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904년, 조선시대 건봉사 만일연꽃회 – 극락보다 사리를 좇았다(?)
1904년 (고종 41년, 광무 8년)
「大韓國杆城乾鳳寺萬日蓮會緣起」
1) 1742년, 셋째 만일 연꽃모임(萬日蓮會)
조선에 이르러 열산현을 고쳐 간성군이라 하고 절의 이름도 건봉이라 하였다.
영조 임술년(1742) 용허聳虛 석민碩旻 스님이 세 번째 연꽃모임(蓮會)을 만들고 상서로운 조짐이 많이 나타났으나 안타깝게도 자료가 흩어 없어져 더 이상의 고찰을 할 수가 없다.
2) 1851년, 넷째 만일 연꽃모임
철종 신해년(1851) 겨울 벽오당 유총(碧梧侑聰)스님이 영암 취학靈巖就學 · 동화 축전東化竺典 두 분과 함께 넷째 (만일)연회蓮會를 만들어 널리 모으려고 다짐했지만 몇 년 가지 않아 두 분은 입적하고, 벽오 스님 혼자 부지런히 애를 쓰자 향도가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4년이 되는 갑인년(1854, 철종 5년) 여름 두타 영수永守에게서 이 사리(齒珠) 2과, 윤의潤宜에게서 이 사리 1과, 금윤錦允에게서 눈 사리(眼珠)를 각각 하나씩 얻을 수 있었다.
5년 을묘년(1855, 철종 6년) 직각 여옥直覺呂玉을 다비(闍維)할 때 상서로운 빛이 비쳤으며 사리 17과를 거두었다.
6년 병진년(1856, 철종 7년) 4월 해월쾌준海月快俊의 이 사리 1과를 얻었고, 7월에는 선일善日 · 의활宜活의 이 사리를 각각 1매씩 거두었으며, 동자 신응준이 공양 참여를 마치자 이 사리 1과를 얻어 모두 26과를 얻었다. 모두 돌 종처럼 생긴(石鐘形) 부도를 세워 간직하였다. 옛날 이 절은 1,000기의 부도가 있던 도량이라 하였는데, 지금도 그러하니 기이하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29년 기묘년(1878, 고종 16년)에 공덕(만일연회)을 마치니 10,000일에서 2년이 더 지난 것이다.
3) 1881년, 다섯째 만일 연꽃모임
내가 황제 폐하의 승운을 위하는 천명을 받는 황제 폐하가 자리에 오른 지 18년 신사(1881)에 만화 관준萬化寬俊 스님이 다섯째 (만일)연꽃모임을 열고 참선방을 건립하였다. 올해가 24년이니 옛일을 짚어 보면 5년이 지나 준공을 보게 된 셈이다.
……
누군가가 말했다.
“첫째 (만일연회)에서는 붇다가 나투시는 것을 직접 보았고, 둘째는 허공에서 난 (붇다의) 음성을 들었는데, 네 번째는 사리만을 얻었으니 지금은 예전에 미치지 못하고, 갈수록 떨어지고 갈수록 줄어들어 약해지지 않는가?”
이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옛날 우리 여래께서 시절 따라 연을 맺고, 몸소 알아듣게 설하셨다. 제자들을 나누어 보내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였고,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 실천해 보이거나 몸소 (니르바나에) 들어간 사람도 있었다. 자취는 달라도 이치는 하나이다. 이제 다시 관준이 원력을 가지고 아름다운 발자취를 이어 열심히 일념 정진하고 있다. 시절과 인연이란 과일이 익으면 떨어지는 것이니, 어찌 조개에서 관음보살이 나온다는 것(蛤蜊之菩薩)을 알지 못하겠는가! 또 죽 가마 위에 문수보살(粥鑊文殊) 몸소 내려와 끌어 맞이하여 계단을 넘어 상품상생으로 태어나게 하시니 뛰어나지 않은가!
본 사찰의 스님 운파대련雲坡大蓮이 장차 다섯 차례 연꽃모임(蓮會)에 대한 고사를 돌에다 기록하여 영원히 산문에 남기려고 오백 리 밖에 있는 곳까지 달려와 나에게 비명碑銘을 청하므로 내가 글을 지어 이른다.
착하고 아름답도다!
이는 삼대가 지나, 천여 년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 틈을 내지 못해 이루지 못한 성대한 일이다.
또 불문과 스스로 인연 맺어 명성을 부탁하니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에 그 옛 자취를 살펴 간략히 글로써 기록하여 계승하고자 하노라.
그 비명에 이르기를, 도의 으뜸이 서역에서 동방에 이르렀으니,
백마에 경전을 싣고 가시덤불을 헤치고 비로소 통하게 되었도다.
동쪽으로 또 동쪽으로 계림의 나라에 이르니,
발해는 푸른 파도요, 금강산은 눈썹을 그린 듯 곱도다.
하늘이 뛰어난 승지를 만들도다.
열산현 한쪽에서 북쪽으로 오직 붉은 새가 비상하는 것 같아,
이에 신인이 내려와 곧바로 대승의 교법을 뛰어넘도다.
자연 절경을 좇음은 훌륭한 선비와 고승이었네.
스승 되는 스님이 법요를 베푸는 날 동방 나라에 불보살 지혜 빛나도다.
광명 치달으며 밝은 빛 내달으니 모두가 한곳으로 모여들도다.
아미타 붇다가 곳곳에서 도우니
불도가 높은 도량에 향과 동반자 되어 분골쇄신하도다.
