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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청 이야기
* 해설 : 조선 중기의 학자 고청 서기에 관한 구비전승 자료들이다. 서고청은 미천한 출신으로서 학자의 반열에 오른 독특한 이력을 지닌 인물로서, 공주 계룡산 지역에는 그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그의 독특한 출생담으로부터 남다른 예지력에 관한 것 등이 여러 층위로 전승되고 있다. '전설'에 해당하는 것이 주종을 이루는 가운데 사화(구비역사)의 성격을 지니는 것과 민담적 요소를 띠는 것이 두루 공존하고 있다. 서고청 이야기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신동흔의 박사학위 논문 참조.
* 자료 : 아래 자료들은 신동흔이 현지조사를 통해 수집한 것들이다. 각 자료 앞에 구연상황이 있다. (자료 수량이 많은 관계로 발췌하여 수록한다.)
[서기 1] 서고청의 출생과 성장
1991.7.15. 공주군 계룡면 화헌리. 정은상(73세)
* 제보자 자택 /조사자 1명 /조사자 유도로 구연
[조사자: 여기, 서고청 선생이 여기 공주 출신이라고 그러던데…]
예. 서고청 선생은 그 여기서 반포면이라고 그게 계룡산 너머쥬. 거기서 인제 참 탄생하셨죠, 거기서. 거기 인저 그 공암에 고청선생의 거시기가, 그 영정이 있쥬 거기. [예] 그분이 저 그저 공주 대전 갈라먼 그 도로, 거시기 길갓이에 그 반포면 공암 가먼 서고청굴이라는 굴이 있이유, 거기 [예] 굴이, 바위굴이 크게, 신작로가, 신작로서 쳐다보면 뻥 뚫려 있쥬.
그분 전설은 여기서 다들 참 네려오는 전설이구먼서두. 그분은 그 인저 어머니가 비부루다가, 이평사집을 인저, 이평사란 분이 거기 사넌디 그 집 비부루다가 그러니까 인제 옛날에 종이쥬 그러니께, 여자 여비루다가 인저, 천한 여비루 있넌디, 거 새를 보러 인저, 가서 인저 새를 보러 가서, 새를 보러 그 어머니가, 고청의 어머니가 가서 새를 보는디, 그담 인저 비가 와서, 느닷없이 쏘내기가 오니께 인저 굴로 들어간 거유. 굴속에 비를 피하러 들어갔는디, 거기 참 길갓이니께는 옛날이는 소금장사가 지게이다가 지구 댕기먼서 소금을 한 되박 두 되박 팔구서 이릏게 생활을 했으니까, 소금장사 역시 비가 오니께 소금을 지구 굴로 들옹거유, 이제 소금짐을 짊어지구. 들어와보니께 처녀가 있으니까는, 그냥 거기 그 굴속에설랑은 참 강간을 했던 어쨌던 이 소금장수하고 이릏게, 참 그렇게 접촉이 됭거유. 그라구서 할수없이 인저 강에불입(?)을 당했던 어쨌던 처녀는 그렇게 당하구서 집으로 오구, 소금장수는 그냥 가버리구.
그랬는데 인저 차차차차 인저 날이 가니까는 달이 지나고 나니께, 그 처녀가 인저 배가 자꾸 불러 지니까는 그 곡절을 그 인저 주인이, 상전이 인저 물으니까는 거기서 그렇게 당했다는 거쥬, 그러니께,
"게 그 사람 나갈 적에, 그 사람 성두 몰르느냐?
그러니께 아들을 나먼 아들이 성이 있어얄 꺼 아뉴?
"그래 승두 물어보지 뭇했느냐?" 그러니께
아 그 승을 참, 그 고청의 어머니 역시두 지혜가 있던지, 그럭하구 나가니께 일어나설랑, 서로 헤어지는디,
"그 당신 승은 뭐유?" 이릏게 물었다능규. [예] 그러니께,
"내 승은 이가라구, 참, 서가라"구.
"그, 이름은 뭐냐"구 그러니께,
"이름은 알 거 없다"구. "그냥 내 성은 서가, 서가라"구 하면서는 떠낭규.
그래서 인저 서고청이라구 인저 이름을 징 거쥬. 아들이, 아들을 났넌디. [예] 서고청이라구 이름을 딱 져설랑은 이렇게, 거기서 할수없이 그 집이설랑 비부루다 애를 키우능 거쥬.
키우는디, 참 한 육칠세가 되닝까는 다른 애들보담 특이하게 총명해유, [예] 서고청이. 그래서 인저 이 그냥, 뭐 암만 재주가 있어봤든 지 애비두 읎지, 지 아버지두 웂지, 더군다나 남 비부지, 공부를 시킬 수가 웂잖아유? 더군다나 종의 몸이서 난 애니까 천덕꾸레기밲엔 되지 않구. 결국은 커야 또 종노릇을 하능기구. 그래서 뭐 공부 같은 시킬 가망두 뭇 내구 그냥, 밥이나 멕이구 그냥, [....] 나무나 시키구 인저, 그럭해서 인저, 한 칠팔 세 되니껜 인저 나무를 시키능 거쥬, 인제. 산이 가 나무래도 해오고 또 새두 보구 심부름 시키구 뭐 그렁 걸 하능 거유.
그래서 한번은 인저 참 나무를 하러 가라구 그러니께는 참 나무를 하러 산으루 올라갔는디, 저녁때가 되두 안 와유. 아침 나절이 갔는디. [예] 거기는 가먼 산이 수려하구 그래설랑은 금방 나무를 해가지구 오넌디. 그러니께 그 이평사란 으른이
"이 오째 안 오냐?" 그러니께 여자가
"안 온다"는, "안 왔다"능거유.
그 혹시 또 산이 가서 어린내가 또 짐승한테 해를 당했나 어쨌나 궁금시러워서, 애를, 그 하인들을 인저
"가설랑은 걔 나무하러 워디루 갔나 살펴보라"구.
게 사람들을 시키니까 그때서 해, 해다간 뒤 그때설랑 지게 지구, 빈 지게를 지구 오능 거유. 그라닝게 거기서들 깜짝 놀래가지구
"얘 이늠아. 이, 아침이 나무하라, 아침나절이 나무하라 간 뇜이 여적까지 뭘 하구서 빈 지게를 이렇게 터덕거리구 인제 해넘어가설랑 찾으라 가니께 빈 지게를 지구서 오느냐?"구 혼팅이를 주니께 인저 아무 말두 않고 들어가능규.
그라구서 또 그냥
"그럭하지 말라"구 지 어머니두 일르구 인저, 그 이평사 양반두 인저,
"일을 할라먼 열심히 배워서 열심히 해야지, 그렇게 놀기만 하면 쓰겄느냐?"구 그렇게 달래 일르구. 그러니께
"다시 인저 그렇게 않겠습니다." 그라구서.
그 이튿날 또 밥을 멕여설랑 밥을 싸서, 싸줘가지구서, 나무하다 배 고프먼 먹으라구 밥가장 싸서 이릏게 해서 줬는디, 그 이튿날 늦은 저녁 때가 되두 안 와유, 또. 그래서 또 이 궁금시러서 또 인저 찾으러 나가구 이럭하는데, 그때 또 이럭하구 들어왔유, [예] 빈 지게 지구서 그냥.
그래 또 물어두 말두, 대답두 않구
"그냥 놀았다"능규.
또 사흘을, 사흘을 그럭하더라능규. 사흘, 사흘채두 또 또 빈 지게를 지구 이렇게 들오게 됐대유. 그러니께 그때는 이평사도 그냥 화가 나구 제 어머니두 화가 나구 해서
"이런 못된 늠이 있느냐"구, 그냥. "사흘을 그냥 삭 놀구서, 나무 한 짐도 않구서 이렇게 삭 놀구 하는 늠이 워딨느냐?"구. 혼팅이를 주고 그러니께,
"그렁게 아니라"구. "지 말씀을 들어보라"구, 인저 그애가.
"그래 무슨 얘기를 듣느냐"구 그러니께
"내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 내가 오늘, 그걸 연구하느라구 사흘 동안 연구를 했다"구. "해서 인제는 그 이치를 알어설랑은 시방 그래서 제 마음도 기쁘고 그렇다"구. 그러니께
"무슨, 뭘 니가 생각해설랑은 깨달은 게 있느냐?" 그러니께
"산날, 봄이서, 이른 봄이서 인저, 날은 따땃하구 인저 먼산에 아지랭이 끼구 이릏게 허니께 산 양지 끝을 싹 가보니까, 종달새라는 새가 그 참 거기설랑은 이렇게 날르는디, 아무두 읎구 거기서 인제 새가 봄이니께 날르는디…" 종달새라는 것은 인제 워디루, 참새처럼 휙 날라가구 그러능게 아니라, 공중이 떠서 비비거리구 그라능기쥬 그게. [예] "그래서 공중에 뜨는, 뜨는데 겨우 그냥 뭐 한 쉰 길 이상은, 오십 길 이상은 뜨능긴디, 높이 뜰 때는 그렁긴디, 제우(겨우) 한 열길두 못 뜨구설랑 삐비거리다간 네려앉구 네려앉더라"능규.
그라구서 거기서 인저 어디 가질 않구서 그러니께 새두 역시 거기서 네려왔다, 거기가 제 집이등가, 거기서 얼마 또 거시기 돌어댕기구 하다는 또 떠보구 떠보구, 그 공중으루다 날러보구 날러보구 그라는데, 장 고거밲이 못 뜨는 거여. 한 열 길 정도밲에. 그래서 좌우간 그게 이상스러워가지구
'저것이 우트게 다른 디루 날아가두 않구 고기서만 그냥 공중으루 이렇게 솟아 떠서 거기서만 빙빙 돌아댕기다가는 배배거리다간 또 네려오구 네려오구 그러니 그 무슨 까닭잉 걸 물르겄다'구.
그것을 연구하느라구 [웃으며] 나무도 않구설랑 해전 그것만 연구하능 거유. 그라구서 그게 무슨 이친지를 물러설랑 그냥 그날 저녁 때 옹거여, 첫날. 그 이튿날 또 역시 나무하러 갔는디, 거기루, 글루 또 강거유. 가서 또 나무를 할라고 보니께 그 종달새가 또 뜨능거유, 거기서. [예]
"그래 또 이상스러워설랑은 다른 디루두 안 가구 거기서는 인저, 거기서 또 앉어서 이렇게 가만히 은신하구 인저, 사람이 있으먼 도망갈깨미(도망갈까봐) 인저, 몰래 은신하구 이렇게 쳐다보는디, 그래서 그 날은 아 이 그 전날보다 한 다섯 질이나 한 여나문 질 더 정도 높이 뜨더라"구, 그게. 그래 인저
'어제는 한 오십 길, 참 , 열 길 떴으머는 오늘은 스무 질을 뜨는디, 저게 무슨 이치루 저거, 저렇게 뜨능 긴가?'
