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전(上典) 대하기
오종락
윗집은 우리 집의 큰 상전이고, 아랫집은 작은 상전이다.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의 구조 때문에 필연적으로 생기는 층간으로 맺어진 인연 때문이다. 서로 천장과 바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아가는 이웃은 서로서로가 상전과 하인의 처지가 된다.
배려심이 부족한 윗집에 사는 분은 자연히 나의 버거운 상전이다. 윗집이 시끄럽게 쿵쿵 소음을 발생시켜도 내가 쉽사리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세대 내 인터폰이나 관리사무소를 통해 부탁이나 항의를 해봐도 별 신통할 결과는 돌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윗집 상전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을까 염려하게 된다. 층간 소음에 관한 한 윗집 상전의 배려를 기대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우리 윗집은 10년 사이에 주인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나름 개성과 특징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첫 번째는 발자국 소리를 유독 크게 내던 아주머니가 살았고, 두 번째는 젊은 부부가 살았다. 젊은 내외는 소음을 많이 발생시키며 우리 집을 몹시 불편하게 했다. 내외는 서글서글한 성격에 사람들은 좋았지만 몸에 밴 생활 습관이 문제인 것 같았다. 지난해 새로 이사 온 윗집은 배려심이 깊은 분들로 전혀 불편을 주지 않고 있다. 너무나 고마운 사람들이다.
윗집에 비해 아랫집은 우리 집이 하기 나름이다. 걷을 때 조금만 조심하면 되고 우리가 소음을 발생시키지 않으면 되기 때문이다. 때론 아랫집도 아이들 떠드는 소리와 강아지 찢는 소리가 배관을 타고 올라와 작은 불편을 주지만 윗집에 비할 바는 아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흔히들 이렇게 말한다. 층간 소음을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아파트 구조상 층간 소음은 자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소음을 발생시키더라도 '예쁜 소리'가 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예쁜 소리'란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의 불가피한 소음, 가벼운 발자국소리, 즉 사람사는 소리를 말할 것이다. 또 특별히 큰 소음을 발생시킬 일이 있을 경우 사전에 양해를 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묘하다. 사전에 양해를 구할 경우 층간소음에 대한 인내력도 높아지는 것 같다. 소음 스트레스는 전적으로 소음으로 인해서만 생기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가령 미운 이웃이 내는 소음은 더 예민하게 크게 들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마 심리현상에 기인한 소음의 강도가 아닐까 한다. 이웃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소음이나 상식을 벗어난 소음 등은 자제하는 것이 공동주택의 기본적인 에티켓이다.
이왕 공동주택에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상전을 잘 대하는 법을 익혀야 할 것 같다. 상전을 잘 대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다정한 인사를 통해 친밀감을 쌓아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서로 인사를 주고받다 보면 친밀감은 쌓이게 마련이다. 나는 위아래 세대 가족들을 만나면 더 각별히 내가 먼저 인사를 보낸다. 상전이니까 하인이 먼저 인사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그것보다는 더 가까운 이웃이기 때문이다. 인사는 먼저 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라는 말도 있다. 인사를 받는 입장에선 자신이 대접받는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정성스러운 인사를 받으면 누구나 기분이 좋게 마련이다.
나는 요즈음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나면 남녀노소 구별하지 않고 내가 먼저 인사하고 말을 건네는 편이다. 자녀를 데리고 나온 새댁을 만날 경우 아이의 이름을 묻거나 칭찬을 해주며 이야기를 건네면 금방 가까워진다. 특히 윗집과 아랫집은 신경을 더 많이 쓰는 편이다. 가장 영향을 많이 주고받는 이웃이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이웃들과 별 탈없이 잘 지내고 있는 편이다. 요즘은 우리 골목(라인) 새댁들은 나를 보면 연신 꾸벅꾸벅 인사를 곧잘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면 아이에게 나를 보고 꼭 인사하도록 가르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초등학생은 동대표 아저씨라고 더 깍듯이 인사를 한다. 고마운 이웃이라 기분이 몹시 좋아진다. 인사 잘하는 아이들은 몇 호에 사는지 기억을 해 둔다. 아이 부모를 만날 때면 댁에 아이는 인사성이 참 좋다고 전하며 가정교육이 훌륭하다고 덕담을 보낸다.
