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하와이 문학기행
일시:2009년 04월 16일 (목)~2009년 04월 25일 (토) 8박 10일
여행지:미국.하와이
2009년 4월 16일 목요일 인천공항 출발, 샌프란시스코 도착
* 인천공항 출발
미국은 벌써 다녀왔을 텐데, 무비자가 적용되는 시기에 맞춰 기다리다가 금년에 가는 것이다. 오후 2시 10분 UA 892, 유나이티드 항공으로 출발한다. 123게이트에서 1시 25분 보딩이다. 모노레일 열차를 타고 A동으로 이동하여 탔다.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로 소요시간은 10시간 14분 예정이다. 긴 여정이다. 우리 부부 좌석은 41E, 41F다. 어제 비가 내려 날씨는 화창하다. 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했다.
*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 도착
한국보다 16시간이 늦다. 현지시각 오전 8시, 비행기 안에서 하루 밤을 자면서 왔다. 날짜 변경선을 지나 태평양을 건너 왔다. 공항은 상당히 크다. 샌프란시스코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문구가 정겹다. 공항 밖 대기실에는 초록 나무들을 한줄로 잘 가꾸어 놓았다. 서둘러 버스를 타고 시내로 이동했다.
* 미국의 광활한 도로
한반도의 2.3배 크기인 캘리포나아주, 그 안에 있는 도시 샌프란시스코다. 광활한 주의 도시, 공항에서 나와 도로를 만났을 때 역시 광활하다. 차 안에서 이곳 생활에 대하여 전해 들었다. 미국 사람들은 친해지기 쉬운데 오래 가지 않는다. 정이 없다다. 한국과 너무 다르다. 한국이 너무 빨리 발전했다. 기대치보다 더 발전한 것이다. 미국은 발전이 늦다. 인천공항이 세계 3위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가 여행 중에 갈 곳은 캘리포니아주, 아리조나주, 네바다주, 3개주다. 주는 경기도 개념인데, 어마어마하게 큰 땅이다. 주로 밭과 사막인데 캘리포니아는 70%가 사막이다. 아주 넓은 사막이다. 교포 가이드는 어효선, 미국명으로 써니어 과장이란다.
공항에서부터 계속 넓은 도로를 달린다. 도시와 도시가 긴 거리다. 짧아야 2시간, 보통 4~5시간 장거리 이동이다. 현재시간 4월 16일 아침 9시 50분, 한국시간 4월 17일 밤 1시 50분이다.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은 자국인데도 3시간 시차다. 한국과는 16시간 시차로 미국이 늦다. 오늘 우리는 300Km 정도 달린다. 버스 타는 시간이 길다. 평생 탈 버스를 여기서 다 탄다고 한다. 미국여행에서는 한번 갔던 길은 90%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만큼 광활함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 미국 스탠포드대학 탐방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달려 첫번째 방문한 곳이다. 미국역사는 지금까지 230년이다. 스탠포드대학은 1880년에 개교하여 세계 우수대학이 되었다. 미국의 100년 역사는 참으로 소중하다. 동부에는 예일대, 하버드대, 서부에는 스탠포드대가 유명하다. 스탠포드대학은 졸업하기가 상당히 힘들다.
교정에 들어섰을 때 놀라웠다. 드넓은 풍경이 가장 인상적이고, 나무와 잔디, 건물 등 잘 가꾸어 놓아 아름답다. 후버 대통령이 세운 후버타워의 종탑과 오랜 역사가 담긴 성당, 도서관 등을 관람했다. 스탠포드대학 마크의 기념상가도 갔다. 경기도 크기의 교정으로 광활하여 시내버스가 이동수단인 대학, 그 일부만 보았지만 그곳에서 대학생들의 활기찬 모습과 도서관의 향학열을 체험한 소중한 여정이다.
* 샌프란시스코의 도시 특징
미국은 덩치 하나로 밀어붙인다. 50개주인데 알래스카주와 하와이주를 빼면 본토는 48개주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주는 캘리포니아주와 텍사스주다. 수도는 와싱턴이다. 알래스카주는 캘리포니아주의 1.5배다. 미국여행의 하이라이트인 그랜드캐년 1개가 430Km, 서울과 부산 거리다. 1869년에 철도가 생겼다. 우리는 캘리포니아주에서 아리조나주, 네바다를 갔다가 다시 온다. 샌프란시스코는 캘리포니아주에 속해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한쪽은 만이고, 한쪽은 바다로 지진과 바람이 많다. 그래서 집이 낮다. 부촌은 나무와 바다, 언덕을 갖춘 곳이다. 집값은 상당히 비싸 평균 100만불, 10억이다. 일교차가 커서 낮은 따뜻하고, 밤은 서늘한데 그런 기후가 옷의 패션이 되었다. 나무와 언덕이 많은 도시다. 집들이 언덕 줄기를 따라 비스듬히 오르며 지어져 있다. 이색풍경이다. 또한 샌프란시스코의 별명은 안개의 도시다. 한류와 난류가 만나 태평양에서 안개가 언제 들어올 지 아무도 모른다. 갑자기 안개가 확 낀다. 한국과 위도는 같다.
전세계가 10진법을 쓰는데 미국만 안 쓴다. 마일, 야드, 온스 등을 쓴다. 한국과 반대되는 것이 많다. 119가 여기서는 911이다. 114도 411로 한국과 정반대다. 가이드는 미국에 와서 실망이 컸다고 했다. 차종류도 많다. 같은 차가 없다. 현대, 기아차도 있다. 서부는 일본차, 혼다 등이 많다.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다. 모두 자가용 이동이다. 뛰는 자도 없다. 샌프란시스코는 프란시스코 원정대가 들어오면서 지명이 된 도시다. 성 프란시스코였다. 서부와 중부, 동부의 생활패턴이 다르다. 중부는 촌동네로 한번도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 채, 비행기 한번 못 타고 죽는 자가 많다. 중부는 프랑스와 네덜란드인이 많고, 서부는 스페인이 멕시코에게 넘겨 주었다. 이곳은 미서부의 아름다운 도시다.
* 샌프란시스코 한인식당
미국 경기가 나쁜데 세계가 요동친다. 이곳 생활이 요즘 어렵다. 이민역사는 100년이다. 하와이 사탙수수 밭을 시작으로 본토에 들어왔다. 일본과 중국은 이민 200년 되었다. 서울특별시 나성구, 한인타운에 간다. 교포 가이드는 20세 때 와서 이민 17년차란다. 프로야구팀 LA 다저스의 박찬호 선수, 박세리, 김미연 등 유명인도 많다. 한국의 우수한 전자제품은 그 좁은 땅에서 기적 같은 생산으로 여긴다. 한국을 대단한 국가로 인식한다. 한국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할 때 이민자들은 애국자가 된다 했다. LA의 한인타운은 그 중에서도 유명하다.
교포가 운영하는 한일관에서 중식을 했다. 비빔밥과 육개장인데 맛있다. 이곳 식습관은 조식은 빵, 중식은 햄버거, 석식은 대량의 고기다. 그래서 뚱뚱한 사람이 많다. 발목이 약하다. 먹고 자고, 걷지 않아서 넘어지면 못 일어난다. 음식문화가 짜거나, 달거나다. 요즈음은 건강식으로 우수한 한국음식을 이곳 사람들도 좋아한다.
* 미국 샌프란시스코 트윈픽스
샌프란시스코의 정경을 전부 볼 수 있는 최고 높은 언덕으로 270m와 271m 쌍둥이 봉우리다. 버스가 정상까지 올라가며 만과 기차 같이 늘어선 건물 등 금융중심지 월스트리가도 본다. 트윈픽스의 전설이 있다. 인디언 처녀와 대지주 아들이 사랑하여 아들을 낳고 죽었는데 그 여인의 두 젖무덤을 상장한다는 것이다. 바람이 많은 곳이다. 오늘 날씨는 시내조망 95점이란다. 어제는 시속 60Km로 불어 날리였단다. 우리 일행도 모자가 난간 밖으로 날아가 간신히 꺼냈다. 멀리 샌프란시스코가 한눈에 보인다. 바다와 언덕, 나무, 하얀 건물들이 절창이다. 이 부근은 부자 마을이다.
* 샌프란시스코의 지진대비 주택
샌프란시스코 주택은 3층이 많다. 집 사이가 좁다. 이웃과 붙여 짓는 이유는 1906년 8도의 대지진으로 집이 모두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곳은 제일 큰 피해가 지진이다. 다른 피해는 없다. 지진대비책으로 1910부터 집을 붙여 짓는다. 모두 목재다. 1년에 5Cm씩 가까워진다. 옆집 이야기가 다 들린다.
샌프란시스코(SA)의 별명은 7개로 언덕의 도시, 낭만의 도시, 군사의 도시, 게이의 도시, 바람의 도시, 안개의 도시, 금의 도시다. 미국인구가 작년에 3억이 넘었다. SA는 인구 80만명, 390만명의 LA다음으로 큰 도시다. 만 지역에 모여 산다. 가장 물가가 비싼 곳이 맨하탄과 SA다. 북아메리카는 미국과 캐나다, 남아메리카는 브라질과 칠레 등이다. 최초의 인종은 인디언이다. 아리조나는 인디언 보호구역이다. 아리조나에 그랜드캐년이 있다. 원주민들의 언어가 600개, 서로 말이 안 통한다.
큰 나라에 왔다는 것이 실감난다. 신기한 눈으로 시내를 돌며 본 주택들은 정말로 한치의 틈도 없이 붙여 지었고, 트윈픽스에서 내려오며 본 주택들은 기차의 굽어진 모양으로 이어져 있었다. 철저한 지진대비 주택이다.
* 미국 샌프란시스코 게이마을
남자끼리 사랑하며 사는 마을이다. 표밭으로 이곳에서는 몰표가 나온다. 선거 때 '나는 게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1941년 2차대전 때 미전군이 모여 맥아더와 하와이 쪽으로 갔는데 그때 게이짓 하다가 걸린 자들을 모두 보낸 곳이 샌프란시스코다. 이곳에 정착하여 산다는 소식을 듣고 게이들이 다 모였다. 언덕 위 경치 좋은 곳으오 집값이 100만 달러 10억이다. 상류계급이 사는 곳이다.
게이들은 6가지의 무지개 깃발을 내걸고 산다. 마을입구에 대형 무지개 깃발이 펄럭인다. 주택에도 작은 무지개 깃발이 즐비하게 꽂혀 있다. 미국인들은 손잡고 다니지 않는다. 남녀 동성이 손잡으면 게이(남+남), 레즈비언(여+여)으로 본다. 클린턴 대통령이 키운 지역이다. 표심을 잡기 위해서다. 3천명이 골목에 무지개 깃발을 나부끼며 평화롭게 모여 산다.
* 샌프란시스코 시청
시내 복판에서 번화가에서 만났다. 이 나라는 철저하게 사람 위주로 운전한다. 소방차, 엠블란스, 경찰차가 3대 파워다. 스쿨버스를 더하면 4대 파워다. 시청은 차도로 둘러 싸여 있다. 원래는 분수가 있었는데 없앴다. 집 없는 자들이 모여서 살게 하기 위해서다. 한국의 시청과 비슷한 모양의 건물이다. 잠시 내려서 보았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주제곡을 들려주어 들었다. 이곳이 그 유명한 노래 속의 샌프란시스코다. 무심코 불렀던 낭만의 노래를 현지에서 들으니 뜨거운 감성으로 다가온다.
* 샌프란시스코 박물관
박물관은 시청 맞은 편에 있다. 우리가 여기 온 것은 박물관 내부를 보고자 한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유명한 제약회사인 종근당의 이종근 사장 동생인 이종문이 거액의 기부금을 내어 박물관 건물 외벽 상단에 그 이름이 크게 새겨져 있다. 자랑스런 한국인으로 이곳 교포들에게 큰 자부심을 부여하는 곳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작은 아들이 성균관 대학교 약학부와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한 약사로 종근당에 근무하기에 더욱 자랑스러웠다.
*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샌프란시스코 도심 한 블럭 자리잡고 있다. 곁에는 이태리 타운이다. 종종 마피아들의 큰 싸움이 있지만 그래도 잘 정착하여 산다. 어느 나라에 가도 보는 차이나타운이지만, 이곳 역시 샌프란시스코 중국인들의 저력을 보는 시가지다.
* 샌프란시스코 건물의 창문
창문이 돌출되어 있는 건물이 많다. 바람이 많은 도시라서 시원하게 하기 위해서다. 에어컨이 필요없다. 은행건물도 그렇게 짓는다. 단순한 조형미가 아님에 놀라웠다.
* 샌프란시스코 베이 크루즈 유람선
만으로 둘러싸인 바다를 1시간 동안 유람한다. 피셔맨 시티, 어부 마을에 가서 탄다. 금문교를 지나 샌프란시스코의 해변 절경을 보았다. 만다리도 유명하다. 금문교보다 1년 전인 1936년에 건설되었다. 만의 땅과 땅을 이어주는 만다리가 길게 바다 위에 놓인 풍경도 아름답다.
섬에 갇혀 있는 알카트래즈(알카치네) 감옥도 보았다. 언제나 유람선은 황홀한 비경을 선사한다. 바다와 SA 해변풍경이 시심을 흔든다. 선착장 부근 워터프론트는 시인을 비롯한 많은 예술인들이 드나드는 곳으로 매우 아름답다.
*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금문교를 걸어서 건넜다. 밀물과 썰물이 만나는 곳으로 빠지면 아무도 못 나오는 곳이다. 토목 엔지니어도 못 놓는다던 환경인데 시카고(바람의 도시)에서 온 조셉이 설계하여 건설한 다리다. LA에서 리오까지의 거리 만큼의 시멘트를 부었다. 해류가 너무 세어서 그렇다. 상판의 교각과 교각 사이는 피아노 강선 줄로 이었다. 강선이 상판을 잡아준다. 1933년부터 1937년까지 그 당시 기술로는 대단하게 지었다. 25752개의 볼트로 조였다. 떔질과 못이 없다. 볼트만 풀면 다리를 허문다. 인구 30%가 실업자인데 350억 들여서 실업자를 구제한 다리다. 1982년 대지진에도 안 무너졌다.