알 수가 있으야지. 그래서 그걸 연구하느라구 또 그날 해전 그냥, 나무도 않구 그냥 그라다 저녁 때 또 옹 거여. 그래 사흘째 또 가니까, 또 거기설랑은 [웃으며] 또 글루 가니께 종달새가 또 뜨는데, 그 날은 보닝께는 한 서른 질 이상은 뜨더라능규. [예] 해 다 되더락, 날이 가니까. 그래서 그 저녁때서 인제
'아, 저것이 땅이설랑은 이게 봄이니까는 비집구 올러오는디, 땅에 온기가 올로는디, 이것이 온기를 따라가지구, 지기(地氣) 기운을 따라가지구서 요것이, 공중이는 차니께, 기온이 차니깐 인저 온도가 올러가는 대로 저것이 위로 뜨능개비다.' 이것을 연구했다능거유. [예]
그러니께 이평사가 그거 어린애 그런 연구를 허능 걸 보니께 뇌가, 보통 뇌가 좋은 사람, 좋은 애가 아닝 거유. 그래서
"너는 나무를 그만두고 공부를 해라, 앞으로."
그래서 공부를 시켰다능 기쥬. 공부를 시키는디 뭐 한 개를 일러주면 [웃으며] 열 개를 알구, 그렇게 총명하더라능규 인자. [예] 그래설랑은 참, 그 후에 가설랑은 참 그가 참, 그 거시기 [...] 비부 어머니서 출상, 출산했어두 대갓집 거시기허구 같이 참 과장이두 가구, 참 같은 친구를 사귀구 해설랑은 다 높이 양반이루다 발달해가지구서 했다능 기쥬.
[서기 2] 동학사 불 끈 서고청
1991.7.15. 공주군 계룡면 화헌리. 정은상(73세)
* 서기 1에 바로 이어서 구연
게 말이지만 참 그가 인저, 그 이평사란 그 분을 말 꾸정을 붙잡구 항시 댕기구 그라는디, 가는 길에 마부를 해서 이렇게 댕기구 그라는디, 한번은 그분이, 그때는 인저 청년 시절이지 인저, 한 근 이십 돼 가는 땐디, 한번은 워디, 그 말 구정을 잡구서 워디 출입을 허는디… 여기서 그 인저 동학사라는 절이, 여기서 인제 그 갑사 그 너머 동학사에는 거기 동학사는 여승만 살아유, 여승만. 여승만 이릏게 사는 절인디, 이 동학사가 시방은 경장히 지금 발달해가지구설랑은 관광객이 많이 오구 그래유, 동학사가. 대전서 순전히 거기 와서 관광하구 이릏게 숙식허구 하는디, 여 말 이릏게 모는 채쭉을 이 또랑물이다가 이렇게 쭉 정거(담가) 가지구설랑은 그냥 그 인저 북쪽을 향해서, 남쪽을 가다 그랬는디 북쪽을 향해서, 동학사 절 쪽을 향해설랑은 뿌리더래유, 세번을. 채쭉이다가 물을 뿌려가, 저 묻혀가지구서. [예] 그러니께 이평사란 양반이,
"너 그 뭐하는 짓이냐? 채찍이다가 왜 물을 묻혀 가지구서 그리 뿌리느냐?" 그러니께,
"그렁 게 아닙니다. 시방 이 동학사 법당이 탑니다 시방, 화재가 나가지구. [예] 불이 나가지구 타는디, 거의 다 타가지주서 금방네 쪼끔 있으먼 다 소각허게 생겼는데 그 끄느라구 그렁기라"구.
[목소리를 높여서] 그러니까 그 우슬(우스울) 거 아녀?
'거 [웃으며] 자가 미쳤나 우쨌나?'
"여기설랑 니가 채찍에 물 뿌려가지구서 그게 꺼지는 거냐?"
"아마 쪼꼼 있으먼 꺼질 겁니다."
그래서 인제 하두 인제 이상시러워설랑은 원 훗날루다 기대하구 그 후에 어디를 출입 다 하구서는 와가지구,
"그날," 당신이 그렇게 겪던 날, "동학사에 불이 났더냐?" 그렇게 물어보닝까
"불이 났다"능 거유.
"그래 그 불을 누가 껐느냐?" 그러니께
"누가 끌 사람두 웂구, 감히 뭐 큰 절이 뭐 불이 붙었으니께 꺼봤든 거 꺼지느냐"구. "날은 좋은, 일기는 쩡쩡한 날인디 뭐. 그라더니 이 쪼끔 있으니까는 불이 막 타설랑 뭐 반 정도 탈라구 그라는디 그닥 구름이, 구름 덩어리가, 꺼먹 구름이 세 덩어리가 뭉쳐오더니만서두 거그 와서 그냥 쏘내기루다가 비 막 바가지 퍼붓듯이 퍼붜서 금방 꺼졌다"능규. [예]
[웃으며] 그러구, 그러니께는 이평사 역시 그게 의아하구, 사맛 응 사람 인력으루 그게 될건가 싶지두 않구.
그래설랑은 참, 그가 이 풍운조화를 일으킨다는, 일으키기까지 했다는 그 전설이 있에유. [예]
[서기 3] 임진왜란 예견한 서고청
1991.7.15. 공주군 계룡면 화헌리. 정은상(73세)
* 서기 2에 바로 이어서 구연
그 서고청 선생이 역시 인저 제자들하구, 제자들하구 같이 인저, 훌륭한 대갓집 다, 대관의 자제들을 다 교육을 시키구 이렇게, [예] 그 고청서원에서 가르치는디, 워떤 때는 저녁 자시구 나가머는 새벽이나 들오구 이런 때가 많더래유. 그 학생들이 보니까, 선생이. 그래 뭐든지 물어보면 몰르는 거 없이 답변을 해서 뭐 그런 선생이 웂구, 원래 도학이 훌륭해…
그래 하루 식전에는 보니껜 뭐 이 갓 위에 가 서리가 허옇더라능 거유. [예] 그러니께 그 제자가 물었어유. 물으니까,
"선생님, 간밤이 어디 갔다 오셨느냐"구. 그러니께
"니덜은 알 것이 없다. 나중이 이 써먹을 때가, 알을 때가 있을 게다."
그러니께 자꾸 제자들이 워디 갔다 오셨느냐구, 자꾸 무슨 일루 갔다 오셨느냐구 물으니까
"허황한 소리 같지만 중국을, 중국 소상강을 갔다 왔다"능거유, 그 밤이. [웃으며] "소상강을 갔다 오는 길이다."
"소상강을 왜 가셨느냐"구 그러니께
"소상반죽을 베라 갔었다"구.
"그 대를 베다가 뭘 할라구 거길 가, 밤중이 갔다 오셨느냐"구 그러니께,
"곧 그 반죽을, 곧 그 쎠먹을 데가 있을 거여. 그래서 미리 준비하느라구 갔다 왔다"구.
그러니께 학생들두 믿두 못허구. [예] 중국 소상강이라는 데가 여기서 뭐 일이천리유, [웃으며] 일이만리유? 거기를 갔다 왔다니 그 곧이듣겄유? [웃으며] 비행기두 그렇게 갔다 올라면 어려울 긴디. 하루 저녁이 거길 갔다 올라먼. 그라니께 이 제자들이
"아이구 믿지 못할 선생이라"구, [웃으며] "헛소리하능 거 보니께."
그래서 제자가, 거시기한 제자는 그 하나둘씩 헤어지드래유.
"그 선생을 믿질 못하겄다"구. "그 허황한 소리를 허는 걸 보니께."
그라자 인제 참 임진왜란이 인제 나는 땐디, 그 임진왜란 전 양반이니까, 고청선생이. 왜놈이 나기 전 양반인디, 왜놈이 그때 나두 안했는디, 그분이 아들, 자기 아들이 삼형제가 딱 있는디, 아들 삼형제를 딱 불러다 놓구서,
"너는 워디 가, 난리가 만약 앞이루 나머는," 큰아들 불러 놓구서, "너는 워디 가서 피난을 할게냐, 네 식구 데리구."
그러니께 큰아들 역시는,
"아이구 저는 이런 산골 같은 디선 피난을 못하겄구, 제 생각에는 저 전라도 김맹경, 이 김제 맹게(만경) 하는 [예] 김맹경 들이 가설랑은, 그리 가서 피난을 할 생각이라"구. "난리가 만약 난다머는." [예]
그러니께 이 냥반이
"그려? 그라먼 너무 헤적헤적해설랑은 피난이 될까 몰르겄다. [예] 그럼 니가 그렇게 요구하니께 니가 인저 그때 가서 니가 그렇게 하겠지." 하구 또 둘째아들을 불러놓구서,
"너는 워디가 피난을 갈래, 네 식구 데리구, 난리가 나면?"
그러니께, 고기에 인저 갑사 근방에 배네미라는 디가 있유, 고개 이름이. 거기 인저 굴이 있는디, 굴이 사람이 참 멫십 명 들어가는, 들어갈만한 그 바위굴이 뚫어져 있는디, 그 굴 속이 가서 피난한다능규. 거긴 아무도 몰르구 하니께. 길거리서 또 귀지구 그라니께 거기 들어가서 피난한다구.
"그거 원 연기또레(때문에) 매워서 피난할까 모르겄다 거기."
"아 저는 거기 가서 피난할테유, 연기가 매웁거나 말거나."
그러니께 그라구서, "연기또레 피난할까 몰르겄다" 하구서 또 시째 아들을 불러가지구서 또
"너는 어디 가서 피난헐래" 그러니께
"저는 거 말아구 쳉벽(청벽) 밑이설랑, 거기다 움막 쳐놓구 거기서 인저 피난할류."
[조사자:어디요?] 말아구 거 쳉벽이라구, 쳉벽 밑이서. [예] 그러니께
"아, 그러나 너는 공주 장깃대가, 장깃대 한참이 대단할끼다." 그라더라능규.
거기서 말하구 해서 공주 장깃대라는 데를 네가 갈라먼 대단할 끼라구. 그 공주 장깃대라는 데는 거기서 인저 옛날에 사람을, 그 죄인 같응 걸 인저 잡어다가 인저 사형할 사람은 거기서 인저 사형하구 하던 디니까는, 장깃대라는 디는.
그라구서는 그답 그 냥반은 인저 작고했어유, 그 난리 전에. 그래 난리가 나니께 참 자기네 생각대루다 큰아들은 자 아래루 저 전라두 근방으루다 식구 데리구 피난을 가구, 둘재아들은 인저 자기네 식구 데리구서는 뿔뿔이 흩어져서 인저 굴속으루다 강거유, 거기다 식량두 갖다 놓구 이럭하구. 그라니 인저 굴이 있는 거를 그 근방 사람들은 인저 어지간히 알으니까 여러 사람이 다 옹거유, 그 굴속으루. 피난헐라구. 난리가 나서 왜적이 인제 금방 와서 사람을 죽인다구 그러니께.
