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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까오리빵즈(高丽棒子) 이야기
(15화)
다시 중국으로 이진영루상
여러 루트를 통해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다시는 중국 땅을 밟지 못할 것이라는 것과, 각종 대중매체를 통해 조 씨 형제와 한 묶음이 되어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된 직원들은 하루하루 시름에 사로잡혔다. 수애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하루도 편히 잠을 잘 수 없었다.
수애 자신도 머리로는 수없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부정을 했지만, 생각이라는 녀석을 따라 어느 시점에 도착을 해보면 마침내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눈으로 보고만 있었다는 것 자체가 혐오감으로 찬물을 끼얹었다. 그 두 괴물들을 증오하고 두려워하며 할 수만 있으면 조 씨 형제의 목이라도 비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것이 잘못이었다.
그 생각이 수애 머리의 가운데를 온통 차지하고 있어 이 세상 어느 인간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함을 느꼈다. 이미 수애의 마음에는 밤이나 낮이나 편안한 안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고 처방받은 안정제를 먹고 나서야 잠깐 동안 망각의 늪에 빠질 수 있었다. 그것도 잠시뿐, 밤마다 자는 동안 끔찍하고 무서운 악몽에 시달리다 눈을 뜨곤 했다. 그러다 보면 수애의 심장은 갓 잡아 올린 죽기 직전의 생멸치 마냥 팔딱거렸다.
두 달이 다 되어가지만 순실 언니에게 한차례 다녀 온 것과 대책반 회의에 참석하는 것 외에는 문밖출입을 하지 못했다.
수애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간적, 시간적 제약에 따른 압박으로 마치 공기가 없는 무중력 상태에 놓인 듯 숨 쉴 수 없는 고통이 끝도 없이 밀려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터전이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비현실의 세계가 되어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 마치 마녀의 저주로 높은 성 안에 갇혀버린 듯했다.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상실감, 혹은 억울함과 원망,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일련의 것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간을 보내던 수애는 자기혐오가 목구멍으로 밀려올라왔다. 그럴 때면 수애는 조심스럽고 냉정하게 생각하곤 했다. 약이냐, 면도칼이냐, 투신이냐 것도 아니면 밧줄?
이렇게 사정없이 짓누르는 고통으로 인해 그나마 남아있는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면 흉악한 생각과 어둡고 무시무시한 생각만이 수애 마음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면 수치와 혐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라는 자각으로 어두운 절망 속에서 몸부림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며칠 전 중국에 있는 황라오스에게 전화를 걸고 난 후 수애의 인내심은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큰일 났어요! 집 주인이 집 열쇠와 몽실이를 뺏어갔어요!'
원래 아파트 재계약은 만료일을 기준으로 2개월 전에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아직 만료일 까지 5개월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집주인은 수애가 조광피혁에 다닌 사실을 알고 야반도주를 했으므로 다시는 중국으로 올 수 없다고 생각하고 열쇠와 몽실이를 뺏어갔다고 했다. 만약 이주일 안에 일 년치 집세를 보내지 않으면 집 안의 모든 짐과 몽실이를 팔겠다고 협박을 했단다.
수애가 처음으로 그 집에 세를 얻어 들어갔을 때 집 주인은 커다란 꽃바구니를 들고 와 환영한다며 인사를 하고 갔었다. 그리고 매년마다 재계약을 할 때는 고맙다면서 집세 일부를 깎아주기도 했다. 처음 입주할 때는 24,000위안이었지만 매년 깎아주어 18,000위안까지 내려 받았다. 하지만 이런 사태가 일어나자 재계약 날짜가 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집세가 올랐다며 25,000위안을 보내라는 거였다. 대놓고 병신 취급이었다.
승아의 사진 한 장과 강아지 한 마리도 챙기지 못한 자신이 한심하고 바보 같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조 씨 형제가 삼킨 많은 돈을, 목숨만이라도 건지자고 야반도주한 직원들이 빼먹은 돈으로 알고 있었다. 거기다가 자신의 손때가 묻은 집안 살림과 평생 키우고 싶었던 강아지까지 모두 빼앗기게 되었다. 그래도 입 뻥긋 못하는 것이 지금 수애의 처지였다. 비참함 그 자체였다.