또한 이곳은 자살하는 곳이다. 79%가 생활고 자실인데 여기서 떨어져 죽기도 한다. 붉은 색인 이유는 금색칠 하면 안개 낄 때 안 보여서, 터내셔널 오렌지색으로 칠한 것이다. 사실 이곳 사람들이 가장 애착을 가지는 다리는 1936년 제일 먼저 완공된 만다리다. 그런데 1982년 지진 때 만다리는 무너졌다. 금문교는 좌 10m, 우 10m 흔들거리며 지진이 나도 끄덕없이 견딘다. 1914년에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었다. 1915년에 금 박물관이 생겼다. 금문교는 '골든 게이트 브릿지'로 금을 캐러가는 입구의 다리다. 그 다리를 지금 걷고 있다. 2737m, 도보 40분 거리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나는 따뜻한 겉옷을 입어 춥지 않았지만 일행 몇 사람은 추위로 고생했다. 저 멀리 태평양이 광활하게 전개되고 안쪽으로는 샌프란시스코가 안온하게 자리하여 크고 작은 섬들과 함께 비경을 선사한다. 금문교의 튼튼함은 외형에서도 대단했다.
2009년 4월 17일 금요일 샌프란시스코 출발, 요세미티 국립공원
* 샌프란시스코 힐튼호텔 출발
미국 호텔은 등급 자체가 없다. 일반방과 특급방만 구별되어 있다. 자본주의라서 그헐다. 좋은 호텔은 쿠션이 많더라는 말을 하여 웃었다. 아직도 110V다. 전등도 모두 수동 스탠드다. 아침 6시에 기상하여 7시에 호텔조식을 마치고 8시에 출발했다. 계절이 한국보다 빠르다. 4월인데 나무들이 모두 울창하다. 한국의 5월 풍경이다. 오늘은 미국에서 제일 높은 요세미티 폭포에 간다.
* 캘리포니아의 들녘 풍경
도시를 벗어나자 캘리포니아의 들녘이 전개된다. 구릉의 언덕에는 자작한 풀이 돋아나 있고, 풍력계가 집단으로 줄서서 돌아간다. 개인소유이며 전기를 생산하여 판다는 것이다. 5가지, 즉 수력(라스베가스의 후버댐), 화력, 풍력, 원자력, 태양력(제일 비쌈)으로 전기를 생산하다. 곳곳에서는 양, 소 등이 방목으로 풀을 뜯는다. 이 지대에는 산이 없다. 민둥산이다. 한국과 반대로 여름에 비가 없다. 5월이면 갈색 초지다. 겨울에 비가 온다. 비가 안와서 집의 나무는 물 주어서 기른다. 산엔 나무가 없다. 무덤 같은 능선은 자연생성 된 것이다. 이색 풍경이다. 조금 더 가서 산이 보이면 그때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들어선 것이란다. 서서히 농토도 보이고 농촌 마을도 보인다.
* 캘리포니아 과일농장
요세미티 국립공원 가는 길에 들른 곳이다. 휴계소 겸 캘리포니아 과일농장을 견학한 셈이다. 동물농장도 있다. 가게 안에는 여러가지 이곳 생산 열대과일이 진열되어 있고, 밖에는 아몬드 나무가 줄맞춰 심겨져 있다. 또 가게 앞에서 자란 아몬드 나무에서 아몬드 열매가 달여 있는데 꼭 덜 익은 복숭아 같다. 신기하여 만져보고 살펴보았다. 익은 아몬드의 단단한 열매는 꼭 복숭아씨 같다. 가게 주인은 깨쳐서 그릇에 담아놓고 우리 일행에게 먹도록 했다. 아주 고소하고, 무엇보다 다듬어지지 않은 천연의 아몬드를 보고 먹는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입구의 고운 열대꽃도 외인을 반긴다. 이제 요세미티로 출발한다. 여기서 요세미티까지는 2시간 소요된다.
* 캘리포니아의 알파파 재배농장
캘리포니아의 5대 농산물은 1.알파파, 2.아몬드, 3.오렌지, 4.포도, 5.쌀이다. 오렌지는 플로리다에서 많이 나는데 델몬트는 플로리아산이고, 썬키스트는 캘리포니아산이다. 캘리포니아의 농산물 중 그 1위가 알파파라니 신기하다. 알파파는 소, 말, 가축의 사료로 쓰는 풀이다. 말려서 사용한다. 건초로 캐나다에 수출하여, 캐나다 소까지 키우는 풀이다. 정말 들녘 농토에는 아몬드나무와 함께 보리의 싱그러운 잎새처럼 알파파 식물이 물결치고 있다. 건초로 수출도 하여 외화를 벌어들이는 풀이다. 3년 주기로 2년 농사 짓고, 1년은 휴년이다. 휴년 때 알파파를 심는다. 땅에 소금기가 있어 알파파가 소금기만 먹는다. 7번 융기로 이곳 땅이 그렇다.
*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미국에서 제일 높은 폭포가 거기 있다. 739m 요세미터 폭포에 간다. 도보로 왕복 30분 걸어서 간다. 요세미티에는 살림욕 나무가 많다. 우리가 탄 버스는 5억짜리다.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고속도로 급제동도 가능하다. 58인승인데 현재는 53명이 승차했다. 시속 116Km로 달린다.
요세미티는 원래 '미웍'이라는 인디언이 살고 있었는데 곰이 나타나면 '요세미티'하고 부르다가 그 후 위험한 상황시마다 '요세미티'로 불러 오늘의 이름이 된 것이다. 1890년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가이드 허친스와 소설가 잠무어, 사진작가 엔젤 아담스 이 세사람이 이곳에서 활동했다. 요세미티 면사포 폭포도 본다. 헤프 돔(돔을 1/2로 자른 것)이 있다. 직경 1080m의 장군바위 엘카피탄도 있다. 요세미티 계곡은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식당도 한개뿐이다. 위험하니 공원에서는 절대로 뛰지 말란다. 일본인은 앞만 보고 가고, 중국인은 왈가왈가하며 가고, 한국인은 뛴다는 것이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초입부터 나무가 울창하다. 끝없이 버스가 달린다. 물이 많고 산사태도 나 있고, 다리도 있다. 야생곰, 청솔모, 딱다구리가 많다. 전나무 껍질이 부드러워서 딱다구리가 산다. 점심은 식당이 없어서 도시락으로 먹었다. 동물을 조심해야 한다. 먹이를 주면 상처를 입게 된다. 청솔모는 깍두기를 먹고 뒹굴더란다. 뭐든 받아 먹는다. 공원경찰이 사진증거 확보하여 벌금을 내게한다. 의자에 앉아 먹을 때 자꾸 쳐다보는 청솔모를 피해 먹었다. 나뭇가지, 도토리, 물, 돌을 가져오면 안된다. 먹이사슬 형성보존으로 지키고 있다. 산에는 5월까지 눈과 얼음이 있다. 푸른 나무 사이로 하얗게 깔린 눈이 장관이다.
걸어서 요세미티 폭포로 갔다. 레드우드 캘리포니아 붉은 나무가 아름드리 울창하다. 주기에 그려진 나무다. 전시주로도 사용하는데 200년 보존 가능하다. 사슴, 곰도 더러는 보이는 곳이다. 요세미티 폭포 앞에서 면사포처럼 휘날리는 3단 폭포의 장관을 보았다. 하늘 아득하여 한참을 올려보아야 했다. 하늘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울창한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산을 만나지 못했던 캘리포니아 들녘의 산에 대한 갈증을 다 풀어주었다.
* 요세미티 국립공원 조망언덕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는 3가지 절경을 본다. 1.엘카피탄 바위(ㄱ자), 2.헬프 돔(돌), 3.면사포폭포(3단), 대표적인 볼거리다. 이 세가지를 조망하는 전망대가 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내의 전망대로 이동하여 다 보았다. 대단한 절경이었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에 집에 걸어두면 집값이 올라 간다는 가이드의 말에 웃으며 모두들 사진을 찍었다.
산불이 난 자리도 그대로 보존한다. 후손에게 교육용으로 그렇게 둔다는 것이다. 마리포사라는 지역을 지나서 요세미티인데 1989년에 큰 산불이 났다. 마리포사에서 요세미티까지는 지금도 나무가 적다. 140번 도로는 산사태가 나서 끊어진 곳도 있다. 미국의 국립공원은 58개로 적고, 주립공원은 아주 많다. 미연방법 적용으로 엄격히 구분된다. 국립공원은 미서부쪽에 한국의 금강산인 요세미티, 로키 등이 있다. 미중부는 거의 평지다. 단일 화강암 돌출로 형성된 요세미티는 비경이다. 4~5월에 비가 많 오면 요세미티 폭포에서 9천 리터의 물이 한번에 떨어진다. 조망언덕에서 웅대한 비경을 모두 보았다. 나갈 때도 버스는 끝없이 달렸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드넓음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 미국 휴게소의 수퍼마켓
요세미티에서 프레스노로 이동할 때 들른 휴게소다. 대형 수퍼마켓이 있어 쇼핑도 했다. 나는 스피아민트 껌을 많이 샀다. 35조각이 든 것 한세트에 2.59$, 한화로 약 4천원이다. 미국인은 계산이 느리다. 한국인을 못 따라 간다. 그래서 계산대 앞에서 오래 기다려도 견뎌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인이 한국인보다 1년에 1달을 공부 덜한다고 했단다. 한국인 보좌관 유진박에게서 느낀 것이라며, 한국의 피를 이해한듯하다며 교포 안내원은 자랑스러워 했다. 미국은 1~44대 대통령까지 중에서 만장일치로 된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장군이라 부른다. 독립전쟁하신 분이어서 그렇다. 1달러에 새겨져 있다. 훌륭한 분일수록 제일 많이 쓰이는 동전에 얼굴을 새긴다. 부자나 가난한 자 모든 손에 도는 돈에 각인 시키는 것이다.
미국은 13층이 없다. 12층 다음은 14층으로 이어진다. 13, 66, 숫자를 싫어한다. 한국의 4 개념이다. 미국 13주개로 시작하여 지금은 50개주다. 7월 4일이 독립기념일이다. 명절은 3개인데 그중 하나가 독립기념일이다. 역대 대통령 중 최저 지지율은 조지 부시다. 오바마 대통령은 부시가 저질러 놓은 것을 치우는데도 몇년이 걸릴 것이란다. 전쟁으로 파견 중인 군인을 지금 철수 중이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드넓은 휴게소를 떠나 또 긴 거리를 버스로 달린다.
* 미서부 도시 프레스노
캘리포니아 최대의 농업도시다. 인구 370만명으로 서부 5위 도시다. 1830년대부터 건포도 생산지로 유명하다. 건포도에 대한 유래가 있다. 주인이 여행 갔다가 홍수로 늦게 왔는데 캘리포니아 태양빛이 뜨거워서 포도가 말라 건포도가 되었다. 주인의 실수로 탄생된 것이다. 그것이 현재는 세계적인 건포도가 되어 사랑받고 있는 것이라니 더러는 실수도 위대한 것을 창조함을 느끼게 한다. 여기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상추가 크고 맛있다. 포도주와 돼지고기로 향기로운 만찬이다. 저녁 노을이 드리운다. 마을은 아담하고 물길을 깨끗하게 만들어 놓아 시냇물이 아름답다.
내일은 6시 기상, 7시 조식이다. 그랟드 캐년은 446Km로 하루 종일 봐도 다 못 본다. 경비행기가 2300m 이상의 고도로 날며 보여준다. 아이맥스 영화도 35분간 엑기스만 상영한다.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시간대별로 본다. 우리는 지금 줄기차게 달려 그랜드 캐년을 향해 가고 있다.
* 미서부 광야의 일몰
포도밭 평원으로 넘어가는 해가 장관이다. 현지시각 오후 7시 30분 석양이 미서부 광야의 향수를 자아낸다. 산과 들이 엄격히 구분된 나라, 산은 산, 들은 끝없는 들, 그래서 미국이 아닐까. 미국 농산물을 왜 세계시장에 내놓는지 알았다. 저 평원에서 생산하는 농산물 다 어찌 하겠는가. 한뼘의 땅도 소중한 내 조국의 좁은 영토가 애처로우면서도 이런 대국과 견주어 산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순간이다.
2009년 4월 18일 토요일 캘리코 은광촌
* 캘리포니아 베이커스 필드 호텔
조용하고 낭만이 흐른다. 온통 나무가 푸르고, 꽃도 곱게 피었다. 수영장과 물 정원이 싱그럽다. 간단한 뷔페로 조식하고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땅이 넓으니 객실은 옆으로만 퍼져 짓는다. 2층의 건물이 나란히 이어져 있다. 나무와 건물의 조화가 아름답다. 오늘은 7시간 차를 타고 그랜드 캐년으로 간다. 드넓은 미국땅이어서 하루 종일 가도 아리조나까지 밖에 못 간다. 58번 도로를 타고 바스토우까지 가서 점심 식사하고 은광촌을 보고 간다.
서부 개척시대 1800년~1849년 동안 골든러시였다. 16세기에 스페인에서 서부 쪽 와서 땅이 있음을 알고 2세기 후 18세기에 다시 와서 인디언을 토벌하고 정복했다. 내전이 일어나 1820년 멕시코에 땅을 주고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그것이 1846년의 맥미전쟁이다. 전쟁하여 미국이 땅을 빼앗앗다. 7개주를 170억에 매입했다. 미국은 승전국, 멕시코는 패전국이다. 문서를 작성하여 토지매매 계약서를 썼다. 후에 멕시코가 땅을 달라고 했으나 미국은 주지 않았다. 서부를 철도, 산업 등 개척하면 준다고 했는데 멕시코가 개발할 돈이 없어 포기했다. 미국은 허접하다. 고속도로에 카메리가 없다. 그래도 정확하게 달린다. 우리는 지금 광활한 캘리포니아 농장지댈로 접어들고 있다.
