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일 오늘의 역사
2023년 인도 신호오류로 여객 열차 2대와 화물열차 1대 충돌 288명 사망 900여명 부상
2022년 터키 국호를 튀르키예로 변경
2019년 방탄소년단 빌보드 챠트 1위
방탄소년단(한국, 영어: BTS)은 2013년 6월 13일에 데뷔한 대한민국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7인조 보이 그룹이다. 2013년 방탄소년단은 《2 COOL 4 SKOOL》을 발매하며 데뷔하였고, 이어 《O!RUL8,2?》도 발매하여 그 해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 발매한 《WINGS》가 흥행하면서 2016년 대한민국 최다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또한, 타이틀 곡 〈피 땀 눈물〉은 첫 가온 디지털 차트 1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방탄소년단은 그 해 처음으로 대상을 수상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2018년 발매한 《LOVE YOURSELF 轉 'Tear'》는 빌보드 200 1위를 기록하였고, 방탄소년단은 빌보드 200 1위를 차지한 최초이자 유일한 대한민국의 음악 그룹이 되었다. 또한, 타이틀 곡 〈FAKE LOVE〉는 빌보드 핫 100 10위에 진입하면서 방탄소년단은 최초로 빌보드 핫 100 10위권 내에 진입한 대한민국의 음악 그룹이 되었다. 그 해 방탄소년단은 대한민국 주요 음악 시상식의 대상들을 휩쓸었으며, 2019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악인을 2년 연속 수상하면서 음악적, 상업적으로 모두 성공한 음악 그룹이 되었다.
이후 《MAP OF THE SOUL : PERSONA》를 발매하면서 발매 첫 주 213만 장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해 대한민국 역대 음반 초동 1위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 음반은 빌보드 200 1위를 기록하였고, 역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음반이 되었다. 이 음반의 타이틀 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 (Boy With Luv)〉는 가온 차트 전 부문 1위를 기록하고 빌보드 핫 100 8위에 진입하면서 이 곡은 방탄소년단의 가장 성공적인 곡이 되었다. 현재까지 방탄소년단은 전 세계 약 1,500만장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고, 대한민국 역대 최다 음반 판매량을 기록한 음악 그룹이 되었다. 방탄소년단은 15개의 멜론 뮤직 어워드와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 14개의 골든 디스크, 12개의 하이원 서울가요대상, 10개의 가온 차트 뮤직 어워드와 기네스 세계 기록, 4개의 빌보드 뮤직 어워드와 한국대중음악상, 3개의 MTV 유럽 뮤직 어워드, 2개의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와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1개의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등을 수상했으며,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화관문화훈장을 수여받은 최연소 수여자이다.
2015년 제프 블라터 FIFA 회장 사임
제프 블라터(79·스위스)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2일(현지시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임 의사를 밝혔다.
블라터 회장은 지난달 30일 FIFA 총회에서 열린 회장 선거에서 당선돼 5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최근 FIFA를 둘러싼 부패 혐의가 이어지면서 회장에 당선된 지 불과 닷새도 넘기지 못하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자신이 FIFA 수장을 계속 맡는 데 대해 국제 축구계가 모두 찬동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사임 이유를 밝히고 FIFA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위스 출신인 블라터는 1998년부터 FIFA 회장을 맡아 왔으며, 측근들이 대거 연루된 비리 의혹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29일 치러진 선거에서 5선에 성공했다.
2013년 음식물쓰레기 종량제 전면 시행
2011년 시리아에서 보안군이 반정부시위대에 발포 사망 최소 27명
2010년 대한민국의 제5회 지방 선거 실시.
2009년 미국 SUV 허머, 중국 텅중중공업에 매각합의
미국에서 가장 큰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인 허머(Hummer)를 중국 업체가 인수했다.
GM은 2009년 6월 2일(현지시각) 자사의 자동차 브랜드인 허머를 중국 쓰촨(四川)성의 텅중(騰中)중공업에 매각하는 데 잠정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중국은 미국의 대표적인 SUV 브랜드 인수를 통해 미국 자동차시장에 진출하게 됐다. 텅중중공업은 특수기계, 고속도로·교량 건설용 부품, 에너지 생산시설 등을 생산하는 회사로 자산이 14억달러에 달한다. 자동차사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허머 인수를 포함해 중국의 해외 자동차 브랜드 사냥이 본격화되고 있다. 상하이차가 영국 로버를 인수했고, 포드가 매각을 추진 중인 볼보도 중국 업체에 인수될 가능성이 크다.