'그래, 승아 아빠! 당신의 유골함을 받고 나서도 이랬지. 앞이 보이지 않아 두렵고 무섭기만 했어. 가슴에 수술자국이 있는 핏덩이를 두고 차마 당신을 따라 갈 수가 없어 오랫동안 고민을 했지. 불덩이 같은 아이를 안고 병원을 찾아가기 전까지는 왠지 당신 곁이 더 편안할 것 같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어. 내 발목을 잡은 건 우리 승아였지만. 그런데 이젠 우리 승아도 많이 컸고 내가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나이가 된 것 같아. 이제는 정말 너무 지친다. 많이 힘들어…… 내가 당신과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을 때 서로 주고받은 안녕이라는 말이 왜 그렇게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 같고, 당신과의 대화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았는지 그동안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해봤는데 이제야 그 이유가 떠올랐어. 그 날 당신의 목소리를 듣던 마지막 날 '사랑해'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고. 머잖아 내가 당신 곁으로 가게 되면 꼭 먼저 해줄게. 사랑한다고. 당신이 그렇게 비참하고 추하게 갔더라도 그래도 나는 당신 곁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으니까. 그러니까 미워하지 않는다고. 아니 사랑한다고…….'
술과 함께 넘긴 수면제가 수애의 온몸을 나락으로 끌고 갈 즈음 전화벨이 울렸다. 멀리 들리는 전화벨 소리의 끝자락을 잡고 수애는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살짝 들었다. 유골함을 받기 전 듣던 벨소리와 너무도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른해진 손끝으로 휴대전화를 들었다. 박 부사장이었다.
"네……."
"오 부장! 어디 아파? 목소리가 왜 그래?"
"괜찮…아요……무슨……?"
"고민고민 하다가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어서. 오 부장한테 꼭 해야 할 말이 있어! 차 부장에 대한……!"
"……."
수애는 엎드려 기었다. 떠지지 않는 눈꺼풀이 다 덮이기 전에 문 쪽으로 다다라야했다. 한번 기어가고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또다시 엎드려 기었다. 힘겹게 잡은 손잡이를 비틀어 열고 목구멍에서 막혀 나오지 않는 소리를 겨우 밀어냈다.
"엄…마…!"
* * *
박 부사장이 직접 만든 귤 차라며 예쁜 잔에 한 가득 끓여왔다. 새콤한 귤 향이 수애의 코끝을 향긋하게 감쌌다. 박 부사장은 회사 작업복 대신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여전히 검정 뿔테안경 너머의 눈빛은 선한 웃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박 부사장의 전화를 받고 나서, 수애는 그대로 응급실로 실려가 위세척을 하고 3일 만에 그를 찾아올 수 있었다.
"많이 힘들었지? 얼굴이 꽤 많이 상했어!"
"말도 마세요. 죽다 살았어요! 후훗~!"
말을 해놓고도 멋쩍어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 약간 허탈한 웃음이.
"승아 아빠에 대한 이야기가 뭔가요? 궁금해서 전화로 여쭤보려다가 참았어요. 직접 들어야 할 것 같아서!"
"그게……."
박 부사장은 귤 차를 들고 후후 불어 천천히 마시면서 시간을 버는 사람처럼 보였다.
"오 부장! 오해 없이 들어줬으면 좋겠어! 내가 엄청 고민을 했어. 왜냐하면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혹은 차 부장에 대한 것이 맞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아 섣불리 말을 할 수가 없었지."
이번에는 찻잔을 두 손으로 꼭 감싸 쥐고 시간을 끌었다.