하 거기서 굴, 참 문 같응 것을 솔가지루서 가리구 그 안이서 인저 여럿이 모두 이 기거하구 있는디, 아 왜적이, 왜놈이, 왜적들이 인저 거기를 지나가는디, 지나갈라구 그러니께는 이 개 같응 것은 다 읎애구 가얄틴지, 개를 놔뒀든 모양유. 개가 인저 거기를 쫓아간 모냥이쥬, 피난한 굴 속이를, 굴 앞이를. 그러니 개두 데리구 들어갔으먼 하는디, 개를 놔두구서, 배깥이다 놔뒀으니까, 사람만 그 안에 들어가설랑은 거시기하구 그러니까, 개가 배깥이서 자꾸 짓은 거유. 그 안에 사람이 들구서 저는 거기 들어가두 못하구 인저 그러니까. 자꾸 짖으니게 왜눔들이
"여기 워디 아마 사람들이 있능개비라"구.
개 짖는 소리 사뭇 쫓아옹 거유. 쫓아와 보니께, 개가 무슨 솔가지 덤불 같은 딜 쳐다보구서 자꾸 짖능 거라구. 그래서 그 헤쳐보니까 그 속에 사람들 많이 들어있잖유? 피난하는 사람들이 인저. 그러니께 거기다 그냥 막 솔가지를 쳐넣구서 불을 질릉 거유. 그 굴 아구리다가. 그러니 거기서 모두 다 매워설랑 죽었쥬. 타서 죽구 매워 죽구, 나오는 놈은 뭐 거기서 창으루 찔르구 칼루 쳐서 다 쥑이구. 이렇게 다 죽어버리구.
그 세째아들은 움막 밑이설랑은 이릏게 피난을 하구 이렇게 엎드려 있으니까는, 왜늠이 이렇게, 왜늠 장수가 말을 타구 이릏게 지나가다가 움막을, 움막이설랑은 이릏게 엎드려 있는 사람 있으니께 이놈 나와서 끌어냉 거유, [예] 이 사람을. 끌어내설랑은 데리구 갈라구 끌어내는디, 그 현장이서 죽이든 않구 끌어냈는디, 아 이눔들이 아 끌어내가지구서, 말, 그 말 그거시기다가, 안장 위이다가 끈을 매서 붙들어맨규, 사람을. 황줄을 이렇게 끌러가지구서. 디리디리(?) 이렇게 끝을 맹 거유. [예] 그라구서 막 말을 뚜드려 몰으니께 그 말아구라는 디서, 그 쳉벽 밑이설랑은 그 공주 장깃대가 아마 근 이십리 정두 될 거유. 그 거리를 그냥 막 달려옹거유. 장깃대라는 데를 옹규. 들어가는 장깃대라는 데를 딱 옹거유.
그러니께 다 죽어가쥬, 사람이 뭐 그냥. 질질 끌려서 이렇게 왔으니까 뭐. 참 모두, 모두 이 팔다리 같은 디두 말짱 상처가 나구 인저 그저 숨만 안 떨어지구 있는디, 아 인저 가 거기를 딱 와서 끌러놓능 거유. 있더니 또 어떤 패가, 또 어떤 왜적패가 또 한 패가 오더니만서두, 그 말타구 한 대장인가 이뇜이 인저 서루 무슨 문서를 가지구설랑은 서루 고개만 쨔웃거리구 자꾸 그러더라능규. 그래서 이 사람이 인저, 이뇜덜이 고개만 쨔웃거리구 당체 워트게 가리 형편을 못하구 아주 울울한 생각을 하구 있더라능규. 몰러 가지구. 그래서 이 냥반이가 보니까, 왜눔들두 한문을 많이 사용하니까, 한문으루다 워트게 워디 오라는 통징가 무슨 아마 뭐 공문선 모양이더래유. 그래 자기는 보니께 워디 워디루 우트게 만나자는 공문 거시긴디, 이눔들이 이걸 그렇게 알 수가 없어서 이렇게 쨔웃거려서, 손짓을 해가매 글씨를 쉬운 글씨루 써줘가며 어트게 어트게 통역을 해준 모양유. [예] 그러니께 이놈이, 이놈덜이
"아주 고마운 사람이라"구.
그래가지구설랑은 그 큰 자기네 군부인을 갖다가 딱 이 등어리, 흰 저고리, 옛날에 흰 저고릴, 흰 옷을 입었으니까, 흰 저고리다가 딱 박어중 거유, 도장을 [예] 군부도장을.
'이 사람은 어딜 가던지 죽이지 말라'는.
그래 도장을 이릏게 딱 받아주군
"너는 하여간 이릏게 [..]으루다 너는 어딜 가두 너는 죽이지 않으니까 맘대루 활동하구 댕기라"구.
그래서 이이는 그냥 뭐 마음대루, 자기 식구 데리구 이리저리 댕기구. [예] 일본 군중이도, 일본 군부 중이두 뭐 왔다갔다해두 뭐 죽이지 않고, 이렇게 해서 피난을 했다능 거쥬.
그래서 고청 선생의 아들 삼형제분이 두 분 소생은 다 멸망하구 그 끝이 아들 소생이 시방 퍼져가지구 그 후손이 시방 유지한다는 게쥬. [예]
그래서 인저, 그분이 인저 그 위에 인저 난리가 난 후에 인저, 그 아들 자슥이, 거 거식한, 그 유전하는 그 아들한티 대나무를 이렇게 솔대(?)같이 가는, 가느다락헌 대나무를 그 한 토막을 내주먼서
"이것이 곧 쎠먹을 때가 되니께 니가 잘 간수하고 있다가 나라이서 만약 이런 참 소상반죽을 구하는 이 여론이 있걸랑은 니가 나라이 갖다 바치라"구.
이래서 인저 유언하구 돌아가싱거유 이분이.
그란 뒤에 인저 나중에 인저 참 난리가 나가지구서 참 왜군이 저 참 평양까장 점령을 하구, 참 그 나라, 나라 임금이 참 정주까장 피난을 가시구 그랄 적에, 그때는 청, 청, 저 명나라에 인저 원군을 청해가지구서 인저 구원병이 인저 오는디, 그때 이여송이라는 장사가 인저 대장인디, 관군을 인저 참 도와주러 오는 길인디, 원병이 돼서 오는디, 압록강을 건널라는디, 영 근너오질 않는 거유, 영. 거기 딱 머물러 있어 가지구., 하여간 자기두 역시 이 왜놈하구 싸우다 죽을지 살지 모르는 전쟁이니까는. 그래서 두려워서 그런지 어쩐지 못 근너오구 있는디… 하여간 말, 들리는 말은, 전설은, 무슨 조선에 인재가 있나 웂나 시험을 하느라구
"그 용의, 용의 간을 가져오라"구. [예] "메칠 내루다 용의 간을 디려, 용의 강을 가져오야 내가 먹구서 거길 건너가겄다. 소상강을, 참 의주 압록강을 건너가겄다."
이 용의 간을, 용의 간을 워디가 구하능 거유, 그걸? 구할 도리가 웂는디, 그때 인저, 그때 [잠시 생각하다가] 무슨 선생인가 의주 압록강에 가설랑은 난리, 참 조선이 멸망할 위기에 처해 있는디, 영 어디 중국의 원병이 거기서 또 이여송이는 건너오지두 않구 이렇게 틀거리(?)를 하구 그러니까, 용의 간을 바치라구 이렇게 거시기를 하니께 워티기 할 수 웂어서 참 통곡을 하구 강가에서 참 울고 있으닝까는 참 용이 나오더라능 거유. [예] 용이 나와가지구설랑은 벌떡 백사장이 가서 그닥 죽었유. [예] 나와가지구서. 그래서 그 용을 잡어가지구설랑은 참 간을 해다가서는 갖다가, 갖다가 이여송이를 바칭 거유.
바치닝까, 이 저범을 갖다, 여기 저범을 갖다 바치니까, 안 먹능 거유. [예]
"난 우리나라의 이 소상반죽이 아니면 이거 집어먹들 않는다. 소상반죽을 가조너라."
그러니 뭐 거기서 중국 거기 가선, 그 남양에 가설랑은 소상강까장 가가지구서 그 반죽을 워트기 벼와유? 그라니껜 그닥 통보를 해가지구서,
"한국에두 조선천지에 소상반죽을 간직하구 있는 사람이 있걸랑은 올리라"구, 그 통문을 받구서 이 사람이 갖다가 바쳐가지구서루 용의 간을 이여송이가 먹구서 근너왔다구 그런 전설이 있이유, [웃으며] 그기.
그때 미래사를 알구서 그분이 축지를 해서 강겐지 날러서 강겐지는 물르구 하여간 소상반죽을 그렇게 구해다 놨더라능규.
[서기 4] 서고청의 신분·출생내력
1991.7.15. 공주군 계룡면 화헌리. 이내헌·70세(경석두·77세)
*경석두씨댁 /제보자 2인과 조사자 /유도 구연
[조사자:뭐 공주에서 난 인물들에 관한 얘기는 없습니까? 서고청, 서고청이 공주사람이라구 그러든데]
이내헌 : 서고청이라구 저 반포 사람이지. 반포 여 서씨들 거긴디. 서고청이는 그게 말하자먼 그 정변에 의해서 희생된 학자의 한 사람이지 뭐. 정변이, 그때 이조때 멫 번 정변이 있잖여? [예] 그때 뭐 말하자먼 그가, 그 말하자먼 그전이는 소위 측실, 소위 첩에서 난 사람덜은 등과도 못했어. 등과도 못했다구. 등과도 못하던 그런 시절인디, 그 학식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그 학문이 높기 때문에 그 뭐 지인지기해서(?) 사귄 그네들이 대개 학자였어. 학자가 많았어. 그래서 그 벼슬은 못하구. 말하자먼 베슬, 저, 서로 교우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양반두 많구.
[경석두: 뉘 집 말끄뎅이 잡고 댕겼댜.] 이? [경석두:뉘 집, 무슨 양반이라구 하더라. 그 양반 그 말끄덩 잡고 댕겼댜.] 말하자먼 그렇기도 하겄네. 원래 측실이라, 첩의 자식이거든. 그러기 땜에 워디 갈래두 못 햐 절대. 암만 거시기 학식이 그래두. 무슨 뭐 과거 볼 뭐이두 안 된다능 거 아녀.
