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화]
봉숭아라고도 부르는 봉선화(鳳仙花) 는 예로부터 귀신이나 뱀을 쫓아 낸다고 하여,
금사화(禁蛇花, 뱀을 막는 꽃) 라고도 불렀으며,
조상들은 집의 울타리 밑이나 장독대 옆에 봉선화를 심어 질병이나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랬다.
봉선화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touch me not)’ 인데,
영어권에서는 ‘쌀쌀한 여자’라는 의미를 지닌다.
봉숭아 열매가 여물면 꽃씨 주머니를 조금만 건드려도 톡 터지는 힘으로 씨앗이 멀리 날아간다.
이 곡을 작사한 김동찬은 부여고교 재학 시절 짝사랑했던 청순한 여학생에 대한 추억을 되살려 39세에 발표하였다고 한다.
가수 현철은 1942년 부산 출생으로 본명은 강상수인데,
오랜 기간 무명 가수로 지내다 1988년 ‘봉선화 연정’으로 KBS 가요대상을 수상했다.
봉숭아와 관련된 옛날 이야기도 있는데,
고려 충선왕은 몽골에서 보내온 공주보다 조비를 더 사랑한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아 왕위를 내놓고 원나라 수도 심양으로 불려가서 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왕은 어느날 한 소녀가 자기를 위해 가야금을 타고 있는 꿈을 꾸었는데 소녀의 손가락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꿈에서 깨어난 왕은 하도 기이하여 궁궐 안에 있는 궁녀들을 모조리 조사하여보니 한 소녀가 손가락을 흰 헝겊으로 동여매고 있었다.
왕이 그 소녀의 신분을 알아보니 고려에서 온 소녀인데 봉선화 물을 들이기 위함이었다.
왕은 남의 나라에 와 있으면서도 자기 나라 풍습을 지키는 것을 갸륵히 여겨 소상히 알아보니,
소녀는 아버지가 충선왕파라 하여 면직당하고 여기까지 끌려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와 계시는 충선왕에게 준비한 가야금 가락을 들려 주겠다고 하였는데,
그 가락은 왕이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노래였다.
그후 왕은 원나라 무종이 왕위에 오를 때 크게 도와 준 공으로 고려에 돌아올 수 있었고,
다시 왕위에 오른 뒤에 그 갸륵한 소녀를 불러오려 하였으나 이미 죽은 후였다.
왕은 소녀의 정을 기리는 뜻에서 궁궐 뜰에 많은 봉선화를 심게 하였다 한다.
(옮겨온 글)
첫댓글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봉선화하나 키우기도 그렇게 힘이 드는데 우리의 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