"내가 사직서를 내고 한국으로 오기 얼마 전에 조 회장과 조 사장이 하는 얘기를 얼핏 들었는데, 조 회장이 '그럼, 차 부장이 그것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고?'그렇게 말할 때 내가 듣게 됐지. 조 회장이 나를 보고 입을 다물고는 내가 나오니까 다시 얘기를 하는데 뒷얘기는 듣지 못했기 때문에 긴가민가해서 말 할 수가 없었어. 왜냐하면, 내가 말을 하게 되면 분명히 오 부장은 그 일을 알아보려고 두 조 씨 형제 뒤를 캤을 거고 그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사람들이 오 부장을 가만 두지 않았을 거야. 내가 알기로 그 사람들은 자기들한테 걸리적거리는 건 돈 몇 푼에 깡패들을 시켜서 끝장을 내버리거든."
"그것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면? 그게 무슨 뜻일까요?"
"글세, 그게 확실치 않아 말을 못 한 거야. 그렇다고 그동안 오 부장이 차 부장 일로 맘고생 한 거 뻔히 아는데 입을 다물고 있을 수도 없고. 내가 볼 땐 아무런 의미 없는 말 같지는 않았어. 뭔가 중대한 비밀얘기를 하듯 얼굴이 심각했었거든."
"혹시, 뺑소니 사건을 두고 하는 소리 아닐까요?"
"건 확실치 않지만, 조금 맘에 걸리는 건…… 차 부장이 사고를 당할 당시 이상하리만큼 조 사장과 붙어 다녔다는 거야. 나중에 오 부장 말을 들으니까 조금 이해는 가긴 했지만 말야. 승아가 아파서 돈이 필요했다는 말 말야!"
"원래는 친하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친하기는? 차 부장은 조 사장 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 사람들 하고 왕래가 거의 없었어. 그 친구 있잖아! 이름이…… 교남 쪽에 사는 친구! 그 친구가 유일한 친구였을걸!"
"류인형 씨요?"
"어, 맞아! 그 친구 말고는 왕래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 차 부장이 고밀에 사니까 한번 나오기도 힘들었을 거고!"
"그럼, 왜 조 사장과 만났을까요?"
"아마도 돈 때문이 아닐까? 조 사장은 하도 수작을 잘 피우는 사람이라 돈으로 꾀어냈을 수도 있지."
"역시 돈이 문제군요."
"음, 혹시나 해서 말인데 민홍선은 뭔가를 알고 있지 않을까? 조 사장 입이 그렇게 무거운 타입은 아니니까."
"홍선 이가요?"
그렇게 박 부사장과 수애는 승아 아빠에 대한 이야기와 그동안 회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수애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태에 대해 답답함을 하소연했다. 딱히 대책이라고 할 건 없지만 그래도 박 부사장과 이야기 하는 자체가 수애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대화가 저녁식사 시간으로 이어져 그의 엄마와 함께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기 전 수애가 박 부사장에게 물었다.
"그런데요, 부사장님은 혹시 이런 사태가 벌어지게 될 줄 알고 있었나요?"
"아주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네! 사실, 감은 어느 정도 잡고 있긴 했지. 나만 보면 멍청한 놈이라고 욕을 하던 조 회장이 내게 중요한 임무를 맡길 때부터 꼼수가 있겠다는 걸 눈치 채지 않을 수가 있겠어?"
"그래서 그만두고 가시기 전에 저더러 같이 가자고 하셨던 거네요!"
"오 부장하고 건우를 데리고 못 나온 게 내 실수였어. 억지로라도 끌고 나왔어야 하는건데! 미안해!"
"왜, 조 씨 형제들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미안해할까요? 정작 미안해 할 사람은 마음 편하게 잘 살고 있는데?"
박 부사장은 수애가 버스를 타고 멀어질 때까지 그 자리에서 계속 손을 흔들고 있었다. 수애도 박 부사장이 까만 점으로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버스가 'L'자 커브 길을 돌아 그가 보이지 않자 자리에 바로 앉아 김원성이 가르쳐준 홍선의 전화번호를 찾아 눌렀다. 한참동안 신호음만 울리더니 힘없는 홍선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나다, 수애!"