그래서 그러한 분이 말하자먼 뭐, 저 뭐야 우리 소설에 있는 홍길동이나 누구나 같은 그런 마 소설, 인저 홍길동이 같은 것두 소설의 인물이지만서두 그거 한가진겨 인저. 그러한 시대적인 그 희생아여, 희생. 그러나 그 학식은 굉장히 높았다능겨. 이성학이나 모두 높았다능겨.
서고청이가 뭐, 서고청이 뭐라구 해두 그게…
[경석두: 서고청이 난 굴두 있어, 거기.] 굴이 있는디 거기서루 참 계집종이, 계집종이 거기서 서고청이 났다는 거지. 굴이 있어, 거기. 그 굴이 결국은 어떠한 굴이었었는지 모르지만서두 이게 인작으루 판 것 같어. 인작으루 판 거지 그게, 자연적으룬 안 됭 거 같어. 네모 빤뜻하게 됭 게…
[경석두: 하여튼 그때서부터 있던 굴구녕잉가 봐. 고 앞이 그 판판한 디 논두. 고 새 보러 와서 비가 와서 그기루 들어갔다능 거니께.] [조사자: 어떻게…?] [경석두:서고청 아버지가 소금짐 짊어지구 가다가 비가 오니깐 소금 망탱이 그 짊어지구 그기 들어가니께 그런 새악시가 있으니께 거기서 관계가 돼서 서고청이 났다능겨 그게. 산등성이 사면(?) 희한하더라구, 그런 얘기…]
거기 서가들은 안 그랴, 서가들은. 그런 얘기… [경석두: 안 하지, 뭐.] 거기 서씨들이 있거든. [경석두:안하지] [웃으며] 그래 그 서고청을 그 가서 [.....] 그 서뭣인가 그 사람두 거기 서간디… [조사자:얘기 하면 안 좋아합니까?] 좋아하능 거보담두, 그렇게 구설이, 그 구설적으루 그렇게 나온 긴디, 그렇게 됭 게 아니라능 거지. [경석두:천하게 났다구 하니께 안 좋아하지.]
[조사자:그런데 어떻게 종 아들인데 어터게 학자가 될 수가, 공부를 어터게 할 수가 있었습니까?] 그러니께 그게 어깨너머루 배운 글이 그렇게 도달했다는 거여. 어깨 너머루. 소위 인저 제대루 서당이두 못 댕기구, 그 서당이 댕기는 애들 말여 읃은 글루다 이렇게 배웠다는 건디, 읃은 글루다 이랬다는디, 원래 총명히여. 원래 총명하기 때문에 그렇게 뭐 제대루 서당이나 뭐 배운 것두 없이 양반자식 그 하는 디 기웃기웃하고 이렇게 들은 소리루 해서 뭐 훌륭한 학자가 되구.
[경석두:그 송우암 시절잉개벼, 그때가 아마.] 송우암 시절… 그래여. 고렇게 될 거여. 그 저 이조 중엽… [경석두:그 저 지 어머니가 죽어 명정을 쓸라는디 명정 쓸 사람이 웂더라능겨. 쓸 수가 없지. 뭣이라구. 지 아버지…] 잘못 되면 큰일나거든. [경석두:그렇지. 그래 사뭇 (.....) 그러니께 그라드라능겨. "쓸 사람이…"]
거정이지. 그 원래 거정이 무슨 벼슬잉개벼. 그 [..]가 아니라 거정여, 서거정. 살 거자(居) 바를 정자(正) 서거정이거든. 근데 서고청이라구 하거든, 여기서는, 인제. 그 거정도 무슨 그게 일종의 벼슬였덩 거 같어.
[경석두:그 명정 쓸 사람이 오니께, 가만 있거라. 그러니께 인제 그런 상을 당했다구 그라니께 송우암이 오더라능겨. 그분 보고 쓰라고 하니께, "아, 쓰지." 게 막덕 할매 뭐라구 그릏게 쓰더라능겨, 명정을.] 응? [경석두:막덕할매 뭐라구 말여.] 막덕할매? [경석두:이 명정을 말여, 댈 디가 웂으니께] 응. 허허. 그래, 그 시절 사람여.
[서기 9] 아버지 찾은 서고청
1991.7.17. 공주군 계룡면 중장리. 송대용·78세
*제보자 자택 /조사자 1명 /유도 구연
[조사자:여기 뭐 서고청 선생이란 분은?] 서고청은 요 너머 반포라구… [조사자:그분은 어떤…]
아 서고청은 그 옛날 선조때 양반인가 원 언젠지 물르겄네. 근데 서고청은 그 아주 참, 뭐여 명쟁이라는 거지. 뭐이구 참말루 다 안다능겨. 이분에겐 나먼서부터 죄 안다능겨. [예] 서고청.
그래 막덱이 아들이라능 게지. [조사자:막?] 그 어머니가 막덱이여. 막. [조사자:막대기요?] 막덱이, 막덱인디, 송우암에 비부여 비부. [예]
여 위 요 반포 가면 도로변에 굴이 있어유, 굴이 지끔두. 석굴이, 바루 도로 옆에. 거기서 그 막덱이라는 여자가, 시집을 못 갔어 일절. [예] 시집을 못 가가지구서 송우암네 집에서 비부루 있는디.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처녀는 늙어죽으니께 요 얼굴이 바싹 아주 얽어서 [예] 박색인디, 그래서 인저
"니가 오디 가든지, 애루 늙어 죽을 순 웂으니께, 네 맘대루 오디 가서 사내 재목 하나라두 읃어 오먼 결혼식을 해주겄다"구. 그래가지구 인저 그 송우암 선생님께서 그렇게 얘길 했어. [예]
그 막덱이를 내보내서, [예] 인제 그 반포라는 디 공주 거기를 지나다 보니께 이런 굴이 있다 말여. 그 굴은 근디 옛날에 금젬이나 뭐 그렁 거 해먹었던 굴이겠지 그게 뭐. 게 지금 와서 인저 서고청굴이라구 이렇게 말이 났지. [예] 그 굴루, 거기가 오니께 그냥 비가 논덜 날리듯 쏟어져서 우선 비를 피해기 위해서 그냥 그 굴속으루 들어가, 비를 고 들어가서 피할 수 있으니께. 비가 그치질 안해. [예]
당시 인저 그 소금장사 한분이 [예] 등짐이다, 옛날인 이 등짐이다 소금을 지지구서 어디 인저 지나다 보니께 비가 쏟어지니께, 소금하구 비하구는 젖으먼 죄 녹으니께 아주 버리거든. [예] 그래 거기 오다 보니께 굴이 있으니께 그냥 그 굴속으루다 소금짐을 지구서 들어갔어. [예] 지구 들어가 보니께, 굴속인데 뭐 전기가 있나 그때 뭐 뭐, 호롱불이 있나, 그냥 깜깜한 밤에 머리 꼬랭이가 전반 같은 츠녀가 거기 있단 말여. [예] 그러니 얼굴이야 얽었는지 박색인지 뭔지 물르구, 게 비가 영 그치지 않어서 거기서 그냥 둘이 하룻저녁 장겨 그냥. 자다 보니께 그 처녀 총각, 그 총객인지 원 하여간 뭐 장사하러, 행상장사하러 돌어댕기는 늠에 소금장사가 달랑 저 처녀를 그냥 행실을 냈지.
그래가지구서는 인제 하룻밤을 자구, 그 이튿날 날이 탁 밝은 디 보니께 세상 못생겼다 그렇게 못생길 수가 웂단 말여. 얼굴이 박박 얽구 그라니께. 에이구 꿈에두 참 스칠까 무서우니께 그냥 인저 갈러져 가는데, [예] 그 츠녀가 하는 말이, 막덱, 막덱이가 하는 말이, 그 막덱이 츠녀가 하는 말이,
"거 당신 갈라거들랑은, 하룻밤을 자두 만리장성을 쌓는다구, 그렇기 그냥 갈 수가 있느냐? 승명 삼자래두 갈쳐주구 가라"구.
그라니께
"승명두 알 것 웂다." 이기야. 하두 박색이니께. 못 생겼으니께. [예]
아이 그래서 뭐 도저히 뭐 승명두 안 가르쳐 주구 그냥 그냥 갔어.그냥 갔는디
"내 승은 서가라구만 하라"구. 그냥 그라구서는, 인저
"서가라구만 하라." 이름두 안 가르쳐줬어. 서가라구만 알락 하구 가버렸어.
그래 그 후루 이게 이 그 막덱이 츠녀가 인제 워디 뭐 시집갈 데두 웂구. 시집 데려가는 디두 웂구 해서 그냥 도루 그냥 송우암네 집이루 들어왔거든. 들어오구 보니까 한 달 두 달 있는디 차차루 이 몸이 배가 불러져가지구서루, 옛날에는 아주 그 지집애가 댕기구 음란한 행실 하는 것이 아주 큰 변이거든, 어떤 디를 막론하구. [예] 애든이(?)란 말여. 지금두 그런 변은 변이겠지만, 애든이서 크은 변 났다구 막 야단을 치구. 그러니께
"그런디 니가 워트게 돼서 이 애를, 누구 애냐?" 물으니께
"그렁 게 아니라"구 그라먼서 그런 사실 얘기를 다했어. [예] 상전보구.
"그래서 굴속이서 워떤 남자를 만나, 도저히 뭐 이름을 안 대주구, 승명 삼자를 안 대주구 그냥 '서간중이나 알라'구 그러구 그냥 갔다"구.
그래서 그 으른이 그냥,
"그러냐"구.
그러구서 내비뒀어. 배부른 대루. 뭐 지금은 액을 먹어 뗄수두 있구 다헐 수 있지만 옛날엔 그냥 그대루 생긴 대루 열 달을 해서 그저 낭 게, 서고청여. [예] 그래 서고청인데, 그 인저 그 아를 나니께 아주 총명이 자자하구 일람척귀(?)하구, 모든 것이 그냥 머리가, 두뇌가 참 좋단 말여, 그 아들, 막덱이가 난 아들이.
아이 그래서 삼년이 됐구. 동네동네 인저 그, 그때가 학, 서당이 있어서 서당에 보내서 한 자 갈치먼 두 자를 알어. 발써 뭐 위짜 가르치먼 아래짜 알구, 그 재주가 좋아가지구… 인저 자기 그 아버지를 도저히 찾들 못할 형편이 다 인저 알구 그렇게 돼서,
"에이 찾는 재간이 내가 있다"구.
상전 송우암보구 얘길 해가지구, 책을 참 여러 수십권, 지금 일르면 사서삼경이지, 뭐 전부 수십권 다 가지구서 잔뜩 한짐 짊어지구 저 먹을것 달래 가지구서는 그 즈이 어머니 만난 굴, 지금 저 반포 거기 서고청굴, 거길 찾어옹겨. 와서 거기서 인저 사뭇 그냥… 인저 새보다가 새보다 거길 들어갔다능 거지. 새를 봤다구 했지만, 새봉 게 아녀 그게. 그래가지구서 인저 거기 와서 밤낮 글을 읽어.