이웃을 만날 때 건네는 인사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존중을 통해서 더욱 새로워진 자아를 알게 해 준다. 인사는 전염성이 강한 행복바이러스이며 고약한 상전들의 마음도 다스리는 묘약이 아닌가 한다.
오늘날 엘리베이터 안은 하늘로 향한 수직 골목길로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이런 좁은 골목길 안에서 이웃을 잘 대하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이다. 먼저 밝은 미소로 건네는 인사가 건강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한다. 먼저 인사하는데 인색할 필요가 없는 이유이다.
또 인사를 먼저 한다고 해서 손해 볼 것은 하나도 없다. 서로가 먼저 인사를 하다 보면 한 골목 사람들은 매우 가까운 이웃사촌으로 쉽게 발전함을 느낄 수 있다. 이웃 간에 친밀감이 쌓이면 공동주택에서 발생하는 층간소음이나 사소한 갈등도 자연히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19.11.17]
첫댓글 글의 내용에 깊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당연한 이치를 몰라서인지, 알고도 모른척 하는 것인지, 현실은 많이 동떨어진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는 그날까지 묵묵히 실천할 밖에요.... 잘읽었습니다.
가끔 아파트 소음관계로 폭행과 심지어 살인 사건까지 일어났다는 보도에 경악했습니다.
어차피 피할수 없는소음 상전과 하인 관계를 떠나 서로소통하고 이해하며 참고 배려하면 극복할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단독 주택에 사는 저로선 이해가 안되는 사항이라 아파트 생활지혜를 한 수 배우는 계가가 된것 같습니다. 좋은글
좋은 내용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파트 층간 이웃간의 문제는 가장 직간접으로 이해관계가 있어서 누구나 해당되고 풀어야할 숙제입니다. 윗집은 우리집의 천정이고 아랫집은 우리집의 바닥이란 인식을 해야 해결될 과제라 생각됩니다. 좋은 소제의 관심사를 진솔하게 잘 풀어주셨습니다.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참 현명한 방법으로 아파트에서 생길 수 있는 갈등을 해결하시는 듯 합니다. 특히 아파트일수록 이웃을 잘 만나는게 복이라는 말이 와 닿는 요즘 아파트 생활인데, 평소의 소통이 갈등 해결에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예전 이삿날 떡을 돌리며 집집마다 인사하는 풍습은 이웃간의 갈등을 줄이는데도 큰 역할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풍습마저 사라져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선생님의 소통법을 좀 배우면 좋겟습니다.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누구나 겪는 일을 글로 적으신 좋은 글을 잘 읽었습니다. 아파트 관리실에서 방송으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소음 주위하고 합니만, 어린이가 있는 집은 한결같아서 그러니 하고 지내가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소음관계로 아래층과 갈등이 없었는데 한번 아주 예민한 아래층을 만난적이 있었습니다.그분은 이사하는 날 시끄럽다고 아래층에서 올라와서 황당했습니다. 그 다음 부터서 제사나 행사있는 날은 사전에 인터폰으로 행해를 구하곤 했답니다. 그 아래층 사람들 때문에 결국 이사를 해버렸지만..선생님 말씀처럼 친하게 지내려 인사를 해도 묵묵부담인 사람들이 많으며 마음을 닫고있는 사람들과는 소통하고 잘 지내는게 참 어렵다는 생각도해봅니다.이런 현실이 안타까울따름입니다.그래도 수직골목인 엘리베터안에서 꾸준히 서로 인사하며 지내다보면 좀 나아지리라 기대해봅니다 .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