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존 오브 인터레스트(Zone of Interest)
1.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자 아이히만을 관찰하고 ‘악의 평범성’이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을 진술했다. ‘악’은 사악한 자들이 벌이는 특별한 범죄가 아니라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성찰없이 관습적으로 벌이는 수동성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또 다른 버전을 만났다. 어떤 끔찍한 학살 장면이 표상되고 있지 않고 평범한 가족들의 일상적인 모습이 내용의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그것은 끔찍한 홀로코스트의 세계를 은폐하고 있는 모습이기에 더욱 잔혹한 공포로 다가오는 것이다.
2.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한 가족의 단란한 피크닉 장면에서 시작한다. 가족들의 평범하지만 따뜻한 놀이 장면의 묘사는 음악도 음향도 배제한 채 일상의 모습을 조금은 지루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앞으로 전개될 거대한 비극과 대비되는 지극히 평화로운 모습이다. 냇가에서 즐기고 있는 사람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회스 중령의 가족이다. 영화의 장면은 수용소 바로 옆에 마련된 중령의 집으로 이어진다. 보통의 가족처럼 아이들은 장난치고 부모는 그들을 따뜻한 관심으로 돌보아준다. 너무도 평범한 가족의 일상은 바로 수용소의 높은 굴뚝과 대비되며 묘한 불일치를 만들어낸다.
3. 영화는 회스중령의 전출명령 때문에 긴장 상태로 진행된다. 하지만 그것은 철저하게 가족들의 긴장이다. 아내는 몇 년 동안 가꾸었던 집과 정원의 상실을 두려워한다. 그동안 누렸던 안락과 평화를 잃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불안은 안락의 상실이며, 가족들의 누렸던 특권의 소멸이다. 그들에게 아우슈비츠의 살육은 관심대상이 아니다. 철저하게 무시된 다른 세계일 뿐이다. 소장 회스는 근면한 관리이다. 기계적이며 효과적으로 유대인을 제거하는 방법을 연구하며 그것을 실행할 뿐이다. 그에게 걱정은 전출로 인한 가족과의 이별이며, 자신의 지위에 대한 불안일 뿐이다.
4. 아우슈비츠의 더 많은 유대인들의 이송이 결정되고 더 효과적인 살육방법이 논의되지만 그것은 일상의 평화를 누리고 있는 가족들에게는 전혀 다른 ‘관심의 영역(zone of interest)일 뿐이다. 회스 중령의 부인은 어떻게 자신의 영역을 지킬 수 있는가에만 골몰하고 아이들은 그저 자신의 세계에 머물 뿐이다. 끔찍한 학살의 현장에서 펼쳐지는 두 개의 전혀 상반된 공간은 누군가에게 가해지는 비인간적인 잔혹함이 또다른 누군가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게 경악하게 만든다.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서로의 다른 관심은 전혀 교감하지 않는다. 특권의 이익을 즐기는 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모든 것은 다만 ’무시‘의 대상일 뿐인 것이다.
5, 영화는 가장 끔찍했던 인간의 죄악을 가장 일상적이고 담담한 방식으로 진술한다. 자신의 이익과 관심에만 몰입한 사람들에게 인간이 지녀야할 보편적인 가치와 태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오직 나에게 영향을 주는 것들만이 중요하며 타인에 대한 고려는 철저하게 자신의 좌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과 비슷하지만 다른 ‘악의 일상성’이다. 시간이 지났지만 홀로코스트의 경험은 인간을 전혀 변화시키지 않았다. 현재 일상성을 지배하는 것은 개인의 이기성이며, 그것에서 확장된 집단의 이기성이다. 그것은 인간들의 삶을 정당화하는 위험한 기준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금 전 세계를 위협하는 수많은 충돌과 갈등의 본질은 그러한 이기성이다. 나의 이익에 대한 욕망은 점차 커지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사라지고 있다. 진보적 가치에 대한 강조도 지나치게 이기적인 방식으로 진행됨으로써 또 다른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6. 자신의 욕망에만 결박되어 있는 존재들로 넘치는 이 세계는 결국 파멸의 길로 갈 것인가? 국가 간의 충돌은 ‘애국주의’와 자국의 이익에 대한 고집 때문에 해결되지 않고, 국가 내 정파 간의 충돌은 오로지 자신들만의 논리에 매몰된 채 위기는 커지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지혜를 뽐내고 확신하면서도 결국은 특정의 이데올로기에 종속된 채 자신의 존재와 타인의 존재에 대한 공감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인간의 잔혹함이 각자의 필요성에 따라 ‘관심의 영역’을 통해 표현되고 있을 뿐이며, 그것은 결국 자신들의 존재를 무한하게 확장시키고 싶은 ‘이기성’의 극한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누군가 모든 범죄의 시작은 ‘거짓말’이라고 했는데, 모든 악의 시작은 ‘이기심’에서 시작되고 정당화되고 있는 것이다.
첫댓글 - 인간의 본성........ "지금 전 세계를 위협하는 수많은 충돌과 갈등의 본질은 그러한 이기성이다. 나의 이익에 대한 욕망은 점차 커지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사라지고 있다. 모든 악의 시작은 ‘이기심’에서 시작되고 정당화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