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가쁘게 달려온 한 시즌. 그러나 프로야구선수들은 쉴틈이 없다. 시즌이 끝나자 마자 마무리 훈련에 내몰렸다.
기아와 두산, LG가 마무리 훈련을 마친 가운데 삼성은 4일 제주도에 신인선수들 위주로 캠프를 차린다.
그러나 12월 이후 두달간 구단에서 주도하는 팀 훈련은 엄연히 야구 규약에 어긋난다. 선수들은 참가활동 기간인 2월1일부터 11월30일까지 10개월에 걸쳐 연봉을 분할 지급 받는다.(제9장 참가활동보수의 한계 68조 참가활동기간) 12월부터 두달간은 선수에게 보장된 비활동기간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규정은 무시되고 있다. 특히 SK 한화 롯데 등 올시즌 하위권에 머문 팀들은 주전급 대부분이 참가한 가운데 해외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호주 시드니로 둥지를 옮긴 한화도 내년 1월4일까지 캠프를 가동할 계획이다. 정민철 조규수 이상목 등 주전급 투수들이 참가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마무리 훈련이 끝나면 한달도 안돼 스프링캠프가 시작된다. 지난 11월1일 미국 플로리다주 브래든턴에 캠프를 차린 SK도 2일 선수협 총회 참석을 위해 김기태 김원형 등이 귀국한 가운데 오는 11일까지 훈련을 계속할 예정이다.
각 팀들은 한결같이 자율훈련을 내세우고 있다.
호주 골드코스트에 마무리 훈련 중인 롯데는 지난달 말 끝날 예정이던 일정을 오는 25일까지 연장하면서 선수들로부터 동의서를 받았고, 이를 선수협에 통보했다. 물론 선수들의 요청을 구단이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했다.
선수협은 3일 대의원 총회에서 의견을 모은 뒤 마무리 훈련에 참가하고 있는 선수들과 전화 통화를 해 실상을 파악할 예정이다.
선수들은 또한 처한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선수협 총회 참석 후 6일 팀의 호주 캠프에 합류할 예정인 롯데 염종석은 "내년 시즌을 생각하면 따뜻한 곳에서 몸을 만들고 싶은게 선수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족들과 또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게 부담스럽고, 또한 선수협의 결정도 신경쓰인다"고 말했다.
마무리 훈련에 참가중인 한 선수는 "솔직히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혼자서 독불장군처럼 나설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속마음을 내비췄다.
< 민창기 기자 huelva@>
'무임금-무노동의 원칙', '행복추구권', '자율권'. 선수협은 3가지 전제조건하에 비활동기간 훈련을 반대하고 있다.
프로선수들은 '전문가 집단'이다. 변호사, 의사 등 전문가를 고용하려면 금전적인 보상이 있듯이 계약기간 외에 선수들을 동원하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얘기다. 가족과 함께 비시즌을 보내며 몸과 마음을 추스릴 여유가 필요하며 선수들은 스스로 자율을 책임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선수협 나진균 사무국장은 "구단에선 선수들을 위한 훈련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정 선수를 위한다면 실컷 훈련시킨 다음 냉혹하게 자르는 일부터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구단이 스스로 만든 규약이다. 선수가 조금이라도 규약에 위배되는 행위를 할 경우엔 철저하게 징계하면서 스스로는 아무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한편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자율'의 의미 해석에 유연성을 갖자는 입장이다. KBO 이상일 사무차장은 "올해 성적이 나지 않은 팀은 내년을 위해 훈련을 많이 해야하는 입장을 호소한다. 반면 선수들은 자율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양쪽이 서로의 견해차를 좁히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선수협은 3일 대의원총회를 거친 뒤 나진균 사무국장이 직접 각 구단의 훈련 상황을 점검할 계획. 자율이 아닌 게 명확히 밝혀지면 KBO를 통해 해당구단에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메이저리그에선 지난 66년 선수노조가 설립된 이후 철저하게 '비활동기간 훈련 중단' 규약이 지켜지고 있다. 메이저리거들은 비활동기간에 각자의 훈련스케줄에 따라 몸관리를 한다.
물론 메이저리거 중에서도 일부는 도미니칸 윈터리그, 멕시칸리그 등에서 겨울 시즌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자신의 결정에 의해 이뤄진다.
선수들은 반드시 한 곳에 모여야하는 날짜를 뜻하는 '리포트 데이트(report date)'에 맞춰 개인훈련을 한다. 해마다 2월 중순이면 스프링트레이닝 캠프에 속속 집결, '이제부터 팀훈련을 시작한다'는 뜻의 리포트를 한 뒤 약 일주일쯤 단체훈련을 거쳐 곧바로 시범경기에 들어간다. 물론 겨우내 개인훈련을 충실히 했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일본프로야구에서도 야구협약에서 비시즌 동안의 합동훈련이나 야구지도를 금지하고 있지만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자주 트레이닝'이라는 명목으로 강훈을 했다. 시즌이 끝나면 곧바로 젊은 선수들의 훈련이 시작되고, 이어 외국인선수를 제외한 전 선수들이 가세하면 '합동 자주 트레이닝'이라는 이름으로 훈련의 강도가 높아진다. 사실상 강제성을 띤 훈련이었다.
그러던 것이 85년 일본프로야구 선수회 노동조합이 출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88년 오프시즌부터 강제적인 자주 트레이닝을 폐지하면서 미국처럼 자율훈련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 김남형 기자 s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