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씨가 된다.
<말>을 늘려서 발음하면 <마알> 이 됩니다. 이를 풀이하면 <마음의 알갱이>란 뜻이 됩니다. 말은 마음의 알갱이에서 나옵니다. 말이란 마음을 쓰는 것입니다. 말을 곱게 쓰는 사람은 마음을 곱게 쓰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말을 험하게 쓰는 사람은 마음을 험하게 쓰는 사람입니다. 말에는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옛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거나 "말이 씨가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슬픈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대부분 일찍 타계한다는 논문(論文)이 있으며. 가수의 수명(壽命), 부(富), 즐거움과 노래 가사에는 상관관계(相關關係)가 있다고 한다.
즐겁고 신나는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장수(長壽)하며, 고통(苦痛), 이별(離別), 죽음(竹陰), 슬픔, 한탄(恨歎)의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단명(短命)할 가능성이 높다.
1961년 5월16일 군사혁명 이후 이 나라는 헐벗었던 산과 들이 푸르러졌고 국민은 기근에서 벗어났다. 이런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을 곁에서 몸소 익힌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다.
박근혜정부는 이땅에 또다시 한강의 기적을 도출(導出)해 낼 가능성이 커져 그 귀추(歸趨)가 주목된다.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 노래 가사에 "잘살고 못사는것 마음먹기에 달렸더라"는 소절이 가난했던 시절 사람들에게 큰 용기를 주는 노래다. 노래 가사 대로 우리국민들은 노력했으며, 오늘의 경제부국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 후 이 땅에는 수많은 우여곡절(迂餘曲折)이 많았다. 그러나 국민은 오로지 그분을 그리워하며 “박근혜” 박근혜를 제19대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노래는 말에다 곡조를 실은 것이어서 말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밝고 힘찬 노래만 불러라. 그 것이 성공행진곡이다.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말라. 그 노래는 복 나가는 노래다.
밝고 신나는 노래를 불러라. 노래대로 운명이 만들어진다. "
한국노랫말연구회에서는 슬픈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일찍 죽거나 슬픈 운명의 길을 걷는다라는 사실을 발표했다.
✚ 윤심덕 우리나라 최초의 가수 윤심덕은 [사의 찬미]를 불렀다가 그만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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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말,<산장의 여인>을 부른 가수 권혜경은 가사 내용처럼 자궁과 위장에 암에 걸렸고 요양을 하며 재생의 길을 걷게 되었다. 권씨는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나 서울대 성악과를 나온 뒤 조흥은행에 입사해 일하다 26살 때 케이비에스 전속가수 모집에 응모해 뒤늦게 가수가 됐다. 이듬해 이재호씨가 작곡한 데뷔곡 ‘산장의 여인’이 대단한 인기를 누리면서 단숨에 스타가 됐고, 이어 ‘동심초’ 등의 노래를 발표하며 50년대 후반 최고 인기가수로 활동했다.
그러나 데뷔 2년 만인 59년 심장판막증 판정을 받은데 이어 후두암까지 앓게 됐다. 병과 싸우면서도 박춘석씨가 작곡한 ‘물새 우는 해변’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60년대 중반 가수 활동을 완전히 접고 투병 생활을 계속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고인은 94년 이후 충북 청원에 정착해 마치 ‘산장의 여인’ 가사처럼 홀로 살아가다 세상을 떠났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단풍잎만 채곡채곡 떨어져 쌓여 있네/…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
2008년5월25일 사망
✚ <수덕사의 여승>을 부른 가수 송춘희는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불교 포교사로 일하고 있다.
✚ 이난영은 <목포의 눈물>을 부르고 슬픈 인생을 살다가 가슴앓이 병으로49세에 숨졌다.
✚ 가수 양미란은 <흑점>이란 노래를 남기고 골수 암으로 숨졌다. - 범띠 가시내
✚ 가수 박경얘씨는 향년 50세에 폐암으로 사망했다. 그녀가 부른 노래 <곡예사의 첫사랑>의 가사에 죽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다. "울어봐도 소용없고 후회해도 소용없다"
✚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를 부른 국제 가요제 전문 가수 박경희도 그 노래가사의 내용처럼 향년 53세에 패혈증과 신장질환으로 별세했다.
✚ 장덕은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를 부르고 사망했다. - 가사
나 이제는 너를 잊으려 하네. 아직 못다한 사랑을 여기에 남긴채 나 이제는 나의 길을 가야만 하네 아직 모르는 곳이지만 너를 두고 가려하네. 수많은 별들이 가득한 이밤. 창가에 스치는 얼굴들 모든것이 여기에 있는데 내가 정말 떠나야 하는지 잊지 말아요. 우리의 사랑을 잊지 말아요. 그날의 기억들을 이제는 시간이 됐어요.. 그대여 안녕~
1990년 2월 4일 심장마비
✚ 남인수는 <눈감아 드리리>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41세의 한창의 나이에 '눈감아 드리오니'의 노랫말처럼 일찍 눈을 감고 말았다.
✚ <0시의 이별>을 부른 가수 배호는 0시에 세상을 떠났다.