* 캘리포니아의 아몬드와 포도 농장
캘리포니아 들녘은 달려도, 달려도 아몬드 나무와 포도나무와 알파파 초지, 그리고 기름진 검은 흙, 광활한 푸른 초원이 전개된다. 간간이 수로도 보인다. 농장주는 농사꾼이 아니다. 아몬드 나무 한그루에 순수익이 1년에 15달러에서 35달러로 평균 25달러다. 농장주라고 부르는 이유는 한사람이 100만 그루에서 500만 그루, 또는 1000만 그루까지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25달러 곱하기 1천만 그루, 하면 계산이 안나오는 액수다. 어제 들른 과일농장이 75세의 남자가 경영하는 농장이다. 그 남자는 나무 경매시장, 돈세기, 여행으로 아주 행복하게 산다. 플랜테이션 농업이다. 대농업, 대농장에 1가지만 농사 짓는다. 아몬드 농장은 아몬드 나무를 일자로 심는다. 기계(벨트)에 싣고 나르려고 그렇게 심는다. 껍질이 벌어지면 턴다. 껍질은 갈아서 거름으로 쓴다. 전 세계 생산량의 70%가 캘리포니아산으로 '블루다이 아몬드'라고 부른다. 아몬드는 공항세서도 통과된다. 호두는 통과되지 않으므로 사면 안된다. 호두 사이에 병충해가 끼어서 한국 농산물에 치명적 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포도 나무도 일자로 줄서 있다. 크지 않은 나무들이 횡열과 종열의 간격이 일정하게 맞춰서 나란히 서 있다. 버스가 빨리 지나가서 장면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 것이 아쉽지만 눈과 가슴에 가득 담아간다. 평소에 즐겨 먹던 건포도가 이것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정겹다. 값이 왜 그리 쌀까, 하던 의문도 이곳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여실히 증명되고 있는 순간이다. 끝없는 캘리포니아의 아몬드와 포도 농장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 캘리포니아 민둥산
캘리포니아는 산줄기에서 내려오면 평원이고, 평원에는 나무가 없다. 산에만 나무가 있다. 메마른 대평원이다. 10월부터 4월초까지 우기다. 그때 외에는 비가 한방울도 안온다. 장마가 없다. 물이 부족하다. 우리가 그랜드 캐년까지 가는 동안도 이런 사막을 지나서 진종일 버스만 타고 간다. 가도, 가도 산이 보이지도 않지만, 어쩌다 산 비슷한 둔덕이 보일 때도 모두 민둥산이다. 풀한포기 솟구치지 않는다. 뉴질랜드 남섬에서 본 구릉 같다. 자연 기후가 만든 이색 작품이다.
* 미국 캘리포니아 산정 주택
산 위에 집이 보인다. 어떻게 살까 싶은데 그래도 저 집이 고급 주택으로 상당히 비싸단다. 전망를 중요시 여기기 때문이다. 모든 것 갖추고 산다. 전기, 교통 문제 등 하나도 불편 없이 산다. 제일 먼저 설치하는 것이 전기, 가스, 수도다. 이런 지대의 산에는 나무도 있고 아름답다. 캘리포니아 평원에서는 보기 드문 정경이다.
* 캘리포니아 농장지대
농장주가 되려면 면허증이 10개 필요하다. 농대 졸업증, 헬리콥터, 트랙터 운전증, 등 상당이 어럽다. 프러즈노 농대에서 농장주가 많이 탄생한다. 후계자가 없어 문제다. 후손은 농사를 안 지으려 한다. 쌀을 비행기로 심는다. 한국 쌀은 단립종인데 여기 쌀은 중단립종으로 맛이 좋다. 한국 면적 크기의 농장에 쌀을 심는다. 미국인 주식은 아니다. 한국과 일본을 겨냥하여 수출용이다. 미국은 땅이 워낙 커서 농산물을 외국에 사라고 강요한다. 아리조나 사막지대는 한국 넓이만한데, 콩이 잘 되는데, 안 심는다. 캘리포니아에서만도 수확양이 넘치기 때문이다. 감자, 고구마도 대량 생산한다. 물고기, 모래, 자갈 등도 대량 생산한다. 공업도 발전하여 캘리포니아주는 잘 사는 곳이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독립하면 전 세계 5번째 안에 들어갈 정도의 부자주가 될 것이다.
땅 아래와 따 위 주인이 다르다. 땅 아래에서는 석유를 캐내고, 땅 위에서는 농사를 짓는다. 밭에 석유 캐는 기계 펌프가 있다. 앞으로는 석유자원에서 태양열자원으로 바뀔 것이다. 후손을 위해서 석유를 보존한다. 앞으로는 나는 자동차도 나올 것이다. 한국의 핸드폰은 유명하다. 일본보다 우위다. 어떤 제품을 2년 쓰면 한국의 엘지, 삼성 핸드폰을 준다고 선전하다.
한국인 유학생 중 30%만 돌아가고, 70%는 이곳에서 정착한다. 기러기 아빠는 잘못된 것으로, 정말 그렇게 해선 안된다고, 교포 가이드는 목청을 높인다. 너무 일찍 유학 오면 자아상실로 '나는 한국인인가? 미국인인가? '착각하게 된다. 일찍 유학 오려면 가족 전체가 와야 한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고 때 오면 한국어 잃어버리지 않는다. 요즈음은 환율 상승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많다. 이민 방법은 투자이민이 쉬워졌다. 소액투자도 가능하다. 영주권 딴다. 간호사 직업처럼 20년 직장 보장된 것도 있다.
간호사가 많이 필요한 이유는 3억 중 30%가 은퇴자다. 1억 정도의 사람들이 병원에 많이 가므로 그렇다. 간호사 500만 명이 당장 필요하다. 간호사 자격증 소유자는 금방 영주권 받는다. 환자의 말을 의사에세 전달하기 어려워서 포기하고 돌아가는 간호사도 많다. 그래서 필리핀, 남미 쪽 간호사가 많이 종사한다. 1947년~1967년 탄생 베이비 부모 세대, 즉 그때 태어난 인구가 미국인의 30%로 현재 은퇴자들이다. 65세 전후로 은퇴한다. 캠핑카 타고 부부가 최소한 6개월~3년씩 캐나다, 알래스카까지 여행 다닌다. 미국은 16세부터 운전이 가능하다. 캘리포니아 농장 지대는 이렇게 드넓어서 지나가는 동안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으며 갔다.
* 미국 캘리포니아의 목장
구릉 같은 둔덕에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하도 넓어서 듬성듬성 보이는 소들의 모습이 고독해 보일 정도다. 내 조국의 우리에 갖혀 사는 소들이 생각나 가슴이 서늘하다. 풀을 먹는 모습도 평화롭고, 걸음도 평화롭다. 뉴질랜드에서 본 목장 풍경이다. 뉴질랜드와 다른 것은 이런 목장이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광활한 땅은 목장보다는 농장지대라는 것을 알게하는 대목이다.
*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의 풍력계
차츰 농장지대를 벗어나 사막으로 접어든다. 사막의 초입, 산 위 바람이 많은 지역에 풍력계가 참으로 많이 줄 서 있다. 사막의 바람을 잡아 전기를 생산하는 눈부신 장면이다. 이곳 풍력계는 모두 개인 소유로 전기를 만들어 팔고 있다. 바람이 지나는 구릉지대에는 이런 풍력계가 간간이 보인다. 모하비 사막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 미서부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
사막의 종류는 7가지다. 강수량이 100mm 미만이다. 이곳은 낮은 사막지대로 1000mm 강수량이다. 씨에라 네바다 사막은 눈덮인 사막이다. 미국 본토 중 가장 높은 고지의 사막이어서 그렇다. 휘트니 산맥은 4418m로 만년설이 쌓여있다. 지금 지나는 모하비 사막은, 사막의 맨 밑자락 부분이다. 그런데 그랜드캐년 숙소는 2300m고지에 있다. 굉장히 건조한 곳이다. 코피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뛰지말란다. 넘어지면 지혈이 불가한 지역이란다.
모하비 사막의 건조한 땅에 자작한 나무들이 많다. 저 넓은 사막에 월남전 후 비행기를 50년 이상 모아 두었다. 비가 안와서 부식이 방지 되는 곳이어서다. 우주선도 이곳에 낙하한다. 죽음의 계곡은 이 사막에서 데스벨리로 지정되는데 섭씨 69.7도까지의 고온이다. 여름에는 보통 섭씨 45도~55도로 동물도 사망한다. 장엄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모하비 사막이 전개되고 있다.
* 모하비 사막의 여호수아 나무
모하비 사막의 어느 마디에 우뚝 솟은 나무가 있다. 모든 풀이 낮은 키인데 유난히 솟구쳐 오른 나무가 있다. 손가락 모양으로 가지를 펼치고 있다. 키가 큰 선인장 같기도 한데, 그것은 여호수아 나무다. 본명이 죠슈아 트리로 예수가 지팡이를 짚은 모습이어서 그렇게 이름 지어졌다. 해발 1000m에서만 사는 나무다. 1년에 2mm씩 성장한다. 저렇게 작아 보여도 어마어마한 나이의 나무다.
녹색 작은 풀들은 풀같지만 사실은 풀이 아니다. 그릿우드 트리다. 덤블링 트리라는 나무는 뿌리없이 구르다가 물 있는 곳에서 산다. 그러다가 건조시에는 다시 뿌리를 잘라 다른 곳으로 데굴데굴 굴러 다니다가 물기 있는 곳에서 산다. 독방울 뱀은 굴을 파고 살고 있다가 밤에만 나온다. 모하비 사막은 모래만 있지 않고 계속 달려도 식물이 살고 있다. 독특한 사막이다.
* 모하비 사막의 교통
모하비 사막은 한반도만한 크기다. 1930년대부터 고속도로가 건설되었다. 거미줄처럼 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고속도로변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다.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교통사고 방지용이다. 고속도로 굴로 동물들이 양편을 오가도록 한다. 코요테는 굴로 다니지 않아서 다리를 설치해 주었다. 동물보호 협회에서 철조망을 설치한 것이다.
고속도로 중앙은 비워 두었다. 아우토반 개념이다. 1차선 증축용이다. 도로 우측에도 1차선은 비워 두었다. 2차선인데 앞으로 5차선까지 확장 가능하다. 미래 100년을 내다보고 건설한 것이다. 고속도로 번호는 동서롤 10번, 남북으로 15번, 100번을 넘지 않는다. 그것은 종단 혹은 횡단의 의미다. 시내 쪽 메인 도로는 100번을 넘는다. 1마일은 1.6Km다. 5마일이면 1.6*5=8Km다. 활주로 역할도 하는 도로다. 참으로 눈부신 고속도로다. 광활한 사막 가운데로 난 고속도로는 끝없이 이어진다.
* 모하비 사막의 주유소
휴식을 의해 잠시 들른 곳이다. 긴긴 사막을 달리다가 건물을 만나니 참으로 반갑다. 오토바이족도 있다. 사막을 횡단하며 즐기는 사람들이다. 주유소의 외형이 아름다워 사막의 꽃처럼 보인다.
미국의 의료보험은 어린이, 노인, 장애자, 하류 계급은 잘 되어 있는데 그 나머지는 상당히 비싸다. 일반인이 병원에 가면 감기도 고액이다. 어떤 유학생이 사막을 달리는 기차의 칸수를 세다가, 세다가 너무도 길어 열받아 핏줄이 터졌는데 병원에 가서 모두 검사하느라고 천만원이 들었단다. 주사 한대에 200~300달러다. 그러나 위금 환자는 보호자 시인 없어도 수술해준다. 아이를 차안에 혼자 두면 주위 사람이 신고하고, 경찰이 와서 창을 깨고 꺼낸다. 철저히 약자를 보호한다.
미국은 절대로 자식을 안 때린다. 부모가 때리면 상담하거나 신고하라고 , 학교에서 교육시킨다. 잘못이 있을 때 한번은 봐준다. 두번째는 재범으로 간주하여 엄벌이다. 아이를 때리면 각방을 쓰게 하고, 그 다음은 경찰이 와서 수갑을 채워간다. 아이는 그냥 바라본다.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그래서 아이들이 잘못되는 경우도 있다. 자기 멋대로 놀고, 공부안 한다. 초등생부터 화장을 시작한다. 한국인 부모가 자식교육을 위해서 때렸다해도 여기는 미국이라고 말이 안 통한다. 그래서 한국공항에 가서 자식을 실컷 패주기도 하는데 그때도 자식이 경찰을 부르면 경찰이 와서 아버지가 때렸다고 신고 하냐고 또 때려서 그후 부터는 한국 가자고 하면 아이들이 벌벌 떤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의 유학은 신중히 해야된다는 교훈이다. 이국의 싱그러운 햇살과 모하비 사막의 주유소 풍경을 담고 또 우리는 사막을 달린다.
* 광활한 모하비 사막
눈이 마비 될 것 같은 사막이다. 진종일 보아온 사막, 아! 지구상에 이런 땅이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캘리포니아주, 아리조나주, 네바다주에 걸친 모하비(Mojav 모자브)의 뜻은 '어미니 품처럼 포근한'이란 뜻이다. 모하비 사막은 정말 어머니 품자락처럼 광활하다. 가도가도 끝없는 사막이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철도, 긴 열차, 아득한 고속도로, 잊지 못할 영토다. 한자락 잘라다가 내 조국 동편에 붙였으면, 그러면 큰 농장이 될텐데......서러운 부러움의 연속이다.
미국은 이 사막 아래 석유를 캐지 않고 보존하고 있다니 그것도 놀라운 일이다. 중동에서 헐값으로 사다 쓰면서 자손을 위해 50여년 분의 자원을 그대로 묻어 두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의 서규가 고갈될 때 비싼 값으로 팔려고 그런다니 미국은 미국이다. 지치도록 달린 땅에서 미국을 본다. 우리는 지금 캘리코 은광촌으로 가고 있다. 미국 개척정신을 보는 곳이다. 그곳은 서부영화를 많이 촬영하는 곳이다. 우리가 명화로 보았던 서부 액션영화도 이 모하비 사막에서 촬영되었다니 큰 감격이다.
산맥 위의 도로로 달린다. 멀리 빙산이 보인다. '죽음의 계곡'이란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바다 아래 80m에 고인 물을 먹고 붙인 이름이다. 이 길을 통해 금, 은을 캐러 왔다. 1900년부터 은값이 떨어져서 떠났다. 드넓은 사막에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많다.
