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 풍물은 농악을 가리키는 말로, 농악을 연주하는 것을 '풍물 친다'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또한 풍물은 꽹과리·북·장구·징과 같은 악기를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이며, '매구'·'풍물'·'풍장'·'두레'·'걸궁'·'걸립' '금고'(金鼓) 등으로 불려지고 있다. 일부 지방에서는 풍물을 군악(軍樂)으로 보아 '군고'(軍鼓)라 일컫기도 한다.
이와 같이 풍물은 그 명칭이 다양한 종합적 예능이다. 풍물의 기원은 노동설(勞動說)과 제의설(祭儀說) 등 두 가지로 집약된다. 노동설은 풍물이 농경의례인 생산과 풍요의식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고, 제의설은 농악이 제천의식인 소도(蘇塗)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따라서 풍물은 생존을 위한 노동과 투쟁의 철학에서 잉태된 것으로서, 그 형식은 각종 제의와 전투행위에서 큰 영향을 받고 있다.
풍물의 시원(始源)을 뚜렷하게 알 수 있는 문헌적 기록은 없으나, 수서와 『삼국지』위지 동이전에 풍물일 것이라고 추측되는 단편적인 기록이 보인다. "馬韓에서는 5월에 파종이 끝나면 항상 귀신에게 제를 올렸다. 마을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주야로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술과 음식을 먹었다. 그 춤은 여러명이 한 줄을 이루어 몸을 구부리기도 하고 허리를 펴기도 하며 손과 발을 서로 맞추는 것이었다.
절주(節奏)는 마치 중국의 탁무(鐸舞)와 비슷하였다. 10월에 농사가 끝나도 그와 같이 하였다." 는 것으로 미루어 생각하면 풍물은 삼국 시대에 이미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이제현의 해시(解詩)에 전하는 '사리화' 같은 농부가 뿐만 아니라, 고려 25대 충렬왕이 일반 농악에 관심이 커서 장려한 일도 있었다는 기록도 보인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세종·세조 등은 농악과 농가에 대한 관심이 있기에 '선농가자'(善農歌者)를 불러 연주하게 한 일이 있고, 농가구(農歌 )를 도와 주었으며 가기(家妓)로 하여금 농가를 장려하게 하였다. 성종도 민요와 농가를 잘 이해하였고 육성시켰으며, 고종은 경복궁 수축공사 때에 밤마다 농악대회를 개최하여 부역인들의 위안을 겸하여 농악육성에 힘썼다. (2) 풍물의 종류 풍물은 공연하는 목적·계기·방법에 따라 종류를 나누어보면, 당산굿·마당밟이·걸립굿·두레굿·판굿이 있고, 그 밖에 기우제굿·배굿 등 여러 가지가 있다.
1)당산굿
마을굿에는 무당의 가무, 제관의 독축헌잔, 굿패들의 풍물이 따르는데, 이처럼 마을굿에서 치는 풍물을 '당굿' 또는 '당산굿'이라 한다.
2)마당밟이
굿패들이 마을 수호신인 당신을 모시고 마을의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불러들이는 집돌이 의식을 하며 치는 풍물로, 지신밟기·뜰밟이·답정굿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집돌이 외에 정초에 집가심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3)걸립굿
걸립패들이 마을마다 돌며 집집마다 들러서 고사를 지내고 돈과 쌀을 거두며 치는 풍물로 일명 '걸궁'이라 한다. 걸립은 목적에 따라 절에서 시주를 걷는 절걸립, 다리를 짓기 위해 걷는 다리걸립, 그 외에 서당걸립·나루걸립 등이 있다.
4)두레굿
농부들이 두레를 짜서 김매기를 할 때, 또한 호미걸이와 같은 축제를 벌일 때 치는 풍물로, 일명 '두레풍장'이라 한다.
5)판굿
굿패나 걸립패·두레패와 같은 농악대가 마당에서 마을사람들에게 구경시키기 위하여, 온갖 구색을 갖추고 순서를 짜서 노는 풍물을 말한다. (3) 풍물의 편성 1) 악기
풍물에 쓰이는 악기는 타악기인 꽹과리·징·장구·북·소고와 관악기인 호적·나발이 있다. 악기는 지방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나는데, 경기 북부에서는 바라를 쓰며, 영동지역에서는 소고를 소고와 법고로 나누기도 한다. 영남지방에서는 땡각이 쓰이기도 한다. 풍물은 꽹과리가 주가 되며, 꽹과리 제1주자인 상쇠가 농악대를 지휘한다.
2) 편성
풍물패의 편성은 기를 드는 기수, 악기를 연주하는 잽이, 탈을 쓰고 여러 가지 배역으로 분장하여 춤추는 잡색으로 편성되는 경우가 많다. 농악대는 고장에 따라 기수가 앞서고 다음에 잽이가 따르고, 그리고 맨 뒤에 잡색이 따르는 경우도 있다. 풍물에 쓰이는 기는 영기와 대기가 있는데, 영기는 작은 기폭에 '令字'를, 대기의 기폭에는 기의 종류에 따라 용·정방형의 도안·신상·신위를 쓰는데, 이를 '神農遺業' 혹은 '農者天下之大本'이라 쓰는 경우가 많다.