<돌아가는 삼각지>를 부른 그는 젊은 날에 영영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버렸다.
"삼각지"라는 지명에 야릇한 흥미를 느꼈고 어느 비오는 날 우연찮게 음울하고 을씨년스러운 삼각지의 풍경을 보고 우수에 사로잡혀 돌아가는 삼각지를 작곡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마지막 잎새>를 부르면서 세상을 떠났다(심장병).
✚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을 불렀던 가수 차중락은1968년 11월 10일에 급성뇌막염으로 29세의 젊은 나이에 낙엽처럼 가을에 떨어져 저 세상에 가버렸다.
✚ 「간다간다 나는 간다 너를 두고 나는 간다.」<이름 모를 소녀>를 열창하던 선망의 젊은 가수 김정호는 1985년 폐결핵으로 33세의 나이에 요절하게 됩니다.
✚ <이별의 종착역><떠나가 버렸네><내 사랑 내 곁에>를 불렸던 가수 김현식도 역시 우리 주위를 영영 떠나가 버렸다(간경화).
✚ <우울한 편지>를 부른 가수 유재하는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 하수영은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르고 세상을 떠났다.
✚ 가수 김광석은 <서른 즈음에>를 부르고 나서 바로 그 즈음에 세상을 떠났다. - '사람들이 노래 가사대로 된다고 해서 얼마동안 부르지 않았는데 --- ' 1996년 1월6일 자살. 32살(1964년1월 22일, 31살)
✚ <이별>을 불렀던 대형 가수 패티김은 작가 길옥윤과 이별했으며,
✚ 고려대 법대 출신의 가수 김상희는 <멀리 있어도>를 부르면서 남편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어 몇 년간 떨어져 있게 되었다고 한다.
✚가수 조미미는 35세까지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바다가 육지라면>이 히트되면서 재일 교포가 바다를 건너와 결혼이 성사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 오랫동안 노처녀로 지내다가 <만남>을 부른 노사연은 행복한 결혼을 하게 되었다.
✚ <세상은 요지경> 이라는 노래를 불렀던 신신애는 사기를 당해 모든 것을 잃었다. 노랫말 그대로,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을 친다"였던 것이다.
✚ <쨍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을 불렸던 가수 송대관은 한동안 주춤했다가 어느 날 다시 가수로 복귀하여 인기를 점점 얻더니, 지금은 노랫말대로 진짜 쨍하고 해뜨는 날이 오게 된 것이다.
가수생활 10년이 넘도록 빛을 보지 못했다가 지금은 쨍하고 빛을 보게 되었다. 송대관은 그의 첫 히트곡이 <세월이 약이겠지요>였다. 이 노래 제목처럼 진짜로 세월이 약이 된것이다.
가수가 노래한곡을 취입하기 위해서는 같은 노래를 보통2,000~3,000번이나 부른다고 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똑같은 일이 생겨난다고 한다. 가수가 처음 노래를 연습할 때 작곡가에게 얼마나 많은 핀잔을 들었겠나.
말의 힘이 어느 정도인가를 여러 각도에서 조사를 했다.
가수 100명을 대상으로 히트곡이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조사해보니 놀랍게도 91명의 가수가 자신의 히트곡과 운명을 만들었고 요절한 가수들은 너나없이 죽음과 연관된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마음에 밝은 곡조의 노래를 볼러라 우리들 자신의 '마음의 파장이' 이 파장에 맞는 일을 끌어들인다. 우리들의 마음의 파장이 '기쁜 곡조'를 연주한다면 '기쁜 일'이 모여올 것이고, 우리들 마음의 파장이 '공포의 곡조'를 연주한다면 '두려워해야 할 일'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 입에서 부정적인 말이 나오면 모든 상황이 부정적으로 되고, 긍정적인 말이 나오면 상황이 긍정적으로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해야 한다.
요즘에 한국의 경제적 지위가 국제적으로 많이 나아졌지만 과거에 우리 나라가 못 산 가장 큰 이유는 말 때문이었다. 얼마나 부정적인 말이 많았는가?
자녀에게 실망했다고 자녀에게 "빌어먹을 놈"이라고 하면 자녀는 절대 "베푸는 사람"이 되지 않고 "빌어먹을 놈"만 될겄이다.
그리고 흔히 내뱉는 "죽겠다!"는 말도 문제다.
"배고파 죽겠다, 귀찮아 죽겠다."고 하면 죽을 일만 생겨나게 된다. 아무리 어려워도 "살만 하다!"라고 해야 한다.
수필가 이어령 교수는 우리 나라가 그래도 이만큼 잘 살게 된 이유가 코흘리개 아이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아이들이 코를 흘리니까 어른들이 말하기를 "얘야! 흥<興>해라!"
그 말을 많이 해서 우리 나라가 흥하게 되었다는 겄이다. 유머 속에 메시지가 있는 글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고 "흥하라!"고 하면 흥하게 되고, "망할 놈!" 하면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원곡가사를 나중에 종교편향이라해서 하느님으로 고침)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가, 긍정적인 노래를 많이 부르시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