그 앞서 글을 읽으니께 아 한날은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그때까지구 소금장사는 뭇 면했드랴. 소금짐을 짊어지구 지나가다가서는 그 글 읽능 걸 이릏게 보더니, 지게를 받쳐놓구 한참 쉬더니,
"참 이상하다." 허구서 픽 웃더랴. 그래
"뭐 생전 지나가두 그런 소리 묻지 않는, 묻는 데두 웂는디 우째서 웃느냐?"
인저 전부 질문을 대니께, 이 남자가 당체 어트게 답을 거, 어트게 얘가 똑똑하니께 그 말을 대답 안 할 수 웂으니까.
"승씨가 누구냐"니께,
"내 승은 서가라"구. [예] 그 말 한 마디만 하구서,
"그람 우째, 내 여기서 글을 멫 달채 두구 읽어두 그 참 어떤 학생인가 공부 열심으루 한단 이런 말만 들었지 당신마냥 픽 웃구 가능 건, 웃는 건 내 츰 들었우. 우째서 웃느냐"구.
인저 그 질문을 하니께 [예] 그 말을 댑변을 못하구.
"그렁 게 아니라 지금으루부터 멫 해 전이라"구. [예] "멫 해 전이 내가…" 그 얘기를 다했어. [예] "지나가다 비가 하두 논 날리듯 네려서 이 소금을, 지금두 내가 팔자가 피곤해서 이 소금짐을 못 면하구 이걸 하구 있는디, 참 여길 들오구 보니까 그 어떤 처녀가 있어서, 하룻저녁 비가 그치지 않어서 자구서 아침이 보니께 하두 박색여. 얼굴이 박박 얽어서 도저히 뭐 볼 수가 없어서 아주 꿈에두 스칠까 무서워서 그냥 갈러져 가는디 하두 승명 삼자를 묻길래 그냥 승명두 안 갈쳐주구 '내 승은 서간중이나 알라'구 그냥 갔다. [예] 그래서 일리 지나가다 보니께 그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나온다"구. "픽 웃었다"구 말여. 이 얘기를 하능겨.
아 틀림웂이 자기 아버지여. 다 이거 꼽어보니께 뭐 다 나이두 자기 그 햇수 됭 거 하구 뭐 틀림없는 자기 아버지여. 그래 거기서 자기 아버지를 아버지라구, 내 아버지라 하구서, 자기가 아들이라구 하구, 그때 생긴 애라구 하먼서 그 말 했다는 그런 말이 전설에 나와 있더먼. 전설에 그런 얘기가 있고. [예]
그래서 서고청이 재주가 좋아서 훌륭히 됐지. 그래서 서고청이 저기 때가, 선조때가 아니라구먼. 저기여. 뭐여, 고종황제 시절여. 말하자면 저 송우암이 고종황제 시절인디 송우암허구 한때 양반이니께. [예]
[조사자:근데 어트게 그 비부 아들인데 어트게 유명한 학자가 될 수가 있었습니까?] 그런데 옛날에 원래 훌륭하니께, 지이불행(?)이랴.당체 모르능게 웂었댜.
그 뭐 석사 얘, 전설 얘기는 아주 굉장하게 무슨 나머서 저 알어. 천지를 다 알어. [예] 서고청이 그랬었댜. 그 내용 원 그런 전설만 들었어 우린.
[조사자:이 얘긴 어디,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거기 구왕리 살 때 들으셨습니까?] 그 전이두 그 소리가 있었어. [예] 서고청 얘기 그 얘기, 그런 얘기가 있었어. 그 얘기는 뭐 다… 그렇게 재주가 좋다는 얘기쥬 그러니께 인저. 그짓말두 많이 쪘겄지 거기.
되지, 그리두 뭐. 책에두 인저 웂는 일이야 그 전설만 그렇게 나왔지.
[서기 11] 고청모 명정 쓴 송우암
1991.7.17. 공주군 계룡면 중장리. 송대용·78세
* 서기 10에 바로 이어서 구연
그래서 인저 서고청 어머니가 죽었는디, [예] 막득이지. [예] 영정을 쓰는디 말이야. [예] 송우암네 집이서 죽었어, 영. [예] 죽어서 아 이 영정을 쓰야겄는디, 아무두 그, 서고청이 훌륭하게 돼서 말이야, 암만 종의 자식이지만. 하두 엄청나게 재주구, 재능이구 휼륭하게 돼서 [예] 그 영정을 제대루 그 우트게 정댕히 밝혀 쓸 수가 웂어. [예] 그러니께 서루 미루구 안 써. 그 큰 구름 같이 참멩현들이 말짱 몰려가지구 여기다 났건마는 하나두 그 쓰덜 못히야. 안 써, 쓰래두.
아 그래 마침 거 저 송우암이 거길 들어왔는디,
"아 이 영정을 쓸 사람 웂으니 선생님 우트게 쓰시라"구 하먼서 "명, 명정을 좀 쓰먼, 써달라"구. [예] "쓰시라"구. 그라닝게
"그렇게 쓸 사람이 웂어? 이거 내, 내가 쓰지."
붓 막 갈어서 이릏게 주니께 인제 막 집더니마는 그저 드는 질루 '천비막덕지구'라 쓰더랴. [예] 거기다가서. 그러니 그 서고청이 그렇게 훌륭히 됐는디 그 앞이서… 천비는 그 지집비짜 천할천짜, 천한 지집 막덱이란 말여. 이름이. 막덕지구여, 그 늘이라구 말여. 그라구 딱 그냥 써서 영정을 거기다 걸으니께, 참 딱 써놔가지구 걸어놨는디, 서고청이 바깥이 나갔다 들어오니께 영정을 썼어.
"이 영정 누가 썼느냐"구 대번 그라드랴. [예]
그 송우암이 썼다니께,
"그렇지. 딴 뇜, 딴 사람이야 감히…" 그라드랴. 허허. "딴 사람이야 감히." 그라드랴.
게 참 송우암은 아주 자기 상전 아녀?
그건 참 옛날부터 꼭 그 말은 써내려온 말이여. 그 '천비막덕지구'라구. 그래 그런 일이 있기는 있었던 모넁여. 책에는 뭐 못 봤어두.
[조사자:그 송우암이 서고청 공부하게 좀 이릏게 해줬나 보죠?]
상전여. 갈쳤지 다. [예] 갈치구, 그 갈치구. 그 종의 자식인디 뭘. 종의 자식여. 막덱이 자식이니께 종이지. 막덱이가 종인디 뭘. [예] 송우암네 종여 옛날에. [예] 막덱이 아들여, 서고청이. 그런 천비에서 소금장사 서씨가 그 맨들어가지구 그 서, 그릏게 참… 서고청 베슬을 중겨. 고청서 났다구 서고청여 그래서. [예]
[서기 12] 서고청 출생담
1991.7.17. 공주군 계룡면 하대리. 민병주·80세.
*노인회관 /청중 4명 /유도 구연
[조사자:할아버님, 저 혹시 서고청, 서고청 선생 행적에 대해서 못 들어보셨습니까?] 서고청? 서고청 얘기 여기서 알 수 있나? 거기서 사는 사람이나 알지. [조사자:어디 사람인데요?] 저 반포면. [예] 반포면 저, 면사무소 소재지서, 소재지 거기 가 물으먼 알지. 고기서 서고청 그 그 있던 굴이, [예] 그 굴이 바로 고기서 얼마 안 돼. 고 대전 가는 신작로서 바로 뵈, 왼쪽으루. [예]
그 말은 그 저 에 여자가 새 보러 인저 갔다가 비가 오니께 그 저 굴루 인저 비를 피해서 인저 들어갔다능게지. [예] 그랬는디 그 서고청 아버지가 [예] 이제 인제 총객였던 모넁여. 예전이 총객이라는 건 머리를 이렇게 길다랗게 땋구 그럭하구 댕겼어, 총각은. [예] 장개를 들으야지 이제 이 상투를 하구 상투를 짜구 이랬지. 그 여자가 들어갔이닝께 그 남자 여자하구 한디가 있으니 그거 뭐 남녀칠세부동섹이라구 그게 거기서 인저 관계가 됐던 모냥여. [예] 그래가지구 서고청을 낳았다능게지. [예] 이. 그런 전설이 있더먼 그려. [예]
[조사자:그 여자가 어떤 일 하던 여잡니까?] 이? [조사자:새 보러 나갔다가…?] [청중1:그렇지. 새 보는 여자. 새 보는 길이 비가 오니까 인제 글루 들어갔지.] [조사자:예. 그 뭐 양가집 여자가 아니구요?] [청중2:막덕이, 막덕이니께, 막덕이. 막덕이라는 천비.] [조사자:천비? 그럼 종이었습니까?] [청중2:에. 종였거나 워쨌거나 서고청을 났으니 뭐…]
여기서 듣기, 해기는 서고청 서고청, 서고청이 아닌 서거청이래. 서거청. 살거짜 하구 맑을청짜든가 무슨 청짜등가. 서고청이라구 뭐 그라잖아? [청중:서고청] 그런디 고청이 아니래. 거청여, 거청. [예]
[고청굴의 생김새를 놓고 여러가지 이야기가 오고감]
[서기 15] 서고청의 역사적 행적
1991.7.18. 공주군 반포면 공암리. 서정필·80세
*서기 14에 이어 구연. 마이크를 잡고 본격적으로 구연한 것임.
원래 우리 고청할아버님은 이 그 원래 시조는 이천에 아간공이라구 저 휴양, 효양산에 모셔져 있습니다. 그래서 낙향을 해가지구서 일루 나리신 모양인디, 원래 저 탄생은 남포(보령의 남포를 뜻함) 제석동서 탄생을 하시구. 거기서 탄생하실 적이 참 집안에 향기가 가득하였구 또 백홍(白虹)이 관천(貫天)여, 흰 무지개가 하늘을 꾸였다구, 그래서 이 부락 사람들이 참 보통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그때부텀 예언을 했었쥬.
그렇게 해서 하다가 점점 커서, 인저 가세는 빈한했으니께, 미천했었으니께 우리 고청할아버지가, 객지루 나왔으니께 그럴 테지유, 물론. 그래서 참 저 어 봄에 인저 그 나무를 참 하러 들루 가셨다가 아 저녁이 공, 공, 그냥 들오시거든,빙 걸루. 그래 으른들이,
"왜 뭐 나무 하러 갔다 그냥 오느냐?" 그래 물으니께,
"새가 있어가지구 상하루 날르는디, 그 워짱 겡가 그 이치를 알라구 궁리하느라구 늦었습니다." 그라, 그라거든.