2004년 국사학계 1세대 사학자 이기백 교수 별세
평북 정주 출생인 이 교수는 일본 와세다 대학을 거쳐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했으며 이화여대·서강대·한림대 교수와 역사학회·진단학회 대표간사를 역임했고, 1979년 학술원 회원으로 선임됐다.
그는 우리 역사를 쉽게 소개하는 많은 글을 쓰면서 역사의 대중화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였다. 이 교수는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한국에 가장 시급했던 ‘식민사관(植民史觀)’의 극복에 앞장섰다. 그는 한민족이 파벌성·의존성 등을 특성으로 하며 이는 반도라는 지리적 조건에서 비롯됐다는 일본인 학자들의 이론을 비판하고 우리 역사가 내재적 발전 과정을 거쳐 왔음을 밝혔다.
이 교수를 유명 인사로 만든 것은 1961년 간행된 ‘국사신론’이었다. 당시까지의 연구 성과를 충실히 반영하면서 민족적인 자주성을 강조하는 이 책은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에 목말라하던 대중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1967년 ‘한국사신론’으로 이름을 바꾼 이 저서는 계속적인 증보를 거치며 60만부 가까이 판매됐고, 각국 언어로 번역돼 국제적으로도 대표적인 한국사 개설서 역할을 했다.
2001년 북한 상선 3척, 제주도 해협 침범
2001년 6월 2일 북한 상선 3척이 제주도 해협 우리측 영해를 침범, 항해하다 다음날 3일 오후 서-남해 공해상으로 빠져나간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 선박의 제주도 해협 무단 통과는 이 때가 처음이다.
군당국의 지나치게 유화적인 대응에 북한 상선들은 4일에도 해상 휴전선이나 다름없는 서해안 백령도 인근 NLL(북방한계선)과 제주해협, 심지어 동해안 독도 영해까지 잇달아 침범을 시도했다. 군당국은 독도에 한해 해경정이 진로를 차단, 영해 침범을 저지했으나 나머지 서-남해안에서는 침범 행위를 묵인했다.
정부는 북한 선박이 사전 협의없이 영해를 침범할 경우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3일 밝힌 바 있었으나 연이은 영해침범에도 경고사격이나 나포 등 강경조치를 취하지 않아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북한측의 동시다발적인 영해 침범은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유례없는 일이며, 남북 해빙무드를 틈탄 고도의 정치적 군사적 의도가 포함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단순히 수송비와 시간을 절감하려는 경제적 실리확보 목적이라기보다 김대중 정부와 미국의 부시정권에 대한 간접적인 불만표시가 담겨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국회에서는 군당국의 소극적인 대응자세를 추궁하고 대책강구를 촉구했다. 특히 국회에서 공개된 남북간의 교신내용을 근거로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는 밀약설도 제기돼 2001년 정가를 시끄럽게 달구었다.
1999년 박의정 씨 IMF에 대한 항의로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붉은 페인트 넣은 계란 던짐, 박의정 씨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 형 받음
1997년 서울지법, 정태수 전 한보그룹 총회장에 15년 선고
한보 특혜대출 비리 사건과 관련,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에게 징역 15년이 선고되는 등 피고인 11명에게 전원 유죄가 선고됐다.
서울지법 형사30부(재판장 손지열)는 2일 회사 공금 1천9백11억원을 횡령하고 32억5천만원의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정피고인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횡령-뇌물공여죄 등을 인정, 이같이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피고인으로부터 은행대출 청탁과 함께 10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신한국당 의원 홍인길피고인에게는 징역 7년에 추징금 10억원, 국정감사 선처 부탁과 함께 2억5천만원을 받은 국민회의 의원 권노갑피고인에게 징역 5년에 추징금 2억5천만원을 선고했다.
정피고인으로부터 각각 2억∼1억원씩을 받은 전 내무장관 김우석피고인은 징역 4년에 추징금 2억원, 신한국당 의원 황병태피고인은 징역3년에 추징금 2억원, 정재철피고인은 징역 3년에 추징금 1억원이 선고됐다.
또 대출커미션으로 각각 7억∼4억원씩을 받은 전 제일은행장 이철수피고인에게 징역 5년 추징금 7억, 전 제일은행장 신광식, 전 조흥은행장 우찬목피고인에게는 각각 징역4년에 추징금 4억원씩이 선고됐다.
정피고인과 공모, 1천7백28억원을 횡령한 한보그룹 회장 정보근피고인에게는 징역 3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그러나 전 한보그룹 재정본부장 김종국피고인에게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석방했다.