* 미서부 캘리포니아 모하비사막의 캘리코 은광촌
진종일 달려와서 만난 곳이다. 멀리 신기루 호수가 보인다. 실제는 사막인데 태양반사로 호수같은 착시다. 산위에는 'CALICO'(캘리코)라는 문구가, 입구에 들어설 때는 그 옛날 사용하던 은광촌의 용구들이 반긴다. 한때는 은생산으로 부촌이었는데 지금은 한갖 영화촬영지 혹은 외인의 관람지로 변한 것이다. 캘리코 은광촌은 1891년에 탄생하여 1907년 사망했다고 역사에 메모되어 있다. 산쪽으로 오르며 그날의 역사를 재현해 놓은 현장을 둘러 보았다. 낭만이 흐르는 마을이다. 그날의 카페, 식당, 마차,알파파건초더미, 숙소 등이 정겹다. 캘리코 여자들이 입던 치마는 주름이 많다. 그것은 산이 치마주름처럼 형성되어서다. 그때의 사람 모양속에 들어가 그날의 사람이 되어보고, 마차도 타보고, 잠시나마 뜨거운 미서부 향수에 젖는다.
*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사막의 철로와 화물열차
캘리코 은광촌이 있는 바스토우 지역은 교통의 요충지다. 버스, 기차, 등 모든 차들이 지나는 곳이다. 사막에 깔아놓은 긴 철로도 장엄하고, 끝없이 긴 화물열차가 달려가는 장엄한 모습이 눈부시다. 사막은 습도가 낮아서 이로운 점도 있다.다. 은퇴자들이 이 지역에서 사는 이유도 습도가 낮아서다. 아리조나 지역에도 모여 산다. 몸이 쑤시지 않아서다. 앞으로는 30%의 그 은퇴자들이 사막의 건조한 지역을 개발시킬 것이다. 담배불만 대면 화재가 나는 곳이다. 화재원인 1위가 담배다. 여기서 2시간 가면 라스베가스다. 이런 사막지대에다가 세계적인 도박도시를 건설했다. 갈수록, 볼수록 신기한 사막지역이다.
* 캘리포니아주 바스토우 시즐러 특식
은광촌에서 내려와 사막에 건설된 소박한 도시, 바스토우에서 중식을 했다. 시즐러 특식이다. 스테이크 시즐러는 쇠고기 안심요리로 아주 맛이 있었다. 식당 주변은 큰 키의 야자수가 이국적 향수를 자아낸다. 깨끗하게 가꾸어 놓은 정원과 마을이 아름답다.
* 미국 모하비 사막의 긴 기차
어쩌면 저리도 길까.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칸수가 지나간다. 사막에 놓여진 철로도 눈부신데, 긴 기차의 칸수를 헤아리는 일은 더욱 눈부시다. 대충 세어보니 80량 정도다. 하도 길어서 이곳 기차는 '마일 트레인'이라 부른다. 1마일은 1.6Km다. 어떤 유학생이 저 기차의 칸수를 세다, 세다 열받아서 쓰러졌다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뱀처럼 사막을 달리는 장엄한 기차를 보며 우리는 지금 킹맨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막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사막의 휴게소
아득한 사막에 휴게소가 목숨처럼 세워져 있다. 살아서 휴식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이토록 소중할까. 사막은 높은 산처럼 서 있기도 하고, 낮은 지대에 풀포기가 구르며 도란거리기도 한다. 햇볕은 뜨거워서 사막을 증명하고 있다. 모하비 사막 지하에는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 미래를 위해 보존한다. 풍력계 기술은 독일 것이다.
멕시코 불법 체류자들이 많다. 어느 봉제 공장에 다량으로 들어와서 잡아다가 멕시코로 보냈는데, 그 다음날 그들이 모두 츨근했단다. 그 만큼 쉽게 불법 입국이 가능하다. 전염병 같은 질병과 세금 탈루 등으로 멕시코 국경에 쇠봉의 담벽을 촘촘히 쳐놓았다. 아이를 낳으면 아이는 시민권자가 되고, 부모는 불법체류자가 된다. 그러다가 아이가 크면 부모를 초청 형식으로 시민권을 획득하게 해준다. 이런 것들이 문제다. 절대로 그들은 낙태를 하지 않는다. LA 389만명 중 앞으로 50년 후면 LA인구의 50%가 이런 사람들로 채워질거란다. 그때 시장 선거시 몰표로 남미 사람이 정치자가 당선된다고 가정하면 미국으로서는 두려운 일이란다. 내 조국에서는 볼 수 없는 사막의 휴개소에서 여러가지 정경을 소중히 담았다.
* 로키산맥의 빙하수 콜로라도 강
콜로라도 강은 로키산맥에서 발원한 눈녹은 물이다. 1600마일, 2300Km의 길이에 80m의 폭으로 장엄한 강이다. 7개 주를 지나서 댐 17개를 거쳐서 흐른다. '콜로라도'는 원래 스페인어로 '붉은 색'이란 뜻이다. 대단히 푸르고 아름다운 강이다. 음악 시간에 배웠던 콜로라도 강에 대한 노래가 떠올라 환희다. 그 환상의, 동경의 강을 지금 눈앞에서 바라본다.
* 미국 모하비 사막 고속도로의 화물차
화물차는 운송비가 싼데 언제 갈지 모른다. LA에서 뉴욕까지 이동 화물 트럭은 15시간 걸린다. 비행기 이동은 비용은 비싸지만 빨리 간다. 트레일러는 한달에 1번 밖에 짐을 못 실어 나른다. LA에서 뉴욕까지 왕복 30 일 소요되기 때문이다. 비싼 물건을 싣고 가므로, 뒤의 침대칸에서 자는데 강도를 만날까봐 총을 소지한다. 여자 운전자도 있다. 밤에는 쉬는 곳에서 함께 모여서 잔다. 부부가 운전 면허증을 따서 번갈아 운행하기도 한다. 아주 커다란 대형 화물차가 지금 내가 탄 버스의 바로 곁에서 달리고 있다.
* 그랜드 캐년 가는 길
그랜드 캐년은 아리조나주에 있다. 우리는 지금 캘리포니아의 광활한 모하비 사막을 달려 그곳으로 가고 있다. 아리조나는 전체의 땅이 저 사막이다. 동이 많이 나서 '동의 주', '구리의 주'라고 부른다. 그랜드 캐년이 있어 '그랜드 캐년 스테잍'이라고도 부른다. 아리조나주는 '그랜드 캐년의 주'고, 네바다주는 '실버 스테잍' 이다. 도박을 합법화 한 곳은 네바다주다. 라스베가스는 '푸른 초원'이란 뜻이다. 영어가 아니고 원주민 말이다. 캘리포니아주는 '골드 스테잍'이다.
미국과 멕시코의 전쟁으로 스페인어가 많다. 라스베가스도 그런 지명이다. 1850년대까지는 그렇고 그후로 영어지명이 나왔다. 킹맨, 바스토우는 철도회사 사장이름이다. 지명에 인명이 많다. '산타~'하면 여성 이름이다. 인디언들은 보호구역에서만 산다. 380개 도박장을 하락했다. 정치만 못하고 그 구역 안에서는 활동이 가능하다. 궁핍하게 산다. 연금도 소액이다. 인디언의 설움이다. 주인이면서도 주인행세를 못하고 산다. 미국이 그렇게 만들었다. '아메리칸 인디언'은 세계로 전파되어 후일에는 인디언에게 어느 정도 땅을 주어야 할 것이란다. 인디언은 한국인과 비슷하여 친근감이 든다고 한다.
우리는 그랜드 캐년 사우스림으로 간다. 킹맨에 들러 휴게소에서 우리 부부는 기념 모자를 두개 샀다. 사막 가운데 들어 앉은 아리조나주의 킹맨 도시는 큰 산 아래 1층 주택만 가득하다. 아리조나 카우보이 노래를 다시 사막을 달리고 또 달린다. 이곳, 현장에서 들으니 벅찬 감동이다. 아리조나 카우보이는 텍사스 군인이 말을 타고 물건을 실어다 주는 모습이란다.
혼다 결의안이 통과 될 예정인데, 그것을은 일본인 3세 이름을 따서 지은 위안부 결의안이란다. 하원 100명, 상원 100면을 거쳐서 대통령 시인으로 결의안 통과될 예정이란다. 한국인 위안부 보상하라고 요구하는 운동이라니 이국에서 듣는 좋은 소식이다. 사막은 이제 끝나가고 나무가 차츰 커지는 지역으로 접어든다. 그랜드 캐년에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그랜드 캐년 가는 길은 그렇게 멀었고, 사막 끝에서 만날 예정이다. 윌리엄스에서 뷔페석식을 하고 어둠속에서 그랜드 캐년의 호텔로 갔다. 우리 부부의 룸은 126호다. 아늑한 방에서 내일 새벽에 갈 그랜드 캐년을 그려보며 참으로 설레이는 밤이다.
2009년 4월 19일 일요일 그랜드 캐년
* 미국 아리조나주 그랜드 캐년 일출
새벽 4시 45분 모닝콜, 5시 20분 호텔 출발하여 간다. 그랜드 캐년의 일출을 보기 위해서 나섰다. 추워서 가장 따뜻한 옷으로 입었다. 일출 시간은 5시 50분이다. 산정 일출 전망대에 가서 일출을 맞이 했다. 칼로 자른듯 수평의 그랜드 캐년 정상, V자형 골 사이로 둥근 해가 뜬다. 장관이다. 어둠을 삼키고 그랜드 캐년의 계곡을 밝힌다.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촬영하느라 분주하다. 나도 명화로 뜨는 그랜드 캐년의 일출을 잡기 위해 카메리를 든 손과 눈이 분주하다. 천지개벽하듯 참으로 장엄하다.
* 그랜드 캐년 비경
그랜드 캐년은 한반도 길이의 446Km로 광활한 면적이다. 폭은 최장 36Km, 평균 16Km다. 깊이는 1.6Km, 거대한 신의 손길로 빚은 작품이다. 미국 아리조나주에 위치하여 아리조나주의 상징물이다. 버스가 지나는 곳도 해발 2300m, 대단히 높은 고지다. 뛰다가 넘어지면 코피가 날 수도 있고, 그 코피는 멈추지 않는다고 가이드는 절대로 뚜지 말란다. 4월 19일인데 이곳 온도는 0도, 아주 싸늘하다. 일출을 본 후에 자리를 옮겨 다니며 그랜드 캐년의 비경을 눈과 가슴에 꼬옥꼭 담았다. 뚝 끊어진 절벽이 두렵기도 하지만 밭자락 같은 땅줄기가 보일 때는 정겨웠다. 내 생애 이런 비경을 언제 또 볼까. 돌아가면 또다른 나라를 찾아 다니겠지, 다시 여기에 오겠는가. 찬란한, 그러나 고독하여서 애련한 그랜드 캐년의 비경을 두고 돌아서지 못하여서 나는 한참을 그곳에 머물렀다.
* 그랜드 캐년에서 만난 야생 엘크사슴
그랜드 캐년을 떠날 때쯤, 안내소 건물 곁에서 애생 엘크 사슴을 만났다. 그랜드 캐년 일출과 비경을 다 보고 주차장으로 분주히 내려오는데 사람이 다니는 길목에서 사슴은 서성이며 기쁜 만남을 이룬다. 때로는 사람에게 달려들어 가까이 가면 안된다고 가이드는 위험사인을 주었지만, 우리 부부는 사람과 함께 사진 속에까지 그를 담아 왔으니 얼마나 큰 행운인가. 오늘 아침 그랜드 캐년의 비경에 더하여, 참으로 큰 행복을 덤으로 만난 것이다.
* 그랜드 캐년 호텔
홀리데이인 호텔이다. 그랜드 캐년의 울창한 숲사이에 있다. 인디언 마크도 있고, 곱게 아침이 열린다. 호텔 조식은 빵과 쥬스다. 자유롭게 식다에서 먹어도 되고, 룸에 가지고 가서 먹어도 된다. 1회용 점시라서 어느 곳에서 먹어도 갖다 주어야 하는 부담이 없다. 그랜드 캐년의 일출을 보고 온 손님들에게 불편이 없도록 편의를 제공하는 호텔의 배려다. 우리 부부는 식당에서 맛있게 먹고 밖으로 나가 호텔 주변 풍경르 둘러보았다. 산정인데도 도로가 잘 건설되어 있고 세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서 숙소도 곳곳에 잘 가꾸어 놓았다. 침엽수림이 하늘 높이 솟구치며 이국의 향수를 자아낸다.
* 그랜드 캐년 아이맥스 영화 관람
인디언들의 야생 생활 모습을 맨 처음 나온다. 미국인들의 계곡 탐험, 래프팅, 호랑이와의 결투, 뱀 종류, 독수리들 등등 그랜드 캐년의 구석구석을 보여준다. 뚝 끊어진 절벽 아래 물이 강처럼 흐른다. 아이맥스 영화라서 그 협곡으로 우리가 빨려 들어가는 상영이다. 날아서 들어가는 느낌의 환희, 그랜드 캐년의 정상과 장엄한 계곡과 바위림, 계곡물 사이를 40분간 돌아보고 나온 걸작 시네마다.
* 그랜드 캐년 출발
아쉬운 작별을 하고 그랜드 캐년을 떠난다. 그랜드 캐년을 관람하는 경비행기 공항도 둘러보고 서서히 버스는 낮은 지역으로 내려간다. 어리조나주에서 네바다주로 가는 것이다. 미국은 4개로 시간이 나뉘어져 있다. 캘리포나아가 오전10시일 때, 네바다는 11시, 오레건은 12시, 와싱턴은 오후 1시다. 썸머타임으로 3월 둘째주 일요일에서 11월 첫째주 일요일까지다. 그러나 아리조나주에는 보수층이 많아서 썸머타임을 적용하지 않는다.
그랜드 캐년과 유타주에 있는 브라이언 캐년, 자이언스 캐년을 합하여 3대 캐년이라고 한다. 토질은 20~25억년 된 것이다. 그랜드 캐년에는 하바스파이 부족 등, 4개 부족이 산다. 그랜드 캐년의 이름에 대한 유래가 참 재미있다. 스페인 장군이 발견했는데 인디언의 안내를 받고 바라보며 '그란데'라고 외쳤단다. 그 뜻은 '크다'인데 그것이 '그랜드'가 된 것이다. 스페인과 멕시코에 얽힌 전설같은 이야기를 미곳 미국에서 많이 듣는다. 이제 울창한 숲의 그랜드 캐년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 미국 윌리엄스 뷔페 식당
올 때도 들려서 석식을 했던 식당이다. 이 근처에서는 제일 맛있는 음식이 많은 훌륭한 식당이다. 다시 또 윌리엄스 그 식당으로 중식을 하기 위해간다니 기쁘다. 또한 그곳 기념품 가게에는 좋은 기념상품도 많아서 어제 저녁에는 늦어서 사지 못했던 기념품을 사고 싶다. 고기, 야채, 미역국, 옥수수, 오렌지 등 아주 맛있는 음식이 풍성하다. 식당 곁에 있는 가게에서 그랜드 캐년 마크의 모자를 두개 샀다. 윌리엄즈 마을은 조용하다. 식당 건물은 예술의 향기로 지어 아름답다.
