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호미곶 청보리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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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국민일보) (포항 호미곶 청보리밭) 풋풋한 생명의 땅…초록빛 꿈이 익는다 새천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조각작품 ‘상생의 손’ 다섯손가락 사이에서 빠져나온 상큼한 바닷바람이 호미곶에 상륙하자마자 드넓은 청보리밭을 빗질하듯 쓸고 지난다. 자진모리 장단에 맞춰 사각거리며 빠르게 파도타기를 하던 연초록 보리이삭은 한순간 진양조 느린 템포에 귀여운 아기가 되어 도리질을 한다. 흠뻑 초록물이 든 바닷바람이 100년째 보리밭을 지키고 있는 다섯그루의 소나무 고목사이로 흐르고 황혼에 물든 영일만은 한폭의 수채화가 되어 소나무 가지에 걸린다. 초록색은 몇 가지나 될까. 산과 들이 한바탕 꽃잔치로 눈을 멀게 하더니 이젠 신록으로 눈을 부시게 한다.아기의 해맑은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연초록과 강인한 생명력의 대명사인 진초록 등 눈에 익숙한 초록만 해도 열손가락을 넘는데 하물며 춘정으로 느끼는 마음의 초록색은 얼마나 많을까. 초록색 가운데 으뜸은 아무래도 봄 들녘을 가장 먼저 연초록으로 물들이는 4월의 청보리밭 색이 아닐까. 포항시내를 빠져나와 영일만을 끼고 호랑이 꼬리가 시작되는 동해면으로 접어들자 시야가 씻은듯 청량해진다.해안도로를 따라 한껏 멋을 부린 모텔과 레스토랑,횟집이 이어지더니 마산동 바닷가에서는 올해 영일만에서 처음으로 잡혔다는 멸치들이 봄 햇살아래 해풍을 맞고 있었다. 임곡에서 호미곶 해맞이광장까지 925번 지방도로의 18㎞ 구간은 환상의 초록여행 코스.그 중에서도 하얀 호미곶 등대와 상생의 손이 한눈에 들어오는 대보면 구만리 일대의 20만평 청보리밭은 드넓은 들판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바닷가 언덕까지 초록물결로 넘실거리게 한다. 호미곶은 지축을 흔들며 포효하는 호랑이 꼬리의 기운이 밀집된 곳이자 육지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라 보리이삭도 다른 지역보다 먼저 핀다.인근 동해면의 보리가 발목크기 만큼 자란데 비해 대보면 보리는 벌써 무릎 크기로 자라 이삭을 피웠다. 바닷바람이 강해 쌀농사가 힘든 대보면 호미곶 일대는 본래 보리밭 천지였다.‘대보 처녀는 시집갈 때까지 쌀 서말을 못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보릿고개 넘기가 무척 힘들었던 곳이다. 어렵던 시절 춘궁기가 되면 대보 처녀들은 이곳 보리밭 밭두렁의 쑥으로 허기를 달랬고,까까머리 머슴애들은 보리피리를 불며 하루종일 종달새를 쫓아 다니다 저도 모르게 보릿고개를 넘었다. 머슴애들이 너도나도 보리피리를 만들어 불기 시작하면 보리가 익어가는 보리누름철이다. 이삭이 누런 황금색을 띠기 시작하는 매년 5월 중순이면 포항문인협회는 이곳 보리밭에서 시낭송회 등 ‘보리누름행사’를 갖는다. 겨우내 얼어붙은 땅 밑,차가운 눈발 아래서 억세게 가꿔 온 초록의 꿈이 영그는 곳.호미곶의 보리밭은 반 고흐의 ‘보리밭’과는 다르다. 고흐의 보리밭은 자기 가슴에 탄환을 박아넣는 어두운 폭풍속의 공간이지만 호미곶의 보리밭은 해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생명의 땅이다. 그래서 4월 호미곶의 청보리밭에 서면 풋풋한 생명력을 더 느끼게 되는지도 모른다.봄기운에 부푼 가슴을 안고 흙내음에 취해 보리밭 사잇길을 걷는다.햇빛을 받은 보리밭이 마치 흰 파도가 일렁이는 것 처럼 장관을 이룬다.보리밭과 밀밭을 지나면 하얀색의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이색적인 풍경을 그리며 한가롭게 돌고 있다. 해맞이광장 조금 못미친 대보면사무소 앞에서 바라보는 호미곶 보리밭은 한폭의 풍경화다.노란 유채밭과 연초록 보리밭이 산과 바다를 향해 지평선과 수평선을 그리며 이어진다. 재작년 여름 거센 태풍에 100년생 소나무 한그루가 부러져 반쯤 남았지만 그래도 다섯그루의 소나무는 고고한 학처럼 기품을 잃지 않고 터줏대감처럼 서 있다.소문듣고 찾아온 사진작가들과 지나던 길에 들른 관광객들이 소나무를 배경으로 보리밭 찍기에 여념이 없다. 해질 무렵의 보리밭은 어릴적 고향을 생각나게 한다.새소리를 들으며 밭두렁을 따라 가다보면 배가 남산만하게 부른 암소 한 마리가 무덤옆에서 풀을 뜯고 있고,쑥이랑 야생미나리를 캐는 젊은 아낙은 밀레의 만종을 생각나게 한다. 인기척에 놀란 꿩 한마리가 갑자기 보리밭에서 푸드덕 날아오르다 제 몸무게를 이기지 못해 종종걸음으로 보리밭에 숨는다.보리밭의 주인인 종달새들이 이 모습을 보고 포르르르 포르르르 웃으며 머리 위로 솟아 오른다. 4월의 청보리밭을 거닐면 몸과 마음조차 온통 연초록으로 물든다.초록의 바다 한가운데 풍덩 빠져버린 느낌이라고나 할까. 영일만을 벌겋게 물들이며 구름과 함께 기기묘묘 형형색색의 작품을 선보이던 해가 가라앉으면 어둠이 살포시 내려앉는 보리밭도 잠 잘 준비를 한다.실루엣으로 가라앉은 다섯그루의 소나무 사이로 농부와 암소 한마리가 보금자리로 향한다.종달새 마저 둥지로 사라지고 나면 보리밭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풀벌레 소리뿐 괴괴한 적막감에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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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이번주 왜 이렇게 좋은곳을 많이 간대요~~ 한달전부터 박달재 1박2일팀한테 포섭당해 꼼짝 못하는데.....ㅠ.ㅠ
기차타고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좋은님들과 즐거운 시간이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