그래 인저 으른이 하는 말,
"너 워째서… 그 그 무슨 샐러냐?" 그러니께
"그 노고지리란 샌디 당춘화시(當春和時)에 지기(地氣)를 따라서 지기가 올러가먼 올러가구 나려가먼 나려가구 그래 상하로 나려가는 그 궁리를 했다"구.
그라니께 그 동네 그 듣는 사람들이,
"참 비범한 아이라"구 그렇게 말씀을 하셨구.
그 일곱살 먹어서 지신 글인디, 일곱살 자셨을 적이 서당이를 댕기다가, 서당을 댕기는디 그 서당이 헐리게 돼유. [예] 예전이 사숙였쥬, 우리 저 학교가 아니구. 헐리게 되닝께 고청할아버지께서 글을 지었어. 그 [.......].
"서당(書堂)을 장물훼(長勿毁)하야, 서당을 질게 헐지 말어서, 사아학성현(使我學聖賢)이라, 날루 하여금 성현을 배우게 해달라"구.
그러니께 그 선생님이 참 탄복을 하구. 아 그 일곱살 먹어서 그런 글을 지니 뭐 그 여간하겄습니까?
그렇고 또 효성이 지극해서, 어머니가 그 병이 참 악화돼가지구 돌어가시게 됐는디, 할지관혈(割指灌血)여, 손고락을 인저 벼가지구 피를 넹겨가지구서루 갱생하셨다구 해서 아주 효성두 지극하신 으른이고.
또 그 후에, 인저 그렇게 지내다가 인저 그 후에 인저 토정선생님을 참 만나서… 어 그 홍주에 계셨는디 [예] 토정이, 거기 한 이십여리를 삼년 불득풍우(?)하구 사뭇 댕겼유. 걸어서 댕겼지 그전이는 뭐. 그라다가 인저 그 토정한티 인저 배우구, 또 이초려한티두 배우구, 화담한티두 배웠다구 이런 말씀이 있구. 그래서 그 뭐 세상사람들이 생이지지(生而知之)한 분이라구 이렇게들 논하구 있쥬. 그라구 뭐 이 아동방에서는 큰선비루 이렇게 일컬어 왔습니다. [예]
그래서, 그래 그 뒤루 어 세속이 이렇구 하다 보니까 아 홍운동으루 들어가셔서 홍운동 들어가셔서, 어 수도를 하구, 하는디, 양식이 떨어지먼 산배를… 아그배라능 거 있잖에유, 산배? [예] 그걸 인저 과서(고아서) 신맛은 빼구 그걸루다가 여 주린 배를 채우면서두 근심이 웂어. 도학에만 열심했지.
그러다 보니께 거기서 인저 중봉, 또 그 여러 인저 그 선생님들이 찾어와서 강론을 하구, 거기 와서 하닝께, 그런 분들이 찾어댕기구 하니께 고청선생님이 훌륭한 분이라구 해서 제자들이 거기서부터 사뭇 인저 가서 인저 수학을 하구 그랬쥬.
그라다 인저, 4년 기시다가 홍계희 선생이, 홍계희 그 저 공주관찰사루 와서 기실 적이, 그분이 다 학, 참 훌륭하신 분 아닙니까? 그래 고청선생더러 일루 나리와서, 공암에루 나리오시라구, 그래서 이 공암으루 나리오시다가 저 구곡에서 그 워트기 임시 [..]해서 얼마 기시다가 아 저 연젱(연정)이라는 디, 지금 저 박약재라구 한 디가 거기가 본집예유. 거기서 인저 박약재를 짓구서, 동, 동(東)에는 천수재라구 짓무, 또 박약재루, 저 천이박약(?) 이렇게 했지. 거기 보먼 간판이 붙었유.
그렇게 해서 거기서 제자를 많이 양성해서 훌륭한 제자가 많이 나셨쥬, 거기서. 그 지끔 저 도안이 돈파사 같은 디 가머는, 그 돈파사에 그 박사먼 그 웃대 으른이구, 그 그 거기에 인저 오연당 민선생 겉은 이 하며 그 훌륭한 제자를 많이 길러 양성해냈유.
그래 그 후에, 돌어가신 후에 인제 제자덜이, 제자덜이 거시기 저 당, 사당을 짓쿠서, 그 생전에 인저 고청할아버지가 그 주자에, 주자 진상을 모셔놓구 조석, 분향조석을 사뭇 하다가 돌어가시니께 제자들, 제자들이 또 거시기 서원을 짓쿠서 거기다 모시구서 어 받들었쥬.
그래서 첨이 그 서원이 석탄, 한재 또 누군가, 시분을 모셨다가 양중이는 또 중봉 모두 그 이 여덟 분을 모셔서 지금 춘추루 행사를 해유. [예] 봄에 춘삼월 중정, 구월 중정, 이렇게 해서 제사를 지끔 모시구 있습니다. [예]
[잠시 보충 질문이 오감]
홍운동 가시기 전에 저 한라산 백록담에 올러가가지구서 그 사방을, 그 천지를 보시구… 토정이랑 같이 가셨다는 그 말이 있더구먼유. [예] 토정이랑 같이 가셔가지구서 '망남극이환(望南極而還)하시다, 남극을 바라보구 돌어, 돌어왔는디, 고청 할아버지는 그답으루 인저 그 저 중국을 가셔서 주부자 진상을 시번 가서 모셔왔다니 그 그때로 말하먼 어지간항게쥬, 보행이루 댕겼으니께. 지금 같음 비행기두 있구 뭐 차두 있구 하지마는 보행이루 그릏게 시번을 가서… 그래 그 우리 고청 할아버지 말씀이
"욕학, 욕학공잔(欲學孔子)댄 하반주자(何反朱子)리요. 공자를 배울진댄 어찌 주자를 배반하리요?"
그래 그 주자를 모셔다가 이릏기 사맛 이릏기 조석참배하구…
[서기 19] 서고청 선생 내력
1991.7.18. 공주군 반포면 송곡리. 박창규·73세
* 제보자 자택 /조사자 1명 /유도 구연
서고청선생님은 어, 그러니까 난 날짜는 내가 잘 물르겄고, 어 원래는 남포 분였유. 그래서 그 양반이 나셔서 이 충남 공주로 오셨죠. [예] 공주로 오셔서 여기 공암이라는 데 그 굴이 있어요. [예] 그, 그래 서고청굴이라구 그라는디, 그 굴이서 공부를 많이 하싱 것 같애요. [예] 그래가지구 그 양반은 여러 군데를 댕기셨죠. 어, 제 제주도 가서두 공부를 하시고 오시고, 또 여기 이 경상도 가서도 공부를 하시고 오셨는데, 에 토정, 이토정을 아실게요? [예] 이토정하고 같이, 이토정에게 공부를 하시고 그랬습니다. 게 있다 오셔가지구, 말인즉은 생이지지를 했다고 그럽니다. 생이지지를 하셨다고 그랬는데, 거기 공암에다가 어, 연정이라구 연정을 지시구서 거기서 인저 학생을 전부 가르치셨죠, 학도를. 갈치셨는디, 그 양반이 인저 어 주자예학을 참 후생에게다가 전도해주기 위해서 주부자를 중원에 가설랑은 모셔오는디, 그 진상을 모셔오는데, 에 삼입중국(三入中國)을 했에요. 세번 중국을 들어가셨다구. 츰이 들어가니까 안 주세요. [예] 그 주자 진상을 안 주신단 말여. 그래서 그냥 회정해 오셨다가 또 들어가셨다구. 그리두 또 안 줘. 그래 삼입중국여. 세번채 인저 들어가셨다구. 들어가셔서 어 그 말씀을 드리니까 중국에서
"네 정성이 지극하다."
이릏게 생각하시고 어 주부자 영정을 일곱 벌을 주셨에요, 일곱 벌. 그래서 일곱벌을 모셔다가 연정이다가 '괘벽이조석참배(掛壁而朝夕參拜)'지. [예] 벽에다 걸구 조석으루 참배를 했에요. [예] 그라먼서 어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그 인저 그 주자예학을 그렇게 폈는디, 그 뒤에 거기다 서원을 지셨에요. 서원을 지셨는디 그 서원을 공암서원이라구 그래가지구 어 이 이한재, 한재 선생하구 또 저, 아 이런… 이게 내 정신이 쫌 좋들 안해요 요새, 병으루. 음. 성동주, [예] 동주 성선생하고, 하나 이이를 잘 몰르겄는디, 이따가는 생각날 게요. 그 삼선생을 모시고 주자 주벽하고서 서원을 배설했에요.
그래 서원을 배설하구서 참 저 학생을 전부, 제자를 가르쳤는디, 그 뒤에 에 조중봉, [조사자:예. 조헌선생요?] 예, 조헌선생이죠, 김사계, 또 송동춘, [예] 송우암, 이렇기 추배(追配)를 하라구 그래서, 인저 나라이서 하라구 그렁거쥬. 그래서 그 추배를 해가지고 아홉 위를 모셨에요, 당신까지. 게 당신은 어 고청선생이시죠. [예] 그 양반은 어 조그만하게 별묘를 져가지고 별묘에다가 모셨었습니다. 그랬다가 대원군 때 인저 참 정이품의 벼슬을 주셨에요 인저. 그래가지구 같이 인저 연영(연령) 순위대루 아홉 위를 모셨죠. 그래서 춘추루다가 참 제사를 지내고 이렇게 했는디.
그 대원군 때 인저 그 거시기를 헐렸잖앴습니까? 그 인저 서원이 전부 헐렸죠. [예] 그때 헐렸에요. 그랬다가 야중에 또 복설을 했습니다. 그런디 거기 이 토지가 사액받은 토지가 삼백오십석지기가 됐습니다. [조사자:삼백오십...] 석, [예] 삼백오십석지기를 사액을 받어가지구 어 참 서원, 큰 서원였죠. 대서원이요. 충청도에서는, 이 참 예를 들어서 노론 소론 하는디, 노론의 서원이요. 노론의 서원으로서 대서원였습니다.
[* 서원의 연혁과 재산 관리에 관한 설명이 이어짐.]
[서기 21] 고청모 명정 쓴 송구봉
1991.7.18. 공주군 반포면 송곡리. 박창규·73세
*서기 20에 이어서 구연
그 인저 고청선생 자당이 막덱이여 이름이, 막덕. [예] 그래 인저 고청선생님이 당고를 했어. 그 인저 자기 자당이 작고하셨단 말여. [예] 그러니까 명정을 쓰야 되겄는디, 그 인제 제자들이 물응 거여.