* 아리조나주 킹맨에서 네바다주 라플린 가는 길
올 때 보았던 모하비 사막이 또 이어진다. 여기는 아리조나주 사막이다. 오늘은 아리조나주에서 네바다주로 가는 것이고 종착지는 라스베가스다. 이곳 윌리엄즈에서 라스베가스까지는 4시간 소요되고 가는 도중 된다. 영화 '점퍼'를 보며, 자며, 풍경을 보며 끝없이 간다. 킹맨 도시를 지난다. 도시래야 벌판에 저층집 군락이 전부다. 이곳은 사막지대라서 나무도 물을 주어 기르므로 집 주변에만 조금 있다. 미국 성조기가 펄럭이며 광활한 대륙이 전시되고 있다. 산도 민둥산이다.
킹맨을 지나 라플린으로 간다. 온통 들녘이 꽃으로 가득하다. 선인장도 있고 한국에서는 정원 화초로 기를 야생 꽃들이 참 곱게 피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원래는 후버댐 부근인데 후버댐 공사 관계로 라플린으로 돌아서 간다. 30분이 더 소요된다. 후버댐에서는 전기를 생산한다. 분명한 건 아리조나주에서 네바다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래도 끊질기게 모하비 사막은 이어진다.
* 사막의 콜로라도 강
그랜드 캐년으로 갈 때 만났던 콜로라도 강을 사막에서 또 만났다. 사막을 가로질러 흐르는 물결이 신비롭다. 주위엔 온통 건조한 기운이 감도는 어찌 저 물은 저리도 푸르를까. '콜로라도'는 미국어인데 물이 푸르러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물빛이 청남빛으로 장관이다. 야자수가 강변에 줄서 있어 더욱 청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2300Km 로키산맥의 빙하수가 녹아 내려온 강이다. 저 물이 하루에 400만톤의 모래를 쓸고 간단다. 1억만 톤의 모래를 쓸고 갔단다. 그 주변에는 주택을 짓고 산다. 교과서에서 배운 노래의 강을 뜻깊은 감회로 건너서 라스베가를 향해 달린다. 아리조나주 네바다 사막은 연이어 물결친다.
* 사막의 도시 라스베가스
라스베가스는 분지 도시다. 위에서 보면 사막의 푸른 도시다. 1950년 마피아 부두목이 거주하여 호텔과 카지노를 지은 것을 시작으로 발전된 도시다. 지금은 부두목 픽스는 망하고 죽었지만 초호화 도박장으로 발달된 도시다. 1일 숙박료가 1만 달러 한화로 1300만원이다. 현재는 철도가 건설되고 영화산업, 플라멩고(홍학) 도박장 등으로 화려한 도시다. LA에서 라스베가스까지는 4시간 30분 걸리는데 LA 사람들은 멀아서 안 온다. 라스베가스에는 중국 TV 채널만 세개다. 한국, 일본 채널은 없다. 중국 관광객을 끌어 들이기 위해서다. 얼마전 93번도로에서 중국인을 태운 관광버스가 큰 사로를 당하기도 했다.
사막을 달리다가 라스베가스에 들어오자 주택이 많이 보인다. 멀리는 사막인데 주택군락은 푸른 물결이다. 광활한 주택단지다. 물로 키운 나무들이 울창하다. 도로도 잘 발달되어 있다. 불과 5년 동안 일군 대도시는 사막의 푸른 꽃이다.
* 라스베가스 다운타운
그랜드 캐년을 신이 만든 가장 거대한 자연이라면, 라스베가스는 인간이 만든 가장 화려한 도박장이다. 라스베가스에서 지갑에 있는 돈은 내 돈이 아니다. 라스베가스는 그곳에 온 사람들의 1달러까지도 뺴앗으려 애쓴다. 가장 첫번째 바보는 호텔에서 잠만 자는 자, 두번째 바보는 밤새도록 도박하는 자, 세번째 바보는 밤새도록 도박하여 다 잃고 나온는 자란다. 10달러만 가지고 도박해 보란다. 다 잃고 나오란다. 딸 확율은 0.000000....1%란다. 탤런트 손지창 어머니가 얼마 전 이곳에서 97억원을 땄는데 그럴 확율은 마른 하늘에 번개 치는 것을 내가 맞고 살아날 확율이란다. 그 만큼 여기서 돈을 딴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라스베가스가 발전 한 것은 도박자들이 잃고 간 그 돈으로 인해서라 하니 라스베가스 다운티운의 저 높은 호텔도, 저 화려한 상업 빌딩들도 돈이 애절히도 붙어 푸르게 빛난다. 라스베가스가 요즈음은 도박뿐만 아니라 관광 등 다른 목적으로 사람을 끌어 들인다고 한다. 지나는 곳마다 높고 긴 건물들이 연이어 있다. 눈부신 도시다.
* 라스베가스 컨벤션 센터
호텔 속의 호텔이다. 베네시안 호텔의 구름이 인공인데 진짜 하늘처럼 느껴진다. 위는 지붕으로 사실은 천정인데 하늘과 구름이 장관이다. 저 하늘의 구름이 보기에는 석양의 하늘 같지만 믿기지 않는 사실, 그것은 바로 저 하늘이 인공으로 만든 작품이란 사실이다. 시저 팔레스 호텔에서 시초로 하여 세워진 독특한 건축물이다. 사방에는 아름다운 건물로 둘러싸여 있고 문화공연으로 몰려든 인파가 대단하다. 자칫하면 일행을 잃는 곳이다. 출입하는 긴 복도의 통로도 아득하다. 장사를 하는 사람도 있고 구경하는 사람도 있고, 여기서는 그 누구도 아름답다. 라스베가스의 아름다운 속살을 보는 황홀한 순간이다.
* 라스베가스의 호텔들
라스베가스 호텔 총 객실은 14만개다. 호텔을 참 잘 지어 놓았다. 호텔 하나 하나가 모두 거대한 예술 작품이다. 하루에 30만~40만명이 들어와도 수용하는 도시다. 호텔이 너무 커서 공중에 모노레일로 차량이 운행하여 사람을 이동시킨다. 다운타운 곳곳에는 호텔을 선전하는 젊은이들이 홍보물을 들고 서 있기도 한다. 1년에 호텔 1개씩 오래된 것부터 무너뜨리고 새로 짓는다. 그 이유는 상하수도 시설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식물에게 물을 주는 것도 대낮에 주려면 티켓을 끊어야 된다. 밤에만 주어야 한다. 기라성 같은 호텔 사이로 버스가 흐른다. 저 웅장한 호텔을 일부러 1년에 하나씩 허문다는 말에 눈과 귀가 시려서 자꾸 시선이 그곳으로 고인다. 우리는 오늘 오후 5시에 호텔에 도착했다. 우리 부부의 룸은 747호실이다. 우리가 머무는 호텔도 대단한 규모다. 로비가 완전히 게임장이다. 지금은 갬블린(도박)이란 단어를 지우고 게임이란 단어를 많이 쓴다.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화려함의 극치다.
* 사막 도시 라스베가스의 일몰
호텔에 여장을 풀고 한국인 교민이 운영하는 '사하라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타워가 보이고, 다운타운이 보이고 은은한 사막의 향수가 고이는 식당에서 불고기와 미역국, 김치, 꽁치 등 모두 맛있는 음식으로 아름다운 만찬이다. 그런데 식당에 들어갈 때 석양이 물들어 어, 아쉬움에 한동안 바라보았는데 식사를 마친 후에 나왔을 때도 그대로 석양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다. 석양이 오래 머무는 하늘이다. 라스베가스는 사막지대라서 태양은 그렇게 오래도록 땅을 떠나지 않고 있다. 끝없는 사막이니 산이 있는가. 바다가 있는가. 그저 허허로운 모래 벌판을 뜨거운 연민으로 보듬고 있다. 일몰의 서정은 라스베가스의 또 하나 독특한 향기다.
* 라스베가스 야경
불야성 도시다. 카지노를 비롯한 오즈의 마법사 호텔, 맨하탄 호텔, 자유의 여신상, 베네치아 호텔의 분수 쇼 등 라스베가스의 야경은 그야말로 말로 필설하기 어려운 장관이다. 어떤 이는 '소돔과 고모라' 처럼 될거라고 말하기도 한단다. 네바다주 라스베가스 다운타운의 높은 빌딩들이 모두 형형색색의 꽃불로 뜬다. 라스베가스의 1일 전기량이 4천명 인구가 1년 쓰는 전기량이다. 외곽의 화력 발전소에서 공급한다. 화려한 카지노를 찾아오는 오는 사람들이 1인당 평균 230불을 잃고 가는 셈인데 그것이 또한 이 도시를 발전 시키고 있다.
라스베가스의 쥬빌리쇼를 저녁 7시 30분부터 관람했다. 오랜 전통으로 보존하기 위해 철저하게 사진촬영 금지다. 대부분이 남녀간의 아름다운 사랑인 주제로 공연은 아주 장엄했다. 공연 관람 후 본격적으로 라스베가스의 야경을 버스로, 또는 걸으며 보았다. 가장 찬란한 야경은 프레몬트 거리의 전구쇼였다. 42인치 TV를, 1만대의 불빛으로 전광판을 야경이 흐르며 장식한다. 주제는 그때마다 다른데 피아노 선율도 흐르고, 노래도 흐르고, 음악과 장면들이 섬광처럼 지나가며 황홀하다. 더 큰 감격은 저것이 한국의 LG에서 설치한 작품이란다. 세계에서 모여든 수많은 인파가 모여 함께 걸작 야경 앞에서 열광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나의 남동생이 LG 상무로 재직중이어서 더욱 자부심을 느꼈다. 그외 호텔로 돌아오며 본 라스베가스의 여러가지 야경은 눈부신 비경이었다. 얼마나 이곳 시민들이 노력하여 일군 도시인지, 왜 라스베가스에 가보라 하는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내일은 모닝콜이 4시 30분, 5시 20분 출발이다. 이제 LA로 가기 위해서다.
2009년 4월 20일 월요일 라스베가스 출발, 로스엔젤레스로 이동
* 라스베가스 출발
라스베가스는 사막이 도시로 발전한 곳이다. 이곳은 다른 룰이 적용되는 도시다. 그래서일까. 이곳은 신기한 것들이 참 많다. 결혼이 즉시 가능하고, 이혼이 즉시 가능한 곳이다. 신랑, 신부, 증인 2명. 목사만 있으면 결혼할 수 있다. 7을 좋아하는 미국이라서 2007년 7월 7일 7시 7분에 6500명이 결혼했다. 1일 최다 결혼 기록이란다. 또한 이곳은 은퇴 후 들어와 연금으로 사는 도시다. 자기들끼리 모여 운동, 골프 등으로 즐기며 산다. 아리조나주 실버타운을 조성했다. 젊은이는 일거리가 없어서 못 사는 도시다. 도박과 은퇴자의 도시라는 말에 좀 의아했지만 사막은 건조하여서 몸이 쑤시지 않아 노인이 살기 좋은 곳이어서 그러하리라 해석했다. 오늘은 LA로 간다. 4시간 30분 소요다. 새벽을 열고 어둠을 사르는 사막의 태양이 솟구친다. 어제 갔던 사라하 식당에서 해장국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지난밤 광란의 불빛으로 유혹하던 도심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햇살 조명에는 요조숙녀로 앉은 라스베가스를 떠났다. 애련하기도 하고, 두고 가는 사랑 같기도 하고 참 아쉬운 작별이다.
* 미국 모하비 사막의 산
라스베가스 도심을 벗어나자 또 다시 이어지는 사막길이다. 네바다주 라스베가스에서 캘리포나아주 LA로 가는 길인데 어제에 이어 계속 모하비 사막을 달린다. 광활한 사막의 벌판은 시리도록 눈과 가슴에 파고든다. 다른 그 어느 것 하나도 허락하지 않는 도도한 사막이다. 끈질긴 자존으로 사막은 도도하게 미국의 한 영토를 붙들고 있다. 산조차도 민둥산, 사막의 주름덩이다. 생명이라고는 고작 자잘한 나무뿐, 그들은 소중한 목숨이라고 외치며 사막의 구간마다 다른 수종을 전시한다. 가끔은 커다란 죠수아 나무가 여호수아의 지팡이로 신처럼 서서 사막을 지키곤 한다. 끝나지 않는 사막은 온몸을 저리게 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렇게 힘든 여정인줄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 역시, 버스나 기차로 여행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 사람인데 모하비 사막은 대장정의 여정이어서 온몸이 저려온다. 그래도 바깥 모하비 사막의 고독한 풍경은 서럽도록 눈에 담겨서, 저 고혹의 땅을 어찌 잊을까 자꾸 보고 또 본다.
* 미국 모하비 사막 휴게소
밝은 햇살과 만난 사막이 절창이다. 사막 위 솟은 모래 민둥산과 풀더미 같은 나무들이 눈부신 장관이다. 오아시스로 선 휴게소 건물만이 사람의 영토다. 3일 동안 끝없이 달려온 사막, 눈이 마비 될 것 같은 연속 풍경이다. 오늘이면 저 끝모르고 달려들던, 그러나 찬란했던 모하비 사막과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아쉽다. 철조망 사이로 마른 살점을 지고 사는 사막과 뜨거운 상면으로 조우하고, 이제 널 언제 만나겠냐고 애달픈 목소리로 외쳐 보기도 하고, 강아지 한마리 살아진 목숨으로 걷는 모습에 잠시 생의 빛을 흡입하기도 하고, 사람이 놓은 긴 고속도로 앞에서 전혀 다른 문명의 길로 인도되기도 하고 그랬다. 만감이 교차하는 미국 모하비 사막의 휴게소다.