1997년 미국 연방배심, 오클라호마 폭파범 맥베이에 유죄 판결
1997년 여, 야 국회의원 `6.10 동지회` 결성
1994년 병원, 의원 등에 환자진료기록, 처방전의 한글사용 의무화
1994년 뉴욕 소더비경매장에서 고려불화 2억4,000만원에 낙찰
1993년 북-미 뉴욕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 위해 첫 차관급 고위회담.
1993년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 방한
1993년 잠수함 장보고함 취역
해군은 1993년 6월 2일 진해항 기지에서 국방부장관, 해군참모총장 등 군수뇌부와 장병들이 참석한 가운데 해군 최초의 잠수함인 장보고함 취역식을 가졌다. 장보고함은 독일에서 건조된 Type 1200형으로 209급 현대식 잠수함으로 평균속력 22노트로 수중을 항해하면서 대함미사일과 어뢰를 발사할 수 있는 최첨단 지휘통제 및 사격통제 체제를 탑재하고 있다.
독일 HDW사로부터 1천5백억 원을 주고 인수한 장보고함은 전자수행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한번에 최고 7천5백 마일을 항행할 수 있다. 장교 6명을 포함, 모두 33명의 승무원이 탑승하는 장보고함의 초대 함장에는 안병구 대령이 임명됐다
1991년 프랑스 핵확산금지조약 가입
1991년 시속 100km급 태풍 방글라데시 강타 수백 명 사상
1990년 제주신문노보 `제민일보` 창간
1989년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한국 정치지도자로는 처음 소련 방문
1988년 인도네시아 근해에서 여객선 방탕마두라 호 과적으로 침몰 200명 사망.
1988년 일본 나라현 후지노키 고분석관에서 한반도 유물과 비슷한 부장품(신라식 금동관) 등 발견
1986년 제13회 월드컵 멕시코서 개막
1986년 교수연합시국선언문 발표(23개대 265명)
1986년 원자력발전소 5.6호기 준공
1982년 파나마정부, 북한 외교관 5명 추방
1982년 영국군, 포트스탠리 공격 개시
1981년 스리랑카, 비상사태 선포
1981년 효창공원 9년 만에 일반 공개
1980년 전두환 중정부장서리 사표. 국군보안사령관-국보위상임위원장만 겸임
1980년 일본 교토통신 서울지국 폐쇄
1980년 장기신용은행 개점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2세. 폴란드 방문
1970년 미 F-4 팬텀기 2개 대대 군산에 도착.
1970년 `五賊` 파문 - 김지하 구속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 집권 시도로 정치·사회적인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1970년, 잡지 ‘사상계’ 에 세상을 들끓게 한 시(詩) 한 편이 발표됐다.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것다. /(중략)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만 하고 목질기가 동탁 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의 소굴이렷다.”
김지하의 담시(譚詩) ‘오적(五賊)’ 이었다.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은 사상계 편집위원 김승균이었다.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김지하에게 오적촌이라 불리던 동·서빙고동에 관한 장시를 청탁했고 김지하는 당대의 힘 있고 끗발 있는 사람들을 ‘오적’ 으로 한데 묶어 그들의 부패와 타락상을 풍자적으로 시에 담았다.
이것이 사회적 사건으로 비화된 것은 야당인 신민당이 기관지 ‘민주전선’ 6월 1일자에 ‘오적’ 을 싣고부터였다. 이튿날 민주전선은 압수됐고 김지하는 김승균, 사상계 대표 부완혁, 민주전선 편집국장 김용성과 함께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다. 사상계는 이 사건이 빌미가 돼 그해 9월 폐간되고 김지하 등 관련자들은 보석으로 풀려나 2년 뒤 선고유예를 받았다.
1970년 금산 위성통신지구국 개국
우리나라 최초의 위성지구국인 금산 제1위성통신지구국이 1970년 6월 2일 충청남도 금산에서 개국됐다. 높이 35m의 콘크리트지주 위에 세운 직경 27m의 원형안테나와 부속시설은 체신부가 1969년 5월 총공사비 18억 4천만원을 들여 착공, 1년 만에 완공한 것이었다.
이 지구국을 통해 태평양지역 통신위성 인텔새트(INTELSAT)Ⅲ호에 접속하여 태평양 연안 7개 국가간 136회선의 국제통신망이 구축됐다. 세계에서 31번째로 국제통신위성기구 가입국이 된 우리나라는 이로써 태평양상에 떠있는 통신위성 인텔새트Ⅲ호, F-4의 중계로 전세계에 전파를 보낼 수 있게 되었고, 또 바다건너 한 구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안방에서 듣고 볼 수 있게 됐다.
