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7] 이정옥(李貞玉) - 일심봉천(一心奉天) 8. 일심봉천 (一心奉天) - 1 1 1961년 1월 27일(음 1960. 12. 11), 예진씨가 첫 아기님으로 태어나셨다. 막 태어난 예진님은 아버님을 많이 닮고 얼굴은 계란형으로 미인형이었고 보통 아기보다 훨씬 크고 건강하고 귀엽고 예쁜 따님이었다. 선생님께서 예진님을 맡아 돌보도록 말씀하셔서 이 귀한 첫 아기님을 기르게 되는 영광을 감사하며 어머님을 도와 나의 지성을 다 했다. 2 9개월 동안 예진님을 키우고 1961년 9월에 또 전국 순회 임무를 맡아 충청북도에 갔다. 미원교회에서는 심한 핍박을 받고 있었다. 우리 교회에 열심히 나오는 딸이 기도하는 중에 그 어머니가 교회에 불을 놓은 일이 있었다고 하며, 내가 저녁 집회 때 말씀을 하는 중에 밖에서 돌을 던지며 소란을 피우는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70여 명의 식구들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고 더욱 단결되어 있었다.
3 다음은 보은교회장과 같이 북이면 교회 집회에 가기로 약속했었는데 보은에 가보니 교회문은 잠겨 있고 교회장도 보이지 않았다. 할 수없이 혼자 버스 정류장에 갔더니 그 전날 비가 많이 와서 버스가 불통이었다. 사람들에게 북이면까지의 거리를 물었더니 약 30리라고 했다.
4 내가 그날 저녁 집회에 가기로 되어 있었으니 식구들이 모여 기다릴 것을 생각하여 30리 정도의 거리라면 걸어가기로 결심했다. 늦어도 하오 7시까지는 교회에 도착하리라고 생각하고 교회장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다가 오후 2시 반쯤 출발해서 길을 물어가면서 15리쯤 갔다.
5 마침 길 옆 우물가에서 아낙네들이 보리쌀을 씻고 있어서 길을 물었더니 저 높은 산을 넘어가야 한다 했다. 한 젊은 아낙네가 한숨을 지으며 “이제 저 먼 산을 어떻게 넘어가지” 하는 말을 했으나 15리를 왔으니 15리만 더 가면 되는데 저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서, 그녀의 말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또 멀리 높은 산이 보였지만 15리만이 남았기 때문에 가까운 쪽 높은 산으로만 상상했다. 6 그런데 10리쯤 더 가서 길을 물었는데 약 30리 더 가야 한다고 했다. 또 5리를 더 가서 물어도 30리 남았다고 했다. 그러자 아까 우물가에서 아득히 멀리 보였던 높은 산에 당도하게 되었다.
7 버스 길이 되어서 험하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크고 높은 산으로 꼬불꼬불 올라가야 했다. 산 밑에서 지름길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있기는 있지만 무인지경 산길을 10리쯤 가야 하는데 험한 길이어서 여자 혼자 이 저녁에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다.
8 또 북이면까지는 멀어서 오늘 저녁에는 갈 수 없고 남이면에서 자고 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참 이상했다. 분명히 30리라고 들었고 또 지구장님이 내게 준 순회 예정표에도 30리로 적혀있었다. 40리쯤은 걸었는데 아직도 30리를 더 가야 한다 하니 기가 막혔다. 시골 사람들의 잇수는 정말 종잡을 수가 없었다. 9 비가 많이 와서 돌다리가 넘쳐흘렀지만 돌다리를 딛고 냇물을 몇 번 건너가야 했다. 해는 점점 서산을 넘어가려고 하는데 길은 멀고 마음은 바빠서 버선을 벗는 시간도 아까워 신은 채로 물을 건너기도 했다.
10 해가 서산에 걸렸을 때 얼마나 마음이 조급한지 할 수만 있다면 지는 해를 묶어 놓고 싶었고 초행길에 어두워지면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 불안해서 울고 싶었다. 남이면에 도착하니 어둑어둑해졌고 집에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길도 부산하게 서두르는 것 같았다.
11 면사무소에서 퇴근하는 어떤 면직원을 만나 길을 물었더니 아직도 20리가 남았다고 하였다. 장날이면 장꾼들이 늦게까지 다니지만 지금은 길목에 사람의 발길이 끊어졌고 혼자 어두워서 못 갈 것이니 남이면에서 자고 가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