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은 한국인이 즐겨먹는 국 중 하나로 탄생을 의미한다. 고래가 새끼를 낳으면 미역을 뜯어 먹고 산후의 상처를 낫게 하는 것을 보고 산모에게 미역국을 먹이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진위는 가릴 수 없지만 임산부가 해산달이 가까워오면 해산미역을 준비한다. 해산미역은 넓고 긴 것으로 값을 깎아서는 안되고 꺾어서 싸주어도 안된다는 금기가 있었다. 꺾으면 난산한다는 터부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모에게 미역국은 필수 음식으로 산모의 ‘첫국밥’은 미역국과 흰쌀밥이다. 아기를 낳으면 미역국 세 그릇을 우선 삼신(三神)에 바치고 그 미역국을 산모가 먹는다.
생사의 기로에서 산고 끝에 받은 뚝배기 가득한 미역국은 소화흡수가 잘되고 지친 몸과 위를 부드럽게 다스리기 위해 소미역국으로 한다. 소미역국은 잘 씻은 미역을 참기름과 마늘을 다져넣고 볶다가 물을 부어 끓여 담백하고 구수하다.
백일상이나 돌상에도 산모는 삼신상의 미역국을 물려 먹었다. 지금은 그런 풍습은 사라지고 없지만 돌상이나 생일상에 뺄 수 없는 것이 미역국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미역국을 먹었을까? ‘살어리 살어리랏다 바라래 살어리랏다/나마자기 구조개랑(굴과 조개) 먹고 바라래 살어리랏다’. 고려사람들의 인생의 비애가 깃들어 있다는 청산별곡에도 해초(나마자기)와 굴 조개(구조개)를 먹고 살겠다는 구절이 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 보면 고려 시대에는 왕자가 탄생하면 반드시 염분(鹽盆: 소금 졸이는 가마)과 어량(魚梁: 고기 잡는 장치)을 하사하였고, 때로는 곽전(藿田: 해초류 채취장)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보아 해초류의 채취가 고려조에서는 보편화 되었던 것 같다.
중국의 이시진(李時珍)은<본초강목>에서 “고려의 미역을 쌀뜨물에 담가서 짠맛을 빼고 국을 끓인다. 이 미역국은 조밥이나 멥쌀밥과 함께 먹으면 매우 좋다. 기(氣)를 매우 잘 내리고 이것과 어울리지 않는 음식도 없다”고 적어 고려의 미역국이 중국까지 알려졌음을 전한다.
미역의 칼슘함량은 분유와 맞먹을 정도로 뛰어나다. 칼슘은 골격과 치아형성에 필요할 뿐 아니라 산후 자궁수축과 지혈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갑상선호르몬인 티록신은 심장과 혈관의 활동, 체온과 땀의 조절, 신진대사를 증진시키는 작용을 한다. 요오드는 젖의 분비를 촉진하니 미역국은 산모에게 가장 합리적인 음식이다. 미역에는 미끈거리는 알긴산이 있는데 식이성 섬유로 변비를 원활히 하고 혈압을 내리게 한다. 그래서 미역은 젊어지는 식품, 성인예방식품, 비만예방식품이라 할 수 있다.
마른 미역은 흑갈색으로 광택이 있으며 두껍고 탄력이 있는 것이 좋다. 생미역은 녹색이 짙고 줄기가 가늘고 잎이 넓으면서 촉감이 부드러운 것이 신선하다. 소금에 절인 염장미역은 조리하기 전에 소금기를 빼야 하는데 너무 오래 물에 담가두거나 조리시 지나치게 가열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마른 미역은 찬물을 듬뿍 부어 그대로 10~15분 쯤 두면 약 14배로 불어난다. 바락바락 주무르면 거품이 나면서 미끈거리는 점액이 빠지는데 물이 맑아질 때까지 여러번 주물러 씻어야 비릿한 냄새가 안 나고 맛있다.
미역국은 해안지방에서는 조개나 홍합 등 해물을 넣고 끓인다. 다른 지방에서는 형편대로 하되 소의 사골을 푹 고은 육수에 양지머리를 넣고 끓이는 경우가 많다.
마른 미역을 기름에 튀긴 미역튀각, 불린 미역과 오이를 초고추장에 무친 미역초무침, 미역줄기를 기름에 볶아낸 미역볶음, 얼음이 동동 뜬 미역냉국은 지친 입맛을 개운하게 해준다.
미역에 조개나 게살을 넣어 푹 끓인 미역죽은 소화가 잘되고 칼로리가 높지 않아 회복기 환자나 다아어트식으로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