금산위성통신지구국 개국 후 우리나라의 국제통신은 경제성장에 발맞춰 빠른 속도로 성장, TV뿐 아니라 태평양연안과의 직통전화 회선도 늘고 빨라지게 됐다.
1967년 이스라엘-시리아 교전
1966년 미국 무인탐사기 `서베이어 1호` 달 착륙
1966년 6월 2일 오전2시17분. 인간의 달 착륙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할 목적으로 쏘아 올린 미국의 무인탐사기 `서베이어1호`가 달의 `폭풍의 바다` 연착륙에 성공했다. 서베이어 1호는 레이다, 컴퓨터, 4기의 로켓을 사용해 세다리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서베이어 1호` 의 달 착륙은 1970년까지 달에 인간을 보내려는 미국 계획에 있어 의미있는 성과였다. `서베이어 1호` 의 달착륙 성공후 360도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TV카메라가 12일간에 걸쳐 1만매 이상의 사진을 보내왔다. 화질도 매우 선명해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이 사진을 통해 폭풍의 바다가 아폴로 달착륙선의 착륙후보지로 적격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착륙 후에는 600개의 주사선(走査線)의 텔레비전으로 주변의 풍경과 X선ㆍ화학분석ㆍ유성진(流星塵) 등의 측정자료를 송신했다.
이로써 달에 인간이 착륙할 수 있는 안전성이 입증되었고 그로부터 3년 후 1969년 7월 21일. 아폴로 11호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착륙에 성공, 인간이 달에 첫발을 내디뎠다.
1964년 서울대 고대생 등 2천여 명 박정희 대통령 하야 요구 데모
1963년 사우디아라비아, 노예제 폐지
1961년 라틴아메리카(남미)자유무역위원회(LAFTA) 발족
1959년 국제언론인협회(IPI) 한국가입을 정식거부
1955년 국회. 국방부원면사건조위 구성
1955년 소련-유고 정상 공동성명(베오그라드 선언)
1955년 5월 26일 소련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시초프는 베오그라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유고슬라비아 대통령 티토와 악수를 나누고 레닌의 이름으로 국제 노동자 운동을 위해 화해할 것을 요청했다. 독자노선을 취하고 있는 티토에 대한 소련의 이같은 태도변화에는 양국의 관계단절 이후 7년이 소요됐다.
소련수상 니콜라이 불가닌을 포함한 고위대표단을 대동한 흐루시초프는 1948년 공산권에서 축출된 유고에 이념적인 협력을 요청했다. 또한 과거 유고에 취했던 도발적인 태도에 대해 사과하고 이를 1953년 처형된 전 소련 내무장관 라프렌티 베리아의 음모로 돌렸다.
6월 2일 소련의 흐루시초프 수상과 유고의 티토 대통령은 양국화해의 베오그라드선언을 발표했다. 선언은 1.유고슬라비아는 중국의 대만에 대한 영토권 주장을 지지한다. 2.유고와 소련은 독일문제의 해결을 지지하며 이 해결은 독일 인민의 소원 및 일반안전보장에 대한 기여와 일치하는 민주주의적 원칙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3.양국 정부는 조약체결을 통하여 독립된 구주집단안보기구를 지지한다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1953년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
1953년 6월 2일,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이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됐다. 캔터베리 대주교가 여왕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주는 순간, 런던 시내 모든 교회에서는 타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식이 끝나고 버킹엄궁으로 향하는 여왕의 세계마차 행렬은 3km 이상이나 늘어졌다.
엘리자베스는 원래 왕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태어난 1926년 당시의 왕은 할아버지 조지5세였고, 여왕의 아버지 조지6세는 5남1녀 가운데 둘째였다. 따라서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가 왕위에 올랐으나 미국 출신의 심프슨 부인에게 빠져 왕위를 내놓고 윈저공으로 물러나면서 그 자리를 여왕의 아버지가 대신했다. 아버지마저 1952년 2월 7일 암으로 사망하자 스물여섯 나이에 왕위에 오른 것.
올해로 재위 기간 52년째. 윈스턴 처칠로부터 현재의 토니 블레어에 이르기까지 10명의 총리가 그를 보필해왔다.
1950년 한국-일본 무역협정 조인
1950년 구라(救癩)시설 `성라자로 마을` 설립.
성라자로마을(나자로마을)은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에 있는 가톨릭 사회사업시설이다. 한국 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6월 2일에 메리놀회 소속 조지 캐롤 안 주교가 설립한 구라사업기관으로, 무의탁 한센병환자 치료와 치료된 환자의 사회복귀를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대한민국 가톨릭이 운영 중인 구라사업[救癩事業] 기관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시설이다.