인도 강가강(恒河)이 거꾸로 흐르니 가벼운 바람은 돛단배를 이끌도다.
불당을 장식한 깃발은 꽃으로 덮였으니, 아득히 거두어 감추는 것 같도다.
인생으로 태어나 하늘에서 죽으니, 부처님의 명으로 왕생하도다.
좋은 인연 뿌려 좋은 과보 받으니, 형체 있는 것 같고 형체 따르는 것 같도다.
계집종이 공양미를 찧어 바치니, 용왕의 딸이 그 앞에서 뛰어나다 하도다.
머리를 늘어뜨린 어린아이도 공양에 참여하니, 달빛이 뒤에서 맞이하도다.
벌려선 뭇 별이 높은 곳에 있지 아니하니 대지도 넓지 않도다.
인간 세상 백 겁은 하늘나라 한순간, 천년 고찰은 석가세존이 지나간 곳이로다.
삼신산 다섯 봉우리, 어찌 같은 해가 비춘다고 말하리오.
북두칠성 무지갯빛 띠니, 불탑에 목탁 소리가 가랑비 내리듯 분분하도다.
우뚝 솟은 높은 산에 비 세우니 상서로운 구름 그 위 감싸도다.
팔부八部가 보였다 안 보였다 하니 천차만별이 의지하도다.
내가 이 비명을 짓노니, 조서를 받든 뒤에 먹물 옷(緇衣) 입었다 하소서.
광무 8년 갑진(1904) 3월에 세우노라.
4) 1921년, 여섯째 만일회
1921년 당시 건봉사 주지 이대련李大蓮, 감무 이금암李錦庵, 전 주지 이운파李雲坡 등이 만일원에 선원을 새로 설립하기로 하고 장안사長安寺에 주석하고 있던 방한암方漢岩 스님을 청하여 만일계를 만들었다. 20여 년 뒤인 1940년대에 건봉사에 살았던 정두석鄭斗石 서냉의 증언에 따라 건봉사 만일계의 수행 방법을 알 수 있다. (洪潤植, 「건봉사 가람의 성격」, 『건봉사지 지표조사보고서』, 고성군, 1990, 43쪽)
(1) 만일을 기하여 염불을 하되 한 사람이 만일 간을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만일원에서의 염불은 만일 간 지속하되 염불승은 바뀐다.
(2) 하루의 염불 시간은 오전에 10시부터 12시까지 오후에 3시부터 5시까지 4시간 정도 한다.
(3) 염불의 방식은 굉쇠와 북을 치면서 그 장단에 맞추어 나무아미타불을 큰 소리로 염불한다.
卍 보정의 꼬리말
제1차 발징 화상의 만일회를 계승하는 제2차 만일회가 1801년에 개설되었다고 되어 있다. 앞에서 보았지만 2차가 이미 고리(高麗) 시대에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어서 제3차 만일회가 1851년, 제4차 만일회가 1881년, 제5차 만일회가 1908년, 제6차 만일회가 1921년에 조직됨으로써 건봉사는 만일 염불회의 성지가 되었다. (위키피디아).
이 비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3차와 4차에도 극락 가서 태어난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데 제대로 된 기록이 없다는 것이 크게 한스러운 일이다. 5차에 연꽃모임을 언급하면서 “첫째 (만일연회)에서는 붇다가 나투시는 것을 직접 보았고, 둘째는 허공에서 난 (붇다의) 음성을 들었는데, 네 번째는 사리만을 얻었으니 지금은 예전에 미치지 못하고, 갈수록 떨어지고 갈수록 줄어들어 약해지지 않는가?”라는 현황 파악에 대해 스스로 반론을 펴는 긴 글이 있지만 아름다운 말재주만 부려 아주 설득력이 떨어진다. 실제로 조선 후기 많은 사람이 ‘사리’에 대한 신앙 때문에 ‘극락 간 사람’에 대한 기록은 거의 하지 않은 풍토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엮은이의 38년 전 수첩에 실린 사리에 대한 글이 남아 있다. 당시 처음 발간되는 『불교사상』이란 월간지를 볼 때인데 1984년 8월호에 “100살의 혜암 선사에게 인생을 묻는다”라는 글이 실렸는데, 선산 도리사의 사리를 친견하고 읊은 시가 있다.
태조산 도시에
옛적에 감추어졌던 사리가 나타났다고 하니
자기 사리는 보지 못하고
사부대중이 친견코자 타고 달리는구나!
내가 부처님 사리를 보니
부처는 사리에 있지 않은지라
사리는 부처로 쫓아 나왔으나
보는 부처가 부처 사리를 본다.
1998년 8월 김해장 스님(건봉사 주지), 한보광 스님(동국대 교수), 김재일 법사(동산 반야회장) 같은 공동대표와 3,000명의 불자가 참여하는 6차 만일 염불회를 시작하였는데 1921년 만일 염불회는 셈하지 않았다. 2021년 ‘아미타 정토 극락 도량’인 금강산 건봉사가 100년 만에 제7차 염불 만일기도에 입재 하며 남북통일과 코로나19의 조기종식을 발원했다. 강원도 고성 건봉사(주지 현담 스님)는 8월 24일 경내 극락전에서 ‘제7차 아미타 염불 만일 거도 입재식’을 갖고 27년 5개월간의 염불 수행 대장정에 들어갔다(『불교신문』). 많은 ‘극락 간 사람’이 나오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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