* 미국 시에라 네바다 산맥 설산풍경
얼마를 달렸을까. 아득한 사막길이 적막하여서, 그래도 지나고 나면 그리울 것 같아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멀리 설산이 보인다. 지금까지 보아온 풍경과는 전혀 다르다. 빅토빌 시티를 지나며 도시는 점점 넓어지고 사막의 기운이 가라앉으며 또 하나 진풍경이 뜨고 있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 설산이다. 로키산맥 줄기다. 캐나다에서 보았던 로키 설산이 지금 눈앞에서 그날의 회억을 적신다. 사막 끝에서 만난 우람한 산이다. 이제 서서히 사막을 벗어나 LA에 가까워지고 있다.
* LA 진입 카플레인 도로
이곳 도로 이용자는 한 차에 2명 이상이 탔을 때만 가능하다. 교통량이 많아서 그렇다. LA에는 1.3명당 차가 1대로 많다. 1925년에는 일본인을 못 들어오게 하려고 쿼터제를 만들었다. 길가에는 보호벽이 높게 설치 되어 있다. 고속도로에서 오토바이도 달린다. 도로변 푸른 풀에 물을 주고 있다. 나무도 물을 주어 기른 것들이다. 건조한 캘리포니아의 사막만을 보다가 나무를 보니 사람 사는 영토에 가까이 다가옴을 실감나게 느끼는 순간이다.
* 로스엔젤레스 시가지 풍경
로스엔젤레스에 드디어 들어왔다. 한인교포가 모여산다는 마을도 지나고 도심으로 접어드니 유럽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역사가 짧아서 모두 현대식 건물로 우리나라의 도심과 아주 흡사하다. 이곳은 미국 에서도 특히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그래서 애정이 많이 깃든다. 한인 중에는 미군과 결혼하여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잘 사는 교포도 있다. 1970년에 접어 들면서 본격적인 한인 이민이 이루어졌다. 1850년도에 유타의 탄광으로 이민하여 많이 사망했는데 묘지에 한국인으로 기재되어 있다.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이민이 처음이다.
1992년 4월 29일 흑인 대폭동이 일어났다. 백인이 흑인을 때리는 것을 시발점으로 일어난 흑인 대폭동이다. 흑인들은 피해의식이 많다. 한인도 동일한 공통분모로 산다. 지금은 많은 교류로 서로를 인정하며 산다. 흑인이 사우스센트럴 시티에서 베벌리스에 가려 했는데 한인타운을 건너며 한인 청년 한명을 총살했다. 그 재판이 1992년 4월 29일에 있었는데 얼떨결에 한인이 백인인줄 알고 착각으로 그랬다하여 정당방위로 무죄판결 받았다. 그후 대폭동이 거의 전쟁수준이다. 한인들의 아픈 추억이다. 그때 55명이 사망하고 2300명이 부상 당하고 3만여 명이 구속되었다. 이민도 서러운데 한인타운을 안 지켜준 뼈아픈 사건이다.
현재는 정치게에 들어가 한인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994년 1월 3일 6.3도의 LA지진으로 한인 100여명이 또 사망했다. 두번째 상처다. 부상자가 9천명, 장기 입원자가 3천명, 그런 참사로 다시 한국에 돌아간 사람도 많다. 또는 한국에서 사고 치고 LA로 도망오는 자도 더러 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로스엔젤레스 시가지를 둘러 보았다. 결코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도사기에 포근하기도 하고, 소슬하기도 하다. 한낮의 햇살이 감미롭게 평화를 선사한다.
* 로스엔젤레스 한인 상가
한인타운에는 한국어로 장식한 가게들이 많다. 내 조국 어느 한 골목에 들어선 듯하다. 최가네 식당에서 한식으로 중식을 하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대륙백화점, 수정미용실, 한국수퍼마켙, 병원, 찜질방, 노래방, 소주방, 현대택배 등 한국어로 화사하다. 이곳은 웨스턴 거리로 한인타운 번화가다. 여기는 연탄과 연탄집게 두가지만 빼고 한국의 물건이 다 있다. 이곳 한인 이민자들은 한국보다 훨씬 힘들게 산다. 가장 큰 고통은 언어의 벽 때문이다.
거리에는 간간이 차가 지나간다. 미국 시내버스는 국가소유로 영리목적이 아니다. 24시간 도는데 요금도 저렴하다. LA에서 샌프란시스코에 가려면 101번 고속도로를 타야 한다. LA는 나성으로 로스엔젤레스의 약자다. CA는 캘리포니아의 약자다. 두 도로가 있는데 남북도로인 AVE와 동서도로인 BLD(블로드가든)다. 한인타운은 블로드가든의 맨 동쪽에 있다. 우리 한인 교포들이 잘 살길 빌며 애정의 눈길로 거리 곳곳을 보듬었다.
* 로스엔젤레스 유니버셜 스튜디오
영화 촬영세트장으로 LA의 엔터테인먼트 중심지다. 수많은 내외국인이 모여들어 입장하는데 많이 기다렸지만 보람된 여정이었다. 우리는 자유 이용권으로 5가지를 선정하여 보았다. 워터 월드, 쥬라기 공원, 스튜디오 투어, 씸슨 와이드, 슈렉인데 맨 먼저 본 곳은 Water War(물전쟁)이다. 물과 불, 포성, 다이빙, 보트 등으로 장렬한 영화 장면들을 재현해 주었다. 앞줄 관객은 물보라도 맞으며 현장감을 맛보기도 한다. 두번째 간 곳은 바나나 보트(공룡보트)다. 물 위를 보트로 달릴 때 공룡이 군데군데에서 출현하여 놀라게 한다. 터널을 통과하자 물벼락으로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그 다음은 트레인 순회다. 미니기차를 타고 스튜디오 안을 돌아보는 것인데 콰이강의 다리, 죠스가 출현하는 바다, 터널 화재, 계곡의 물사태 등등 영화에서 보았던 긴박한 순간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다음으로 디즈니 영화관에서는 의자가 심하게 요동치며 우주 공간에서 유영하는데 추락하는 대목에서는 눈을 감았다. 다음 방에서는 안경을 쓰고 관람하는데 나에게로 쏘는 불과 나에게로 공격하는 괴물들이 신기했다. 각자가 그렇게 자기에게로 다가오는 환상이다. 독특한 영상기술이다.
다 관람하고 나올 때 아쉬웠다. 우리가 서부 영화에서 보던 전쟁포성 또는 괴물출현 장면들이 어떻게 촬영 되는지 조금 알듯했다. 이곳은 아주 넓은 땅에 잘 꾸며 놓은 세트장이다. 큰 감동을 받은 명소다.
* 로스엔젤레스 허리우드 거리
영화배우 230명의 이름이 새겨진 거리다. 유명한 배우들의 손고하 발, 이름을 바닥에 새겨 놓앗다. 여기가 미국 LA 헐리우드 거리다. 석양에 비추이는 영화인들의 이름이 찬연히 빛나고 있다. 한 시대를 아름다운 연기로 사람들 가슴 속에 심어 놓았기에 떠나갔어도 그 영혼을 기리고 있다. 화려한 건물들과 줄지어 달려오는 차량행렬들, 젊은이들의 낭만적인 횡보 등등 모두가 곱게 수놓아진다. 버스를 타고 떠나올 때도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들이 한동안 곱게 이어졌다. 광범위하게 거리 곳곳에 허리우드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어 허리우드가의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
내일은 하와이로 간다. 5시에 모닝콜, 5시 50분에 조식인데 그때 모든 짐을 챙겨서 가지고 나와서 6시 30분에 출발한다.셔틀버스 2대로 이동한다. 라디산 호텔에서 공항까지는 10분 소요된다. 국내선을 타기 때문에 2시간 전에 2명씩 체킹한다. 점점 미국여행이 마무리 되고 있다.
2009년 4월 21일 화요일 로스엔젤레스에서 하와이로 이동
* Los Angeles Radisson Hotel 출발
언제나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 나서는 날은 분주하다. 피곤해도 그것은 행복한 여정이기에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야 한다. 로스엔젤레스 라디싼 호텔을 이젠 떠나야 할 시간이다. 세계 여행 중 여러번 유숙했던 낯설지 않은 호텔이다. 아침 6시 40분에 LA 라디싼 호텔을 출발하여 셔틀 버스로 공항에 갔다. 10분 소요되는 거리였다.
* 로스엔젤레스공항 출발
로스엔젤레스에서 하와이로 간다. UA81 항공, 오전 8시 53분 비행기다. 우리 부부는 36F, 36G 좌석이다. 2,5,2 배치좌석 중 중앙 통로쪽이다. 정확한 시간에 이륙했다. 태평양 바다 가운데 뜬 하와이 섬에 대한 기대로 미국 본토의 영토를 떠나도 크게 아쉬움이 남지는 않는다. 꼭 가보고 싶었던 하와이, 푸른 숨결을 그려보며 뜨거운 시심에 젖는다.
* 하와이 호놀룰루공항 도착
로스엔젤레스 공항에서 5시간 40분, 400Km를 날아 하와이 공항에 도착했다. 현재시간, LA 시간으로는 오후 3시 30분 Haw 시간으로는 12시 30분이다. 한국시간으로는 4월 22일 수요일 오전 7시 20분이다. 이곳은 4월 21일 화요일이다.
하와이 공항에서 이홍신 가이드를 만나 만남의 의미로 선사하는 조개껍질 목걸이도 받고 인사를 나눴다. 목걸이를 주는 것은 '악귀로부터 편안히 외객을 지켜주라는 의미'라고 한다. '알로하' 안사말도 배웠다. 공항 밖에는 야자수와 고운 꽃들이 벌써 외객을 반기고 있다.
* 하와이 산속 마을
이곳은 하와이 오아후섬 호놀룰루다. 미서부 투어는 극기훈련이라고 부르는데 이곳 하와이 여행은 편안한 투어라고 한다. 먼저 간 곳은 바람산 전망대인데 그 오르는 길에 산속마을을 보았다. 해발 600m 산을 향해 샛길로 올라가고 있다. 70년~80년 된 이민자 동네로 산속 생활자들이 살고 있다.
다양한 수종으로 무슨 나무든 잎이 상당히 크다. 하와이는 총 8개 섬이고 이곳은 3번째로 조성된 섬이다. 먹을 것이 많고, 뱀이 없고, 산돼지가 있고, 딸기 하나가 주먹만하다. 가이드는 1967년, 어릴적 부모를 따라 이곳에 이민 와서 제2의 삶을 40년 살고 있단다. 깊은 산중의 우람한 나무와 커다란 고사리 나무, 야생 닭들이 뛰노는 풍경들이 신비롭다.
* 하와이 바람산 전망대
약간의 비가 내려서 더욱 운치있는 산풍경이다. 공기도 좋고 물도 좋은 땅 하와이에는 피지, 사모아 등 7개 부족이 와서 산다. 바람산 전망대에 도착하여 내렸을 때 야생닭들이 돌아 다녔다. 주인이 없다고 잡아 먹어도 된다는 말에 한동안 바라보며 놀랐다. 식물에게도,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이곳은 천국인듯 보인다. 싱싱한 자유가 곳곳에서 숨쉬고 있으니 말이다.
산정에서 하와이 전경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바다와 산, 들이 어우러진 절경이다. 바람이 많아 바람산, 거대한 산 사이로 바람은 파고 들며 사는가 보다. 운무가 촉축히 서려 고운 낭만이다.
* 하와이 도심 주택
오하우, 이 섬은 아기자기하다. 사화산 지역이다. 인구가 90만~100만명이다. 제주도 크기다. 서울 강북 4대문 안 도시 정도 크기다. 15분이면 시내 모두 가는 면적이다. 하와이는 환태평양 화산대 지역이다. 도심 주택들이 독특하다. 큰 특징은 지붕이 낮다는 것이다. 바람이 많아 집을 납작하게 짓는 것 같다. 정원이 넓고 여러가지 식물로 가득하다. 일식식당에서 나오는 빨강 생강이 노변에서도 나무처럼 꽃을 피우며 자라고 있다. 토란잎도 나무처럼 아주 크다. 잎사귀들이 뭐든지 크다. 물은 사먹지 말라고 한다. 호텔 복도에 있는 물을 그냥 받아 먹으란다. 오래 된 물일 수 있어서 그렇다. 창밖은 참으로 평화로운 정경이다.
* 하와이 한국인 교회
하와이 한국인 교회가 한국 전통식 기와로 지어져 있다. 어느 궁처럼 우람하다. 교회인데 절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승만 대통령 동상도 뜨락에 있다. 타국에서 만나는 우리 조국의 숨결은 언제나 뜨거운 전율을 일으킨다. 반갑고, 대견하다. 그저 타국에서도 굳건한 뿌리를 내려 씩씩하게 살기를 기원하며 이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 하와이 주정부 청사
하와이 도심 한복판에 있다. 이곳 주변이 다운타운이다. 교통도 복잡하고 건물들도 모두 우람하다. 주정부 청사는 특히나 크고 독특하여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맞은편은 주지사 거주지다. 한국인 3세도 3명이 들어가 있다. 보통 이민 70년~80년된 교포들이 많다. 우리가 머물 곳은 여기서 10분 거리인 와이키키 해변이다. 숙소로 가는 동안 시가지를 돌며 명소를 둘러보고 있다.
* 호놀룰루 다운타운
섬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건물들이 즐비하다. 빌딩 숲에서 기묘한 건축물의 조형미도 감상하고 이국적인 낭만도 만끽하고 나의 감성은 기쁨으로 출렁인다.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이 큰 나는 어느 나라에 가든 명소만 중요시하지 않고 주변 풍경속에서 그 나라의 문화를 읽는다. 하와이는 미국령이기에 예상은 했지만 아주 잘 발달되어 있고 안정적이다. 다운타운은 특히 깊은 연륜으로 나무들도 우람하고 모든 시설이 잘 조성되어 있다.
* 하와이 카메하메하 대왕 동상
하와이 초대 대통령 동상이다. 1700년~1900년대까지가 왕조시대였다. 1788년 영국 최초의 왕조가 성립되었고 1959년 미국땅이 되었다. 사실 하와이의 역사는 짧다. 카메하메하 대왕 동상은 주청부 청사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도심 가운데 하와이 전통 모습으로 용감하게 세워져 있다. 하와이를 일으킨 위인이기에 아직까지도 빛나는 추앙을 받고 있다. 하와이주의 대법원장이 한국인이다. 이 나라의 대왕도 자랑스럽지만 우리 한국 교포가 요직에서 조국의 위상을 높여줌에 자랑스러웠다.
