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둬야 할까? / 박미숙
교사는 그해에 어떤 인연을 만나는가에 따라 한 해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작년에는 아이들이 1년 내내 어찌나 잘 따라 주던지 “선생님은 너희들을 만나서 정말 행복해.”라고 자주 말했다. 그런데 올해 학교를 옮기고 맡은 학급은 정반대다. 새 학년 첫날에 친구와 다툰 아이에게 서로 사과하자 해도 응하지 않아, 남아서 얘기 좀 하자니 “싫어요, 왜 남아요? 하기 싫은 건 안 해야죠.”라며 큰소리를 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유 없이 옆 사람을 툭툭 때리고 친구 돈을 마음대로 쓰기, 무기력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기, 눈에 뻔히 보이는데 거짓말을 하는 일도 많고 두 달이 다 되어가도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아이까지 있어서 생활 지도에 애를 먹고 있다.
가장 힘든 아이는 ㅈㅎ이다. 겉옷과 책가방, 태권도 가방이 항상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수업 시간에 책을 펴지 않고 계속 큐브나 색종이 접기를 하며 마음대로 돌아다닌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바로 들어주지 않으면, 나에게도 두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예사다. 삐쳐서 밥 먹으러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워 다른 아이들 앉혀 놓고 다시 데리러 간 적도 여러 번이다. 급식실에서 밥을 먹지 않고 뛰어다니다 남의 식판을 쏟아 버려 옷에 반찬이 묻게 한다. 친구에게 ‘ㅆ’이 들어가는 욕을 자주 하며, 팔을 휘두르거나 발길질도 많이 하여 아이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급기야 ㅇ어머니 항의 전화까지 받고 나니 집에 연락을 안 할 수 없었다. 그런데, ㅈㅎ의 어머니는 “우리 아이가 실수로 팔을 부딪치게 한 것은 맞지만 절대로 욕은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부모로서 그 말을 믿어 줘야 하지 않겠냐?”고 한다. 난감했다. 결국, 욕한 일은 사과하지 않고 끝냈다. 그간 아이들의 문제 행동은 학부모와 소통하며 함께 지도하면서 고쳐 나갔다. 조금씩 변화할 때 칭찬해 주면 더 잘하려고 노력하여 대부분 해결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자녀를 피해자로 여긴다면 개선이 어려워진다. 앞으로의 일이 더욱 걱정되었다.
아침마다 “얘들아, 우리 오늘 행복하게 지내자.”라고 인사를 나누며 시작하지만, 좀체 교실의 평화가 유지되지 않는다. 다정하게 타이르고 칭찬 하다가 한 번씩 따끔하게 꾸중해도 변하지 않는 서너 명 때문에 반 전체 분위기가 좋지 않게 되면 다른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해진다. 작년에 나이가 같은 선생님이 명퇴하는 것을 보며 후배들이 부러워해도 난 그렇지 않았다. 교직을 좋아하여 정년까지 계속한다고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건강하여 1년에 병원 갈 일은 한두 번뿐이었는데, 생전 처음으로 후두염과 이석증이 생기니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날이 늘어났다.
1주일에 한 번인 놀이 수업은 담임은 쉴 수 있는 꿀 같은 전담 교사 시간이지만, 우리 반은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가 많아서 함께 간다. 뒤에 지키고 서 있는데도 ㅈㅎ이 ㅇㅈ에게 “개X”이라고 욕했다. ‘왜 그랬냐?’고 물으니 큰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절대로 하지 않았다’라고 한다. 처음 겪는 사람은 완전히 속아 넘어가기 십상이다. 다시 물어봤자 안 했다고 할 것이 분명하여, “아, 혼잣말했구나.” 했더니 맞댄다. 아직 2학년이라 돌려 물으니 제대로 걸려들었다. 그 욕을 친구에게 배웠다고 했지만, 우리 반의 욕은 대부분 ㅈㅎ에게서 시작되었다.
상담 기간에 ㅈㅎ의 어머니께 이 일을 얘기했다. 더불어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도 알렸다. 매우 영리한데, 공동체 생활에서 지켜야 할 예의를 익히고 참고 기다리는 것도 배우면 자기 능력을 더욱 잘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무 말 않고 들었다. 위 클래스(Wee Class)에서 상담받기를 권하니 받아들였다. 아빠도 전화가 와서 ‘다리 몽둥이를 부숴서라도 제대로 키우고 싶으니 잘 지도해 달라’고 말한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부모가 함께 챙기니 아주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힘들다. 약간의 변화가 아이가 잘해보려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잘못하면 아빠에게 이를 것이라는 불안감에서 생겼을 수 있다는 것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이유를 끝없이 설명하고 기다려 주기엔 챙겨야 할 다른 아이들도 많아 어렵다. 날마다 ‘오늘은 평화롭게 지내야지’ 마음먹고 출근해도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 때문에 나의 감정이 요동치는 하루를 보내고 나면 머릿속은 엉망진창이 된다. 라인댄스를 하면서도 그 생각하느라 순서를 자주 틀리게 되었다. 나에게 문제는 없는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더 잘 이끌 수 있을지, 최근에는 도서관에서도 교육 관련 책만 골라서 읽었다. 좀 더 노력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만 애쓰고 싶다는 마음도 많이 생긴다.
‘대충 1년을 살아야 할까, 힘든 아이들 지도 방법을 더 공부하여 잘 이끌어 봐야 할까, 교사로 살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을 인제 멈추어야 하나, 스트레스 많이 받아 병 생길 수 있으니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 하며 건강관리나 잘할까?’ 등 온갖 생각이 다 든다. 그러는 사이 1학기 명퇴 신청 마감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있다.
첫댓글 고생 많으시네요. 갈림길에 서면 누구나 고민스러워요. 선택의 가장 큰 기준은 행복이 아닐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