 이효정 여사 한국 최초로 `나이팅게일` 기장 받음
1957년 운길산 수종사 석탑에서 금동불상 15구 출현
1956년 한국전 참전 16개국 휴전감시위 해체 결의
1953년 힐러리 세계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
1953년 5월 29일 오전 11시 반, 전인미답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인간이 첫 발을 내디뎠다. 뉴질랜드 출신의 영국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가 그 주인공.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서로를 연결한 로프를 풀지도 않은 채 감격의 악수를 나누고 힘차게 껴안았다. 산소통을 확인해보니 정상에 머물수 있는 시간은 15분 뿐. 둘은 영국ㆍ네팔ㆍ인도ㆍ유엔의 국기를 피켈에 매달고 사진을 찍은 뒤 힐러리는 십자가를, 텐징은 초코렛과 비스켓 등을 눈에 묻고 하산을 서둘렀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대관식을 사흘 앞두고 전해진 낭보에 영국 전역은 열광과 환호의 물결로 넘쳐났다. 그도 그럴것이 영국은 그동안 대영제국을 자부하면서도 북극은 미국의 피어리에게, 남극은 노르웨이의 아문센에게 ‘최초’ 자리를 빼앗겨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해있었다. 1921년이래 16회나 정복을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그래서 영국인에게는 더더욱 값진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50년간 1200여명의 사람들이 힐러리의 뒤를 이었다. 에베레스트는 1865년에 높이가 8848m임을 처음 측정한 측량기사 조지 에베레스트에서 딴 이름이지만 2개의 이름을 더 갖고 있다. ‘세계의 여신’ 이라는 뜻의 티베트 이름 ‘초모랑마’ 와 ‘하늘의 우두머리’ 라는 뜻의 네팔 이름 ‘사가르마타’ 가 그것이다.
1952년 국제통화기금(IMF),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일본의 가입을 승인
1952년 김성수 부통령 국회에 사임서 제출
1946년 신문, 정기간행물의 허가제 실시
1942년 미국 연극배우 존 배리모어 사망
1941년 가수 빙 크로스비 `화이트 크리스마스` 녹음
1934년 국제연맹 주최 제3회 군축회의 시작
1933년 미국 스탠다드오일사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화학 60년 기한으로 획득
1917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 출생
1914년 캐나다 여객선 엔플레스호 침몰 1012명 사망
1914년 미국-멕시코 강화조약 체결
1913년 스트라빈스키 발레음악 `봄의제전` 공연
디 아길레프가 이끄는 러시아 발레단이 피에르 몽퇴 지휘, 니진스키 안무로 이날 초연 무대에 올린 작품은 러시아 태생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음악 `봄의 제전`. 스트라빈스키는 이날 광경을 `자서전`에 적었다.
`봄의 제전`은 개벽이었다. 특히 리듬은 혁명이었다. 스트라빈스키에 한 세대 앞섰던 드뷔시같은 인상파 계열도 화성이나 선율의 창의성에 비해 리듬쪽은 둔감했다. 음이 안맞는 악기를 겹친듯한 다조성 불협화음, 목-금관을 키운 관현악의 색채감각과 파괴적 에너지. 제1부 `대지 예찬`, 제2부 `희생물`로 짠 35분짜리 `봄의 제전`은 음악적 구질서를 뒤짚는 반란이었다. `이교 러시아의 풍경`이란 부제 그대로 `봄의 제전`은 이교적 주술, 낯선 자극이었다.
`봄의 제전`은 전통적 조성과 주조를 흔들었다. 다른 조성들을 동시에 사용했다. 르네상스 이래 원근법에 기대던 공간인식을 깨고, 공간을 보는 여러 시점을 하나의 캔버스에 담아낸 피카소 방식과도 닮았다.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은 인상주의까지 포함한 낭만주의적 잔영을 음악사에서 쓸어냈다. 이후 전통 조성마저 해체한 무조음악, 전자음악, 미니멀리즘 등 온갖 전위적 사조가 만개하면서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도 `고전`이 됐다.