"명정을 어트기 쓰야 헙니까?" 그러니께,
"으, 명정 놔둬라. [예] 명정 쓸 분이 오실 거다." [예]
"게 명정 쓸 분이 어디서 오십니까?" 그러니께
"이, 이따가 오실테니께 기달리라"구.
게 오셨는디 누가 오셨는고 하니 송구봉이 오셨단 말여. [예] 그 인제 자기 동료니까. [예] 게 오셨는디 송구봉더러,
"너 저 양반한티 가서 써달라구 해라."
그러니께 송구봉이,
"으, 내가 써드리지."
그래 붓을 잡구 쓰는디, '사비막덕지구(私婢莫德之柩)'라, 사사종, 종비짜, 사사종 막덕의 늘(널)이다, 이릏게 썼단 말여.
게 워떤 분은 얘기하되, 우암선생이 쓰셨다, 이릏게 얘기하는 분두 있에요. 천만의 얘기여 건. 연대가 한 백오십년 떨어져. [예] 안 디여(안돼). 그래서 그 송구봉이 쓰싱 것을 '송'이라구 하니께 우암이라구 그랬덩 거여. 그러니까 그건 잘못이다, 이릏게 얘기를 하죠.
[서기 23] 송구봉과 정양파 동생
1991.8.16. 논산군 노성면 죽림리. 이재철·69세.
*제보자 자택 /조사자 1명 /유도 구연
[조사자: 그런데 뭐 야담집을 쭉 이렇게 보다 보니까요, 뭐 서고청선생, 또 송익, 송구봉 선생 그분이 원래 출신이 쫌 미천했다구… ]
아 김덕령이니 모두 출세를 못했잖여 그때 , 천인이라구.
그런디 송구봉 같은 이는 훤한(?) 뭐 잘 나구. 그 뭐여? 저 정양파가, 그 송구봉의 그 동생이 시화? 양파는 태화구. [조사자:지화?] 지황가? 그는 정승밲이 못 살었지, 태화는 영의정을 살구.
그런디 송구봉게 그렇게 접촉을 헌다구, 그러닝게
"그러먼 나중이 송구봉 선생 오걸랑은 내가 은신할팅게 니가 가 접견을 해라."
아 와서 찾는디, 그 동생이 인저 접견허러 나갔는디, 아 절을 하구 그랬네. [예] 절을 하구. 그래 나중이 간 뒤에
"아이 너 나보구 접견하지 말라더니 너는 오트게 절을 했냐?"
"아 손이 대구 앞으루 가대유." 허허허.
[조사자: 그만큼 인물이…] 그 인물 그래서… 그러니 그런 이들 안 쓰구 조선이, 저 뭐여 이성계 업적이 어떻게 망했간디. 그 적서 구별하구, 적자 서자. 또 천인 구별하구. 당파는 뭐 할수웂이 지덜끼리 해서 생기는 거지만. 그렇게 해서 망항겨.
[서기 25] 서고청 출생담
1991.10.17. 공주시 중동. 이동구·76세.
* 노인회관 /청중 2명 /유도 구연
[조사자:여기에 뭐 공주 인물 중에 서고청이란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서고청이 있쥬. [조사자:그 분두 굴하구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든데요.] 그런디 그것도 또 물르지. 그런디 그건 임진왜란 때 그렇게 했다구 그라지 아마. [예]
서고청이라는 이가 있었어. 그런디 그 어머니가 이름이 막덱이라는 인디, [예] 막덕이라는 인디, 거기 사는 이들 어떤 집, 그러니께 아마 종이였어 뭐였어, 그렇게 살었나봐. [예] 심부름 해주구. 그래 인물이 좋지 않덩가 뵈지? 말인즉은 뭐 빡빡 곰보라구 한다더먼. 그런지 누가 알어? [예] 그래 잘 안 생겼이니께 시집을 안, 안 데려가서 뭇 갔잖어. [예]
그래 밥을 싸가지구… 참 저 일을 하는디, 아마 칠팔월 됬덩가봐. 밥해오라구 해서 밥을 갖다 주구서 들이서(들에서) 오덩가 뵈지, 밥광우리 이구. [예] 그 길갓여, 있어, 굴이 이렇기. 제법 커. 아마 한 거지반 한 십미터 이상 들어가얄껄. 그렇기 남향으루 해서 그 신작로 갓이 바루 있는디. 그리 비가 오니께 쬧겨서 들어가 버렸어. [예] 고기서 셨다가 인저 비 발구 갈라구.
어떤 소금장사가 소금짐을 짊어지구서는 또 장을 보러 댕기다가 쏘내기를 만났잖어? [예] 그러니께 거기 바위 밑에 굴이 있으니께 그리 소금짐 지구서 들어닥쳤단 말여, 비 바욀라구. 허허. 가보니께 워쩐 부인네가, 츠녀가 있잖어. 그래 연애를 하자구 해서 연애를 했다능겨 거기서 이저, 그 굴구녕이서. 그래서 임신한 것이 서고청이를 났다구 한다는디.
그 그렇게들 노인들은 그렇기 전설이 그렇다구 하더라구. 그런디 그 저기 알간디? 그래 거 굴은 있어. [예] 굴 아마 거기 안 가 보는 이 웂을껄, 그리 지나댕이는 사람은. 다 가 봐. 그래 그 서고청이라는 이가 훌륭했어. [예]
[조사자:그분이 학잡니까?]
학자지. 그때 송우암이라는 이, 송시열이라는 이가 영의정였는디 그 영의정하구 만날 같이 댕기머 놀었이니께 훌륭한 이지 뭐여. 베실 뭐잉가 했는디, 베실은 별 베실 못했구. 계급 얕은 베실 했지.
그런디 세상사가 다 알어. 그래서 선생님이라구 다 바쳤어. 훌륭한 이라구 서고청이라는 이를.
[조사자:근데 예전에 그 종에 자식이면 공부를 못하지 않았습니까?] 못하구 안 가르쳤지. [조사자:그런데 그분은 어트게…] 그런디 아마, 일허구 더러 놀구 하니께 틈틈이 저 동네 서당 있던지 어트게 항거지. 그러니께 그런 디 가 놀구 해서 그렇게 해서 배우구, 나중이는 자기가 독학해서 배웠어. [예] 그래 뭐 몰르는 게 없었어. 그렇게 배웠다구 그렇게 얘기하더라구. 그이가 뭐 누구한티 뭐 가르쳐서 배우구 이릏게 항 건 아니구. [예] 서고청이란 이 훌륭한 이여.
[서기 29] 성씨 찾은 서고청
1991.12.16. 공주군 이인면 신흥리. 김광웅·75세
*제보자 자택 /조사자 1명 /유도 구연
[조사자: 서고청이 난, 그 서고청이 난 얘기부터 해가지구요…]
게 사실이라군 하지만 또 서씨네가 들으먼 또 서운타구 할껄. 허허.
[조사자: (...) 거기 서씨들은 이런 얘기 안 하나 보죠?]
그 이 지방서는 다 하구 있는디 그 사람네야 뭐 인저 그런 소리 하겄유? 안 할 티지. 그래 그 더러 서씨네 만나서 얘기하머는 '에이 여보, 쓸데웂는 소리라'루 인저 밀어붙이구 말지 뭐, 그 사람네들. 서씨네야 뭐.
[제보자가 선뜻 구연을 시작하지 않고 머뭇거려서 조사자가 여러가지로 권하였다. 공암의 굴에 관한 이야기가 잠시 오갔다.]
그 서고청이란 분이 [예] 애초에 게 전줏이씨가 많이 살거든, 지끔두. 전주이씨가. 전주이씨에 그 평사공 자손, 그 자손들이 고기 많이 살아. 그래 그 사당두 있구. 거기 그 서원두 있구 그렇지.
근디 서고청에 어머니 되는 분이, 승은 몰르구, [예] 그냥 옛날에 그 인저 비부루다 있었단 말여, 종으루. [예] 여자의 종으루 이씨네 집이서 있는디, 그 새 볼 때가 됬단 말이지, 새. [예] 거기. 근디 새 볼 때 느닷웂이, 게서 인저 새를 보는디, 서고청의 그 어머니 되는 이… 그게 이씨네 논에서 새를 보능 거지, 알기 쉽게. 근디 느닷웂이 쏘내기가 온단 말여. 그러니께 새 보러, 바루 굴 앞이였덩가 보지, 굴루 들어갔거든. 글루 비를 피하러.
그랬더니 어느 소금장수 하나가, 한 분이, 소금은 비 맞으먼 버리닝게, 그렇잖아유? [예] 그 소금짐을 짊어지구 그 굴루 또 들왔단 말여, 그 비를 피하러. 그 들와보니께 웬 츠녀가 있거든. [예] 여자가. 그러니께설랑 참 이런저런 얘기 하다가 참, 맘이 맞아설랑은 서루 인저 뭣이, 잠을 자게 됐더라는… 근디 날이 들었이닝게 인저 소금장수는 인저 또 소금 팔러 가구. [예] 그는 나와서 새 보구.
그런디 그 인연이 됬던지 태기가 있단 말여. 태기가. 그 멫 해가 됐는디, 서고청을 났거든. 그래 나중에 인저 여러 해가 됐지. 그러니께 뭐 까짓, 종이 가서 어린내를 낭거니께 성을 찾을라구 할 것두 웂구, 그 상전 집이서는.
그런디 이 부인네가 인저 나이두 좀 언간히 먹구 그랬는디, 아무래두 어딘가 성을 알어야겄거든. [예] 그래 인저 거기 가서 또 밧이 있덩가 원두를 놨더라구, 참외막. 원두막. 게 원두막을 지키능 거유, 거기서. 그 찾을라구. 그러니께 우떤 소금장수가 와설랑은 원두를 사먹구 그라구서는 보더니, 그 굴을 보더니 피석 웃거든. [예] 그러니께 그 부인네가 그 웃능 걸 보니 수상쩍단 말여.
"그 우째 그 웃느냐"구.
그러니께 츰이는 뭐 사양을 하다 나중이 가서
"아 내 하두 부인 있는디 말하기가 좀 챙피한디, 연전에 이만저만한 일이 있어설랑 제(저기)서 그 어느 여자하구 동품을 한 적이 있다"구. [예]
"그 원제쯤 되느냐"구 그러니께 아 제날이거든.
"가을에 그 쏘내기 와서 그랬다"구.
게 영낙웂단 말여, [예] 그 남자가. 그래서
"그러믄 당신 승이 뭐유?" 하구 물었거든. 그러니께
"서가라"구.
"그럼 본은 어디냐"구, "관상(?)은?"
"이천이라." 이천서씨거든. 이로울이짜 내천짜.
"그러냐?"