"……."
"듣고 있니?"
"혹시 돈 달라는 전화라면 포기하는 게 좋아!"
"아니, 물어볼 말이 있어서 전화했다! 어디니?"
수애는 홍선이 가르쳐준 요양원으로 찾아갔다. 밤새도록 차를 타고 와서 그런지 많이 피곤했다. 홍선이 알려준 병실로 찾아가자 머리에 하얀 망사를 뒤집어쓰고 누워 있는 여자가 보였다.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그 여자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 밑에 검은 그늘이 짙게 드리워 있고 볼은 쑥 패어 눈 밑 만큼이나 어두워 보였다. '왔어?'라고 입을 벌리니 뻐드렁니가 흉하게 드러났다. 머리카락이 없는 마귀할멈이었다.
느낌은 분명 홍선인데 너무나 변한 몰골에 수애는 '여기, 민홍선 씨라고 혹시 계신가요?'라고 물을 뻔했다.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되긴? 병 걸려서 오늘 낼 하는 거지!"
홍선은 여전히 남의 얘기를 하듯 별 감정 없이 말을 뱉어냈다.
"낙태 했던 게 문제였던 거니?"
"그 전에 유방암초기였는데 모르고 있다가 자궁 쪽으로 전이가 됐나봐. 난 단순 출혈인줄 알고 방치했고. 언니 말을 들을 껄 후회하고 있는 중!"
그 전에 보았을 때 왠지 병색이 돌아 물었던 적이 있었다. 아마도 그 때가 시초였던 모양이었다.
"왜? 고소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왜 왔어?"
홍선이 힘에 부치 듯 등을 기대면서 물었다.
"이런 상황에 묻기 좀 미안한데, 혹시 조 사장이 승아 아빠에 대해서 무슨 말을 했었는지 알고 싶어서……."
수애는 항암치료를 받아 검게 변한 홍선의 얼굴을 보니 묻기 미안한 마음에 말끝을 흐렸다.
"내가 이렇게 된 마당에 숨길 게 뭐가 있겠어? 그 개새끼들 잡아 죽여도 시원찮을 판에!"
홍선이 아파 한국으로 나오면서 두 조 씨에게 병원비를 요구하자 둘 사이에서 오가며 놀아났던 것을 문제 삼아 김원성에게 불겠다고 오히려 협박을 당했다고 했다. 그리고 김원성을 교장자리에서 내쫓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홍선의 말로 표현하자면 모든 것이 두 조 씨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였단다.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고 조 사장이 그 사람 협박하는 소리는 들었어!"
"그 사람이라니?"
"산속에 있던 모텔에서 만났던 사람 있잖아! 그 후배라는……!"
"아! 그 횟집에서?"
"횟집은 무슨, 모텔이라니까!"
수애는 토요타를 타고 오면서 명함을 내밀었던 조 사장 후배를 생각해냈다.
"무슨 협박?"
"그 사람한테 전화하면서 제 말을 안 들으니까 '너 차 부장처럼 죽고 싶냐?'그러더라고."
그 후배라는 사람도 수애에게 협박 때문에 그런 짓을 했다고 말했었다.
"언니가 나 낙태한 거 알고 있다고 조 사장한테 말했지. 난 그 새끼한테 돈 좀 뜯어내려고 그런 건데 자기 애 지운 걸 알고 있다니까 언니를 옭아매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그 후배한테 언니 덮치라고 그런 거야! 후배가 안한다고 했나봐. 그랬더니 그렇게 말하데! 너 차 부장처럼 죽고 싶냐?"
수애는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는 느낌이 들었다. 잠을 못잔 탓도 있지만 손이 심하게 떨렸다.
"우리 가게에 중국 깡패새끼들하고 자주 왔거든. 나한테도 말을 안 들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보내버린다고 협박질을 얼마나 해대던지. 그래서 몸 대주고 이 모양 이 꼴이 됐지 뭐야?"