1912년 손기정 마라톤 선수 출생
1911년 포르투칼 헌법제정 국회의원선거서 공화당 승리
1910년 시인 피천득 출생
1909년 무주에서 의병과 일본군 교전
1905년 형법대전 공포
1898년 `언덕 위의 뾰족집` 명동성당 6년 만에 준공
1898년 5월 29일, 한국 천주교의 상징 명동성당이 착공 6년 만에 준공됐다.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붉은 벽돌을 사용한 고딕양식의 건물, 더구나 시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있어 사람들은 ‘언덕 위의 뾰족집’이라 불렀다.
건축을 처음 계획한 사람은 1882년 천주교 조선교구장이었던 프랑스인 블랑 주교였다. 블랑은 이승훈·정약전 등이 종교집회를 가졌던 조선 최초의 순교자 김범우의 생가터를 매입, 조정에 공사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조정은 근처에 역대 조선왕조의 어진을 모신 영희전이 있어 풍수를 침해할 수 있고 또 대궐이 보여 안 된다는 이유를 내세워 허가하지 않았다.
차일피일 늦어지다 착공에 들어간 것은 10년이 지난 1892년이었다. 이번에는 기술자가 말썽이었다. 양옥 건축가가 전무한 탓에 벽돌공과 미장공·목수 등을 중국에서 데려와 공사를 시작했지만 청일전쟁이 일어나 기술자들이 귀국하는 바람에 또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자금은 프랑스 신자들이 보내온 성금 5만프랑으로 충당했다.
준공 당시에는 이곳의 지명인 종현(鐘峴)을 따 종현본당으로 부르다가 광복 후부터 명동성당으로 불러오고 있다.
1895년 소설가 이기영 출생 『고향』 『두만강』
1894년 미국의 영화감독 슈테른베르크 츨생
1888(조선 고종 25) 군제 개편, 통위영·장위영·총어영의 3영을 둠
1880년 독일의 철학자 슈펭글러 출생
1877년 중국 신강지역 무슬림 정권 통치자 야쿱 벡 사망
중국 신강지역을 10여년간 통치하던 야쿱 벡이 1877년 5월 29일 사망했다. 독살설, 자살설, 급사설 등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학자들은 급사설을 유력한 사인으로 꼽았다.
천산산맥 서쪽 코간드 칸국 출신의 야쿱 벡이 신강지역 카쉬가르로 넘어온 것은 1865년 초였다. 신강 전역에서 청조의 지배가 무너지고 무슬림들이 세력을 나누어 할거하며 다투고 있을때였다. 카쉬가르의 한 지배자가 이웃한 코간드에 군사요청을 한 것이 야쿱 벡으로 하여금 신강지역을 밟게 한 주요 이유였다. 당시 신강지역은 1864년 무슬림들이 쿠차에서 청조의 지배에 항거하며 봉기를 일으키기 시작해 신강의 전지역으로 무슬림 혁명의 불길이 확산되고 있던 시기였다.
신강지역 출신도 아닌, 더구나 코간드 칸국에서 활약하던 한 무명의 군관이 불과 수십명의 인원과 함께 파미르를 넘어 우역곡절 끝에 카쉬가르를 점령하자 신강지역의 무슬림 지도자들은 그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야쿱 벡은 다시 1년 만에 천산 남쪽의 양기히사르 야르칸드 호탄 등에 있는 여러 무슬림 세력들들을 모두 평정하고 1870년에는 북쪽의 악수 쿠차 우룸치 투르판 등까지를 손에 넣어 이슬람을 표방하는 독립된 국가를 건설하자 당시 중앙아시아의 무슬림들은 물론 서구열강들도 이를 놀라와 했다.
그러나 무슬림 봉기로 그곳을 떠났던 청나라가 10여년 만에 다시 신강지역 공세를 강화해 오자 전쟁보다는 외교로 해결하려했던 야쿱 벡이 후퇴를 거듭하던 중 이날 돌연사함으로 신강지역은 다시 중국 영토로 편입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1875년 대한제국 첫 주일(駐日)사절 횡빈 도착
1812(조선 순조 12) 평안도농민전쟁 일으킨 홍경래 세상 떠남
1592년 임진왜란중 옥포대첩 거북선 완성, 첫 참전
1454년 동로마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세상 떠남
1453년 비잔티움 제국 멸망
1453년 비잔틴 제국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