이는 꽹과리잽이·징잽이·장구잽이·북잽이·소고잽이 순으로 행렬하며, 잡색은 고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영동에서는 무동을, 경기에서는 무동·사미·양반광대를, 남쪽지역에서는 대포수·조리중·양반·할미·각시·창부·무동 등 여러가지를 쓰기도 한다. 두레풍장에는
잡색이 없다. (4) 풍물의 지역적 분포 1) 경기농악 경기·강원·영서·충청도 북부지역에 전승되며, 안성·평택 등지가 중심이 된다. 경기농악은 다른 지역에 비해 가락이 분명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2) 영동농악
강원도 대관령 동쪽지방에 전승되며, 강릉·삼척 지방이 중심이 된다. 영동농악은 소박·단순하고 향토색이 짙다. 3) 호남우도농악 전라도의 서남지방에 전승되며, 정읍·장성 지방이 중심이 된다. 호남좌도농악은 쇠가락·춤사위·판굿놀이의 변화가 다양하고 흥겹운 점이 특징이다.
4) 호남좌도농악 전라도 동북지방에 전승되는 농악으로, 진안·장수·완주·임실·순창·남원·곡성·구례·화순 등지가 중심이 된다. 호남좌도농악은 호남우도농악과 경기농악의 특색을 고루지녀 음악과 춤사위놀이가 완벽한 짜임새를 가지고 있다. 5) 경남농악
경남지방에 전승되며, 함안·진주·삼천포 등지가 중심이 된다. 경남농악은 자진가락이 많고, 씩씩하며 활기찬 점이 특징이다. 6) 경북농악
경북지방에 전승되며, 김천·청도·영주 등지가 중심이 된다. 경북농악은 꿋꿋하고 향토적인 고박(古朴)함을 간직하고 있다. (5) 풍물의 의의 풍물을 종교적 관점에서는 '굿'·'매굿'·'地神밟기'·'마당밟기'라 하며, 노동의 관점에서 볼 때는 '두레'라 하고, 풍악(風樂)이나 풍류(風流)로 해석하는 경우에는 '풍장'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풍물에는 과거 고대 사회에서의 공동체적 문화전통이 잘 나타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옛 농경조직은 협력결사체인 두레와 품앗이제도로 되어 있었다. 두레생활의 특징은 공동노동·공동가무·공동회식이었으므로, 농악의 형태도 집단적 예능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두레의 농경방식은 노동·노래·춤 등을 삼위일체로 행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노동요나 집단적인 춤이 자연발생적으로 파생되었다. 이러한 풍물은 공동제의로서의 동제굿을 비롯하여, 공동노동으로서 두레와 품앗이를 통해 마을 사람들의 단합과 친목을 도모하는 큰 역할을 하면서 자리매김을 해 오고 있다. 풍물의 밑바탕에는 주당풀이라든가 동제굿, 돌돌이처럼 무속성(巫俗性)이 짙게 깔려 있다. 풍물의 복식에 있어서 고깔과 띠가 있고, 춤에 있어서는 나비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도 파악된다.
특히 군사놀이와 관계깊은 각종 진(陣_풀이는 임진왜란과 동학혁명 때 농군들에 의해 연희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잡색(雜色)놀이의 배역이나 내용에 있어서 탈춤과 유사한 점이 나타나는데, 이는 풍물의 예능 속에 종교를 비롯한 여러 민속예능이 습합되어 있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따라서 풍물은 종합예능적인 성격을 지닌 예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농악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차츰 종교적인 예능형태, 즉 신을 위한 종교적 예능은 퇴화하고, 인간을 위해 행하는 오락적이고 예술적인 형태만이 한층 강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풍물은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종교적 놀이요, 집단의식에서 싹튼 예능양식으로서 농경생활이 시작되면서부터 발달한 문화의 한 형식이다.
그리고 풍악에는 신명(神明)이 있다. 풍물의 악기는 원래에는 신을 부르는 악기였고 잡귀를 몰아내는 악기였기에, 사람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주술음악적 기능을 가졌다. 춤을 통해 소외된 존재의 고독과 고통을 풀어 기쁨으로 승화시키는데서 신명은 나온다. 신명없는 일은 고통의 노동일 수밖에 없으므로 농민들은 활기있는 노동 생활을 위하여 농악을 통하여 신명을 얻어내려고 했다. 이렇게 볼 때 풍물은 본질적으로 공동체적 염원을 결집하는 진취적인 행위, 신명으로 고통을 극복하는 재생과 생존의 예능이라 할 수 있다.
서민계층에서 자라온 풍물은 비록 고상하고 우아한 놀이는 아니지만, 흙냄새가 물씬 나고 소박하며, 天災와의 싸움에 뛰어드는 농민들의 힘찬 의지와 패기가 넘쳐 흐르고 있다. 줄기차게 일해야 하는 생산자에게는 힘이란 제일 고귀한 것이다. 지칠 줄 모르는 생명력을 불러일으켜 주고, 반복되는 고된 노동에 흥을 불어넣어 피로를 잊게 함으로써 일에 의욕을 북돋아 주던 것이 바로 농악이다. 그리고 고된 노동을 하고 살아야 하는 농민들에게는 현실에 대한 갈등과 더불어 신분에 대한 갈등 역시 컸기 때문에 그러한 갈등을 해소시키고 공동체 의식을 다시 확인하는 데 풍물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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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그렇군요. 한번 더 배우네요. 꽹가리 쪼까 칠줄 아는데. 쪼까 배웠걸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