수애의 무릎이 떨리고 있었다. 홍선과 더 마주앉아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가방을 들고 일어서는 수애에게 홍선이 힘없이 말했다.
"다른 거는 하나도 마음에 안 걸리는데 언니한테 몹쓸 짓 한 게 쫌 미안하네! 왜 그렇게 멍청하게 당하냐? 바보같이!"
수애는 홍선을 돌아보았다.
"몸조리 잘해라!"
그렇게 말은 했지만 홍선의 모습을 보니 다시는 볼 수 없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들었다.
"그 새끼들 혹시라도 만나면 내 몫까지 원수 갚아줘! 난 아마도 못하고 갈 것 같으니까!"
수애는 그러마하고 쇠약해지고 지쳐 보이는 홍선에게 대답하고 그 곳을 나왔다.
수애는 집으로 돌아와 며칠을 고민했다. 그 문제에 대해 백가지도 넘는 각도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상한 것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문제는 시작을 하지만 만나는 해답 지점은 한 곳이었다.
'다시 중국으로!'
"너, 미쳤니? 거기 가면 죽는다며!"
"여기서 죽으나 거기서 죽으나 마찬가지 아니야?"
중국으로 다시 가겠다는 수애를 만류하며 수애 엄마는 눈물을 흘렸다.
"엄마! 나 중국 가서 할 일이 있어. 만약에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난 살아도 죽은 목숨이랑 같아! 엄마가 이해해줘!"
"딸년이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데 이해하는 엄마도 있다니?"
"엄마! 나한테는 아무것도 해결 못하고 주저앉아 있는 이곳이 불구덩이야! 가게 해줘 엄마."
"딸년 앞세우고 내가 어떻게 살라고?"
"빈껍데기로 살면 여기서도 오래 가지는 못할 거 같아."
수애 엄마는 수애를 안고 울었다.
"엄마! 내가 찾으려는 건 사람들의 사고 밑바닥에 늘 흐르는 귀에 익은 노래 박자처럼 언제나 떠오르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하고, 우리가 아무런 생각 없이 들이 마시고 내쉬는 공기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거야. 하지만 이게 없으면 우린 곧 죽고 말지. 뭔지 알아? 그건 바로 자유야! 내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는 자유!"
여전히 울고 있는 수애 엄마의 등을 토닥이며 수애가 속삭였다.
"엄마, 우리 승아 잘 부탁해!"
울음을 그치지 않는 엄마를 뒤로하고 수애는 집을 나섰다.
승아 아빠가 있는 납골당으로 가는 길이었다. 을씨년한 납골당 건물 위로 한낮의 밝은 금빛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하지만 수애의 뺨으로 스치는 바람은 칼처럼 날카로웠다. 이불을 덮어 놓은 것처럼 적막이 흐르는 건물 주변으로 수애가 걷는 내내 또각또각 구두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승아 아빠의 유골함이 보관되어 있는 곳으로 익숙하게 찾아간 수애는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앞에서 멈춰 섰다.
"승아 아빠, 잘 있었어? 춥지는 않고?"
수애는 유리칸막이 뒤로 보이는 사진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승아 아빠, 나 많이 생각 해 봤는데 아무래도 다시 중국으로 가야 할 것 같아. 죽은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알려 준다더니, 당신이 나한테 무슨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직 잘 모르겠어. 당신,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거야?"
수애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승아 아빠, 중국 가서 당신의 죽음에 대해서 반드시 밝혀낼게. 그리고 잃었던 내 자신도 찾을 거야. 잃어버렸던 명예를 찾을 거야. 당신과 나의 명예! 이건 남들이 알아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 스스로를 위한 일인 거야. 내 마음속의 자유! 그래서 더 중요해! 그렇지 않고는 앞으로 잘 살아갈 자신이 없어. 나, 이 일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절대 울지 않기로 결심했어. 당신이 도와줘! 우리 승아도 부탁해! 나 중국에 들어가면 다시는 당신 못 찾아올지도 몰라. 아니다! 그냥 당신 만나러 가면 되겠다. "
수애는 손으로 유리 너머의 사진을 다시 한 번 쓸어내렸다. 보조개가 패도록 애써 웃어 보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랑해!"
