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 기차 / 이정자
맑은 하늘에 뭉게구름이 둥실 떠간다. 구름은 봄소식을 여기저기로 퍼 나르는가 보다. 아름다운 길로 명명된 표선면 가시리 녹산로 초입부터 눈이 부시다. 샛노란 유채꽃과 만발한 벚꽃의 어우러짐에 환호가 차창 밖으로 퍼져 나간다.
코로나19가 극성부리던 2년 전에는 도로 양옆에 피기 시작한 벚나무를 치장하던 유채꽃이 아픔을 당하였다. 관광객이 찾아오는 꽃밭에서 보이지 않은 전염병이 확산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멍울진 꽃대가 올라온 유채를 기계로 파쇄하고 갈아엎었다. 사람들은 아예 꽃구경 나설 엄두도 못 하고 마스크를 쓰고 거리 두기를 하는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코로나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시간 속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듯하지만, 자유와 평화를 얻어가고 있다.
봄의 향연이 펼쳐지는 유채꽃 광장에 부푼 마음이 앞서간다. 커다란 풍력발전기 여섯 기가 유채꽃 냄새와 신선한 공기를 버무려 사방이 더욱 향기롭다. 찬란한 꽃길을 걸으며 벌과 나비를 찾다 보니, ‘깡통 기차’가 달려온다. 노란색의 꿀벌 모형에 바퀴가 양옆에 달린 열 냥의 기차다. 여왕벌처럼 웽웽 소리를 내며 웃음을 퍼뜨리고 있다. 할머니와 손잡고 기차에서 내리는 손녀 모습이 정겨워 한참을 바라본다. 엄마 품에 안기는 아기의 어리광이 마냥 귀엽다. 꽃 무더기 사이로 그리운 부모님과 형제들이 벌 떼처럼 달려들어 추억을 들추어낸다.
유채의 원산지는 지중해이다. <<제주 농업의 백년사>>에 의하면 유채는 “1956년 일본에서 우량 품종을 도입해 증식한 것이다. 60년대 이후 경제성장과 더불어 식용유 수요가 급증하여 유채 기름(카놀라유)을 얻기 위한 본격적인 재배를 하였다. 그 후 한참 동안 감귤과 함께 제주 지역을 대표하는 소득 작물이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유채는 ‘삼동초’라 불리기도 한다. 추운 날씨에 새파란 싹이 쑥쑥 올라오는 용기가 대단하다. 꽃말이 ‘쾌활’이라서 바라보기만 해도 헛헛한 마음을 명랑한 기분으로 이끌어 준다.
사춘기 시절, 겨울 방학이면 어머니와 유채밭에 김을 매며 해와 벗을 삼았다. 삼동초는 북풍한설을 이겨내어 쑥쑥 자란다. 어린 유채는 잎과 줄기를 살짝 데쳐서 무쳐 먹는 채소이다. 꽃망울이 피어오를 때 뚝 꺾어서 껍질을 벗겨 입속에 넣으면 상큼하고 달콤하다.
아지랑이 아물거리는 봄날에 밭담 위로 유채꽃과 청보리 물결이 출렁이면, 들뜬 마음은 나비처럼 훨훨 자유로웠다. 샛노란 꽃과 청보리 물결이 온 섬을 아름답게 수놓으면 희망이 넘실거린다. 삼다도를 여행하는 관광객은 자연과 어우러진 수채화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환상의 섬’이라고 외치며 추억을 만들었다.
이른 봄, 유채꽃 멍울이 터질 즈음이면 어디에선가 양봉 아저씨가 아버지를 찾아왔다. 트럭에 벌통과 크고 작은 깡통을 싣고 오셨다. 아저씨는 어른들이 모여들면 주전자를 내밀며 막걸리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며 과자봉지도 챙겨주었다. 아저씨는 이웃집 바깥채에 간단한 살림을 풀어놓고, 우리 집 우영팟(텃밭)에 벌통을 한 줄로 길게 늘어놓았다.
유채꽃이 활짝 피면 긴 올레를 드나들기가 무서웠다. 채밀하는 날에는 벌들이 붕붕 날아다니며 더 독하게 막무가내로 침을 쏘았다.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벌이 무서워 팔을 휘저으며 달아나면 끝까지 날아와 한 방을 쏜다. 벌침이 얼굴에 꽂히면 눈물범벅인 채 집으로 달려갔다. 자리보전하시던 할머니는 얼른 오줌을 누우라며 고무신을 받쳤다. 따뜻한 오줌을 발라주는 게 급한 처방 약이었다.
어느 날은 벌에 쏘여 울다 보니 아저씨가 채밀한 꿀을 조그만 깡통에 담고 할머니 앞에 내밀었다. 꿀에 밥을 섞어서 먹으라 한다. 꿀 두 숟가락에 따끈한 보리밥을 비벼 먹으니 목이 매여 취하였다. 조그만 깡통 속에는 부스러진 날개와 벌침도 섞여 있었다. 할머니 말에 의하면 꿀 아쟁이(찌꺼기)라 하였다. 그것도 없어서 못 먹을 때라 검지로 찍어서 동생들 입에 넣어주면 제비 새끼처럼 재잘거리며 앞을 다투었다.
아저씨는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처럼 꽃이 지고 나면 다른 곳으로 벌통을 옮겨갔다. 누렇게 익은 유채를 수확할 때면 희붐한 새벽에 호미를 들고 밭이랑에 앉았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키보다 더 큰 유채를 온 힘을 다하여 베었다. 며칠 동안 잘 마른 유채는 공휴일에 장막을 펼쳐놓고 날라다 쌓아 놓는다. 부모님이 굵고 긴 몽둥이로 한 무더기 털다 보면 도마뱀은 수없이 잘려 나갔고 벌레들이 우글거렸다. 지금도 흙먼지를 뒤집어쓴 얼굴로 유채를 손질하던 어머니의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들녘에 붕붕거리던 벌과 나비의 개체수가 없어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꿀벌이 집단 폐사와 군집 붕괴 현상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고 한다. 꿀벌이 사라지면 농작물 수정이 어려워 생산성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어서 걱정이다. 지구의 온난화 현상으로 줄어들기도 하지만 무분별한 개발의 현장에서 꽃나무들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까시꽃이 꿀벌을 불러들이는 최적의 환경이라는 소식에 사방을 둘러본다.
유채꽃 광장에 모여든 상춘객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진다. 멋진 포즈를 취하는 평화로운 모습이 꽃밭에 날아온 벌과 나비이다. 조랑말 체험 현장에서 말의 안장에 올라타는 손자가 할아버지의 응원에 미소를 보낸다. 자연과 어우러진 사람들 모습이 평화롭다.
포토존에 새겨진 글귀 “가슴 설레는 시간, 봄이 오는 소리”를 마음에 오붓이 챙긴다.
첫댓글 늘 가까이 있으되 뱅기타고 가고 싶은 섬
제주도 유채 꽃이 눈에 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