* 하와이 호놀룰루 시가지 풍경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푸짐하게 대접하는 갈비와 파인애플 뷔페 중식을 마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는 소박한 향기가 나는 동네다. 한국 서울의 어느 변두리 모습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유숙할 호텔로 가까이 갈 때는 외객을 위한 호텔들이 여러가지 모양으로 도심을 채우고 있었다. 강물인듯한 물위 다리를 건너 우리가 머무를 오하나 호텔로 갔다. '오하나'는 '동네사람'이란 뜻이란다. 모두가 참으로 정감어린 풍경이다.
* 하와이 폴리네시안 매직쇼
공연장이 호텔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어서 걸어 갔다. 천둥번개로 무대를 열었다. 서막은 미남 미국백인남자가 엘비스플레스리 가수의 모창으로 오픈한다. 그외 원주민 남녀의 춤이 황홀하다. 매직쇼에서는 일본인 남자가 능숙한 영어로 기이한 마술을 선사한다. 대포를 쏘아 맞았는데 그 남자는 불을 켰을 때 객석에 있었다. 웃음바다를 이뤘다. 화장지에 물을 적셔 짜서 눈으로 만들어 객석 공중에 휘날릴 때 환호성은 절정에 이르렀다. 무대 곳곳 벽면 바위 틈에서 원주민 남녀가 나와 춤을 춘다. 객석의 손님을 불러 키가 크고 뚱뚱한 미국남자와 함께 무대에 올라 마술 호흡을 맞추기도 하고 관객과 하나되는 공연이다. 저녁식사까지 제공하여 분위기가 참으로 정겨웠다.
* 하와이 야시장
공연관람을 마치고 가이드 없이 우리들끼리 야시장을 돌아보았다. 하와이는 치안이 잘 되어 있어서 밤 늦게까지 다녀도 된다. 거리에서 조건 없이 펼쳐지는 화가, 음악인 등 예술인들이 연출하는 진풍경도 보고, ABC백화점 등 쇼핑가에서 아이쇼핑도 하고 하와이의 첫날밤은 그렇게 평안함 속에서 이국의 향수에 젖었다.
2009년 4월 22일 수요일 하와이 호놀룰루
* 하와이 스모기 레스토랑
아침 식사를 한 식당이다. 야외 정취가 하와이를 드러내며 그윽한 풍경이다. 오픈된 실내 좌석도 아름답다. 식단도 풍성하여서 바비큐 요리를 직접 썰어주어 맛잇게 먹었다. 참새가 식당까지 들어와 테이블에 안지고 하고, 바닥을 돌며 음식을 먹는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공존하는 향기로운 정경이다.
* 다이아몬드 헤드 분화구
오늘은 170Km를 달리며 여행한다. 와이키키에서 진주만까지 오후 4시 30분까지의 일정이다.한국 가이드가 21명이란다. IMF 이전에는 70여명이었는데 많이 줄었단다. 호텔에서 나서자 곧바로 와이키키 해변이 전개된다. '와이'는 '물, '키키'는 '분출'이란 뜻이다. 즉 '와이키키'는 '태평양에서 솟구쳐온 물가'라는 뜻이다. 하와이는 8개의 섬과 120개의 무인도로 구성된 바다 위 물의 영토다. 1년에 760만명이 다녀간다. 일본인만도 매일 4천~5천명이 온다.
다이아몬드 헤드 분화구는 하와이의 대표적 명소다. 우리는 지금 동쪽으로 이동하며 높은 산정의 분화구를 보고 있다. 호놀룰루 어느 곳에서나 보이는 산정이다. 햇살이 내리면 다이아몬드에서 발하는 빛처럼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이다. 상체는 날아가고 머리만 남은, 즉 사람 머리 모양 분화구다. 그 곁을 지날 때 오롯하여서 한참을 올려다 보았다. 다이아몬드 헤드 분화구를 따라 육중한 산이 줄기차게 이어져 전개된다.
* 카할라 고급 주택가
하와이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동네다. 집앞 바다까지 개인 소유 해수욕장이다. 바다 부근이 얼마냐가 집값이 결정된다. 탐크루즈 별장이 180억원이다. 바닷가는 길 건너 땅값의 3배다. 집은 똑같아도 바다의 유무에 따라 1억~3억 차이가 난다.
쿠바에서 쓴 소설 '노인과 바다'의 작가 헤밍웨이 딸이 90세인데 이곳에서 거주한다. 하얀 생머리를 허리까지 늘이고 산다. 헤밍웨이는 엽총 자살로 차갑게 죽었지만 그의 후손은 하와이에서 따스한 생을 잇고 있다. 또한 최경주 한국 골프선수가 1위한 곳이기도 하다. 넓은 정원에 고급스럽게 앉은 집들이 화사하다. 더러는 산언덕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나무와 꽃들이 잘 가꾸어져 있어 더욱 아름다운 주택가다.
* 하와이 한국지도 마을
언젠가 티브이에서 방영했던 기묘한 마을이다. 하와이 영토에 한국지도를 그리며 형성된 마을이 있다. 산줄기 아래 고고하게 드러누운 한국지도 모양의 마을 앞에서 나는 고맙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여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였다. 어쩌면 저토록 집을 지었을까. 계획하여 조성한 것처럼 생생한 우리 조국의 지도다.
한국의 무궁화가 하와이주의 상징꽃이다. 즉 하와이 주화가 무궁화다. 어떤 상황에서도 피는 꽃이다. 세계 제일 교육 국가가 한국이다. 한국과 유태인은 탁월한 교육으로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란다. 인하공대가 '인'은 인천, '하'는 하와이로 협약하여 세운 대학이다. 이런 상징이 무궁화에 담겼고 궁극적으로는 어머니를 상징하는 꽃이다. 또한 무궁화는 담장 역할도 한다.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후손을 잘 키우는 바로 우리의 어머니처럼 은은함이 서려 있다. 하와이 주지사도 여자다. 한국인 여성 국회의원도 3명이나 된다. 이곳에서도 여권이 세다.
여자들이 꽃을 꽂는 이유도 다 있단다. 오른 쪽 머리에 꽂으면 미혼이고, 왼쪽에 꽂으면 결혼이고, 중앙에 꽂으면 네맘대로 하라는 뜻이란다. 미적으로 무궁화가 지는데 인내를 요구할 때는 무궁화가 그 어느 꽃보다 이긴다. 인내 상징의 꽃이 바로 무궁화다. 90만~100만 하와이 인구에는 중 동양인이 많다. 동양국가 문화도 많다. 연문화도 있어서 공터를 마련하여 1월 30일이면 한인회에서 연날리기 행사를 한다. 한국인 4만 5천명이 학군 좋은 동네에서 모여 산다. 한국의 지도를 보며, 교포들의 훌륭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타국에서 빛스런 내 조국을 그려본다.
* 하와이 하나우마베이
아름다운 해변이다. 주민들을 위해 해양 스포츠 구역이었는데 지금은 환경보호 차원에서 규제가 심하여 입장이 어렵다. 버스로 지나며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늑한 바다가 그리움 물고 선 여인처럼 단아하다.
* 하와이 마카푸우 포인트
푸른 물이 섬을 이으며 바위 절벽을 타고 있다. 이것이 하와이다. 하와이의 물이 푸른 이유 3가지는 1.비린내와 짠내음이 없고, 2.갯벌이 없어서 갈매기가 없고, 3.햇살 반사로 하얗게 살아나는 하얀 모래가 있기 때문이다. 해양 조기 경보 센터를 설치하기 위해 1억원 어치의 장비가 들었다고 한다. 지진, 화산지대여서 그 대비 차원이라는데 저절로 지켜지는 하와이는 아니었다.
마카푸우 포인트는 어느 곳을 보나 절경이다. 바위 위에서 바다를 내려봐도 비경이고, 뒤편의 산을 보아도 비경이다. 길게 늘어선 해변이 내 조국의 해안선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고고하고 청정한 자연 비경이다.
* 하와이 주름산
산이 독특하다. 줄주이 주름져 내려온다. 산정에는 분화구가 많다. 용암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다가 흘러내리며 주름을 형성한 것이다. 육중한 산은 운무와 함께 도도한 정취다. 쥬라기 공원 영화 촬영산이기도 하다. 하와이 화산의 심장부다.
미국에 우리나라 42개가 들어 간다. 태평양에 미국이 12와 1/2개 들어 간다. 망망한 대해에 해양 연구소가 잡고 있다. 인도네시아 쓰나미 사건도 45분 전에 인도네시아에 전화해 주었다. 여기서는 난리인데 그 나라에서는 무관심이었다. 비상대책이 안 되어서 14만명이 사망했다. 중국 쓰촨성 지진도 30분 전에 중국에 전화해 주었다. 미리 알 수 있는 이유는 환태평양대가 연결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LA-밴쿠버-일본이 이어져 있고 한국은 제주도에만 살짝 걸쳐 있다. 마지막은 이태리 화산이 200년 전에 터졌다.
영국에서 와서 연구하기 시작 했는데 처음에는 혼란 때문에 지진, 화산을 크게 보도하지 않았다. 현재는 조기경보 시스템이 5개국에서 설치하고 있는데 미국, 영국, 일본, 뉴질랜드와 호주, 한국이다. 한국은 마라도와 이어도 앞에 설치했다. 한국은 IT전자산업 세계 1위 국가로 미국에서도 손들었다. 삼성, LG TV는 미국시장에서 1위로 일본의 쏘니보다 12% 앞섰다. 종합병원에서 심장수술 5위 안에 드는 병원에 한국이민 2세 의사로 정박사가 있다. 참으로 드높은 한국의 위상이다.
공동묘지가 잔디 위에 꽃무더기로 있다. 앞은 마을인데 무덤은 처연히 앉아 있다. 이곳 사람들은 죽음이야말로 본게임이며 가장 아름다운 곳에 간다고 믿는다. 장례식에도 화장과 악대로 화려하다. 한국과 하와이의 의식 차이다. 얻어 갈 것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큰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태어난 상태, 그대로의 삶을 인정하며 숙명처럼 산다. 직업 귀천이 없다. 평행선이다. 공동의식이다. 스트레스가 없다. 청소부도 이곳에서는 자기 신분이 아니라고, 직업일 뿐이라고 여긴다. 한국교포 가이드는 이제서야 자부심을 느끼고 산다고 토로했다.
미국 3억 인구 중 자기네 섬인 하와이를 구경하지 못하고 죽는 자가 93%란다. 지금 하와이를 보고 있는 우리는 행복한 %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이란다. 거대한 품사위로 늘어선 주름진 산을 보고 달리며 주름결 만큼이나 긴 이야기를 들었다.
* 중국인 모자섬
주변 풍경이 상당히 아름답다. 바다와 주름산과 공원의 나무들이 그윽한 평화다. 바다 가운데 떠 있는 섬이 중국 사람이 쓰던 모자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농장에서 중국 이민자들이 일 할 때 썼던 모자 형상으로 빚어진 섬이 신기하다. 주위를 아주 깨끗하게 가꾸어 놓아 주민들에게도, 외객에게도 편안한 휴식 공간이다. 산 아래 초지에는 방목하는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다. 섬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하와이를 그대로 보고 느끼는 곳이다.
* 대추 야자나무 열매
하와이 열대과일 농장에 견학 갔다. 하와이 특산품인 견과류가 주로 많고 애플바나나, 알로아 마크 티셔츠 등이 진열되어 있다. 밖에는 바다와 접한 곳이어서 도로 하나만 건너면 태평양 푸른 물결이 넘실거린다. 싱그런 풍경이다. 야자대추나무를 보았다. 잔디 위에 떨어진 대추야자 열매도 보았다. 세계 여행 중 호텔에서 대추야자를 먹어 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야자나무에 열린 모습과 바닥에 떨어진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다. 신기하여 손에 담아도 보고 한참을 살펴보았다.
* 폴리네시안 문화센터
한국의 민속촌 같은 개념의 관광 명소다. 입장하여 먼저 그 안에서 새우, 파인애플, 빵 바비큐 등 푸짐한 뷔페로 점심을 먹었다. 사람들이 거대한 식당의 자리를 가득 채웠다. 내외국인의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고 있었다. 처음엔 그 이유를 몰랐는데 식사 후 관람하며 왜 이곳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지 알았다.
민속촌은 경관 자체만도 상당히 아름답다. 곳곳에서 하와이 전통 민속 공연도 열린다. 함께 참가하여 하와이인과 하나 되기도 하며, 민속놀이를 배우기도 했다. 이곳은 비영리 단체인 몰몬드교에서 운영하고 있다. 몰모드 교인 대학생이 안내한다. 그를 따라 다니며 민속촌 곳곳을 다 돌아보았다.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춤, 드럼과 소라껍질, 몽둥이로 추는 퉁가족 춤, 훈훈한 향기다. 호놀룰루에서 여기까지는 100Km 거리다. 오늘의 마지막 여정인 진주만까지는 여기서 50분 거리다.
남태평양에는 3200개 섬이 있다. 무작정 온 사람들이다. '폴리'는 '많다', '네시아'는 섬사람을 뜻한다. 타이티, 피지, 통가, 사모아, 등등 7개 종족들의 생활상을 보았다. 하와이말로 인사는 '알로아'퉁가말로는 '말로 헬렐레' 사모아말로는 '딸러리' 이렇게 7개 종족의 언어가 다 다르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우리말 가이드가 되려는 미국 선교사다.
한국의 용인민속촌에 미국인들이 관광 오면 놀란다. 특히 온돌방이 그렇다. 그 옛날 살균작용하는 온돌방을 장치하고 살았다는 것에 대하여 대단한 문명이라고 일컫는다.이젠 한국 문명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1973년부터 피지 살생금지로 사람을 잡아먹지 말자고 다짐했다. 폴리네시안 문명은 뒤지는 편이다. 마지막 관광코스로 호수에 가 나라의 사람들이 배를 타거 나와 자기네 나라의 전통공연을 모여준다. 하와이의 많은 것을 보고 배운 곳이다.