* * *
수애는 한참동안 휴대전화의 버튼을 만지작거렸다. 전화번호는 이미 눌러두었지만 통화버튼 주위로 엄지손가락이 맴돌았다. 엄지손가락이 맷돌처럼 돌아가는 동안 수애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생각으로 톱니바퀴가 맞물려 움직였다.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던 수애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손가락에는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벨이 울리자 수애가 조심스레 입술을 움직였다.
"웨이, 니하오!…쑨쓰지? 워쓰우쑈아이!(여보세요, 안녕하세요!…손 기사님? 저 오 수애예요! 喂,你好!…孙司机? 我是吳秀爱!)"
전화기 너머에서 반가운 쑨쓰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애는 청도공항에 도착하는 날짜와 시간을 말해주고 와줄 수 있는지 묻자 쑨쓰지는 흔쾌히 그러마고 대답하고 통화는 끝났다.
쑨쓰지가 반갑게 인사를 했지만, 수애가 청도공항에 도착하는 날 조성피혁의 피해자를 데리고 나와도 혹은 수애의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끌고 간데도 수애로서는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무런 해결도 못하고 그대로 끌려가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한대도 아무도 수애를 구해줄 사람은 없었다. 그냥 쑨쓰지 손에 운명을 맡기고 중국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수애는 승아의 방으로 갔다. 물고기가 빙글빙글 도는 조명등에 비친 침대 위에는 승아가 자고 있었다. 이불 위로 한쪽 다리가 나와 있었다. 다리 사이에서 이불을 빼내 잘 덮어주었다. 포동포동했던 뺨은 젖살이 빠져 예쁜 달걀마냥 매끈했다. 뺨 위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귀 뒤로 넘겨주며 수애가 조용히 속삭였다.
"못난 엄마 만나 미안해! 일이 잘 해결되면 그땐 엄마랑 꼭 붙어살자 승아야! 예쁜 우리딸……."
이불 안에 숨어 있는 엉덩이를 손으로 토닥이고 수애는 그 방을 조용히 나왔다. 문을 닫기 전에 약한 불빛에 비친 승아의 얼굴을 꽤 오랜 시간 바라보았다. 마치 승아의 자는 모습을 눈 안에 그려 넣는 사람처럼.
* * *
"언니, 나 수애!"
"수애야! 니 꼭 그렇게 가야되나?"
기내에는 사람들이 선반에 물건을 올리기도 하고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언니는 내가 죄인처럼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
"그기는 아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기냥저냥 안 사나?"
"언니, 그냥은 살아지겠지만 목에 가시가 박혀 있는 것처럼 평생을 마음에 짐을 지고 살고 싶지는 않아!"
곧 이륙하니 노트북이나 휴대폰 사용을 중지해 달라는 승무원의 안내 멘트가 기내에 흘러나왔다.
"언니, 혹시라도… 부모님하고 승아 가끔 찾아봐 줄래?"
수애는 혹시라도 '내가 돌아오지 못하더라도'라는 말을 하려다가 슬쩍 감추고 뒷말을 이었다.
"한국은 내가 지킬테이 니는 일 잘보고 온나! 해결이 잘 되마 우리 같이 잘 살아보자!"
곱상한 얼굴의 승무원이 수애 앞에서 생글 웃으며 전화기를 끄라는 무언의 압력을 보내고 있었다. 순실 언니의 '조심 하래이!'를 마지막으로 전원은 꺼졌다.
수애의 무거운 마음과는 달리 비행기는 하늘 위로 가볍게 날아올랐다.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중국을 향해 구름 벽을 뚫고 힘차게 달려 나갔다.