정착촌과 함께 병동, 진료소, 교육관, 수녀원 등을 갖추고 있다.
성라자로마을은 '그대 있음에'라는 제목의 자선음악회를 개최해 수익금을 내고 라자로돕기회를 구성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2007년 현재 라자로돕기회를 통해 성라자로마을을 후원하는 회원 수는 약 1만2,600명이다.
2008년 4월을 기준으로 73명의 한센병 음성환자가 살고 있으나, 2007년 한해 동안 10여 명이 사망하는 등 숫자가 급격히 줄고 있다. 초대원장 이경재 신부 부임(1952),
1963년 진료소와 자립정착촌 분리했고, 1964년 고천국민학교 오전분교 개교했다.
1969년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수원교구로 이관했다.
1949년 브라질, 대한민국 승인
1948년 미국 하원, 한국 구제안(1억7백만달러 지출) 가결
1946년 프랑스, 국민투표에 의해 왕제 폐지. 공화제 실시 결정
1946년 이탈리아가 국민투표를 거쳐 왕국에서 공화국으로 체제를 바꾸다.
1946년 부산 콜레라 창궐, 전국에 만연, 9월말까지 1만 천여 명 사망
1944년 프랑스 국민해방위원회가 프랑스공화국 임시정부로 개칭
1942년 미국-중국 무기대여협정 조인
1941년 일제 조선농업보국청년대 결성
1940년 사탕배급제 실시
1937년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무기 정간되었던 동아일보 복간
1923년 김규식 등 창조파, 중국 상해에서 조선공화국 수립
1909년 대한민보 창간
1906년 한성농공은행 개업
1905년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 러시아-일본 전쟁 강화 권고
1897년 마크 트웨인, 뉴욕저널 지에 ‘내 죽음에 관한 기사는 크게 과장된 것’이라고 기고.
1878년 독일 황제 암살 미수 사건. 비스마르크 재상 탄압 강화
1840년 영국 작가 토마스 하디 출생
1840년 6월 2일 ‘테스’ 의 저자 토마스 하디가 잉글랜드 도싯주 어퍼보컴프턴에서 석공(石工)의 아들로 태어났다. 1862년 런던의 건축사무소에 입사, 건축공부를 하는 여가에 소설을 쓴 것이 당시 문단의 대가 G.메레디스에게 인정받게 되어 그의 권고로 처녀장편 ‘최후의 수단’(1871)을 간행했다.
그의 소설의 대표작으로는 ‘귀향’(1878) ‘캐스터브리지의 시장’(1886) ‘테스’(1891) ‘미천한 사람 주드’(1895) 등이 있지만, 그 밖에도 많은 장·단편 소설을 남겼다.
1910년 그는 메리크훈장을 받았으며 1912년에 상처하고, 2년 후 조수로 있던 여성과 재혼, 그의 만년은 영국 문단의 원로로 자타가 공인하는 존재가 되었다. 사후에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 코너’ 에 묻혔는데, 그의 심장만은 고인의 유지에 따라 고향에 있는 부인의 무덤 옆에 묻혔다.
1815년 나폴레옹, 자유헌법 선포
1592년(선조 25) 이순신장군, 당포서 왜선 20여척 대파
1592년 6월2일 이순신 함대를 주축으로 한 연합함대가 경상남도 통영시 당포 앞바다에서 왜선 21척을 격침시킨 해전이다
1592년 5월29일부터 6월1일 아침까지 전라좌수영의 이순신 함재를 주축으로 한 조선 연합수군은 사천포해전을 통해 왜군 함선 13척을 격침시키고 왜군 2600여명을 사살하였다
다음날 오전 척후선으로보터 당포 선창에 왜선이 정박해 있자는 정보를 입수한 이순신 함대는 곧 당포(지금의 통영시 산양읍) 앞바다로 나아갔다
당포 선창에는 왜군 대선 9척, 중선, 소선 12척이 매여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배에는 붉은 일산이 세워져 있고 장막 안에는 왜장 카메이 코레노리가 앉아 있었다
아군 함대가 접근하자 왜군은 조총을 쏘아 맞섰다
아군은 개의치 않고 거북선을 앞장세워 현자총통을 비롯한 전자, 지자총통을 쏘아대는 한편 뱃머리로는 왜장선을 들이 받으며 격파하였다
왜장 커메이 코레노리가 죽자 왜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육지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왜선 21척은 모두 격침되었고 많은 수의 왜군이 사망하었다
이순신 함대가 제2차 출전에서 사천포해전에 이어 치른 두 번째 해전이다
455년 반달족의 로마 침공으로 레오 1세와 가이세리크가 회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