* 엘비스프레슬리 별장
산정에 엘비스플레슬리 별장이 있다. 1977년 42세로 사망한 미국의 가수다. 누가 그를 모를까. 독특한 음색으로 뭇세인의 가슴을 울렸던 그의 음악은 지금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것을. 아직도 그가 저 산꼭대기에서 태평양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음악에 전념하는 환상에 젖게 한다. 그가 가장 사랑했다는 저 아름다운 해변은 사람은 떠났어도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답다. 그가 거닐며 명곡을 작곡했던 저 해변은 영화도 많이 촬영한 명소다. 그의 대표곡인 'Love Me Tender'가 애잔하게 귓가에 울려온다.
* 한국인 초기 이민자 마을
한국인 초기 이민자들이 머물렀다는 사탕수수 마을을 지났다. 1903년 인천을 출발하여 하와이에 도착했단다. 저 바다는 초기 이민자들이 육지로 올라온 부둣가다. 100년 전 살았던 마을이다. 12~13시간의 중노동으로 사탕수수밭 또는 파인애플 농장에서 고단하게 살았다. 지금은 다 떠나고 폐허가 된 집들과 잡초로 무성한 밭을 지나고 있다.
파인애플은 4~5개월 된 어린 나무를 따는데 허허로운 벌펀에서 독기 서린 가시에 찔리며 작업할 때 큰 고통이 따른단다. 손이 멍들고 쑤셔서 힘든데도 우리 교포의 초기 이민자들은 저 파인애플 농장에서 생을 엮었다니 가슴이 서늘하다. 가이드도 3박 4일간 80달러를 벌기 위해 파인애플 농장에 온 적이 있다고 한다. 지금도 그날의 심한 고통을 잊지 못하여 파인애플을 안 먹는다니 우리 조상들이 이국땅에서 정착하기 위해 얼마나 큰 고난의 터널을 지나왔는지 짐작이 간다.
여기서 일본까지는 배로 1개월 걸렸다. 비행기도 없고, 편지도 6개월 후에나 겨우 답장을 받아보았다. 그 한맺힌 땅을 우리는 편안한 눈으로 바라보며, 편안한 버스로 넘어왔다. 길의 끝에서 고속도로로 진입한다. 20분 후면 진주만에 도착한다. 하와이에서 힘겹게 딛고 일어선 우리 동포에게 찬사를 보내며 또 하나 아린 역사를 보며기 위해 달린다.
* 태평양전쟁의 진원지 진주만
일본이 독일과 손잡고 일으킨 대동아 전쟁의 시작은 1941년 12월 7일이다. 일본이 하와이를 차지하려는 야욕에서 미국에서 교육받은 야마모또 일본장교를 선봉장으로 세웠다. 장군은 미국을 건드리지 말라고 했는데 그때 나온 말이 '벤또 싸 가지고 다니면서 말린다' 란다. 12월 7일 일요일 아침, 일본 비행기 300대를 실을 수 있는 6척의 항공모함 배가 막강한 힘으로 오하우섬에 침입했다. 선전포고도 없이, 무방비 상태인 진주만을 공군기지 3군데를 먼저 점령했다.
그리고는 진주만에 침공했다. 27척의 배와 수백대의 비행기를 공격하여 파괴했다. 승무원 1500명 중 1170명이 사망했다. 밖의 사람이 안에 들어와 최초로 공격당한 것이다. 일본은 성공했다고 믿고 본국으로 돌아가려 할 때 야마모또의 유명한 말이 있다. '저 비행기가 내 갑판 안에 앉는 순간부터 태평양 전쟁은 시작이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만 건드렸다고 했다. 이승만은 그 당시 이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일본이 한국 지배시, 그 이유만으로는 미국이 일본은 못 건드렸는데 루즈벨트 대통령이 다음날 '미.일 전면전이다'라고 선언했다. 즉 태평양 전쟁 시직이다. 4년 4개월 동안 오키나와까지 점령하여 1945년 8월 6일 마지막 선언을 했다.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10만명이 사망하는 원자폭탄을 투척했다. 다음날 낮 12시 일본천황은 항복했다. 66년만에 가는 진주만, 우리나라를 해방시킨 역사적인 곳이다. 남긴 교훈은 1.야마모또 말 중 벤또 싸 가지고 다니며 일본 침공 말렸던 일. 들었다면 우리는 해방되었을 것이다. 2.무리수를 둔 일본이 결국은 탐하다가 망했다는 것이다.
미국 해변에 참사 현장을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 그때의 배를 가라앉는 장면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 위령탑도 세워 놓았다. 미국 전쟁 중 카메라만 있었다. 말로만 듣던 진주만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 언제 그런 참사가 있었느냐는 듯 고요하지만 하늘과 바다는 알고 있으리라. 전시장에 그날의 사진들을 오롯이 전시해 두어 둘러보고 나왔다. 지구상에서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 전쟁이다. 참혹한 일이 나의 조국과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일어나지 않길 빌었다.
* 알로아 타워 시계탑
진주만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호놀룰루에 다시 왔다. 해변에 알로아 타워 시계탑이 높이 보인다. 1900년대 가장 높았던 건물이다. 우리 조상이 배를 타고 이곳 하와이에 와서 100년 전 내렸던 부둣가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로 주변을 곱게 가꾸어 놓았다. 우리는 지금 썬셋 크루즈를 위해 평화로운 걸음으로 찾아 왔는데 우리 조상들은 눈물겨운 걸음으로 이곳에 왓을 거라고 생각하니 소슬했다. 그날을 증언하듯 커다란 시계가 높이 솟아서 드넓은 태평양 바다를 향해 손짓한다.
* 오아후섬 선셋 크루즈
석식과 함께 하와이 석양을 보는 크루즈다. 배안에서 원주민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먹는 뷔페석식과 파인애플 쥬스는 더욱 큰 행복을 선사한다. 배는 서서히 출항하고 2층, 3층 갑판에 올라가서 하와이 호놀룰루의 비경을 감상했다. 끝없는 태평양 수편선과 하와이 와이키키 비치와 고층 호텔 건물들, 산, 한가득인 바닷물, 배미의 펄럭이는 미국국기 등등 아름다운 풍경이다.
원주민이 갑판을 지키며 승선 손님들이 부탁하면 사진을 찍어준다. 아주 능숙한 솜씨이며 배경 풍경을 잘 알기에 그가 찍어주는 사진은 명품이다. 고마워서 영어로 인사하면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며 겸손함도 보여준다. 따스한 가슴으로 이어지는 감성은 인종을 떠나 동일함을 알게 하는 순간이다. 하와이 석양은 태평양 너른 바다를 곱게 물들이고 있었다.
다시 선착장에 도착할 무렵 다 함께 중앙무대를 돌며 공연단원들과 춤을 추었다. 손님과 함께 공연자와 함께 즐기는 문화가 참으로 아름답다. 밤 8시경 캄캄할 때 선착장에 내려 4번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가이드는 먼저 갔고, 우리들끼리 찾아갔다. 버스 기사에게 'OHANA West Hotel'이라고 말하니 마지막 정류장에서 내리라며, 함께 내려서 친절히 길을 알려 주었다. 이것도 외국여행에서 겪는 아름다운 체험이다. 하와이는 거리도, 문화도 모두 평화롭다.
2009년 4월 23일 목요일 하와이 전일 자유
* 오하나호텔 주변풍경
오늘은 하와이 호놀룰루 시내에서 전일 자유시간을 보낸다. 각자가 원하는대로 여정을 결정하여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가장 중요한 와이키키 해변을 꼭 보고 싶어서 오전에는 오하나호텔 주변에서부터 하와이 시가지를 둘러보고 오후에는 해변에 나가 수영하기로 일정 짰다.
오하나호텔 주변은 참으로 많은사람들과 차량행렬이 몰려들고 있다. 세계여러 나라에서 모여든 여행객들이 들고 나는 모습이다. 이곳 주민들도 호텔앞에 있는 정류장에서 수시로 타고 내린다. 약국을 비롯한 모든 표기가 미국식 영어이어서 우리가 알아보기 쉬워 여행에 어려움이 없어 좋다. 뉴질랜드에서 보았던 노란 꽃나무가 가로수로 선 모습이 인상적이다.
* 하와이 호놀룰루 도심 산책
우리가 머문 호텔 뒤편에 큰 강물이 있어 먼저 그곳으로 갔다. 산책하는 하와이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 강 같은 물은 강이 아니고, 또한 바다에서 유입되는 물도 아니고 이 주변 호텔에서 나오는 물을 정화하여 모아진 물이라고 한다. 민물인데 아주 크진 않지만 그런대로 넓고 깊은 물속에서 물고기들이 많이 산다. 물은 탁해 보이는데 물고기들은 떼지어 다니며 평화로이 살고 있다.
강둑길을 걸어, 다리를 건너 요트장에도 가고, 꽤 먼길을 산책했다. 하와이를 여유롭게 돌아보는 시간이어서 호텔 건물과 도심 풍경을 가슴속에 영롱하게 담았다. 꽃과 나무들이 행복한 입술이다.
* 하와이 국화 무궁화
하와이 도심을 산책하며 하와이 국화 무궁화를 만났다. 이 꽃은 내가 화곡동 주택에 살 때 정원에서 화분에 길렀던 꽃이다. 참으로 화사하고 예쁘던 꽃으로 그 회억에 젖어 내 걸음을 멈추게 한다. 여전히 붉고 커다란 꽃송이가 동일한 모습으로 이곳에 피어 있다. 환경이 잘 맞기 때문에 나무는 충실하고 꽃은 마음껏 평화를 노래한다.
* 호텔에서 와이키키 해변 가는 길
호텔에서 와이키키 해변가는 길이 낭만적이다. 비도 조금 뿌리다가 그치고, 굵은 나무와 신기한 식물들, 야자수가 장관이다. 하얏트 호텔 쌍둥이 빌딩을 지나자 금새 해변에 도착했다. 사진에서 보았던 그 비경이 지금 눈앞에 전개되고 있다. 큰 야자수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환상의 바다가 외인을 반긴다.
*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
와이키키 해변은 사람으로 치면 우람한 사내다. 물빛도, 너른 품사위도 예사롭지 않다. 백사장이 넓은 것은 아닌데 태평양 큰 바닷물이 모든 시선을 흡입한다. 규모는 내 고향 대천 해수욕장보다 작은데 웅장함이 돋보인다. 역시 태평양 바다는 우람하여서 해변에도 그 우람함이 드러난다. 두려울 만큼 한가득인 푸른 물, 사람들은 윈드서핑을 즐기거나 수영 또는 휴식를 하고 있다.
나는 수영복을 입고 바닷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백사장이 가파른 형태라서 큰 파도가 밀려오면 쓸려갈 것 같다. 모래를 움켜쥐고 버티기도 하고, 같이 파도를 타기도 했다. 먼먼 바다와 하늘이 하나로 맞닿고, 줄지어 늘어선 야자수와 해변의 호텔건물들이 인간의 숨결을 노래하는 곳, 잠시 머물지만 고운 족적을 무수히도 찍었다. 오후 4시경, 아쉬움으로 일어서서 호텔로 돌아왔다.
2009년 4월 24일 금요일 하와이 출발
* 하와이 오하나호텔 출발
오전 7시 모닝콜, 8시 출발이다. 하와이의 낭만과 평화를 선사했던 곳, 자유로이 돌아 다녀도 이국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곳, 그것은 지극히도 안정된 하와이의 문화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와이로 수많은 걸음을 잇고 있는 것이다. 설렁탕으로 한식조식을 하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아쉬운 작별이다.
* 하와이 나무 가로등
공항으로 가는 길에 본 나무 가로등이다. 캐나다 빅토리아 섬에서 밴쿠버로 올 때 본 그 나무 가로등과 유사하다. 시멘트 기둥의 가로등보다 나무 기둥의 가로등이 수명이 길다고 한다. 그런 것까지는 모른다해도 나무 가로등은 우리에게 또 다른 부러움으로 다가온다. 천연의 향기가 공중에서도 그윽하다.
* 하와이 가로수 나무터널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내린 한인식당 주변은 온통 가로수가 나무 터널이다. 나무 이름이 골든샤워라고 하는데 오랜 연륜으로 도심을 빛낸다. 버차들이 지나는 모습도 아름답고, 사람이 지나는 모습도 진풍경이다. 구부러져 자란 굵은 가지들이 예술이다.
* 하와이 태양열 주택단지
하와이 도심의 여러가지 풍경을 보며 공항으로 달렸다. 야구장도 보고, 공항 부근에서는 태양열 주택단지를 만났다. 한 동네를 이루고 줄지어 선 주택들이 지붕마다 태양열을 흡입하는 유리창을 달고 있다. 하와이가 깨끗한 것은 어쩌면 저런 진풍경이 기여한 몫도 있으리라. 지구의 환경보존을 위해 이룩해야할 미래의 인간주택을 보는 듯하여 나의 시선을 자꾸 붙들었다.
* 하와이 호놀룰루공항 출발
오전 11시 56분 비행기다. 짐을 탁송과정이 까다롭다. 3번의 수색대를 거쳐서야 마쳤다. 7번 게이트에서 탑승한다. 하와이 땅에 선 곳도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다. 멀리 산이 보이고 구름이 내려와 아름다운 정경이 마지막까지 하와이를 선사하고 있다. 공항은 상당히 크다. 한동안을 이동하여 탑승장에 도착했다. 활주로 곁에 전개되는 푸른 물과 산풍경이 축소된 하와이다.
2009년 4월 25일 일본도쿄공항에서 인천행 환승
* 일본 도쿄공항에서 환승
하와이에서 우리나라로 가는 길에 잠시 머문 공항이다. 일본 도쿄 공항에는 비가 내린다. 바깥 풍경이 온통 비에 젖어 있다. 그래도 비행기는 잘 도착하였고, 다음 인천공항으로 가기 위해 기다리는 우리를 보듬고 있다. 공항 상가에서 만난 일본인 남자가 아주 깔끔한 매너로 친절하다. 잘 정돈된 기념품들이 일본을 알리고 있다. 우리를 대우고 갈 유나이티드 항공이 벌써 들어와 대기중이다.
* 인천공항 도착
오후 5시20분에 동경공항을 이륙한 UA881편 항공은 약 2시간 30분의 소요시간을 거쳐 오후 7시 55에 인천국제공항 도착했다. 언제나 내 조국은 해외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나를 포근히도 품어 준다. 미서부와 하와이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왔노라고, 이제 글로, 말로 전하겠노라고 다짐한다. 한 차원 성숙하게 이끌어주는 세계 여행은 앞으로도 나의 걸음을 이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