짐을 챙겨 나오니 입국심사대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수애가 여권을 내밀자마자 공안들이 달려와 수갑을 채울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어 가장 긴 줄 뒤에 섰다. 오늘 따라 줄이 빨리 줄어든다는 생각을 하면서 수애는 휴대전화를 꺼내 전원을 켰다. 석 달 가까이 지난 최근기록이었지만 쑨쓰지의 전화번호가 가장 위에 적혀 있었다. 통화버튼을 누르자 통화벨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쑨쓰지가 도착했냐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입국심사가 끝나고 나가겠다는 말을 전하고 전화를 끝내자 수애 차례가 다가왔다.
수애는 조심스레 여권을 내밀었다. 여권의 여기저기를 뒤적이던 직원이 무엇인가 망설이는듯 하더니 도장을 찍어 수애에게 돌려주었다. 수애는 떨리는 손으로 여권을 돌려받고 그 자리를 종종걸음으로 빠져나왔다.
도착한 사람들을 마중 나온 이들 중에 호리호리 하면서 까무잡잡한 얼굴의 쑨쓰지가 바지주머니에 손을 꼽고 있다가 수애를 보자 손을 힘차게 흔들어 주었다. 그 옆에는 동그란 얼굴의 황라오스가 양손을 가슴쯤에 올리고 손가락을 활짝 벌려 환영인사를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듣던 무시무시한 상황과는 달리 모든 것이 그 전과 다름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다가 어디선가 숨어 있던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와 수애의 뒷덜미를 잡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수애가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모두들 자신들의 길을 가기 바빠 보이는 사람들뿐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쑨쓰지가 다가와 수애의 여행용가방을 받아들고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인사를 했다.
"환잉꽝린!(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欢迎光临!)"
수애가 황라오스를 살짝 끌어안자 환영한다는 인사를 하면서 수애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다. 쑨쓰지가 앞장을 섰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그동안의 안부를 전하면서 뒤를 따랐다. 수애는 걷는 내내 주변 살피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눈에 익은 길을 따라 쑨쓰지의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광피혁 소식 들었지요?"
수애가 조심스레 차 안에 있는 두 사람에게 물었다.
"난리도 아니었어요! 빨리 피하길 잘했어요. 조선족인데 한국 사람으로 착각한 어떤 사람은 여러 공인들한테 끌려가 맞은 사람도 있고, 한국사람 중에 조금 늦게 피한 어떤 이는 끌려가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겨우 살아났어요!"
황라오스가 조광피혁에 다니던 직원에게 들었다면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여전히 양쪽 뺨이 발그레 물들어 있었다.
"얼마 전까지 그 아파트 관리실하고 한국 사람들 살던 집 앞에 깡패들이 살벌하게 진을 치고 있었어요."
쑨쓰지가 백미러를 통해 수애를 보면서 말했다.
"내가 이렇게 와도 되는 상황인지 어쩐지 모르고 무작정 왔네요. 좀 걱정스럽긴 해요!"
수애가 다시 백미러를 보면서 말했다.
"아직까지는 좀 위험하긴 해요. 되도록 집안에 있는 게 좋아요!"
수애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수애의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을 했으나 쑨쓰지의 차는 수애의 집 입구에 정확하게 도착했다.
"바깥출입을 할 때는 꼭 전화 줘요. 다른 일 다 제쳐두고 제일먼저 달려올게요. 몸조심해요!"
쑨쓰지가 여행용 가방을 집 안까지 들어다 주면서 남기고 간 말이었다. 수애는 그러마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집 주인이 빼앗아 가고 하나 남은 열쇠를 황라오스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전해주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하얀 먼지가 쌓인 바닥에 신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뒤뚱거리며 달려 나와야 할 몽실이는 없었다. 거실 한쪽 귀퉁이에 몽실이의 집이 삐딱하게 놓여 있었고 물과 밥을 함께 먹을 수 있는 밥통은 옆으로 엎어져 있었다. 발자국을 따라가니 집주인이 들어와 어떻게 했을지 눈에 보이는 듯 했다. 우악스럽게 몽실이를 잡아채자 겁에 질린 녀석이 슬쩍 오줌을 지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수애 마음이 아파왔다.