게 인저 그 저 난중이 가서 이천서씨라능 걸 알구 이름까지 인저 다 알았거든. [예] 그래서 서고청이 이천서씨라능 걸 알았단 말여. [예] [전화 받느라 잠시 중단] [조사자:그래가지구 성을…] 에 이천서씨. [예] 그래서 성을 알응 거유.
근디 서고청이 그 참 생이지지(生而知之)라드니, 나가지구서 이것 저것 참 몰르는 게 웂이 다 안단 말여. 긍게 아무리 그 종의 자식이라 하더래두, 암만 옛날 그 뭣이라 하더래두, 워냥 잘 알으니께 그걸 함부루 할 수가 웂거든, 그 상전 집이서두. 그 인저 글두 갈치구 인제… 가르치나? 인저 어깨너머루 배우는 거지. 게 다 알어 뭐, 한번 보먼. 그래 훌륭한 분이라구.
[서기 30] 고청모 명정 쓴 송우암
1991.12.16. 공주군 이인면 신흥리. 김광웅·75세
*서기 29에 이어서 구연
근디 그 어머니 상을 당했거든. [예] 어머니가 돌어가셨단 말여. 그 제자들이, 제자들이 수북헌디, 그 제자들 말이,
"아이 선생님, 그 명정을 쓰얄틴디 워트게 쓰야 헐까유?" 이려.
선생님한티, 서고청한티 물었단 말여. 그러니 그 어머니가 그 승두 물르구, 종으루 아주 천덱이였어가지구. 그러니께 서고청이 있다가서,
"음, 가만 있어라. 쪼끔 있으먼 그 쓰실 양반이 오신다." [예]
그러구 했단 말여. 그러더니 쪼끔 있다 보닝게 우암선생이 오거든. 그 우암선생이 오니께 그 제자들이,
"아이 명정을 워트게 쓰야 옳을까유?" 그라니,
"이, 붓 가져오너라."
그 가져오더니 자기가 썼어. 그 뭐라구 씅고 하니, '천비,' 천할천짜 종비짜 천비, '막덕지구'여. 이름이 막덕이였단 말여, 막덱이. 그게 '천비막덕지구(賤婢莫德之柩)'라구 했는디… 그 제자는 가설랑 그 선생님의 어머닌디, 사모님인디, '천비'소리를 뭇 늫거든, 감히. 그런디 우암은 그때 그 뭣이, 서고청하구 자별히 지냈던 모양여. 그래 우암이 '천비막덕지구'라구 이 명정을 써줬단 말여.
[서기 34] 고청모 명정 쓴 송구봉
1992.5.29. 공주군 계룡면 화헌리, 정은상·74세
*제보자 자택 /조사자 1명 /유도 구연
[조사자:고청, 서고청 그 어머니가 돌어가셨을 때 그 명정을 쓰느라구 뭐 말이 많았다구…]
그 명정또레(때문에)… 그가 인저 참 천, 천비의 소생으루설랑은 대과를 하고 참 훌륭하게 됐이닝까, 그 명정을 누가 감히 쓴다구를 못하죠 그러니까. 그분이 베실하구 헸이니께 그 어머니를 추증헤가지구서 훌륭한 무슨 정부인이라든지 정경부인이라든지 그렇게 할 수두 웂는 노릇이구. 또 옛날에 그 이평사집 그 종이니까, 그 여종이니까는 종이라구두 할 수두 웂는 노릇이구. 체면 봐설랑, 고청 선생님 체면을 생각헤서. 그래서 망설이구 있으니께는 고청이, 서고청이
"얼마 안 있으먼 명정 쓸 분이 올 게니까 [예] 지달리구 있거라."
그랬는디 올마 있으니께는, 그때, 그때는 율곡이 왔덩가… [잠시 생각] [조사자:송구봉…] 응. 송구봉이 왔다, 와가지구서, 그분이 와가지구설랑은
"명정을 안 썼느냐"구.
"아직 안 썼다"구 그러니께
"필묵을 달라"구 하더니
'이비막덕지구(李婢莫德之柩)'라, 딱 그렇게 써놨유, '막덕지구'라구. 이가의 종 막덱이, 이름이 막덱인디, '막덕의 이 관이다' 이릏게서 '지구(之柩)'라구.
그러니께는 뭐 고청 역시두 뭐 사실이 그러니까 뭐 잘못 썼다구 할 수두 웂는 노릇. 그런 분들은 다 훌륭한 분덜이 쓰능 거니까. 그래서 참 송구봉이나 하니까 그런 그 영정 썼다능 거쥬, 감히 참, [예] 그릏게 사실 옛날이 종으루 헸지만 그 아들이 그래 훌륭히 됐는데, 워트게 명정을 그릏게 쓰느냐 그거유. 그릏게 썼어두, 서고청 역시두 사실이 그러니께는 참 쪼끔이래두 불쾌허게 생각 않구 [예] 그렇게 했다능 거쥬.
[서기 36] 서고청 출생담
1992.5.29. 공주군 계룡면 유평리. 윤봉중·60세
*제보자 자택 /조사자 외 청중 2명 /유도 구연
[조사자:저기 저 계룡산 너머 거기 서고청이라는 분…] 있지. [?:서고청굴이 있지] [조사자:서고청굴이 있습니까?] 서고청? 그 한번…
서고청 얘기는 이게 참 어려운 얘깁니다. [예] 서고청이라구 그라면, 공주에서 대전이 구십린디, [예] [?:반포] 대전 구십리여서 공주 대전간 약 반 걸리는 반포 공암, 그라먼 거기가 학봉리에서 약 서편으루다가니 오륙백미다 서편, 그때가 세월은 바루 송우암 송시열시, 윤명재, 아주 대한민국 명장으루 뛰어났을 때 그 세월이었습니다. [예]
그런데 그 서고청이라구 하는 분이 [제보자 부인:아이구 얘기두 잘 헤여] 새우, 새우젓장사라구 지금 현재 얘기를 이게 전설루 쭉 내려오구 있습니다. 근디 난데웂는 폭풍이 불면서 쏘낙비가 나려와서, 지게를 받쳐놓구 비를 피하다 보닝까 그때가 구시월 새 볼 때가 됐는데, [예] 그 굴 문전을 들어가다 보니 암, 굴 전면에서 새 보던 부인이 [?:그랬었댜. 하하하] 그 근처 있는디, 비는 끄치지 않구 그 안에서 동품을 해가지구, 새우젓 장사가 맨들응 것이 바루 서고청였었다는 것을 이 증명한다는 것을 충남사람은 다 압니다. 충남 사람이 아니라 어디 사람이구 다 알어. 이 역사를 아는 분은.
[서기 37] 고청에게 눌린 송시열 아들
1992.5.29. 공주군 계룡면 유평리. 윤봉중·60세
*서기 36에 바로 이어서 구연
그런데 그때가 바로 송시열 송우암하구 시대가 일이년 차이가 그밲이는, 탄생 차이가 그밲이는 안 됐었다 이런 얘기여. [예] 그래서 송시열 친구가 그 서고청빾엔 웂었다 하능 것을 여기서 명심히 얘기하능 겁니다. [예] [?:그래여] [예]그래서 송시열씨 아들이
"워째서 서고청만 오먼 아버지 그렇게 반가워하쇼?" 하닝까 [?:그리여, 그랬다능겨]
"내가 오늘은 워디를 갈테니 서고청이 오걸랑은 니가 그 서고청 대접, [?:그래여] 그 배례를 해라." 그라니께, 그라구서 나가서 지붕 추녀 가서 딱 붙어가지구서 있으니께, 송시열씨 아들, 그 자(이름자)를 몰르겄습니다만, 그분이 서고청이 와서
"여봐라." 하구 부르니께 자기도 모르는 새에 [예] [?:버선발로 뗘나갔댜. 하하하] 그냥 뗘나갔다는 얘기여. 그래 게 가서 맞아보니께 별수웂이 서고청인데 [예] 자기 발을 쳐다보니께 버선발이더라 이런 얘기여. [예] 그라구서 꿈처럼 딱 끊긴 다음에 자기 아버지가 나타나서
"서고청 왔더냐?"
"왔었유."
"게 워트게 됐니?" 그러니
"나두 모르는 새에 그냥 버선발로 뗘나갔습니다." [예]
"그럴 테지."
백제시대 충남 땅에서 인물은 서고청였었다 하능 것을 송시열이가 증명했다능 것을 지금까장두 [예] 잊지 않습니다.
[서기 38] 고청모 명정 쓴 송시열
1992.5.29. 공주군 계룡면 유평리. 윤봉중·60세
*서기 37에 이어서 조사자 유도로 구연
[청중:그 서고청 어머니, 어머니 죽어서 영정 [..]를 누가 썼능가두 얘기 좀 허게. 허허허]
그래서 그 후에 [조사자더러] 돌어갑니까 이게? [예] 돌어가네. 수년 후에 서고청 그 어머니가 세상을 버렸습니다. 버리구 대한민국, 대한민국이 아니지 그때, 조선시대 [예] 송시열이가 노론, 이 엄지가락 뺄 땐디, 서고청 어머니가 돌어갔는데 명정 쓸 분이 웂었다능 것을 얘기하능 거여. 그럼 서고청두 충남에 거인이유. 거인이구, 인물이구. 그런디 아버지가 웂는 서고청이거든. [예] 새우젓 장사가 맨들었으니께 아버지가 웂어. 웓다 내놀 띠가 웂다 이런 얘기여.
그런디 방안에서 상여에다 운거를 해야겄는디 이 시체가 떨어지질 안혀. 그래서 송우암이 약 새로 한 시쯤 돼서 도착을 했는데, 그 우암선생님보구서
"이 명정을 좀 써주쇼." 그라니께…
[조사자에게] 내가 이게 무식해서 거기는 몰라, 그 글은. [예] 딱 거라지하구(?) 뭐하구 해서 대한 무슨 맹덕 하구서 딱 쓰니께 [청중: 막덕자라구 했댜, 막덕자라구. <제보자의 말과 겹쳐 청취하기 청취가 힘듬. 명정을 쓸 사람이 없었는데 송시열이 와서 대번에 막덕자라고 하는 내용의 명정을 썼다는 것, 서고청이나 송시열이나 다 명인들이라는 것이 요지였다.>] 그러니께 시체가 관에서, 방에 관에서, 바닥에서 뚝 떴다능거여. 바닥에서 뚝 떴다능겨. 그래서
"야, 우리 충청도에는 송우암 송시열이가 노론에 자격 있다."
그래서 송시열이가 사약을 한번 받었다가 사약을 취소하구 구양을 갔었지. 그라구는 재복구는 못했어. 이씨조선 오백년에서 쭉 네려오면서 재복구한 분은 이순신 장군빾인 웂거든. 이순신 장군, 최일영이 부패에 넘어갔던 황해 황정승하구 둘빾이는 이 조선시대부터 복구한 분이 웂유.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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