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0일- 누가복음 9:28-43a
잠언 12:15-19/ 찬송 545장
예수님의 영광과 위엄
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34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37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38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39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40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42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수난 예고’(눅 9:22)를 하신 후 8일쯤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기도하시던 예수님에게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29)는 신비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문득 모세와 엘리야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님과 말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히브리 민족의 위대한 해방자와 예언자였습니다.
모세의 출현은 장차 온다고 예고된 그 예언자(신 18:15)가 예수님이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신 18:15)고 명령한 바 있습니다.
엘리야의 출현은 예수님의 죽음이 종말 사건과 결정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종말 즈음에 엘리야의 재림을 기대하였습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에게 하신 대화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31).
모세와 엘리야는 율법과 예언을 대표하는 인물로 예수님의 수난의 길에 대한 대화를 나눈 것입니다.
여기에서 “별세하실 것”(31)은 ‘그의 죽음’을 가리키는데, 여기에 사용한 헬라어는 ‘엑소더스’(Exodus)입니다.
마침 깊이 졸다가 깨어난 세 제자는 굉장한 광경을 목격합니다. 영광스런 예수님과 함께 한 모세와 엘리야의 모습은 황홀경(怳惚境)과 같았습니다.
두 사람이 떠나려고 하자 베드로는 세 분을 위해 초막 셋을 짓고, 산 위에 계속 머무르자고 제안합니다. 베드로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할 얼떨결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 말 할 즈음, 구름이 덮이고, 그들은 두려움 가운데 구름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늘의 소리를 듣습니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35).
예수님이 세례받을 때 들렸던 말씀(눅 3:22)과 같은 의미로, 산 위에서도 들린 이 말씀은 메시야에 대한 증거로 반복됩니다.
비로소 제자들의 눈에는 “오직 예수만”(36) 보였습니다.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 일행을 큰 무리가 맞았습니다.
한 사람이 소리 지르며 나아와 귀신 들린 외아들의 고통을 호소하며, 치료하여주실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의 외아들은 귀신에 들려 ‘갑자기 부르짖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고, 몸이 몹시 상하였’으나, 그동안 아무도 그를 돌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를 탄식하시며, 아들을 데려오게 하신 후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낫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능력에 놀라고, 그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위엄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은 산 위와 산 아래의 사건을 통해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길과 영광의 길 사이’에서 바른 판단을 하도록 이끄십니다.
샬롬샬롬
☀ 다시 봄
1)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별세’(헬라어 ‘엑소더스’)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곧 예수님의 죽음은 누가의 표현에 따르면 ‘예수님이 죽음을 통해 새로운 세상으로 이끄시고, 새로운 출애굽을 시도하신다’란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죽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출발이란 뜻입니다. 새로운 차원으로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출애굽인 것입니다.
☀ 새겨 봄
1) 산 위에서 황홀경을 본 베드로는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눅 9:33)라고 말합니다. 아직 십자가의 의미와 주님이 이끄시는 새로운 구원사건을 모른 채 하는 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이 이끄시는 엑소더스에 대한 주저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고난을 두려워하며 산 위의 영광에 머물고 싶었습니다. 장차 그 의미를 깨달은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첫댓글 주님 가시는 길을 온전히 따르게 하옵소서.
온전히 제게 맡겨진 십자가를 지고 새로이 거듭나는 삶을 살게하옵소서
주님이 이끄시는 엑소더스 구원사건에 대한 주저함이 없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의 삶을 누리게 하옵소서
현재 상황에 만족하여 안주하고 싶은 마음에서 깨어나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는 용기를 갖는 사순절 되도록 하늘의 은총을 더하여 주소서.
" 아들을 데려오게 하신 후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낫게 하셨습니다. "
엘리아야와 모세가 함께 하신분, 몸에서 광채가 날 정도로 특별했던 분은 그저 고고하게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삶속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귀신들린 청년의 이야기는 마음이 아픕니다. 불안해하고 충동적이고 폭력적이며 우울하고... 우리 사회에서 날마다 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픈 청년과 그것으로 더 아파하는 부모의 손을 잡으신 주님. 교회 공동체가 주님을 닮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