식탁 위를 보자 검정비닐이 놓여 있었다. 수애가 다가가 열어 보았다. 수애가 즐겨먹던 만두가 봉지 가득 들어 있었다.
"오자마자 밥을 못할 것 같아서 좋아하는 만두 좀 사다놨어요. 맛있게 드세요."
황라오스는 수애가 마실 물도 미리 주문을 해두었다. 황라오스의 말이 끝나자 수애는 그녀의 손을 잡고 고맙다는 말을 딱 한 번 했다. 목이 메서 도저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집 안을 대충 청소하는 동안 황라오스는 수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도와주었다. 청소가 끝나자 수애가 떠나기 전의 모습으로 조금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보일러도 돌려두어 온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몽실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다시 이 집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어요."
믹스커피를 종이컵에 타고 만두는 접시에 담아 식탁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수애가 말했다.
"황 선생님, 처음에 조광피혁 소식 듣고 놀랬지요?"
"네, 굉장히 놀랐어요. 처음에는 수애씨도 그 사람들과 같이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실망했어요! 하지만 나중에 여러 곳에서 말을 들어보니 사장 둘이서 돈을 가지고 도망 간 거라고 하대요. 중국어 수업을 받는 한국 사람한테 들었어요."
수애가 포크로 만두를 찍어 황라오스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아는 중국 사람들은 몇 명 되지 않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왜 아니겠어요!"
두 사람은 한참동안 이야기를 했다.
집에 가야겠다는 황라오스를 따라 나오자 아직은 위험하지 않겠냐는 질문에 수애는 매도 빨리 맞는 게 속편하다는 한국 속담을 들려주었다. 그러자 동그란 얼굴이 미소를 지었다. 수애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황라오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전화 하라는 말을 남기고 찬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는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수애는 아파트 내에 있는 소매점으로 향했다. 미닫이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자 주인아저씨가 반색을 하면서 맞아주었다.
"언제 왔어요?"
"오늘요."
"어째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주인아저씨는 쯧쯧 혀끝을 찼다. 그의 조카도 조광피혁에 다녔다가 월급도 받지 못하고 울면서 고향으로 내려갔다고 했다. 필요한 물건을 사면서 왠지 미안한 마음과 불안함에 가게 안을 둘러보지도 못하고 수애는 서둘러 돈을 지불했다. 거스름돈을 받고 나오려는데 미닫이문이 열렸다.
택유 언니가 문을 열고 가게 안의 수애를 보자, 주춤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마치 염병환자를 본 사람처럼 멀리 떨어져 입을 가렸다. 한참 동그랗게 뜬 눈을 깜빡이지도 않던 택유 언니가 입을 열었다.
"여기를 어떻게 온 거야?"
"어떻게 오긴, 비행기 타고 왔지."
"여기 왜 왔냐고?"
"내 집이 있으니까 왔지."
"아니, 그게 아니라… 목숨 걸고 온 거야?"
"언니,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왜 내 목숨을 걸어? 나도 피해자야. 월급이며 퇴직금 하나도 받지도 못한 피해자라고.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왜 그렇게 말해?"
택유 언니는 여전히 수애와 떨어져 말을 이었다.
"아니, 다른 사람들은 죽을까봐 무서워서 하나도 못 들어 왔는데 혼자 들어왔다니까 놀라서 그렇지!"
"난 그 사람들이 아니잖아."
물건이 든 검정 비닐을 받아든 수애가 밖으로 나오자 택유 언니는 전염병이라도 옮을까봐 걱정하는 사람처럼 멀리 물러나 찬바람 속에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수애가 '먼저 갈게.'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택유 언니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웬일이야? 여자가 깡도 쌔네! 죽을라고 환장을 했나?"
조명등이 듬성듬성 켜진 아파트를 걸어오면서 수애는 이를 꽉 물었다. 검정 비닐봉지를 잡은 손에도 힘을 주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한 수애의 몸부림이었다.
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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